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육대-구리시, ‘구리시립미술관’ 건립 위한 MOU

AI 도슨트 도입·미술치료 공간 조성 등
전문 인프라 구축 협력

▲ 왼쪽부터 삼육대 제해종 총장과 백경현 구리시장이 협약서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육대와 구리시가 구리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양 기관은 지난 4월 30일 구리시청 시장실에서 ‘구리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구리시가 추진 중인 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은 갈매동 산마루공원 내 부지면적 3만 3070㎡, 연면적 4500㎡,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공립미술관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올 상반기 경기도 공립미술관 설립 타당성 평가와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양 기관은 구리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전문적 기반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지역 미래 세대를 위한 차별화된 교육프로그램 운영도 공동으로 진행한다.

주요 협약 내용은 △구리시립미술관 건립 및 운영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분야 인적·물적 네트워크 공유 △삼육대의 전문성을 활용한 신진 작가 발굴, 인공지능(AI) 기반 전문 안내원(도슨트) 기술 도입, 미술 치료 공간 조성 △소외계층과 시니어를 위한 ‘사회적 처방’ 개념의 예술 치료 프로그램 공동 운영 등이다.

▲ 삼육대와 구리시 관계자들이 업무협약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인 이장미 브랜드전략본부 부본부장, 서정미 박물관장 등 대학 측 전문가들이 참석해 성공적인 미술관 건립을 위한 실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구리시는 이번 협약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협업 과제를 발굴하고, 미술관 건립을 위한 행정적 지원을 이어간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학교 맞춤형 교육프로그램과 시민 대상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삼육대와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삼육대 제해종 총장은 “지역사회와 대학, 교육기관의 경계를 허무는 이번 협력을 통해 구리시가 선도적인 문화예술 교육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백경현 구리시장은 “구리시는 교육과 문화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은 도시”라며 “삼육대의 학술적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더해져 구리시립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시민의 삶을 치유하고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문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이국헌 교수, 美 한인교회 북한선교史 집대성

신간 ‘북한 선교의 길목에서’ 출간

1984년 시작해 40여 년 동안 이어온 미주 한인재림교회의 북한선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신학과 이국헌 교수가 저술한 ‘북한 선교의 길목에서'(삼육대학교 출판부).

미주 북한선교모임 원스텝(이사장 김휘상, One Step, Mission NorthKorea Institution)이 후세대에게 분단의 실태를 전하고, 북한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기 위한 사역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기획했다.

재림교회의 북한선교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민족 복음화의 비전과 사명을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들이 관련 사역을 이어받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전체 224쪽 분량의 책에는 해방 전까지 북한 지역에 소재해 있던 재림교회 선교 현황부터 북한선교를 향한 노력과 현실이 종합적으로 담겼다. 해방 직전까지 106개의 재림교회가 있던 북한 지역(북한대회)의 교회들이 어떻게 폐쇄됐는지와 그 이후의 북한 기독교 상황을 역사가들의 기록을 토대로 정리했다.

미주교회협회에 소속된 북한선교 관련 단체 및 인물의 활동을 비롯해 이들과 협력한 한국연합회 및 북아태지회 산하 관련 부서와 단체의 사역도 한데 짚었다. 아울러 북한 방문과 구호 활동 사례를 중심으로, 남북 간 협력과 긴장 관계 속에서의 시대적 변화와 대응 방안을 모색하며 북한선교의 발자취를 조명했다.

원스텝 이사장 김휘상 목사(세리토스교회 담임)는 발간사에서 “분단은 교회에도 크나큰 고통이었다. 그 아픔을 간직한 많은 분이 북한선교를 위해 시간과 재정과 열정을 투자해 헌신했다. 특히 미주 재림교회 선배들은 고달픈 이민생활 가운데서도 북한에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남다른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세대를 돌아보고 다음 세대를 설계하는 일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업”이라며 “선배들이 이룩한 40년의 시도와 노하우가 후배들의 사역에 밑거름이 되고,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저자 이국헌 교수는 “이 책에 등장하는 북한선교 영웅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한다”라고 인사하며 “이 서적을 출간하는 목적 중 하나는 땅끝 선교의 핵심 사명인 북한선교를 향한 모든 성도의 관심과 기도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북한선교에 대한 사명과 비전을 공유하길 간절히 바란다”라고 밝혔다.

2023년 창립한 원스텝은 미주 내 한인 재림교회 차세대를 대상으로 북한 실정에 관한 이해와 선교적 필요성을 교육하고, 선교 역량을 키우기 위해 조직한 모임. 직접 선교에 주력했던 기존 북한선교 단체와는 달리, 다음세대 전문인력 양성과 학술 및 훈련 활동에 힘을 싣고 있다. 복음사명 완수를 위해 지속적인 기도운동과 선교교육을 전개해 미주 재림성도들을 북한선교 사역의 일꾼으로 양성한다는 목표다.

“북한 재림교회 역사 이해, 북한선교의 출발점”

▲ 이국헌 신학과 교수

북한의 개방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여전히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재림교회가 직면한 북한선교 과제와 방향성을 짚는 제언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국헌 교수는 미주 한인재림교회의 북한선교 역사를 짚은 신간 ‘북한선교의 길목에서’를 통해 북한선교의 성찰과 전망을 다뤘다.

이국헌 교수는 “북한의 개방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북한선교 단체들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따른 전략을 수립해야만 하는 과제에 놓여 있다”라며 현실을 주시했다.

이 교수는 첫 번째 요소로 북한선교가 땅끝 선교를 완수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땅끝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북한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과 미주에 사는 재림교인 모두에게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선교를 위한 재정을 더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직접 선교가 가능하게 될 경우 교회 건축과 선교사 양성 외에도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 설립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재정 확보가 시급하다”면서 “이를 위해 목적자금 적립을 위한 다양한 기금 마련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선교 전문사역자 양성의 전문화와 조직화 및 사업의 지속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탈북민 선교 및 그들을 중심으로 한 북한전문 사역자 양성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의명선교센터 사역을 지원하고, 탈북민을 위한 봉사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사역이 지속가능하도록 행정적 지원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북한선교는 북한에 대한 구체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사역에 국한되어 있다”라고 아쉬워하며 “미래세대가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지역 단체를 더 많이 조직하고, 각 지역 단체들이 연합해 전국 단위 컨퍼런스 등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국내외 다양한 유관 단체와의 연대 중요성도 짚었다. 이 교수는 “사역의 범위를 넓혀 비재림교회 단체들과의 연대를 추진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한국과 미주에서 재림교회와 북한선교 단체들이 더욱 적극적인 연대 사역을 추진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주요 전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연장선에서 아드라, AWR 등 재림교회 내 세계선교 단체와의 연대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여러 단체가 연대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앞으로 북한선교를 위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꼽았다.

이국헌 교수는 제언을 마치며 “무엇보다 북한을 잘 알아야 한다”라고 정리했다. 그는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에서 남과 북이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과 함께 분단 직후 북한에 남아 있던 재림교회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분단 이후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도모하기 위해 북한의 역사 및 현재 상황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증언들을 분석하고 파악해야 한다”라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이런 이해들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과 북한 주민들의 정서를 밀도 있게 파악하는 것은 북한선교를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북한선교대회나 보고회, 각종 선교사 양성 교육에서 북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공유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배경에서 “장차 교회의 주인이 될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관련 교육이 필요하며, 선교사 양성을 위한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추가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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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BTS 퍼포먼스, 1500m 달리기 맞먹는 고강도”

체육학과 이재구 교수 ‘뉴욕타임스’ 인터뷰
BTS는 어떻게 가혹한 월드 투어를 견뎌낼까?

체육학과 이재구 교수가 세계적 권위지인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를 통해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최정상급 K팝 아티스트들의 신체적 한계와 관리의 중요성을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온라인판과 30일 뉴욕판 지면(C섹션 2면)에 ‘BTS는 어떻게 가혹한 월드 투어를 견뎌낼까?(How Will BTS Endure a Grueling World Tour?)’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4월 9일 고양에서 시작된 BTS의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은 내년까지 전 세계 34개 도시에서 85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장기 투어를 앞두고 전담 트레이너 인터뷰를 통해 아티스트들의 체력 관리법을 집중 조명했다. 이재구 교수는 스포츠 의학 전문가로서 학술적 견해를 더했다.

이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자와 약 40분간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K팝 특유의 고강도 훈련 시스템을 진단했다. 그는 기사에서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K팝 스타들은 심혈관 및 근육 스트레스에 대한 기초 체력이 매우 높다”며 “4분 분량의 댄스 퍼포먼스 한 곡을 소화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1천500m 육상 경기와 맞먹는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설명했다.

▲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4월 11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공연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이어 투어 일정이 아티스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가혹한 월드 투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스트레스는 퍼포머들이 중년(Middle age)에 가까워질수록 더 견디기 힘든 요소가 된다”며, 장기적인 커리어 유지를 위한 과학적인 컨디셔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특정 신체 라인을 부각하면서도 극한의 심폐지구력을 요구하는 K팝 스타들의 특수한 운동 루틴이 대중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러한 방식이 일반인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며, 일반인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근육을 강화하고 관절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구 교수는 그간 전문 퍼포머와 프로 운동선수들의 신체 루틴 및 재활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기사 원문보기▷How Will BTS Endure a Grueling World Tour?

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공간의 기억] ④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사택’

전쟁의 상흔 속에서 온기 나누던 공동체

▲ 1949년 준공된 선교사 사택. 제임스 리(James Milton Lee, 이제명) 교장이 머물렀다. 당시 모범적인 가옥으로 평가받으며 외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건축물이다.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삼육동 캠퍼스에 첫 번째로 세워진 건물이 학생들을 위한 ‘실업관’이었다면, 두 번째로 지어진 건물은 학교의 기틀을 다진 이들의 보금자리인 ‘사택’이었다. 초창기 사택들은 현재의 선교70주년기념관 뒤편과 후문 쪽 태강삼육초 인근에 자리했다.

이후 대학이 확장되면서 캠퍼스 내 사택의 규모도 꾸준히 늘어났다. 1950년대 초반 13채 남짓이던 사택은 1985년 건축물대장에는 37동까지 증가했다. 세월이 흐르며 초창기 사택들이 언제 철거됐는지 정확한 멸실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캠퍼스의 태동기를 함께한 첫 보금자리의 기억은 여전히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편에서는 삼육동 시대 ‘초창기 사택’에 한정해 그 시절의 공간을 되짚어 본다.

개척자들의 첫 보금자리

초창기 사택은 크게 교직원 사택과 선교사 사택으로 나뉘었다. 1948년 착공해 이듬해 준공된 교직원 사택은 1호부터 10호까지 총 10채가 비슷한 구조로 지어졌다. 약 17평 규모의 흙 블록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소박한 단층집이었다.

사택의 첫 입주자들은 김성수(실업부 책임자), 정택혁(재무), 조돈하(국어), 이응준(성경교사 겸 남사감), 김영도(화학), 임병의(총무), 이여식(신학교), 최명환(수학), 김기방(미술), 손재목(실업부 부책임자) 등 초기 삼육 교육을 이끈 주역들이었다.

▲ 1948년 10월 촬영된 교직원 사택 공사 현장. 투박한 흙벽돌과 목조 골조로 지어졌으며, 곧 학교의 기틀을 다진 이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컬러 기록물이다.

이어서 세 번째 건물로 1949년에 완공된 선교사 사택 1~3호는 교직원 사택보다 규모가 컸다. 목조 시멘트 기와지붕의 2층 형태였으며, 가옥대장에는 1층 38평, 2층 27평 등 총 63평 규모로 기록돼 있다.

첫 입주자인 제임스 리(James Milton Lee, 이제명) 교장과 케네스 미첼(Kenneth Leland Mitchell, 민제일) 선교사는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고 초기 건축을 이끌며 본격적인 삼육동 시대를 연 인물들이다.

마지막 선교사 사택 3호에는 재림교회 한국연합회 출판부 총무로서 문서전도 사업을 수행한 세실 윌리엄스(Cecil Arthur Williams, 위리암) 선교사 부부가 거주했다. 당시 이 사택들은 모범적인 가옥으로 호평받으며 외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러나 평화로웠던 보금자리는 6.25 전쟁과 함께 깊은 상흔을 입었다. 북한군에 점령당한 삼육동은 1천여 명의 신병을 수용하는 의용병 훈련소가 되었고, 선교사 사택은 부대 본부와 야전 병원으로 징발됐다.

피난을 떠나지 못한 교직원과 학생 76명은 사택과 불암동 주변에 숨어 지내야 했다. 서울 탈환 직전에는, 사택을 지키던 학생 몇 명이 인민군 패잔병에게 발각돼 총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영어교사 김기춘 선생이 진격해 오던 미군 병사에게 다급히 상황을 알렸고, 미군이 선교사 사택 쪽으로 달려가 학생들을 극적으로 구출해 냈다.

1951년 11월, 학교가 서울로 복귀해 ‘삼육신학원’으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교정은 온통 파괴돼 어수선했다. 여학생들은 화마를 피한 선교사 2호 사택을 수리해 기숙사로 사용했다. 교직원 6호 사택에 마련된 임시 식당에서는 남학생들이 주워 온 솔가지와 나무들로 불을 피워, 식당 직원과 여학생들이 지은 밥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53년 3월 7일 안식일에는 이곳 여학생 기숙사로 사용되던 사택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기숙사 마루에 피워둔 난로가 과열돼 이불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그날따라 예배가 길어져 12시 30분경에야 마쳤는데, 돌아온 학생들이 문을 열자마자 산소가 유입되며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다. 훗날 사람들은 “당시 고(故) 박원실 목사님의 설교가 정시에만 끝났어도 훨씬 덜 탔을 것”이라는 농담 섞인 후문을 전하기도 했다.

▲ 캠퍼스 개척기 삼육 가족들의 안식처였던 소박한 단층 교직원 사택. 척박한 대지 위에 세워진 이 보금자리는 훗날 전쟁의 시련을 함께 이겨내고 온기를 나누는 공동체의 소중한 터전이 됐다. 저해상도 원본 사진을 AI 툴로 업스케일링해 당시의 모습을 선명하게 복원했다.

총탄 자국 메운 공동체의 온기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택에서의 삶은 척박했지만, 그곳엔 이웃의 온기가 교차했다. 1952년 처음 부임한 고(故) 임정혁 교수에게 사택은 낯설고 두려운 공간이었다. 그가 배정받은 4호 사택은 벽마다 총탄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간간이 총소리가 들려왔다.

정붙이기 힘들었던 그를 품어준 것은 사람이었다. 옆집에 살던 영선부 책임자 박수산 장로는 미소와 함께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이후 1주일간 직원들과 함께 직접 방 수리를 해줬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어주기도 했다.

임 교수는 회고록에서 “구들장을 몽땅 들어내고 고래 사이를 깨끗이 긁어내면서 ‘이렇게 해야 불길이 굴뚝으로 빨리 들어가서 방이 골고루 덥고 연기도 안 납니다’라고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그날의 따뜻했던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명절이면 이북에서 온 외롭고 궁핍한 고학생들을 초대해 푸짐한 밥상을 내어주던 곳 역시 사택의 선생님들이었다. 초창기 삼육동의 사택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전쟁의 흉터를 서로 보듬고 온기를 나누던 가장 굳건하고 따뜻한 공동체 그 자체였다.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수시 비중 80% 돌파”… 28학년도 신입학 기본계획 발표

학종 ‘세움인재’ 최다 선발
‘약술형 논술’ 251명 모집… 약학과 논술 유지

삼육대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2028학년도 신입학 기본계획(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약학과, 인공지능융합학부,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등 26개 모집단위(학과)에서 수시모집 1065명(정원외 포함), 정시모집 260명 등 총 1325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수시와 정시 비율은 각각 80.4%와 19.6%다. 전년도(2027학년도) 수시 비중인 79.5%보다 소폭 증가하며 수시 선발 비율이 80%를 넘어섰다.

학종 ‘세움인재’ 최다 선발… ‘약술형 논술’ 251명 모집

수시모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전형은 학생부종합전형인 세움인재전형이다. 전년 대비 27명 늘어난 258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 전형은 1단계에서 서류(학생부) 100%로 4배수를 선발한 뒤, 2단계에서 1단계 성적 60%와 면접 40%를 합산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서류 및 면접 평가는 학업역량, 진로역량, 공동체역량 등을 기준으로 정성 종합평가한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약학과만 적용되며, 국어·영어·수학·과탐(1과목) 3개 영역 합 5등급 이내를 충족해야 한다.

▲ 지난해 11월 17일 교내 일원에서 실시된 ‘2026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 현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논술우수자전형은 154명 모집에 7962명이 지원해 51.7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삼육대의 대표 전형 중 하나인 논술우수자전형으로는 총 251명을 선발한다. 전년보다 26명 줄었지만, 예체능학과와 신학과를 제외한 모든 학과에서 선발하며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27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약학과 논술 역시 5명을 배정했다.

이 전형은 학생부 반영 없이 논술고사 성적 100%로 선발한다. 시험은 ‘약술형 논술’ 방식으로, 국어·수학 총 13문항을 80분 동안 풀어야 한다. 문제는 EBS 수능연계교재를 기반으로 고교 정기고사의 서술·논술형 문항 난이도에 맞춰 출제한다. 약학과 논술은 별도로 실시된다. 수학에서만 8문항 출제되며 고사시간은 80분으로 동일하다. EBS 수능연계교재를 기반으로 출제된다는 점도 같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은 일반학과의 경우 국어·영어·수학·탐구(1과목) 중 1개 영역 3등급 이내이며, 약학과는 국어·영어·수학·과탐(1과목) 3개 영역 합 5등급 이내다.

‘내신 5등급제’ 첫 도입… 자체 환산 점수 반영

교과전형인 학교장추천전형은 107명을 모집한다. 학생부 교과성적 100%로 선발하며, 성적은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학년별 차등 없이 반영한다. 단, 아트앤디자인학과는 학생부 20%·실기 80%, 체육학과는 학생부 40%·실기 60% 비율로 평가한다. 출신 고등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하지만, 고교별 추천인원의 제한은 없다.

▲ 지난해 9월 28일 교내 체육관 주경기장에서 진행된 2026학년도 수시모집 아트앤디자인학과 미술 실기고사 현장. 아트앤디자인학과는 지난해 수시모집에서 57명 모집에 1657명이 지원해 29.07대 1의 전체 경쟁률을 기록했다.

2028학년도부터 ‘내신 5등급제’가 도입됨에 따라, 학생부 교과성적은 대학 자체 환산 기준에 맞춘 5등급제로 적용된다. 재수생의 기존 9등급제 점수 역시 과목별 표준점수를 바탕으로 5등급으로 변환해 반영할 계획이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은 일반학과의 경우 국어·영어·수학·탐구(1과목) 중 2개 영역 합 7등급 이내, 간호학과·물리치료학과는 2개 영역 합 6등급 이내여야 한다. 약학과는 국어·영어·수학·과탐(1과목) 3개 영역 합 5등급 이내다. 체육학과와 아트앤디자인학과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없다.

정시 4개 영역 우수 과목순 ‘35-25-25-15%’

정시모집은 가·나·다군에서 시행한다. 예체능학과를 제외한 전 학과(부)에서 수능 100%로 선발한다. 수능 반영비율은 국어·수학·영어·탐구(1과목) 중 성적이 우수한 4개 순으로 각각 35%, 25%, 25%, 15%를 적용한다(약학과 제외). 한국사 탐구 대체는 불가하다.

예체능학과인 체육학과는 수능 60%, 실기 40%, 음악학과와 아트앤디자인학과는 수능 20%, 실기 80%를 적용한다. 수능성적은 예체능학과 모두 국어·수학·영어·탐구(1과목) 중 상위 2개 과목을 각 50%씩 반영한다. 다만 아트앤디자인학과와 음악학과는 수능성적을 백분위가 아닌 등급에 따른 자체 환산점수를 적용한다. 등급 간 점수 차가 크지 않고, 실기반영 비율이 높아 실기성적이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

▲ 약학과

한편 최상위권 학생들의 관심이 쏠리는 약학과는 총 38명을 모집한다. 수시모집 26명, 정시모집(나군) 12명이다. 수시 전형별 모집 인원은 △세움인재(종합) 7명 △논술우수자(논술) 5명 △학교장추천(교과) 3명 △재림교회목회자추천(종합) 3명 △농어촌(정원외) 3명 △기회균형II(정원외) 3명 △특수교육대상자(정원외) 2명이다.

정시모집(나군)은 일반전형으로 12명을 선발한다. 수능성적 반영비율은 국어 25%, 수학 35%, 영어 25%, 과탐(1과목) 15%이다. 직업탐구는 제외하며, 한국사 탐구 대체는 불가하다.

입학전형 시행계획은 관계 법령 및 대학입학전형관리위원회 등의 심의 결과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정확한 내용은 추후 발표되는 해당 학년도의 모집요강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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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홍준 hahj@syu.ac.kr

ⓒ 삼육대학교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supr@syu.ac.kr

조선일보 https://news.chosun.com/pan/site/data/html_dir/2026/05/07/2026050702951.html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6726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economy/biznews/1257656.html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92335
대학저널 https://dhnews.co.kr/news/view/1065589951355899
내일신문 https://www.naeil.com/news/read/588140?ref=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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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타임즈 https://www.asiatime.co.kr/article/20260507500371
비즈월드 https://www.bizw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5992

말레이 국립 교육대와 ‘디지털 교과서’ 공동 개발한다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앱미디어와 ‘K-에듀테크’ 수출
현지 주요 대학 순방… R&D 협력 강화

▲ 삼육대와 말레이시아 국립 교육대(UPSI)가 디지털 교과서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A)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네 번째부터) 앱북스 모하마드 무샤파 빈 모하마드 파드진 대표, 삼육대 서경현 부총장, UPSI 수리아니 빈티 아부 바카르 부총장, 앱미디어 박성훈 대표.

삼육대가 자체 육성한 에듀테크 스타트업과 함께 말레이시아 국립 교육대와 손잡고 현지 디지털 교과서 공동 개발에 나선다. 삼육대는 우수한 교육 기술력과 산학협력 성과를 바탕으로 에듀테크 기술 해외 수출이라는 실질적인 결실을 맺었다.

삼육대는 지난 4월 16일 말레이시아 페락주 탄중말림에 위치한 국립 교육대 술탄이드리스교육대(Universiti Pendidikan Sultan Idris, 이하 UPSI)에서 디지털 교과서 제작을 위한 4자간 업무협약(MOA)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삼육대와 UPSI를 비롯해 삼육대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앱미디어, 말레이시아 현지 전자출판 기업 앱북스(Appbooks)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4개 기관은 말레이시아 초등학교 1, 2학년의 초기 문해력 강화를 위한 ‘말레이어 학습용 신개념 대화형 E-모듈(디지털 교과서)’을 공동 설계 및 개발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말레이시아 교육부의 표준 교육과정 방향에 맞춰 진행되며, 오는 12월 31일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삼육대는 교수 설계, 디지털 페다고지(교육학) 등 에듀테크 분야의 학술적·기술적 자문과 전문성을 제공한다.

▲ 앱미디어의 앱북 서비스

특히 이번 사업에는 삼육대가 직접 발굴해 육성한 스타트업 앱미디어가 동반 진출해 의미를 더했다. 2021년 3월 삼육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앱미디어는 대학으로부터 기술 전수와 인큐베이팅을 받았으며, 이미 삼육대 정규 교과목 교재인 ‘SU 사고와 표현’ 등 다수의 서적을 자체 플랫폼 프라페(Frappe)로 유통하고 있다. 앱미디어는 현지 업체와 함께 실질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참여 기관들의 재정 및 현물 투자를 합쳐 총 47만2천링깃(한화 약 1억7천5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한편 삼육대 방문단은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진 출장기간 동안 UPSI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대(Multimedia University, MMU), 말레이시아국립대(Universiti Kebangsaan Malaysia, UKM), 셀랑고르대(Universiti Selangor, UNISEL) 등 현지 주요 대학을 순방했다.

방문단은 각 대학과 △공동교육과정 및 전공연계 교류 △AI, 헬스케어 등 공동 R&D 발굴 △현지 인턴십 등 학생 글로벌 역량 강화 △디지털 캠퍼스 운영사례 공유 등을 논의하며 폭넓은 학술·교육 협력 기반을 다졌다.

삼육대 서경현 부총장은 “이번 협약은 삼육대가 지닌 디지털 에듀테크 역량과 창업 인큐베이팅의 우수성이 글로벌 국가 교육 사업을 통해 인정받은 뜻깊은 성과”라며 “앞으로도 말레이시아 주요 대학들과의 긴밀한 학술 교류를 바탕으로 교육 분야의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혁신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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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가정 이야기] 공부란 무엇인가?

[노동욱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교수]

공부란 무엇인가? 청소년기 아이들을 둔 대부분의 가정에서, 공부는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공부란 대체 무엇이기에 가족 간의 갈등까지 불러오는 것일까? 공부하라는 부모의 ‘공격’과 안 하려는 자녀의 ‘방어’는 일상 속에서 마치 전쟁처럼 되풀이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지만, 정작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 제시해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이들 또한 공부의 의미나 이유를 알지 못하니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고, 어린 나이에 스스로 공부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공부란 무엇인지, 나의 생각을 소박하게나마 제시해 보고자 한다.

공부가 ‘점수’로 줄어든 순간

우리에게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공부란 무엇인가? 성적이자 입시다.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지상과제다. 높은 점수를 받아 남들 위에 올라서는 것, 남들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갖고,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공부의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홈스쿨링으로 미네르바대학에 입학한 임하영은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그가 명절 때 할머니를 만나면 항상 듣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영이, 요즘 공부 열심히 하나?” “네, 그런대로요.” “그래서, 1등 했냐?” ‘공부 열심히 하나’라는 질문은 결국 ‘그래서, 1등 했냐?’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임하영은 친구들을 만나도, 가족들을 만나도 늘 반복되는 질문은 “공부는 잘해?” “몇등이야?” “대학은 어떻게 할 거니?” “인 서울? 아니면 지방대?” 등의 질문뿐이며, 이런 질문들이 계속 당연시된다면 “탐욕스러운 저질의 엘리트들이 탄생하는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것이라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수능시험은 우리나라에서 안타깝게도 공부의 시작점이 아니라 종착점이 된지 오래다. 국가적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수능시험 날에는 해마다 진풍경이 연출된다. 시험 시간에 늦은 학생들을 위해 경찰차가 출동하여 시험장까지 늦지 않게 호송해 주는 것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우리가 크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험장에 늦지 않도록 일찍 일어나서 마음을 정돈하고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교육의 한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일 년에 한번 있는 중요한 시험 날, 제 시간에 시험장에 도착도 못하는 학생이 진정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학생이 설령 시험 점수를 잘 받는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수능시험 날 경찰차로 수험생을 호송해 주는 것은 단순한 해프닝도 아니고, 따뜻하고 훈훈한 미담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흩뜨리는 것이자,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우선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경찰들도 ‘우리가 콜택시냐?’며 자조 섞인 하소연을 하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경찰차로 수험생을 호송해 주는 것은 공부를 단순히 점수 얻기의 일환으로 보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점수 얻기가 교육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까? 단순히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나의 공부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도 좋은 것일까? 이러한 맥락에서, 김영민 교수는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한다.

▲ 사진=envato elements.

예속되지 않는 자유
그렇다면 왜 공부를 해야 할까? 나는 ‘예속되지 않는 자유’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미국 노예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채찍질로 대표되는 물리적 억압이 두드러졌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큰 의미에서의 진정한 억압은 교육의 억압에 있었다. 채찍질은 잠시나마 흑인 노예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지언정, 항구히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교육의 억압은 백인 노예주들이 원했던 ‘순종적’인 노예를 길러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노예제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백인 노예주들은 무엇보다 흑인 노예들의 교육을 억압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미국의 소설가 콜슨 화이트헤드(Colson Whitehead)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The Underground Railroad)에서 총을 든 흑인보다 책을 든 흑인이 더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백인 노예주의 입장에서 책을 든 흑인은 정신이 깨어 있기에 언제라도 억압과 차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저항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였던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왜 백인 노예주들이 공부를 못하게 할까, 의문을 갖는다. 그는 몰래 혼자 글을 깨우친 뒤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노예제의 굴레에서 탈출하여 다른 노예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애쓰는 흑인 지도자가 된다.

거리를 방황하던 부랑아 말콤 엑스(Malcome X)는 감옥에 갇혀 무수히 많은 책을 읽고 ‘자유’의 의미를 깨달은 뒤 흑인 지도자로 성장한다. 그는 자신의 모교(alma mater)를 ‘책’이라고 칭하는데, 이러한 사례들은 공부의 필요성이 ‘예속되지 않는 자유’임을 역설한다. 요컨대, 교육은 깨어 있는 ‘위험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노예제는 이미 폐지된 지 오래인데 왜 이 시대에 노예제를 다시 거론하느냐고 누군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새로운 모습의 노예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일례로, 요즘 스마트폰의 노예가 아닌 사람이 드물다. 앉으나 서나, 걸어가면서도, 수업 시간에도, 집에 가서도 널브러져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름아닌 스마트폰의 노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마트폰 혁명을 이끈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정작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IT 기기를 전혀 주지 않고 집에서 IT 기기를 철저하게 금했다고 한다. 스마트폰 프로그램 개발자들이나 게임 개발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도파민을 방출시켜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게 하여 이윤을 창출할 것인지 연구한다. 우리는 그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스마트폰의 자발적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데, 정작 우리를 중독에 빠지게 한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종이 책을 읽히고 토론 교육, 글쓰기 교육을 시켜 가며 사고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뭔가 억울하지 않은가?

스마트폰은 알고리즘을 통해 내가 관심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추천해 준다. 그럴수록 나의 사고방식은 확증편향적이 되어 가고, 반쪽짜리가 되고 만다. 그 결과, 독재자나 사이비 종교인을 추종하는 자발적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곧 자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 그렇다면 당신은 왜 공부를 할 것인가?

월간 <가정과 건강>

[시론] 은혜 이후의 사회

공정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유

[봉원영 신학과 교수]

봄은 왔는데 마음은 왜 여전히 겨울인가

4월이 되면 도시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갖는다. 바람은 누그러지고, 사람들은 옷차림을 가볍게 한다. 학교에는 새 학기의 생기가 흐르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책상 위를 정돈한다. 그렇게 4월은 적어도 달력 위에서는 새로움이 가장 설득력 있게 읽히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계절이 바뀌면 마음도 함께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의 마음은 그리 쉽게 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더 쉽게 예민해지고, 더 자주 피로하며, 작은 말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다들 너무 팍팍해졌어.” “요즘은 정이 없어.”

그 팍팍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단서가 있다. 우리는 지금 공정이라는 단어를 거의 신앙처럼 반복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은 옳다. 그리고 필요하다. 그런데 왜 공정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수록 우리는 더 차가워지는 것처럼 느끼는가? 이 질문은 공정의 시대가 낳은 인간의 표정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진단이다.

공정의 미덕과 공정의 그림자

공정은 사회의 토대다. 권력이나 인맥 혹은 보이지 않는 편파가 삶을 좌우하던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 공정은 정의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공정은 상처의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고, ‘이제는 적어도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결정하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래서 공정이 무너지는 순간, 가장 먼저 쓰러지는 이들은 늘 약자들이다.

그러나 공정에는 한계가 있다. 공정은 기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기준은 유익하지만 동시에 어떤 삶들을 밖으로 밀어낸다. 기준이 생기는 순간, 기준에 맞지 않는 삶들도 함께 생겨난다. 문제는 사회가 너무 오래 기준만으로 운영될 때 발생한다. 그때 사람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평가 가능한 대상으로 호출된다. 우리는 인간을 얼마나 기여했는지, 얼마나 유능하고 성실했는지 또 얼마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지 등의 질문으로 분해한다. 이 질문들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만 남을 때 인간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점수의 합계가 되고 만다.

공정은 사회를 유지한다. 하지만 공정만으로 사회를 살릴 수는 없다. 유지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고, 살림이란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느끼는 사회의 차가움은 바로 이 간극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성과·평가의 사회가 만든 새로운 잔인함

요즘의 잔인함은 거칠지 않다. 오히려 아주 정중하다. 노골적인 차별의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절차와 규정이 말을 한다. “규정상 어렵습니다.” “형평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외를 두면 불공정합니다.” 이 문장들은 논리적으로 옳다. 그래서 더 무섭다. 논리적으로 옳은 말은 때로 사람의 눈물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과와 평가가 사회의 중심이 될수록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왜 내가 뒤처졌는지, 왜 지금 도움이 필요한지, 왜 나에게 예외가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러나 삶에는 분명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병, 상실, 돌봄, 우울, 관계의 붕괴, 예기치 않은 사고 등.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공정이란 같은 조건의 사람들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인간이 결코 같은 조건으로 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회가 동일한 출발선의 환상을 품을 때 그 환상은 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

은혜, 규칙의 바깥이 아니라 관계의 중심에서

이 지점에서 은혜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는 일은 시대착오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다. 은혜는 개인적인 미담이나 종교적 감상에 머물기에는 너무 강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흔히 은혜는 공짜처럼 오해되지만 은혜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은혜는 인간을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려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공정이 사회의 뼈대라면 은혜는 사회의 살과 피다. 뼈대가 없으면 사회는 서지 못하고, 살과 피가 없으면 사회는 살아 있지 못한다. 은혜는 공정을 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정이 놓치는 영역을 품는다. 원칙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혜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은혜의 사회적 기능이 여기에 있다. 은혜는 예외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사람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드는 힘이다. 은혜는 규칙을 깨는 특혜가 아니라 규칙이 포착하지 못한 고통을 알아보는 눈이다. 그 기억이 쌓일 때 공동체는 인간다움을 유지한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성을 가진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따뜻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차가운 세상 속에서 사람은 숫자 이상이라고 말하는 용기를 요청한다. 은혜는 신앙의 장식을 넘어 신앙의 핵심이며 동시에 사회를 향한 책임이다.

4월의 사회가 다시 숨 쉬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

4월은 생명이 자라는 달이다. 그러나 생명은 자동으로 자라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돌봄이 필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공정은 사회의 구조를 단단히 할 수 있지만 사회가 숨 쉬게 하려면 은혜라는 공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다시 은혜를 말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은혜는 누군가를 무조건 봐주기 위한 감정이 아니다. 은혜는 공동체가 사람을 끝까지 품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성숙한 윤리다. 넘어졌던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시간을 주는 용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을 성급히 단정하지 않는 인내 그리고 “당신은 여기 있어도 됩니다.”라고 말해 주는 환대, 이것이 은혜다.

4월의 사회가 더 공정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공정이 차가운 계산으로 굳어지지 않기를 더 간절히 바란다. 공정은 사회의 지붕일 수 있다. 하지만 지붕만 있는 집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은혜는 창문과 같다. 창문이 있어야 빛과 바람이 들어오고, 사람은 숨을 쉰다.

은혜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성품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받은 선물이다. 그래서 은혜를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살려 내셨는가를 기억하는 일이다. 이 기억이 사라질 때 우리는 공정의 이름으로 서로를 재단할 수는 있어도 서로를 살릴 수는 없다.

이 봄, 우리 사회가 다시 은혜를 배우면 좋겠다. 판단을 조금 늦추는 마음, 사정을 설명으로만 요구하지 않는 태도, 넘어짐을 실패로만 규정하지 않는 시선. 그렇게 은혜가 스며들 때 공정은 차가운 기준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질서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4월은 달력 위의 계절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계절이 될 것이다.

월간 <시조> 4월호

쏟아지는 고가의 지방간 신약, 경제적 가치 인정받으려면?

약학대학 김혜린 교수, ‘지방간 치료제’ 비용-효과성 연구
간장학 분야 권위지 ‘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 게재

▲ (왼쪽부터) 삼육대 약학대학 김혜린 교수(교신저자), 박지현 연구원(공동1저자·삼육대 석사/약학과 사회약학전공·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재직)

전 세계 성인의 약 30%가 앓고 있는 대사질환인 지방간 치료에 마침내 신약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남은 과제가 있다. 만성질환 특성상 장기간 투여해야 하는 고가의 신약들이 과연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지갑을 열 만큼 그 가치를 충분히 하느냐는 문제다.

삼육대 약학대학 김혜린 교수 연구팀이 이 실질적인 물음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쏟아지는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 신약들이 의료 현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합격선, 이른바 ‘치료반응 임계치’를 정량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전대원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로 진행됐으며, 간장학(Hepatology)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이자 대한간학회(KASL) 공식 학술지인 ‘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CMH, IF=16.9)’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 제목은 ‘Evaluating treatment response thresholds for cost-effective treatment in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 치료약물의 비용-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료반응 임계치 평가 연구)’이다.

▲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 신약의 ‘비용-효과성’ 결정 핵심요인 모식도. 20년 질병 경과 시뮬레이션 모델을 통해 가상의 지방간 신약(Drug X)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료반응 임계치(기준선)’를 도출했다. 분석 결과, 신약이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초기 간섬유화 개선 효과가 기존 대비 최소 15% 이상 높아야 하며, 시간이 지나도 최소 3% 이상의 지속적인 효과 격차를 유지해야 함을 보여준다.

유병률이 매우 높은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은 그간 마땅한 치료 약물이 없어 식단조절과 규칙적 신체활동 등 생활습관 교정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2024년 ‘레스메티롬(Resmetirom)’이 미국 FDA 허가를 받으며 최초의 치료제로 등장했고, 현재 다양한 효능을 가진 후속 약물들이 출시되거나 임상 개발 중이다.

치료 옵션이 확대됨에 따라 임상현장에서는 ‘다양한 약제 중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가?’라는 의사결정 차원의 새로운 질문이 대두됐다.

특히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특성상 치료약제를 장기간 투여하게 되므로, 누적되는 치료비가 환자와 국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김 교수팀의 연구는 ‘새로운 약물이 고가의 비용을 지불할 가치를 입증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치료효능을 보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연구팀은 특정 약물을 대상으로 사후 경제성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가상의 치료제를 설정하고 20년간의 질병 경과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모델링을 수행했다.

분석 결과, 신약이 비용-효과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비교약제 대비 간섬유화 개선효과 차이가 최소 15% 이상 높아야 하며, 시간이 지나 효과가 감소하더라도 최소 3% 이상의 효과차이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임계치’를 확인했다. 초기개선 효과와 유지효과의 다양한 조합 및 약가수준에 따라 임계치가 변화하는 범위도 함께 제시했다.

▲ 연간 약제비를 2만 달러로 가정했을 때, 신약의 간섬유화 개선 효과에 따른 경제성 확보 구간을 시각화한 그래프. 비교 약제 대비 초기 개선 효과가 최소 15% 이상이거나, 3% 이상의 효과가 유지되는 경우 비용-효과적인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색 영역’은 비용 대비 성과(ICER)가 임계치(10만 달러)를 초과해 경제성이 낮은 구간, ‘초록색 영역’은 임계치 이하를 충족해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비용-효과적 구간, ‘파란색 영역’은 임계치 5만 달러 이하로 비용-효과성이 매우 높은 구간이다.

아울러 질환 초기 환자보다는 간 손상이 어느 정도 진행된 섬유화 단계(F3 이상)의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할 때 비용 대비 성과가 훨씬 크다는 점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효과의 크기와 효능기전이 서로 다른 신약들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도달해야 할 임상적 치료효과의 기준선을 역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연구팀은 더욱 정밀한 분석을 위해 간 질환뿐만 아니라 지방간 환자에서 중요한 합병증인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까지 통합 분석해 모델의 현실성과 타당성을 높였다.

또한 미국 의료환경을 기준으로 한 기본 분석에 더해, 한국 의료환경을 반영한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비용-효과성을 나타낼 수 있는 효과의 범위가 더 넓게 나타나, 국내 보건의료 정책에의 적용가능성도 함께 확인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임상 현장에서 최적의 치료제를 선택하는 가이드라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정부의 건강보험급여 적정약가 설정 및 제약 산업계의 신약 R&D 목표 효능치 설정에 실질적인 근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김혜린 교수는 그간 국내 유수 병원의 임상전문의들과 협력해 간질환 분야의 경제성평가 및 약무정책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다. 현재 간암 선별검사 및 마약류 투여 집단에서의 C형간염 선별검사 등 다양한 간질환 분야의 후속 경제성평가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동료 연구자, 임상 전문의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제 의료현장과 보건의료 관련정책에서 필요로 하는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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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독서] 말보다 중요한 것, 듣는다는 태도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훈재 신학과 교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대성당’은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단순한 이야기다. 맹인 한 사람, 그의 오랜 친구인 아내 그리고 아내의 남편. 이 세 사람이 하루 저녁을 함께 보내는 것이 소설 내용의 전부다. 그러나 이 평범한 만남 속에서 카버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놓치는 ‘관계의 본질’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이 오래도록 읽히는 이유는 극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순간 속에서 삶의 태도가 바뀌는 과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에서 남편은 맹인을 불편해한다. 그는 특별히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거리감을 느끼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은근히 낮춰 본다.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더 우위에 두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곧 흔들린다. 텔레비전에 비친 대성당을 보며 맹인이 묻는다. “대성당이 어떤 모습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남편은 말문이 막힌다. 분명 여러 번 보았지만 제대로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순간 남편은 깨닫는다. 그는 보았지만 이해하지 않았고, 알 것 같았지만 마음에 담지 않았다. 높고 웅장하다는 형용사만 반복할 뿐 대성당이 품고 있는 시간과 사람, 신앙과 삶의 무게를 전혀 전하지 못한다. 반면 맹인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로 귀를 기울인다. 그는 보지 못하지만 듣는 데 온 힘을 다한다. 이 장면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조용히 대비시킨다.

소설의 핵심은 이 설명의 시간이 점점 ‘공동의 경험’으로 바뀐다는 데 있다. 남편은 단순히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맹인은 수동적인 청자가 아니라 질문하고 반응하며 상상의 공간을 넓혀 간다. 결국 두 사람은 눈을 감고 함께 연필을 잡고 대성당을 그린다. 보지 못하는 사람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가정에서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가족에게 얼마나 자주 “알고 있다”고 말하는가. 배우자의 마음, 자녀의 생각, 부모의 걱정을 이미 다 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로 설명해 본 적은 얼마나 있을까. 또 끝까지 들어 본 적은 얼마나 될까. 많은 갈등은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듣지 않아서 생긴다. 카버는 소설을 통해 관계의 건강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남편의 변화다. 그는 맹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본다. 그동안 얼마나 무심했고, 타인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갑작스러운 감동이나 교훈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방향을 바꾼다. 이것이 ‘대성당’이 주는 깊은 여운이다.

이 소설은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지도 묻는다. 건강은 단지 몸의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질과 연결되어 있다. 제대로 말하고, 진심으로 듣는 경험은 마음의 긴장을 풀고 타인에 대한 경계를 낮춘다.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할 때 우리는 덜 외롭고 더 단단해진다.

‘대성당’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때로는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고 말을 멈춰야 진짜 이야기가 들린다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누군가의 설명을 끝까지 들어 보는 것. 그것이 가정의 평온을 지키고 관계의 건강을 회복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방법일지 모른다.

월간 <가정과 건강>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