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공간의 기억] ⑨ 지성의 전당 ‘중앙도서관’

2026.09.09 조회수 45 커뮤니케이션팀

80년대 캠퍼스 확장의 중심축… 미래 캠퍼스 거점으로

▲ 1984년 준공된 중앙도서관 전경. 사진은 199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1980년대 초반, 삼육대는 본격적인 확장의 시대를 맞이했다. 유가공실습장, 학생회관, 강의동(현 에스라관), 과학관(현 제1과학관), 행정관(현 아트앤디자인관) 등 대규모 교육 시설이 연이어 들어서는 광범위한 건축 사업이 전개됐다. 그 거대한 캠퍼스 확장의 한가운데, 대학의 심장이자 학문의 중추로서 심혈을 기울여 세워진 건물이 바로 ‘중앙도서관’이다.

대학은 1962년 건축한 2층 규모(약 160평)의 도서관을 20년 넘게 사용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학생 수와 학과가 급증하면서 기존 도서관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장서 확충과 기계화된 도서 정리 시스템, 절대적인 열람실 공간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1980년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건축을 완료한 대학 행정부는 곧바로 중앙도서관 신축에 역량을 집중했다. 앞서 지어진 선교70주년기념관이 지·영·체(智·靈·體) 삼육 교육 중 ‘영성’의 구심점이었다면, 중앙도서관은 ‘지성’의 심장부를 상징했다. 1983년 6월 14일 건축 허가를 받아 8월 23일 기공식을 거행하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딸기밭 늪지 위에 세운 ‘지성의 전당’

도서관이 들어설 부지는 원래 딸기와 채소를 재배하던 밭으로, 지반에 물이 많은 늪지 형태였다. 공사 관계자들은 튼튼한 기둥을 깊이 박고 기초를 다지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설계는 안문효 건축가가 맡았다.

11개월의 공사 끝에 1984년 7월 25일, 총공사비 13억1천539만원이 투입된 중앙도서관이 완공됐다. 철근 콘크리트조 슬라브 구조의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연면적은 6천25.20㎡(약 1천825평)에 달했다. 개관 당시 지하는 열람실 및 자료보관실, 1층은 대출대와 자유열람실, 2층은 서고 열람실, 3층은 참고 열람실로 구성됐다. 1980년대 당시 단과대학 규모에서는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최고 수준의 인프라였다.

▲ 1984년 7월 25일 열린 중앙도서관 준공식에서 학교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준공 당시에는 입구 전면에 유리 커튼월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다.

외형적 공간이 확보되자 장서 확충과 내실 다지기에도 한층 속도가 붙었다. 1984년 개관 당시 5만1천여권이던 장서는 1987년 8만권을 넘어섰고, 개교 90주년인 1996년에는 16만권에 도달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은 외부의 객관적 평가로 입증됐다. 1994년 중앙일보가 실시한 ‘대학순위평가’에서 삼육대는 교육여건 부문 종합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도서관 지표에서 학생 1인당 열람석 수 1위, 도서 구입비 5위, 장서 수 6위를 기록하며 신흥 명문으로 도약하는 대학의 위상을 실증했다.

‘최태현 기념도서관’ 명명

도서관 역사에서 1996년 10월 10일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개교 90주년을 맞아 중앙도서관을 ‘최태현 목사 기념도서관’으로 명명하는 행사가 거행됐다.

최태현 목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철수한 1940년대, 최초의 한국인 조선합회장으로서 교단을 이끄는 한편, 삼육대의 전신인 사역자 양성소 교장으로서 대학의 명맥을 함께 지탱했다.

그는 1943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종교 탄압에 항거하다 종로경찰서에 구인됐고, 118일간 이어진 혹독한 고문 끝에 5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며 한국 재림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됐다. 당시 일제는 교단과 대학의 최고 영수(領袖)인 그를 굴복시키려 했으나, 그는 “이 생명은 가볍게 보이고 영생은 가깝게 보여 고난을 달갑게 받는다”는 옥중서신을 남기며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

삼육대는 민족 구원과 신앙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최태현 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학의 심장인 도서관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이날 명명식에는 고인의 아들인 최희만 장로가 유족 대표로 참석해 그 역사적 무게를 더했다.

▲ 최태현 목사

‘침묵의 서고’에서 ‘소통과 융합의 장’으로

한편 도서관의 내부 구조와 시스템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했다. 1994년에는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1~3층에 분산됐던 자료실과 열람실을 통합 배치하고, 2층에 시청각 및 음악자료실인 T.M.C.(The Media Center)를 개관하며 미디어 센터로서의 기능을 추가했다. 이어 1996년 인터넷센터 개관, 1997년 바코드 기반의 대출 자동화 및 ID카드(학생증) 도입을 통해 도서관 출입과 관리의 전면적인 전산화를 이뤄냈다.

2010년대 이후의 변화는 ‘소통’ 중심의 공간 혁신으로 요약된다. 과거 도서관이 ‘침묵 속에서 책을 읽는 독서실’이었다면, 현재는 ‘소통하고 협력하는 융합의 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2017년 북오픈스튜디오 개관을 시작으로, 2019년과 2023년에 걸쳐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단행됐다.

1층 로비와 열람실은 칸막이를 없애고 소파와 개방형 테이블을 배치해 백색소음이 허용되는 역동적인 커뮤니티 라운지로 탈바꿈했다. 지하 열람실은 폐가제 서고와 다목적 세미나 공간인 ‘나눔실’로 재편됐으며, 2층과 3층 자료실은 방음부스와 집중실, 토론실을 갖춘 학습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어 2026년 초 전 층 화장실 리모델링까지 완료하며 쾌적한 현대식 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 지난 2023년 겨울방학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 내부. 1층 로비(위 사진)는 개방형 라운지로 탈바꿈했다. 2층 자료실(아래 사진)은 이용 빈도가 낮은 장서를 지하 서고로 이전해 개방감을 확보하고,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해 편안한 열람 환경을 조성했다.

미래 캠퍼스 청사진

1984년 5만여권의 장서를 품고 솟아올랐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50만5천784권의 장서와 602석의 열람석을 갖춘 학문과 소통의 광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내부 리모델링에도 불구하고, 건립 40년을 훌쩍 넘긴 물리적 구조의 한계 탓에 타 대학의 최신 신축 도서관 시설에 비해 점차 낙후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도 존재한다. 이에 대학은 기존 건물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서관의 기능을 완전히 새롭게 재정의하기 위한 거시적인 청사진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제해종 총장을 중심으로 한 현 행정부가 개교 120주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SU-RISE 미래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중앙도서관 개발 계획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에 따르면 도서관 지하를 광범위하게 개발해 인공지능 융합교육과 창업, 산학협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혁신 학습 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40년 전 늪지 위에 세워진 중앙도서관은 이제 캠퍼스 지하로 물리적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다. 거듭된 리모델링과 공간 혁신으로 시대에 부응해 온 지난 40년처럼, 앞으로도 삼육 교육의 가장 단단한 학문적 거점으로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것이다.

▲ 오늘날 중앙도서관 전경
▲ 1980년대(위 사진)와 오늘날(아래 사진) 도서관 야경. 지난 40년의 세월을 넘어 밤낮없이 학문의 불을 밝히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왔다.

글·구성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공동기획·자료 최환철(박물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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