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터뷰] 삼육대 기술지주자회사 ‘앤투비’ 박명환 교수

나노버블+약물전달+초음파 조영방식 최적화로 기존 한계 극복

차세대 약물전달시스템을 개발해 주목 받고 있는 박명환 교수(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는 삼육대학교 기술지주자회사 ‘앤투비’를 창립한 이유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꼽았다. (관련기사▷삼육대 기술지주자회사, 나노버블 기술로 약물 효과성 높여 ‘의료계 주목’)

앤투비의 보유기술은 나노버블과 초음파 조영방식을 활용해 약물 전달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차세대 약물전달시스템.

박 교수는 이와 관련 “나노버블, 약물전달, 초음파 조영방식이라는 세 가지 기술이 조화롭게 최적화되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17년 마이크로 및 나노버블을 활용한 미세버블 산업을 접하고, 관련 기술을 바이오 소재 분야에 빠르게 적용해 현재까지 10여건의 특허를 국내·외에 출원 및 등록했다. 차세대 나노버블기반 의약품 전달시스템의 기술사업화 과제를 수주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5년간 약 15억을 지원받아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초음파 조영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농도의 약물과 나노버블이 함께 담지된 약물전달체를 개발했다.

그는 “초음파 치료는 장점이 많다. 절개를 하지 않아 출혈도 없고 흉터도 없다. 비수술적이며 굉장히 환자 친화적인 치료다. 수술 없이 초음파의 국소적인 조사에 의해 발생된 열로 암세포를 괴사시킨다. 그러나 확인하기 어려운 암세포까지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약물치료까지 진행하면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고농도의 약물과 고농도의 버블을 한 입자 안에 함께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이러한 마이크로 크기의 약물담지체는 기존보다 수천억 배 고농도의 약물을 함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입자 안의 수천 개 버블이 외부 초음파에 동시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전달 효용성은 더욱 뛰어나며, 그 조영효과도 향상시킨다”고 부연했다.

▲ 박 교수가 개발한 나노버블 약물 전달체가 뇌에 투과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최근 뇌에 약물이 전달되는 것을 제한하는 뇌혈관막 (BBB)에 초음파를 주사하면 막이 열리는 현상이 일어나 약물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및 임상결과가 다수 발표됐다. 앤투비가 개발한 고농도 약물을 함유하는 조영제 기술을 적용하면 다양한 뇌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박 교수는 “치료가 어려운 뇌질환 분야에 해당 기술의 가치가 최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뇌 질환에 이 기술이 적용되기 위해는 보다 많은 노력과 실험이 오랫동안 필요하다. 때문에, 쉽게 초음파를 적용할 수 있는 유방암, 췌장암 분야에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박 교수와 연구팀은 빠른 기술사업화 추진을 위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고급 화장품인 더마코스메틱(Derrmocosmetic, 약국 화장품) 분야에 해당 기술을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그는 “나노버블과 함께 입자화된 의약품은 기존 제품보다 피부 투과도가 뛰어나며 인체에 무해한 공기와 산소만을 적용했기 때문에 효율성과 상품성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이 기술은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에 노화방지, 미백, 재생 등과 같은 다양한 소재와 함께 확대 적용될 수 있다”고 장점을 부각했다.

아울러 “현재는 화장품만 단독으로 상용화 할 생각이다. 1~2년 뒤에는 초음파 미용 장비와 함께 상용화를 추진해 토탈케어를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4~5개의 화장품 파트너 기업들과 함께 올 하반기부터 관련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박명환 교수는 특히 삼육대대학원 졸업생을 직접 고용해 적재적소에 배치시킴으로써 기업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그를 직접 가르친 교수다. 그런 면에서 이들을 직접 고용해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배치하면 학교와 함께 공동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앤투비는 삼육대에 기반을 두고 진행하는 회사다. 삼육대학교 학생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바이오생명공학 회사로 발돋움하고 싶다. 또한 업계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첨단기술 기반형 바이오생명공학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그는 향후 연구계획에 대해 “현재 바이오 소재에 대한 연구, 나노버블을 활용한 기술 적용, 현대자동차와 베어링의 마찰 마모를 최소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연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63&item=&no=21171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만남’입니다. 이미 상당히 검증된 사상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인격과의 만남이 제게는 독서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 일을 가장 잘 해냈던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미 이 땅에 없는 사람의 지혜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그들의 책을 읽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한 만남을 원한다면 독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Q. 청춘은 자아형성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청춘 시절 어떤 책에 영향을 받으셨나요?

“위인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알고 존경하는 슈바이처와 관련한 책을 특히 많이 읽었습니다. 슈바이처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어린 나이에 삶에 대해 상당히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공과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받은 인물입니다.

슈바이처의 대표적인 저술로 잘 알려진 <나의 생애와 사상>뿐만 아니라, <슈바이처의 유산>이라는 책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미국 재벌가의 상속자였던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는 슈바이처에게 영향을 받아 서른일곱 나이에 의대에 들어가고, 평생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에 헌신합니다. 그가 슈바이처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입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때는 제인 애덤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헐하우스(Hull House)’라는 복지관을 설립하고 매우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회복지 실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도시 빈민층에게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면서 평등하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애덤스의 사상은 나중에 세계평화운동으로 확장됐고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습니다.

국내에는 <헐하우스에서 20년>이 애덤스의 책 중에는 유일하게 번역 출간돼 있습니다. 해외 서적은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The House That Jane Built>라는 그림 동화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인 애덤스의 삶과 업적이 그림으로 잘 나와 있어서 수업시간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음속으로 사숙(私淑)하는 위인들의 책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구매해서 읽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슈바이처와 제인 애덤스 관련 책은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사상서나 인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책에 끌리신 걸까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지금도 제가 맞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위대한 선배들의 삶은 그의 사상과 더불어 우리에게 의미와 지혜를 줍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그 인물의 삶 속에서 어떻게 체화되고 실현되었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생 때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지요. (웃음)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비평과 함께 당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을 분석한 월간지였는데, 가장 흥미롭게 많이 읽었던 책입니다. 창간호부터 22호까지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 중 특별히 장애인 운동에 관심을 두고 활발히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합니다. 친구 중에 장애인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을 따라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야학운동을 하고,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장애보다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령 기지촌 여성이랄지.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관심을 가진 부분이었고, 결국 주변에 계속 형성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었기에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2000년대 초 ‘자립생활운동’이라는 활동을 했습니다. 기존에는 장애인 문제가 장애인 당사자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었죠. 장애인이 재활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립생활운동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고 당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관련 센터가 200여 개가 생겼고 국가 정책에도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같이 활동했던 운동가들과 여러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사회복지학자로서 혹은 실천가로서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신체장애인보다 인지적·지적 발달장애인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치매 노인,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발달장애인, 인지적 능력이 전혀 없어서 우리가 이성적인 존재라고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우리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방법은 뭘까, 이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많은 지적 장애인이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돼 시설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설을 없애자는 것이 요즘 장애인계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국가에서는 이미 장애인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를 확대하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이러한 커뮤니티 케어를 뛰어넘는 ‘커뮤니티 리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케어’는 그 주도성이 제공하는 쪽에 있지만, ‘리빙’은 장애인을 주체로 세우고 우리 사회의 한 시민으로 초청하는 개념이지요.

케어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회적 약자가 의존적으로 존재할 때 이를 제도와 공공자금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은 어느 선에 가면 불가능해질 겁니다. 장애인 스스로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나갈 수 있는 공동체가 발현돼야 한다는 것이죠.”

Q. 교수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수님처럼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봤을 때 마음과 몸이 움직여질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슈바이처나 제인 애덤스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더구나 요즘처럼 갑질과 막말, 차별,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교수님의 말씀이 일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이 너무 냉소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엄청난 공감 능력이 있다거나,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주변 사람과 제가 속한 사회의 한계를 보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사회복지를 시작했고, 그것이 우연히 연결돼서 장애인 문제까지 이어진 겁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다시 보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우리 스스로가 지키기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 나이가 80이 되는 2050년 정도가 되면 우리나라에 65세 이상 인구가 38%가 됩니다. 지금은 15% 정도인데, 배가 훨씬 넘는 인구가 노인이나 사회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분들이 되는 거죠.

그들의 의존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자립, 독립, 어떤 남성적인 성취, 이런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향했다면, 앞으로는 의존, 관계, 돌봄 이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면 우리가 나이 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전혀 우리 삶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의존’이라는 것이 이전에는 예외적인 현상이었지만, 이제는 ‘독립’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상황이 되는 거죠.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적 의존 속에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돌봄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죽을 때도 우리는 철저히 의존적인 존재로 죽기에 오히려 의존이라는 조건은 우리 인간에게 익숙하고 굉장히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 속에 본능적으로 흐르고 있는 돌봄, 다른 사람을 돌보려 하는 본능이 우리 사회에서 깨우쳐지지 않으면 향후 엄청나게 많은 돌봄이 필요하게 될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돌봄이라는 것을 어떤 ‘좋은 일’ 혹은 ‘선한 일’ 같은 막연한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닥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공감 능력은 필수로 배양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Q. 다시 책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앞서 독서는 교수님께 ‘만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삼육대학교 청춘들이 독서를 통해 어떤 만남을 갖길 바라시나요?

“가치 혼란의 시대입니다.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이럴 때 검증된 누군가, 신뢰할만한 누군가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특권입니다.

3~4년 전 한 남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건장한 친구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냥 이 방에 들어오고 싶었고, 그냥 자기는 눈물이 나와서 울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독서라는 것은 그런 대상자를 찾아가는 경험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이나 동료가 있으면 찾아가서 이야기하듯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 않고 이미 선대에 살았던 사람을 찾아가는 방법은 책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독서는 젊은 시절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경험입니다. 특히 고전, 이미 수백 년 동안 검증된 인물,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접하는 것은 청춘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재영 교수의 ‘추천 책’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NOT FOR PROFIT>
마사 누스바움 저, 우석영 역, 궁리

교육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되묻는 책입니다. 공부 그리고 교육은 돈을 벌기 위한, 이윤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교양과 인문학에 더 매진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이 같은 ‘생각의 전환’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요즘 청년을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첫 세대라고 하죠. 물질적으로 움츠러드는 시대에 오히려 이러한 책을 통해 여러분의 미래를 계획했으면 좋겠습니다.


<경험과 교육>
존 듀이 저, 강윤중 역, 배영사

일방적인 텍스트 전달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지식을 재구조하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을 진정한 학습이라고 해야 합니다. 학생이 주인이 되는 교육, 교육의 민주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처럼 교육의 포인트가 제공자에서 학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굉장히 얇지만, 사고와 의식을 바꾸는 책입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교육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넬 나딩스/로리 브룩스 저, 정창우 김윤경 역, 풀빛

우리는 논쟁을 이기기 위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논쟁은 새로운 출발을 이루기 위해 상대에게서 나의 관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에서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자신의 입장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개발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학교 교육과도 조응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르지만, 교육과 관련한 세 권의 책을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삼육人] 마음의 고향 삼육동에서…’온 길’과 ‘갈 길’을 찾습니다

미주 총동문회장 오충환 목사 인터뷰
‘개교 113주년·캠퍼스 이전 70주년 맞아’ 모교 방문

△ 미주 총동문회장으로 임기 1년을 보낸 오충환 목사. 지난 10월 삼육대학교 홍보팀과의 인터뷰에서 “각 지역별 동문 네트워크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모교를 돕고,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해외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올바른 뜻과 인성을 갖추면 전 세계 어디서든 살아갈 길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대학에서 그 바탕을 갖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충환 목사(신학과, 1976년 졸)는 지난해 9월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린 미주지역 총동문회 총회에서 제5대 회장에 선출됐다. 모교 개교 113주년 및 캠퍼스 이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해외 동문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그는 “가을에 오니 캠퍼스와 푸른 하늘이 매우 맑고 좋다.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정말 많이 바뀌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3년 임기의 첫 해를 보낸 그는 삼육대학교 홍보팀, <동문회보>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미주 총동문회 중점사업과 향후 활동계획을 소개했다. 10월 10일 개교기념일, 백주년기념관 총동문회 사무실에서 오충환 목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미주지역 총동문회장에 선출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당시 제가 담임을 맡고 있는 로마린다 한인교회가 한창 건축 중에 있었습니다. 13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준비하고 시작한 건축이었습니다. 220억 원이나 되는 큰 재정을 들여 미국 한인재림교회 가운데 가장 큰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뜻하지 않은 직임을 맡게 돼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소식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사실 그날 저녁 집에 가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나이나 경력으로 보나, 섬기는 사역으로 보나 저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시점에 나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실까’ 고민이 컸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삼육대학교 미주총동문회장은 회원들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부담이 참 많았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해되지 않고,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을 신뢰하고 전진했을 때, 그분은 언제나 제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그 일 때문에 나를 거기 세워두시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걸 찾아갈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직임을 수락했습니다.”

Q. 미주 총동문회의 중점사업을 소개해 주십시오.

“사무총장이 해외로 출국했다가 지난 5월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30여명이 참석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조직을 정비하는 일이 먼저여서 임원구성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분들이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삼육대학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제일 먼저 동문 회원들의 소재 파악과 주소록을 정리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지역 목회자들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미국의 한인들은 교회 단위로 움직이기에 목회자를 중심으로 책임자를 정했습니다. 그들과 연계하는 협조망을 구축해 일차적인 소통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둘째는 장학사업 활성화입니다. 모교와 협력을 이루기에 가장 명분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 동문들은 교포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 위주로 움직입니다. 크게 남가주, 북가주, 워싱턴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서로 만나 협의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다른 곳은 모여서 협의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맞는 사업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선 각 지역의 동문들이 서로 협의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려 합니다.”

Q. 동문들의 교류 활성화를 위한 방법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습니까?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총동문회 운영 방식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협조를 요청하고 권한을 많이 위임해 외연을 확장하고, 질적 보편성을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남가주와 북가주를 비롯해 시애틀을 지역동문회로 만들어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문회장이 적극 개입해 지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지역별로 조직을 구성해 움직이도록 할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대학의 사업을 위해 모인다고 하면 동기가 약할 것입니다. 좋은 이슈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학생들에게 뜨개질로 장갑을 떠오라고 하고 재료를 나눠줬습니다. 아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을 때는 거절하거나 시큰둥했는데, 한센병 환자촌에 가는 거라고 하니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래 100개가 목표였는데, 250개나 모았습니다.

우리의 설립이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 또는 협력네트워크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로 접근해야 합니다. 동문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성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요, 그 과정에서 대학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육대학교’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모교를 돕고 우리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역하면서 말씀이 드러나는 일을 하면 그 결과로 교회나 학교가 축복을 받게 됩니다.”

Q. 현재 모교는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기 위해 ‘글로리 삼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하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학교가 양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저희가 다닐 때만해도 한국인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일본, 중국, 몽골, 인도, 베트남 등 전 세계에서 많은 유학생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모교를 보는 것 같아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때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외국인학생들에게 우리 대학은 종점이 아니라, 그들의 꿈을 찾아 거쳐 가는 과정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무척 발전했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 삼육대학교가 ‘종점’이 될 수 있거나 또 다른 신앙적인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길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모교의 ‘K-Move 스쿨(해외취업연수사업)’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만 20여명의 학생이 미국 진출의 꿈을 이뤘습니다. (관련기사▷‘K-Move 스쿨’ 수료생 전원 美 기업 취업) 어떻게 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고 정착할 수 있을까요?

“우리 때에 비해 언어적인 문제는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전에 많은 정보를 얻어 준비를 꼼꼼하게 잘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인성입니다. 언어가 유창하지 않고, 정보가 좀 모자라도 인성이 바탕이 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언어나 정보는 시간이 흐르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온 한 학생이 어느 날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진리를 깨닫자 자기 주변 친구들을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2년이 넘도록 지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사업가들이 깊이 감동했습니다. ‘저런 성실한 학생이라면 함께 일해도 좋겠다’고 생각해 자신의 회사에 취업시켰습니다. 그분은 거주문제도 다 해결되어 이제는 회계담당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올바른 인성과 신앙을 갖추면 꼭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말씀드리죠. 이민2세 재림교인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법학대학을 다니면서 한 변호사 사무실에 인턴실습을 나갔습니다. 정식 출근시간이 오전 8시인데, 그는 7시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대표변호사가 7시50분에 출근하는데, 그를 맞이하는 첫 번째 직원이 언제나 그 청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던 대표가 시간이 흐르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실습생이라는 사실을 안 그가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정식으로 급료를 받고 일하는 인턴을 제안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인턴에게 돈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 예를 더 들겠습니다. 역시 우리 교회 교인 아들입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실습 과정은 무척 피곤하고 힘듭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실습 기간 중 쉬는 날에도 병원에 갔습니다. 잡일도 하고, 스텝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살갑게 지냈습니다.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누구와도 친근하게 어울리며 밝고 긍정적으로 일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그 병원의 정형외과에서 그를 뽑아갔습니다.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약속을 소홀히 여기고, 인성이 그릇된 사람은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스펙이 좋아도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Q. 학창 시절 삼육대학교에서 얻은 최고의 자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고백컨대, 저는 이 대학에서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실 때 사랑으로 가르치신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리고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품행이 바르거나 신앙심이 깊은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많고, 경솔했습니다. 그러나 스승님들이 그런 저를 사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고 박해종 교수님의 수업이 생각납니다. 한번은 감기에 걸린 몸으로 3시간 연강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건강이 좋지 않으니, 쉬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쉬라고 말씀하시며 강의를 하셨습니다. 굳이 수업을 하지 않으셔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교수님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편찮으신 중에도 저희를 가르치시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그렇게 지도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달하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본인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기에 저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학교가 정말 좋습니다.”

Q. 끝으로 모교와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이 대학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기본을 잘 준비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자신의 전공과 삶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갈 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바탕을 잘 갖추길 바랍니다. 그게 학문의 실력이든 삶의 바른 자세든 상관없습니다. 그걸 잘 갖추면 길은 무궁무진합니다.

한국에서 음악대학을 나온 학생이 미국에서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에 들어갑니다.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하려고 화학, 생물, 프리메디스쿨 등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제일 많이 선발되는 전공은 종교와 예술 분야의 학과들입니다. 어차피 의과대학 입시에는 엠켓(MCAT)이라고 해서 메디컬닥터만 뽑는 시험이 있는데, 거기에 기본적 학문 성취 실력이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문적인 면을 강조하는 면에서 어떤 학과를 졸업했는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종교나 예술 분야의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자세나 품성 때문입니다.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자세나, 종교를 통해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려는 자세 곧 사람을 귀하게 보는 자세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분들은 입시 과정에서 ‘응시자가 과연 의사가 될 소양을 갖췄는가’ ‘그 직임에 관한 합당한 성품을 가졌는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결국 전문가 그룹에서는 심성과 전문 영역의 학문을 감당할 자세가 준비된 사람인가를 구별합니다. 대학에서 그걸 준비하면 됩니다.

이렇듯 미국의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올바른 성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대학이나 회사에 지원한 이 학생이 그동안 뭘 했는지를 봅니다. 삶의 올바른 뜻을 지니고 기본 소양으로서의 인성을 갖추면 그런 기준을 잘 맞추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그런 인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길 바랍니다. 그게 21세기를 향한 우리 교육의 방향성 아니겠습니까.”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나에게 독서란 ‘속 깊은 친구’입니다. 주로 슬플 때나 외로울 때, 화날 때, 또는 주어진 상황에 의문이 생길 때 책을 찾아서 읽고 이해를 하려고 해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깊은 얘기를 못 하잖아요. 하지만 책은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발견하고, 읽고 나서 그 감정을 이해하고, 또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그 친구한테만 얘기할 수도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성장하기 때문에 속 깊은 친구라는 겁니다. 가족처럼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Q. 국문학을 전공하셨어요. 책을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책이 친구이고 가족 같은데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어요. 국문과를 ‘책 좋아해서 갔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냥 상황 봐서 갔어요.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좋아하던 선배 때문이었어요. 문학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당시 눈에 들어온 선배가 문학 읽기 학회를 해서 저도 가입을 했어요. 처음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세미나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분적으로 읽었는데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그때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죠.

책을 읽고 세미나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애정 있게 그린 것이 참 감명 깊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어요. 정말 소박한 감상이었는데 그 선배가 책을 참 잘 읽었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 뒤로 선배에게 주목받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읽었죠. 나중에 그 선배는 다른 학회로 옮겼지만, 저는 학회를 계속 하면서 책 읽는 것이 좋아졌어요. 그 마음을 떠올리면서 나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논문을 쓴 적도 있었답니다.“

▲ 한금윤 교수가 대학 시절 책을 읽으며 기록한 독서노트.

Q. 지금은 책 읽는 일이 직업이 되셨어요. 보통 문학은 취미로 읽는데 그걸 직업적으로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님은 독서 행위가 일반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흔히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고 하잖아요. 여전히 책 읽기, 특별히 문학이 즐거우신가요?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니까 작품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독서와는 아주 달랐어요. 연구할만한 작품을 읽어야 하고, 분석해야 하고, 이론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내 연구 결과가 어떻게 평가될지 항상 긴장하면서 책을 읽어야 했지요.

한동안은 정말 좋아하면 대학원 가면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대학원에서의 훈련을 통해 한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고, 작품을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 지금도 연구를 위해 읽는 작품은 좀 더 꼼꼼히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요. 같은 영화도 두 번째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주관적인 인상비평 수준을 넘어서 한 작품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고통스러운 책 읽기가 도움이 많이 됐죠.“

Q. 그렇다면 일과 무관한, 온전히 취미로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외국소설이요. 저는 현대소설을 전공해서 제 전공 분야의 책은 아무래도 긴장해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공이 아닌 시는 편하게 읽고, 특히 외국 작품은 더 편하게 읽어요. 감히 내가 연구하고 발표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즐겁게 읽는 거죠.

요즘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예요. <1Q84>는 개인적으로 터닝 포인트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한 번 매듭지도 모든 기존의 것들을 다 내려놓게 했던 계기가 됐어요. ‘똑같은 사람인데 하루키는 이런 작품을 썼구나, 그런데 나는 남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고 논평만 하는구나.’ 인간이 가진, 창작하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을 온몸으로 느낀 작품이었죠.

최근에 나온 작품들도 가능하면 읽으려고 해요. 젊은 분들이 어떤 사유와 표현을 하는지 이해해야 하니까요. 고전도 읽어요. <돈키호테>는 최근에 다시 읽고 있고,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라는 책도 인상적이었어요. 전공자들은 많이 읽는데, 타 전공자들은 잘 읽지 않는 책이에요. 각 전공에서 대표적이라고 하는 책은 많이 찾아서 읽으려고 해요.“

Q. 한국근대문학회 공동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특별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문학계에서 이를 조명하는 기획이나 행사들이 많았어요. 교내에서 학술대회를 여시기도 했죠.(▷관련기사) 우리 근대문학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그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아직은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의 정확한 경계가 정립되진 않았지만, 보통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까지를 근대문학으로 봐요. 우리나라 근대문학은 참 마음이 아파요. 근대가 일본제국주의에서 시작됐고, 나라와 나라가 정복해서 강제적으로 펼쳐졌잖아요. 그래서 그 시대의 작품을 읽으면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힘든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인간의 삶에는 희망이 있고 절망이 있는데, 요즘은 절망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 절망을 어떤 시대의 것으로 이해했어요. 그 과정에서 문학은 이를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상처나 어려움, 고통을 보여주고 그렇다면 사회, 국가 혹은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제안을 했어요. 그럼으로써 결국 내 문제가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죠. 우리 근대문학의 특징입니다.

또한 지금의 현대적인 감수성과 감각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근대문학이기도 해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많이 나온 채만식의 <탁류>에는 쌀을 거래하는 ‘미두시장’이 나와요. 마치 오늘날의 주식이나 비트코인처럼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꿈을 갖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쉽게 돈을 벌어서 천하게 쓰고, 결국엔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의 시초 모습이지요.

이처럼 대부분 근대작가가 보여주는 ‘근대의 욕망’은 그것이 가짜이기에 좌절하고 실패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통찰을 줘요.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자본주의 시대 욕망에 자아가 끌려갈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죠. 시대상으로 거리가 있지만,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도 이해하고 도움을 받는 데 큰 힘이 돼요.“

Q. 질문의 범위를 확대해볼게요.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이 정말 많습니다. 그럼에도 모국어로 쓰인 문학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문이 이해가 갑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은 정말 많아요. 자기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작품이 물론 좋지만, 그건 좋은 작품인 거죠. 문학작품의 위대함이 뭐냐고 하면 결국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깊이 있게 통찰해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또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어떤 감정을 간접경험하게 하고, 그걸 넘어서서 그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일 거예요.

선진국은 그러한 사회를 워낙 오랜 세월 동안 겪었기 때문에 우리 작품보다 더 깊고 위대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은 건 맞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현대사가 참 비극이잖아요. 나라도 뺏기고 전쟁도 나고, 산업화에 먹고사는 것에 너무 매달렸기 때문에 실존적인 고뇌나 삶의 깊이를 사유하기보다는 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떤 공동체와의 갈등을 그린 작품들이 많지요. 요즘에 와서야 이제 우리 문학도 나다운 삶, 나의 실존적인 고뇌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걸 미리 보여주고 고민했던 세계적인 위대한 작품의 높은 수준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모국어 작품이 가진 아주 좋은 장점은 ‘무슨 말인지 안다’는 거죠.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감이 더 쉬울 수 있어요. 작품 속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크게 달라져요. 또 디테일한 표현은 동시대적이고 동일한 국가적인 감수성이 있다면, 훨씬 더 공감하는 부분이 있겠죠. 그런 점이 모국어 문학작품이 가진 힘이에요.

그 밖에도 좋은 작가들은 표현과 감수성을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롭게 벼린다고 하잖아요. 그런 문장과 표현이 갖고 있는 즐거움이 있어요. 번역 투가 주는 난해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죠. 우리말의 표현이 주는, 말하지 않아도 공감되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 문학작품이 좋은 거죠.“

Q. 요즘 대학생들의 퍽퍽한 현실 속에서 ‘책 읽기’나 ‘청춘’ 같은 말을 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청춘의 독서’를 이야기하신다면요.

“취업난으로 청년들의 마음고생이 참 심하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갖고 싶은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걸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있다면, 노력해도 쉽지 않거나 막히는 시대가 있는데, 바로 요즘이 그런 시대인 것 같아요. 저는 공부 쪽으로 갔지만, 공부한다고 다 교수가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도 청춘들이 절망하고 낙담하고, 공부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이해됩니다.

저는 그럴 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힘들고 절망스럽고 암담할 때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 하는데, 그 푸는 여러 방법 중 독서가 실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알찼어요.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셜 미디어나 대중매체를 보는 것보다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정서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요즘 청춘들이 책을 안 읽기 때문에 우리 삼육인들이 읽어내면 큰 경쟁력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책을 쓰는 사람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여러 번 걸러내고 또 걸러내면서 써요. 작가가 많은 고뇌 끝에 전달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 어떤 것보다 위로받고 성장할 수 있기에 이러한 시대일수록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걸 읽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눈에 가는 거, 손에 잡히는 걸 읽어보세요. 읽을 때 내 불안함과 초조함이 희미하게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책이 여러분의 ‘속 깊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금윤 교수의 ‘추천 책’


<정본 윤동주 전집>
윤동주 저, 문학과지성사

첫 번째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겪었던 청춘, 윤동주 시인의 전집을 추천합니다. 윤동주의 시를 근래에 정본으로 복원해놓은 전집이에요. 윤동주 시인은 동시도 참 잘 썼어요. ‘서시’나 ‘자화상’이나 ‘별 헤는 밤’ 같은 시도 있지만,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박하게 쓴 시도 있어요. 시대적인 고뇌와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를 통해 공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기에도 동심을 잃지 않는 순수한 마음도 가질 수 있는 동시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광장/구운몽>
최인훈 저, 문학과지성사

<광장>은 많이 들어본 작품이지만, 전문을 읽어보진 못했을 거예요. 소설이 가진 큰 장점은 그 안에 시대사(史)가 담겨있다는 거죠. <광장>은 주인공의 갈망과 고뇌를 통해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현대사를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좋을 것만 같지만, 이데올로기로 인해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어느 편에도 서기 쉽지 않았던 그 시대, 개인과 사회,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 또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하는 자를 잃고, 그런 본질적인 주제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에요. 한 국가의 정치사회가 어려운 국면에 있을 때는 개인도 행복할 수가 없죠. 시대의 비극에 놓여있는 청춘들의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장>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글만리>
조정래 저, 해냄출판사

비교적 최근 책이죠.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는 한 국가의 상황에만 놓여있지 않고 국제적으로 함께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정글만리>는 이처럼 변화된 글로벌 시대에 청춘들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고 또 아파하는지 다루고 있어요. 글로벌 사회에서의 새로운 정보들, 그 속에서 국제적인 인간관계, 청춘이 가져야 할 사랑과 아픔, 미래 직업에 대한 불안과 희망 같은 것들을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책이에요.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파워삼육人] 이방인 간호사로 병원장에 오르기까지, 심은미 동문(간호 83)

미국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 심은미 병원장
인턴십·연수 프로그램 위해 32년 만에 모교 방문
떠밀리듯 들어간 간호학과…”좋은 학생 아니었다”
“성공 비결? 안 되는 이유보다 가능성부터 봐”

어드벤티스트 헬스케어(Adventist HealthCare, 이하 AHC)는 미국 워싱턴DC 지역 최대 규모의 병원그룹이다. 이 병원 인사담당자들이 지난 4월 우리 대학을 방문했다.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및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간호학과는 방문단과 연수 과정의 세부 사항을 조율한 후 여름방학 기간 재학생 5명을 선발하여 미국 AHC에 파견했다. (관련기사▷간호대학, 美 AHC 병원그룹 연수 프로그램 운영)

이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방문단을 인솔해 우리 대학을 찾은 이는 AHC 산하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Fort Washington Medical Center)의 심은미(한국이름 전은미) 병원장. 우리 대학 동문이다.

간호학과 83학번으로 입학해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심 동문은 17년간 임상간호사 경력을 다진 후, 컬럼비아대에서 간호정보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행정가로 커리어를 전환, 아브라조 웨스트 캠퍼스 병원, 셰이디 글로브 메디컬 센터, 어드벤티스트 헬스케어에서 간호이사(CNO), 행정원장(COO), 수석부원장(SVP) 등을 역임하며 단계적으로 조직의 최고위직 자리까지 올랐다.

지난 7월에는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의 병원장(CEO)으로 취임했다. 간호사 출신으로서, 아시안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전례를 찾기 힘든 입지전적 인물.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안 되는 이유’보다는 ‘가능성’부터 보는 긍정적인 성격”을 꼽았다.

“이상하게 사물이나 문제를 보면 가능성부터 보인다. 일에 겁을 내지 않고, 어떤 일이든지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시원시원한 말투에는 거침이 없었다. 행동파적인 기질이 답변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Q. 모국과 모교에 방문한 소감은.

“87년에 졸업했으니 32년 만에 모교에 왔다. 한국은 2번 정도 방문했는데, 사업차 잠깐 들르다 보니 학교까지 와볼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무척 반갑고 좋다. 삼육동은 내 기억 속에 참 낭만적인 곳이다. 그때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들이 정말 좋았다. 학교가 발전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Q. AHC그룹에 대해 소개해 달라.

“미국은 보통 여러 병원을 묶어 그룹 회사를 만든다. 이를 ‘헬스케어 시스템(Healthcare system)’이라고 하는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병원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 사업 중에는 병원 운영 외에도 외래사업, 가정간호사업, 의사 고용사업 등 여러 비즈니스가 있다.

개별 병원은 재무관리나 인적관리(HR) 등 여러 행정적인 업무를 직접 처리해야 하는데, 헬스케어 시스템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이런 일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준다. 예를 들어 어떤 병원이 외래 확장 이슈가 있다고 하면, 개별 병원에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Q. AHC에서 어떤 업무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나.

“주로 건물을 새로 세우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일을 했다. 기획/전략 분야의 일도 많이 했다. AHC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 기획이나 전략을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지난 3~4년간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가 전체적인 기획/전략 하에 이뤄지도록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을 했다. 지금은 회사 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재정적으로 허덕이던 외래사업을 흑자로 전환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1년에 470만 달러(56억4000만원) 정도 적자가 있었는데, 흑자 상태로 돌리는 데 3년 반 정도 걸렸다. 힘들었지만, 참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Q. 간호학과 학생들이 AHC에서 연수와 인턴십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삼육대를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AHC의 전체적인 사업 및 전략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

“회사의 기획과 전략을 세우면서 제일 문제로 두드러지는 부분이 ‘간호사 인력 부족’이다. 사업 확장을 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별히 AHC가 있는 워싱턴 DC 메릴랜드는 다른 곳보다 간호사가 많이 부족하다. 생활비나 물가가 비싼 편이라, 간호사들이 이곳에서 경력을 쌓고 가정을 꾸리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인근 간호대학과 협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 심은미 동문(왼쪽)과 AHC 관계자들이 방학 중 연수를 앞둔 간호학과 학생들과 면담하고 있다.

Q. 모교라는 개인적인 이유도 작용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교육과정이나 정서, 내부사정에 대한 이해가 있고, 교수님들도 다 동문이나 후배다. 후배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앞으로 삼육대 간호학과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학생들을 많이 채용하려 한다. 방학 중 인턴십 프로그램이 좋은 첫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Q. 실제 학생들을 만나 본 소감은.

“예상외로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놀랐다. 교수님들이 영어가 서툴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해서 걱정했는데, 너무 잘하더라. 조금만 손보면 실무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반골(反骨)의 간호학과생

Q. 학창 시절 추억을 말씀해주신다면.

“오복자, 신성례 교수님은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교수님이셨다. 정현철 교수님은 동기에 실습도 같은 조여서 정말 친했다. 당시엔 남자가 간호사 한다고 해서 참 특이했는데(웃음). 이번에 학과장이 됐다고 해서 참 반가웠다. 강경아 교수님은 1년 후배인데, 학교 다닐 때 얘기를 참 많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들께 물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좋은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광천삼육고(현 서해삼육고)를 졸업했고, 삼육교육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지만, 대학이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교수님들을 참 힘들게 했던 기억이 난다. 좀 진취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실행 과정에서 교수님들 속도 썩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런 저를 다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Q.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간호학과도 부모님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들어갔다. 원래 철학이나 역사, 문학을 좋아했고, 도(道) 장원을 할 정도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했다. 이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 그때는 시국이 참 혼란한 시기였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시국에 많이 말려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사회대학을 가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문학 공부를 하는 건 더더욱 안 된다고 하셨다. 이상주의적인 내 성격을 알고 계셨던 거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삼육대 간호학과에 가지 않으면 낫지 않겠다고 하셨다.”

Q. 어쨌든 본인의 의지도 있었기에 입학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고민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간호학과에 가면 미국에 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미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역시나 원하던 공부가 아니었기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방황을 많이 했다. 물론 나중에 간호사가 되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굉장히 보람과 만족을 느꼈다. 간호학 공부도 좋아해서 석사까지 했다. 그런데 그땐 그랬었다(웃음).”

Q. 왜 미국에 가고 싶었나. 어린 나이에 막연한 동경이었는지.

“그랬던 것 같다.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종갓집 종손이시다. 고지식하고 전통적인 가정이다 보니 늘 답답해했고, 할머니는 항상 ‘다루기 힘든 애’라고 하셨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미국에 가는 것밖에 없겠다 싶었다.”

미국에서는 간호사를 보고 병원을 선택한다

심은미 동문은 1987년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 건너가기까지 3년 정도 한국에서 일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보건진료원 1기로 근무하고, 상계백병원에서 간호사로도 일했다. 그사이 결혼을 하고 첫 아이도 낳았다. 1991년 11월, 가족과 함께 학생비자로 미국에 건너간 그는 2달 만에 미국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영주권을 받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병원에 입사했다. 꿈꾸던 미국 생활의 시작이었다.

Q. 미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은 어땠나. 한국과는 무엇이 달랐나.

“당시 한국의 간호사는 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간호사가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환자가 살고 죽는데, 한국에서는 그걸 의사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간호사의 일이 환자의 치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그걸 핵심적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환자가 병원에 가는 이유가 간호사 때문이라고 한다.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하더라도, 수술한 다음 환자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잘 지켜봐야 하는데, 그 일을 간호사가 하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일이 굉장히 독립적이었고, 환자를 치유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큰 보람을 느꼈다.”

Q. 임상간호사로 일하다 행정직으로 커리어를 전환했다. 어떤 계기였나.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지 3년을 하면 다른 걸 하고 싶어지더라. 처음 1년은 배우느라 재밌고, 그다음 1년은 그 배운 거로 자부심 있게 일하느라 재밌다. 그런데 3년쯤 되면 좀 시시해진다.

17년 동안 임상에 있었다. 외과, 신경외과, 심장내과, 심장외과, 중환자실까지 해보니 임상에서는 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면 이제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컬럼비아대에서 간호정보학 석사를 시작했다. 공부도 일도 정말 너무너무 재밌게 했다.”

Q.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간다는 건, 유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에는 몰라서 용감하게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간호지식이나 언어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는 살면서 여자로서 인정받기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남자들과 동등한 능력과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생각하는 좋은 간호사 상(像)은 좀 달랐다. 일을 빨리하고 잘하는 것보다 환자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드리고, 그분들이 마음 쓰는 것을 어떻게 케어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걸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라고 한다. 처음엔 그런 스킬이 별로 없었고 일만 열심히 잘만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문화적인 차이를 콕 집어서 말해주지 않는다. 물어봐도 얘기해주는 걸 꺼린다.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뭐가 다르고 잘못됐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간호사 출신 병원장

Q. 지난 7월 AHC 산하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 원장으로 부임했다. 간호사 출신으로 병원장이 되는 게 미국에서는 흔한 경우인가.

“미국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한다. 간호사는 간호이사(CNO)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자가 병원장까지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동양인이 올라가는 건 더더욱 어렵다. 이민 1세로서는 거의 유일할 것 같다. 간호이사로 경력을 마치는 것보다 더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운도 따랐고.”

Q. 성공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리까지 올라가게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조건이 맞지 않은 사람도 신을 의지하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여러 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이직할 때마다)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곳에서도 그때그때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게 하셨다는 게 눈에 보이더라.

한 번은 영리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19개월밖에 못 버텼다. 보통 사람들은 1년을 못 버티는 병원이라 19개월이면 오래 버틴 거다. 힘들었지만, 다른 병원에서 10년 이상 배워야 할 재무관리 지식을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께 의지를 많이 했고 계속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했다.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Q. 질문을 바꿔 하겠다. 그렇다면 신으로부터 받은 탤런트(재능)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성격이 참 긍정적이다. 주어진 사물이나 문제 상황을 보면 가능성부터 보이고, 뭐든지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을 보면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 성격이 살면서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Q. 엄마로서는 몇 점이라고 생각하는지.

“일을 너무 많이 해서(웃음). 자녀가 넷이고, 막내가 15살이다. 아이들한테 자주 물어본다. 엄마가 일을 많이 해서 서운하지 않으냐고. 아이들은 엄마가 이민 1세로 여기까지 와서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한다. 덕분에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다. 물론 전통적인 잣대로 엄마로서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굉장히 점수가 낮을 거다(웃음).

남편이 좋은 파트너가 돼주고 있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건 아빠가 하고, 나는 밖에서 진취적으로 일을 한다. 한국 남편들은 아내가 더 성공하는 것을 꺼리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 남편은 그런 게 없다. 그냥 도와주고 성공하면 됐지 그게 뭐 중요하냐, 이렇게 말한다.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는 데 남편이 많이 도움을 줬다. 남편과 20년 넘게 파트너십으로 일하고 있다(웃음).”

지도자로 키워준 삼육교육

Q. 대학 시절 삼육대에서 배운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삼육대뿐만 아니라, 삼육교육이 다른 교육과 다른 점은 지도자로 클 수 있는 자질을 많이 가르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아이들을 삼육 학교에 보내고 있다. 공립학교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앞에 나갈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삼육 학교는 기도하거나 예배를 인도하는 등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연습을 많이 한다.

돌아보면, 삼육대에서 배운 것들이 인생에 참 많은 도움이 됐다. 간호학과 학회장을 하면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다. 다른 좋은 간호대학 나오신 분들도 이민을 많이 왔지만, 그들보다 내가 더 좋은 조건을 갖춘 게 있다면, 바로 삼육대에서 배운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장기적인 계획이다. AHC에서 1년에 몇십 명씩 삼육대를 졸업한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나가려 한다. 물론 이를 통해 AHC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지만, 삼육교육을 받은 인재들로 채운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열정 36℃]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2) ‘꿈을 배달하는 마술사’ 이석원(원예 12학번) 동문

▲ “후회요? 아예 없습니다!”. 취업 대신 가슴 뛰는 삶을 선택했다는 이석원 동문. 인터뷰 내내 그는 웃는 표정이었다.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4학년 졸업을 앞둔 때였다. 주변 동기들처럼 그 역시 취업준비에 열심이었다. 대학생활 중 쌓아온 화려한 대외활동 경력에 성적과 스펙도 준수해 대기업 서류전형과 면접을 무난히 통과했다. 그런데 자꾸만 마술도구가 눈에 밟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해 교내 마술동아리 ‘일루젼’까지 10년 넘게 마술을 해온 그였다.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주저했다. 과연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마술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무렵 취업을 해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선배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놨다. 좋은 회사에 들어간 선배는 “취업했다고 결코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털어놨다. 다른 선배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압박이 있다”고 했다.

‘어차피 똑같이 스트레스 받을 거면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자. 물론 취직하는 것보다 돈은 적게 벌고 불안할 수 있겠지. 하지만 미래는 어차피 불확실한 게 아닌가.’ 그렇게 이석원 동문(원예학과 12학번)은 안정적인 삶보다는 가슴 뛰는 삶을 선택했다. 2017년 여름의 일이었다.

이후 함께 활동하는 크루들과 지하 연습실에 둥지를 틀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명은 ‘꿈달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배달하는 마술사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 의미 있는 기획에 여러 기업과 정부기관이 후원사로 나섰다. 우리은행, 한화그룹, 아시아나항공, 외교부, 한국장학재단,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태국과 러시아, 필리핀, 프랑스, 일본, 부탄,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꿈과 즐거움을 배달했다.

꿈과 희망을 배달하는 마술사

Q. ‘꿈달사’의 시작이 궁금해요.

A. 대학시절 교내 마술동아리 ‘일루젼’ 회장을 했어요. 당시 서울 대학 마술 연합동아리 활동도 했는데, 그때 만난 친구들 네 명이 모여서 팀을 만들었죠. 우리가 가진 마술이라는 특별한 기술을 활용해 재미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자고. 그러던 중 ‘꿈달사’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네 명 각자가 맡은 역할이 확실해요. 일단 마술은 제가 제일 잘하고요(웃음). 한 친구는 프레젠테이션 대회 우승경험이 있어서 기업에 피칭할 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다른 친구는 창업 경험이 있고 기획을 잘해요. 또 다른 친구는 영상과 사진을 잘 찍어요. 넷이 함께 했을 때 시너지가 있고 조화가 잘 되죠.

Q. ‘꿈달사’ 활동은 주로 해외에서 하고 있어요. 국내 공연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의사소통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말은 최대한 배제하고 표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넌버벌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하고 있어요. 또 대상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연령대에 맞는 공연을 준비해가는 편이에요.

나라마다 문화마다 관객의 반응이 달라서 재미있어요. 필리핀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학교에서 공연을 했는데, 아이들의 에너지가 정말 좋았어요. 작은 손짓에도 반응을 잘해주고, 공연 끝난 뒤에도 찾아와 인사를 하더라고요.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웃음과 순수한 반응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 꿈달사 프로젝트 – 베트남

Q. 마술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됐나요?

A.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께서 ‘멀린의 신비한 마술학교’라는 마술도구 장난감을 사주셨어요. 그걸 학예회에서 해봤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마술 동아리를 했고, 삼육대에 와서도 ‘일루젼’에 가입하고 회장까지 했어요. 그렇게 꾸준히 사람들 앞에 서고 실력도 늘어나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죠.

Q. 마술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 분야인 것 같아요. 엔터테인먼트업이기 때문에 트렌드나 관객 취향이 금방 바뀌고 새로운 기술도 계속 나오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궁금해요.

A. 매일 연습실 나오는 거죠(웃음). 꼭 마술이 아니더라도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 아닐까싶어요. 직장을 다니는 주변 친구들을 봐도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저 같은 경우 마술은 오래했지만, 본격적인 직업으로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이 분야에 진지하게 임하다보니 정말 배울 게 산더미더라고요. 잔동작이나 몸에 배어있던 안 좋은 습관들도 보이기 시작하고요. 어느 분야든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디테일에서 나타나잖아요.

요즘은 마술이 다른 예술,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협업하는 사례도 많아지면서, 인접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일단 마임을 배우고 있고, 연기에도 관심이 많아요. 근래 가장 주력하는 콘텐츠는 저글링과 서커스예요.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서 저만의 공연물을 만들고 있어요. 마음 깊숙이 마술사라는 뿌리는 가지고 있지만, 요즘은 ‘거리공연가’로 불리는 게 더 맞을 것 같네요(웃음).

▲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Q. 간혹 마술이 거짓말과 속임수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본인은 ‘꿈달사’라는 프로젝트명처럼 마술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A. 저글링이나 서커스를 할 때 공 5개를 동시에 돌리면, 관객들은 ‘엄청난 노력을 했겠구나’ 생각을 해요. 바로 눈앞에 보이니까요. 마술 역시 한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죠. 하지만 어떤 관객들은 공연자의 노력과 공연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무슨 속임수가 있을 것 같은데’ 하고 봐요. 그런 모습에 약간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죠.

하지만 마술은 단순한 트릭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마블(Marvel)이나, 공상과학(SF), 판타지 영화는 기존의 틀을 깬,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체험하게 해요. 마술도 마찬가지에요. 작은 마술이지만, 이걸 보는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경험을 교류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큰 꿈과 희망을 갖게 할 수 있죠.

“후회요? 아예 없습니다!”

Q. 취업할 생각은 없었나요?

A. 4학년 때는 취업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대학시절 대외활동을 많이 했는데, 관련 경력으로 얼떨결에 모 대기업에 서류합격을 했어요. 마술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긴 했지만, 직업으로 까진 생각하지 못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었죠.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잖아요. 취업한 선배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어요. ‘취업했다고 다 편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어차피 똑같이 돈 벌면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조금 적게 벌어도 내가 좋아하고, 내가 가슴 뛰는 일을 하자는 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즈음 마술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쪽(마술)에도 길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게 보였죠.

Q.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A. 네. 전혀요! 아예 없습니다!

Q.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보통은 다들 취직을 하잖아요.

A.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졸업할 때까지 명확한 본인의 꿈을 찾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게 되고요. 그런 친구들은 직장생활을 힘들어해요. 하루하루 ‘아, 오늘 하루 어떻게 가지’ 이런 생각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친구들이 많아요. 굉장히 안타깝더라고요.

반면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직무나 업종, 회사를 확실하게 정하고 취직을 하니까 일을 즐겨요. 심지어 야근과 주말근무도 행복해하죠.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매일매일 연습실에 가고 공연을 하듯이, 그 친구들도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 해요. 거리공연가가 조금 뻔하지 않은 직업군이라 그렇지, 그런 면에서 저 역시 그 친구들과 똑같은 ‘직업인’이죠.

중요한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저는 대학생활이 꿈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동아리나 여러 대외활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학교의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학점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내 꿈을 찾는 것이 대학생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행복하세요?

A.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든지 생각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는데요. 이 질문만은 확실하게 답할 수 있어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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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A.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저 매번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듯이 늘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제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책을 사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독서란 ‘즐거움’ ‘기쁨’ 뭐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요즘에는 가만히 앉아 그런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Q. 청춘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을 소개해주신다면.

A. 저는 사람의 이야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떤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서 일본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자전적 소설 <길은 여기에>가 기억에 남습니다. <빙점>이라는 소설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작가입니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인생을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인지 고백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폐결핵을 얻게 됩니다. 병원에서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 그래서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무렵 마에카와 타다시라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이 여인은 그 남자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저는 무엇보다 아야코에 대한 타다시의 한결같은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진심으로 와 닿았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에게 인생의 의미를 심어주는 타다시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젊은 시절에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의 생각과 삶의 자세를 바꾸게 한 책이지요. 요즘도 젊은 친구들에게 한 권씩 사서 선물하는 책입니다.

Q. 대학시절엔 어떤 독서가였나요? 신학을 전공하셨는데 전공 외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셨는지요?

A. 최근 주변 몇 분들과 스터디 모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젊은 시절, 특정 장르에 상관없이 책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으신 분들이라는 겁니다. 그에 비하면 젊은 날 저의 독서의 폭은 지극히 좁았다는 생각이 들죠.

대학시절 저는 ‘신학과 관련한 책이면 최고다’ ‘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장르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폭넓은 독서를 못했지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합니다.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어요. 그때 내가 독서의 범위를 더 넓혔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보다 깊이 있고 넓은 사고의 틀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젊은 학생들에게 당부하곤 합니다. 닥치는 대로 읽어라. 폭넓게 읽어라. 깊이 있게 읽어라. 천천히 읽어라. 그리고 다양하게 생각해라. 그래서 생각의 폭을 넓혀라.

Q. 굉장한 다독가로 알려져 있으십니다. 최근에는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A. 다독가라고 하시면 정말 많이 부끄럽고요. 저는 그저 책을 사고 읽는 게 재밌고 좋습니다. 최근에는 제 전공과 관련한 영어책들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개인적인 관심사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라서 자연스럽게 해당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는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시는 정재승 박사님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사님의 강연 중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 12개의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강의내용을 녹취한 형식이어서 부담 없이 술술 읽힙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저자의 전공분야인 뇌과학의 관점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정신, 미래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Q. 신학과 교수님이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신학자로서 어떤 관점으로 이 분야의 책을 읽으시나요?

A.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할 때 IT 기술 분야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모든 분야가 믹스 업(mix up) 된 것’이라고 하면 틀린 정의는 아닐 겁니다.

물론 제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책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 혁명이 주는 미래시대의 변화와 영향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접목할 수 있을까. 이런 시대에 종교는 어떤 영향을 발휘할 것인가.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 봉원영 교수의 책꽂이 한편엔 4차 산업혁명 관련 도서가 빼곡했다.

Q. 얼마 전 ‘선교신학’이라는 학술지에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선교적 교회의 역할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올 초 교내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세미나’에서는 ‘3.1운동 정신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제하셨고요.(▷관련기사) 4차 산업혁명과 종교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4차 산업혁명이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또 종교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요?

A. 2016년 10월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특별 심포지엄에서 미래사회 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세계적 경향들 가운데 하나로 ‘종교의 역할’과 ‘신앙의 중요성’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인간관계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 의식입니다.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야 삭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종교는 지금보다 순수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쁨과 행복을 서로가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종교와 교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Q. 국제교육원 수석부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업무 부담이 크실 것 같아요. 해외출장을 수없이 다니시고요. 바쁘신 와중에 책 읽는 시간은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A. 맡은 업무가 많이 분주하고 바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전보다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없어졌죠. 하지만 그런 업무를 통해 이전에 관심 가지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가고, 책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채워주기 때문에 재미있게 하려고 합니다.

책은 수시로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손이 닿을 수 있는 곳 어디에든 책이 있지요. 책상이나 자동차, 화장실에도 책이 있습니다. 가방마다 한 권씩은 들어 있고요. 킨들 같은 전자책도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영어 원문 서적은 우리나라에서 구입하기 어려운데, 킨들은 필요할 때 바로 접속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Q. 요즘은 학생들도 무척 바쁩니다. 학업은 기본이고, 각종 대외활동에 취업준비 등 할 일이 산더미여서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감각적이고 즐길만한 콘텐츠가 도처에 널려 있어 책이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청춘의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세계적으로 영상 시청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요. 근본적으로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찾아 훑어보는 눈은 있어도 심미안은 없습니다.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TV 뉴스를 예로 들면, 어떤 사실에 대해 10~15분 정도를 보도하면서 ‘심층 분석’ 했다고 생색을 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단 10분 만에 심층에까지 닿을 수 있다면, 그게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요. 정말 중요한 문제는 10분 안에 소개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 텍스트는 결코 10분 만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설명이 필요하고, 논리가 필요하지요. 우리에게 독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독서는 생각과 논리를 키워주고, 마음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논리와 상상력이 가미된 독서를 하다보면 조리 있고 분명하고, 깊이 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글도 잘 쓰겠지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책을 빨리 읽으라, 많이 읽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생각하며 깊이 있게 읽으라고 합니다. 저자가 그때 그 시대의 독자를 위해 생각하고 염두에 두었던 것에 공감하면서 읽도록 합니다. 또 그런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을 읽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봉원영 교수의 ‘추천 책’

“이 시대의 바쁜 청춘들에게 어떤 책을 소개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에 지혜를 줄 수 있는 책이 무얼까 고민했고, 3권을 가져왔습니다. 책에 대한 거부감 없이 조금은 가볍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담론>
신영복 저, 돌베개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전을 읽는 것입니다. 이 책의 부제목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실제 강의를 녹취해 그 내용을 다듬은 책입니다. 주제가 고전이라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강의 형식이라 읽기 정말 편합니다. 고전의 내용을 소재로 존재론, 관계론,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룬 양서입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침묵>
엔도 슈사쿠, 공문혜 역, 홍성사
엔도 슈사쿠는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 중 단연 <침묵>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몇 년 전 <사일런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요. 고뇌의 순간에, 고통과 절망과 괴로움의 순간에 신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젊은이들이 살면서 경험하게 될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이 책이 좋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임>
최인철 저, 21세기북스
가볍고 읽기 쉬운 책입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쓴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빨간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빨간색으로 보입니다. 파란색 안경을 쓰면, 온통 파랗게 보이겠죠. 어떤 색의 안경을 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떤 프레임을 가져야 할까요. 가벼운 책이지만, 굉장히 좋은 통찰을 줄 것입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삼육人] 학생 스타트업 마스터피스, 정부지원 창업비 4천만원 수주

4차산업혁명 기술 적용한 예술작품 플랫폼
학생창업보육센터 첫 정부사업 수주 성과
“업계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

우리 대학 학생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마스터피스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에 선정돼 4천300만원의 창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지난 4월 학생창업보육센터 개소(관련기사) 후 나온 첫 정부사업 수주 성과다. 팀원 모두 재학생으로 구성된 학생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예비창업패키지’는 혁신적인 기술창업 소재가 있는 예비 창업자를 발굴하여 원활한 창업사업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선정된 창업자에게는 △시제품 제작 △지재권 취득 △마케팅 등에 소요되는 사업화자금을 바우처 형태로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한다.

마스터피스는 예술작품 전자상거래 플랫폼 ‘마스터피스(Masterpiece)’ 아이템으로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다양한 예술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하여 예술계 활성화를 이끄는 웹·앱 플랫폼. 작가는 작품을 전시하여 수익을 낼 수 있고, 소비자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마스터피스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빅데이터, 5G 등 첨단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해 심사위원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VR 기술을 통해 가상 전시회를 마련하고, AR 기술과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동하여 원하는 공간에 작품을 미리 배치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작가·작품 추천 서비스도 갖출 예정이다.

마스터피스 한영석(컴퓨터학부 12) 대표는 “사업 초기, 학생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 학교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며 “4차 산업혁명 기술력과 우수한 작가진을 확보하여 업계를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인터뷰에는 한영석 대표, 유경수(컴학 16) 기술개발 전담, 정은정(커디 16) CCO, 주우송(커디 16) 디자인 전담이 함께했다.

▲ 왼쪽부터 주우송 디자인 전담, 정은정 CCO, 한영석 대표, 유경수 기술개발 전담.

Q. 사업 선정 축하드린다. 먼저 소감 한 말씀.

A. 그간 창업을 준비하면서 학교로부터 정말 많은 지원을 받았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 함께하고 있는 마스터피스 팀원들, 그리고 여러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Q. 기존에 예술작품을 판매하는 이커머스 업체가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 했나.

A. 우리는 핵심기능으로 AR, VR, 빅데이터, 5G를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5G를 이용해 AR, VR 기능을 접목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의 니즈를 맞출 것이다. 이를 통해 작품과 작가의 가치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Q. 기술적으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계획인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A. 소비자들은 예술작품을 구매하기 전 작품이 공간과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AR 기술과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동하여 자신이 위치한 공간에 작품을 미리 배치해 볼 수 있는 기능을 준비하고 있다. 또 VR을 통해 가상의 기획전이나 개인전 등 전시회를 마련할 수 있다.

AR, VR 기능은 웹페이지뿐만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데이터 처리량이 막대하기에 5G 활용이 필수적이다. 빅데이터는 소비자가 어떤 작품과 작가, 장르, 테마를 선호하는지 분석하여 니즈에 맞는 작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 현재 개발 중인 예술작품 플랫폼 ‘마스터피스’. 초기 시드머니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Q. 아이템 선정 계기가 궁금하다. 어떤 부분에서 사업화 가능성을 봤나.

A.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아이템과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을 시작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 중 예술작품 업계는 어느 정도 마켓이 형성이 돼 있으면서도,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또 평소 관심사라서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였다.

창업을 구체화하면서 예술업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예술작품은 주로 경매나 이커머스를 통해 판매와 중계가 이뤄지는데, 거치는 단계가 많다보니 가격거품이 두껍게 형성돼 있다. 반면 신진작가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마켓 자체가 부족하다. 신규 사업자로서 시장에 진출해 이를 해소하고 싶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기술력을 활용하면, 업계를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Q. 문화예술 비즈니스다. 경영 능력과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저평가된 좋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발굴해내는 안목도 필수일 것 같다. 상당한 전문영역인데.

A. 팀에 디자인 전공자가 있지만, 아직 아마추어 단계이기에 추후 전문 큐레이터를 영입할 계획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신진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생태계가 건전하게 돌아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신인들이 플랫폼을 통해 작가로서 작품의 가치를 높여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작가의 세계관이나 스타일 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노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큐레이터의 전문적인 식견, 그리고 인터페이스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Q. 창업과 정부사업 응모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들었다.

A. 올해 하반기까지 정부사업을 수주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빠른 결실을 얻게 됐다. 그간 학교의 도움이 정말 컸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겠지만, 마스터피스는 기술력이 중요한 사업이기에 팀빌딩 단계부터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으로 구성해야 했다. 교내 창업지원단이 지난해부터 창업의지가 있는 학생들을 매칭하고 멘토링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데, 여러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레 하나 둘씩 팀원을 영입하고 팀을 이루게 됐다.

또한 지난 4월 개소한 학생창업보육센터 첫 입주 기회를 얻게 됐다. 공간은 물론 전문 멘토링과 창업코칭, 창업교육, 활동비 등 다양한 지원을 학교로부터 받고 있다. 전용공간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도움이다. 스쿨버스 정류장과도 가까워 회의 소집이 용이하다. 창업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창의적인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이 탄생할지 기대가 된다.

▲ 지난 4월 열린 학생창업보육센터 개소식 및 입주기념식. 마스터피스 한영석 대표가 김성익 총장과 현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창업을 준비하거나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A. 창업을 취업이라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말 창업에 뜻이 있다면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오너십과 리더십, 전반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취업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교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지원해주고 있다. 풍부한 인프라와 인적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성공적인 창업과 취업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483971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5301324353886?did=NA&dtype=&dtypecode=&prnewsid=
파이낸셜투데이 http://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997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52917577495894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3274
대학저널 http://www.d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083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55&item=&no=18882
뉴스타운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314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90529010018409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9141

[삼육人] 어서와~ 외국인 홍보대사는 처음이지?


“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꿈만 같아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삼육대학교의 비전을 알리고, 학교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요”

평균 한국 체류기간 2년 남짓. 유학생들의 우리말이 또박또박 유창했다. 몽골 출신 다오까(사진 왼쪽, BATSAIKHAN DAVAADORJ), 중국에서 온 남천홍(가운데, 蓝天洪), 인도인 서릅(오른쪽, SAURAV TANWAR)은 각각 식품영양학과와 신학과, 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18학번으로 재학 중이다. 이들은 올해 우리 대학 학생홍보대사 수앰배서더 14기 단원으로 공식 임명됐다.

지난 2006년 수앰배서더 창단 이래 외국인 단원을 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외협력처 홍보팀 박순봉 팀장은 “최근 우리 대학의 ‘글로벌 캠퍼스’ 구축 정책에 따라 외국인 유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대학 구성원이 다양해진 만큼, 학교의 ‘얼굴’로 활용하는 홍보대사의 인원구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홍보팀은 외국인 홍보대사 도입 초기이고, 규정상 학부생 중에 선발해야 하는 등 인재풀이 한정적이기에 특별채용 방식으로 이들을 뽑았다. 국제교육원으로부터 후보자를 1차로 추천받은 후, 수차례 면접과 내부회의를 통해 홍보대사로서의 자질, 한국어 능력, 인성, 애교심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했다.

이들 세 명의 외국인 단원은 10명의 한국인 단원들과 함께 오리엔테이션과 기본소양교육, 춘계 워크숍, 캠퍼스투어 교육 등 일정을 소화하고 최근 수습기간을 마쳤다. 공식 임기는 내년 2월 28일까지 1년. 앞으로 캠퍼스투어와 입시홍보, 홍보영상 촬영, 모델 활동, 의전 및 행사지원 등 업무를 한국인 단원들과 구별 없이 똑같이 수행하게 된다.

중간고사를 앞둔 지난 4월, 우리 대학 최초의 외국인 홍보대사 3인을 백주년기념관 홍보대사실에서 만났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여느 한국 학생들과 다르지 않아 익숙했다. 시험을 앞두고 있어 조금은 지쳐보였지만, 홍보대사 활동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은 반짝였다.

▲ 왼쪽부터 남천홍(중국), 서릅(인도), 다오까(몽골)

Q. 삼육대 첫 외국인 홍보대사로 선발됐습니다.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요?

다오까 : 근로, 강의실 청소, 식당, 경비 등 교내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여러 직원 선생님들이 홍보대사를 해보라고 하셔서 수앰배서더를 알고는 있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외국인 학생을 뽑는다면서 국제교육원에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처음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용기를 갖고 도전하게 됐습니다.

남천홍 : (제안을 받았을 때) 엄청 놀라고 기뻤어요. 하지만 언어가 미숙해서 부담감도 컸죠. 외국인이었기에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삼육대를 알리고 싶어요.

서릅 : 국제교육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과장님이 추천을 해줘서 지원하게 됐어요. 이런 활동을 정말 하고 싶었기에 너무 좋았죠. 우리 학교를 홍보할 수 있어서 좋고, ‘홍보대사’라고 하면 뭔가 멋있잖아요. 다른 학교에는 외국인이 학생홍보대사를 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Q. 선발 후 오리엔테이션과 소양교육, 워크숍 등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다오까 : 워크숍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삼육대를 대표하는 분들과 회의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게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홍보대사 신입 단원은 워크숍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전통이 있어요.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를 열심히 준비해서 췄어요. (웃음)

남천홍 : 저는 홍보대사 동기와 트와이스 ‘TT’ 안무를 준비해서 췄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웃음) 늦게까지 정말 재밌게 놀았어요. 만우절에는 단원들과 한국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서릅 : 소양교육을 2주간 받았어요. 인사나 악수 예절, 의전매너 같은 비즈니스매너를 배울 수 있었고, 전혀 모르던 새로운 것을 알게 돼서 좋았어요. 1박 2일로 진행된 워크숍도 기억에 남아요. 선배, 동기 단원들과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회의를 했어요. 한국인의 말을 이해하면서 내 의견을 한국어로 말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자신감이 생겼고 여러 단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죠.

▲ 왼쪽부터 다오까(몽골), 남천홍(중국), 서릅(인도)

Q. 우리 대학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졸업 후에는 어떤 진로를 생각하고 있나요?

다오까 : 몽골에서 삼육전문대학교(Sahmyook College)라는 학교에 다녔어요. 한국인 목사님이 세운 학교인데, 미용·조리·웹디자인 전공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조리 전공을 했는데, 졸업하면서 우수학생으로 선발돼서 장학금을 받고 삼육대에 오게 됐죠. 지금은 식품영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영양학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에요. 세계적으로 활동하면서 건강한 음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남천홍 : 재림교회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중국에는 학교가 없어서 삼육대에 오게 됐어요. 진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깨닫고 싶었어요. 신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컸지만, 지금은 많이 인정해주세요. 음악도 공부하고 싶고, 공부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면 음악사역을 하며 전도하는 것이 꿈이에요.

서릅 : 한국에 온 지는 2년 조금 넘었어요. 한국에서 무역사업을 하는 삼촌이 삼육대를 소개해주셔서 어학당(한국어교육센터)을 먼저 다니게 됐어요. 어학 과정을 마칠 때쯤 한국에서 학부를 알아봤는데, 마침 다니고 있는 삼육대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학교가 서울에 있으니 취업준비나 여러 활동을 하기에 좋고, 금연, 금주 캠퍼스라서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서 큰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18학번으로 입학했는데,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코딩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도에는 고등학교에 컴퓨터 과목이 있거든요. 학부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네이버, 구글 같은 IT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것이 꿈이에요.

Q. 앞으로 수앰배서더 단원으로서 포부는.

다오까 : 삼육대는 저에게 천국 같은 곳이에요. 몽골에 있을 때는 이렇게 큰 세상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에 와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제가 느낀 삼육대를 잘 알리고 싶어요.

남천홍 :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캠퍼스 투어를 한다고 들었어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삼육대학교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 학교인지 알려드리고 싶어요.

서릅 :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한참 말을 고르더니) 수앰배서더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재학생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단원들과 해외봉사나 국내봉사도 하고 싶어요. 봄이 가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어서 SNS에 올리고 싶어요. 또 학교에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 왼쪽부터 남천홍(중국), 서릅(인도), 다오까(몽골)

Q. 마지막으로 삼육대 학우들에게.

다오까 :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떨어져서 사는 건 참 힘들어요. 가끔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오해와 상처도 있고요. 하지만 한국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서로 다른 부분을 이해하면서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남천홍 : 삼육대는 저에게 더 크고 위대한 꿈을 꾸게 한 학교에요. 여러분은 정말 특별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학교에서 인생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하길 바랍니다.

서릅 : 한국인,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우리 학교 학생’, ‘수앰배서더 단원’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다 같은 사람이니까. 함께 도와주고 서로 이해하면서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인과 외국인 학생들이 좀 더 친해지길 바랍니다.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478468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5271179396514?did=NA&dtype=&dtypecode=&prnewsid=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3003
대학저널 http://www.d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774
에듀인뉴스 http://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14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52414537427893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5788
뉴스타운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500
에듀동아 http://edu.donga.com/?p=article&ps=view&at_no=20190524110840614646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55&item=&no=18831

[열정 36℃]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1) 3D 프린팅 설계사 임진환(생명과학과 12학번) 동문
맹학교 졸업생들에 ‘만지는 졸업사진’ 선물해 화제
“지금 방황할지라도…분명 자신만의 길 있어“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열여섯 살 소년 임진환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 관절 물렁뼈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을 회복해 갔지만, 피아노를 칠 때면 손목이 저려왔다. 그렇게 첫 꿈을 접었다.

이후 그의 걸음은 ‘갈 지(之)’자를 그려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로 졸업했지만, 교차지원을 해서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동차공학(카메카트로닉스학과)을 복수전공하기도 했다. 군 전역 후에는 3D 프린팅 기술에 푹 빠져 지냈다. 현재는 3D 프린팅 스타트업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임 동문은 최근 맹학교 학생들에게 3D 프린터로 흉상을 제작해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관련 기사▷https://bit.ly/2KXLt8Z)

지난 2월 졸업을 앞둔 그를 교내 창업보육센터에서 만났다. 임 동문은 “돌이켜 보면 대학에 와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면서 “다만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맞는,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몇 주 후. 방탄소년단을 키운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 (그러니) 지금 큰 꿈이 없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만지는 졸업사진’

Q. 맹인학교 졸업생들에게 3D 프린터로 흉상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앞을 못 보는 학생들을 위한 ‘만지는 졸업사진’이라니. 비장애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소외감과 불편을 잘 짚어낸 것 같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지난해 우연히 유튜브에서 3D 프린트로 맹인학교 졸업앨범을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됐다. 너무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면서 여전히 맹인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사진첩 형식의 졸업앨범이 전달되고 있더라. 비장애인은 사진을 볼 수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맹인학생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나. 한 맹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졸업앨범을 나눠줄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 어차피 못 보니까.

3D 프린팅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회사 대표님과 이사님을 설득해 회사 장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Q. 프로젝트는 어떤 단계로 진행됐나. 실제 3D 프린팅 과정과 같나.

A. 맞다.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3D 스캐너로 1차 본을 뜬다.  다음에는 스캔한 파일을 실제 인물과 닮도록 좀 더 디테일하게 편집을 한다. 마지막으로 편집된 파일을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후가공을 거쳐 졸업식 때 전달해주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라서 혼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인근 별내고등학교에 자원봉사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15명의 학생들이 동참해줬다. 학생들에게 3D 스캐너, 모델링 편집 등 3D 프린팅의 전반적인 기술을 교육하면서 스캔과 흉상 가공 작업에 도움을 받았다.

▲ 별내고 학생 15명도 자원봉사자로 동참했다. 3D 스캐닝을 하는 별내고 학생들(사진 왼쪽)과 모델링 편집을 교육하는 임진환 동문(오른쪽).

Q. 프로젝트 진행은 순조로웠나.

A.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학교를 섭외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서울, 경기 지역의 거의 모든 맹학교에 제안서를 보냈는데, 이슈되는 것에 조금 부담스러워 하시더라. 유일하게 수유동에 있는 한빛맹학교에서 사업의 취지에 공감해주셔서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섭외 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복합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은 스캔할 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버거워했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학생도 있었고,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기술이다 보니 학생들이 당황해하면서 진척이 더뎠다. 스캔을 하려고 학교에 3번 찾아가서 3번 다 실패하는 등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생각을 바꿨다. 기술적인 부분과 프로젝트에만 집착하다 보니 학생들과의 교감에 소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학생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접근하니 일이 수월해졌다. 먼저 다가와주고 노력해준 학생들의 모습에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Q. 기술은 딱딱하고 차갑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다. 기술자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텐데.

A. 졸업식 때 한 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17년 동안 맹학교를 다녔는데, 친구 얼굴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고. 그렇다고 함부로 얼굴을 만져볼 수 없으니 아쉬웠다고. 친구들의 얼굴을 영영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가슴이 참 뭉클했다.

3D 프린팅을 처음 배울 때는 이 기술을 이렇게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기술 분야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너무 자기 이익만 좇지 않는다면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 2월 18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졸업식. 8명의 맹인 학생들은 이날 서로의 흉상을 더듬으며 “친구의 얼굴을 꼭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 만난 ‘3D 프린팅’

임진환 씨가 3D 프린팅 기술을 처음 만난 건 군 전역 직후였다. TV에서 우연히 3D 프린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작은 기계 하나로 인공장기나 의수, 의족, 복잡한 기계부품을 척척 만들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단한 기술이다. 이건 어디 가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

Q. 기술은 어디서 배웠나.

A.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학원을 알아봤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고 거리도 멀어서 내가 배울 수 없는 건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서 대학일자리본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3D 프린팅 실무교육’ 공고문을 보게 됐다. 내가 딱 원하던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Q. 3D 프린팅 기술이 최근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시장이니까.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불확실성’이기도 하다. 이 분야를 업(業)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A. 3D 프린팅 분야가 물론 아직 완전히 개척된 시장이 아니고,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누구보다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암감 보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3D 프린팅 기술 자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따라 음식도 가능하고 실제 의류도 생산하고 있다. 인공장기나 피부조직, 혈관 등 의학 분야에서도 이미 여러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3D 프린팅이 빅데이터, AI와 함께 4차산업혁명의 3가지 핵심 과제 중 하나이지 않나. 이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Q. 생명과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카메카트로닉스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지금은 3D 프린팅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대목마다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A, 사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하지만 사고로 오른손 관절을 다치면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됐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생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대학은 생명과학과로 입학했다.(웃음) 학교에 다니면서 복수전공으로 공학인 카메카트로닉스를 했고, 졸업을 하면서 3D 프린팅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보통의 대학생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다. 생각도 없이 꿈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냥 학교에 다니기만 한 세월도 있었다. 그런데 다 자기만의 길이 있는 것 같더라.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연결되면서(Connecting the Dots) 자신에게 맞는 길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Q.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것 같다.

A. 지금도 꿈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학생들이 많을 거다. 나 역시 그랬고. 하지만 나는 분명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꿈이 없더라도 너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하는 것을 계속 하면서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풀어갔으면 좋겠다.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인터뷰 중 그는 ‘잭 안드라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의 친구가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장당 3센트의 비용으로 각종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한 소년이다. 기존 진단 방법보다 168배 빠르고, 가격은 2만6000배나 낮춘 제품이다.

임 씨는 “평소 이 소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뭔가 대단하고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의 문제점을 해결해서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을 키워주고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 이 3D 프린팅 기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Q. 10년 후 본인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A. 10년 후까지는 감히 상상을 안 해봤지만, 의수·의족·인공장기 등을 설계하는 인체공학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제품들이 있지만,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3D 프린팅 기술과 접목시켜 생산비용과 시간을 더 줄이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하게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기술을 통해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앞으로도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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