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공간의 기억] ⑥ 확장의 신호탄 ‘사무엘관’

2026.06.22 조회수 152 커뮤니케이션팀

그린벨트 빗장 풀고 우뚝 선 랜드마크

▲ 1978년 준공 이후 캠퍼스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사무엘관 전경. 중앙의 웅장한 현관과 대칭형 구조, 앞마당의 넓은 잔디밭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은 오랫동안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199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975년 위생간호전문학교가 대학 편제 안으로 들어오면서 재학생 수는 500명을 넘어섰다. 당시 시설은 300명 안팎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었기에, 교실과 실습 기자재 등 전반적인 교육 환경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강의 공간의 부족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대학은 즉각 교실 신축을 계획했으나 거대한 제약에 맞닥뜨렸다. 부지 전체가 1971년 도입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제도였으나, 성장을 거듭하던 대학에는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한국삼육중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전 교무처장 김홍량 교수(훗날 제7대 총장)를 총무처장으로 영입하며 건축 문제 해결의 전권을 맡겼다. 김홍량 처장은 관계 기관을 설득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78년 5월, 건설부 관보에 ‘삼육대학에 대학시설 용지 지정고시’ 승인이 게재되며 숙원이 풀렸다. 이어 10월에는 총 2만여 평(6만 6813㎡) 부지에 대한 학교용지 지목변경 승인을 확보했다. 이로써 강의동을 비롯해 기숙사, 학생회관, 교수회관, 정문, 수위실 등의 건축 승인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 시설 용지 위에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 바로 강의동, ‘사무엘관’이었다.

▲ 북교사(앞) 뒤편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사무엘관(뒤) 모습. 단층의 옛 교사와 대학 확장의 상징인 신축 건물이 일정 기간 공존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주는 귀중한 사료다.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의 모습이 정겹다.

지정고시 승인이 확인되자 대학은 곧바로 건축 허가를 신청했고, 20여 일 만에 최종 승인을 받았다. 옛 북교사를 헐어낸 자리에 터를 잡은 사무엘관은 1978년 5월 24일 정오, 마침내 신축 교사 기공식을 거행하며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갔다.

공사는 영선부 정광석 장로의 감독 아래 대학이 직영으로 진행했다. 이를 통해 건축 비용을 크게 절감하며 같은 해 12월 14일 준공을 마쳤다. 총 연면적 1643.55㎡(약 500평) 규모로, 당시 2억 2500만원의 건축비가 투입됐다.

사무엘관은 준공 직후 단연 대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엘리야관과 마찬가지로 미국 앤드류스 대학교 행정관을 모티브로 설계돼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자랑했다. 중앙의 웅장한 현관을 중심으로 양옆이 대칭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조는 앞마당의 넓은 잔디밭과 어우러져 시원하고 수려한 경관을 연출했다.

▲ 1970년대 사무엘관 앞 풍경. 계단을 올라 건물로 향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당시 캠퍼스의 활기찬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우측에 보이는 건물은 당시 주요 집회 공간이었던 ‘소강당’으로 현재는 철거돼 사라졌으며, 추후 본 시리즈를 통해 별도의 편으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사진은 저해상도 원본을 AI 기술로 업스케일링했다.

사무엘관의 탄생은 대학의 위상을 크게 높여줬다. 특히 이 신축 건물에 대한 자부심은 대학을 넘어 교단 차원에서도 남달랐던 듯하다. 건물이 완공될 즈음, 당시 한국연합회장이자 대학 이사장이었던 유형환 목사는 ‘교회지남’(1978년 10월호) 권두언을 통해 “이제껏 가진 것 가운데 가장 현대적이고 우람한 건물이 준공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종화 학장 역시 같은 지면에 “가장 크고 능률적인 시설을 갖춘 교사가 신축 중”임을 강조하며 대학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사무엘관은 1970년대 후반 대학이 맞이한 본격적인 성장과 확장의 신호탄이었다. 이 건물의 성공적인 준공은 이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현대식 기숙사, 실험실, 식품공장, 도서관 등 주요 시설들이 연이어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역사가들은 1978년 말 사무엘관 완공을 기점으로 삼육대학이 본격적인 확장의 시기에 돌입했다고 평가한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캠퍼스를 지키고 있는 사무엘관의 모습. 과거 캠퍼스의 중심축이자 대학의 얼굴이었던 이국적인 대칭형 외관은 현재까지도 그 위용을 자랑하며 ‘공간의 기억’을 대변하고 있다.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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