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20주년] 역사와 도약의 대축제 막 오른다

미리보는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
23일 기념식서 ‘SU-RISE 미래캠퍼스’ 비전 선포
에르톤 쾰러 대총회장, 기념 연합예배 설교
걷기대회·음악회·특별전·역사투어 등 다채

개교 120주년을 맞은 삼육대가 지나온 역사를 조명하고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삼육대는 1906년 10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미국인 선교사들이 평안남도 순안에 세운 의명학교(義明學校)에서 출발했다. 해방 후 서울 노원구 지금의 캠퍼스로 터를 옮기며 오늘의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번 120주년 기념행사에는 재림교회 대총회장 에르톤 쾰러 목사를 비롯해, 해외 자매대학 총장, 선구자(초기 선교사) 가족, 미주 동문 및 고액 기부자 등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낸다. 모든 행사는 재학생과 동문은 물론 지역주민과 재림성도 등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열린 축제로 진행된다.

초기 선교사 헌신 기리고 명예박사 수여

핵심 행사인 개교기념식은 오는 23일 오전 10시 교내 요한관 홍명기홀에서 열린다. 남수명 학교법인 삼육학원 이사장(한국연합회장)의 환영사와 제해종 총장의 기념사, 대총회장 에르톤 쾰러 목사의 격려사, 로마린다대 앤서니 힐리어드 총장의 축사 등이 이어진다.

척박한 땅에서 헌신했던 초기 선교사들을 기리는 AI 역사 다큐멘터리 헌정 시간도 마련된다. 풍토병으로 두 아이를 잃는 아픔에도 사명을 다한 윌리엄 스미스 목사, 36세의 젊은 나이에 과로로 순직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 미미 샤펜버그, 4년간 2만여 명의 환자를 돌본 의사 릴리 러셀의 숭고한 희생과 섬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길 예정이다.

▲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AI 역사 다큐멘터리로 헌정되는 초기 선교사들. 왼쪽부터 풍토병으로 두 아이를 잃는 아픔 속에서도 사명을 다한 윌리엄 스미스 목사, 36세에 과로로 순직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 미미 샤펜버그, 4년간 2만여 명의 환자를 돌본 의사 릴리 러셀.

기념식에서는 선구자 가족 5명과 고액 기부자 10명 등 총 15명에게 발전 공로패를 수여한다. 특히 모교 발전을 이끌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김완수(신학과 65학번), 노의용(영어영문학과 68학번) 동문과 한상경 전 원예학과(현 환경디자인원예학과) 교수 등 3명에게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뜻깊은 순서도 진행된다.

김완수 동문은 캐나다 이주 후 ‘토론토 중앙일보’ 발행인으로서 인쇄·언론사업을 이끌며 한인사회 통합에 기여했다. 지난 2022년 미래 목회자 양성과 기독 인재 육성을 위해 삼육대에 미화 100만 달러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노의용 동문은 미국에서 청소회사를 창업해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익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경영으로 한인 이민자들의 자립을 도왔다. 특히 개교 이래 단일 최고액인 총 208만 달러를 쾌척해 모교의 교육 경쟁력 강화에 크게 공헌했다.

원예학 박사인 한상경 전 교수는 재직 당시 후학 양성에 헌신하는 한편, 1996년 ‘아침고요수목원’을 설립해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문화 공간으로 성장시킨 창의적 경영인이다. 대학 총동문회장과 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고액의 대학 발전기금을 쾌척하고, 모금 캠페인을 이끄는 등 기부문화 확산과 동문사회 화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울러 학과와 총동문회가 선정한 총 29명의 학생에게는 총동문회 장학금을 전달해 후학 양성의 뜻을 이어간다.

‘SU-RISE 미래캠퍼스’ 공식 선포

새로운 미래를 향한 비전도 제시된다. 삼육대는 지하캠퍼스 구축을 골자로 한 공간 혁신 구상인 ‘SU-RISE 미래캠퍼스’ 비전을 공식 선포한다. 교육과 문화 복합 시설을 지하로 내려 ‘지하 혁신클러스터’를 구축함으로써 캠퍼스 정주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발표된다.

이와 함께 기존 엠블럼을 기반으로 대학의 정체성을 간결하고 현대적으로 표현한 새로운 워드마크도 선포된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젊고 역동적인 대학의 이미지를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기념 예배와 음악회도 주말 내내 이어져 캠퍼스를 하나로 묶는다. 24일 오전 9시 30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에서 에르톤 쾰러 대총회장이 말씀을 전하는 캠퍼스 연합예배가 열린다. 이 예배에는 대학교회 및 산하 6개 지교회뿐만 아니라, 대학과 뿌리를 같이하는 태강삼육초, 한국삼육중·고 등이 총집결해 120주년의 기쁨을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4일 오후 7시에는 음악학과와 학과 동문회가 주관하는 대규모 기념 음악회가 열린다. 교수, 동문, 재학생 연합 합창단이 웅장한 하모니를 선사한다.

AI로 복원한 ‘적목리 기념실’

역사의 숨결을 잇는 특별한 전시 공간도 새롭게 문을 연다. 연내 개관을 목표로 박물관 5층에 조성되는 ‘적목리 기념실’은 가평 적목리 신앙공동체의 역사를 AI 등 첨단 디지털 콘텐츠로 구현한 공간이다. 3D 디오라마로 험준한 현지 지형을 생생히 되살리고, 신앙생활의 터전이었던 움막집과 반지하교회, 바위구멍 등을 실감나게 복원한다.

아울러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고(故) 신태식 목사를 비롯해 당시 성도들의 생활과 예배 모습을 대형 부조 작품으로 웅장하게 형상화해 후대에 숭고한 신앙 유산으로 전할 계획이다.

오는 12일부터 11월 20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엘프레드 리의 ‘구속의 파노라마’ 특별초대전을 개최한다. 성경의 주요 사건을 다룬 대형 회화 ‘에덴에서 에덴까지’ 연작 10점과 ‘좁은 길의 그리스도’ 등이 전시된다.

엘프레드 리는 삼육신학원 초대 원장을 지내며 현재 삼육동 캠퍼스의 기틀을 마련한 제임스 리(한국이름 이제명) 목사의 장남으로, 대학 역사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23일 오후 열리는 전시회 오픈식에는 작가 부부와 가족이 직접 참석해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 엘프레드 리의 대형 회화 연작 ‘에덴에서 에덴까지’ 10점 중 마지막 열 번째 작품인 ‘요한계시록과 회복된 에덴’. 성경 구속사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구속의 파노라마’ 특별초대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캠퍼스 투어·특별전시… 120년사 발간까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규모 건강 축제도 성황을 이뤘다. 지난 5일 교내 및 화랑로 일대에서 열린 개교 120주년 기념 건강 걷기대회 ‘삼육대학교와 함께 걷는 길’에는 재학생과 시민 등 2천500여 명이 함께했다. 삼육대 생활건강증진원과 대한건강걷기연맹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대운동장을 출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강릉과 화랑대 철도공원을 잇는 약 7㎞ 코스로 진행됐다.

다채로운 문화 행사와 투어 프로그램, 학술적 성과도 눈길을 끈다. 오는 17일과 24일, 31일 세 차례의 안식일 오후에는 박물관 특별개관과 함께 캠퍼스 곳곳의 신앙 발자취를 살펴보는 해설사 동행 역사 투어가 진행된다.

19일부터 23일까지 솔로몬광장에서는 개교 120주년 사진 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다. 최우수상을 받은 윤민재 동문의 ‘백년의 빛: 신학관’을 비롯한 수상작 25점과 아름다운 삼육동 캠퍼스의 사계를 담은 사진들이 전시된다.

▲ 개교 120주년 사진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윤민재 동문의 ‘백년의 빛: 신학관’

아트앤디자인학과 전현직 교수진 및 유명 작가 초청 특별전은 21일부터 29일까지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김성운, 김영안, 김용선, 박유선, 임종성, 전종범, 주미경 등 전현직 교수들의 작품이 걸린다. 재미(在美) 극사실주의 인물화가 해리안(Harry Ahn, 한국이름 안승윤)과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회화 작가 하태임도 초청 작가로 참여한다. 기증작품 전시, 옥션 이벤트, VIP 아트데이 등과 연계해 대학 발전기금 모금 특별전으로 기획됐다.

끝으로 삼육대의 120년 역사를 학술적으로 망라한 ‘삼육대학교 교육행정자 열전’과 ‘삼육대학교 120년사’가 연내 발간돼 120주년 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한다.

제해종 총장은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는 지난 120년간 삼육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선구자들의 숭고한 발자취와 헌신을 되새기는 자리”라며 “대학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선포하는 동시에 전국의 성도와 동문, 지역사회가 함께 모여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은혜로운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공간의 기억] ⑩ ‘백주년기념관’ 세 축이 교차하는 제2세기 상징

돌과 유리로 두 세기를 담다

▲ 개교 100주년을 맞아 삼육 제2세기를 선언하며 세워진 백주년기념관 전면 전경. 과거의 권위를 담은 석조 열주와 미래를 향한 유리 박스가 공존하는 이 건축물의 안팎에는, 치열했던 외관 조율과 땅 밑 수맥을 극복한 공학적 사투가 숨어 있다. 현재 건물 옥상 양쪽에 통신 안테나가 설치돼 있으나, 설계자가 의도했던 신고전주의 비례와 단정한 지붕선(코니스)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그래픽 작업을 통해 이를 걷어냈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대학의 역사가 한 세기를 넘어서는 2006년, 삼육대는 삼육의명대와의 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건학 제2세기’를 향한 도약의 상징으로 ‘백주년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터로 낙점된 곳은 1970년대 대학 자립의 뼈대였던 옛 엘리야관 자리였다.

2006년 7월, 엘리야관이 영예롭게 소임을 마치고 철거되면서 터 닦기가 시작됐다. 그해 개교 100주년 기념식 전날인 10월 9일 기공예배를 드렸다. 총 88억원이 투입된 건물은 착공 1년여 만인 2007년 10월 22일 준공돼 위용을 드러냈다.

2천평의 매스

백주년기념관은 흔히 단일 건물로 알려졌지만, 실은 백주년기념관과 국제교육관 두 건물을 이어 붙인 형태다. 건축물대장에도 두 건물은 따로 등재돼 있다. 당초 인가된 규모는 백주년기념관 1천500평, 국제교육관 500평이었다. 개별 건물로는 개교 100주년의 상징성을 담아내기에 다소 왜소한 규모였다. 설계를 총괄한 건축학과 이태은 교수(현 명예교수)는 나란히 들어설 두 건물을 하나의 외관으로 잇는 안을 관철했다. 그렇게 2천평(6415.34㎡)에 가까운 하나의 거대한 매스가 만들어졌다.

▲ 백주년기념관 측면 전경. 단일 건물처럼 보이지만 좌측의 백주년기념관과 우측의 국제교육관이 3층 연결 통로로 맞닿아 있는 구조다. 각기 다른 두 건물을 하나의 열주 파사드로 묶어내 2천평에 달하는 매스를 구현했다.

건물이 들어설 부지는 캠퍼스의 지형적 맥락에서 매우 까다로운 위치였다. 이 교수는 삼육동 캠퍼스를 세 개의 ‘축(Axis)’이 교차하는 땅으로 읽었다. 사무엘관과 대학교회를 관통하는 초기 삼육동의 ‘옛 축(Old Axis)’, 1980년대 이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과 중앙도서관, 아트앤디자인관을 따라 형성된 ‘새 축(New Axis)’, 그리고 정문 소나무 길을 따라 곧게 뻗은 ‘진입축’이다.

이 엇갈린 세 개의 축을 아우르기 위해 설계자는 건물의 평면을 일(一)자나 미음(ㅁ)자가 아닌, 변형된 디귿(ㄷ)자 형태로 비틀어 앉혔다. 오늘날 중앙도서관(새 축)이나 신학관(옛 축), 정문 진입로(진입축) 등 캠퍼스 어느 방향에서 시선을 던져도, 육중한 매스가 겉돌지 않고 주변 풍경과 나란히 정렬된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 배치의 결과다.

▲ 이태은 교수가 제공한 삼육동 캠퍼스 3대 축과 백주년기념관 배치 콘셉트. 사무엘관과 대학교회를 관통하는 옛 축(SUB AXIS)과 대강당·중앙도서관을 잇는 새 축(MAIN AXIS), 그리고 정문 진입로를 따라 들어오는 진입축(노란 화살표)이 교차하는 지점에 변형된 디귿(ㄷ)자 형태의 백주년기념관이 대지 위에 안착해 있다.
▲ 드론으로 수직 촬영한 백주년기념관의 평면 구조. 사진 하단이 정문 진입로를 마주하는 전면 파사드다. 일(一)자나 미음(ㅁ)자 형태를 탈피해 캠퍼스의 복잡한 축들을 흡수하도록 비틀어낸 변형된 디귿(ㄷ)자 평면이 뚜렷이 확인된다.
▲ 정문 소나무 길(진입축)에서 바라본 백주년기념관. 아스팔트 도로와 울창한 소나무 숲이 빚어내는 프레임 너머로 장중한 석조 열주와 뒤편 불암산 봉우리가 시각적 정렬을 이루고 있다.
▲ 백주년기념관(왼쪽)과 중앙도서관(오른쪽) 사이로 곧게 뻗은 ‘새 축(New Axis)’ 전경. 두 건물이 축선을 따라 나란히 면을 맞대며 반듯하게 정렬해 있는 모습이다.

돌의 역사와 유리의 미래

외관을 결정하는 과정은 치열했다. 대학 구성원들은 개교 100주년의 권위를 대변할 웅장한 서양식 석조 건물을 열망했다. 하지만 설계자는 시대정신을 담은 현대건축을 지향했다. 거듭된 논의 끝에,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묵직한 ‘돌(Stone)’의 박스와 미래 비전을 상징하는 메탈릭 실버 섀시의 ‘유리(Glass)’ 박스를 결합하는 콘셉트가 확정됐다.

특히 전면부 돌 박스는 철저한 고전주의 양식을 따른다. 영국 식민지풍(Colonial)의 이중 열주와 독일 신고전주의 건축가 싱켈(Schinkel)의 비례를 차용한 상단 코니스(Cornice, 처마 돌림띠)를 얹어 장중함을 극대화했다. 이 웅장한 외관은 오늘날 삼육대 정문을 들어서는 이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각인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시공 과정 역시 엄격했다. 가장 순백에 가까운 색감을 내기 위해 설계자가 직접 중국 칭다오까지 건너가 설화석과 화강석을 검수했다. 기둥의 시공 오차를 없애기 위해 800kg/cm²의 고강도 콘크리트로 일체 타설한 1층~4층 관통 열주는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빈틈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 백주년기념관 전면 파사드. 영국 식민지풍 이중 열주와 상단 코니스(처마 돌림띠)로 구축한 신고전주의 ‘돌 박스’ 안쪽으로, 메탈릭 실버 섀시의 현대적 ‘유리 박스’가 중첩된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1층부터 4층까지 오차 없이 일체 타설된 고강도 콘크리트 기둥과 순백의 석재 마감이 장중한 비례를 완성하고 있다.

영구배수공법

보이지 않는 땅 밑의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터 아래를 가로지르던 옛 수맥 탓에 여름이면 지하수가 불어났다. 파 내려간 지하 7m 공간 중 6m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며 건물을 통째로 밀어 올리는 양압력(부력)이 발생했다. 막대한 구조 보강 비용을 쏟는 대신 선택한 것은 ‘영구배수공법(Dewatering)’이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펌프로 물을 빼내 수압을 통제하는 이 기술 덕분에, 건물은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균열 하나 없이 견고하게 서 있다.

이 거대한 상징물에는 동문의 헌신도 스며 있다. 1958년 졸업 후 도미해 평생 의료인으로 살아온 장근청 박사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모교에 보답하고 싶다”며 100만 달러의 발전기금을 쾌척했다. 대학은 그의 뜻을 기려 건물 3층에 동시통역 시설을 갖춘 대규모 국제회의실을 ‘장근청홀’로 명명했다.

준공식에서 서광수 당시 총장은 “백주년기념관은 지나간 100년의 가치와 영광을 돌아보게 한다”며 “새로운 100년의 희망과 비전을 열어가게 될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했다. 돌아보는 100년과 열어갈 100년, 백주년기념관이 품고 있는 ‘돌의 상자’와 ‘유리의 상자’에 정확히 포개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색을 머금도록 고른 흰 돌 위에 어느덧 20년의 시간이 쌓였다. 무거운 돌기둥은 지나온 100년의 지반을 지탱하고, 투명한 유리는 뻗어나갈 미래를 반사하며 백주년기념관은 오늘도 삼육동의 중심축을 지키고 있다.

취재·글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공동기획 최환철(박물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시리즈 연재]
[공간의 기억] ① 삼육동 최초의 건물 ‘실업관’
[공간의 기억] ② 삼육동의 심장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공간의 기억] ③ 폐철근으로 세운 자립의 뼈대 ‘엘리야관’
[공간의 기억] ④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사택’
[공간의 기억] ⑤ 제임스 리 선교사의 유산 ‘제명호’
[공간의 기억] ⑥ 확장의 신호탄 ‘사무엘관’
[공간의 기억] ⑦ 영성과 문화의 요람 ‘소강당’
[공간의 기억] ⑧ 삼육교육의 젖줄 ‘유가공실습장’
[공간의 기억] ⑨ 지성의 전당 ‘중앙도서관’
[공간의 기억] ⑩ ‘백주년기념관’ 세 축이 교차하는 제2세기 상징

‘천원의 아침밥’ 계속되는 인기

누적 6만食 돌파 눈앞
고물가 속 식비 부담 덜고 ‘아침 루틴’ 형성까지

▲ 16일 오전 교내 SU라운지에서 학우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고 있다.

16일 오전 8시 30분, 1교시 수업을 앞둔 교내 SU라운지(구 파인하우스)는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러 온 학우들로 북적였다. 배식이 밀릴 정도의 혼잡은 없었으나, 군데군데 자리를 채운 학우들로 식당 안은 활기를 띠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혼자 식사하는 학우부터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무리까지 다양했다. 바로 옆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음료와 컵라면을 사 와 곁들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메인 메뉴는 타코라이스였다. 다진 소고기와 양상추 위로 살사소스와 사워크림이 어우러져 ‘탄단지(탄수화물·단백질·지방)’ 밸런스를 맞춘 제법 든든한 식단이었다. 자율 배식으로 운영돼 학우들은 각자 원하는 만큼 그릇을 채울 수 있었다. 주간 식단표에 따르면 닭갈비 볶음밥, 하이라이스, 된장 두부 덮밥 등 매일 다른 메인 메뉴가 제공된다.

학우들이 이른 아침부터 식당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가성비’다. 김훈(신학과 22학번) 학우는 “만나의집(생활관 식당) 조식이 4천500~5천원 선인데, 이곳에서는 1천원에 해결할 수 있어 일주일에 4~5번씩 찾는다”며 “아침을 챙겨 먹으니 수업 시간에 졸음도 덜하고, 야식을 멀리하게 돼 건강에도 유익하다”고 말했다.

식비 절감은 생활 루틴의 긍정적인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고경필(미래융합자유전공학부 26학번) 학우는 “다이어트 중이라 저녁을 적게 먹는데, 1천원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면 하루를 버틸 힘이 난다”고 했다. 윤지예(간호학과 22학번) 학우는 “배식 대기 시간이 짧아 수업 직전에 급하게 먹기에도 무리가 없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수업에 가거나 도서관으로 향하는 루틴이 생겼다”고 전했다.

이번 학기부터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해 배식 형태를 ‘한식 백반’으로 복구시킨 점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배식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컵밥 형태로 단일화했으나, 식단의 다양성 확보와 하절기 식중독 예방을 위해 한식으로 변경했다. 박미랑(사회복지학과 26학번) 학우는 “지난 학기 컵밥보다 메뉴가 훨씬 다양해지고 영양도 챙길 수 있어 변경된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 16일 오전 교내 SU라운지에서 학우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이번 학기 누적 이용 6만 식(食)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23년 1학기 도입 이래 지난 학기까지 누적 5만5천식이 제공됐으며, 이번 2학기에는 총 9천식 규모의 예산을 확보해 하루 평균 120여명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루 배식 인원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며, 수요가 급증해 예산이 조기 소진될 경우 학생처 측은 추가 예산을 배정해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천원의 아침밥 한 끼 단가는 총 5천원이다. 학생 부담금 1천원 외에 농림축산식품부가 2천원, 서울시가 1천원, 학교 측이 1천원을 각각 매칭한다.

이용 대상은 학부 재학생으로 한정되며 대학원생과 어학당 학우는 제외된다. 방학을 제외한 학기 중 평일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모바일 앱 ‘올리브식권’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주간 식단표는 학교 홈페이지(삼육생활→편의시설→SU Lounge)에서 확인 가능하다.

학우들의 체감 만족도는 매우 높다. 지난해 2학기 말 재학생 만족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62.9%가 ‘이용 시 하루가 든든해진다’고 답했고, 84.3%는 ‘다음 학기에도 이용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 중 4학년 이상이 14.8%인 점을 감안하면, 졸업예정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학우가 지속적인 이용 의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혜전 학생처장은 “고물가 시대에 학생들의 식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돕기 위해 이번 학기에도 사업을 차질 없이 준비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든든한 캠퍼스 라이프를 지원하기 위해 다각적인 복지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공간의 기억] ⑨ 지성의 전당 ‘중앙도서관’

80년대 캠퍼스 확장의 중심축… 미래 캠퍼스 거점으로

▲ 1984년 준공된 중앙도서관 전경. 사진은 199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980년대 초반, 삼육대는 본격적인 확장의 시대를 맞이했다. 유가공실습장, 학생회관, 강의동(현 에스라관), 과학관(현 제1과학관), 행정관(현 아트앤디자인관) 등 대규모 교육 시설이 연이어 들어서는 광범위한 건축 사업이 전개됐다. 그 거대한 캠퍼스 확장의 한가운데, 대학의 심장이자 학문의 중추로서 심혈을 기울여 세워진 건물이 바로 ‘중앙도서관’이다.

대학은 1962년 건축한 2층 규모(약 160평)의 도서관을 20년 넘게 사용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학생 수와 학과가 급증하면서 기존 도서관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장서 확충과 기계화된 도서 정리 시스템, 절대적인 열람실 공간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1980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건축을 완료한 대학 행정부는 곧바로 중앙도서관 신축에 역량을 집중했다. 앞서 지어진 선교70주년기념관이 지·영·체(智·靈·體) 삼육 교육 중 ‘영성’의 구심점이었다면, 중앙도서관은 ‘지성’의 심장부를 상징했다. 1983년 6월 14일 건축 허가를 받아 8월 23일 기공식을 거행하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딸기밭 늪지 위에 세운 ‘지성의 전당’

도서관이 들어설 부지는 원래 딸기와 채소를 재배하던 밭으로, 지반에 물이 많은 늪지 형태였다. 공사 관계자들은 튼튼한 기둥을 깊이 박고 기초를 다지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설계는 안문효 건축가가 맡았다.

11개월의 공사 끝에 1984년 7월 25일, 총공사비 13억1천539만원이 투입된 중앙도서관이 완공됐다. 철근 콘크리트조 슬라브 구조의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연면적은 6천25.20㎡(약 1천825평)에 달했다. 개관 당시 지하는 열람실 및 자료보관실, 1층은 대출대와 자유열람실, 2층은 서고 열람실, 3층은 참고 열람실로 구성됐다. 1980년대 당시 단과대학 규모에서는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최고 수준의 인프라였다.

▲ 1984년 7월 25일 열린 중앙도서관 준공식에서 학교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준공 당시에는 입구 전면에 유리 커튼월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다.

외형적 공간이 확보되자 장서 확충과 내실 다지기에도 한층 속도가 붙었다. 1984년 개관 당시 5만1천여권이던 장서는 1987년 8만권을 넘어섰고, 개교 90주년인 1996년에는 16만권에 도달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은 외부의 객관적 평가로 입증됐다. 1994년 중앙일보가 실시한 ‘대학순위평가’에서 삼육대는 교육여건 부문 종합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도서관 지표에서 학생 1인당 열람석 수 1위, 도서 구입비 5위, 장서 수 6위를 기록하며 신흥 명문으로 도약하는 대학의 위상을 실증했다.

‘최태현 기념도서관’ 명명

도서관 역사에서 1996년 10월 10일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개교 90주년을 맞아 중앙도서관을 ‘최태현 목사 기념도서관’으로 명명하는 행사가 거행됐다.

최태현 목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철수한 1940년대, 최초의 한국인 조선합회장으로서 교단을 이끄는 한편, 삼육대의 전신인 사역자 양성소 교장으로서 대학의 명맥을 함께 지탱했다.

그는 1943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종교 탄압에 항거하다 종로경찰서에 구인됐고, 118일간 이어진 혹독한 고문 끝에 5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며 한국 재림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됐다. 당시 일제는 교단과 대학의 최고 영수(領袖)인 그를 굴복시키려 했으나, 그는 “이 생명은 가볍게 보이고 영생은 가깝게 보여 고난을 달갑게 받는다”는 옥중서신을 남기며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

삼육대는 민족 구원과 신앙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최태현 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학의 심장인 도서관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이날 명명식에는 고인의 아들인 최희만 장로가 유족 대표로 참석해 그 역사적 무게를 더했다.

▲ 최태현 목사

‘침묵의 서고’에서 ‘소통과 융합의 장’으로

한편 도서관의 내부 구조와 시스템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했다. 1994년에는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1~3층에 분산됐던 자료실과 열람실을 통합 배치하고, 2층에 시청각 및 음악자료실인 T.M.C.(The Media Center)를 개관하며 미디어 센터로서의 기능을 추가했다. 이어 1996년 인터넷센터 개관, 1997년 바코드 기반의 대출 자동화 및 ID카드(학생증) 도입을 통해 도서관 출입과 관리의 전면적인 전산화를 이뤄냈다.

2010년대 이후의 변화는 ‘소통’ 중심의 공간 혁신으로 요약된다. 과거 도서관이 ‘침묵 속에서 책을 읽는 독서실’이었다면, 현재는 ‘소통하고 협력하는 융합의 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2017년 북오픈스튜디오 개관을 시작으로, 2019년과 2023년에 걸쳐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단행됐다.

1층 로비와 열람실은 칸막이를 없애고 소파와 개방형 테이블을 배치해 백색소음이 허용되는 역동적인 커뮤니티 라운지로 탈바꿈했다. 지하 열람실은 폐가제 서고와 다목적 세미나 공간인 ‘나눔실’로 재편됐으며, 2층과 3층 자료실은 방음부스와 집중실, 토론실을 갖춘 학습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어 2026년 초 전 층 화장실 리모델링까지 완료하며 쾌적한 현대식 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 지난 2023년 겨울방학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 내부. 1층 로비(위 사진)는 개방형 라운지로 탈바꿈했다. 2층 자료실(아래 사진)은 이용 빈도가 낮은 장서를 지하 서고로 이전해 개방감을 확보하고,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해 편안한 열람 환경을 조성했다.

미래 캠퍼스 청사진

1984년 5만여권의 장서를 품고 솟아올랐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50만5천784권의 장서와 602석의 열람석을 갖춘 학문과 소통의 광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내부 리모델링에도 불구하고, 건립 40년을 훌쩍 넘긴 물리적 구조의 한계 탓에 타 대학의 최신 신축 도서관 시설에 비해 점차 낙후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도 존재한다. 이에 대학은 기존 건물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서관의 기능을 완전히 새롭게 재정의하기 위한 거시적인 청사진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제해종 총장을 중심으로 한 현 행정부가 개교 120주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SU-RISE 미래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중앙도서관 개발 계획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에 따르면 도서관 지하를 광범위하게 개발해 인공지능 융합교육과 창업, 산학협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혁신 학습 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40년 전 늪지 위에 세워진 중앙도서관은 이제 캠퍼스 지하로 물리적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다. 거듭된 리모델링과 공간 혁신으로 시대에 부응해 온 지난 40년처럼, 앞으로도 삼육 교육의 가장 단단한 학문적 거점으로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것이다.

▲ 오늘날 중앙도서관 전경
▲ 1980년대(위 사진)와 오늘날(아래 사진) 도서관 야경. 지난 40년의 세월을 넘어 밤낮없이 학문의 불을 밝히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왔다.

글·구성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공동기획 최환철(박물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시리즈 연재]
[공간의 기억] ① 삼육동 최초의 건물 ‘실업관’
[공간의 기억] ② 삼육동의 심장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공간의 기억] ③ 폐철근으로 세운 자립의 뼈대 ‘엘리야관’
[공간의 기억] ④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사택’
[공간의 기억] ⑤ 제임스 리 선교사의 유산 ‘제명호’
[공간의 기억] ⑥ 확장의 신호탄 ‘사무엘관’
[공간의 기억] ⑦ 영성과 문화의 요람 ‘소강당’
[공간의 기억] ⑧ 삼육교육의 젖줄 ‘유가공실습장’
[공간의 기억] ⑨ 지성의 전당 ‘중앙도서관’
[공간의 기억] ⑩ ‘백주년기념관’ 세 축이 교차하는 제2세기 상징

[수시특집] 논술전형 대폭 확대한다… 약학과도 ‘약술형 논술’ 도입

학생부 성적 없이 ‘논술 100%’ 선발
수시 비중 80% 육박… 교과전형은 ‘내신 5등급제’ 적용
학생 1인당 장학금 6년 연속 ‘서울권 1위’
해외취업률 5년 연속 ‘수도권 1위’

삼육대는 202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1029명을 선발한다. 전년도 선발인원 825명 대비 24.73%(204명↑) 대폭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체 모집 인원 중 수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하게 됐다.

약학과, 인공지능융합학부, 바이오융합공학과,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미래융합자유전공학부 등 26개 모집단위(학과)에서 선발이 이뤄진다.

논술전형 확대… 약학과도 논술 도입

올해 수시모집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논술우수자전형’의 대폭 확대다. 신학과와 예체능계열을 제외한 전 학과에서 전년(154명) 대비 79.87%(123명↑) 증가한 277명을 선발한다. 이는 모든 전형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로, 명실상부 삼육대의 대표 전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이목이 쏠리는 약학과도 올해 처음으로 논술전형을 도입해 5명을 모집한다.

논술우수자전형은 학생부 성적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직 논술고사 성적 100%로 합격자를 가린다. 수능최저학력기준 역시 일반학과 기준 국어·영어·수학·탐구(1과목) 중 1개 영역 3등급 이내로 설정돼 수험생의 부담을 크게 낮췄다. 탐구 1과목으로도 충족이 가능하다.

이에 내신이나 수능 모의고사 3등급 이하의 중위권 수험생에게는 서울권 대학 진학을 위한 이른바 ‘역전의 기회’로 평가된다. 단, 약학과는 국어·영어·수학(미적분 또는 기하)·과탐(1과목) 중 3개 영역 합 5등급 이내를 충족해야 한다.

논술고사가 ‘약술형 논술’ 형식으로 출제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언어논술이나 수리논술에 비해 문항이 단순하고 답안 분량이 짧아 수험생의 부담이 덜하다.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과 EBS 수능 연계 교재를 중심으로 별도의 사교육 없이 풀 수 있는 난이도로 출제돼 학교 수업과 수능을 충실히 준비한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무리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일반학과의 경우 국어와 수학 총 13문항을 80분간 푼다. 문항 수가 지난해 15문항에서 올해 13문항으로 줄어 시간 압박을 덜게 됐다. 별도로 고사를 치르는 약학과는 수학 단일 과목으로 8문항이 출제되며, 고사 시간은 80분으로 같다.

삼육대는 입학처 홈페이지를 통해 ‘2026학년도 선행학습 영향평가 자체평가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지난해 논술고사 기출문제가 수록돼 있다. 문항과 제시문, 정답은 물론, 문항해설 및 풀이과정, 출제의도, 채점기준, EBS 기출 페이지까지 담겨 있다. (바로가기▷2026학년도 선행학습 영향평가 자체평가 결과)

세움인재 면접 실시… 수능최저는 약학과만

세움인재전형(종합전형)은 231명을 선발한다. 1단계에서 서류평가 100%로 4배수를 선발하고, 2단계에서 1단계 성적 60%와 면접 40%를 합산한다. 서류평가는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을 학업역량, 진로역량, 공동체역량 등 평가항목을 기준으로 종합 정성평가한다.

2단계 면접은 제시문 없이 학생부를 기반으로 서류평가 내용을 확인하고 개별 질문하는 방식이다. 시간은 8분 이내다. 모든 면접은 수험번호를 포함해 수험생의 이름, 출신학교, 부모 및 친인척 정보 등이 블라인드 처리된다. 이를 언급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세움인재전형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약학과만 있다. 국어·영어·수학(미적분 또는 기하)·과탐(1과목) 중 3개 영역 합 5등급 이내다.

학교장추천 ‘교과 100%’… ‘내신 5등급제’ 적용

교과전형인 학교장추천전형은 131명을 모집한다. 학생부 교과성적 100%로 선발하는 전형으로,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성적을 학년별 차등 없이 반영한다. 출신 고등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하지만, 고교별 추천 인원의 제한은 없다.

학교장추천전형의 체육학과와 아트앤디자인학과는 실기 성적도 반영한다. 체육학과는 학생부 40%, 실기 60%이며, 아트앤디자인학과는 학생부 20%, 실기 80%를 합산한다.

학교장추천전형은 학생부 교과 성적 반영 방식을 개편했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전면 도입되는 ‘내신 5등급제’를 1년 앞당겨 선제적으로 적용한다. 기존 9등급제 점수를 A~E 5개 등급으로 환산해 △1~2등급 A(100점) △3~4등급 B(99점) △5등급 C(98점) △6~7등급 D(90점) △8~9등급 E(70점)를 부여한다.

이처럼 등급 간 점수 격차가 완화됨에 따라, 실기 반영 비율이 높은 아트앤디자인학과와 체육학과 등 예체능 계열은 사실상 실기 성적이 합격의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단, 약학과는 기존 9등급제를 유지한다.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좌우되는 최상위권 특성상 변별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학교장추천전형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일반학과의 경우 국어·영어·수학·탐구(1과목) 중 2개 영역 합 7등급 이내, 간호학과·물리치료학과는 2개 영역 합 6등급 이내, 약학과는 국어·영어·수학(미적분 또는 기하)·과탐(1과목) 중 3개 영역 합 5등급 이내여야 한다. 체육학과와 아트앤디자인학과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없다.

약학과는 올해 수시모집에서 26명을 선발한다. 지난해(16명)보다 수시 인원이 10명이나 늘었다. △세움인재전형(종합) 7명 △논술우수자(논술) 5명 △학교장추천(교과) 3명 △재림교회목회자추천(종합) 3명 △농어촌(교과 정원외) 3명 △기회균형II(종합 정원외) 3명 △특수교육대상자(종합 정원외) 2명 등이다.

모든 전형에서 교차지원이 가능하다. 원서접수는 오는 9월 7일부터 11일까지 진학어플라이에서 실시한다.

학생 1인당 장학금… 6년 연속 ‘서울권 1위’

삼육대는 지난해 서울권 대학 가운데 ‘재학생 1인당 장학금’ 최상위를 기록했다. 2019년부터 6년 연속 1위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8월 29일 대학알리미를 통해 공개한 ‘2025년 8월 대학정보공시 결과’에 따르면, 삼육대의 2024년 재학생 1인당 장학금은 430만 9590원이다.

이는 재학생 5천명 이상 서울 일반대학(국공립·사립 포함) 중에서 가장 많은 금액이다. 전국 일반·교육대학 평균(382만 7000원)보다 약 48만원, 수도권 대학 평균(369만 2000원)보다 62만원 가량 많다. 삼육대의 지난해 연평균 등록금이 827만 8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등록금의 절반 이상이 장학금으로 지원되는 셈이다.

삼육대의 대표 장학제도는 ‘MVP 장학금(마일리지 장학금)’이 꼽힌다. △Mission(인성·교양교육) △Vision(국제화·자격증·전공) △Passion(봉사) 등 3개 영역의 활동 및 경력을 인증하고, MVP등급 기준을 충족하면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가장 규모가 큰 장학금은 ‘나눔 장학금’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지난해 한 해에만 15억 6200만원이 지급됐다.

기부금 확충을 통해서도 장학기금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동문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출연한 ‘학과 밀알 장학금’, 교수·직원이 후원하는 ‘제자사랑 장학금’과 ‘직원회 장학금’,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삼육사랑샵 장학금’, 대학교회 성도들이 모금한 ‘도르가 장학금’ 등이다.

이외에도 각계의 후원을 바탕으로 현재 60여 종에 달하는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취업률 5년 연속 ‘수도권 1위’

삼육대는 5년 연속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대학 가운데 해외취업률 1위를 달성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1월 대학알리미를 통해 발표한 ‘2025년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삼육대의 2024년 해외취업률(조사기준일 2024년 12월 31일)은 2.2%로 수도권 대학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부터 5년 연속 1위에 해당한다.

해외취업률은 졸업자 가운데 진학자, 입대자, 취업불가능자, 외국인유학생, 제외인정자를 제외한 인원을 기준으로 산출한 해외취업자 비율이다.

또한 ‘해외취업자 수’ 기준으로는 2022년 44명, 2023년 37명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수도권 대학 중 가장 많은 해외취업자를 배출했고, 2024년에는 25명을 기록해 수도권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삼육대의 대표적인 해외취업 프로그램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해외취업연수사업 ‘신(新)청해진대학’이다.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청년들에게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해외 기업 인턴십 및 취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삼육대는 지난 2018년부터 9년 연속 운영대학으로 선정돼 현재까지 북미권 취업자 168명을 배출했다.

‘전과자율제’ 모든 학년으로 확대

삼육대는 ‘전과자율제’를 시행하고 있다. 1학년부터 4학년 졸업 전까지 전과를 원하는 학생은 전과 희망 학과(부) 모집 정원의 100% 이내 범위에서 전과할 수 있다. 전과 횟수 제한과 전과를 위한 성적 요건, 이수학점 기준도 없다.

학생 학습권을 확대해 학생들이 학년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이다. 단, 약학과,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로 전과는 불가하다.

삼육대는 또한 전공의 문턱을 낮춰 재학생의 융합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마이크로전공제를 운영하고 있다. AI·빅데이터분석, 데이터사이언스, 반도체, 바이오의약, 항공서비스 등 25개 과정이 개설돼 있다.

마이크로전공은 주 전공 외에 여러 학문을 익힐 수 있도록 최소단위(micro) 학점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전공과정이다. 타 전공과 융합교육을 경험해 보고 싶지만 많은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점이 부담인 학생들을 위한 제도로, 새로운 학문에 진입할 수 있는 ‘브리지(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이크로전공을 이수한 후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경우, 복수전공·부전공·연계전공 등 여러 다전공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이크로전공 이수자가 동일 다전공으로 진입 시 이수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혜택도 제공한다.

□ 2027학년도 수시모집 요강: https://ipsi.syu.ac.kr/2016_syu/pages/index.asp?p=8&mj=01
□ 삼육대 입학처 홈페이지 : http://ipsi.syu.ac.kr/
□ 입학 상담 및 문의 : ☏ 02-3399-3377~9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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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경제 https://www.dailysm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226
아주경제 https://www.ajunews.com/view/20260825102532438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39&item=&no=40337
한국NGO신문 https://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85

[공간의 기억] ⑧ 삼육교육의 젖줄 ‘유가공실습장’

목장 개척부터 대학우유까지… 50년 삼육낙농史

▲ 1984년 준공된 유가공실습장의 전성기 모습. 1992년 무렵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란히 정차된 우유 수송차량들이 말해주듯, 이곳은 하루 수십 톤의 우유를 생산하며 반세기 동안 삼육대의 자립과 성장을 이끈 든든한 젖줄이었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삼육대 캠퍼스 내 최대 규모 건축물인 ‘다니엘-요한관’이 서 있는 자리는 과거 ‘유가공실습장(우유처리장)’이 있던 곳이다. 1980~90년대 대학 발전의 절대적인 원동력이자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던 유가공실습장의 역사적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육동 시대 초기 척박한 땅에서 시작된 ‘목장’의 역사부터 먼저 짚어보아야 한다.

젖소 7마리로 연 삼육동 낙농업의 여명

삼육동 낙농업의 역사는 대학이 터를 잡은 직후인 1948년, 이주복 장로가 젖소 7마리와 말 2마리를 이끌고 시작한 작은 목장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판잣집 형태의 임시 건물에서 젖을 짜고, 말 두 마리가 끄는 역마차로 시내 주택가까지 우유를 배달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젖소들을 몰고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전후 복구기인 1953년, 현재 학생회관 동편에 35평 규모의 콘크리트 목장 건물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우유 생산이 본격화됐다. 이어 1955년 10월에는 1층 91평, 2층 45평 규모의 철근 블록 건물을 추가로 건립하며 낙농업의 기틀을 다졌다.

1963년에 목장 옆에 세워진 사일로(Silo, 목초 저장용 원탑형 창고)는 이 시기 목장의 흔적을 증명하는 유일한 건축물로 현재까지 캠퍼스에 남아 있다. 1993년 목장이 철거될 때에도 옛터의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 홀로 보존됐다. 한때 동아리방이나 아트앤디자인학과 학생작품 전시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비어있다.

▲ 1960년대 초 삼육동 목장 전경. 전후 복구기에 세워진 콘크리트 목장 건물과 사일로 주변으로 젖소들이 서 있다. 젖소 7마리로 시작한 작은 목장은 이 시기를 거치며 본격적인 낙농업의 기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 1964년 우유 가공 생산 현장. 우유 처리 기계로 유리병에 우유를 위생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 1965년 지게에 우유병을 얹고 배달에 나선 학생의 모습. 당시 학생들은 직접 젖을 짜고 시내까지 우유를 배달하는 노작(勞作) 활동을 통해 학비를 충당했다.
▲ 사일로 공사 모습. 1963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젖소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온 선교사

미미했던 목장 사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960년 실업부 책임자로 부임한 조지 S. 헤일리(George S. Haley, 한국이름 하정식)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주한미군 제1의무단 소속 병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전역 후 삼육동에 남아 낙농산업의 기반을 닦았다.

삼육동 우유가 청정 제품으로 입소문을 타며 수요가 급증하자, 헤일리 선생은 시설 확충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1963년 안식년으로 미국에 머물던 때 직접 모금한 자금으로 20마리의 젖소를 구입해 화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전국에 젖소가 고작 2천 마리밖에 없던 시기였다. 미국의 유명 식품기업으로부터 우유 처리 기계를 무상으로 지원받기도 했다.

1970년대 초 한국 정부의 유제품 소비 촉진 정책은 사업 확장의 큰 호재였다. 헤일리 선생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1973년 미국에서 60마리의 젖소를 더 들여왔다. 이어 1974년부터 미국 전역에서 ‘삼육대를 위한 젖소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했고, 큰 호응을 얻어 상당한 기부금을 모금했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1977년에는 120마리의 젖소를 추가로 구입해 두 차례에 걸쳐 항공편으로 한국에 들여왔다.

▲ 1963년, 1차 젖소 수입 당시 화물선에 설치된 이송용 임시 축사 모습. 헤일리 선생은 미국에서 젖소 20마리를 실은 후 3주간 젖소들과 같이 생활하며 태평양을 건너 부산항에 상륙했다. 부산항에서의 16일간 검역 중 송아지 한 마리를 순산하는 경사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젖소 21마리는 철도를 통해 태릉역으로 이송돼 삼육동에 안착했다.
▲ 태평양을 건너온 젖소 하역 현장. 1960년대 초반 척박했던 삼육동 낙농업의 첫 도약을 이끈 역사적 장면이다.
▲ 젖소 수송 작전. 헤일리 선생이 모금한 기금을 통해 구입한 젖소들이 대한항공(KAL) 화물기에서 내려 수송 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1972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 젖소 수송 작전. 미국에서 들여온 젖소들을 실은 트럭 행렬이 삼육동 캠퍼스로 향하고 있다. 트럭 옆에서 현장을 직접 지휘하며 걸어오는 인물이 헤일리 선생이다.

철저한 위생 관리로 생산된 우유는 미국 대사관 직원 가족과 시내 유지들에게 납품될 만큼 최고급으로 인정받았다. 일일 우유 생산량은 1960년대 초 300쿼트(약 350리터)에서 1980년대 초 5만kg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공로로 1978년 헤일리 선생은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수훈했다.

대학 성장의 젖줄 ‘유가공실습장’

우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를 수용할 대규모 첨단 공장이 절실해졌다. 이에 대학은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과 도서관 등 핵심 시설을 건립한 직후, 강의동 신축보다 먼저 유가공 공장 건립에 착수했다. 우유공장 시설을 확충한 후 더 많은 수익을 얻어 대학 확장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을 설치하고자 했던 것이다. 1984년, 총공사비 3억8천여만원을 투입해 연면적 1천779㎡(약 538평)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인 ‘유가공실습장’을 완공했다.

▲ 1984년 준공 직후로 추정되는 유가공실습장 전경.
▲ 유가공실습장 내부 생산 라인 모습. 높은 층고와 첨단 처리 설비를 갖춘 공장 내부에서 흰 가운을 입은 관계자들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1980~90년대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삼육대학식품의 유제품 라인업. 대표 제품인 삼육우유를 비롯해 초콜렛우유, 드링크 요구르트, 아마라스,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곳은 낙농과(현 동물자원과학과) 학생들의 실험실습장이자 대학의 재정을 책임지는 핵심 공장이었다. 우유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제품, 아이스크림 등을 생산했다. 유가공실습장에서 창출된 막대한 수익금은 1980년대 삼육대의 주요 교육 시설들을 확장하고 종합대학 체제를 구축하는 절대적인 자양분이 됐다.

사업 규모가 비대해지자 삼육대학우유는 1987년 실업부에서 분리되어 ‘대학식품’이라는 별도 사업체로 개편됐다. 1989년에는 강원도 홍천에 22만평 규모의 제3농장을 매입하며 최전성기를 누렸다. 1993년에 이르러서는 연 매출 80억원, 직원 100여명을 거느린 완전한 독립 전문기관으로 거듭났다.

대학우유, 역사의 뒤안길로

그러나 전성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파스퇴르우유 등 신생 업체의 등장으로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고, 당시 사회 전반에 확산된 새로운 건강 식생활 신드롬이 유제품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며 타격을 입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경영난은 가중됐고, 1998년 다시 대학 부속기관으로 귀속시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 2000년 전후 삼육대학식품(유가공실습장) 전경. 건물 입구 현판을 자세히 확대해 보면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던 당시 임직원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2004년 2월 26일, 종무예배를 끝으로 생산 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하며 대학식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대극 당시 총장이 “반세기 동안 대학 재정을 크게 돕던 기관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데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결정했다”고 술회할 만큼 대학 전체에 뼈아픈 결정이었다.

가동을 멈춘 유가공실습장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2005년 3월부터 ‘다니엘관’으로 명명됐다. 관학 협력 사업인 ‘노원 어린이 영어교실’의 전용 강의실이자 재학생들의 실용영어(현 글로컬영어) 교육 장소로 활용되며 새로운 교육의 산실로 기능했다.

이후 대학의 종합 교육연구단지 조성 사업에 따라 다니엘관(구 유가공실습장)은 철거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그 터 위에는 삼육대 역사상 최대 규모(연면적 1만5천724㎡)의 건축물인 ‘미래관(현 다니엘-요한관)’이 2012년에 새롭게 지어지며 캠퍼스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 옛 유가공실습장 터에 세워진 ‘다니엘-요한관’ 전경.

50여 년 전 젖소 7마리로 출발해 캠퍼스 확장의 절대적인 자양분을 공급했던 목장과 유가공실습장. 비록 그 물리적 형체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졌지만, 척박한 대학의 자립을 이끌어낸 역사만큼은 오늘날 삼육동의 번영을 떠받치는 ‘공간의 기억’으로 간직돼 있다.

글·구성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공동기획 최환철(박물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시리즈 연재]
[공간의 기억] ① 삼육동 최초의 건물 ‘실업관’
[공간의 기억] ② 삼육동의 심장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공간의 기억] ③ 폐철근으로 세운 자립의 뼈대 ‘엘리야관’
[공간의 기억] ④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사택’
[공간의 기억] ⑤ 제임스 리 선교사의 유산 ‘제명호’
[공간의 기억] ⑥ 확장의 신호탄 ‘사무엘관’
[공간의 기억] ⑦ 영성과 문화의 요람 ‘소강당’
[공간의 기억] ⑧ 삼육교육의 젖줄 ‘유가공실습장’
[공간의 기억] ⑨ 지성의 전당 ‘중앙도서관’
[공간의 기억] ⑩ ‘백주년기념관’ 세 축이 교차하는 제2세기 상징

[테마캠퍼스] 삼육대 개교 120주년… AI·공간 혁신으로 미래 100년 연다

한국대학신문 테마캠퍼스 특집
1906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 ‘의명학교’ 계승
지하캠퍼스 조성 ‘SU-RISE 프로젝트’ 가동
수시 역대 최고 경쟁률… 장학금·해외취업 1위 달성

삼육대가 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삼육대의 역사는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다. 구한말 국운이 기울어 가던 1906년 10월 10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금의 평양 순안국제공항 부지에 설립한 ‘의명학교(義明學校)’를 모태로 첫발을 내디딘 이래, 삼육대는 120년간 민족 계몽과 교육 근대화의 선봉에 서 왔다. ‘의명’은 성경 속 ‘의로운 해(태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삼육교육의 기독교적 사명과 이상을 가리킨다.

삼육대의 역사는 한국 고등교육사에서 ‘최초’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일인일기(一人一技) 기술 교육을 최초로 시작했으며, 남녀공학, 생활관 제도, 농촌계몽 및 봉사활동, 계절학기, 전일(全日)제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등 한국 교육 근대화의 효시가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 조치를 당하고, 학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최태현 목사가 일제의 고문으로 순교하는 등 뼈아픈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후 1949년 옛 황실 소유였던 현 위치(서울 노원구 화랑로)로 터전을 옮기며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고, 1961년 정규 4년제 대학 승격을 거쳐 1992년 종합대학으로 개편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120년 유산 현대적 재해석

삼육대는 최근 개교 120주년 기념 슬로건과 엠블럼을 공개했다. 새 슬로건은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다. 기존 대학 슬로건인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학’을 더욱 간결하고 직관적인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삼육대만의 본질적인 교육 가치와 비전을 명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함께 공개된 120주년 기념 엠블럼은 ‘Legacy to Future(120년의 유산을 이어 미래로)’를 콘셉트로 제작됐다. 굳건하고 곧게 뻗은 숫자 ‘1’은 지난 120년의 탄탄한 역사적 기반을 상징한다. 아울러 숫자 ‘1, 2, 0’을 입체적으로 배열해 영성·지성·신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인적 삼육교육의 균형과 열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SU-RISE 프로젝트’ 지하 혁신클러스터… 미래 캠퍼스 실현

삼육대는 개교 120주년을 기점으로 캠퍼스의 물리적 공간과 학생 경험을 혁신하는 ‘SU-RIS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대규모 지하 혁신클러스터 구축이다. 한정된 지상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요 교육 및 복합 시설을 지하화하고, 지상 공간은 전통과 혁신,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살아있는 학생 경험 중심의 지속가능 캠퍼스로 조성한다.

이를 위해 삼육대는 각계 전문가 100인으로 구성된 ‘SU-RISE 대학발전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회는 300억원 규모의 ‘개교 120주년 감동 기부 릴레이 캠페인’을 전개하며 프로젝트의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제해종 총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삼육대가 120년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 정의했다.

대학혁신지원사업 S등급… AI 기반 ‘학생 성공’ 대학

교육 혁신 부문에서도 확고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삼육대는 교육부 주관 ‘2025학년도 대학혁신지원사업’ 성과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S등급을 획득했다.

혁신의 핵심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다. 자체 구축한 학습 지원 플랫폼 ‘SU-LEAP’은 학생의 학습 이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맞춤형 진로를 추천하며, 위기 학생 조기 개입 시스템인 ‘SU-KEEPER’를 통해 중도 탈락을 방지하는 ‘초개인화 관리 체계’를 가동 중이다. 다전공 제도 확대와 ‘SUPREME 학기제’ 도입으로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극대화했다.

첨단 산업 인재 양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지능융합학부와 데이터클라우드공학과를 신설해 AI, 클라우드, 반도체 분야의 실무형 인재를 육성한다.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융합형 리더’ 배출을 목표로 한다.

지표가 증명하는 경쟁력 ‘장학금·해외취업·입시’

삼육대의 전방위적 혁신은 수치로 나타나는 압도적인 성과로 증명된다.

삼육대는 지난해 서울권 대학 가운데 ‘재학생 1인당 장학금’ 최상위를 기록했다.(2025년 8월 대학정보공시 결과) 2019년부터 6년 연속 1위다. 2024년 재학생 1인당 장학금은 430만 9590원으로, 연평균 등록금의 절반 이상이 학생들에게 환원되고 있다. ‘MVP 장학금’과 ‘나눔 장학금’ 등 60여 종에 달하는 촘촘한 장학제도가 학생들의 든든한 학업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취업 시장에서의 성과도 독보적이다. 해외취업률은 5년 연속 수도권 대학 1위를 달성했다.(2025년 대학정보공시 결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해외취업연수사업(신청해진대학)을 통해 해외기업 수요에 맞춘 600시간의 집중 연수를 제공한다. 어학 및 직무 교육부터 취업 알선, 현지 정착까지 지원하는 종합 과정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166명의 수료생이 미국과 캐나다 현지 기업에 취업하는 성과를 거뒀다.

입시 경쟁률은 개교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전체 경쟁률 19.09대 1을 기록, 직전 최고치였던 2024학년도의 16.65대 1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보건계열의 강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논술전형 간호학과는 132.67대 1이라는 ‘초고(超高)’ 경쟁률을 기록하며 수험생들의 높은 선호도를 입증했다.

제해종 총장은 “우리 대학은 선교사들의 헌신 위에 세워졌고, 수많은 선배들의 기도와 눈물, 희생이 더해져 오늘에 이르렀다”며 “지난 120년이 시대를 밝히는 ‘의로운 해’로서의 사명을 다해온 여정이었다면, 이제는 물리적 공간의 혁신과 AI 기반의 교육 대전환을 통해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람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우리의 다짐은 삼육동 캠퍼스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래 인재들의 발걸음을 통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92598

이틀 걸리던 온라인 강의 제작, 단 30분 만에

AI 원스톱 강의 제작 시스템
‘풀 프로세스 AI 러닝’

▲ ‘풀 프로세스 AI 러닝’ 시스템을 통해 생성된 AI 강의 화면. 디자인 특화 생성형 AI가 만든 슬라이드(왼쪽)와 교수자의 목소리·표정을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 아바타’(오른쪽)가 결합돼 자연스러운 강의 영상을 구현한다.

꼬박 이틀 걸리던 온라인 강의 영상 1편 제작 시간이 단 30분으로 단축됐다. 교수가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장시간 촬영을 하거나 복잡한 편집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삼육대 교육혁신원(원장 이승원) 원격교육지원센터는 AI(인공지능) 기반 미래형 강의 제작 사업인 ‘풀 프로세스 AI 러닝(Full-Process AI Learning)’을 본격 도입한다고 밝혔다. 교수자의 강의 준비와 촬영 부담을 최소화하고, 플립드러닝 등 혁신적인 교육 모델 확산을 지원하기 위한 원스톱 시스템이다.

‘풀 프로세스 AI 러닝’은 교수의 기존 강의 자료를 AI가 스크립트, 슬라이드, 아바타 영상으로 자동 변환해 최종 영상으로 완성하는 사업이다. 별도의 대면 촬영이나 복잡한 편집 없이 일관된 고품질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은 교수자의 수고를 대폭 덜어준다. 교수의 역할은 교안이나 강의 자료를 제출하고 결과물을 검수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디지털 트윈 아바타’ 구축을 위해 최초 1회 지원 부서에 방문해 약 2분간 음성 녹음과 영상 촬영을 하는 것이 전부다. 이후에는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도 지속적인 강의 영상 제작이 가능하다.

▲ 교육혁신원 이승원 원장이 크로마키 스튜디오에서 ‘풀 프로세스 AI 러닝’ 시스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제작 공정은 최신 AI 기술을 조합한 통합 워크플로우로 진행된다. 각 공정별 최적의 AI 도구를 선정해 효율성과 정확도를 극대화했다.

먼저, 정보 왜곡(환각 현상)이 없는 폐쇄형 언어모델 AI를 활용해 제출된 자료 내에서만 정확도 높은 스크립트를 추출한다. 이어 디자인 특화 생성형 AI로 1분 내외에 최적화된 디자인의 강의 슬라이드를 자동 생성한다.

스크립트와 슬라이드가 준비되면 보이스 클로닝(음성 복제) 기술로 기계음이 아닌 교수자의 고유 억양과 숨소리까지 정밀하게 복제한 더빙 음성을 만든다. 이를 사전 구축한 교수자 아바타에 삽입해 자연스러운 표정과 립싱크가 적용된 영상을 구현한다. 향후 175개국 다국어 변환도 지원할 예정이다.

(아래는 실제 AI 기술로 제작된 ‘풀 프로세스 AI 러닝’ 파일럿 강의 영상)

끝으로 전문 편집자의 최종 검수와 통합 편집을 거쳐 강의 영상을 완성한다. 교육혁신원 정채은 담당은 “기존에는 25분 분량 강의 1차시 제작에 이틀이 소요됐으나, 이번 프로세스 도입으로 전체 과정을 30분 이내로 압축했다”고 설명했다.

삼육대는 무분별한 AI 활용을 경계하고 교육적 본질을 지키기 위한 명확한 윤리적 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정규 온라인 과목 대체용이 아닌, 오프라인 수업 효율을 높이는 플립드러닝 강좌(온라인 선행학습 뒤 토론식 오프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역진행 수업)와 반복적인 비교과 사전 교육 영상 제작 등에 한정해 지원된다.

앞서 교육혁신원은 이승원 원장(물리치료학과 교수) 주도로 전공 교과 플립드러닝에 파일럿 운영을 성공적으로 마쳐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기존 방식 대비 장점을 검증했다.

이승원 원장은 “바쁜 일정으로 영상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교수진을 지원해 이들이 연구와 학생 지도, 대면 수업 준비 등 교육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라며 “앞으로도 에듀테크를 적극 활용한 미래형 교육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대학 교육 혁신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조선일보 https://news.chosun.com/pan/site/data/html_dir/2026/07/15/2026071501248.html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5290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716_0003711528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94798
대학저널 https://dhnews.co.kr/news/view/1065577155946296
베리타스알파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619348
에듀동아 https://edu.donga.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982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39&item=&no=39840
와이드경제 https://www.wide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669
매일일보 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391955
한국NGO신문 https://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32992
스마트경제 https://www.dailysm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907
팝콘뉴스 https://www.popcorn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26659
아시아타임즈 https://www.asiatime.co.kr/article/20260715500375

[공간의 기억] ⑦ 영성과 문화의 요람 ‘소강당’

전후 척박한 캠퍼스에 세워진 첫 집회 공간

▲ 1955년 건립돼 1993년 철거 전까지 대학 영성과 문화의 요람이었던 소강당 전경. 전후 척박했던 캠퍼스에 세워진 첫 대형 집회 공간이다. 사진 왼쪽 뒤로 보이는 사무엘관의 우측 날개 앞부분에 자리했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950년대 중반, 삼육신학원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1954년 7월 20일 문교부로부터 4년제 각종학교 인가를 획득하며 본격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 인가 조건에는 2년 이내에 교사, 실습지, 공장, 기숙사 등 교육 시설을 완비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었다. 대학의 근대화를 이끌던 도널드 리(Donald S. Lee, 한국이름 이단열) 교장은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본격적인 삼육동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이 시기 캠퍼스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전체 구성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집회 공간의 확보였다. 한국전쟁 직후 척박한 삼육동으로 돌아온 학생과 교직원들은 실업관 서편의 파괴된 목공장을 임시 예배당 겸 강당으로 수리해 사용하고 있었다. 대학 규모가 점차 성장함에 따라, 보다 체계적이고 온전한 형태의 강당 건축이 추진됐다.

1955년 10월 준공된 강당(훗날 소강당)은 삼육동의 여느 초기 건물과 마찬가지로 당시 실업부 책임자였던 미첼(Kenneth L. Mitchell, 한국이름 민제일) 선교사가 설계하고, 이주복, 박수산 등 직원이 시공을 맡았다. 연건평 94평(310㎡) 규모의 목조 슬레이트 단층 건물로, 훗날 세워진 사무엘관 우측 날개 앞부분을 가리는 위치에 자리했다. 최종 완공을 앞둔 1955년 7월, 이 신축 강당에서 졸업식이 먼저 치러지기도 했다.

▲ 소강당 전면부 입구의 변천사. (위) 정면 중앙 창문을 중심으로 양옆에 나무 벽을 세웠던 초창기 외관. (아래) 훗날 이 전면부에 돌을 덧붙여 세 줄의 긴 창문 형상으로 개축한 모습. 지·영·체(智·靈·體) 삼육 교육 이념을 상징한 설계다.

건축 초창기 강당 외관은 정면 중앙 창문을 중심으로 양옆에 나무 벽을 세운 형태였다. 이는 지·영·체(智·靈·體) 삼육(三育) 교육 이념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설계였다. 훗날 이 전면부에 돌을 덧붙여 창문이 세 줄로 길게 이어지는 형상을 띠게 되면서, 시각적으로도 보다 웅장한 외관을 갖추게 됐다. 내부 바닥은 시멘트로 마감됐고, 미군이 기증한 철제 접이식 의자가 놓였다. 특히 강당 건물 뒤편 한 칸을 막아 복도를 내고 도서관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현재 삼육대 도서관의 효시가 됐다.

강당 입구 왼편에는 높이 5m의 목조 ‘종각’이 세워져 있었다. 명칭과 달리 실제 종은 없었고, 상단에 서치라이트와 대형 스피커가 설치된 형태였다. 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캠퍼스의 정서를 풍요롭게 했고, 서치라이트 불빛이 켜진 강당 앞 잔디밭은 야간 명상과 소모임, 각종 종교행사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종각은 1977년경 철거됐다.

▲ 소강당 입구 왼편에 세워졌던 목조 종각과 당시 삼육 공동체. 종 대신 설치된 나팔 모양의 대형 스피커와 서치라이트가 선명하게 포착됐다. 사진 맨 왼쪽 도널드 리 교장이 함께 자리한 것으로 보아, 1950년대 후반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당은 1972년 엘리야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대학 영성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1958년부터 11년간 신학과 교수로 재직한 존스턴(Robert M. Johnston) 목사는 회고록에서 “당시 200~300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은 매주 몇 번씩 캠퍼스 내 가장 큰 건물이었던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강한 영적 분위기 속에서 공동의 이상과 문화, 생활방식을 나누었다”고 회고했다.

이곳에서는 예배뿐만 아니라 입학식, 졸업식, 축제, 환영회, 송별회, 그리고 결혼식까지 캠퍼스의 주요 행사가 끊임없이 열렸다. 1961년 5월 8일에는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사상 최초로 학생회장단을 선출하는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1980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이 완공되면서, 이 건물은 ‘소강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그 역할을 일부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소강당은 각종 세미나와 강좌, 소규모 집회 장소로 활용되며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 1960년대 강당 내부에서 열린 집회 모습. 1980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완공 전까지 이곳은 대학 영성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두 사진 모두 저해상도 원본을 AI툴로 업스케일링했다.

1993년 선교90주년기념관(다목적관)과 대학교회 신축이 추진되면서 소강당은 철거 수순을 밟았다. 철거 당시 건물에 깃든 역사성과 동문들의 향수를 고려해, 캠퍼스 내 다른 공간으로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하자는 계획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비록 끝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으나, 이러한 기록은 소강당이라는 공간이 당시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각별한 의미를 지녔는지 짐작게 한다.

물리적 공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전후 척박했던 삼육동에 굳건한 영적 구심점이 되어준 소강당의 기억은 여전히 오랜 동문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글·구성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공동기획 최환철(박물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시리즈 연재]
[공간의 기억] ① 삼육동 최초의 건물 ‘실업관’
[공간의 기억] ② 삼육동의 심장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공간의 기억] ③ 폐철근으로 세운 자립의 뼈대 ‘엘리야관’
[공간의 기억] ④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사택’
[공간의 기억] ⑤ 제임스 리 선교사의 유산 ‘제명호’
[공간의 기억] ⑥ 확장의 신호탄 ‘사무엘관’
[공간의 기억] ⑦ 영성과 문화의 요람 ‘소강당’
[공간의 기억] ⑧ 삼육교육의 젖줄 ‘유가공실습장’
[공간의 기억] ⑨ 지성의 전당 ‘중앙도서관’
[공간의 기억] ⑩ ‘백주년기념관’ 세 축이 교차하는 제2세기 상징

[공간의 기억] ⑥ 확장의 신호탄 ‘사무엘관’

그린벨트 빗장 풀고 우뚝 선 랜드마크

▲ 1978년 준공 이후 캠퍼스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사무엘관 전경. 중앙의 웅장한 현관과 대칭형 구조, 앞마당의 넓은 잔디밭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은 오랫동안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199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975년 위생간호전문학교가 대학 편제 안으로 들어오면서 재학생 수는 500명을 넘어섰다. 당시 시설은 300명 안팎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었기에, 교실과 실습 기자재 등 전반적인 교육 환경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강의 공간의 부족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대학은 즉각 교실 신축을 계획했으나 거대한 제약에 맞닥뜨렸다. 부지 전체가 1971년 도입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제도였으나, 성장을 거듭하던 대학에는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한국삼육중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전 교무처장 김홍량 교수(훗날 제7대 총장)를 총무처장으로 영입하며 건축 문제 해결의 전권을 맡겼다. 김홍량 처장은 관계 기관을 설득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78년 5월, 건설부 관보에 ‘삼육대학에 대학시설 용지 지정고시’ 승인이 게재되며 숙원이 풀렸다. 이어 10월에는 총 2만여 평(6만 6813㎡) 부지에 대한 학교용지 지목변경 승인을 확보했다. 이로써 강의동을 비롯해 기숙사, 학생회관, 교수회관, 정문, 수위실 등의 건축 승인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 시설 용지 위에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 바로 강의동, ‘사무엘관’이었다.

▲ 북교사(앞) 뒤편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사무엘관(뒤) 모습. 단층의 옛 교사와 대학 확장의 상징인 신축 건물이 일정 기간 공존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주는 귀중한 사료다.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의 모습이 정겹다.

지정고시 승인이 확인되자 대학은 곧바로 건축 허가를 신청했고, 20여 일 만에 최종 승인을 받았다. 옛 북교사를 헐어낸 자리에 터를 잡은 사무엘관은 1978년 5월 24일 정오, 마침내 신축 교사 기공식을 거행하며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갔다.

공사는 영선부 정광석 장로의 감독 아래 대학이 직영으로 진행했다. 이를 통해 건축 비용을 크게 절감하며 같은 해 12월 14일 준공을 마쳤다. 총 연면적 1643.55㎡(약 500평) 규모로, 당시 2억 2500만원의 건축비가 투입됐다.

사무엘관은 준공 직후 단연 대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엘리야관과 마찬가지로 미국 앤드류스 대학교 행정관을 모티브로 설계돼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자랑했다. 중앙의 웅장한 현관을 중심으로 양옆이 대칭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조는 앞마당의 넓은 잔디밭과 어우러져 시원하고 수려한 경관을 연출했다.

▲ 1970년대 사무엘관 앞 풍경. 계단을 올라 건물로 향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당시 캠퍼스의 활기찬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우측에 보이는 건물은 당시 주요 집회 공간이었던 ‘소강당’으로 현재는 철거돼 사라졌으며, 추후 본 시리즈를 통해 별도의 편으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사진은 저해상도 원본을 AI 기술로 업스케일링했다.

사무엘관의 탄생은 대학의 위상을 크게 높여줬다. 특히 이 신축 건물에 대한 자부심은 대학을 넘어 교단 차원에서도 남달랐던 듯하다. 건물이 완공될 즈음, 당시 한국연합회장이자 대학 이사장이었던 유형환 목사는 ‘교회지남’(1978년 10월호) 권두언을 통해 “이제껏 가진 것 가운데 가장 현대적이고 우람한 건물이 준공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종화 학장 역시 같은 지면에 “가장 크고 능률적인 시설을 갖춘 교사가 신축 중”임을 강조하며 대학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사무엘관은 1970년대 후반 대학이 맞이한 본격적인 성장과 확장의 신호탄이었다. 이 건물의 성공적인 준공은 이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현대식 기숙사, 실험실, 식품공장, 도서관 등 주요 시설들이 연이어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역사가들은 1978년 말 사무엘관 완공을 기점으로 삼육대학이 본격적인 확장의 시기에 돌입했다고 평가한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캠퍼스를 지키고 있는 사무엘관의 모습. 과거 캠퍼스의 중심축이자 대학의 얼굴이었던 이국적인 대칭형 외관은 현재까지도 그 위용을 자랑하며 ‘공간의 기억’을 대변하고 있다.

글·구성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공동기획 최환철(박물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시리즈 연재]
[공간의 기억] ① 삼육동 최초의 건물 ‘실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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