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공간의 기억] ⑤ 미군 불도저로 일군 인공 저수지 ‘제명호’

2026.05.29 조회수 291 커뮤니케이션팀

제임스 리 선교사가 남긴 유산

▲ 1957년 제명호 전경. 제임스 리 선교사가 미군의 불도저와 장비를 동원해 일군 인공 저수지로, 전후 삼육동의 자급과 농업 재건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유산이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당초 이 시리즈의 연재 대상은 건축물로 한정했다. 그러나 제명호가 삼육동 역사에서 지니는 ‘공간의 기억’은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더욱이 제명호는 자연 발생한 웅덩이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 아래 설계되고 축조된 인공호수. 흙과 물로 지어 올린 거대한 건축물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제명호’라는 이름은 제임스 리(James Milton Lee) 선교사의 한국이름 ‘이제명’에서 비롯됐다. 그는 부친 하워드 리(Howard M. Lee, 이희만) 목사가 순안 의명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1912년 출생해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47년 선교사로 다시 내한해 현 삼육동 캠퍼스의 기틀을 닦았다.

1948년 태릉 부지 약 175에이커(약 22만㎡)를 매입해 삼육동 시대를 연 그는, 6.25 전쟁 발발 후 제주도 피난 학교를 거쳐 1951년 다시 태릉으로 돌아왔다. 이후 삼육신학원 초대 원장을 맡아 전후 복구와 교육 사업 재건에 헌신했다.

▲ 한국어 성경을 들고 있는 제임스 리(이제명) 선교사. 삼육신학원 초대 원장으로서 전후 복구와 캠퍼스 재건을 이끈 그는 능란한 외교력과 헌신으로 미군의 물자와 장비를 확보하며 오늘날 삼육동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능란한 외교력을 발휘해 미군의 물자와 장비를 학교 재건에 적극 활용했다. 미군이 철수하던 시기, 이른 아침부터 직접 트럭을 몰고 군부대를 오가며 건축 자재부터 책걸상, 심지어 식기까지 학교 운영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수집했다. 당시 엘리야관 앞길에는 그가 수집한 건자재가 높이 쌓여 있었는데, 이는 대학의 건축과 농장 운영, 조경 등에 요긴하게 쓰였다.

전쟁 직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 대학이 자급하기 위해 농장과 원예 시설을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가뭄 때마다 물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제임스 리 원장은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위한 대형 저수지 조성을 계획하고, 원래 산딸기 밭이었던 산자락 계곡을 적합지로 물색했다.

본격적인 공사는 1953년에 시작됐다. 휴전협정으로 미군 공병부대가 휴식기에 들어간 상황을 파악한 그는 미8군을 찾아가 댐 건설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장비 지원을 이끌어 냈다.

그의 회고록에는 공사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다. 붉은 깃발로 호수와 댐의 위치를 표시하고 나무를 베어내 평탄화 작업을 마친 뒤, 댐이 지어질 도랑에 20피트 길이의 대형 배수관 2개를 묻어 수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사전 작업이 끝나자 미군이 지원한 불도저 4대가 투입돼 계곡의 흙을 밀어냈고, 불과 1주일여 만에 거대한 저수지의 윤곽이 드러났다.

▲ 1953년 제명호 축조 당시 공사 현장. 미8군 공병부대 불도저가 투입돼 도랑에 대형 배수관을 묻고 있다. 제임스 리 원장의 자서전에 “카메라를 든 채 경이로운 마음으로 저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저해상도 원본을 AI 툴로 업스케일링했다.

고지대에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해 농지에 관개하는 시스템은 당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선진적인 시설이었다. 저수지의 완공은 삼육동 주민들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풍부한 농업용수 덕분에 다양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었고, 이는 미군 부대에 농작물을 납품하는 판로 개척으로 이어졌다.

활용은 농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겨울철 호수가 얼면 얼음을 잘라내 교내 저온창고로 운반해 천연 냉장고로 활용했다. 어린아이들은 얼어붙은 저수지 위에서 썰매를 탔다. 공사 과정에서 캠퍼스부터 저수지까지 넓은 길이 뚫리며 과거 좁은 오솔길에 의존하던 인근 불암산 마을 주민들의 통행 여건이 크게 개선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1953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갔던 제임스 리 원장이 이듬해 귀환했을 때, 계곡은 맑은 물이 찬 아름다운 호수가 되어 있었다. 대학 관계자들은 척박한 땅에 물길을 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호수에 그의 한국이름 이제명을 붙여 ‘제명호(濟明湖)’라 명명했다.

▲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날, 자연의 일부로 온전히 동화된 제명호 전경. 초기 농업용 저수지라는 목적을 다한 호수 주변은 현재 서어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날, 제명호는 농업용 저수지라는 초기 목적을 다하고 자연의 일부로 온전히 동화됐다. 호수 주변은 극상수종인 서어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태릉 백세문에서 삼육대까지 이어지는 3.7km 백세길 구간의 종착지로서 삼육동 구성원과 시민들의 훌륭한 안식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선교사로 헌신한 제임스 리는 미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에도 수시로 한국을 방문해 삼육대의 발전을 격려했다. 2006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자서전 ‘우리 나라, 우리 대학(Our Country, Our College)’을 출간해 대학에 헌정했다.

삼육대를 끝까지 사랑했던 그는 2013년 10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고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그가 생전 땀 흘려 일군 삼육동 땅에 산골(散骨)되었다. 삼육대는 그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같은 해 오얏봉 언덕 아래 기념비를 세웠다.

70여 년 전, 대학의 내일을 그리며 척박한 땅에 물을 댄 그의 땀방울은 잔잔한 수면 아래 깊이 스며들어, 변함없이 삼육동의 오늘을 적시고 있다.

▲ 훗날 삼육대를 다시 찾아 제명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제임스 리. 정확한 촬영 시기는 미상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의 천사가 나를 한 걸음씩 인도하여 그 호수를 만들게 했다. 회고해 보건대 댐 공사는 미군이 우리 대학에 남긴 가장 위대한 공헌 중 하나”라고 밝혔다. 제명호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2013년 6월 오얏봉 언덕 아래에 조성한 제임스 리 선교사 기념비. 이후 2019년 삼육교육의 선구자인 미미 샤펜버그 선교사, 윌리엄 스미스 목사의 기념비를 추가해 나란히 배치하면서, 지금은 세 명의 선교사를 함께 기리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사진으로 보는 제명호 ‘공간의 기억’

▲ 1953년 제명호 축조 당시 공사 현장. 미8군 공병부대로부터 지원받은 중장비가 투입돼 거대한 저수지의 윤곽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 1950년대 제명호에서 거행된 침례식.
▲ 1954년 2월, 꽁꽁 언 제명호 위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 1961년 겨울, 제명호 수면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 겨울철 호수가 얼면 얼음을 잘라내 교내 저온창고로 운반해 천연 냉장고로 활용했다.
▲ 1957년 촬영된 제명호 인근 항공 사진. 푸른 수면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당시 캠퍼스 인근 지형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대 제명호에서 거행된 침례식. 현재는 신학관 지하 침례예식장을 이용하지만, 당시에는 주로 제명호에서 침례식이 열렸다.
▲ 1990년대 제명호에 모여앉은 학생들. 학업 중 잠시 틈을 내 자연을 벗 삼아 대화를 나누고 낭만을 즐기던 그 시절 캠퍼스 라이프의 한 단면이다.
▲ 2021년 제명호 수변 데크에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시대가 바뀌어도 제명호는 여전히 삼육대 구성원들에게 변함없는 치유와 쉼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 2022년 1월, 꽁꽁 언 제명호에서 강북소방서 구조대원들이 빙상사고 수중 인명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매년 겨울마다 이곳에서 훈련을 한다.
▲ 드론으로 촬영한 제명호의 가을 전경.
▲ 오색 단풍으로 물든 제명호의 가을 풍경.
▲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머금은 제명호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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