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8. 15

거룩하신 구속주

주제성구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 21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 31).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죄인을 구원하는 당신의 사업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셨거나 낙담하셨더라면 아담의 모든 자손이 가졌던 최후의 소망은 끝장이 났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자아부정과 자아희생의 생애이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매우 적은 이유는 자아부정과 자아희생의 정신 대신에 방종과 자아만족의 정신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오,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영혼들을 갈망하고 동경하셨던가? 그분의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해서 당신께서 치르신 희생을 통하여 당신의 의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당신의 신성, 곧 하나님이신 그분의 능력이 감소되지는 않았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범죄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하여 대속주에게 전가시키도록 하셨다. “진홍같이 붉은” 죄로 비유된 죄 된 세상의 죄는 우리의 확실한 보증이 되시는 그분께 넘겨졌다. …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인정하심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증오와 복수로 말미암아 당신의 인성이 고통을 받으실 때에 그분의 신성은 그것이 담당해야 할 일을 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만이 그 고통당하는 가련한 강도의 요구에 응답하실 수 있었으며 자유하신 분으로 그 사악한 범인에게 보증이 되실 수 있었다. 죽어가시던 구주께서는 당신을 죽여야 한다고 정죄하던 사람들보다도 그 강도가 훨씬 더 무죄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던 제사장과 서기관과 통치자들보다도 훨씬 더 죄가 없다는 것을 아셨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던 그 강도는 얼마나 놀라운 믿음을 가졌던가? 그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을 때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 가련한 강도의 기도 가운데는 어느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와는 다른 진정이 서려 있었다(원고 84. 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