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생명과학과 전은선(왼쪽) 학생이 김일목 총장과 대통령과학장학증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가 2년 연속 대통령과학장학생을 배출했다.
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 전은선(20학번) 학생은 ’2022년 대통령과학장학생‘에 선발됐다. 지난해 선발된 천재환(19학번) 학생은 계속장학생 자격을 유지했다.
대통령과학장학생은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풍부한 과학기술 분야 최우수 학생을 발굴·육성 지원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의 핵심 과학자군을 양성하기 위한 장학제도다. 학업성적과 과학활동, 성장계획, 봉사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심층면접을 거쳐 선발하며, 졸업 때까지 등록금 전액과 학기당 250만원의 학업장려비를 지원한다.
올해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선발된 전은선 학생은 전공과 지식탐구에 대한 열의가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지식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는 학생이다.
중학생 시절 메르스가 생명을 앗아가는 상황을 보며 백신 개발 연구원이라는 꿈을 갖게 된 그는 보다 체계적인 학습을 위해 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교내 학술 경진대회에 참가해 ’질병진단-신속진단키트(RDT Kit) 원리‘ ’약물의 사용기전-진통제 메커니즘‘ 등 주제로 발표해 최우수상과 장려상을 받았다. 매 학기 과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학실험교육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과학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가르치며 교수법을 익혔다. 청소년들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쉽게 체험하지 못하는 실험을 하면서 생명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전은선 학생은 “생물학이 암기과목이라 힘들다는 학생이 실험을 하며 원리를 알고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볼 때,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에게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설명해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됐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부하는 방식은 나 자신의 고민에도 해답을 찾아주곤 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치매치료 연구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학부 졸업 후 뇌인지과학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주변에 치매 환자가 많아서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전공한 생명과학뿐만 아니라, 컴퓨터공학, 화학공학, 약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접목하여 융합적으로 사고하고 성과를 내는 과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동아리 할래?] (4) 건축봉사 동아리 ’36해비타트’
설립 4개월 만에 CCYP 인증 획득
상반기 우수동아리로도 선정
▲ 지난 8월, 36해비타트 동아리 학생들이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주택에서 벽지와 장판 교체, 폐기물 처리 등 피해복구 봉사활동을 펼쳤다.
우리 대학 건축봉사 동아리 ‘36해비타트’(지도교수 건축학과 권혜주)가 설립 4개월 만에 한국해비타트 공식 학생동아리로 인준받은 데 이어 ‘2022년 상반기 한국해비타트 우수동아리’로도 선정됐다.
해비타트는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갖고 1976년 미국에서 시작한 비영리 국제단체(NGO)다.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고쳐주거나 새로 지어주는 주거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비타트는 해비타트 운동의 가치를 지지하고 이에 동참하고자 하는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해 운영하는 학생동아리 CCYP(Campus Chapters Youth Program)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우리 대학을 포함해 30개 대학, 5개 고교 동아리가 CCYP 인증을 받았다. 인증을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 집 짓기와 홍보 및 모금활동 등 한국해비타트가 규정한 엄격한 자격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 36해비타트 동아리 학생들이 한국해비타트 본부에서 ‘우수 동아리’ 상장과 미니스툴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미니스툴을 만들어 복지센터에 기증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우리 대학 해비타트 동아리인 ‘36해비타트’는 지난 4월 14일 건축학과 학생 36명이 모여 발족했다. 설립 후 준비동아리로 활동하다, 불과 4개월 만인 8월 한국해비타트로부터 공식 CCYP 인증을 받게 됐다.
통상 동아리 설립 후 인증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36해비타트는 인증과 함께 2022년 상반기 한국해비타트 우수동아리로 선정되는 성과도 거뒀다.
회장단 문예슬(건축학과 19학번) 학생은 “코로나19로 타 대학 CCYP의 활동이 위축되던 시기에 오히려 활동에 박차를 가한 덕분에 최단기간 인증과 우수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36해비타트는 △주거환경 개선목적의 건축 활동 △인식개선 및 멘토링 등 교육활동 △한국해비타트 후원목적의 모금 활동 △타 대학 해비타트와의 연합활동 △한국해비타트의 집짓기 사업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주택에서 벽지와 장판 교체, 폐기물 처리 등 피해복구에 힘썼다. 타 대학과의 연합 건축활동을 하거나, 플로깅과 벽화활동 같은 거리정화 봉사, 가구를 제작해 기부하는 활동도 한다. 봄 사랑나눔주간 기간에는 콘크리트 화분 체험부스를 마련해 수익금 전액(35만6500원)을 한국해비타트에 기부하기도 했다.
당초 건축학과 내 학과 동아리로 시작한 36해비타트는 이번 학기부터 모든 학과로 참여 대상을 확대했다. 해비타트의 비전에 공감하는 학우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최근 간호학과, 생활체육학과 학우들이 동아리에 합류했다.
회장단 문예슬 학생은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면서 “집 안에 쌓여 있는 오래된 물건을 치우거나 LED 등으로 교체하는 등 우리에게는 작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대상자 분들에게는 큰 변화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36해비타트를 중앙동아리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며 “36명을 넘어 더 많은 학우들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삼육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모세 마카(Moses Maka Ndimukika) 목사가 우간다 재림교회를 이끄는 연합회장으로 선출됐다.
우간다연합회(UGANDA UNION MISSION/미자양)는 동중앙아프리카지회(ECD) 산하 재림교회 조직으로, 아프리카 우간다 전역에 8개 지방합회(Local Conference, Field)를 두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교인 44만여명, 1278개의 교회가 소속된 거대 조직이다.
우간다 태생인 모세 마카 목사는 인도 스파이서 재림교회 대학(Spicer Adventist University)에서 신학(BTh)을 전공하고, 영국 뉴볼드대(Newbold College)에서 신학석사(MA)를 받았다. 이후 2012년 2월 말 삼육대 신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2015년 성서신학박사(PhD)를 취득했다.
모세 마카 목사는 지난 27년 동안 안수목사로 우간다 교회를 섬기며, 우간다의 재림교회 대학인 부제마대(Bugema University)에서 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쳤다. 부제마대 캄팔라캠퍼스 총장과 이사 등을 역임했고, 우간다연합회 총무로 봉직하다, 이번에 연합회장으로 선출됐다.
모세 마카 목사는 삼육대 홍보팀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숭고한 의무을 부여받은 것에 무한한 감사와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며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침례자 수에 맞춰 목회자 1천명을 양성하는 사업과 오는 2027년 우간다 선교 100주년을 맞아 교회 본부 건립에 힘쓸 계획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삼육동 캠퍼스 생활에 대한 추억과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모교에 대한 특별한 감사를 전한 그는 “조만간 모교에 다시 방문하기를 고대한다. 우간다연합회 산하 고등교육기관인 부제마대와의 긴밀한 협력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모세 마카 목사와의 일문일답
─ 우간다 교회를 이끌어갈 중책을 맡았는데 심경과 소감은.
“숭고한 의무을 부여받은 것에 무한한 감사와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우간다에 있는 그분의 교회 지도자가 되는 특권을 갖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 자신을 우간다 교회의 수장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다른 모든 사람 중 왜 나를 선택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이 땅(우간다)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나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 우간다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인가.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우간다 교회의 인력과 인프라 역량이 교세의 확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인은 50만명에 달하지만, 안수 목회자는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더 많은 목회자와 일꾼이 필요한 상황이다.”
─ 연합회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인가.
“우리는 향후 5년간 약 1천명의 교회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기금을 모금할 계획이다. 오는 2027년 우간다 선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이에 맞춰 2027년까지 교회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또한 현재 50만명의 교인수를 100만명으로 2배 늘리는 ‘Uganda Union Evangelistic Impact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현대적 기반시설과 자격을 갖춘 인적자원, 향상된 관리책임, 재정적 독립이 필요하다.”
─ 과거 인도, 영국을 거쳐 한국의 삼육대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왜 삼육대였나.
“나는 우간다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주님의 섭리로 인도 스파이서 재림교회 대학에서 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공부를 위해 영국 뉴볼드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고, 그곳에서 구약성경에 중점을 둔 성서신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위해 하나님께서 날 삼육대로 인도하셨다.
나는 한국이 박사과정을 밟기에 매우 매력적인 곳이라 느꼈다. 세계 여러 선진국 중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매우 높으며, 삼육대 또한 전 세계 재림교회 대학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진정한 도전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의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 2015년 2월 학위수여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부터 당시 김상래 총장, 모세 마카 목사, 자넷 마카 사모, 김대성 당시 학교법인 삼육학원 이사장
─ 삼육동에서 어떤 캠퍼스 생활을 보냈나.
“추억이 정말 많다. 2012년 2월 말 아내와 세 자녀까지 온 가족이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 특히 삼육대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훨씬 발전되어 있었다.
영어권에서 생활하던 우리에게 언어 장벽은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우리는 한국어를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주변 모든 것이 온통 한국어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삼육대 공동체는 우리를 매우 친절하고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 특히 삼육대 국제교회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았다.
한국 체류 마지막 해에는 가족과 함께 경기도 안산시로 이사했다. 그곳 다문화가족센터에서 헌신적인 목회자인 김영수 목사님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외국인을 만나고 교류했다. 안산에서 최고의 친구들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었다.”
─ 당신에게 삼육대는 어떤 의미인가.
“삼육대는 나의 모교이다. 나를 훈련하고 준비시키고 키워줬다. 삼육대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박춘식, 이종근, 도현석, 하계상, 김일목, 클리프톤 메이벌리, 남대극, 유동기, 김상래 등 헌신적인 교수님들로부터 훌륭한 학문적 지도를 받고 긴밀한 교류를 했다.
특별히 박춘식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박 교수님은 2010년 우간다를 방문했을 때 내가 삼육대로 유학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영어에 매우 능통한 구약학자인 그와 우리는 매우 긴밀히 소통했고, 삼육대에서 공부하는 내내 나와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과 큰 격려를 보내줬다. 졸업 후 우간다로 돌아갔을 때도 삼육대 외국인 교수로 임용될 수 있도록 힘쓰는 등 나를 많이 믿어줬다. 박 교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 2015년 2월 학위수여식 후 모세 마카(가운데) 목사와 아내 자넷 마카(왼쪽) 사모가 박춘식 교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동문으로서, 연합회장으로서, 앞으로 삼육대와 어떤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싶나.
“우간다연합회 산하 고등교육기관인 부제마대와 삼육대가 긴밀히 협력하길 원한다. 부제마대는 삼육대와 자매대학이기도 하다. 기술, IT, 간호, 신학 등 분야에서 교류가 이뤄지길 바란다. 또 우간다연합회와 한국연합회의 협력도 기대한다. 내년 5월이나 6월 중 한국을 공식 방문할 계획인데 이를 위해 강순기 한국연합회장과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 끝으로 삼육대 구성원들에게.
“나의 모교인 삼육대에 곧 다시 방문하기를 고대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삼육대의 교육 사명이 계속 성공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지난 3월, 삼육대는 대학의 정체성을 담은 캐릭터를 발굴해, 홍보 효용을 높이고 구성원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캐릭터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다. 그간 개별 부서에서 캐릭터 혹은 굿즈 공모전을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대학 공식 캐릭터 발굴을 위한 공모전을 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학생, 교수, 직원, 동문 등 구성원을 대상으로 약 3주간 공모를 받은 결과 무려 36편의 작품이 접수되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후 1차 심사를 통과한 8편의 작품에 대한 온라인 투표 역시 교내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이 공유되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등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결과는 대상 없는 최우수상 두 작품. 다소 힘 빠지는 결과였다. ‘그래서 캐릭터 만드는 거야 안 만드는 거야?’ 물밑에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홍보위원회는 최우수상 두 작품에 대한 리디자인을 결정하고, 즉각 ‘캐릭터 리디자인 TFT’를 구성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종범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유화영 배수진 김유림 남혜린 박미나 학생
공모전 심사위원이자, 아트앤디자인학과에서 캐릭터를 가르치는 전종범 교수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여기에 최우수상 두 작품을 최초 개발한 유화영(이하 모두 아트앤디자인학과 4학년), 배수진을 비롯해, 공모전 입상자 박미나 남혜린, 그리고 캐릭터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김유림 학생이 참여했다.
TFT는 구성원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을 목표로 리디자인 작업에 착수했다. 개별 작품으로 응모된 두 캐릭터의 통일성을 구현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상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방대한 양의 스케치를 거쳐 기본형을 확정하고, 응용형, 이모티콘 개발, 3D 모델링 작업도 진행했다.
캐릭터가 완성되자 홍보팀은 10월 11일 개교 116주년 기념식에 맞춰 캐릭터 선포식을 준비했다. 공식 캐릭터 소개를 위한 티저영상을 제작하고, 수야, 수호 탈 인형도 첫선을 보인다. 재학생들에게 배포할 키링도 제작했다. 백주년기념관 인근에 캐릭터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조형물로 포토존도 마련한다.
교내외 홍보를 위해 가로등 배너와 캐릭터 제작 비하인드를 담은 인터뷰 영상도 SNS 등에 공개하면서 본격적인 캐릭터 홍보의 시동을 걸었다. 아울러 수야, 수호의 저작권 등록을 완료하고, 상표권과 디자인권 출원과 등록을 진행 중이다.
2월 28일 대학 공식 캐릭터 제작을 위한 내부기안 및 예산확보부터 시작해, 10월 11일 공식 선포까지 총 226일. 수야, 수호의 제작기를 QnA로 구성했다. 리디자인 TFT에 참여한 전종범 교수와 5명의 학생이 인터뷰에 응했다.
─ 공모전에서 대상작을 선정하지 않고 최우수상 두 작품을 뽑아 리디자인했는데. 이유는.
“두 작품 모두 우리 대학의 심벌(symbol)과 천사를 응용한 아이디어 발상이 돋보였다. 다만 수야는 대학 심벌을 응용한 기본 형태는 좋았으나 부분적으로 눈과 손, 상징 도구 등의 수정·보완 필요성이 대두됐다. 수호는 심벌과 천사를 결합한 아이디어는 좋은데 형태와 표현의 완성도가 아쉬웠다. 두 작품 모두 훌륭했지만, 대상작으로 선정해서 당장 활용하기에는 조금 아쉽다고 판단했다. 또 수야와 수호를 결합해서 활용할 때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리디자인을 결정했다.”
─ 한 작품이 아닌 두 작품을 함께 리디자인한 이유는. 수야와 짝으로 출품된 슈콩이가 빠진 것도 궁금하다.
“캐릭터 하나로는 학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카카오프렌즈는 7개, 라인프렌즈는 11개 캐릭터로 이루어져 있다. 캐릭터가 많으면 스토리를 구성하기 상당히 유리하고 활용도도 높다. 보통은 기본 2개를 잘 활용하다가 필요하면 추가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슈콩이를 배제한 이유는 콩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기에, 대학의 상징이 ‘두유’로 와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향후 필요시 서브 캐릭터를 몇 개 더 개발해서 다양하고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구성원 모두에게 사랑받길 바란다.”
─ 리디자인 작업의 가장 중점 목표는 무엇이었나.
“두 캐릭터의 형태, 선, 컬러에 대한 통일감을 바탕으로 우리 대학이 지닌 고유한 상징을 담아내려고 했다. 개발된 캐릭터가 구성원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목표였다.”
─ 팀을 꾸린 이유는.
“한 사람의 아이디어보다는 여러 명이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디자인 과정과 결과 도출은 디자인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큰 프로젝트나 중요한 작업은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 모여 팀 프로젝트로 문제점을 해결한다. 대학 캐릭터 개발 역시 큰 작업이다. 디자인 콘셉트 설정, 기본형과 응용형 개발, 이모티콘 개발, 3D 모델링, 가상 시뮬레이션 등 한두 명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팀을 구성했다.”
─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았나.
“전종범 교수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수야, 수호를 각각 최초 개발한 유화영 배수진을 비롯해, 이번 공모전 입상자 박미나 남혜린, 그리고 김유림 학생이 참여했다. 2D로 작업하는 기본형과 응용형 이모티콘은 김유림 배수진 류화영, 3D 모델링 작업과 가상 시뮬레이션 작업은 박미나 남혜린 학생이 수고했다.”
─ ‘캐릭터 공동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캐릭터의 기획, 아이디어 도출이 끝나면 엄청난 양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거쳐 기본형을 결정한다. 이후 다양한 응용동작(이모티콘)을 2D로 작업한다. 2D 작업이 마치고 나면, 3D모델링과 다양한 장소에 적용하는 가상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다음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조형물, 굿즈 등을 제작할 업체를 선정하고 미팅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여러 차례의 컨펌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 발견된 문제점은 수시로 피드백하면서 조정하는 작업단계를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 리디자인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총 45일 정도 걸렸다. 6월 말 팀을 구성해서 8월 중순까지 여름방학 내내 이 작업에 매달렸다. 주 3일 2시간씩 줌(Zoom)으로 컨펌하고 구상하고 브레인스토밍했다. 단톡방으로도 수시로 컨펌과 수정이 이뤄졌다.”
─ 대학 캐릭터로서의 상징성은 어떻게 구현했나.
“수야는 정직하며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신입생과 2학년을 상징한다. 기본형은 책과 하트를 들고 있는 것 두 가지인데, 각각 전문지식인과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기독교적 인간상을 반영했다.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의 자세를 보여준다. 또 우리 대학의 심벌을 머리와 옷깃, 가슴에 형상화했다.
수호는 미션·비전·열정을 갖춘 전인적 인재,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수호’천사의 의미로 3·4학년 및 동문을 상징한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데, 이는 선배로서 수야를 비롯한 후배들을 돌보고 보호한다는 의미다. 물론 영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또 수야(SUYA)와 수호(SUHO)의 이름 앞 글자 ‘수(SU)’는 Sahmyook University의 약자이다. 공모전 출품 당시 수야의 이름은 ‘슈아’였지만, 수호와의 통일성, ‘SU’의 상징성 그리고 발음이 어려워 수야로 변경했다.”
─ 이질적인 두 캐릭터의 통일성도 중요한 과제였을 것 같다.
“1~3초 안에 느낌이 와야 성공한 캐릭터다. 두 캐릭터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도 불편하다. 수야와 수호가 형제나 자매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같은 느낌의 선과 형태, 컬러로 디자인했다. 두 캐릭터 모두 대학의 심벌을 모티브로 개발했고, 영문 이니셜 SU, 천사와 책 등을 정리해서 대학의 상징을 담아냈다.”
─ 무엇보다 정말 너무 귀엽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순수한 표정의 어린아이,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등 동물의 새끼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보호 본능을 느끼고 호감을 갖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받는 캐릭터의 특성도 이와 다르지 않다. 1대 1 혹은 1대 2 신체 비율에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수야와 수호 역시 이 같은 요소를 기본으로 했다. 우리 대학의 심벌과 천사를 모티브로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형태에서 출발했다.”
▲ 수야, 수호 3D
─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나.
“(배수진 유화영)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로 재미있게 작업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나름의 수정사항을 생각해내고 그걸 그대로 반영하는 것, 매주 달라지는 내 캐릭터를 바라보며 의견을 내는 것 등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매주 회의가 기대됐다. 더구나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캐릭터를 창작하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까!”
“(전종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지도교수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모든 학생이 책임감을 갖고 즐겁고 성실하게 임했다. 116년의 역사를 가진 삼육대의 상징 캐릭터 작업에 참여한 것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
─ 결과물을 자평하자면.
“130여 개 대학의 캐릭터와 비교해보니 차별성이 있고 대학의 상징성도 잘 담았으며, 완성도도 높은 것 같다. 정부와 관공서, 대기업 등의 캐릭터 입체 조형물과 탈을 제작하는 업체에서도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 앞으로 수야와 수호를 어떻게 키워가야 할까.
“(전종범) ‘잘 키운 캐릭터 하나 열 아이돌 안 부럽다.’ ‘캐릭터는 아이의 출생과 성장의 모든 과정과 유사하기에 개발 후에 관리가 필요하다’.
캐릭터 강의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캐릭터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도 지어주고 목욕도 시키고 옷도 입히고 밥도 먹이고 교육도 받게 하고 여행도 보내주는 등 성인으로 자라기 전까지 많은 손길과 자금이 들어간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개발한 후에 방치하지 않고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관리하고 스토리를 개발해 나가야 한다.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제작, 스토리 공모전, 포토·애니메이션 공모전, 디자인공모전 등 학생들이 사랑할 수 있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입학, 졸업, 축제, 국내외 봉사, 선교 등 각종 행사와 뉴스레터, 입시 홍보 브로슈어, 대학 홈페이지 등에 개발한 캐릭터를 자주 노출하는 홍보 작업도 필요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애정을 주듯이 구성원 모두가 수야와 수호에게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수야와 수호가 단순한 상징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이어주고 우리가 꿈꾸는 대학의 이미지와 이상향을 캐릭터에 반영해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
“(전종범) 개교 116년 만에 대학의 상징 캐릭터를 제자들과 협업해 프로젝트로 완성하게 된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오래오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유화영) 내가 디자인한 수야와 배수진 학생이 제작한 수호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러 학우의 손을 거치며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며 매우 뿌듯했다. 수야와 수호가 우리 대학 구성원들에게 잘 활용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
“(배수진) 졸업하기 전 뭐라도 남기고 가자는 심산으로 시작한 캐릭터 공모전이 내 첫 공모전이 됐고, 이렇게 리디자인까지 하게 돼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꿈과 진로 방향도 정하게 해줬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자 기억이 됐다.
마지막으로 자랑스러운 수야와 수호야! 온전히 삼육대의 품속에서 태어난 너희들이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삼육대의 캐릭터로서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천사로서 학생들의 웃음과 열정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지금도 항상 사랑받고 애정 받는 캐릭터가 되길 바란다!”
▲ 한 손엔 교내 공모전, 다른 손엔 교외 공모전. 나상은 학생이 공모전 상장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나상은‘
지난 2020년 교내 공모전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이름 석 자가 어느새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공모전을 주최한 부서에선 ’또상은‘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각종 교내 공모전을 휩쓸던 그는 어느새 학교 밖까지 영역을 뻗쳐나갔다. 입학 후 불과 5학기 만에 수상한 교내외 공모전 수상실적은 무려 40개. 영역도 글쓰기부터 영상, 외국어(중국어)까지 종횡무진이다.
”상금으로 치면 웬만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거예요.“
대외활동도 한다. 삼육대 SNS기자단 SU-CREATOR를 비롯해, 학술정보원, 글로컬사회혁신원, 대학일자리본부, 교육혁신원, 대학혁신지원사업단 등에서 서포터즈 활동을 했다. 교외에서는 국무총리실 서포터즈, 서울대 임상약리학 전공 인턴, 서울시약사회 약대생 자원봉사를 거쳤다. 봉사활동 누적 시간은 350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공부량 많기로 유명한 약학과에서도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대체 비결이 뭘까. 굉장한 달변가이기도 한 그와의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녹취록 초안 분량만 A4 35매에 달했다.
공모전의 달인
─ 공모전을 시작한 계기는요.
”학창 시절에 제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공모전에 참가했어요. 단순히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보다는, 공식적인 경쟁 상황에서 권위자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이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할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엄격해지고 싶은 욕심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렇게 공모전에 나가다 보니 마치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제 성장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도 되고요.“
─ 공모전 영역이 글쓰기, 영상, 중국어까지 종횡무진입니다. 각 스킬은 언제 길렀나요.
”시작은 글쓰기 대회였어요. 중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원래 글을 되게 못 썼어요. 대회에 나가서 상 타오는 친구들이 부럽더라고요. 한번은 담임선생님께 왜 자꾸 떨어지는지 여쭤봤어요. 선생님께서 1등 한 친구 글을 보여주면서 글 쓰는 연습을 해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집에서 한 수십 번은 읽었을 거예요. 그 친구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정말 많이 읽고 따라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다음 교내대회에서 그동안 연습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동상을 탔어요. 주로 구성과 형식을 많이 참고했는데, 글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구성 안에서 내 생각을 녹여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수필부터 소설책, 신문 논설까지 다양한 글을 읽고 분석했어요. 역시 좋은 글에는 좋은 형식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꾸준히 대회에 나가다 보니 고등학생 때부터는 전국대회 1등도 여러 번 하게 되었고요.“
▲ 길이 4m나 되는 테이블을 가득 채운 각종 상장들. 모두 대학 입학 후 수상한 공모전이다.
─ 중국어는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국 친구가 있었어요. 제 목소리를 듣더니 중국어를 하면 너무 잘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웃음) 공부를 시작한 지 한 6개월 됐을 즈음 전국 단위 중국어 말하기 대회 공고를 봤어요. 상을 타든 못 타든 좀 더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거 같아서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하루 9시간씩 발음과 말하는 연습을 했어요. 정말 운이 좋게도 대상을 탔죠.“
─ 6개월 만에요?
”중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실수를 많이 하더라고요. 발음이 유창하지만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자꾸 원고를 보거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죠.
하지만 저는 발음이 조금 딱딱했지만, 중국인 친구에게 배운 대로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했어요. 준비한 원고 내용을 실수 없이 완벽히 소화했고요. 꿈에서 중국어 연습을 할 정도로 연습했으니까요. 물론 제가 상을 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몇 년씩 살다 온 친구들보다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제 이름이 대상 수상자로 호명돼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심사평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중국인 교수님께서 ’이 대회는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도 맞지만, 중국어를 즐길 수 있고, 또 미래 한중관계에 도움이 될 인재에게 상을 주는 것이 취지‘라고요. 대회 수상이 큰 원동력이 됐어요. 상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대회 2개월 뒤에는 HSK 6급에 무난히 합격했습니다. 지금도 중국어는 취미로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 영상은 왜 했나요.
”사람들이 선호하는 매체가 글에서 영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영상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어떻게 하면 영상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우리 학교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유튜브 영상 제작 강좌가 열렸어요. 프리미어 프로 쓰는 방법을 배웠어요.
며칠 뒤 제가 영상을 잘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 평가하려고 대회에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내 대회부터 도전했어요. 학술정보원에서 개최한 ‘29초 영화제’라는 대회였어요. 엄청 열심히 준비했는데 떨어졌어요. 그 뒤로 외부 공모전 3개를 더 나갔는데 다 떨어졌어요. 스스로 ‘나는 영상이랑 안 맞는 사람인가’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영상을 잘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던 중 학교 홍보팀에서 운영하는 SNS 기자단 SU-CREATEOR가 눈에 들어왔어요.“
─ SU-CREATOR 활동은 어땠나요.
”영상 툴을 배울 수 있고 고가의 장비도 써볼 기회여서 너무 좋은 활동이었어요. 무엇보다 영상 쪽에 의욕 넘치는 친구들이 많아서 함께 작업하고 회의하며 배울 수 있는 게 많았어요. 덕분에 영상 실력이 많이 늘었고 기획력도 더 탄탄해지다 보니 대회에서 상을 탈 수 있게 되었어요.
특히 팀을 꾸려서 나가곤 했는데, 제가 기획하고 아트앤디자인학과 친구가 영상을 만드는 식으로 분업하니 효율과 성과가 더 좋더라고요. SU-CREATOR 활동은 제가 영상 세계에서 성장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 경험이었습니다.“
▲ SU-CREATOR 활동 당시 ‘공모전 꿀팁’을 주제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기획만 좋아도 입선은 탄다
─ 글쓰기, 중국어, 영상 등 분야는 다르지만 공모전마다 공통으로 통하는 필승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획을 잘하고, 주최 측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대회에 나갈 때 어떤 기관인지부터 파악해요. 홈페이지에서 인사말부터 연혁, 주요사업 등을 다 읽고, 왜 이러한 대회를 여는지까지 반드시 파악해요. 그리고 대회에서 요구하는 주제에 맞춰서 자료 조사를 한 다음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생각해요.
지난해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주최한 ‘기초과학 홍보 콘텐츠 공모전’에 나갔을 때였어요. 역시 홈페이지에서 기관에 관한 모든 내용을 읽고 네이버 뉴스에 IBS를 검색해서 나온 기사를 다 읽었어요.
IBS는 우리나라의 오랜 염원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됐고, 그간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는데 아직 성과가 없다는 기사를 봤어요. 일반인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서 그런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거구나 하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주최 측에서 수상작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도 생각해봤어요. 마치 대회를 기획한 사람처럼요. 그 결과 금상을 받았어요.
기존 수상작 분석도 중요해요. 가령 말하기 대회라면, 너무 흔한 주제보다는 최근 이슈와 개인적인 경험, 아니면 요즘 말하기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랄지 트렌드가 있어요. 그런 주제와 소재를 잘 찾은 후 대회를 준비하면 분명 작은 상이라도 탈 수 있을 거예요.“
─ 수많은 공모전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서 지원하나요.
“자신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대회에 나가는 게 좋아요. 가령 제일기획 같은 광고회사나 아모레퍼시픽 등 소비재 기업 공모전은 선호하지 않아요. 상금 규모가 크고 권위도 있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광고 전공자가 아니면 상 타기 힘든 대회거든요. 제품이나 시장에 대한 이해도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요.
저는 주로 과학 관련 공모전에 나가고 있어요. 이과생에게 유리하고, 영상의 화려함보다는 내용에 대한 이해도와 기획 능력이 더 부각되는 대회이기 때문이에요. 아직 영상 제작 능력이 부족한 제게 더 적합한 대회라고 판단했어요.
스피치 대회는 한국어보다는 외국어 대회를 선호해요.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스피치 대회는 전직 아나운서들까지 참가하거든요. 아무리 많은 연습을 해도 수상이 쉽지 않겠죠. 하지만 외국어 대회는 노력 여하에 따라 수상 가능성이 더 커요. 특히 유학 경험 여부에 따라 ‘유학생부’, ‘국내부’로 나뉘는 대회도 있어서 경쟁이 비교적 공정하다고 볼 수 있죠.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만 나가기에 참가자 수가 그렇게 많지 않고요.”
▲ 나상은 학생이 자신의 수상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모니터 속 영상은 한국한의약진흥원이 대국민 공모로 주최한 ‘제2회 한의약 홍보 콘텐츠 공모전’ 출품작. 최고상인 최우수상(상금 200만원)을 받았다.
─ 요즘 유행하는 말로 ‘마인드 세팅’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실천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누군가 ‘너 이거 잘할 거 같아. 공모전 나가봐’ 했을 때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나중에 할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실 그 말은 영영 안 한다는 걸지도 모르거든요. 준비가 언제 될지 모르고, 또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잖아요. 진짜 하려는 사람은 그런 기회가 있으면 ‘정말? 한번 나가볼까?’하고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노력해요.
두 번째는 끈기예요. 누구든지 좌절을 맛보면 ‘나랑 좀 안 맞는가’ 하면서 포기하고 싶어져요. 그런데 저는 그럴 때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겨요. ‘내가 한번 될 때까지 해보겠어!’라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그렇게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성과를 내는 데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하지만, 좌절을 맛보고도 끝까지 하는 게 진짜 용기 아닐까요.”
─ 대외활동과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많은 약학과에서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고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동시에 많은 일을 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건가요? 시간관리 방법이 궁금해요.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는 게 중요해요. 내일에는 내일의 일이 떨어지고 모레는 또 새로운 일이 생겨요. 효율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습관이에요.
그리고 완벽하게 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도 필요해요. 한정된 시간 안에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가끔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라면서 하나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어요. 마치 4단계를 공부해야 하는데, 1단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돌아가는 것처럼요. 물론 완벽한 게 더 좋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약대생이 왜 공모전을 하냐고요?
─ 약대생은 학업에만 충실해도 졸업 후 전문직으로 종사할 수 있는 길이 보장돼 있습니다.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이 진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을 텐데요.
”‘그런 거 뭐 하러 해, 안 해도 되는데’라는 말을 솔직히 많이 들었어요. 물론 졸업 후 약사라는 직업을 고려하면, 굳이 공모전에 나가지 않더라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 성장에 도움이 되고 또 이것을 통해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이렇게 발전해나간다면, 언젠가 제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거고요. 예를 들어 어떤 제약회사에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약사를 찾는다고 할 때, 제가 그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겠죠. 미래 가능성을 생각하면 평소에 자기 발전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평범한 약사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
”학교에서 자랑스러워할 만한 약사가 되고 싶어요. 또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약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로 적은 금액이지만 매달 일정액을 학교에 기부하고 있어요. 살면서 처음 해보는 기부예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학교에 감사한 게 참 많아요. 여러 공모전에 나갈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우리 학교이고, 유능한 친구들 사이에서 발전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우리 학교잖아요. 교수님들로부터 약학을 배워나가며 약사의 직능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게 됩니다. 학업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고민하고 또 반성하게 됩니다. 기부를 실천하게 만든 것도 우리 학교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삼육대에서 몽골인 최초 재림교회 신학박사가 탄생했다. 올해가 몽골 선교 30주년을 맞은 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철먼바야르(Enkhtaivan Tsolmonbayar, 이하 처머) 박사는 지난 6월 삼육대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하고 19일 학위기를 받으며, ‘몽골인 1호 재림교회 신학박사(Ph.D)’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학위논문 제목은 ‘몽골 세계관의 기독교 세계관으로의 변혁 연구’(지도교수 김성익). 성서적 기독교 세계관과 몽골의 역사와 문화, 전통적인 가치관에 관한 연구 및 자료를 검토하고 취합하는 문헌연구를 기초로 한 목회선교학 논문이다.
1990년 소련이 몰락하면서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한 몽골에 종교자유가 회복되고 다양한 국가에서 기독교 선교사가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쳤다. 지난 30여 년간 선교사들의 헌신 아래 몽골에 기독교가 자리 잡고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몽골에 맞지 않는 선교사 본국의 기독교 형식과 문화도 유입됐다. 몽골의 문화와 세계관을 고려한 복음전파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몽골에서 기독교는 전통을 배척하고 외국문화를 숭상하는 외래 종교로 각인되었고 양적·질적 성장이 정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처머 박사는 논문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관 차원에서 복음의 상황화가 시급함을 진술했다. 선교사 본국의 문화 혹은 세계관이나, 몽골의 기존 종교에서 온 것들을 무조건 흡수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준에 따라 구분해서 몽골인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으면서도 가장 성경적인 문화와 세계관으로 변혁해야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박사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처머 박사가 한국에 온 것은 8년 전인 2014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한 대학(The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던 그는 고모를 통해 재림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몽골로 술람미 공연을 온 지금의 아내 주은혜(신학과 2009년 졸, 신대원 수료) 사모를 만나 결혼하고, 함께 한국으로 들어와 2014년 9월 삼육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석사(M.Div.)까지만 마치고 몽골에 돌아가 목회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도교수인 김성익 교수가 박사과정을 ‘강권’했다. “기회는 의무”라는 말이 무겁게 와닿았다. 박사과정을 할 수 있는 환경적 시간적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공부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몽골 재림교회를 위해 학위를 따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된다는 의미였다.
외국어(한국어)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MBTI가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라서 그런지 체질적으로 온종일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며 “어쩔 수 없이 참고 앉아서 하다 보니 나중에는 12시간씩도 할만하게 적응이 되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 처머 박사(오른쪽)와 주은혜 사모(왼쪽), 두 딸
삼육동에서 지내는 동안 가족도 늘었다. 첫째 딸은 석사과정 입학 직후, 둘째 딸은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낳았다. 아이들에게는 삼육대 캠퍼스가 평생을 살아온 고향인 셈. 2015년에는 교내에 몽골인을 위한 새생명몽골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처머 박사는 지난 8년간의 유학 생활을 돌아보며 “천사 같은 분들께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시듯 많은 분들이 저를 계속 먹이고 살리고 도와주시고 따뜻한 손길을 보내주셨다. 특히 지도교수님이신 김성익 교수님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외국인임에도 거리낌 없이 대해주고 동생처럼 챙겨준 원우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도와 지혜, 돌보심 없이는 이 어려운 학업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연구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함께하셨음을 고백한다”고 덧붙였다.
목사·교수·사감까지 ‘1인 3역’
몽골합회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처머 박사는 학위기를 받은 지 불과 이틀 뒤인 21일 곧장 출국길에 오른다.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몽골 선교 30주년 기념 전도회를 주관하고, 이후 울란바토르에 있는 바양헤르교회를 섬기게 된다. 또 몽골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신학교 학부과정 강의를 맡아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울란바토르 재림교인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 사감으로도 수고하는 등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을 보낼 예정이다.
처머 박사는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깨달은 것은 이제 겨우 무한한 지식의 시작 부분에 서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다 배워서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알아야 할 많은 것을 어떻게 스스로 공부할지를 배우고 졸업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그는 “특별히 몽골 대학생 선교에 집중하려 한다”면서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했던 것처럼 몽골 청년들을 영적인 세계 정복을 위한 훌륭한 군사로 훈련하는 일에 쓰임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육대 세계선교센터는 처머 박사와 주은혜 사모를 ‘SU-헤럴드(HERALD)’로 위임하고 장학금을 전달했다. SU-헤럴드는 삼육대에서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을 선교사로 위임하는 제도다. 김일목 총장은 “삼육대 외국인 동문으로서 명예로운 사역을 이어가고, 지속적인 선교 네트워크 기지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삼육대 창업동아리 국제화연구소(대표 오준재)가 개발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Korealife Medic(이하 KLM)’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2’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본상(Winner)을 받았다.
KLM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는 ‘비영어권 이주민(이동인구)’을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다.
비영어권 이주민은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가벼운 증상에 적합한 일반병원에서 진료받고 싶어도 통역 인력이 없는 일반병원에서는 언어서비스가 제공되는 대형병원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 관리기관에 통역사를 요청해 담당 통역사를 배정받아야 하는데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이 과정에서 치료가 지연되거나, 혹은 배정된 통역사가 이주민의 문화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료체계가 달라 정확한 의료 통역이 어려운 등 문제가 적지 않다.
KLM은 이러한 문제 없이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 픽토그램 △글로벌 의료 지도(Health Map) △영상 의료 통역 등 솔루션을 제공한다.
환자는 증상에 따라 직관적인 의료 픽토그램을 선택해 문진표를 작성할 수 있다. 증상에 맞는 의료기관을 필터링하고, 추천·접수가 가능한 의료 지도 시스템도 갖췄다. ‘이주민 선배’를 영상통화로 빠르게 연결해 전문성 있는 의료 통역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처럼 KLM은 이주민의 의료권 보장이라는 비전과 핵심가치를 담아낸 디자인 서비스 프로젝트인 만큼, 다양한 문화권의 사용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직관적이고 명료한 UI(사용자환경)와 빠르게 병원을 찾아 내원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고 간결한 UX(사용자경험) 디자인을 구현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환자를 안정시키는 차분하면서 경직되지 않은 ‘KLM Trust Blue’를 메인 컬러로 사용하고, 이용자의 시선이 의료 아이콘에 집중될 수 있도록 서브 컬러는 최소화했다. 전용 서체는 중립적이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고딕체 ‘Helvetica Neue‘를 활용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모바일 환경에서 다양한 언어로 정확한 의료정보 전달이 가능하도록 가독성을 높였다.
전체적인 비주얼은 브랜드 로고의 모티브인 ‘원’에서 확장되는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의료 픽토그램에 적용해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쉽고 친근한 의료 서비스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 왼쪽부터 김동은(아디과 21학번) 디자인 보조, 김지민(아디과 20학번) 서비스 디자인(팀장), 김덕주(컴메카 17학번) 개발팀원, 송은주(아디과 18학번) 브랜드 디자인, 박건형(컴메카 17학번) 개발팀원, 오준재(컴메카 18학번) 대표, Saurav Tanwar(컴메카 18학번) 개발 설계(팀장)
김지민(아트앤디자인학과 21학번) 디자인 팀장은 “KLM의 디자인적 특징은 보는 사람이 편한 심플하고 정제된 디자인,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장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친절하고 사용자 중심적인 디자인, 유연하고 밝은 디자인”이라며 “이번 레드닷 수상은 삶의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이주민 문제를 발견하고, 고객의 건강하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 차별화된 디자인 솔루션을 기획하고, 디지털 서비스로 잘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KLM은 오는 9월 공식 런칭을 앞두고 막바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외국인을 위한 의료 지도를 정비하고 있으며, 베트남 거주 한인을 위한 현지 의료 지도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와 협업해 대학 어학당과 공장을 대상으로 한 보험 상품도 기획하고 있다.
오준재(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소프트웨어전공 18학번) 대표는 “이번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뿐만 아니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 모두 도전해 검증된 글로벌 디자인 서비스로 인정받고, 인포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의료의사표현의 세계적 표준이 되고자 한다”며 “KLM의 디자인과 서비스로 전 세계 모든 이주민(이동인구)이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1955년부터 독일에서 개최되는 국제적인 디자인 시상으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관한다. 미국 IDEA,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와 함께 세계 3대 산업 디자인상으로 꼽힌다.
▲ 엘리아잘 페니튼 박사. 지난 2월 202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교내 백주년기념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삼육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필리핀 유학생이 모국의 대학교수로 임용됐다.
지난 2월 삼육대 대학원 융합과학과 생명과학전공 석박사통합과정을 마친 엘리아잘 페니튼(Eliazar Alumbro Peniton Jr) 박사는 8월 1일 자로 필리핀 마운틴뷰대학(Mountain View College) 생물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페니튼 박사는 2015년 마운틴뷰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생명과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삼육대 김현희 교수 연구팀에서 학업과 연구를 펼치기를 희망해 지난 2018년 한국행을 택했다. 2022년 2월까지 김 교수 연구팀에서 분자세포유전학(molecular cytogenomic)과 식물조직배양(plant tissue culture)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며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페니튼 박사는 한국유전학회 국제학술대회를 비롯해 17회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논문을 발표하며, 최우수논문상, 포스터상, 구두발표상을 다수 수상했다. 한국연구재단과 농촌진흥청 등 김 교수가 수주한 정부 연구과제에 연구원으로도 참여했다.
삼육대 대학원 졸업 후에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유수의 대학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필리핀으로 귀국한 뒤 모교인 마운틴뷰를 택했다. 모국과 모교의 교육·연구 발전에 헌신하고 싶다는 결심이었다.
페니튼 박사는 “마운틴뷰대는 필리핀에서 식물 세포유전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면서 “이 목표를 실현하도록 돕고 싶다. 또 다른 모교인 삼육대와도 적극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 엘리아잘 페니튼(오른쪽) 박사와 김현희 지도교수. 지난 2월 삼육대 202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페니튼 박사는 석박사 학위를 받을 기회를 준 삼육대에 “영원히 감사하다(forever grateful)”고 전했다. 그는 “저를 유능하고 자립적이며 비전 있는 전문가로 키워주시고 훈련해주신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김현희 교수님은 학업에 매진하는 동안 끈기 있게 멘토링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삼육대에서의 경험은 제 인생을 바꾸고(life-changing), 영혼을 고양하는(soul-uplifting), 소중한(cherishing) 경험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반드시 이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페니튼 박사의 지도교수이자 부총장 겸 대학원장인 김현희 교수는 “삼육대 대학원에는 인도, 몽골, 필리핀, 베트남, 이라크, 카메룬, 우간다, 가나, 우즈베키스탄, 튀르키예(터키) 등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유학생이 공부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모국의 전문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돕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캠퍼스의 낭만은 있었습니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줌(Zoom)을 통해 혹은 동아리방에서 소규모로 모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대학 기타동아리 ‘클래시아’ 이야기입니다.
클래시아는 설립년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유서 깊은 동아리인데요. 기존에는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에 한정해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합주팀 제도를 도입해 베이스, 일렉, 키보드, 드럼, 보컬까지 포용하며 스펙트럼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이처럼 시대에 맞춰 매년 변화하는 게 클래시아만의 매력입니다. 중요한 건 장르나 악기가 아니라 ‘낭만’이니까요.
클래시아 회장 임국빈(상담심리학과 18학번) 학우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대학생활 동안 꼭 기타를 배우고 싶다”라는 한 지원자의 지원동기에 낭만을 느끼고, “낭만 하나는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감성의 소유자. 기타동아리 회장다웠습니다.
악기를 못 다뤄도 괜찮아요
– 클래시아는 어떤 동아리인가요?
“삼육대의 대표 기타동아리입니다. 저희 동아리는 설립년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동아리인데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이해를 넓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클래시아(classia)라는 이름은 ‘classic’(고전) ‘music’(음악)에서 따왔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위해 ‘sia(시아)’라는 접미사를 붙였다고 합니다. 현재 회원은 50여명입니다.”
– 악기 연주를 못 하는데 들어갈 수 있나요?
“저희 동아리 선발 기준은 ‘음악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특별한 자격요건은 없어요.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환영합니다! 악기를 못 다뤄도 강좌팀에서 다 가르쳐줘요. 동아리방에 공용 기타를 5대나 구비하고 있어서 악기가 없어도 활동할 수 있고요.”
– 정규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강좌팀과 2개의 합주팀으로 나눠서 활동하고 있어요. 먼저 강좌팀은 제가 맡고 있는데요. 기타를 처음 접하는 사람 위주로 강습을 진행하고 있어요. 동아리방에서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합니다.
합주팀은 지난 학기에 처음 도입했어요. A, B팀으로 나눠서 2주에 한 번씩 합주를 해요. 합주팀에 들어가려면 일단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어야겠죠. 통기타, 베이스, 일렉, 키보드, 드럼, 보컬 등으로 구성돼 있어요. 악보를 보면서 혼자 연습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강좌팀에서 실력이 늘면 합주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요. 학기 시작 전과 신입부원 모집 후 합주팀을 재구성하는데 이때 신청하면 돼요. 이 외에도 콘서트, 뮤지컬 관람 등 다양한 음악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직 모든 부원들이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팀별로 보면 모두가 적극적이고 음악을 즐기는 분위기예요.”
클래식 기타 넘어 합주까지
– 코로나 시기에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제약이 많았죠. 5인 이상 사적모임이 금지됐을 때는 줌을 활용해 기타 강좌를 하거나, 4명으로 제한해 합주를 했어요. 2020년 2학기부터 2021년 1학기까지 두 학기 동안은 신규 회원을 모집하지 않기도 했어요. 기존에 있던 친구들마저 한두 명씩 떠났어요. 동아리 특성상 대면활동이 많은데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는 수준까지 돼버렸죠.
그러다 2021년 2학기 모집을 재개했는데 많은 학우 분들이 지원해주셨어요. 이번 학기에도 지원자가 30명이나 돼서 공백을 채워가고 있죠. 지금은 위드 코로나가 되면서 정기 활동에 제약은 거의 사라졌어요.”
– 합주 제도를 코로나 시기에 도입했다고요.
“기존에는 클래식기타와 통기타를 중심으로 하면서 콘서트나 공연 관람 등 친목활동 비중이 컸어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친목활동을 할 수 없으니, 전반적으로 동아리가 많이 위축됐어요. 쉽게 말하면 할 게 없어진 거죠.
고민을 하다가 지난 학기에 처음으로 합주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어쿠스틱 기타뿐만 아니라, 베이스, 일렉, 키보드, 드럼, 보컬까지 포용해서 최대한 많은 회원들이 음악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회원들의 만족도가 정말 높아졌어요. 저희 동아리는 신규 회원이 많이 들어오지만, 나가기도 많이 나가는데, 합주팀 도입 이후 지금까지 탈퇴한 회원이 단 2명에 불과해요.”
– 이번 학기 동아리 운영 목표는요?
“대면활동이 가능해진 만큼, 합주와 연습 등 본연의 음악활동을 활성화 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그리고 연말에는 버스킹이나 외부 공연장에서 공연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아 그리고 최근에 저희 클래시아 홍보영상과 뮤비를 찍었는데요. 고퀄리티의 합주 영상이 곧 유튜브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어떤 곡이냐고요? 아직 비밀입니다! ㅎㅎ”
– 마지막으로 동아리 자랑
“클래시아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는 끝내줍니다! 낭만도 보장할 수 있죠. 그리고 아주 큰 동아리방을 사용하고 있어요. 대학생활을 하면서 오래오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클래시아로 오세요.”
▲ 김인옥(왼쪽) 교수와 정현철 교수 부부. 지난 2020년 8월 김인옥 교수의 박사학위 수여식 날 정현철 교수가 함께 축하해주며 기념촬영을 했다.
삼육대가 우리나라 최초의 ‘부부 간호학 교수’를 배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정현철 삼육대 간호대학 교수와 이번 학기 문경대 간호학과 교수로 임용된 김인옥 교수 부부이다.
남편 정현철(83학번) 교수는 1987년 삼육대를 졸업한 후 건국대병원 수술마취과에서 11년간 근무했다. 한양대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주대 겸임교수와 강동대 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모교인 삼육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 교수는 삼육대 입학관리본부장과 간호학과장을 역임했다. 현재 노인간호학, 해부학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기본간호학회, 한국간호시뮬레이션학회, 대한근관절건강학회 등 다수의 학회지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서울시노인간호사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간호대학남자교수회 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아내 김인옥(87학번) 교수는 1991년 삼육대를 졸업하고, 삼육서울병원에서 31년간 근무하며 간호부 주임과 보험심사부 과장을 지냈다. 조산사 면허 보유자이기도 하다. 삼육대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월 문경대 간호학과 교수로 임용돼 시뮬레이션 실습과목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학과 선후배이지만, 정 교수가 졸업한 해에 김 교수가 입학하면서 학부생활을 같이하진 않았다. 대신 졸업 후 교회에서 만나 1년 6개월여 열애 끝에 1992년 결혼했다.
공부는 남편인 정 교수가 먼저 시작했다. 두 자녀의 양육과 경제활동 때문에 김 교수가 양보했다. 2008년 정 교수가 삼육대 교수로 임용되며 안정을 찾자, 김 교수는 이듬해인 2009년부터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양육과 남편 공부 뒷바라지를 했고, 자녀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남편이 그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편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늦은 나이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교수직 제안이 왔을 때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적극 응원해준 것도 남편이었다.
교수로서 새 출발하는 김 교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몸을 낮추며 “삼육대 석박사 시절 지도교수님들의 학생 한명 한명을 향한 애정과 열의를 본받고 싶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부부가 함께 간호사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참 각별하고도 소중한 인연”이라며 “이제는 교수 동료로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미래 간호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