[공간의 기억] ⑤ 제임스 리 선교사의 유산 ‘제명호’

미군 불도저로 일군 인공 저수지

▲ 1957년 제명호 전경. 제임스 리 선교사가 미군의 불도저와 장비를 동원해 일군 인공 저수지로, 전후 삼육동의 자급과 농업 재건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유산이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당초 이 시리즈의 연재 대상은 건축물로 한정했다. 그러나 제명호가 삼육동 역사에서 지니는 ‘공간의 기억’은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더욱이 제명호는 자연 발생한 웅덩이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 아래 설계되고 축조된 인공호수. 흙과 물로 지어 올린 거대한 건축물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제명호’라는 이름은 제임스 리(James Milton Lee) 선교사의 한국이름 ‘이제명’에서 비롯됐다. 그는 부친 하워드 리(Howard M. Lee, 이희만) 목사가 순안 의명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1912년 출생해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47년 선교사로 다시 내한해 현 삼육동 캠퍼스의 기틀을 닦았다.

1948년 태릉 부지 약 175에이커(약 22만㎡)를 매입해 삼육동 시대를 연 그는, 6.25 전쟁 발발 후 제주도 피난 학교를 거쳐 1951년 다시 태릉으로 돌아왔다. 이후 삼육신학원 초대 원장을 맡아 전후 복구와 교육 사업 재건에 헌신했다.

▲ 한국어 성경을 들고 있는 제임스 리(이제명) 선교사. 삼육신학원 초대 원장으로서 전후 복구와 캠퍼스 재건을 이끈 그는 능란한 외교력과 헌신으로 미군의 물자와 장비를 확보하며 오늘날 삼육동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능란한 외교력을 발휘해 미군의 물자와 장비를 학교 재건에 적극 활용했다. 미군이 철수하던 시기, 이른 아침부터 직접 트럭을 몰고 군부대를 오가며 건축 자재부터 책걸상, 심지어 식기까지 학교 운영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수집했다. 당시 엘리야관 앞길에는 그가 수집한 건자재가 높이 쌓여 있었는데, 이는 대학의 건축과 농장 운영, 조경 등에 요긴하게 쓰였다.

전쟁 직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 대학이 자급하기 위해 농장과 원예 시설을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가뭄 때마다 물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제임스 리 원장은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위한 대형 저수지 조성을 계획하고, 원래 산딸기 밭이었던 산자락 계곡을 적합지로 물색했다.

본격적인 공사는 1953년에 시작됐다. 휴전협정으로 미군 공병부대가 휴식기에 들어간 상황을 파악한 그는 미8군을 찾아가 댐 건설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장비 지원을 이끌어 냈다.

그의 회고록에는 공사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다. 붉은 깃발로 호수와 댐의 위치를 표시하고 나무를 베어내 평탄화 작업을 마친 뒤, 댐이 지어질 도랑에 20피트 길이의 대형 배수관 2개를 묻어 수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사전 작업이 끝나자 미군이 지원한 불도저 4대가 투입돼 계곡의 흙을 밀어냈고, 불과 1주일여 만에 거대한 저수지의 윤곽이 드러났다.

▲ 1953년 제명호 축조 당시 공사 현장. 미8군 공병부대 불도저가 투입돼 도랑에 대형 배수관을 묻고 있다. 제임스 리 원장의 자서전에 “카메라를 든 채 경이로운 마음으로 저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저해상도 원본을 AI 툴로 업스케일링했다.

고지대에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해 농지에 관개하는 시스템은 당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선진적인 시설이었다. 저수지의 완공은 삼육동 주민들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풍부한 농업용수 덕분에 다양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었고, 이는 미군 부대에 농작물을 납품하는 판로 개척으로 이어졌다.

활용은 농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겨울철 호수가 얼면 얼음을 잘라내 교내 저온창고로 운반해 천연 냉장고로 활용했다. 어린아이들은 얼어붙은 저수지 위에서 썰매를 탔다. 공사 과정에서 캠퍼스부터 저수지까지 넓은 길이 뚫리며 과거 좁은 오솔길에 의존하던 인근 불암산 마을 주민들의 통행 여건이 크게 개선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1953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갔던 제임스 리 원장이 이듬해 귀환했을 때, 계곡은 맑은 물이 찬 아름다운 호수가 되어 있었다. 대학 관계자들은 척박한 땅에 물길을 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호수에 그의 한국이름 이제명을 붙여 ‘제명호(濟明湖)’라 명명했다.

▲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날, 자연의 일부로 온전히 동화된 제명호 전경. 초기 농업용 저수지라는 목적을 다한 호수 주변은 현재 서어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날, 제명호는 농업용 저수지라는 초기 목적을 다하고 자연의 일부로 온전히 동화됐다. 호수 주변은 극상수종인 서어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태릉 백세문에서 삼육대까지 이어지는 3.7km 백세길 구간의 종착지로서 삼육동 구성원과 시민들의 훌륭한 안식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선교사로 헌신한 제임스 리는 미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에도 수시로 한국을 방문해 삼육대의 발전을 격려했다. 2006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자서전 ‘우리 나라, 우리 대학(Our Country, Our College)’을 출간해 대학에 헌정했다.

삼육대를 끝까지 사랑했던 그는 2013년 10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고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그가 생전 땀 흘려 일군 삼육동 땅에 산골(散骨)되었다. 삼육대는 그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같은 해 오얏봉 언덕 아래 기념비를 세웠다.

70여 년 전, 대학의 내일을 그리며 척박한 땅에 물을 댄 그의 땀방울은 잔잔한 수면 아래 깊이 스며들어, 변함없이 삼육동의 오늘을 적시고 있다.

▲ 훗날 삼육대를 다시 찾아 제명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제임스 리. 정확한 촬영 시기는 미상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의 천사가 나를 한 걸음씩 인도하여 그 호수를 만들게 했다. 회고해 보건대 댐 공사는 미군이 우리 대학에 남긴 가장 위대한 공헌 중 하나”라고 밝혔다. 제명호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2013년 6월 오얏봉 언덕 아래에 조성한 제임스 리 선교사 기념비. 이후 2019년 삼육교육의 선구자인 미미 샤펜버그 선교사, 윌리엄 스미스 목사의 기념비를 추가해 나란히 배치하면서, 지금은 세 명의 선교사를 함께 기리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사진으로 보는 제명호 ‘공간의 기억’

▲ 1953년 제명호 축조 당시 공사 현장. 미8군 공병부대로부터 지원받은 중장비가 투입돼 거대한 저수지의 윤곽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 1950년대 제명호에서 거행된 침례식.
▲ 1954년 2월, 꽁꽁 언 제명호 위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 1961년 겨울, 제명호 수면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 겨울철 호수가 얼면 얼음을 잘라내 교내 저온창고로 운반해 천연 냉장고로 활용했다.
▲ 1957년 촬영된 제명호 인근 항공 사진. 푸른 수면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당시 캠퍼스 인근 지형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대 제명호에서 거행된 침례식. 현재는 신학관 지하 침례예식장을 이용하지만, 당시에는 주로 제명호에서 침례식이 열렸다.
▲ 1990년대 제명호에 모여앉은 학생들. 학업 중 잠시 틈을 내 자연을 벗 삼아 대화를 나누고 낭만을 즐기던 그 시절 캠퍼스 라이프의 한 단면이다.
▲ 2021년 제명호 수변 데크에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시대가 바뀌어도 제명호는 여전히 삼육대 구성원들에게 변함없는 치유와 쉼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 2022년 1월, 꽁꽁 언 제명호에서 강북소방서 구조대원들이 빙상사고 수중 인명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매년 겨울마다 이곳에서 훈련을 한다.
▲ 드론으로 촬영한 제명호의 가을 전경.
▲ 오색 단풍으로 물든 제명호의 가을 풍경.
▲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머금은 제명호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공간의 기억] ④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사택’

전쟁의 상흔 속에서 온기 나누던 공동체

▲ 1949년 준공된 선교사 사택. 제임스 리(James Milton Lee, 이제명) 교장이 머물렀다. 당시 모범적인 가옥으로 평가받으며 외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건축물이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삼육동 캠퍼스에 첫 번째로 세워진 건물이 학생들을 위한 ‘실업관’이었다면, 두 번째로 지어진 건물은 학교의 기틀을 다진 이들의 보금자리인 ‘사택’이었다. 초창기 사택들은 현재의 선교70주년기념관 뒤편과 후문 쪽 태강삼육초 인근에 자리했다.

이후 대학이 확장되면서 캠퍼스 내 사택의 규모도 꾸준히 늘어났다. 1950년대 초반 13채 남짓이던 사택은 1985년 건축물대장에는 37동까지 증가했다. 세월이 흐르며 초창기 사택들이 언제 철거됐는지 정확한 멸실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캠퍼스의 태동기를 함께한 첫 보금자리의 기억은 여전히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편에서는 삼육동 시대 ‘초창기 사택’에 한정해 그 시절의 공간을 되짚어 본다.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초창기 사택은 크게 교직원 사택과 선교사 사택으로 나뉘었다. 1948년 착공해 이듬해 준공된 교직원 사택은 1호부터 10호까지 총 10채가 비슷한 구조로 지어졌다. 약 17평 규모의 흙 블록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소박한 단층집이었다.

사택의 첫 입주자들은 김성수(실업부 책임자), 정택혁(재무), 조돈하(국어), 이응준(성경교사 겸 남사감), 김영도(화학), 임병의(총무), 이여식(신학교), 최명환(수학), 김기방(미술), 손재목(실업부 부책임자) 등 초기 삼육 교육을 이끈 주역들이었다.

▲ 1948년 10월 촬영된 교직원 사택 공사 현장. 투박한 흙벽돌과 목조 골조로 지어졌으며, 곧 학교의 기틀을 다진 이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컬러 기록물이다.

이어서 세 번째 건물로 1949년에 완공된 선교사 사택 1~3호는 교직원 사택보다 규모가 컸다. 목조 시멘트 기와지붕의 2층 형태였으며, 가옥대장에는 1층 38평, 2층 27평 등 총 63평 규모로 기록돼 있다.

첫 입주자인 제임스 리(James Milton Lee, 이제명) 교장과 케네스 미첼(Kenneth Leland Mitchell, 민제일) 선교사는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고 초기 건축을 이끌며 본격적인 삼육동 시대를 연 인물들이다.

마지막 선교사 사택 3호에는 재림교회 한국연합회 출판부 총무로서 문서전도 사업을 수행한 세실 윌리엄스(Cecil Arthur Williams, 위리암) 선교사 부부가 거주했다. 당시 이 사택들은 모범적인 가옥으로 호평받으며 외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러나 평화로웠던 보금자리는 6.25 전쟁과 함께 깊은 상흔을 입었다. 북한군에 점령당한 삼육동은 1천여 명의 신병을 수용하는 의용병 훈련소가 되었고, 선교사 사택은 부대 본부와 야전 병원으로 징발됐다.

피난을 떠나지 못한 교직원과 학생 76명은 사택과 불암동 주변에 숨어 지내야 했다. 서울 탈환 직전에는, 사택을 지키던 학생 몇 명이 인민군 패잔병에게 발각돼 총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영어교사 김기춘 선생이 진격해 오던 미군 병사에게 다급히 상황을 알렸고, 미군이 선교사 사택 쪽으로 달려가 학생들을 극적으로 구출해 냈다.

1951년 11월, 학교가 서울로 복귀해 ‘삼육신학원’으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교정은 온통 파괴돼 어수선했다. 여학생들은 화마를 피한 선교사 2호 사택을 수리해 기숙사로 사용했다. 교직원 6호 사택에 마련된 임시 식당에서는 남학생들이 주워 온 솔가지와 나무들로 불을 피워, 식당 직원과 여학생들이 지은 밥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53년 3월 7일 안식일에는 이곳 여학생 기숙사로 사용되던 사택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기숙사 마루에 피워둔 난로가 과열돼 이불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그날따라 예배가 길어져 12시 30분경에야 마쳤는데, 돌아온 학생들이 문을 열자마자 산소가 유입되며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다. 훗날 사람들은 “당시 고(故) 박원실 목사님의 설교가 정시에만 끝났어도 훨씬 덜 탔을 것”이라는 농담 섞인 후문을 전하기도 했다.

▲ 캠퍼스 개척기 삼육 가족들의 안식처였던 소박한 단층 교직원 사택. 척박한 대지 위에 세워진 이 보금자리는 훗날 전쟁의 시련을 함께 이겨내고 온기를 나누는 공동체의 소중한 터전이 됐다. 저해상도 원본 사진을 AI 툴로 업스케일링해 당시의 모습을 선명하게 복원했다.

총탄 자국 메운 공동체의 온기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택에서의 삶은 척박했지만, 그곳엔 이웃의 온기가 교차했다. 1952년 처음 부임한 고(故) 임정혁 교수에게 사택은 낯설고 두려운 공간이었다. 그가 배정받은 4호 사택은 벽마다 총탄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간간이 총소리가 들려왔다.

정붙이기 힘들었던 그를 품어준 것은 사람이었다. 옆집에 살던 영선부 책임자 박수산 장로는 미소와 함께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이후 1주일간 직원들과 함께 직접 방 수리를 해줬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어주기도 했다.

임 교수는 회고록에서 “구들장을 몽땅 들어내고 고래 사이를 깨끗이 긁어내면서 ‘이렇게 해야 불길이 굴뚝으로 빨리 들어가서 방이 골고루 덥고 연기도 안 납니다’라고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그날의 따뜻했던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명절이면 이북에서 온 외롭고 궁핍한 고학생들을 초대해 푸짐한 밥상을 내어주던 곳 역시 사택의 선생님들이었다. 초창기 삼육동의 사택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전쟁의 흉터를 서로 보듬고 온기를 나누던 가장 굳건하고 따뜻한 공동체 그 자체였다.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볼빨간사춘기’까지… 미디어가 사랑한 ‘삼육대 벚꽃’

신곡 ‘Find You’ 라이브 영상, 제1과학관 앞 촬영

벚꽃의 꽃말은 삼육동일까.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남친’의 배경으로 주목받았던 우리 대학 캠퍼스의 벚꽃 풍경이 이번엔 싱어송라이터 볼빨간사춘기(안지영)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우리 대학 캠퍼스에서 촬영된 볼빨간사춘기의 신곡 ‘Find You(파인드 유)’ 라이브 영상이 22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채널 원더케이(1theK)의 ‘야외녹음실’ 콘텐츠를 통해 전격 공개됐다.

이번 라이브 영상은 볼빨간사춘기의 데뷔 10주년 기념 싱글 발매에 맞춰 기획됐다. 1년 6개월 만에 선보인 신곡 ‘Find You’는 안지영이 10년 전 써두었던 미공개 자작곡이다. 데뷔 앨범 ‘RED ICKLE(레드 이클)’ 발매일(4월 22일)과 같은 날 대중에게 공개돼 남다른 의미를 더했다.

볼빨간사춘기는 “10년 전 썼던 곡인 만큼 당시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감성이 담겨 있다”며 “팬들과 함께했던 봄을 다시 만끽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새로운 봄 캐럴’”이라고 곡을 소개했다.

촬영은 지난 4월 12일 일요일 오후, 교내 제1과학관과 에스라관 사이에서 진행됐다. 만개했던 벚꽃이 흩날리고 연초록 잎이 돋아나던 날이었다.

제작진은 사전 답사 과정에서 교내 명소를 두루 살핀 후, 제1과학관 특유의 붉은 벽돌 건축물과 벚나무가 빚어내는 감성적인 공간감에 매료돼 이곳을 최종 촬영지로 낙점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볼빨간사춘기의 독보적인 음색과 섬세한 감정선, 세련된 사운드가 캠퍼스의 봄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이다. 영상에는 제1과학관 터줏대감 삼냥이 ‘모지’도 깜짝 등장해 반가움을 더했다.

최근 우리 대학 캠퍼스는 다양한 미디어 작품의 핵심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올해는 벚꽃 캠퍼스의 매력이 아름답게 담겼던 넷플릭스 ‘월간남친’의 성공적인 공개 직후, 영화와 드라마 제작진으로부터 벚꽃 시즌 촬영 러브콜이 쇄도했다는 후문이다.

촬영대관 실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 하홍준 계장은 “작품의 콘셉트와 대학 이미지의 부합성, 플랫폼 파급력, 타깃 수용자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018년 천보축전 초대 아티스트로 인연을 맺었던 볼빨간사춘기와의 협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월간남친’ 촬영 때는 개화가 늦어 고생했는데, 올해는 반대로 벚꽃이 유독 일찍 피어 일정을 조율하는 데 난도가 높았다”고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우리 대학 커뮤니케이션팀은 ‘미디어 노출을 통한 대학 브랜드 가치 제고’와 ‘교내 유휴공간의 전략적 활용’을 목표로 각종 영상 콘텐츠의 교내 촬영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3년여간 넷플릭스 ‘월간남친’을 비롯해 영화 ‘청설’ ‘퍼스트 라이드’, 드라마 ‘미지의 서울’ ‘아너’ ‘보물섬’ ‘프로보노’, 잔나비 ‘모든 소년 소녀들1: 버드맨’ 비주얼라이저 등 장르를 불문한 수많은 화제작의 배경이 되며, 아름다운 캠퍼스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관련기사▷[비하인드] 지수·서강준이 왜 거기서 나와… 넷플릭스가 사랑한 삼육동의 비밀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공간의 기억] ③ 폐철근으로 세운 자립의 뼈대 ‘엘리야관’

험난했던 두 번의 낙성식… 삼육동 최초의 콘크리트 건축물

▲ 1972년 준공된 엘리야관 전경. 현재 백주년기념관 자리에 있었던 이 건물은 현존하는 사무엘관과 형제처럼 닮아 있다. 두 건물 모두 미국 앤드류스대 행정관을 모티브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3층 규모의 사무엘관과 달리 엘리야관은 2층의 아담한 대칭미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과거 우리 대학의 본관(행정관) 역할을 했던 ‘엘리야관’은 현재 백주년기념관이 세워진 자리에 위치해 삼육의 70년대를 이끌었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1967년 교명이 ‘삼육신학대학’에서 ‘삼육대학’으로 변경되고 학과가 4개(신학과, 가정교육과, 농업교육과, 영어영문학과)로 증설되면서, 대학의 확장된 규모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공간이 절실해졌다. 엘리야관은 바로 이러한 도약의 시기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미군부대 폐철근으로 세운 뼈대

건축의 첫 삽은 삼육대학 시대를 연 클라임스(Rudolf E. Klimes, 구인서) 학장 시절에 떠졌다. 1967년, 클라임스 학장은 새 강의실을 짓기 위해 부평 미군부대에서 폐철근을 직접 구했고, 이를 기반으로 200평 규모의 2층 본관 신축 계획을 세웠다.

1968년 9월 20일 기공식을 거행하며 미군부대에서 얻어온 철근을 잘라 건물 우측의 골격을 세웠으나, 공사는 곧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대학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재림교회 원동지회(현 북아태지회)의 지원금 4천 달러와 대학 실업부 수익금만으로는 건축을 지속하기 역부족이었다. 결국 철골 구조물만 세워둔 채 공사가 중단됐고, 클라임스 학장은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69년 9월 일본 삼육학원대학장으로 이임했다.

건축의 막중한 책임은 후임인 김종화 학장에게 돌아갔다. 한국인 최초로 학장에 취임한 그는 외국인 선교사 중심에서 벗어나 대학 운영의 ‘본방인 시대’를 개척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김 학장은 서무과장 김홍량 교수와 함께 실업부 사업을 독려하며 필사적으로 재정을 확보했고, 마침내 1970년 7월 공사를 재개했다.

이는 외부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대학 스스로의 힘으로 공사를 완수해 나가는, 자립 기반 마련의 중대한 첫걸음이었다. 경제적 악조건 속에서도 교직원과 학생들의 간절한 헌신이 모여 공사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두 번의 낙성

▲ 1971년 9월 1차 낙성식 이후와 1972년 7월 최종 완공 사이, 엘리야관이 우측 날개만 갖춘 ‘미완의 상태’로 운영되던 시기의 모습. 사진 속 인물과 구체적인 행사명은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미상이나, 건물의 분절된 공정 과정을 생생하게 증명한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 자료다. 사진은 저해상도 원본을 AI 툴을 활용해 고해상도로 업스케일링 했다.

엘리야관의 완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1년 9월 1일, 중앙 부분과 우편 날개만을 간신히 완성한 채 ‘미완의 낙성식’을 먼저 거행해야 했을 만큼 그 과정은 고단하고 험난했다. 이듬해인 1972년 7월 10일에 이르러서야 남은 왼편 건물을 마저 올리며 비로소 양 날개를 갖춘 엘리야관의 온전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본교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 건축물이었던 엘리야관은 2층 규모, 총면적 1천308.76㎡(395.89평)로 지어졌다. 미국 앤드류스대의 행정관을 모티브로 삼아 설계됐는데, 중앙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구조였다. 현재 남아있는 사무엘관(1978년 12월 14일 준공) 역시 동일하게 앤드류스대 행정관을 본떠 건축되었기에, 당시 엘리야관과 매우 흡사한 외관을 띠었다.

건물 내부는 강의실, 교수실, 위생실을 비롯해 후일 어학실습실과 전산교육실로 활용되며 당시 삼육동에서 가장 현대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건물 앞쪽으로 넓게 조성된 잔디밭은 주변 환경과 수려한 조화를 이루며, 기존 소강당에 머물러 있던 대학 문화의 중심을 엘리야관 광장으로 옮겨오는 역할을 했다.

▲ 엘리야관 앞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 건물 앞쪽으로 넓은 광장을 조성해, 기존 소강당 중심이었던 대학 문화를 캠퍼스 심장부로 옮겨오는 역할을 했다.

30년 역사 품고 ‘공간의 기억’으로

한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혔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엘리야관의 건축적 완성도와 미감은 뛰어났다. 비록 정확한 선정 기관이나 연도 등 세부 출처는 미상으로 남아있지만, 당시 캠퍼스 내에서 이 건물이 지녔던 위상과 상징성을 충분히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본방인 행정자들의 헌신과 대학의 자립 의지가 빚어낸 엘리야관은 삼육대학의 교육 여건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며 캠퍼스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30여 년간 대학의 역사를 묵묵히 이끌어 온 엘리야관은 개교 100주년을 맞은 2006년 7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백주년기념관 건립 과정에서 철거되며 영예롭게 그 소임을 다했다. 물리적 형체는 자취를 감추었으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던 70년대 삼육의 자립 정신은 엘리야관이라는 이름과 함께 ‘공간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 엘리야관 전경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60분 통강의가 5분 ‘짤강’으로… 숏폼 입고 혁신하는 대학 교육

‘마이크로러닝’ 강의 콘텐츠 도입
1과목 39차시 강의가 195개 모듈형으로 세분화
등하교 자투리 시간 활용… 복습 편의성 극대화 ‘호평’

▲ 경영학과 임태종 교수의 ‘경영학원론’ 마이크로러닝 강의 화면. 복잡한 경영 원리를 핵심 주제별로 세분화한 모듈형 구성을 통해 학생들의 집중도와 복습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현대인의 콘텐츠 소비 방식이 ‘스낵 컬처(Snack Culture)’로 대변되는 숏폼(Short-form)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교육 현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50분에서 1시간 남짓 진행되던 전통적인 긴 호흡의 강의가 3~5분 단위의 ‘짤강(짧은 강의)’으로 쪼개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마이크로러닝(Microlearning)’ 시스템의 도입이다. 우리 대학은 이번 학기부터 교육혁신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마이크로러닝 기반의 모듈형 강의를 시범 운영하며, 미래 학습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마이크로러닝은 아주 작은(Micro) 단위로 잘게 쪼개진 교육 형태를 뜻한다. 길게는 10분 이내, 짧게는 2~3분 분량의 영상으로 구성되며, 단순히 긴 강의를 기계적으로 자른 것이 아니라 한 콘텐츠당 하나의 ‘핵심 주제(Single Concept)’만을 집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이러닝(e-Learning)이 연속적인 흐름을 가진 일괄적인 형태였다면, 마이크로러닝은 철저히 ‘모듈형’이다. 학생들은 필요한 순간에 즉시 찾아보고 적용하는 ‘적시 학습(Just-in-Time)’이 가능하며, 다양한 멀티미디어 포맷이 결합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환경에서 최적의 효율을 발휘한다. 지식의 변화 주기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 학습자의 인지 부하를 줄이고 집중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 사회복지학과 조미숙 교수의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강의 화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구축해, 등하교 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적시 학습(Just-in-Time)’을 지원한다.

39차시 통강의가 195개 모듈로

우리 대학 교육혁신원 원격교육지원센터는 이번 학기 총 3개 강좌에 마이크로러닝을 선도적으로 적용했다. 공모를 통해 △경영학과 임태종 교수의 ‘경영학원론’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김향일 교수의 ‘글로컬영어’ △사회복지학과 조미숙 교수의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등 핵심 개념 전달과 반복 학습이 중요한 이론 및 심화 탐구 과목들이 선정됐다.

기존의 온라인 강의가 1과목당 15주차 기준 39차시로 운영되었다면, 모듈형 강의는 무려 195차시로 세분화된다. 1주차 3차시 기준 3개의 통강의가 올라가던 틀을 깨고, 핵심 주제별로 분리된 15개의 짧은 강의가 탑재되는 식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첨단 제작 환경도 완비했다. 교수자 혼자 터치스크린과 프롬프터를 활용할 수 있는 ‘셀프 스튜디오’, 전자칠판과 중형 합성 시스템을 갖춘 ‘이러닝 스튜디오’, 패널 토론과 대형 가상 시스템이 연동되는 ‘중대형(하이플렉스) 스튜디오’가 강의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다.

▲ 첨단 제작 환경이 완비된 교내 셀프 스튜디오에서 김향일 교수가 강의를 녹화하고 있다. 교수자가 직접 프롬프터와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통해 콘텐츠의 질을 한 차원 높였다.

자투리 시간 활용에 최적… 제작은 고통의 연속?

실제 수업에 참여한 학우들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다. 짧은 런타임 덕분에 심리적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임태종 교수의 수업을 수강하는 주가진(아트앤디자인학과 25학번) 학우는 “1시간짜리 강의는 루즈해지는 감이 있었는데, 짧은 강의는 순간 집중력으로 끝까지 온전히 몰입하기 수월했다”고 평가했다. 김민제(경영학과 25학번) 학우 역시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에게 이동 중 부담 없이 듣기 좋은 최적의 옵션”이라며 “시험 기간 중 헷갈리는 개념만 취사선택해 복습할 수 있어 편리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향일 교수의 수업을 수강하는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김희수, 김형건(모두 26학번) 학우도 “특정 파트만 짧고 집중도 있게 볼 수 있어 성취감이 높고 머릿속에 잘 남는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촬영해야 하는 교수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임태종 교수는 “200개에 가까운 짤강을 기획하고 촬영하는 과정은 후회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짧은 강의를 모두 모아 큰 흐름을 유지해야 하기에 많은 노력이 들었지만, 사족 없이 핵심만 전달할 수 있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집중도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높아져 보람이 크다”고 전했다.

김향일 교수 또한 “초반에는 강의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야 할지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면서도 “부분 교체가 가능해 수정 및 보완이 쉽고, 비교적 짧고 집중도 높은 단위로 제시되는 수업에 학생들이 덜 지루하게 참여한다는 피드백을 받아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물론 개선해야 할 과제도 남았다. 학생들은 연속 수강 시 매번 다음 버튼을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과 북마크 기능의 부재를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교수자 입장에서는 숏폼 형태로 완결성 있는 학습 내용을 재구성해야 하는 설계 부담과 편집 등 제작 비용 증가가 숙제로 지목됐다.

▲ 마이크로러닝 강의 콘텐츠 녹화에 열중하고 있는 김향일 교수. 5분 내외의 짧은 분량 안에 핵심 메시지를 완결성 있게 담아내기 위한 교수진의 치열한 노력이 대학 교육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양적 확대보다는 내실화

원격교육지원센터는 이번 시범 운영을 통해 전통적 교육 방식이 최신 미디어 소비 트렌드와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향후 모든 강의를 일괄 전환하기보다는, 철저한 성과 분석을 바탕으로 마이크로러닝에 최적화된 특정 유형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점진적인 확대를 꾀할 방침이다.

마이크로러닝 사업 실무를 총괄한 원격교육지원센터 박성도 과장은 “콘텐츠 제작의 과중한 부담을 덜기 위해 제작 가이드라인을 표준화하고, 전용 학습 인터페이스(UI/UX) 구축 등 기술적 인프라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차기 학기에는 단순한 양적 확산보다 내실화에 집중해 4개의 신규 강좌를 추가로 선보이며 표준화된 제작 모델을 정립하겠다”고 구체적인 운영 로드맵을 밝혔다.

원격교육지원센터 이승원 센터장은 “대학 교육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 맞춰 학습 환경을 구축하고 민첩하게 변화해야 한다”며 “이번 마이크로러닝 사업은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필요에 맞춰 지식을 습득하고 심화할 수 있는 ‘맞춤형 학습권’을 보장받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통적인 강의실의 경계를 넘어, 데이터 기반의 효율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돕는 진정한 교육 혁신을 이뤄내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조선일보 https://news.chosun.com/pan/site/data/html_dir/2026/04/14/2026041402748.html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0324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economy/biznews/1254189.html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414_0003590917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91684
교수신문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637
베리타스알파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605766
대학저널 https://dhnews.co.kr/news/view/1065588564420663
내일신문 https://www.naeil.com/news/read/585837?ref=naver
메트로신문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60414500321
팝콘뉴스 https://www.popcorn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8265
스마트경제 https://www.dailysm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625
한국NGO신문 https://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28320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39&item=&no=38976

[공간의 기억] ② 삼육동의 심장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전교생 600명 시절, 3천석의 비전을 품다

▲ 1980년대 초,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전경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기독교 고등교육기관으로 출발한 우리 대학에 있어 교회는 단순한 부속 건물이 아닌 ‘대학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교직원과 학생이 한자리에 모일 예배당조차 마땅치 않았다. 1955년에 지어진 낡은 강당은 날로 성장하는 대학의 규모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재림교회 한국연합회는 선교 70주년을 맞이하는 1974년, 1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대강당 건립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후 건축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4억원을 웃도는 막대한 건축자금이었다. 재정적 압박에 더해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탓에 인허가 과정 역시 험난했다. 국방부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물론, 구청과 시청, 국무총리실, 청와대까지 거쳐야 했던 복잡한 행정 절차 앞에 대강당 건축의 꿈은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듯했다.

수포로 돌아갈 뻔했던 이 숙원사업을 몇 년 뒤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당시 지도자들의 굳건한 신념이었다. 교회는 곧 대학의 심장이었고, “그리스도를 높이고 순종하는 영적 교육의 구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였다. 대학의 존재 이유이자 고유한 정신적 유산을 지켜내겠다는 이 선명한 사명감이 멈춰 있던 건축에 다시 불을 지폈다.

1979년, 마침내 부지에 대한 ‘대학시설 용지 지정고시’를 이끌어내며 극적인 반전을 맞는다. 그해 6월 4일 정부의 최종 건축 허가를 받고, 불과 사흘 뒤인 6월 7일 정오에 역사적인 기공식 첫 삽을 떴다.

▲ 1979년 6월 7일 정오 선교70주년기념관 기공식. 선교 70주년을 기념하며 참석자들이 숫자 ’70’ 모양으로 대열을 갖춰 기념 촬영을 했다. 본 이미지는 저해상도 원본을 AI 업스케일링 기술로 정밀 복원해 당시의 현장감을 선명하게 되살렸다.

놀라운 것은 당시 설계 도면에 담긴 ‘비전의 크기’였다. 김종화 학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당초 계획을 대폭 수정해 무려 3천석 규모의 매머드급 강당을 짓기로 결단했다. 전교생이 600여명에 불과했던 시절, 무모하리만치 거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는 머지않아 도래할 대학의 성장을 예견한 혜안이었다. 불과 10여년 뒤, 우리 대학이 2천500명 이상의 학생을 품은 종합대학으로 급성장하면서 그 담대한 비전은 정확히 현실이 되었다.

뼈아픈 시련도 있었다. 부족한 건축비 탓에 학교 직영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고, 보상금 청구 소송에 휘말리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산재보험 등을 통해 고비를 넘기며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 준공 직후 선교70주년기념관 모습

외형은 웅장하게 솟아올랐으나, 빈 공간을 채울 의자 구매 비용도 턱없이 부족했다. 의자 하나를 놓는 데 필요한 금액은 1만원. 우리 대학은 전국의 성도들과 해외 동문들에게 ‘대강당 의자 헌납 캠페인’을 호소했다. 1979년 10월부터 이어진 모금 행렬을 통해 무려 1천917석의 의자가 마련됐다. 헌납된 의자마다 기부자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그 숭고한 의미를 더했다.

1980년 9월 25일 준공 및 개관식을 거행한 선교70주년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총 940여 평의 위용을 자랑하며 우리 곁에 섰다. 총 5억5천338만원이 소요된 공사비는 한국연합회 지원금과 교인들의 헌금, 그리고 학교 실업부의 수익금으로 충당됐다.

건축 당시 실무자들은 태릉선수촌,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이화여대 강당 등을 직접 순회하며 각 공간의 장점만을 모아 내부와 천장 설계에 반영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시대를 앞선 안목은 오늘날 이곳이 채플과 종교행사를 넘어, 대규모 문화 공연과 외부 대관까지 완벽히 소화하는 공연장으로 자리 잡는 든든한 초석이 됐다.

▲ 오늘날의 선교70주년기념관
▲ 오늘날의 선교70주년기념관 내부

이후에도 끊임없는 내외부 리모델링을 통해 변모를 거듭한 이곳은, 현재 전면 대형 LED 스크린과 최첨단 조명, 음향 시스템까지 완비하며 명실상부한 전문 콘서트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건립 당시 ‘그리스도를 절대로 높이고 순종하는 최고의 영적 교육의 구현’을 목표로 세워졌던 선교70주년기념관.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삼육동의 심장으로 고동치며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찬양, 그리고 문화를 품어내고 있다.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공간의 기억] ① 삼육동 최초의 건물 ‘실업관’

흙벽돌 직접 빚어 올린 노작교육의 산실

▲ 실업관 전경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948년 7월 현 삼육동 부지 매매계약이 체결된 직후, 8월부터 본격적인 건축이 시작됐다. 당시 캠퍼스에는 사택, 소강당, 교사, 기숙사, 목장 등 건물을 올리는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완공된 삼육동 최초의 건물이 바로 ‘실업관’이었다.

실업관은 초기 캠퍼스의 심장과도 같았다. 1949년 크리스마스에 이곳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로 자가 발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내부에 발전기 등 전기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육동을 밝힌 역사적인 첫 전등 불빛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 셈이다.

약 280평 규모의 이 단층 건물에는 당시 학생과 교직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건축 자재를 구입할 재정이 부족했던 탓에, 삼육동의 명물이었던 백토에 백회를 섞어 직접 흙벽돌을 찍어내거나 교내 채석장에서 돌을 캐어 회를 칠하는 방식으로 벽을 올렸다. 실업관을 비롯한 초창기 건물들의 내부가 다소 삐뚤빼뚤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값진 수고의 흔적이다.

▲ 1950년대 실업관 앞에서 제12대 교장 제임스 리(이제명,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선교사와 재학생, 교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족한 재정 탓에 직접 빚어 올린 흙벽돌의 삐뚤빼뚤한 질감이 사진 속 외벽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은 저해상도 원본을 AI 업스케일링 기술로 복원했다.

참고로 당시 돌을 캐던 채석장은 제명호로 오르는 길 우측에 아직 그 자취가 남아있다. 채석으로 파인 공간에 물이 흘러들어 한때 야외 수영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나, 낙석 위험 등으로 인해 현재는 생태습지로 보존 중이다.

실업관은 지·영·체(智·靈·體)의 균형진 발달이라는 교육 이념이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오전 7시 15분부터 낮 12시 30분까지 학과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실업관과 목장, 농장 등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작교육’을 받았다. 이곳은 단순한 작업장을 넘어 목공, 철공, 인쇄, 사진, 전기 등 실물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진 기술노작 교육의 핵심 터전이었다.

실업관은 삶과 신앙이 어우러진 공간이기도 했다. 고(故) 임정혁 교수는 회고록에서 “밤 예배를 드리는 날이면 목공실 한쪽을 치우고 남포등을 나란히 걸어 놓은 뒤, 벽돌을 고인 널빤지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회상했다. 교실이자 예배당, 강당이자 사교장의 역할까지 겸한 진정한 다목적 공간이었던 셈이다.

6.25전쟁 당시 지붕과 벽면 곳곳에 새겨진 총탄 자국을 훈장처럼 품은 채, 실업관은 오랜 세월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켰다. 이후 자동차 정비과 실습실, 전기부·영선부 사무실 등 캠퍼스의 궂은일을 도맡는 공간으로 쓰이다가, 1999년 제1실습실(현 제1실습관)이 새롭게 지어지기 전까지 대학의 초창기 역사를 증언하며 그 소임을 다했다.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새 학기 캠퍼스 단장… ‘교육환경 내실화’ 집중

학과별 특성 살린 실습실 개편… 첨단 기자재 확충도
‘맞춤형 공간’으로 학업 몰입도 높여

▲ 에스라관 314호(위), 바울관 301호(아래) 강의실이 전산실습실로 탈바꿈했다.

새 학기를 맞은 캠퍼스 곳곳이 학생 친화적인 맞춤형 공간으로 새 옷을 입었다.

지난 겨울방학, 예년과 같은 대규모 건축 공사는 없었지만 각 학과 특성을 반영한 실습실 환경 개선과 첨단 교육기자재 확충에 집중하며 실질적인 교육환경의 내실을 기했다.

대학혁신지원사업비와 교비 등이 투입된 이번 환경 개선을 통해 캠퍼스 전반의 노후된 형광등을 고효율 LED 조명으로 전환하는 등, 학우들에게 한층 쾌적해진 면학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 보건관리학과 강의실인 에스라관 306호. 책상과 의자, 전자교탁이 교체됐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최신 IT 기기를 접목한 실습 공간의 변화다. 보건관리학과와 경영학과는 전산실습 인프라를 강화했다. 에스라관 314호(보건관리학과)와 바울관 301호(경영학과)는 기존 일반 강의실에서 최신 PC와 새 가구를 품은 전산실습실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또한 에스라관 305, 306호 보건관리학과 강의실은 책걸상을 전면 교체하고 첨단 전자교탁을 도입해 스마트한 수업 환경을 구축했다. 바울관 205호 경영학과 과방은 학우들의 편의를 위해 PC 3대를 추가로 들여놓았으며, 바울관 2층 복도 역시 LED 조명으로 밝게 단장했다.

▲ 아트앤디자인학과 실습실. 디자인관 109호(위), 아트앤디자인관 106호(중간), 206호(아래)

실기 위주의 수업이 많은 아트앤디자인학과는 맞춤형 인프라 조성에 공을 들였다. 디자인관 109호는 맥(Mac) PC와 가구를 일제히 교체하며 쾌적한 작업 환경을 완성했다. 아트앤디자인관 106호 실기실은 책걸상을 새것으로 바꾸고, 작품 거치대와 냉난방기를 들여와 창작 몰입도를 높였다.

이 외에도 디자인관 107, 108, 113호, 아트앤디자인관 104, 105, 202, 206, 302, 303호 등 다수의 실기실과 강의실의 노후화된 책상, 의자, 칠판, 냉방기구를 일제히 정비하며 편의성을 끌어올렸다.

▲ 제3과학관 102호 물리치료학과 실습실(위), 제2과학관 201호 바이오융합공학과 식의약바이오소재실험실(아래)

보건 및 이공계열 인프라도 한층 탄탄해졌다. 제3과학관 102, 104, 118호 물리치료학과 실습실은 전동식 진료대와 의자를 새롭게 세팅했다.

바이오융합공학과는 제2과학관 201호 식의약바이오소재실험실의 벽면을 산뜻하게 도장하고 전자칠판을 설치해 연구 환경을 환기했다. 동물자원과학과는 제2과학관 2층 뒷마당에 어닝 천막을 설치, 야외 수업을 위한 색다른 공간을 마련했다.

상담심리학과 역시 국제교육관 112호 학과사무실에 새 사무용 가구를 배치하고, 123호 상담실습실 조명을 교체하는 등 아늑한 환경 조성에 힘썼다.

▲ 에스라관 113호(위), 백주년기념관 312호(아래)

PBL 수업 공간도 대폭 늘어났다. 기존 체육학과가 관리하던 에스라관 113호 헬스장은 최신식 PBL 강의실로 재탄생했다. 가로로 긴 독특한 구조를 십분 활용해 눈길을 끈다. PBL 전용 책걸상과 함께 3대의 전자칠판을 전면 배치해 학습 효율을 극대화했다. 특정 학과 전용 공간이 아닌 공통 강의실로 활용된다.

대학원 강의실인 백주년기념관 309, 310, 312호 역시 토론과 협업이 잦은 특성을 고려해 PBL 데스크로 공간을 채웠다. 특히 312호는 전자칠판을 더해 스마트한 학습 환경을 조성했다. 311호와 3층 복도는 LED 조명을 설치해 한결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 리모델링 된 중앙도서관 화장실. 사진은 학술정보원 관계자와 동행하에 촬영함.

중앙도서관(학술정보원) 1~3층 화장실도 리모델링을 마쳤다. 지난 2023년 대대적인 내부 시설 리모델링 이후 마지막 퍼즐로 남아있던 숙원을 매듭지으며 더욱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게 됐다.

그간 냉난방 설비가 없어 혹서기와 혹한기에 불편을 겪었던 체육관 주경기장(실내 농구장) 관람석에는 6대의 대형 냉난방 설비를 신규 가동한다. 체육관 출입구 로비(1대)와 3층 복도 화장실 부근(천장형 2대)에도 설비를 추가해 사계절 내내 쾌적한 실내 체육 활동과 행사가 가능해졌다.

글/사진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비하인드] 지수·서강준이 왜 거기서 나와… 넷플릭스가 사랑한 삼육동의 비밀

드라마·영화 촬영지로 떠오른 우리 대학 캠퍼스
넷플릭스 ‘월간남친’부터 잔나비까지

▲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남친’의 지수와 서강준. 배경으로 우리 대학 솔로몬광장과 학생회관이 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웹툰 주인공보다 더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남자가 또 있을까? 하지만 ‘월간남친’은 또 한 번 나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월간남친(Boyfriend on Demand)’이 지난 3월 6일 공개 직후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심박수를 높이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현실에 지친 웹툰 PD 미래(지수 분)가 가상 연애 서비스를 통해 꿈꾸던 로맨스를 실현하는 이 드라마는, 18일 넷플릭스 투둠 기준 글로벌 비영어 쇼 부문 1위에 단숨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미주, 유럽,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47개국 톱10을 휩쓸며 ‘K-로맨스’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작품의 화제성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극 중 2~3회의 배경이 된 대학 캠퍼스다. 완벽한 첫사랑 선배 서은호(서강준 분)가 흐드러진 벚꽃 사이로 등장하는 장면은 ‘대한민국 역대 남주 등장씬’을 경신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비현실적인 만큼 아름다운 이 캠퍼스의 실체, 바로 우리 대학 삼육대학교다.

기술과 땀으로 만든 ‘벚꽃 오프닝’

‘월간남친’ 김정식 감독은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앞부터 솔로몬광장까지 이어지는 중앙로를 보고 단박에 촬영지로 낙점했다. 우리 대학의 촬영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하홍준 계장은 “당시 고려대, 경희대 등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서울 시내 유수의 대학들이 후보군에 올랐으나, 제작진은 우리 대학 중앙로 특유의 탁 트인 전경과 클래식한 건축물이 주는 ‘캠퍼스 로망’의 밀도에 매료돼 이곳을 최종 선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화면 속 완벽한 미장센 뒤에는 제작진과 학교 측의 ‘피 땀 눈물’이 숨어 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남친’의 한 장면. 벚꽃이 만개한 중앙로와 그 너머로 보이는 선교70주년기념관의 전경이다. 사진=넷플릭스

촬영이 진행된 지난해 4월 초, 유독 늦은 벚꽃 개화 시기와 촬영 전날 쏟아진 우박 탓에 관계자들은 당일 아침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결국 부족한 벚꽃의 밀도는 최첨단 기술력으로 채워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마지막회에서 환상적인 벚꽃 계단을 구현했던 베테랑 CG팀이 투입됐다. 실제로는 나무가 없는 시계탑과 가로등 구역까지 풍성한 벚꽃 터널로 재탄생시켰고, 현장에서는 물에 녹는 특수 벚꽃잎을 대량 살포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김정식 감독이 극찬한 “등장만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드는 힘”은 공간의 미학에 기술적 디테일이 더해진 결과였다.

촬영 규모 또한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4월 6일과 12일, 두 차례 진행된 촬영을 위해 중앙로를 양방향 전면 통제하고 도보 이동 동선까지 우회시키는 등 대규모 행정력이 투입됐다.

특히 야간 촬영을 위해 백주년기념관부터 도서관, 바울관, 선교70주년기념관, 에스라관, 아트앤디자인관까지 일대 건물의 불을 일제히 밝히는 진풍경이 연출됐고, 10층 건물 높이의 대형 조명차까지 동원됐다.

▲ 넷플릭스 ‘월간남친’ 야간 촬영 장면. 사진=넷플릭스

법정물부터 뮤비까지… 촬영팀이 꽂힌 ‘삼육동’

최근 우리 대학 캠퍼스는 영화, 드라마, 광고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의 단골 촬영지로 급부상했다.

지난 3년간 영화 △청설 △퍼스트 라이드 △휴민트를 비롯해 드라마 △미지의 서울 △아너 △보물섬 △프로보노 △마이 유스 △컨피던스맨 KR △화려한 날들 △아빠의 관을 들어줄 남자가 없다 △라이딩 인생 등 수많은 화제작이 우리 대학을 거쳐 갔다. 잔나비의 ‘모든 소년 소녀들1: 버드맨’ 비주얼라이저와 아모레퍼시픽 에스트라 CF 역시 캠퍼스 곳곳을 담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위 ‘창고’에 있는 작품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가장 ‘핫’한 촬영 명소는 백주년기념관이다. 웅장한 석조 외관과 기둥이 주는 권위적인 분위기 덕분에 법원, 검찰청 등을 배경으로 하는 법정 드라마의 섭외 1순위다. 드라마를 보다가 취재진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질문을 쏟아내는 장면이 나온다면 눈여겨보자. 우리 대학 백주년기념관일 확률이 높다.

제3과학관은 전혀 다른 매력으로 어필했다. 가수 잔나비의 ‘버드맨’ 비주얼라이저 영상이 이곳 외부 계단에서 촬영됐는데, 삼육동 캠퍼스 특유의 서정적인 공간감과 계절의 온기가 잔나비의 음악 세계와 어우러져 시각적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상보기▷잔나비 JANNABI – ‘모든 소년 소녀들 1 : 버드맨’ Visualizer | 잔나비 정규 4집 ‘사운드 오브 뮤직 pt.1’

관련기사▷잔나비 신곡 ‘버드맨’ 비주얼라이저, 제3과학관서 촬영

▲ 잔나비 ‘버드맨’ 비주얼라이저 영상 화면 캡처. 제3과학관 야외계단에서 촬영했다.

재미있는 점은 촬영팀이 선호하는 공간이 꼭 최신식 건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품에 따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공간을 찾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건물 외관을 보고 기대감에 찼던 스태프들이, 막상 현대적으로 말끔하게 리모델링된 내부를 보고 실망해서 돌아가는 웃지 못할 일도 종종 벌어진다.

촬영이 몰리는 4월에는 업계 불문율로 통하는 같은 날 ‘겹치기 촬영’이 일어나기도 한다. 넷플릭스 ‘월간남친’과 영화 ‘퍼스트 라이드’가 대표적이다. 당시 후발 주자였던 ‘월간남친’ 팀이 먼저 대관을 확정한 ‘퍼스트 라이드’ 팀의 촬영에 소음 등 지장을 주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현장 진행이 가능했다.

왜 삼육동인가? ① 찍으면 그림이 되는 ‘하드웨어’

수많은 대학 중 왜 하필 우리 대학일까. 현장을 누비는 베테랑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수려한 캠퍼스 풍광과 유연하고 적극적인 행정 지원이 맞물린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불암산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캠퍼스 구조 자체가 훌륭한 미장센이 된다는 평가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8년 차 로케이션 매니저 이동균 부장은 “복잡한 세팅 없이도 앵글만 잡으면 그림 자체가 예쁘게 나온다”며 “캠퍼스 전경이 워낙 수려해 로맨스물부터 장르물까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고 호평했다.

지리적 이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방송 제작 인프라가 집중된 상암동이나 강남권에서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서울 소재 캠퍼스라는 점은, 스태프와 장비 이동에 민감한 제작진에게 최적의 조건이다.

특화된 시설도 강점이다. 선교70주년기념관, 홍명기홀, 장근청홀 등은 공간감과 깊이감을 살릴 수 있는 원형 구조인 데다, 고성능 LED 장비, 조명까지 갖추고 있어 제작진 사이에서 ‘알짜배기 촬영지’로 통한다.

▲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선교70주년기념관(위)과 홍명기홀(중간, 아래)에서 촬영했다.

왜 삼육동인가? ② 섭외 0순위의 비밀 ‘소프트웨어’

하지만 화려한 미장센보다 로케이션 매니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학교 측의 촬영 친화적인 태도와 신속한 응대다. 현장 전문가들은 “결국 섭외가 가능하냐 여부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변수의 연속’이다. 주말이나 평일 심야, 새벽에 급하게 촬영 협조를 구해야 할 때, 대부분의 기관은 담당자와 연락조차 닿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4년 차 로케이션 매니저 김지우 부장은 “촬영팀 특성상 밤늦게 급한 변동사항이 생길 때가 많은데, 삼육대 담당자는 언제 연락해도 즉각적인 응대가 가능하다”며 “단순히 장소를 대관하는 것을 넘어, 급박한 일정에도 긍정적인 분위기로 해법을 찾아주려는 적극적인 태도 덕분에 다음 작품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이곳을 1순위로 떠올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캠퍼스를 핵심 ‘브랜드 자산’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대학의 촬영 대관은 알음알음 찾아오는 제작진을 응대하는 업무였다. 하지만 2024년 제해종 총장 취임과 함께 홍보팀이 총장 직속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으로 개편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대학은 캠퍼스를 단순한 시설이 아닌,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핵심 브랜드 자산’으로 재정의했다. 미디어 노출을 통해 대학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대관 수익을 창출해 이를 학생 복지로 환원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이를 위해 매 학기 유휴 시설을 전수 조사하여 새로운 촬영 스팟을 발굴하고 제작진에게 역제안하는 등 능동적인 세일즈를 펼치고 있다.

▲ 홍경, 노윤서 주연의 영화 ‘청설’ 스틸. 체육관 앞에서 촬영했다.

제명호에서 ‘킹덤’ 찍을 뻔한 썰

하지만 무조건 많이 찍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연간 촬영 문의는 100여 건에 달하지만, 실제 촬영이 성사되는 건 15건 안팎이다. 이는 ‘브랜드 홍보’, ‘수익 사업’, ‘리스크 관리’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교육 환경’과 ‘대학의 교육이념’이다. 아무리 대작이라도 이 원칙에 어긋나면 과감히 거절한다.

일례로 넷플릭스 대작 ‘킹덤’ 팀은 교내 제명호의 물을 전부 퍼낸 뒤, 호수 바닥에 블루 스크린을 설치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해온 적이 있다. 하홍준 계장은 “글로벌 OTT 플랫폼의 거대 자본력을 실감케 하는 제안이었다”며 “제명호의 생태계 파괴를 우려해 정중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대본 검수 또한 필수다. 음주, 흡연, 무속 신앙(굿) 등 교육 이념과 배치되는 장면은 엄격히 제한된다. KBS 드라마 ‘화려한 날들’ 팀은 막걸리 음용 장면을 기획했다가 협의 끝에 대본을 전격 수정했고, 단막극 ‘아빠의 관을 들어줄 남자가 없다’ 팀 역시 흡연 장면을 삭제하고 촬영을 허가했다. 최근 유행하는 오컬트 장르나 무속 의식 장면 또한 타협할 수 없는 금기 사항이다.

▲ 우리 대학에서 촬영된 드라마·영화 장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물섬’ 박형식, ‘미지의 서울’ 박보영, ‘아빠의 관을 들어줄 남자가 없다’ 김윤혜, ‘프로보노’ 정경호, ‘라이딩 인생’ 전혜진, ‘퍼스트 라이드’ 강하늘.

촬영이 확정된 이후의 관리는 ‘나노 단위’로 이루어진다.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은 촬영팀에게 단순히 장소만 내주는 것이 아니라, ‘문의-답사-조율-확정-현장관리-정산’에 이르는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운영한다.

시험 기간 등 학사 일정과의 충돌 여부를 최우선으로 체크하고, 소음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인근 건물까지 선제적으로 대관해 민원을 차단한다. 촬영 종료 후에는 원상복구 상태를 점검하고, 10분 단위로 초과 시간을 체크해 비용을 정산하는 등 빈틈없는 행정력을 보여준다. 학우들의 학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체 촬영의 90% 이상은 강의가 없는 새벽이나 심야 시간, 주말에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교내 금연’은 타협 없는 철칙이다. 모든 촬영팀은 캠퍼스 진입 전 ‘금연 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캠퍼스 내 흡연 적발 시 ‘1회 경고 후 즉각 현장 철수’라는 서슬 퍼런 조항이 명시돼 있다. 수백 명의 인력이 움직이는 현장에서 철수는 엄청난 손실이지만, 학교 측은 학습권 보호와 개교 이래 120년간 이어온 ‘금연 캠퍼스’ 전통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레디, 액션!’… 그 뒤의 숨은 주인공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이 있다. 새벽부터 현장 통제를 지원하는 경비팀, 전력과 시설을 담당하는 사무처, 그리고 무엇보다 촬영으로 인한 소음과 불편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학우들과 교수, 직원 등 우리 대학 구성원이 그 주인공이다.

정성진 브랜드전략본부장은 “촬영 유치는 우리 대학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그 수익을 다시 학생들에게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며 “때로는 통행 제한이나 소음으로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우리 학교가 넷플릭스에 나온다’는 자부심으로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과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삼육동은 지금, 배움의 터전을 넘어 K-콘텐츠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시리즈 기사]
[비하인드] (1) 고양이 체다는 왜 출입금지를 당한 걸까
[비하인드] (2) 개교 이래 첫 온라인 투표…코로나가 만든 ‘新선거 풍속도’
[비하인드] (3) 우리 대학 CU에는 ‘삼육두유 어벤져스’가 있다
[비하인드] (4) ‘수야·수호’ 226일간의 제작기…왜 리디자인이었나
[비하인드] (5) ‘수톡 이모티콘’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비하인드] (6) 스쿨버스 배차간격 단축 배경은?
[비하인드] (7) 동행길 활동 2막…어떻게 지내나요?
[비하인드] (8) 삼육대 배구대회를 아세요?…체육관 달군 ‘불꽃 스파이크’
[비하인드] (9) 담비가 왜 거기서 나와
[비하인드] (10) 와이파이 6년 만에 재구축… 배경은?
[비하인드] (11) ‘대학붙는 짤’ 탄생 비화… 그날 그 선수는 왜 펜스로 몸을 날렸나
[비하인드] (12) 신학과는 왜 축구를 잘할까?
[비하인드] (13) 지수·서강준이 왜 거기서 나와… 넷플릭스가 사랑한 ‘삼육동’의 비밀

‘한강’과 ‘한국문학’이 휩쓴 25년 도서관 대출 순위

한강 작품 나란히 1·2위… 톱10 중 한국소설 8권
2025년 학술정보원 도서 대출순위 분석

2025년 우리 대학 학술정보원(중앙도서관) 대출 순위는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상위권에 다수 포진한 가운데, 한국소설 중심의 독서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가 나란히 1·2위에 오른 데 이어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도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리며, 톱10 가운데 네 권이 한강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아울러 상위 10권 가운데 9권이 소설이었고, 이 중 8권이 한국소설로 집계되며 최근 한국소설을 중심으로 한 독서 흐름이 더욱 뚜렷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은 학술정보원으로부터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대출 도서 현황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동일 도서가 여러 권 있는 경우(복권)는 합산 집계했으며, 시리즈물은 소수의 이용자가 순차적으로 대출할 때 과대 집계될 가능성을 고려해 제외했다. ‘독서골든벨’ 과제 도서도 분석 대상에서 빠졌다.

분석 결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총 34회 대출돼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집계됐다. 이어 『채식주의자』가 33회로 2위를 차지했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30회), 데일 카네기의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25회), 정대건의 『급류』(23회)가 뒤를 이었다.

한강 작품 강세… 노벨문학상 이후 이어진 독서 열기

올해 대출 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상위권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가 나란히 1·2위에 오른 데 이어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이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리며, 총 네 권이 톱10에 포함됐다.

글로벌한국학과 음영철 교수는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학생들의 관심을 크게 끌어올린 결과”라며 “이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교양교육원 교직교육과 명지원 교수는 이를 ‘집중적인 독서 현상’으로 해석했다. 명 교수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작가의 문학 세계 전체를 두루 섭렵하며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는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와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역사적 고통과 인간의 존엄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여성 ‘영혜’를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에 내재한 폭력의 구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흰』은 강보와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을 소재로 한 65편의 짧은 이야기를 엮은 실험적 형식의 작품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명지원 교수는 이들 네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메시지로 “사회적·근원적 폭력에 직면한 연약한 개인이 고통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과 ‘지극한 사랑’에 대한 탐구”라고 꼽았다.

명 교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그의 작품들이 우리 사회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꾸준히 직시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며 “학생들이 이러한 무거운 주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출 데이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노동욱 교수도 “결코 가볍게 읽히는 소설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출 순위 상위권을 기록한 점이 인상적”이라며 “이는 소설을 통해 단순한 재미나 위안을 찾기보다, 개인적·사회적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서사에 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학생들의 독서 문화가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소설 톱10 가운데 8권 차지

도서 대출 순위 톱10 가운데 한국소설이 무려 8권이나 포함된 점도 눈길을 끈다. 한강의 네 작품 외에도 정대건의 『급류』(23회) 5위, 구병모의 『파과』(21회) 8위, 최진영의 『구의 증명』(20회) 9위,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16회) 10위에 오르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상위권을 대거 차지했다.

정대건의 『급류』는 저수지와 계곡이 유명한 지방도시 ‘진평’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동갑내기인 ‘도담’과 ‘해솔’의 만남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구병모의 『파과』는 40년 동안 냉혹한 킬러로 살아온 60대 여성 주인공이 예기치 않은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지난해 민규동 감독의 동명 영화가 개봉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는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에서 비롯된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릴러 소설이다.

명지원 교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한국소설의 압도적인 강세는 동시대 한국인의 정서와 시공간을 공유하는 서사에서 더 큰 울림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케이팝의 세계적 성공으로 확인된 우리 문화의 주체성과 역량에 대한 자부심이 바탕이 되어, 한국적 서사를 가장 세련된 위로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욱 교수는 “한국소설은 우리 사회의 정서와 현실을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포착하는 장르”라며 “특히 최근 작품들은 청년 세대의 불안과 상실, 고립 같은 문제를 절제된 방식으로 정면에서 다루는 데 강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이 자기 삶과 정서적으로 밀착된 이야기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소설로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음영철 교수는 한국소설의 장르적 다양성에도 주목했다. 음 교수는 “한국소설은 장르가 다양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며 “독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진영, 정대건, 정해연 등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된 점과 관련해 “문학의 세대교체라는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앞으로는 웹소설 작가들이 독자들과 소통하며 더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전히 사랑받는 『인간관계론』과 『인간실격』

지난해 대출 순위 1·2위를 차지했던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과 『인간실격』은 올해도 나란히 4위와 3위에 오르며 꾸준한 인기를 이어갔다. (관련기사▷‘인간관계론’과 ‘인간실격’… 24년 도서관 대출 1·2위)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1936년 초판이 나온 이후 전 세계에서 6000만부 넘게 판매된 베스트·스테디셀러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을 줄이고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실용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인간실격』은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으로,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음영철 교수는 “개인주의 시대가 낳은 고립과 단절 속에서 학생들이 관계 맺기와 처세에 더욱 관심을 갖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노동욱 교수는 “관계를 잘 맺고 싶어 하면서도(인간관계론) 동시에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인식하는(인간실격) 학생들의 복합적인 정서가 두 책의 지속적인 인기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