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육人] 학생 스타트업 마스터피스, 정부지원 창업비 4천만원 수주

4차산업혁명 기술 적용한 예술작품 플랫폼
학생창업보육센터 첫 정부사업 수주 성과
“업계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

우리 대학 학생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마스터피스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에 선정돼 4천300만원의 창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지난 4월 학생창업보육센터 개소(관련기사) 후 나온 첫 정부사업 수주 성과다. 팀원 모두 재학생으로 구성된 학생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예비창업패키지’는 혁신적인 기술창업 소재가 있는 예비 창업자를 발굴하여 원활한 창업사업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선정된 창업자에게는 △시제품 제작 △지재권 취득 △마케팅 등에 소요되는 사업화자금을 바우처 형태로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한다.

마스터피스는 예술작품 전자상거래 플랫폼 ‘마스터피스(Masterpiece)’ 아이템으로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다양한 예술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하여 예술계 활성화를 이끄는 웹·앱 플랫폼. 작가는 작품을 전시하여 수익을 낼 수 있고, 소비자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마스터피스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빅데이터, 5G 등 첨단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해 심사위원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VR 기술을 통해 가상 전시회를 마련하고, AR 기술과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동하여 원하는 공간에 작품을 미리 배치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작가·작품 추천 서비스도 갖출 예정이다.

마스터피스 한영석(컴퓨터학부 12) 대표는 “사업 초기, 학생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 학교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며 “4차 산업혁명 기술력과 우수한 작가진을 확보하여 업계를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인터뷰에는 한영석 대표, 유경수(컴학 16) 기술개발 전담, 정은정(커디 16) CCO, 주우송(커디 16) 디자인 전담이 함께했다.

▲ 왼쪽부터 주우송 디자인 전담, 정은정 CCO, 한영석 대표, 유경수 기술개발 전담.

Q. 사업 선정 축하드린다. 먼저 소감 한 말씀.

A. 그간 창업을 준비하면서 학교로부터 정말 많은 지원을 받았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 함께하고 있는 마스터피스 팀원들, 그리고 여러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Q. 기존에 예술작품을 판매하는 이커머스 업체가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 했나.

A. 우리는 핵심기능으로 AR, VR, 빅데이터, 5G를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5G를 이용해 AR, VR 기능을 접목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의 니즈를 맞출 것이다. 이를 통해 작품과 작가의 가치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Q. 기술적으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계획인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A. 소비자들은 예술작품을 구매하기 전 작품이 공간과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AR 기술과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동하여 자신이 위치한 공간에 작품을 미리 배치해 볼 수 있는 기능을 준비하고 있다. 또 VR을 통해 가상의 기획전이나 개인전 등 전시회를 마련할 수 있다.

AR, VR 기능은 웹페이지뿐만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데이터 처리량이 막대하기에 5G 활용이 필수적이다. 빅데이터는 소비자가 어떤 작품과 작가, 장르, 테마를 선호하는지 분석하여 니즈에 맞는 작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 현재 개발 중인 예술작품 플랫폼 ‘마스터피스’. 초기 시드머니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Q. 아이템 선정 계기가 궁금하다. 어떤 부분에서 사업화 가능성을 봤나.

A.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아이템과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을 시작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 중 예술작품 업계는 어느 정도 마켓이 형성이 돼 있으면서도,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또 평소 관심사라서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였다.

창업을 구체화하면서 예술업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예술작품은 주로 경매나 이커머스를 통해 판매와 중계가 이뤄지는데, 거치는 단계가 많다보니 가격거품이 두껍게 형성돼 있다. 반면 신진작가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마켓 자체가 부족하다. 신규 사업자로서 시장에 진출해 이를 해소하고 싶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기술력을 활용하면, 업계를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Q. 문화예술 비즈니스다. 경영 능력과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저평가된 좋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발굴해내는 안목도 필수일 것 같다. 상당한 전문영역인데.

A. 팀에 디자인 전공자가 있지만, 아직 아마추어 단계이기에 추후 전문 큐레이터를 영입할 계획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신진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생태계가 건전하게 돌아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신인들이 플랫폼을 통해 작가로서 작품의 가치를 높여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작가의 세계관이나 스타일 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노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큐레이터의 전문적인 식견, 그리고 인터페이스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Q. 창업과 정부사업 응모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들었다.

A. 올해 하반기까지 정부사업을 수주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빠른 결실을 얻게 됐다. 그간 학교의 도움이 정말 컸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겠지만, 마스터피스는 기술력이 중요한 사업이기에 팀빌딩 단계부터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으로 구성해야 했다. 교내 창업지원단이 지난해부터 창업의지가 있는 학생들을 매칭하고 멘토링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데, 여러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레 하나 둘씩 팀원을 영입하고 팀을 이루게 됐다.

또한 지난 4월 개소한 학생창업보육센터 첫 입주 기회를 얻게 됐다. 공간은 물론 전문 멘토링과 창업코칭, 창업교육, 활동비 등 다양한 지원을 학교로부터 받고 있다. 전용공간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도움이다. 스쿨버스 정류장과도 가까워 회의 소집이 용이하다. 창업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창의적인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이 탄생할지 기대가 된다.

▲ 지난 4월 열린 학생창업보육센터 개소식 및 입주기념식. 마스터피스 한영석 대표가 김성익 총장과 현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창업을 준비하거나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A. 창업을 취업이라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말 창업에 뜻이 있다면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오너십과 리더십, 전반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취업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교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지원해주고 있다. 풍부한 인프라와 인적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성공적인 창업과 취업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483971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5301324353886?did=NA&dtype=&dtypecode=&prnewsid=
파이낸셜투데이 http://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997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52917577495894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3274
대학저널 http://www.d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083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55&item=&no=18882
뉴스타운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314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90529010018409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9141

[삼육人] 어서와~ 외국인 홍보대사는 처음이지?


“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꿈만 같아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삼육대학교의 비전을 알리고, 학교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요”

평균 한국 체류기간 2년 남짓. 유학생들의 우리말이 또박또박 유창했다. 몽골 출신 다오까(사진 왼쪽, BATSAIKHAN DAVAADORJ), 중국에서 온 남천홍(가운데, 蓝天洪), 인도인 서릅(오른쪽, SAURAV TANWAR)은 각각 식품영양학과와 신학과, 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18학번으로 재학 중이다. 이들은 올해 우리 대학 학생홍보대사 수앰배서더 14기 단원으로 공식 임명됐다.

지난 2006년 수앰배서더 창단 이래 외국인 단원을 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외협력처 홍보팀 박순봉 팀장은 “최근 우리 대학의 ‘글로벌 캠퍼스’ 구축 정책에 따라 외국인 유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대학 구성원이 다양해진 만큼, 학교의 ‘얼굴’로 활용하는 홍보대사의 인원구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홍보팀은 외국인 홍보대사 도입 초기이고, 규정상 학부생 중에 선발해야 하는 등 인재풀이 한정적이기에 특별채용 방식으로 이들을 뽑았다. 국제교육원으로부터 후보자를 1차로 추천받은 후, 수차례 면접과 내부회의를 통해 홍보대사로서의 자질, 한국어 능력, 인성, 애교심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했다.

이들 세 명의 외국인 단원은 10명의 한국인 단원들과 함께 오리엔테이션과 기본소양교육, 춘계 워크숍, 캠퍼스투어 교육 등 일정을 소화하고 최근 수습기간을 마쳤다. 공식 임기는 내년 2월 28일까지 1년. 앞으로 캠퍼스투어와 입시홍보, 홍보영상 촬영, 모델 활동, 의전 및 행사지원 등 업무를 한국인 단원들과 구별 없이 똑같이 수행하게 된다.

중간고사를 앞둔 지난 4월, 우리 대학 최초의 외국인 홍보대사 3인을 백주년기념관 홍보대사실에서 만났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여느 한국 학생들과 다르지 않아 익숙했다. 시험을 앞두고 있어 조금은 지쳐보였지만, 홍보대사 활동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은 반짝였다.

▲ 왼쪽부터 남천홍(중국), 서릅(인도), 다오까(몽골)

Q. 삼육대 첫 외국인 홍보대사로 선발됐습니다.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요?

다오까 : 근로, 강의실 청소, 식당, 경비 등 교내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여러 직원 선생님들이 홍보대사를 해보라고 하셔서 수앰배서더를 알고는 있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외국인 학생을 뽑는다면서 국제교육원에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처음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용기를 갖고 도전하게 됐습니다.

남천홍 : (제안을 받았을 때) 엄청 놀라고 기뻤어요. 하지만 언어가 미숙해서 부담감도 컸죠. 외국인이었기에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삼육대를 알리고 싶어요.

서릅 : 국제교육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과장님이 추천을 해줘서 지원하게 됐어요. 이런 활동을 정말 하고 싶었기에 너무 좋았죠. 우리 학교를 홍보할 수 있어서 좋고, ‘홍보대사’라고 하면 뭔가 멋있잖아요. 다른 학교에는 외국인이 학생홍보대사를 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Q. 선발 후 오리엔테이션과 소양교육, 워크숍 등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다오까 : 워크숍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삼육대를 대표하는 분들과 회의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게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홍보대사 신입 단원은 워크숍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전통이 있어요.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를 열심히 준비해서 췄어요. (웃음)

남천홍 : 저는 홍보대사 동기와 트와이스 ‘TT’ 안무를 준비해서 췄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웃음) 늦게까지 정말 재밌게 놀았어요. 만우절에는 단원들과 한국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서릅 : 소양교육을 2주간 받았어요. 인사나 악수 예절, 의전매너 같은 비즈니스매너를 배울 수 있었고, 전혀 모르던 새로운 것을 알게 돼서 좋았어요. 1박 2일로 진행된 워크숍도 기억에 남아요. 선배, 동기 단원들과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회의를 했어요. 한국인의 말을 이해하면서 내 의견을 한국어로 말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자신감이 생겼고 여러 단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죠.

▲ 왼쪽부터 다오까(몽골), 남천홍(중국), 서릅(인도)

Q. 우리 대학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졸업 후에는 어떤 진로를 생각하고 있나요?

다오까 : 몽골에서 삼육전문대학교(Sahmyook College)라는 학교에 다녔어요. 한국인 목사님이 세운 학교인데, 미용·조리·웹디자인 전공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조리 전공을 했는데, 졸업하면서 우수학생으로 선발돼서 장학금을 받고 삼육대에 오게 됐죠. 지금은 식품영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영양학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에요. 세계적으로 활동하면서 건강한 음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남천홍 : 재림교회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중국에는 학교가 없어서 삼육대에 오게 됐어요. 진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깨닫고 싶었어요. 신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컸지만, 지금은 많이 인정해주세요. 음악도 공부하고 싶고, 공부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면 음악사역을 하며 전도하는 것이 꿈이에요.

서릅 : 한국에 온 지는 2년 조금 넘었어요. 한국에서 무역사업을 하는 삼촌이 삼육대를 소개해주셔서 어학당(한국어교육센터)을 먼저 다니게 됐어요. 어학 과정을 마칠 때쯤 한국에서 학부를 알아봤는데, 마침 다니고 있는 삼육대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학교가 서울에 있으니 취업준비나 여러 활동을 하기에 좋고, 금연, 금주 캠퍼스라서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서 큰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18학번으로 입학했는데,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코딩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도에는 고등학교에 컴퓨터 과목이 있거든요. 학부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네이버, 구글 같은 IT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것이 꿈이에요.

Q. 앞으로 수앰배서더 단원으로서 포부는.

다오까 : 삼육대는 저에게 천국 같은 곳이에요. 몽골에 있을 때는 이렇게 큰 세상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에 와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제가 느낀 삼육대를 잘 알리고 싶어요.

남천홍 :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캠퍼스 투어를 한다고 들었어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삼육대학교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 학교인지 알려드리고 싶어요.

서릅 :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한참 말을 고르더니) 수앰배서더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재학생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단원들과 해외봉사나 국내봉사도 하고 싶어요. 봄이 가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어서 SNS에 올리고 싶어요. 또 학교에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 왼쪽부터 남천홍(중국), 서릅(인도), 다오까(몽골)

Q. 마지막으로 삼육대 학우들에게.

다오까 :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떨어져서 사는 건 참 힘들어요. 가끔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오해와 상처도 있고요. 하지만 한국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서로 다른 부분을 이해하면서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남천홍 : 삼육대는 저에게 더 크고 위대한 꿈을 꾸게 한 학교에요. 여러분은 정말 특별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학교에서 인생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하길 바랍니다.

서릅 : 한국인,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우리 학교 학생’, ‘수앰배서더 단원’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다 같은 사람이니까. 함께 도와주고 서로 이해하면서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인과 외국인 학생들이 좀 더 친해지길 바랍니다.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478468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5271179396514?did=NA&dtype=&dtypecode=&prnewsid=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3003
대학저널 http://www.d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774
에듀인뉴스 http://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14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52414537427893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5788
뉴스타운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500
에듀동아 http://edu.donga.com/?p=article&ps=view&at_no=20190524110840614646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55&item=&no=18831

[열정 36℃]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1) 3D 프린팅 설계사 임진환(생명과학과 12학번) 동문
맹학교 졸업생들에 ‘만지는 졸업사진’ 선물해 화제
“지금 방황할지라도…분명 자신만의 길 있어“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열여섯 살 소년 임진환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 관절 물렁뼈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을 회복해 갔지만, 피아노를 칠 때면 손목이 저려왔다. 그렇게 첫 꿈을 접었다.

이후 그의 걸음은 ‘갈 지(之)’자를 그려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로 졸업했지만, 교차지원을 해서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동차공학(카메카트로닉스학과)을 복수전공하기도 했다. 군 전역 후에는 3D 프린팅 기술에 푹 빠져 지냈다. 현재는 3D 프린팅 스타트업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임 동문은 최근 맹학교 학생들에게 3D 프린터로 흉상을 제작해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관련 기사▷https://bit.ly/2KXLt8Z)

지난 2월 졸업을 앞둔 그를 교내 창업보육센터에서 만났다. 임 동문은 “돌이켜 보면 대학에 와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면서 “다만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맞는,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몇 주 후. 방탄소년단을 키운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 (그러니) 지금 큰 꿈이 없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만지는 졸업사진’

Q. 맹인학교 졸업생들에게 3D 프린터로 흉상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앞을 못 보는 학생들을 위한 ‘만지는 졸업사진’이라니. 비장애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소외감과 불편을 잘 짚어낸 것 같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지난해 우연히 유튜브에서 3D 프린트로 맹인학교 졸업앨범을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됐다. 너무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면서 여전히 맹인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사진첩 형식의 졸업앨범이 전달되고 있더라. 비장애인은 사진을 볼 수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맹인학생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나. 한 맹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졸업앨범을 나눠줄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 어차피 못 보니까.

3D 프린팅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회사 대표님과 이사님을 설득해 회사 장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Q. 프로젝트는 어떤 단계로 진행됐나. 실제 3D 프린팅 과정과 같나.

A. 맞다.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3D 스캐너로 1차 본을 뜬다.  다음에는 스캔한 파일을 실제 인물과 닮도록 좀 더 디테일하게 편집을 한다. 마지막으로 편집된 파일을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후가공을 거쳐 졸업식 때 전달해주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라서 혼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인근 별내고등학교에 자원봉사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15명의 학생들이 동참해줬다. 학생들에게 3D 스캐너, 모델링 편집 등 3D 프린팅의 전반적인 기술을 교육하면서 스캔과 흉상 가공 작업에 도움을 받았다.

▲ 별내고 학생 15명도 자원봉사자로 동참했다. 3D 스캐닝을 하는 별내고 학생들(사진 왼쪽)과 모델링 편집을 교육하는 임진환 동문(오른쪽).

Q. 프로젝트 진행은 순조로웠나.

A.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학교를 섭외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서울, 경기 지역의 거의 모든 맹학교에 제안서를 보냈는데, 이슈되는 것에 조금 부담스러워 하시더라. 유일하게 수유동에 있는 한빛맹학교에서 사업의 취지에 공감해주셔서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섭외 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복합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은 스캔할 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버거워했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학생도 있었고,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기술이다 보니 학생들이 당황해하면서 진척이 더뎠다. 스캔을 하려고 학교에 3번 찾아가서 3번 다 실패하는 등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생각을 바꿨다. 기술적인 부분과 프로젝트에만 집착하다 보니 학생들과의 교감에 소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학생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접근하니 일이 수월해졌다. 먼저 다가와주고 노력해준 학생들의 모습에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Q. 기술은 딱딱하고 차갑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다. 기술자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텐데.

A. 졸업식 때 한 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17년 동안 맹학교를 다녔는데, 친구 얼굴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고. 그렇다고 함부로 얼굴을 만져볼 수 없으니 아쉬웠다고. 친구들의 얼굴을 영영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가슴이 참 뭉클했다.

3D 프린팅을 처음 배울 때는 이 기술을 이렇게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기술 분야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너무 자기 이익만 좇지 않는다면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 2월 18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졸업식. 8명의 맹인 학생들은 이날 서로의 흉상을 더듬으며 “친구의 얼굴을 꼭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 만난 ‘3D 프린팅’

임진환 씨가 3D 프린팅 기술을 처음 만난 건 군 전역 직후였다. TV에서 우연히 3D 프린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작은 기계 하나로 인공장기나 의수, 의족, 복잡한 기계부품을 척척 만들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단한 기술이다. 이건 어디 가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

Q. 기술은 어디서 배웠나.

A.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학원을 알아봤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고 거리도 멀어서 내가 배울 수 없는 건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서 대학일자리본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3D 프린팅 실무교육’ 공고문을 보게 됐다. 내가 딱 원하던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Q. 3D 프린팅 기술이 최근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시장이니까.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불확실성’이기도 하다. 이 분야를 업(業)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A. 3D 프린팅 분야가 물론 아직 완전히 개척된 시장이 아니고,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누구보다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암감 보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3D 프린팅 기술 자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따라 음식도 가능하고 실제 의류도 생산하고 있다. 인공장기나 피부조직, 혈관 등 의학 분야에서도 이미 여러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3D 프린팅이 빅데이터, AI와 함께 4차산업혁명의 3가지 핵심 과제 중 하나이지 않나. 이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Q. 생명과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카메카트로닉스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지금은 3D 프린팅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대목마다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A, 사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하지만 사고로 오른손 관절을 다치면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됐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생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대학은 생명과학과로 입학했다.(웃음) 학교에 다니면서 복수전공으로 공학인 카메카트로닉스를 했고, 졸업을 하면서 3D 프린팅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보통의 대학생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다. 생각도 없이 꿈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냥 학교에 다니기만 한 세월도 있었다. 그런데 다 자기만의 길이 있는 것 같더라.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연결되면서(Connecting the Dots) 자신에게 맞는 길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Q.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것 같다.

A. 지금도 꿈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학생들이 많을 거다. 나 역시 그랬고. 하지만 나는 분명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꿈이 없더라도 너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하는 것을 계속 하면서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풀어갔으면 좋겠다.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인터뷰 중 그는 ‘잭 안드라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의 친구가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장당 3센트의 비용으로 각종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한 소년이다. 기존 진단 방법보다 168배 빠르고, 가격은 2만6000배나 낮춘 제품이다.

임 씨는 “평소 이 소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뭔가 대단하고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의 문제점을 해결해서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을 키워주고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 이 3D 프린팅 기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Q. 10년 후 본인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A. 10년 후까지는 감히 상상을 안 해봤지만, 의수·의족·인공장기 등을 설계하는 인체공학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제품들이 있지만,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3D 프린팅 기술과 접목시켜 생산비용과 시간을 더 줄이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하게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기술을 통해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앞으로도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시리즈 연재]
[열정 36℃] (1)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2)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3)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4)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열정 36℃] (5) 신학과 출신 독학파 테너, 팝페라 스타가 되다
[열정 36℃] (6)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산다
[열정 36℃] (7) 뉴욕의 한국어교사…K-컬처의 중심에 서다
[열정 36℃] (8) “내 경쟁력은 ‘소신’…길게 보고 한우물 파겠다”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A. 나에게 독서란 ‘다른 인격과의 만남’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영감을 얻는 두 가지 원천이 있는데, 하나는 독서이고, 하나는 여행입니다. 그중에서도 독서는 저자의 인격과 만나는 것입니다. 좋은 책의 저자는 자신의 인격이 투영된 글을 쓰고, 그 글은 나에게 말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감동을 받고 마음이 열리고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이지요. 독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장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독서란 다른 인격과의 만남인 셈입니다.

Q. 건축을 전공하셨습니다. 대학 시절엔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

A.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읽지 말아야 할 책을 먼저 읽었고, 그 책 때문에 정반대의 진로를 향해 걸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 유명한 불가지론자인 버트란드 러셀 경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자연히 나의 청춘은 불가지론으로 기울어졌지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같은 책을 읽고 기독교인 친구들을 꽤나 괴롭혔던 기억이 납니다. ‘만물이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제1원인론에 대한 부정을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라는 신의 말씀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전공 분야에서는 <근대건축은 왜 실패하였는가>라는 피터 블레이크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비평집을 정말 가슴 시원하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반대로 근대건축에 매료당하고 말았지요. 청춘시절 저는 지금의 제 건축이나 삶의 방향과는 정반대의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다른 자극을 줬고,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 청춘시절의 이태은 교수.

Q. 청춘시절이니 문학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A.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같은 연애소설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많이 읽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 괴테, 헤세,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특히 폴란드 작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를 참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 외에도 독특한 취향이 있었는데, 미래소설이나 사이언스 픽션(SF)을 광적으로 탐독하기도 했지요. 아더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유년기의 끝> 등은 종교적 백 그라운드를 가진 나의 상상력을 우주의 심연 너머로 향하게 했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충만한 SF 단편들,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알프레드 엘튼 반 보그트, 알프레드 베스터 등도 매력 있는 작가들이었습니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젊은 건축가에게 이 SF 소설들이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Q. 건축을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교수지만, 건축가로서 여러 작품을 설계하셨습니다. 특히 우리 대학 백주년기념관, 신학관, 체육관, 디자인관, 솔로몬광장 등을 설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건물은 무엇인가요?

A. (우리 대학 건물 중) 첫 번째로 설계한 건물이 바로 지금 제가 앉아 있는 디자인관이고, 마지막이 백주년기념관입니다. 그래서 이 두 건물이 애착이 갑니다. 디자인관은 아주 혹독한 설계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 정원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면서 당장 겨울방학 4개월 안에 건물을 짓지 못하면 강의실 대란이 일어날 상황이었습니다. 또 공사비를 최대한 적게 사용해야 했고, 건축학과와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사용할 건물이기에 독특성도 가져야 했습니다.

여러 고민을 하다 PEB공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이 힘을 받는 부위에 따라 부재의 사이즈를 다르게 하는 공법인데, 경사진 부분을 디자인으로 활용해 공사비를 15% 정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 대학에서 가장 저렴한 공사비로 시공한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주년기념관은 당시 행정부가 건축물의 외관을 고전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해서 건축가로서 많은 갈등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현대건축에 고전적인 요소를 집어넣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백주년기념관도 가급적이면 현대적인 건축물로 짓고 싶었지요. 하지만 대중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립대학 건물들이 고전적인 형태를 많이 취하고 있으니, 영향을 받고 기억에 남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약간 절충적인 방법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삼육대의 미래를 상징하는 ‘유리’라는 박스 위에 삼육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돌’이라는 박스를 결합시켰습니다. 백주년기념관에서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 부분은 유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외관은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해 서양 고전건축의 열주, 코니스에서 모티프를 차용했습니다. 그렇게 행정부와 대중을 만족시키고 저의 콘셉트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가장 많은 기도로 만들어진 건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해당 건물이 들어서는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 역사나 문화, 철학 등을 고려한 개념 규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학의 주요 건물들을 많이 설계하셨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육동’이라는 공간은 어떤 심성(心性)을 가진 공간일까요? 건축가로서 어떻게 공간을 규정하고 건축을 하셨습니까.

A. 삼육동은 독특한 장소입니다. 과거 이곳은 왕가의 땅이었고, 아주 훌륭한 소나무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재가 가까이에 있기에 문화재보호구역이기도 하고, 생태보전지역이기도 합니다. 바로 뒤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군사시설보호구역이고, 또 녹지보전지역(그린벨트)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규제를 다 받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규제 때문에 삼육동의 환경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은 인간을 닮고 인간은 공간을 닮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육동의 건축공간은 위압적이지 않고 조용하며 겸손하고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되고 자연을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공간과 형태를 지녀야 진정한 삼육동 건축이 아닐까요.

▲ 이태은 교수의 연구실에 붙어 있는 백주년기념관 설계도. 아래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솔로몬광장 조감도가 눈에 띈다.

Q. 최근 건축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개발시대에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성과 위주의 건설을 넘어서 이제는 공간에 대한 이해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문화적 가치들을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건축가가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죠. 앞으로 우리 건축문화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또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건축’과 ‘건설’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건설회사의 규모가 더 크다보니 건설이 훨씬 더 큰 개념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건축이 더 상위의 개념입니다. 건설은 건축을 구현하는 하나의 도구이지요. 건축은 건설과 디자인을 넘어서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입니다. 프랑스의 건축법은 “건축은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으로의 건축문화는 건축이 삶의 환경과 백 그라운드일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대상으로서 사람들의 추억 속 일부가 될 것입니다. 또한 건축은 과학과 기술과 예술이 총체적으로 표현된 한 나라의 문화적 척도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건축이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유용하며 경제적이어야 합니다. 미와 기능, 구조 및 경제가 균형진 트라이앵글을 이루면서 인간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입니다.

Q. 그렇다면 교수님은 어떤 건축물에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아파트에 삽니다.(좌중 폭소) 실제 많은 건축가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거를 결정한다는 것이 건축가 자신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고, 아내나 가족들의 필요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사람이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웃음)

Q. 건축은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에 인문학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축가로서 통찰을 얻기 위해 요즘은 주로 어떤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A. 근래에는 시집이나 기도문을 많이 읽습니다. 건축과 시는 참 닮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시의 콘셉트와 건축의 콘셉트가 비슷합니다. 시는 언어로서의 구조체계와 리듬감, 상징체계를 갖습니다. 이는 건축의 구축 방법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시집은 건축가인 저에게 굉장한 영감을 줍니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시적인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건축가가 60살이 되면 이제 건축을 조금 알 것 같다고 하고, 70살이 되면 경지에 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나이가 70쯤 됐을 때 ‘건축의 시인’으로 불리면 좋겠다, 그런 꿈을 갖고 있습니다.


이태은 교수의 ‘추천 책’


<스페인은 건축이다>
김희곤 저, 오브제
김희곤 선생은 우리 대학 겸임교수로도 오래 계셨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스페인 건축에 크게 매료되어 이 책을 쓰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여행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가로서 아주 정교하고, 정서적이고, 문학적인 시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 졌기에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시켜서 스페인만의 하이브리드 건축을 만들어 냈는지, 그런 건축물에 세계가 얼마나 열광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저, 동녘
여러 철학자의 사상과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을 병치시키면서 연관성을 기술해나가는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 흔히 인문학을 ‘문(文)·사(史)·철(哲)’이라고 하는데, 문과 철을 연결시킨 아주 좋은 책입니다. 저의 시 선생이셨던 고(故) 장청 시인께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고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
칼릴 지브란 저, 박영만 역, 프리윌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이 쓴 책입니다. 오래 전부터 애독하는 책이고, 아이들에게도 꼭 읽으라고 권해주는 책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시인이 기독교인보다 예수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세밀한 면들을 기술했습니다. 특별히 그 아름다운 문체가 우리 청춘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과 좋은 정서적 영향을 줄 것입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삼육人] 유아교육과 정혜원 동문, 공립유치원 임용시험 수석 합격

유아교육과(학과장 신지연) 14학번 정혜원 동문이 2019학년도 서울특별시 공립 유치원 교사 임용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정 동문은 1, 2차 시험 합계 186.5점(200점 만점)으로 서울지역 응시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학시절 교육봉사와 교육실습을 하며 보람을 느껴 유치원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졸업 후 보다 좋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공립유치원 시험에 도전했다.

정 동문은 “대학에서, 그리고 시험공부를 하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항상 기억하면서 하루하루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우리 대학 유아교육과는 올해 공립유치원 임용시험에서 정 동문 외에도 서울지역 석차 3등(09학번 윤경진 동문)을 비롯한 총 8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여기에는 학과의 지속적인 지원과 컨설팅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유아교육과는 매년 임용시험 지도교수를 배정해 1차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면접과 수업실연 등 2차 시험에 대비한 심층지도를 하고 있다. 또 매 학기 합격 선배를 초청해 특강을 열고, 스터디그룹을 운영하며 선후배간 교류와 시험정보 공유를 위한 모임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신지연 학과장은 “학과의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과 담당 교수님들의 헌신, 그리고 학생들의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얻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정혜원 동문과의 인터뷰 전문

Q. 수석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욕심 부리지 말고 3년 안에만 붙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첫해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지금까지는 삼육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가장 큰 일이었는데 이제는 임용고시에 합격한 것으로 바뀌었네요. 무엇보다 아빠와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 행복합니다.

Q. 유아교육과 졸업생들은 사립유치원에서도 많이 근무하는데, 임용시험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4년 동안 유아교육과에 다니며 두 번의 교육 봉사와 한 번의 교육 실습을 했어요. 저는 매번 사립유치원으로 갔었는데, 보다 좋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공립유치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유아교육에 대해 많이 배우긴 했지만 4학년 2학기를 마칠 때까지도 지금 당장 유치원에 가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없었어요. 그래서 (임용시험 준비를 하며) 공부를 조금 더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Q. 공부는 어떤 방법으로 하셨나요?

A.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예체능을 했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대학에 와서 첫 성적은 정말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저에게 맞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두꺼운 전공 책, 길게 늘어진 줄글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항상 시험기간에는 노트에 요약을 하며 공부를 했었어요. 이 방법으로 공부하면서 점점 성적이 올랐기 때문에 임용 공부를 할 때에도 항상 개요도를 만들고 스스로 요약해가며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학교에 다닐 때는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를 하곤 했는데, 임용은 범위도 방대하고 1년에 딱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이 달린 시험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공부하려고 노력했어요.

Q. 시험을 준비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멘탈 관리’ 방법이 궁금해요.

A. 저는 성격이 워낙 단순해서 큰 슬럼프는 겪지 않았어요. 저도, 가족들도 ‘이번에 떨어지면 내년에 한 번 더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거든요.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떨어진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니 너무 큰 압박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들과 저를 비교하지 않았어요. 임용고시 학원을 가면 재수, 삼수하시는 분들도 많고, 매일매일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15시간 이상씩 공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 ‘과연 합격자 명단에 내 자리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거기에 얽매여있기 보단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이 멘탈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Q. 학과에서는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A. 아쉽게도 저는 4학년이 끝나갈 때쯤 임용고시를 봐야겠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학과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많이 활용하지 못했어요. 과 사무실에 있는 전공서적, 지도서들도 정말 좋은 자료인데 졸업을 한 상태라서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봤어요.

가장 큰 도움을 꼽자면 교수님께서 수업실연과 면접을 개별적으로 지도해주신 것이에요. 1차 합격 후에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봐주시겠다고 하셔서 동기들과 함께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1년 반 만에 교수님 앞에서 수업을 하는 거라 너무 떨렸지만, 꼼꼼하게 피드백 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시험장에서 더욱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임할 수 있었어요.

Q. 후배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임용 공부를 하다보면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다 나와요! 그러니 강의를 열심히 듣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예습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의수업!!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시험 경향을 보면 2차 시험인 수업과 면접의 비중이 커졌거든요. 그러니 모의수업이나 발표를 할 기회가 있다면 피하지 말고 자주 해보세요.

Q. 어떤 교사가 되고 싶나요?

A. 공부를 할 때는 합격만 하면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막상 당장 다음 주부터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려니 또 다른 걱정들이 생겼어요. 그렇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들, 공부하며 느낀 것들을 항상 기억하며 현장에서 아이들과 재미있고 행복한 생활을 할 거예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기에 하루하루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더욱 멋진 교사가 되겠습니다.

매일경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133572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81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90228010015255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22816367415491
대학저널 http://www.d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879
뉴스타운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483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mode=&skey=%BB%EF%C0%B0%B4%EB&x=0&y=0&section=1&category=155&no=18083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2019년 새해를 맞아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매월 캠퍼스 곳곳에 걸리는 글판 현수막은 누가 만드는 걸까.

지난 2016년 3월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는 학생처장으로 부임하면서 글판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때마다 어깨를 빌려드릴게요’ ‘가을이다 그냥 웃자’ ‘놀라워라, 저기 꿈꾸는 자가 걸어온다’. 흘림체로 새겨진 글자와 함축적인 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문학적 향기가 짙다. 만 3년째. 최근 그는 21번째 현수막을 걸었다.

화가로서는 ‘김천정(金千丁)’이라는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문자(文字), 즉 ‘문장언어’가 주요한 소재로 활용된다. 한 개인전 작가노트에서는 “문자는 사물의 형상에서 출발하여 고도로 절제되고 상징화된 이미지이며 지적사유의 결정체”라고 했고, 최근에는 ‘책이 사람이다’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책의 물성과 미학을 탐구했다.

‘자존(自尊)’ ‘사유언’ ‘챌린지 프로젝트’ ‘따뜻한 사람’ ‘천원의 행복’ 등 그간 학생처장으로 재직하며 추진해온 사업들의 ‘네이밍’도 남달랐다. 부임 첫날에는 ‘학생이 행복할 때까지 지원하겠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청년시절부터 이어진 왕성한 독서행위가 김용선이라는 한 인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듯 했다. “작은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한 적이 있다”고 조심스레 고백한 그는 답변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밀도 높은 언어를 구사했다. 시인 같았다.

Q. ‘청춘의 독서’ 첫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간단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첫사랑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첫 인터뷰는 부담이 됩니다. 하루 지나면 후회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꺼이 감당해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Q. 식상한 질문입니다만, 앞으로 이 코너의 고정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입니까.

A. 나에게 독서란 ‘화학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속의 단어나 문장들이 가슴으로 들어와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호모 케미쿠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화학 하는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변은 온통 화학제품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화학제품은 물질과 물질끼리 만나 반응한 결과입니다.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책속에 있는 단어와 문장은, 때로는 밤안개처럼 스멀스멀 내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벼락처럼 순식간에 가슴속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에게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반응의 크기가 우리 삶의 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Q. 미술을 전공하셨습니다. 대학시절엔 어떤 책을 읽으셨고, 어떤 책에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79학번이니, 80년대 초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민주화 열기가 대학가에 퍼질 때였지요. 꽃향기 대신 최루가스가 캠퍼스 곳곳에 자욱했습니다. 그 시대의 화두는 ‘민주’ ‘노동자’ ‘민중’이었습니다. 이성복 황지우 신동엽 박노해 김지하 시인,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귀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정현종 같은 서정 시인들도 참 좋아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습니다.

가장 영향을 받았던 책은 한완상 선생의 <민중과 지식인>입니다. 민중은 두 가지인데, 의식화되지 못한 민중이 ‘즉자적 민중’이라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민중은 ‘대자적 민중’이라는 내용입니다. 제 청춘시절의 자아를 발동시키고, 의식적인 청년으로 살아야겠다는 영향을 준 책입니다.

Q. 대학생들이 흔히 하는 전공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나요?

A. 미대에 들어가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내 멋대로 그리면 모두 예술이 되고 명작이 되는 착각에 사로잡혀있었지요. 2학년이 되고부터 미술 이론과 해부학, 매일 수십 장씩 던져지는 드로잉 과제 때문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절망과 한계를 느끼며 여러 번 붓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방황하기를 여러 달, 우연히 청계천 책방에서 조각가 로댕이 쓴 <로댕어록>이란 책을 만났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김용선 교수는 아래 문장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예술가는 한 방울 한 방울 바위에 파고드는 물처럼 느리고 조용한 힘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일하면서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때가 많다. 진보란 더디고 불확실한 것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열리게 된다. 그러니 예술가는 그날이 너무 멀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젊은 날에 청춘의 활기가 넘칠 때에 그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이 구절을 보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불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모든 것들을 태워버렸습니다. 이게 바로 화학반응이지요. 그날 바로 마음을 다잡고 교실로 들어가 기본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교수가 되고 나서 한 제자가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책을 주면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용기를 준 기억이 납니다.

Q. 캠퍼스 곳곳에 걸린 글판을 제작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A. 2016년 3월부터 시작해서 벌써 21번째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평균 1달 반 정도 걸어놓습니다. 대개 현수막은 어떤 결과를 자랑하거나, 행사를 눈에 띄게 광고하는 목적으로 쓰입니다. 모두 경쟁 가치를 추구하는 문구들로 채워지지요. 그런데 ‘비경쟁가치언어’로도 현수막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0자 내외로 문장을 창작하고, 직접 손으로 써서 편집을 해 걸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Q. 3년쯤 하셨으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저기 꽃들이 피네요, 그냥 눈물이 납니다’라는 현수막을 건 적이 있었는데, 두 학생이 학생처에 찾아와 “꽃이 피는데 왜 눈물이 나느냐”고 따지듯이 물어본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그 어린 새싹이 저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나와 꽃을 피웠는데 어찌 눈물이 나지 않느냐고요.

불암산도 태백산맥도 멀리는 히말라야 산맥도 바로 내 옆에서 피어나는 풀 한포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풀 한 포기를 유심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이렇게 되묻고 나니 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봄이 왔는데 설레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조금 센 문구를 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주변 교수님들이 “난 사람도 아닌가봐”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셔서 한 달도 안돼서 뗀 적도 있습니다.(웃음) 붙인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다음 문구는 뭐냐고 질문하시는 교수님들도 있고, 친구가 있는 대학에서는 현수막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관심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삼육대학교에 가면 비경쟁언어로 쓰인 현수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A. 제일 처음 걸어놨던 현수막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우리들의 봄은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우리(교수들)의 존재 이유가 되는 학생들은 우리들의 봄이 분명합니다. 때론 힘들고 괴로워서 잠을 못 이루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래도 청년은 봄의 계절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슬픈 상자 속에 들어있으면 슬픔밖에 보이지 않지요. 다행인 것은 슬픔이나 계절이나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라고 했던 정현종 시인의 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Q. 이 코너의 첫 인터뷰이라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요즘 20대들은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청춘’과 ‘독서’라니. 순진하고 한가한 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청춘시절의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우리 청년들의 앞날이 칼날보다 무섭다는 말을 합니다. 또 많은 미래학자들이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무책임하지만 정직한 말이죠. 모든 것이 마냥 흘러내리고 완전하거나 확실하거나 뚜렷한 것이 없는 액체의 시대입니다. 이처럼 앞날이 불확실할 때일수록 생각의 크기, 정신의 크기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려고 하니 괴로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또 책은 산이나 강과 같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막상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에게 정말 많은 양식과 지혜를 줍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더더욱 책에 집중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삼육대학교 청춘들에게 응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멍게는 유생 시기에는 올챙이처럼 잘 움직입니다. 안점, 후각계, 뇌, 근육, 지느러미, 척삭, 신경 등 상당히 고등한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 자라고 나서는 이 기관들을 퇴화시키는데, 끝내는 자신의 뇌마저 소화시켜 버립니다. 그 후로는 아무 생각이나 움직임 없이 그저 바위에 몸을 붙인 채 여과 섭식만 하는 식물적인 식생을 유지합니다.

자기 뇌를 삼켜버린 이 멍게처럼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식물로 살아가선 안 됩니다. 젊은이의 영토는 자신이 달려가는 곳까지입니다. 저 바람 부는 날 허공에 길을 내는 거미를 보십시오. 불안하고 바람이 불어와도 자기의 갈 길을 가는 거미처럼 여러분도 어떠한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달려가십시오.


교수님의 ‘인생 책’


눈물의 편지
고인을 기리는 사람들 저, 넥서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용미리 납골당을 방문한 유족들이 망자에게 남긴 방명록 편지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죽은 자에게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들을 고백한 글들입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해본 것, 어머니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셨던 동치미 국물 한 그릇 못해드린 것, 아버지께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주지 못한 것. 우리네 삶이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소소한 것을 가장 후회하면서 살아갑니다. 행복은 돈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침묵으로 말하지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며 살라고.


질문의 책
파블로 네루다 저, 정현종 역, 문학동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입니다. 스물네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소제목 없이 전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시집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재미있는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는 시집입니다. 좋은 질문만으로도 시가 되고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시애틀 추장 저, 류시화 편, 더숲
류시화 시인이 수집하고 우리말로 옮긴 인디언 연설문집입니다. 총과 병균과 사상을 앞세우고 쳐들어온 백인들에게 터전을 빼앗기고 물러가면서 남긴 연설들을 모은 것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시적인 연설은 오만한 백인 문명의 허구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 정신세계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41편의 명연설과 해설, 희귀한 어록, 뛰어난 사진들과 독특한 인디언 달력까지 담고 있어 인디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디언들의 북소리처럼 울림이 큰 책입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삼육人] 김준섭 총학생회장 ‘또 기부’…임원들도 뜻 모아

[인터뷰] 총학생회 임원들, 임기 마치며 360만원 기부
김준섭 회장은 벌써 3번째…”기부문화 확산되었으면”

세밑 ‘기부한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부 손길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김준섭 총학생회장이 벌써 3번째 기부를 이어오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엔 총학생회 임원들도 함께했다.

김준섭 총학생회장(원예학과 4)과 박인규 부총학생회장(원예학과 3), 곽다빈 총무부장(컴퓨터학과 3)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360만원을 최근 학교에 전달했다. 이들은 임기를 마치며 ‘학생회 임원장학금’으로 받은 금액에서 각각 200만원, 100만원, 60만원을 갹출해 기부금을 마련했다.

김준섭 회장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기부다. 지난 2016년 군 복무 중 성추행범을 붙잡아 경찰에 넘겨 학교로부터 선행 장학금을 받았는데, 당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모녀가 저수지로 차를 몰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뉴스를 보고 “어려운 학생이 등록금을 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장학금으로 받은 100만원 전액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관련기사▷https://bit.ly/2Q7IcRJ)

지난 6월에는 학교 발전기금 모금캠페인 ‘글로리(Glory) 삼육’에 힘이 되고 싶다면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틈틈이 모은 200만원을 쾌척해 귀감을 사기도 했다. (관련기사▷https://bit.ly/2AhPdKu) 여기에 기부한 장학금 200만원까지 더해 누적 기부금 500만원을 채웠다. 재학생 개인이 500만원 이상 기부를 한 경우는 무척 드문 사례다.

▲ 왼쪽부터 박인규 부총학생회장, 김준섭 총학생회장, 곽다빈 총무부장

이번에는 지난 1년간 함께 수고한 총학생회 임원들도 뜻을 같이했다. 박인규 부총학생회장은 “윗물에서 기부하니 아랫물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기부는 처음 해봤는데,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곽다빈 총무부장은 “지난 1년간 학생회 일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얻었다. 받은 것만큼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김준섭 회장은 이미 학내에선 ‘기부하는 총학생회장’으로 유명하다. ‘기부쟁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대부분 학생이 그의 아낌없는 선행에 박수를 보내지만, 간단한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허름한 체육복만 입고 다니는 모습에 “왜 그렇게까지 기부를 하느냐”는 안타까움과 우려 섞인 말도 듣는다.

김준섭 회장은 “얼마 전 장학금 전달식에선 총장님이 ‘이번엔 꼭 자신을 위해 쓰라’고 하셨다”며 “하지만 기부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기부야말로 나를 위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라는 것이 꼭 재력가나 단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처럼 평범한 학생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 추운 날씨만큼이나 기부 한파가 매섭다는 뉴스를 봤는데, 기부문화가 보다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Q. 기부 계기는.
김준섭 총학생회장(이하 회) : 학생회장을 하면서 항상 이 자리가 내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 학우들이 응원해주고 만들어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임기를 마치면서 받은 임원장학금을 나한테 쓰기보다 학우들, 특별히 형편이 어려운 학우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또 학생 개인이 500만원 이상 기부를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총 기부금 500만원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교수님, 직원 선생님, 외부 기부자분들 뿐만 아니라 학생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박인규 부총학생회장(이하 부) : 윗물(회장)이 하니까 아랫물이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나. 같이 동화가 됐다. 살면서 다양한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 기부는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로 셋이 뭉쳐서 기부하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기분 좋으려고 했는데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곽다빈 총무부장(이하 총) : 어디나 그렇겠지만 학생 기부 참여가 매우 적다고 들었다. 기부금 약정서를 보면 재학생 체크란이 없더라. 선행은 확산된다고 본다. 누군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면 따라 줍진 않아도 적어도 버리진 않을 거다. 우리를 계기로 여러 학우가 참여하고 그러다 보면 애교심도 확산할 거라고 생각했다. 또 총학생회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고 발전을 이뤘다. 그런 것들을 학우분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Q. 360만원이라는 금액은 일부러 맞춘 건가.
총 : 삼육대라서 360만원을 하자고 했다. 회장 아이디어였는데 재밌었다. 64만원(육사)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웃음)

Q. 김준섭 회장은 벌써 3번째 기부다. ‘기부천사’ 같은 별명은 없나.
부 : ‘기부쟁이’라고 부른다. 옆에서 보면 참 대단하지만, 어떨 땐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감자버거 같은 거로 때우는데 ‘그렇게까지 기부를 해야 하나’ 싶은 거다. 간혹 기부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더라. 장담하건대 무엇을 바라고 기부를 할 사람은 결코 아니다.

Q. 장학금 전달식에서 총장님이 ‘이번엔 꼭 자신을 위해 쓰라’고 했다던데.
회 : 이게 나를 위한 거다. 기부하면 행복해진다.
부 : 큰일 날 사람이다.
총 : 역시 기부쟁이다.

Q. 두 분은 이전에 기부 경험이 있나.
부 : 전혀 없었다. 이번을 계기로 응어리를 쓸어내린 것 같다. 처음 해봤는데 뭔가 짜릿한 기분이 있었다. 느낌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직접 하시면 알게 될 테니 더 말하진 않겠다. (웃음)

총 : 유니세프 등 자선단체를 통해 남을 돕는 일은 종종 해왔다. 그런데 실제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잘 모르지 않나. 하지만 학교에 기부하면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더 보람 있고 행복한 것 같다. 이번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지지해주셨다. 어머니가 우리 대학 출신이시다. 동문회비를 꾸준히 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 자극받고 나도 분발해야겠다 생각했다.

Q. 마지막으로 임기를 마친 소회를 듣고 싶다.
회 : 지난 1년간 여러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렇게 학교가 도와주려고 하고 협조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천보축전이다. 3천명이 넘는 학우들이 왔다. 짜릿해서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두드리면 열리는구나 싶었다. 주변 학교와 삼육중고등학교에서도 화제가 됐다. 학생들이 오고 싶어 하는 대학으로 이미지 개선이 된 것 같았다.

총 : 총학과 학교를 오해하는 학우분들이 간혹 있다. 학교는 금지하고, 총학은 소위 꼭두각시라는 식으로. 학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총학과 학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다. 건전하고 올바른 학생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부 : 깨끗한 윗물이 내려오니 아랫물이 너무나 선선했다. 이상이다. (좌중 웃음)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242819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81227082800004?input=1195m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1227MW153733555687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ngo/876069.html
매일경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806059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81227010017228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4942
메트로 http://www.metroseoul.co.kr/news/newsview?newscd=2018122700109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122714127479013
뉴데일리경제 http://biz.newdaily.co.kr/site/data/html/2018/12/27/2018122700115.html
아시아타임즈 http://www.asiat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996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05158
대학저널 http://www.d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905

[삼육人] 평창동계올림픽 루지 국가대표 조정명(생체 14)

“시합을 앞둘 때는 참 시간이 더디게 가더니 막상 끝나고 나니까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벌써 폐막이라니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을 몇 시간 앞둔 지난 달 25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조정명(25)의 목소리는 비교적 밝아보였다. 자신이 출전한 루지 종목 일정이 일찍 끝난 덕에 휴식을 취하며 여유 있게 올림픽을 즐겼다는 조정명은 줄곧 강릉올림픽파크에 머물며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응원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삼육대 생활체육학과 조정명(14학번) 학우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루지 더블과 팀 계주 종목에 출전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그는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박진용(25·경기도체육회) 선수와 함께 뛴 더블에서는 1, 2차시기 합계 1분32초672를 기록, 20개 출전팀 가운데 9위를 차지했다. 팀 계주에서는 2분26초543으로 피니시라인을 끊으며 9위에 올랐다.

뛰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연이틀 ‘톱10’에 오르며 한국 루지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 루지 더블의 경우 18위에 그쳤던 4년 전 소치올림픽 성적과 비교하면 무려 9계단이나 오르는 큰 발전을 이뤘다. 언론은 “작은 기적” “기대 이상의 성과” “희망을 본 한국 루지”라고 평했다.

Q. 루지 더블 2차 런을 마치고 환호한 뒤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감정이었나요.
“피니시 후 ‘톱10’이 확정된 그 순간은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생애 첫 톱10이었어요. 그것도 가장 큰 무대인 올림픽에서요. 우리나라에서 그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도 무척 기뻤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경기를 마쳤을 때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분들이 환호해주셨어요.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느낀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Q.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쉰 날을 모아보면 채 1달도 안 될 거예요. 훈련을 위해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 머물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파트너인 박진용 선수가 올해 초 팔꿈치 뼈가 부서졌어요. 올림픽을 불과 3주 앞둔 1월 중순에는 손가락이 부러져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었고요. 썰매도 부서져서 다시 만들기도 했었죠.

Q. 4년을 준비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뻔 했네요.
“고맙게도 파트너가 수술을 무사히 마쳐줘서 국제연맹 측에서 올림픽 출전 허가를 내려줬어요. 정말 기적적으로 출전했어요. 되돌아보면 고된 훈련보다 그 시간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Q. 원래는 축구선수였다고 들었습니다.
“10년 정도 축구선수를 해왔는데, 스무 살 때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만뒀어요. 또래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체육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루지라는 종목을 추천해주시면서 국가대표 선발 공문을 보여주셨어요.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게 새로운 시작일지는 꿈에도 몰랐죠. 그렇게 얼떨결에 선발전에 나가서 상비군으로 뽑혀 1년을 활동했고 2013년 국가대표가 됐어요. 이듬해에는 소치동계올림픽에 나갔어요.”

Q. 종목 전환이 기회가 됐네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보니까 희소성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메리트는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좋아서 하는 게 가장 커요. 운동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루지에 빠져들었죠.”

Q. 왜 좋나요?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빠른 스피드예요. 시속이 140~150㎞까지 나오는데 같은 속도로 차를 타는 것과 썰매를 타는 것은 차원이 다르죠. 예민하게 썰매를 조종하면서 맨몸으로 속도를 받아내는데 짜릿한 쾌감이 있어요.”

Q. 소치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은 아마 평생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올림픽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큰 무대인데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열리다보니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게 다가왔어요.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던 당시의 그 희열은 앞으로 어떤 시합에서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한 달 정도는 쉬고 싶어요. 그 다음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위해 다시 많은 과정과 성장을 이뤄내야 하겠죠.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이제는 내가 어느 정도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고 시합은 계속 있으니까 점차 좋은 단계를 밟아가면서 다음 올림픽에는 더 높은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잠시 쉰 다음 더 좋은 성적을 위해 다시 달릴 겁니다.”

Q. 삼육대 학우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응원해주셨습니다.
“동기들이 올림픽 앞두고 잘해달라고 힘내라고 연락이 왔는데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여러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신 학우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 이전까지는 루지라는 종목이 뭔지 잘 몰랐던 분들이 많으셨을 거예요. 이번 올림픽에서 보내주신 응원과 관심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대한체육회, 조정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