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7. 24

속죄

주제성구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 130:4, 5

우리에게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것과 똑같은 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나에게 저지른 좋지 못한 짓들을 모두 용서한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도 죄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갈바리의 음성은 효력이 그대로 미칩니다. 말씀만으로도 능력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중보자가 계십니다. 용서의 통로는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이 통로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와 용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유대인들의 희생제에 그처럼 많은 피의 제물을 요구하셨을까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흘림 없이는 죄사함이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매우 엄숙한 진리를 저들 마음 가운데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물마다 의식마다 담겨져 있던 교훈,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매우 진지하게 전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누누이 깨우쳐 주셨던 교훈,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죄 사함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 중요한 진리였습니다.… 나는 이 문제, 다시 말해 인간을 위한 이 위대한 제물에 대해 내가 본 그대로 우리 백성들 앞에 나타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공의는 인간의 고통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고통으로 이를 대신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당하신 고통의 깊이는 그분의 품성에 나타난 거룩함과 숭고함에 비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무덤이 얼마나 깊은 곳이며 인간이 당하는 죄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고 믿음으로 완전한 용서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죄없이 당하신 그분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이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저들을 일일이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서신 85, 1886.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