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 “‘멍에’ 함께 나눠 질 때, ‘멍에’는 곧 ‘명예’ 될 것”

‘코로나19 위기대응 본부 ‘ 조직·운영, 실시간 모니터링 학생 건강 최우선
‘4차 산업혁명 시대’ 연계전공 준비, ‘수-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운영
섬기는 마음으로 학교 발전에 최선, 다양한 채널로 투명한 정책 결정

예년 같았으면 새내기 웃음소리와 저마다의 미래를 향해 가는 발걸음으로 가득했을 삼육대학교 교정이었겠지만, 올해는 고즈넉했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가 메마른 교정을 적시고, 빈 강의실의 창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코로나19’로 교육 역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강이 이뤄진 가운데, 삼육대는 김일목 총장 시대를 맞이했다.

김 총장은 3월 16일에 온라인 취임식을 열어 대학 구성원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학령인구 감소, 점점 어려워지는 대학 재정 상황, 학생들의 취업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혁신 과제, 여기에 팬데믹 상황 대처까지. 김 총장의 어깨에 걸려 있는 ‘멍에’가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하지만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멍에’를 함께 나눠 질 때, ‘멍에’는 곧 ‘명예’가 될 것”이라며 온화한 미소로 자신 있게 말했다. 본지는 김 총장에게 ‘코로나19’ 이후의 대학 교육 변화에 관해 묻고, 총장 재임 기간 동안 삼육대에서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들어봤다.

– 그간 삼육대는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해 왔나.
“삼육대는 학생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방역과 전체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지난 2월 3일 김남정 부총장을 본부장으로 전 유관부서가 참여하는 ‘코로나19 위기대응 본부’를 조직해 실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고, 캠퍼스 전체 시설에 방역을 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입국 시 공항 픽업부터 교내 특별시설 2주 보호 등 선제적으로 조치했다. 수업 부분에서는 ‘원격수업 TFT(태스크 포스팀)’를 구성해 수업 지원과 서버 증설로 서버 다운로드 사태와 여타 사고들을 대비했다. 지금은 ‘강의 5부제’를 시행 중이다.

이런 방식에 익숙지 않은 교수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데에도 투자했다. 원격 교육 질 관리를 위해 직원과 이러닝 지원 조교들은 e-class에 업로드된 1만여 건의 강의 영상을 전수 모니터링했고,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교육 만족도를 확인한 뒤 서비스에 반영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대학 경영자로서 예측하는 ‘대학의 미래’는 어떤가.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범 교육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수업결손과 교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혼란과 위기가 그간 답보상태였던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빠르게 당겨올 거라는 전망도 쏟아진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을 가능케 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온라인 교육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온라인 교육에 제한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교육 당국의 방침도 이번 사태를 통해 많이 달라질 거라고 본다.

그렇다고 디지털 교육이 현장 교육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자신의 저서 ‘나와 너‘, ‘만남의 교육’ 등에서 말했듯이, 진정한 교육은 나와 너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뤄진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과 성장 배경, 관점을 가진 다양한 사람을 만나 관찰하고, 상호학습하면서 자란다. 청각, 시각, 후각 단서들을 교환하고 일대일로 소통할 때 더 깊은 학습이 이뤄졌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새로운 기술도 대면을 통한 학습을 근본적으로 대체하진 못했다.”

– 그렇다면 온라인 교육은 대안이 못되나?
”대학 현장에서 디지털은 대면 강의의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다. 삼육대는 2017년부터 ‘MVP 혁신교수법’이라는 교육모형으로 강의를 온라인으로 예습하고, 실제 강의실에는 토론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진행하는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을 운영 중이다. 또한 삼육대 디지털 러닝센터는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물리치료 임상실습을 할 수 있는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해 물리치료학과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SU) 같은 온라인 교육 특화 대학교의 사례를 한국대학신문 기사로 접하기도 하고, UCN 콘퍼런스에 참여하면서 참고했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대면 접촉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과 온라인 교육이 결합할 때 가장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교육혁신’이 대학가 화두다. 임기 중 특별한 방안이 있나.
”앞서 말했듯 삼육대는 지난 2017년부터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 기반으로 ‘MVP 혁신교수법’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운영 중이다. 수업 전-중-후 학습자를 밀착 관리로 학습효과를 극대화한 교육모형이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평가원이 실시한 대학기관평가인증에서 ‘우수대학’ 사례로 선정됐다. 지난 학기 기준으로 18개 학과 49명의 교수가 총 69개 교과목에 이를 적용해 운영했다.

아울러 ‘혁신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교육, 연구, 진로지도, 행정, 학과 전공 등 대학의 모든 분야에서 상시평가를 할 계획이다. 대학 경쟁력을 갖추려면 시대 요구와 흐름을 분석·판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관련 검증 부서도 별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현재 직면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스템은 신입생 역량 분석 및 강화, 학부교육의 질 관리, 졸업생 조사를 통한 학부 교육성과 분석도 가능하다. 즉, 입학에서부터 중도 탈락, 졸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성과분석과 예측이 가능해 학생들이 원하는 맞춤 교육을 완성하고, 교수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유도할 수 있다. 삼육대는 이렇게 얻은 분석 결과를 활용해 교육과정 선진화를 꾀하고, 궁극적으로 학생 창업률·취업률이 향상되도록 할 계획이다.”

– 취임사에서 현재를 ‘일모도원(日暮途遠)’에 비유했다. 대학이 마주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무는 상황’이다. 모든 사안이 급하지만, 재정위기가 가장 심각하다. 학령인구 감소와 12년째 동결된 등록금, 2023년 입학금 전면 폐지까지 각 대학 재정난은 한계치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의 재정은 등록금과 발전기금, 법인전입금, 국고 지원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정부는 등록금을 교육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했다. 건축이나 시설 보완 및 기타 사업은 등록금 이외의 자금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감축으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운영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번 총장 임기 중 ‘발전기금 확충’을 통해 재정적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취임 직후 실무부서와 긴밀하게 협의해 모금 목표액을 정했고, 기금 유치 및 홍보 전략을 수립했다. 삼육대는 연간 30억원 정도 발전기금이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효율적 경영이 가능하다. 이에 향후 4년 임기 동안 120억원을 모금 목표액으로 정했다. 최근 미주에 설립인가를 받은 삼육대 국제재단(가칭) 조직을 정비해 연내 출범하고, 미주지역에서도 기금 유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최근에도 학교를 사랑하는 전·현직 교수들과 퇴직한 교직원, 유학생들까지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어서 학교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 삼육대 발전을 위해 이후 교수와 교직원 역량 강화는 어떻게 할 계획인지.
”재정이 허락하는 한 교수들을 위한 최첨단 교육시설과 최선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획처 산하에 국책사업 및 연구사업 유치기획단을 신설해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대학의 혁신은 ‘대학 사무혁신’에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직무분석, 목표관리, 인사고과 3대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용해나갈 것이다.

– ‘사람을 참되게, 세상을 환하게’라는 슬로건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삼육대는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개교한 이래 지난 114년간 지(智)·영(靈)·체(體) 전인교육을 바탕으로 ‘진리와 사랑의 봉사자’를 양성해왔다.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참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우리 대학의 설립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지난해 본교 학생이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맹학교 졸업생들에게 ‘손으로 보는 졸업사진’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열어 주목받았다. 차가운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따뜻하게 해주는지 보여준 사례다. 우리 대학은 학생 개인이 진행한 이 프로젝트를 지난 학기부터 정규교과목으로 개발·편성해 졸업필수 교과목인 ‘지역 사회공헌’에 ‘3D 프린팅 재능기부’로 개설했다. 이는 삼육대가 지향하는 교육과 목적이 같다.“

– 학교와 학생의 노력과는 별개로 취업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대학의 핵심 역할은 탁월한 교육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그것을 가지고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창업’과 ‘창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생전에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한다’라고 말했다. 시대는 극대화된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데, 여전히 문과·이과 칸막이 교육과 주입식 수업이 계속되고, 대학에서도 ‘해답형’이 아닌 ‘정답형’ 인간을 배출하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MIT는 약 3만 개의 동문 기업이 4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연간 매출이 약 2100조원 규모다(2015년 기준). 또한 스탠퍼드대학은 4만여 개의 동문 기업이 5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이들 기업의 연평균 총매출이 약 3000조 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대학은 가치 창출의 새로운 시대정신의 구현을 요구받는다.

대학도 지역 사회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역발전의 어젠다를 제공하고 혁신 역량을 제고하는 싱크탱크가 돼야 한다. 대학의 기술과 연구가 지역의 발전으로, 그리고 지역의 발전이 민족의 발전으로, 나아가 세계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고, 삼육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을 바꿔온 범위와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우리네 삶을 변화시킬 전망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ICT 같은 특정 산업 분야, 특정 직업, 그리고 특정인을 중심으로만 전개되진 않을 것이다. 모든 대학이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대학은 ‘수-이노베이션 아카데미(SU-Innovation Academy)’라는 4차 산업혁명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경영정보학과 컴퓨터공학부, 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아트앤디자인학과를 융합해 신설한 연계전공이다. △ICT 융합 비즈니스 △지능형 빅데이터 처리 △ICT 서비스디자인 △인공지능 등 4개 트랙으로 강의 중이다.

무엇보다 수-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특정 학과, 특정 전공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정보기술 및 인공지능 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경영, 인문, 사회과학, 보건의료, 문화예술 등 모든 전공자가 참여할 수 있다. ICT 기술을 능동적으로 습득해 자신의 전공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을 위해서다. 비전공자를 위한 별도의 프리스쿨(Pre-School) 과정을 마련해 정규과정의 기초 이론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우리 대학은 정보기술 및 인공지능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정보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람과 기술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진취적이고도 도전적인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여기에 삼육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적 감각 증진을 위해 유수의 해외대학교와 여러 MOU를 준비하고 있다.“

– 그렇다면 삼육대가 자랑하는 전공분야는 무엇이고, 중점 분야가 있다면?
”삼육대는 전통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강하다. 약학과,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보건관리학과, 상담심리학과가 경쟁력을 갖고 있고, 이 5개 학과가 참여하는 ‘중독 연계전공’을 개설해 중독 전문가를 양성해왔다. 지난 5년간 교육부의 수도권대학특성화(CK-II)사업으로 86억 원의 국고 지원을 받아 관련 교육과정을 고도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임기 중에는 미래 사회에 대비한 학과의 융복합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는 여러 지식과 기술이 전방위로 융합되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이 등장하고 있다. 오래전 만들어진 학과의 칸막이에 갇혀 있어서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학생들이 여러 학문 분야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융합적인 안목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학과구조개선 위원회’를 구성해 학과 융복합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이 소속된 학과를 넘어서 연계·융합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해 졸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공과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 앞으로 어떤 각오로 임기를 수행할 것인가.
”총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구성원의 집단 지성을 존중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 모든 구성원이 대학의 비전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 김일목 총장(오른쪽)과 최용섭 한국대학신문 발행인.

■ 김일목 총장은…
삼육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삼육대 대학원 신학과와 미국 앤드루스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신학박사(조직신학) 학위를 받았다. 김 총장은 1994년 삼육의명대 전임강사로 임용됐으며, 2000년부터 삼육대 신학과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그간 교목처장, 신학과장, 생활교육관장, 신학숙관장, 삼육대학교회 담임목사 등을 역임하며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김 총장의 임기는 2020년 3월 1일부터 4년이다.

<대담=최용섭 발행인 / 사진=한명섭 기자 / 정리=허정윤 기자>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8301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8984

[열정 36℃]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열정 36℃] (4) 남양주소방서 119구급대 소방사 김규형(간호학과 11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11월 27일 오전 10시 경춘선 금곡역 승강장. 40대 남성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철로 아래로 추락했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는 일촉즉발 상황. 이때 20대 청년이 철로로 빠르게 몸을 던졌다.

이 청년은 추락한 남성을 안아 철길 옆 승강장 아래 공간으로 옮겼다. 다른 시민들은 달려오던 전동차를 향해 멈추라고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전동차는 두 사람이 있는 바로 그 앞에서 멈춰 섰다. 간호학과 재학생이던 이 청년은 추락한 남성이 머리를 다친 것을 보고 소독 등 응급처치까지 했다.

이 살신성인 미담의 주인공은 우리 대학 간호학과 김규형 동문(사건 당시 3학년)이다. 미담은 당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많은 이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안겼다. S-OIL은 2014년 ‘올해의 시민영웅’으로 김 동문을 선정하고 표창장을 수여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의 근황을 듣게 된 건 지난해 한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관련기사▷‘철로 떨어진 시민 구한’ 김규형 동문, 소방관 특채 임용) 졸업 후 대학병원 간호사로 입사했다고 들었는데, 뜻밖에 소방관이 되어있었다. ‘시민영웅’과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의 이미지가 어렵지 않게 겹쳐졌다. 야간당직 근무를 막 마친 그를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났다.

 

금곡역 시민영웅

Q. 7년 전 그날 어떤 일이 있었나요.

“등교하려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오는데, 어떤 40대 남성분이 열차를 타러 급히 뛰어오시더라고요. 숨이 가쁜지 호흡을 제대로 못 하셔서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앞으로 쓰러지더니 그대로 선로에 떨어졌어요. 순식간이었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남성분은 선로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열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어요. 급박한 순간이었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작정 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분을 끌어 플랫폼 밑에 있는 공간으로 피하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껴안았어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발버둥을 치더라고요. ‘괜찮다’라고 반복하며 안심시켰어요. 열차가 서서히 멈추고 기관사와 눈을 마주쳐 열차가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한 후 시민들과 함께 아저씨를 끌어올렸습니다.“

Q. 응급처치도 했는데요.

“아저씨의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어요. 역사에 있는 응급처치 키트로 지혈하고 상처 부위를 소독했어요. 이름, 나이, 사는 곳 등을 물어보면서 뇌 손상 여부도 확인했고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어요. 3학년이라 병원에 실습을 나갈 때여서 어렵지 않았죠.”

Q.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죠. 선로로 뛰어들면서 열차가 들어오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그런데 당시에는 내가 내려가면 저분을 빨리 옆으로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위험하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Q.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습니다. 평소 기질이나 성향이 이타적인 편인가요?

“그런 일이 처음이라 기질을 논하긴 힘들 것 같아요. 당시 젊은 남성이라면 누구나 뛰어들었을 거예요. 그때 주변에 계셨던 분들은 다 노인과 아주머니들이었거든요. 당연히 제가 하는 게 맞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말씀을 안 드려서 모르셨어요. 그러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아시게 됐는데, 많이 혼났죠. 모든 일가친척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장손인데 무슨 생각으로 그랬냐고.(웃음) 물론 잘했다는 말씀은 꼭 해주셨는데,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말씀도 꼭 하셨어요.”

Q. 그런 일을 겪으면 생각이나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항상 사고를 의식해요. 사고는 내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죠.”

▲ 당시 채널A 뉴스 보도. 구조한 남성에게 응급치료까지 한 그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했다”고 말했다.

이직의 아이콘

김 동문은 우리 대학을 졸업한 후 전공을 살려 곧바로 간호사로 취직했다. 성적이 좋았고 면접도 잘 봐서 무리 없이 대학병원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많은 박수와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혔다. 간호사 일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날의 사고처럼 뜻밖이었다. 대학병원부터 개인병원까지 2년 6개월 동안 3개의 직장을 거쳤다. 그즈음 친구들로부터 별명도 얻었다. ‘이직의 아이콘’.

Q. 뭐가 문제였나요?

“정말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간호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간호사가 됐어요. 그런데 병원 취직 후 직접 경험한 간호사라는 직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무척 보람 있었지만, 불규칙한 근무 일정과 사람 관계 등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힘들었어요.”

Q. 많이들 힘든 직업이라고 하더군요.

“보람이나 장점도 많은 직업이에요. 힘든 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개중에 잘하는 친구들은 또 정말 잘하고요. 그런 면에서 적성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나름 포부를 안고 첫 병원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퇴사하면서 많이 위축됐어요. 그 상태에서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갔고, 거기에서까지 나오게 되니 더 위축되더군요. 악순환이었어요.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했고요.”

Q. 그래서 소방관으로 진로를 바꾼 건가요?

“간호사 경력으로 소방관이 되는 길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같이 일하던 친구가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서 이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날부터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시험 등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돌파구 같았어요. 잊고 있던 7년 전 그 사건도 기억났고요.”

Q. 7년 전 사건요?

“사고 당시 지하철에서 응급처치하고 119구급대원 분들에게 인계를 드렸어요.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아마 지금 제 선임이셨을 거예요. 구급대원들이 전문적인 처치를 하는 걸 보면서, 나도 뿌듯한데 저분들은 얼마나 뿌듯할까 싶었어요. 그 경험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어요. 병원에서 환자를 케어하는 일은 2차적인 부분이에요. 현장에서 1차로 환자를 구하고 처치하고 싶었죠.”

Q. 실제 소방관 중에 간호사 출신이 많은가요?

“소방공무원은 세 종류로 나뉘어요. 화재진압, 구급, 구조대. 소방서 전체에서 비율은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구급대에서는 간호사가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요. 구급대장님도 간호사 출신이시고요.

Q. 특채로 임용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제도인가요?

“환자를 구급차로 이송하는 중에 응급처치를 하는데요. 이때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런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병원 임상에서 일했던 경험과 스킬이 필수적이고요. 자격자나 경험자를 뽑아서 구급차에서 환자의 소생률을 높이자는 게 특채의 목적이에요. 실제 구급대는 대부분 특채로 선발하고 있고요. 응급구조사 1급, 간호사 면허 둘 중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병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특채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겨요.”

Q. 어떤 시험을 보나요?

“필기시험은 국어, 영어, 소방학개론 총 3과목이에요. 국어, 영어는 수능보다 조금 낮은 난이도라 준비하는 데 어렵진 않았고, 소방학개론은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준비했어요. 체력시험은 6종목이에요. 윗몸일으키기, 제자리멀리뛰기, 악력, 배근력, 오래달리기, 유연성 시험을 봐요. 면접은 단체면접과 개별면접이 있고, 적성검사와 신체검사도 있고요.”

▲ “환자를 이송하는 중에도 전문적인 처치가 굉장히 많이 이뤄집니다.” 1평 남짓한 이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구했다.

브레인 세이버

Q. 우리나라 소방관의 직업만족도가 최하위라고 합니다.

“소방관이 된 지 2년 정도 됐어요. 그동안 직장생활 한 것 중에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어요.(웃음) 근무하면서 출근하기 싫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어요. 언제나 출근하는 길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왜 그렇게 소방관의 직업만족도가 낮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Q. 어떤 부분이 가장 만족스럽나요?

“소방관은 생각하는 것보다 일반 시민들의 존경을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대부분의 환자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사고 후에 찾아와서 손잡고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과일이나 과자도 많이 사 오세요. 당연히 받으면 안 돼서 그냥 돌려보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죠.”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시민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어요. 아파트 경비원이셨는데, 24시간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이셨어요. 왼쪽 다리, 왼쪽 팔을 못 쓰고 말도 제대로 안 나왔고요. 그런 상태로 10분 거리의 집을 1시간이 되도록 못 찾고 헤매고 계셨어요. 걱정된 부인이 마중을 나갔다가 발견하고 119에 신고를 한 거였죠.

환자 상태를 보고 뇌혈관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일차적인 판단을 내렸어요.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이동했고, 이동 중 의사와 계속 통화하면서 주사 등 여러 응급처치를 했어요.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어요. 뇌출혈은 보통 예우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후유증이 남기 쉬운데 치료를 잘 받고 기적적으로 2주 만에 완치가 돼서 퇴원하셨어요.

그분이 제가 근무하는 시간에 과일을 들고 찾아오셨어요. 2주 전 마주했던 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쾌된 모습이었죠. ‘덕분에 치료가 잘 돼서 퇴원했다. 부인과 여행을 간다. 가는 길에 너무 고마운 게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하셨어요.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죠.

그 일로 상도 받았어요. ‘브레인 세이버’라고 급성 뇌졸중 환자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고, 이송해 후유증 최소화에 기여한 구급대원에게 소방청에서 주는 인증 칭호에요. 지난해 상이 처음 생겼고, 구급대원 중에서는 최초로 받았어요.“

Q. 천직이네요. 하지만 소방관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

“현장 판단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순간순간 어떻게 대처할지 판단하는 건 경험에서 나오지만, 개개인의 타고난 능력 차도 있어요. 긴급한 상황에서 판단을 잘못하면 환자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동료와 자신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통 흔히 말하는 빠릿빠릿한 사람이 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느긋한 사람들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또 아무래도 병원에서는 상처를 정돈된 상태에서 보게 돼요. 피도 옷에서 우선 다 제거되고 드레싱(환부소독)이 된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보게 되고요. 그런데 저희는 다친 상황을 바로 마주하기 때문에 잔인한 경우가 많아요. 저는 무감각해서 상관없는데, 무섭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은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고려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 적성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자면.

“학교에 되게 늦게 들어갔어요. 간호학과 입학했을 때 25살이었고 졸업은 29살에 했어요.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서 2년 6개월을 방황했고요. 그렇게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지금은 소방서에 와서 정착했어요. 굉장히 행복한 상태에요.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취직을 못 하거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속 이직을 하거나, 꿈을 못 찾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계속 찾으려 하고 갈망하다 보면 언젠간 찾게 돼서 본인이 원하는, 딱 맞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멈추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갈망하고 찾는걸.“

김 동문은 적지 않은 급여와 비교적 안정적인 스케줄, 여러 수당, 연금, 정년보장 같은 것들이 주는 푹신함과 안온함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는 “안정을 찾은 덕분에 최근에 결혼을 하게 됐다”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행복하게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안전해야 해요. 물론 위험한 순간이 많지만, 내가 안전하게만 한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직업이에요. 반면 안전한 상황에서도 안전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직업이고요. 앞으로도 항상 안전하게 일하면서 많은 시민을 구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싶습니다.”

정부는 지난 4월 1일 지방직 소방공무원 5만2516명 전원의 신분을 국가직으로 전환했다. 이를 계기로 소방관의 처우는 개선되고, 보다 안전한 근무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모든 소방관이 계속 안전하기를,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를, 그래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더 안전해질 테니까.

[시리즈 연재]
[열정 36℃] (1)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2)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3)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4)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열정 36℃] (5) 신학과 출신 독학파 테너, 팝페라 스타가 되다
[열정 36℃] (6)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산다
[열정 36℃] (7) 뉴욕의 한국어교사…K-컬처의 중심에 서다
[열정 36℃] (8) “내 경쟁력은 ‘소신’…길게 보고 한우물 파겠다”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독서란 ‘여행’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세계로의 여행’입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철학책은 그 자체가 인간의 정신, 삶, 사유를 다루지요. 그 과정이 마치 여행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저에게 독서란 정신세계로의 여행입니다.”

Q. 청춘 시절 주로 어떤 책을 많이 읽으셨나요?

“대학교 1~2학년 때는 소위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에 속하는 일반교양 서적을 많이 읽었습니다. 에세이나 수필 같은 그다지 난해하지 않은 책들이죠. 그중에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자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했던 ‘사랑학 강의’(Love Class) 내용을 글로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고유한 한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매력적이고 가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 수필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라 읽고 또 읽으면서 지금까지 백번은 읽었을 겁니다. 영어 원서로도 수십 번은 읽었습니다.

3~4학년 때는 심리학, 철학 서적을 많이 봤습니다. 철학 분야에서 기본서라고 하는 책부터 시작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에 심취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당연히 다 이해를 하진 못했지만요. (웃음)“

Q. 책을 정말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고등학교는 이과를 나와서 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신입생 때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재밌는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는 몇백만 권의 책이 있는데, 책 제목만 보는 데도 6개월이 걸린다고요.

다음날 학교 도서관에 가봤습니다. 6개월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한두 달은 걸리겠다 싶더군요. 그렇게 책 제목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입으로 소리 내서 읽는 게 아니라, 책 제목을 유심히 눈으로 따라내려 갔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을 여행하는 것처럼 둘러보고 나니 2주 만에 다 읽더군요.“

▲ 서경현 교수는 대학 시절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수백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고 했다. 사진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영어 원서.

Q. 무엇이 달라지던가요?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에 굉장히 관심이 많이 가게 됐습니다. 어디에 가면 어떤 책이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게 되면서 도서관과 저절로 친해졌습니다. 책 제목을 쭉 보면서 기억해 놨다가 관심 가고 흥미 있는 책은 나중에 꺼내서 읽기도 하고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잖아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인생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저에게 도서관은 그런 초콜릿 상자였습니다.“

Q. 심리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람의 의식이나 영혼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정신세계라는 것은 무엇일까. 잔디밭에 누워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정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43일을 보내고, 14개월 조금 넘게 입원하다 퇴원했습니다. 죽을뻔하다가 살아나니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더군요. 친한 친구가 군사훈련을 받다가 죽고, 같은 동네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 마음에 굉장히 관심을 두게 됐고,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서경현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중독심리를 연구하고 교육해온 중독심리학 분야 중견학자다. 한국중독상담학회장, 서울시립창동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케이무크(K-MOOC)에 ‘중독상담’ 강좌를 개설한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공저 <중독상담학개론>이 2019년 세종도서 학술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Q. 우리나라에서 ‘데이트 폭력’ 문제를 처음으로 이슈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도 초 미국 위스콘신대 알코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알코올중독을 연구하다 보니 데이트 폭력과 연결되더군요. 당시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데이트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Q. 데이트 폭력과 중독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나요?

“데이트 폭력도 일종의 중독 현상입니다. 학계에서는 ‘관계중독’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대부분 상대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가해하고, 피해도 당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본인은 이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굉장한 갈망을 키워온 사람은 쉽게 끊어내질 못합니다.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집착이 너무 강하기에 역설적으로 심각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스토킹도 2/3 이상이 연인이나 연인이었던 사람들끼리 일어납니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중독의 정의에 거의 부합하는 유형을 보이기에 중독의 한 영역으로 봅니다.

당시 논문을 쓰면서 한국에서도 데이터를 많이 모았습니다. 그런데 국내 매스컴에서는 이 문제를 다룬 곳이 전혀 없더군요. 2001년 보도자료와 논문을 정리해서 4대 일간지 사회부 기자들에게 보냈습니다. 마침 중앙일보 기자에게 회신이 와서 취재에 협조했습니다. 사회면 절반 이상을 할애한 특집 기사가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고, 방송에서도 연달아 데이트 폭력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Q.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하셨죠.

“영어로는 ‘Dating violence’입니다. ‘데이팅 폭력’ ‘데이트 폭력’으로 쓰려니, 영어와 한국어를 섞은 조어라서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엔 ‘연애폭력’으로 번역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취재기자가 ‘연애’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다면서 ‘데이트 폭력’으로 쓰자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논문과 방송에서 그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Q. 학자로서 보람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 무료로 진행하는 온라인 상담소도 꽤 오래 운영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데이트 폭력을 처음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에 알렸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죠. 최근에는 입법 논의가 오가고, 대통령까지 심각성을 이야기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데이트 폭력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많이 생겼습니다. 일선 경찰들은 단순한 사랑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심각하게 대처를 하고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지난 국회에서 ‘데이트 폭력 방지법’이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보다 실효성 있고 강력한 법 규정이 필요합니다. 총선을 맞아 각 정당이 여성 관련 정책과 공약으로 데이트 폭력을 많이 언급하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요즘은 어떤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대학 시절에는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아마 못해도 4년간 1~2천 권은 읽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1년에 1권 읽는 게 어렵습니다. 논문은 1년에 수백 편을 읽고, 온종일 책과 글에 파묻혀 살지만, 독서는 몇 년째 전혀 못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메마른 삶이죠.

책 3페이지를 읽으면서 3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독서입니다. 정신세계로의 여행이죠. 읽으면서 생각하고 감동하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살찌울 수 있습니다. 아마 은퇴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웃음) 항상 꿈이죠. 책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사색도 하고, 산책도 다니고, 여행도 다닐 겁니다. 저녁에는 와이프와 영화를 볼 거고요.“

Q. 독서는 청춘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청춘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지만, 청춘이기에 꼭 필요한 게 독서이기도 합니다. 정신이 맑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을 때 책을 읽으면 얻는 게 더 많거든요. 책에 빠져서 고뇌하고 내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죠. 나중에 나이 들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교수 생활 하면서 학생들에게 독서를 굉장히 많이 강조했습니다. 지금 인터뷰 내용도 강의에서 많이 이야기했던 내용이에요. 그런데 문득 지난 5년간은 책 얘기를 전혀 못 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책을 못 읽고 살았던 거죠. 인터뷰 준비하면서 청춘 시절에 읽었던 책들도 새삼 꺼내 보고, 현재 나의 삶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경현 교수의 ‘추천 책’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김경일 저, 진성북스

우리가 기존에 당연하다고 믿으면서 반복적으로 행하던 여러 상황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오히려 ‘거꾸로’하는 게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새로운 대안들을 심리학의 관점으로 제시하는 책입니다. 인지심리학자이신 아주대 김경일 교수님이 쓰신 책입니다. 요즘 방송에 많이 나오시는 분이죠. 강의도 참 재미있어요. 인지심리학이나 지각심리학이 어려운 분야인데, 굉장히 흥미롭게 우리의 행동과 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인생이여, 행복하라>
김형석 저, 큰태양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에세이입니다. 2018년에 우리 대학에서 강연도 하셨죠. 청년기부터 100세에 이른 본인의 삶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원로 철학자의 인생 조언이 담긴 책입니다. 저 역시 행복과 웰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탈 벤 샤하르 저, 김정자 역, 느낌이있는책

저자가 하버드대에서 했던 강의를 엮은 책입니다. 행복의 개념을 비롯해 긍정적인 삶을 위한 다섯 가지 관점, 행복을 위한 다섯 가지 지침 등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론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냅니다. 한국인으로 100년을 살아오면서 행복을 연구하신 김형석 교수님의 책과 미국의 심리학자가 이야기하는 행복론을 비교해서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열정 36℃]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3) 국민일보 국민엔젤스앙상블 김유경(음악학과 15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지난해 4월. 국민일보는 ‘국민엔젤스앙상블’이라는 장애인예술단을 설립하고, 중증 자폐성 장애인 5명을 단원으로 채용했다. 국민일보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천지사와 장애인 고용증진을 위한 협약을 맺고 난 뒤 나온 후속 조치다. 단원들은 4대 보험과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보장받으면서, 월 2회 이상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 일간지가 중증 장애인을 사원으로 직접 채용한 것은 국내 언론사상 최초 사례다. 이 고용모델은 즉각 장애인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민·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정책 토론회에서 장애인 고용의 우수사례로 언급되었으며, 현재 충남대병원을 비롯한 전국 10여 개 국립대병원과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등이 국민엔젤스앙상블의 자폐인 예술가 고용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예술단 창단을 추진하고 있다.

이 예술단에서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파트를 맡고 있는 김유경(자폐성 장애 1급) 씨는 우리 대학 동문이다. 2017년 음악학과(클라리넷 전공)에 일반전형으로 편입한 그는 지난해 졸업 직후 앙상블 첫 단원으로 입단하게 됐다.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는 “발달장애 학생이 사회적 기업이 아닌,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에 취직한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라며 “학생도, 어머니도, 학생을 선발해서 가르친 우리 학교도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는 김유경 동문의 어머니 이명숙 씨와의 전화 통화 내용으로 구성했다. 김 동문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소통에 조금 제한이 있었지만, 직업인으로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자존감은 분명히 느껴졌다.

언론사 직원이 되다

Q. 국민일보에 입사한 지 10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요즘 근황이 어떤가요?

“시험만 안 볼 뿐이지 계속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요. 국민엔젤스앙상블 외에도 오케스트라 2개를 더하고 있어요. 인천지역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라온제나오케스트라,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 소속 나눔챔버오케스트라는 초창기부터 9년째 계속하고 있죠.

연말까지는 아무래도 행사가 워낙 많으니까 연습하고 공연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요즘은 연초이고 코로나 바이러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행사가 많이 취소되면서 조금 한가해졌어요. 바쁘지만, 유경이가 지난 1년간 많이 편안해졌고 안정감을 찾은 게 눈에 보여요. 직장생활을 재밌어하고요.(웃음)”

▲ 국민엔젤스앙상블과 국민일보 변재운 사장. 맨 왼쪽이 김유경 동문.

Q. 취직한 것을 인식하고 있나요?

“조금 아는 것 같아요. 취직했을 때 친구들한테 국민일보 사원이 돼서 기쁘다고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 때 되면 꼭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알고요. 나름 자기 통장에 계속 급여가 들어오고 주변에서 사원이라고 하니까 조금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봤어요. 친구들한테 밥을 사주고 싶대요. 자기한테 쓰는 것보다 워낙 주변 사람들한테 베푸는 걸 좋아해서. 그간 감사한 분들도 많이 찾아뵈었어요.”

Q. 앙상블 입단 과정이 궁금합니다.

“졸업 후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좋은 기회로 연결이 됐어요. 졸업할 즈음 자폐 음악인 자녀를 둔 부모님 세 분과 아이들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의기투합했어요. 역시 계속할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더군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을 여럿 만나다가 국민일보 정창교 기자님(현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장)을 만났어요. 예전부터 장애인 분야에서 취재를 많이 하신 분이라 인연이 있었죠.”

Q.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만나 뵙고 상황을 말씀을 드리니 가능할 것 같다, 함께 알아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일단 개별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 음악을 하는 발달장애인 4~5명이 앙상블을 꾸려서 시도하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천지사에 알아봤어요. 공단 쪽에서 저희 취지를 잘 받아주셨고, 회사(국민일보)와도 이야기가 잘 됐어요. 이후 양측이 협약을 맺고, 국민일보 산하 앙상블이 창단되면서 정식 사원으로 채용됐죠. 이런 고용모델이 거의 첫 사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체계가 덜 잡혔지만, 차츰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Q. 근로조건과 급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공식적으로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해요. 공연 시간에 따라 시간은 조금 유동적이고요. 급여는 4대 보험 적용을 받고, 100만원 남짓이에요. 물론 많진 않지만, 대부분 자폐음악인들이 행사당 몇 만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안정적이죠. 국민일보 사장님과 회사에서 앙상블 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서 열심히 하면 좀 더 올려주지 않을까요. (웃음)”

Q.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유경이가 국민일보 직원이 되는 날 공식행사 일정표를 보고 몇 번이고 다시 쓰는 것을 보며 직장인이 된 딸이 자랑스러웠어요. 선생님들께 어려운 부분을 배울 때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악기를 놓지 않던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정말 대견했어요.”

▲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원들과 국민일보 변재운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 정창교 단장(맨 왼쪽)이 앙상블 창단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사보다 먼저 판단했습니다

김 동문의 어머니 이명숙 씨가 딸의 자폐증을 인지한 것은 48개월을 갓 넘긴 즈음이었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Q. 자폐증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48개월쯤 되었을 때였어요. 주변에서 아이가 조금 이상하다. 자폐증인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자폐증이 잘 알려지지 않을 때여서 저도 처음 들어본 말이었어요. 신문에서 보고 알았죠.”

이 씨는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20개 문항으로 된 자폐증 진단 테스트를 보게 됐다. 10개 이상에 해당하면 자폐증. 그런데 거의 모든 문항이 딸의 증상과 유사했다.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과를 찾아갔다.

Q.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나요?

“처음부터 자폐증 판정을 받진 않았어요. 그런데 치료실을 갔더니, 거기 아이들이 유경이와 똑같더라고요. 자폐증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예요. 그때 판단을 했어요. 의사 선생님 보다 제가 먼저 판단을 한 거죠.

이후에는 어떤 치료가 좋은지 백방으로 알아봤어요. 좋다는 게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찾아갔어요.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혼자 살게끔 이라도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겠다 싶었어요.”

Q. 그래서 악기를 시작했군요.

“워낙 산만하고 증상이 심했어요. 초등학교를 10살에 입학했고, 들어가서도 ‘엄마’라는 말을 못 했어요. 도저히 앉아있지를 못해서 피아노를 하면 칠 때만큼은 앉아있겠지 싶어서 선생님을 구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애인을 가르쳐본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이후로 10년을 개인레슨 했어요.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악기를 연주할 때면 놀랍도록 차분해졌어요.”

Q. 전공은 클라리넷인데요.

“클라리넷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취미로 시작했어요. 비장애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생각보다 실력이 빠르게 늘었어요. 피아노는 혼자서 하는 악기였지만,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는 오케스트라 친구가 바이올린 하는 것 보고 자기도 하고 싶다면서 시작해 지금까지 하게 됐고요.”

희망이 된 대학교육

Q. 대학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학교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삼육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장애학생도우미 제도가 너무 잘 돼 있어요. 학습에 여러 도움을 받지만, 일단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게 학교생활에 큰 도움이 되죠.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잖아요. 덕분에 정말 즐겁게 학교생활 하면서 학업을 잘 마쳤어요.”

Q. 교수님 중에서 기억나는 분들은요?

“임봉순, 조대명, 성주진 교수님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임봉순 교수님. 학생들을 보듬어주시는 게 남다르세요. 유경이 외에도 여러 장애 학생들을 많이 보살펴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셨어요. 집이 부평이라 지하철을 5번씩 갈아타면서 혼자 등교했어요. 멀고, 두렵고, 어려웠는데, 교수님들께서 힘을 주시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하셨어요. 대학에 가서 정말 많이 좋아진 걸 느껴요.”

Q. 우리 학교에 보내길 잘하셨네요.(웃음)

“그럼요. 주변에 삼육대학교를 정말 많이 홍보하고 있어요. 처음엔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 들어가서도 무리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찌어찌 대학에도 들어가서 좋은 교육을 받고, 취직까지 하게 됐어요. 전혀 생각도 못 했던 거라 너무 감사하죠. 요즘 와서 발달장애인도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음악 하는 장애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대학에 가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많은 부모님들이 유경이를 보면서 희망을 갖게 됐어요. 그런 희망을 주셔서 학교에 참 감사하죠.”

사실,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의 대학교육에 대해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에게도 기본권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과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대학교육의 경우 투자 대비 아웃풋을 고려했을 때 소모적이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일부 특수교육계 인사조차도 지적장애인이 대학교육을 제대로 이수할 수 있느냐는 문제부터, 어떤 고등교육의 결과를 예측하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류수현 학생처장은 “일정 정도의 학습지원을 받으면, 발달장애 학생들도 비장애인 학생들과 다름없는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다”면서 “많은 발달장애 학생들이 대학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졸업 후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김유경 동문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Q. 유경 씨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길 바라나요?

“대학 때 전공을 계속 살려서 예술가의 길을 계속 가고, 사회에 나와 세금을 내는 시민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다만 여태까지 받은 것들을 나눠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직 누군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힘들지만, 보조 강사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리즈 연재]
[열정 36℃] (1)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2)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3)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4)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열정 36℃] (5) 신학과 출신 독학파 테너, 팝페라 스타가 되다
[열정 36℃] (6)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산다
[열정 36℃] (7) 뉴욕의 한국어교사…K-컬처의 중심에 서다
[열정 36℃] (8) “내 경쟁력은 ‘소신’…길게 보고 한우물 파겠다”

[언론인터뷰] 삼육대 기술지주자회사 ‘앤투비’ 박명환 교수

나노버블+약물전달+초음파 조영방식 최적화로 기존 한계 극복

차세대 약물전달시스템을 개발해 주목 받고 있는 박명환 교수(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는 삼육대학교 기술지주자회사 ‘앤투비’를 창립한 이유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꼽았다. (관련기사▷삼육대 기술지주자회사, 나노버블 기술로 약물 효과성 높여 ‘의료계 주목’)

앤투비의 보유기술은 나노버블과 초음파 조영방식을 활용해 약물 전달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차세대 약물전달시스템.

박 교수는 이와 관련 “나노버블, 약물전달, 초음파 조영방식이라는 세 가지 기술이 조화롭게 최적화되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17년 마이크로 및 나노버블을 활용한 미세버블 산업을 접하고, 관련 기술을 바이오 소재 분야에 빠르게 적용해 현재까지 10여건의 특허를 국내·외에 출원 및 등록했다. 차세대 나노버블기반 의약품 전달시스템의 기술사업화 과제를 수주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5년간 약 15억을 지원받아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초음파 조영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농도의 약물과 나노버블이 함께 담지된 약물전달체를 개발했다.

그는 “초음파 치료는 장점이 많다. 절개를 하지 않아 출혈도 없고 흉터도 없다. 비수술적이며 굉장히 환자 친화적인 치료다. 수술 없이 초음파의 국소적인 조사에 의해 발생된 열로 암세포를 괴사시킨다. 그러나 확인하기 어려운 암세포까지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약물치료까지 진행하면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고농도의 약물과 고농도의 버블을 한 입자 안에 함께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이러한 마이크로 크기의 약물담지체는 기존보다 수천억 배 고농도의 약물을 함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입자 안의 수천 개 버블이 외부 초음파에 동시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전달 효용성은 더욱 뛰어나며, 그 조영효과도 향상시킨다”고 부연했다.

▲ 박 교수가 개발한 나노버블 약물 전달체가 뇌에 투과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최근 뇌에 약물이 전달되는 것을 제한하는 뇌혈관막 (BBB)에 초음파를 주사하면 막이 열리는 현상이 일어나 약물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및 임상결과가 다수 발표됐다. 앤투비가 개발한 고농도 약물을 함유하는 조영제 기술을 적용하면 다양한 뇌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박 교수는 “치료가 어려운 뇌질환 분야에 해당 기술의 가치가 최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뇌 질환에 이 기술이 적용되기 위해는 보다 많은 노력과 실험이 오랫동안 필요하다. 때문에, 쉽게 초음파를 적용할 수 있는 유방암, 췌장암 분야에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박 교수와 연구팀은 빠른 기술사업화 추진을 위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고급 화장품인 더마코스메틱(Derrmocosmetic, 약국 화장품) 분야에 해당 기술을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그는 “나노버블과 함께 입자화된 의약품은 기존 제품보다 피부 투과도가 뛰어나며 인체에 무해한 공기와 산소만을 적용했기 때문에 효율성과 상품성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이 기술은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에 노화방지, 미백, 재생 등과 같은 다양한 소재와 함께 확대 적용될 수 있다”고 장점을 부각했다.

아울러 “현재는 화장품만 단독으로 상용화 할 생각이다. 1~2년 뒤에는 초음파 미용 장비와 함께 상용화를 추진해 토탈케어를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4~5개의 화장품 파트너 기업들과 함께 올 하반기부터 관련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박명환 교수는 특히 삼육대대학원 졸업생을 직접 고용해 적재적소에 배치시킴으로써 기업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그를 직접 가르친 교수다. 그런 면에서 이들을 직접 고용해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배치하면 학교와 함께 공동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앤투비는 삼육대에 기반을 두고 진행하는 회사다. 삼육대학교 학생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바이오생명공학 회사로 발돋움하고 싶다. 또한 업계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첨단기술 기반형 바이오생명공학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그는 향후 연구계획에 대해 “현재 바이오 소재에 대한 연구, 나노버블을 활용한 기술 적용, 현대자동차와 베어링의 마찰 마모를 최소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연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63&item=&no=21171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만남’입니다. 이미 상당히 검증된 사상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인격과의 만남이 제게는 독서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 일을 가장 잘 해냈던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미 이 땅에 없는 사람의 지혜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그들의 책을 읽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한 만남을 원한다면 독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Q. 청춘은 자아형성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청춘 시절 어떤 책에 영향을 받으셨나요?

“위인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알고 존경하는 슈바이처와 관련한 책을 특히 많이 읽었습니다. 슈바이처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어린 나이에 삶에 대해 상당히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공과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받은 인물입니다.

슈바이처의 대표적인 저술로 잘 알려진 <나의 생애와 사상>뿐만 아니라, <슈바이처의 유산>이라는 책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미국 재벌가의 상속자였던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는 슈바이처에게 영향을 받아 서른일곱 나이에 의대에 들어가고, 평생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에 헌신합니다. 그가 슈바이처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입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때는 제인 애덤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헐하우스(Hull House)’라는 복지관을 설립하고 매우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회복지 실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도시 빈민층에게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면서 평등하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애덤스의 사상은 나중에 세계평화운동으로 확장됐고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습니다.

국내에는 <헐하우스에서 20년>이 애덤스의 책 중에는 유일하게 번역 출간돼 있습니다. 해외 서적은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The House That Jane Built>라는 그림 동화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인 애덤스의 삶과 업적이 그림으로 잘 나와 있어서 수업시간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음속으로 사숙(私淑)하는 위인들의 책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구매해서 읽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슈바이처와 제인 애덤스 관련 책은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사상서나 인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책에 끌리신 걸까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지금도 제가 맞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위대한 선배들의 삶은 그의 사상과 더불어 우리에게 의미와 지혜를 줍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그 인물의 삶 속에서 어떻게 체화되고 실현되었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생 때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지요. (웃음)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비평과 함께 당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을 분석한 월간지였는데, 가장 흥미롭게 많이 읽었던 책입니다. 창간호부터 22호까지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 중 특별히 장애인 운동에 관심을 두고 활발히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합니다. 친구 중에 장애인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을 따라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야학운동을 하고,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장애보다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령 기지촌 여성이랄지.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관심을 가진 부분이었고, 결국 주변에 계속 형성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었기에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2000년대 초 ‘자립생활운동’이라는 활동을 했습니다. 기존에는 장애인 문제가 장애인 당사자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었죠. 장애인이 재활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립생활운동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고 당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관련 센터가 200여 개가 생겼고 국가 정책에도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같이 활동했던 운동가들과 여러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사회복지학자로서 혹은 실천가로서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신체장애인보다 인지적·지적 발달장애인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치매 노인,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발달장애인, 인지적 능력이 전혀 없어서 우리가 이성적인 존재라고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우리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방법은 뭘까, 이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많은 지적 장애인이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돼 시설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설을 없애자는 것이 요즘 장애인계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국가에서는 이미 장애인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를 확대하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이러한 커뮤니티 케어를 뛰어넘는 ‘커뮤니티 리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케어’는 그 주도성이 제공하는 쪽에 있지만, ‘리빙’은 장애인을 주체로 세우고 우리 사회의 한 시민으로 초청하는 개념이지요.

케어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회적 약자가 의존적으로 존재할 때 이를 제도와 공공자금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은 어느 선에 가면 불가능해질 겁니다. 장애인 스스로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나갈 수 있는 공동체가 발현돼야 한다는 것이죠.”

Q. 교수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수님처럼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봤을 때 마음과 몸이 움직여질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슈바이처나 제인 애덤스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더구나 요즘처럼 갑질과 막말, 차별,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교수님의 말씀이 일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이 너무 냉소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엄청난 공감 능력이 있다거나,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주변 사람과 제가 속한 사회의 한계를 보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사회복지를 시작했고, 그것이 우연히 연결돼서 장애인 문제까지 이어진 겁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다시 보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우리 스스로가 지키기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 나이가 80이 되는 2050년 정도가 되면 우리나라에 65세 이상 인구가 38%가 됩니다. 지금은 15% 정도인데, 배가 훨씬 넘는 인구가 노인이나 사회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분들이 되는 거죠.

그들의 의존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자립, 독립, 어떤 남성적인 성취, 이런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향했다면, 앞으로는 의존, 관계, 돌봄 이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면 우리가 나이 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전혀 우리 삶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의존’이라는 것이 이전에는 예외적인 현상이었지만, 이제는 ‘독립’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상황이 되는 거죠.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적 의존 속에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돌봄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죽을 때도 우리는 철저히 의존적인 존재로 죽기에 오히려 의존이라는 조건은 우리 인간에게 익숙하고 굉장히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 속에 본능적으로 흐르고 있는 돌봄, 다른 사람을 돌보려 하는 본능이 우리 사회에서 깨우쳐지지 않으면 향후 엄청나게 많은 돌봄이 필요하게 될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돌봄이라는 것을 어떤 ‘좋은 일’ 혹은 ‘선한 일’ 같은 막연한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닥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공감 능력은 필수로 배양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Q. 다시 책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앞서 독서는 교수님께 ‘만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삼육대학교 청춘들이 독서를 통해 어떤 만남을 갖길 바라시나요?

“가치 혼란의 시대입니다.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이럴 때 검증된 누군가, 신뢰할만한 누군가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특권입니다.

3~4년 전 한 남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건장한 친구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냥 이 방에 들어오고 싶었고, 그냥 자기는 눈물이 나와서 울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독서라는 것은 그런 대상자를 찾아가는 경험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이나 동료가 있으면 찾아가서 이야기하듯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 않고 이미 선대에 살았던 사람을 찾아가는 방법은 책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독서는 젊은 시절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경험입니다. 특히 고전, 이미 수백 년 동안 검증된 인물,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접하는 것은 청춘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재영 교수의 ‘추천 책’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NOT FOR PROFIT>
마사 누스바움 저, 우석영 역, 궁리

교육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되묻는 책입니다. 공부 그리고 교육은 돈을 벌기 위한, 이윤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교양과 인문학에 더 매진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이 같은 ‘생각의 전환’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요즘 청년을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첫 세대라고 하죠. 물질적으로 움츠러드는 시대에 오히려 이러한 책을 통해 여러분의 미래를 계획했으면 좋겠습니다.


<경험과 교육>
존 듀이 저, 강윤중 역, 배영사

일방적인 텍스트 전달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지식을 재구조하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을 진정한 학습이라고 해야 합니다. 학생이 주인이 되는 교육, 교육의 민주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처럼 교육의 포인트가 제공자에서 학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굉장히 얇지만, 사고와 의식을 바꾸는 책입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교육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넬 나딩스/로리 브룩스 저, 정창우 김윤경 역, 풀빛

우리는 논쟁을 이기기 위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논쟁은 새로운 출발을 이루기 위해 상대에게서 나의 관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에서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자신의 입장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개발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학교 교육과도 조응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르지만, 교육과 관련한 세 권의 책을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삼육人] 마음의 고향 삼육동에서…’온 길’과 ‘갈 길’을 찾습니다

미주 총동문회장 오충환 목사 인터뷰
‘개교 113주년·캠퍼스 이전 70주년 맞아’ 모교 방문

△ 미주 총동문회장으로 임기 1년을 보낸 오충환 목사. 지난 10월 삼육대학교 홍보팀과의 인터뷰에서 “각 지역별 동문 네트워크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모교를 돕고,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해외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올바른 뜻과 인성을 갖추면 전 세계 어디서든 살아갈 길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대학에서 그 바탕을 갖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충환 목사(신학과, 1976년 졸)는 지난해 9월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린 미주지역 총동문회 총회에서 제5대 회장에 선출됐다. 모교 개교 113주년 및 캠퍼스 이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해외 동문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그는 “가을에 오니 캠퍼스와 푸른 하늘이 매우 맑고 좋다.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정말 많이 바뀌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3년 임기의 첫 해를 보낸 그는 삼육대학교 홍보팀, <동문회보>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미주 총동문회 중점사업과 향후 활동계획을 소개했다. 10월 10일 개교기념일, 백주년기념관 총동문회 사무실에서 오충환 목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미주지역 총동문회장에 선출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당시 제가 담임을 맡고 있는 로마린다 한인교회가 한창 건축 중에 있었습니다. 13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준비하고 시작한 건축이었습니다. 220억 원이나 되는 큰 재정을 들여 미국 한인재림교회 가운데 가장 큰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뜻하지 않은 직임을 맡게 돼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소식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사실 그날 저녁 집에 가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나이나 경력으로 보나, 섬기는 사역으로 보나 저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시점에 나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실까’ 고민이 컸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삼육대학교 미주총동문회장은 회원들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부담이 참 많았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해되지 않고,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을 신뢰하고 전진했을 때, 그분은 언제나 제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그 일 때문에 나를 거기 세워두시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걸 찾아갈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직임을 수락했습니다.”

Q. 미주 총동문회의 중점사업을 소개해 주십시오.

“사무총장이 해외로 출국했다가 지난 5월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30여명이 참석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조직을 정비하는 일이 먼저여서 임원구성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분들이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삼육대학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제일 먼저 동문 회원들의 소재 파악과 주소록을 정리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지역 목회자들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미국의 한인들은 교회 단위로 움직이기에 목회자를 중심으로 책임자를 정했습니다. 그들과 연계하는 협조망을 구축해 일차적인 소통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둘째는 장학사업 활성화입니다. 모교와 협력을 이루기에 가장 명분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 동문들은 교포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 위주로 움직입니다. 크게 남가주, 북가주, 워싱턴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서로 만나 협의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다른 곳은 모여서 협의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맞는 사업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선 각 지역의 동문들이 서로 협의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려 합니다.”

Q. 동문들의 교류 활성화를 위한 방법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습니까?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총동문회 운영 방식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협조를 요청하고 권한을 많이 위임해 외연을 확장하고, 질적 보편성을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남가주와 북가주를 비롯해 시애틀을 지역동문회로 만들어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문회장이 적극 개입해 지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지역별로 조직을 구성해 움직이도록 할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대학의 사업을 위해 모인다고 하면 동기가 약할 것입니다. 좋은 이슈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학생들에게 뜨개질로 장갑을 떠오라고 하고 재료를 나눠줬습니다. 아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을 때는 거절하거나 시큰둥했는데, 한센병 환자촌에 가는 거라고 하니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래 100개가 목표였는데, 250개나 모았습니다.

우리의 설립이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 또는 협력네트워크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로 접근해야 합니다. 동문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성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요, 그 과정에서 대학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육대학교’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모교를 돕고 우리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역하면서 말씀이 드러나는 일을 하면 그 결과로 교회나 학교가 축복을 받게 됩니다.”

Q. 현재 모교는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기 위해 ‘글로리 삼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하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학교가 양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저희가 다닐 때만해도 한국인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일본, 중국, 몽골, 인도, 베트남 등 전 세계에서 많은 유학생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모교를 보는 것 같아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때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외국인학생들에게 우리 대학은 종점이 아니라, 그들의 꿈을 찾아 거쳐 가는 과정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무척 발전했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 삼육대학교가 ‘종점’이 될 수 있거나 또 다른 신앙적인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길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모교의 ‘K-Move 스쿨(해외취업연수사업)’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만 20여명의 학생이 미국 진출의 꿈을 이뤘습니다. (관련기사▷‘K-Move 스쿨’ 수료생 전원 美 기업 취업) 어떻게 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고 정착할 수 있을까요?

“우리 때에 비해 언어적인 문제는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전에 많은 정보를 얻어 준비를 꼼꼼하게 잘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인성입니다. 언어가 유창하지 않고, 정보가 좀 모자라도 인성이 바탕이 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언어나 정보는 시간이 흐르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온 한 학생이 어느 날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진리를 깨닫자 자기 주변 친구들을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2년이 넘도록 지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사업가들이 깊이 감동했습니다. ‘저런 성실한 학생이라면 함께 일해도 좋겠다’고 생각해 자신의 회사에 취업시켰습니다. 그분은 거주문제도 다 해결되어 이제는 회계담당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올바른 인성과 신앙을 갖추면 꼭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말씀드리죠. 이민2세 재림교인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법학대학을 다니면서 한 변호사 사무실에 인턴실습을 나갔습니다. 정식 출근시간이 오전 8시인데, 그는 7시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대표변호사가 7시50분에 출근하는데, 그를 맞이하는 첫 번째 직원이 언제나 그 청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던 대표가 시간이 흐르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실습생이라는 사실을 안 그가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정식으로 급료를 받고 일하는 인턴을 제안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인턴에게 돈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 예를 더 들겠습니다. 역시 우리 교회 교인 아들입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실습 과정은 무척 피곤하고 힘듭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실습 기간 중 쉬는 날에도 병원에 갔습니다. 잡일도 하고, 스텝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살갑게 지냈습니다.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누구와도 친근하게 어울리며 밝고 긍정적으로 일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그 병원의 정형외과에서 그를 뽑아갔습니다.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약속을 소홀히 여기고, 인성이 그릇된 사람은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스펙이 좋아도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Q. 학창 시절 삼육대학교에서 얻은 최고의 자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고백컨대, 저는 이 대학에서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실 때 사랑으로 가르치신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리고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품행이 바르거나 신앙심이 깊은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많고, 경솔했습니다. 그러나 스승님들이 그런 저를 사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고 박해종 교수님의 수업이 생각납니다. 한번은 감기에 걸린 몸으로 3시간 연강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건강이 좋지 않으니, 쉬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쉬라고 말씀하시며 강의를 하셨습니다. 굳이 수업을 하지 않으셔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교수님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편찮으신 중에도 저희를 가르치시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그렇게 지도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달하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본인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기에 저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학교가 정말 좋습니다.”

Q. 끝으로 모교와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이 대학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기본을 잘 준비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자신의 전공과 삶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갈 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바탕을 잘 갖추길 바랍니다. 그게 학문의 실력이든 삶의 바른 자세든 상관없습니다. 그걸 잘 갖추면 길은 무궁무진합니다.

한국에서 음악대학을 나온 학생이 미국에서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에 들어갑니다.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하려고 화학, 생물, 프리메디스쿨 등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제일 많이 선발되는 전공은 종교와 예술 분야의 학과들입니다. 어차피 의과대학 입시에는 엠켓(MCAT)이라고 해서 메디컬닥터만 뽑는 시험이 있는데, 거기에 기본적 학문 성취 실력이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문적인 면을 강조하는 면에서 어떤 학과를 졸업했는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종교나 예술 분야의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자세나 품성 때문입니다.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자세나, 종교를 통해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려는 자세 곧 사람을 귀하게 보는 자세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분들은 입시 과정에서 ‘응시자가 과연 의사가 될 소양을 갖췄는가’ ‘그 직임에 관한 합당한 성품을 가졌는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결국 전문가 그룹에서는 심성과 전문 영역의 학문을 감당할 자세가 준비된 사람인가를 구별합니다. 대학에서 그걸 준비하면 됩니다.

이렇듯 미국의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올바른 성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대학이나 회사에 지원한 이 학생이 그동안 뭘 했는지를 봅니다. 삶의 올바른 뜻을 지니고 기본 소양으로서의 인성을 갖추면 그런 기준을 잘 맞추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그런 인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길 바랍니다. 그게 21세기를 향한 우리 교육의 방향성 아니겠습니까.”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나에게 독서란 ‘속 깊은 친구’입니다. 주로 슬플 때나 외로울 때, 화날 때, 또는 주어진 상황에 의문이 생길 때 책을 찾아서 읽고 이해를 하려고 해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깊은 얘기를 못 하잖아요. 하지만 책은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발견하고, 읽고 나서 그 감정을 이해하고, 또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그 친구한테만 얘기할 수도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성장하기 때문에 속 깊은 친구라는 겁니다. 가족처럼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Q. 국문학을 전공하셨어요. 책을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책이 친구이고 가족 같은데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어요. 국문과를 ‘책 좋아해서 갔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냥 상황 봐서 갔어요.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좋아하던 선배 때문이었어요. 문학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당시 눈에 들어온 선배가 문학 읽기 학회를 해서 저도 가입을 했어요. 처음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세미나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분적으로 읽었는데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그때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죠.

책을 읽고 세미나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애정 있게 그린 것이 참 감명 깊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어요. 정말 소박한 감상이었는데 그 선배가 책을 참 잘 읽었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 뒤로 선배에게 주목받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읽었죠. 나중에 그 선배는 다른 학회로 옮겼지만, 저는 학회를 계속 하면서 책 읽는 것이 좋아졌어요. 그 마음을 떠올리면서 나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논문을 쓴 적도 있었답니다.“

▲ 한금윤 교수가 대학 시절 책을 읽으며 기록한 독서노트.

Q. 지금은 책 읽는 일이 직업이 되셨어요. 보통 문학은 취미로 읽는데 그걸 직업적으로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님은 독서 행위가 일반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흔히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고 하잖아요. 여전히 책 읽기, 특별히 문학이 즐거우신가요?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니까 작품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독서와는 아주 달랐어요. 연구할만한 작품을 읽어야 하고, 분석해야 하고, 이론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내 연구 결과가 어떻게 평가될지 항상 긴장하면서 책을 읽어야 했지요.

한동안은 정말 좋아하면 대학원 가면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대학원에서의 훈련을 통해 한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고, 작품을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 지금도 연구를 위해 읽는 작품은 좀 더 꼼꼼히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요. 같은 영화도 두 번째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주관적인 인상비평 수준을 넘어서 한 작품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고통스러운 책 읽기가 도움이 많이 됐죠.“

Q. 그렇다면 일과 무관한, 온전히 취미로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외국소설이요. 저는 현대소설을 전공해서 제 전공 분야의 책은 아무래도 긴장해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공이 아닌 시는 편하게 읽고, 특히 외국 작품은 더 편하게 읽어요. 감히 내가 연구하고 발표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즐겁게 읽는 거죠.

요즘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예요. <1Q84>는 개인적으로 터닝 포인트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한 번 매듭지도 모든 기존의 것들을 다 내려놓게 했던 계기가 됐어요. ‘똑같은 사람인데 하루키는 이런 작품을 썼구나, 그런데 나는 남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고 논평만 하는구나.’ 인간이 가진, 창작하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을 온몸으로 느낀 작품이었죠.

최근에 나온 작품들도 가능하면 읽으려고 해요. 젊은 분들이 어떤 사유와 표현을 하는지 이해해야 하니까요. 고전도 읽어요. <돈키호테>는 최근에 다시 읽고 있고,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라는 책도 인상적이었어요. 전공자들은 많이 읽는데, 타 전공자들은 잘 읽지 않는 책이에요. 각 전공에서 대표적이라고 하는 책은 많이 찾아서 읽으려고 해요.“

Q. 한국근대문학회 공동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특별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문학계에서 이를 조명하는 기획이나 행사들이 많았어요. 교내에서 학술대회를 여시기도 했죠.(▷관련기사) 우리 근대문학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그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아직은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의 정확한 경계가 정립되진 않았지만, 보통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까지를 근대문학으로 봐요. 우리나라 근대문학은 참 마음이 아파요. 근대가 일본제국주의에서 시작됐고, 나라와 나라가 정복해서 강제적으로 펼쳐졌잖아요. 그래서 그 시대의 작품을 읽으면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힘든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인간의 삶에는 희망이 있고 절망이 있는데, 요즘은 절망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 절망을 어떤 시대의 것으로 이해했어요. 그 과정에서 문학은 이를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상처나 어려움, 고통을 보여주고 그렇다면 사회, 국가 혹은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제안을 했어요. 그럼으로써 결국 내 문제가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죠. 우리 근대문학의 특징입니다.

또한 지금의 현대적인 감수성과 감각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근대문학이기도 해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많이 나온 채만식의 <탁류>에는 쌀을 거래하는 ‘미두시장’이 나와요. 마치 오늘날의 주식이나 비트코인처럼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꿈을 갖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쉽게 돈을 벌어서 천하게 쓰고, 결국엔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의 시초 모습이지요.

이처럼 대부분 근대작가가 보여주는 ‘근대의 욕망’은 그것이 가짜이기에 좌절하고 실패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통찰을 줘요.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자본주의 시대 욕망에 자아가 끌려갈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죠. 시대상으로 거리가 있지만,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도 이해하고 도움을 받는 데 큰 힘이 돼요.“

Q. 질문의 범위를 확대해볼게요.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이 정말 많습니다. 그럼에도 모국어로 쓰인 문학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문이 이해가 갑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은 정말 많아요. 자기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작품이 물론 좋지만, 그건 좋은 작품인 거죠. 문학작품의 위대함이 뭐냐고 하면 결국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깊이 있게 통찰해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또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어떤 감정을 간접경험하게 하고, 그걸 넘어서서 그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일 거예요.

선진국은 그러한 사회를 워낙 오랜 세월 동안 겪었기 때문에 우리 작품보다 더 깊고 위대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은 건 맞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현대사가 참 비극이잖아요. 나라도 뺏기고 전쟁도 나고, 산업화에 먹고사는 것에 너무 매달렸기 때문에 실존적인 고뇌나 삶의 깊이를 사유하기보다는 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떤 공동체와의 갈등을 그린 작품들이 많지요. 요즘에 와서야 이제 우리 문학도 나다운 삶, 나의 실존적인 고뇌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걸 미리 보여주고 고민했던 세계적인 위대한 작품의 높은 수준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모국어 작품이 가진 아주 좋은 장점은 ‘무슨 말인지 안다’는 거죠.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감이 더 쉬울 수 있어요. 작품 속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크게 달라져요. 또 디테일한 표현은 동시대적이고 동일한 국가적인 감수성이 있다면, 훨씬 더 공감하는 부분이 있겠죠. 그런 점이 모국어 문학작품이 가진 힘이에요.

그 밖에도 좋은 작가들은 표현과 감수성을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롭게 벼린다고 하잖아요. 그런 문장과 표현이 갖고 있는 즐거움이 있어요. 번역 투가 주는 난해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죠. 우리말의 표현이 주는, 말하지 않아도 공감되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 문학작품이 좋은 거죠.“

Q. 요즘 대학생들의 퍽퍽한 현실 속에서 ‘책 읽기’나 ‘청춘’ 같은 말을 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청춘의 독서’를 이야기하신다면요.

“취업난으로 청년들의 마음고생이 참 심하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갖고 싶은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걸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있다면, 노력해도 쉽지 않거나 막히는 시대가 있는데, 바로 요즘이 그런 시대인 것 같아요. 저는 공부 쪽으로 갔지만, 공부한다고 다 교수가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도 청춘들이 절망하고 낙담하고, 공부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이해됩니다.

저는 그럴 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힘들고 절망스럽고 암담할 때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 하는데, 그 푸는 여러 방법 중 독서가 실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알찼어요.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셜 미디어나 대중매체를 보는 것보다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정서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요즘 청춘들이 책을 안 읽기 때문에 우리 삼육인들이 읽어내면 큰 경쟁력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책을 쓰는 사람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여러 번 걸러내고 또 걸러내면서 써요. 작가가 많은 고뇌 끝에 전달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 어떤 것보다 위로받고 성장할 수 있기에 이러한 시대일수록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걸 읽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눈에 가는 거, 손에 잡히는 걸 읽어보세요. 읽을 때 내 불안함과 초조함이 희미하게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책이 여러분의 ‘속 깊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금윤 교수의 ‘추천 책’


<정본 윤동주 전집>
윤동주 저, 문학과지성사

첫 번째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겪었던 청춘, 윤동주 시인의 전집을 추천합니다. 윤동주의 시를 근래에 정본으로 복원해놓은 전집이에요. 윤동주 시인은 동시도 참 잘 썼어요. ‘서시’나 ‘자화상’이나 ‘별 헤는 밤’ 같은 시도 있지만,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박하게 쓴 시도 있어요. 시대적인 고뇌와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를 통해 공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기에도 동심을 잃지 않는 순수한 마음도 가질 수 있는 동시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광장/구운몽>
최인훈 저, 문학과지성사

<광장>은 많이 들어본 작품이지만, 전문을 읽어보진 못했을 거예요. 소설이 가진 큰 장점은 그 안에 시대사(史)가 담겨있다는 거죠. <광장>은 주인공의 갈망과 고뇌를 통해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현대사를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좋을 것만 같지만, 이데올로기로 인해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어느 편에도 서기 쉽지 않았던 그 시대, 개인과 사회,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 또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하는 자를 잃고, 그런 본질적인 주제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에요. 한 국가의 정치사회가 어려운 국면에 있을 때는 개인도 행복할 수가 없죠. 시대의 비극에 놓여있는 청춘들의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장>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글만리>
조정래 저, 해냄출판사

비교적 최근 책이죠.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는 한 국가의 상황에만 놓여있지 않고 국제적으로 함께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정글만리>는 이처럼 변화된 글로벌 시대에 청춘들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고 또 아파하는지 다루고 있어요. 글로벌 사회에서의 새로운 정보들, 그 속에서 국제적인 인간관계, 청춘이 가져야 할 사랑과 아픔, 미래 직업에 대한 불안과 희망 같은 것들을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책이에요.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파워삼육人] 이방인 간호사로 병원장에 오르기까지, 심은미 동문(간호 83)

미국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 심은미 병원장
인턴십·연수 프로그램 위해 32년 만에 모교 방문
떠밀리듯 들어간 간호학과…”좋은 학생 아니었다”
“성공 비결? 안 되는 이유보다 가능성부터 봐”

어드벤티스트 헬스케어(Adventist HealthCare, 이하 AHC)는 미국 워싱턴DC 지역 최대 규모의 병원그룹이다. 이 병원 인사담당자들이 지난 4월 우리 대학을 방문했다.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및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간호학과는 방문단과 연수 과정의 세부 사항을 조율한 후 여름방학 기간 재학생 5명을 선발하여 미국 AHC에 파견했다. (관련기사▷간호대학, 美 AHC 병원그룹 연수 프로그램 운영)

이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방문단을 인솔해 우리 대학을 찾은 이는 AHC 산하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Fort Washington Medical Center)의 심은미(한국이름 전은미) 병원장. 우리 대학 동문이다.

간호학과 83학번으로 입학해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심 동문은 17년간 임상간호사 경력을 다진 후, 컬럼비아대에서 간호정보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행정가로 커리어를 전환, 아브라조 웨스트 캠퍼스 병원, 셰이디 글로브 메디컬 센터, 어드벤티스트 헬스케어에서 간호이사(CNO), 행정원장(COO), 수석부원장(SVP) 등을 역임하며 단계적으로 조직의 최고위직 자리까지 올랐다.

지난 7월에는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의 병원장(CEO)으로 취임했다. 간호사 출신으로서, 아시안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전례를 찾기 힘든 입지전적 인물.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안 되는 이유’보다는 ‘가능성’부터 보는 긍정적인 성격”을 꼽았다.

“이상하게 사물이나 문제를 보면 가능성부터 보인다. 일에 겁을 내지 않고, 어떤 일이든지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시원시원한 말투에는 거침이 없었다. 행동파적인 기질이 답변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Q. 모국과 모교에 방문한 소감은.

“87년에 졸업했으니 32년 만에 모교에 왔다. 한국은 2번 정도 방문했는데, 사업차 잠깐 들르다 보니 학교까지 와볼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무척 반갑고 좋다. 삼육동은 내 기억 속에 참 낭만적인 곳이다. 그때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들이 정말 좋았다. 학교가 발전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Q. AHC그룹에 대해 소개해 달라.

“미국은 보통 여러 병원을 묶어 그룹 회사를 만든다. 이를 ‘헬스케어 시스템(Healthcare system)’이라고 하는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병원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 사업 중에는 병원 운영 외에도 외래사업, 가정간호사업, 의사 고용사업 등 여러 비즈니스가 있다.

개별 병원은 재무관리나 인적관리(HR) 등 여러 행정적인 업무를 직접 처리해야 하는데, 헬스케어 시스템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이런 일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준다. 예를 들어 어떤 병원이 외래 확장 이슈가 있다고 하면, 개별 병원에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Q. AHC에서 어떤 업무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나.

“주로 건물을 새로 세우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일을 했다. 기획/전략 분야의 일도 많이 했다. AHC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 기획이나 전략을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지난 3~4년간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가 전체적인 기획/전략 하에 이뤄지도록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을 했다. 지금은 회사 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재정적으로 허덕이던 외래사업을 흑자로 전환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1년에 470만 달러(56억4000만원) 정도 적자가 있었는데, 흑자 상태로 돌리는 데 3년 반 정도 걸렸다. 힘들었지만, 참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Q. 간호학과 학생들이 AHC에서 연수와 인턴십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삼육대를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AHC의 전체적인 사업 및 전략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

“회사의 기획과 전략을 세우면서 제일 문제로 두드러지는 부분이 ‘간호사 인력 부족’이다. 사업 확장을 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별히 AHC가 있는 워싱턴 DC 메릴랜드는 다른 곳보다 간호사가 많이 부족하다. 생활비나 물가가 비싼 편이라, 간호사들이 이곳에서 경력을 쌓고 가정을 꾸리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인근 간호대학과 협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 심은미 동문(왼쪽)과 AHC 관계자들이 방학 중 연수를 앞둔 간호학과 학생들과 면담하고 있다.

Q. 모교라는 개인적인 이유도 작용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교육과정이나 정서, 내부사정에 대한 이해가 있고, 교수님들도 다 동문이나 후배다. 후배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앞으로 삼육대 간호학과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학생들을 많이 채용하려 한다. 방학 중 인턴십 프로그램이 좋은 첫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Q. 실제 학생들을 만나 본 소감은.

“예상외로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놀랐다. 교수님들이 영어가 서툴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해서 걱정했는데, 너무 잘하더라. 조금만 손보면 실무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반골(反骨)의 간호학과생

Q. 학창 시절 추억을 말씀해주신다면.

“오복자, 신성례 교수님은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교수님이셨다. 정현철 교수님은 동기에 실습도 같은 조여서 정말 친했다. 당시엔 남자가 간호사 한다고 해서 참 특이했는데(웃음). 이번에 학과장이 됐다고 해서 참 반가웠다. 강경아 교수님은 1년 후배인데, 학교 다닐 때 얘기를 참 많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들께 물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좋은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광천삼육고(현 서해삼육고)를 졸업했고, 삼육교육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지만, 대학이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교수님들을 참 힘들게 했던 기억이 난다. 좀 진취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실행 과정에서 교수님들 속도 썩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런 저를 다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Q.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간호학과도 부모님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들어갔다. 원래 철학이나 역사, 문학을 좋아했고, 도(道) 장원을 할 정도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했다. 이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 그때는 시국이 참 혼란한 시기였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시국에 많이 말려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사회대학을 가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문학 공부를 하는 건 더더욱 안 된다고 하셨다. 이상주의적인 내 성격을 알고 계셨던 거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삼육대 간호학과에 가지 않으면 낫지 않겠다고 하셨다.”

Q. 어쨌든 본인의 의지도 있었기에 입학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고민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간호학과에 가면 미국에 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미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역시나 원하던 공부가 아니었기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방황을 많이 했다. 물론 나중에 간호사가 되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굉장히 보람과 만족을 느꼈다. 간호학 공부도 좋아해서 석사까지 했다. 그런데 그땐 그랬었다(웃음).”

Q. 왜 미국에 가고 싶었나. 어린 나이에 막연한 동경이었는지.

“그랬던 것 같다.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종갓집 종손이시다. 고지식하고 전통적인 가정이다 보니 늘 답답해했고, 할머니는 항상 ‘다루기 힘든 애’라고 하셨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미국에 가는 것밖에 없겠다 싶었다.”

미국에서는 간호사를 보고 병원을 선택한다

심은미 동문은 1987년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 건너가기까지 3년 정도 한국에서 일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보건진료원 1기로 근무하고, 상계백병원에서 간호사로도 일했다. 그사이 결혼을 하고 첫 아이도 낳았다. 1991년 11월, 가족과 함께 학생비자로 미국에 건너간 그는 2달 만에 미국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영주권을 받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병원에 입사했다. 꿈꾸던 미국 생활의 시작이었다.

Q. 미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은 어땠나. 한국과는 무엇이 달랐나.

“당시 한국의 간호사는 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간호사가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환자가 살고 죽는데, 한국에서는 그걸 의사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간호사의 일이 환자의 치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그걸 핵심적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환자가 병원에 가는 이유가 간호사 때문이라고 한다.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하더라도, 수술한 다음 환자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잘 지켜봐야 하는데, 그 일을 간호사가 하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일이 굉장히 독립적이었고, 환자를 치유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큰 보람을 느꼈다.”

Q. 임상간호사로 일하다 행정직으로 커리어를 전환했다. 어떤 계기였나.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지 3년을 하면 다른 걸 하고 싶어지더라. 처음 1년은 배우느라 재밌고, 그다음 1년은 그 배운 거로 자부심 있게 일하느라 재밌다. 그런데 3년쯤 되면 좀 시시해진다.

17년 동안 임상에 있었다. 외과, 신경외과, 심장내과, 심장외과, 중환자실까지 해보니 임상에서는 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면 이제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컬럼비아대에서 간호정보학 석사를 시작했다. 공부도 일도 정말 너무너무 재밌게 했다.”

Q.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간다는 건, 유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에는 몰라서 용감하게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간호지식이나 언어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는 살면서 여자로서 인정받기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남자들과 동등한 능력과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생각하는 좋은 간호사 상(像)은 좀 달랐다. 일을 빨리하고 잘하는 것보다 환자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드리고, 그분들이 마음 쓰는 것을 어떻게 케어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걸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라고 한다. 처음엔 그런 스킬이 별로 없었고 일만 열심히 잘만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문화적인 차이를 콕 집어서 말해주지 않는다. 물어봐도 얘기해주는 걸 꺼린다.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뭐가 다르고 잘못됐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간호사 출신 병원장

Q. 지난 7월 AHC 산하 포트 워싱턴 메디컬센터 원장으로 부임했다. 간호사 출신으로 병원장이 되는 게 미국에서는 흔한 경우인가.

“미국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한다. 간호사는 간호이사(CNO)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자가 병원장까지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동양인이 올라가는 건 더더욱 어렵다. 이민 1세로서는 거의 유일할 것 같다. 간호이사로 경력을 마치는 것보다 더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운도 따랐고.”

Q. 성공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리까지 올라가게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조건이 맞지 않은 사람도 신을 의지하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여러 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이직할 때마다)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곳에서도 그때그때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게 하셨다는 게 눈에 보이더라.

한 번은 영리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19개월밖에 못 버텼다. 보통 사람들은 1년을 못 버티는 병원이라 19개월이면 오래 버틴 거다. 힘들었지만, 다른 병원에서 10년 이상 배워야 할 재무관리 지식을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께 의지를 많이 했고 계속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했다.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Q. 질문을 바꿔 하겠다. 그렇다면 신으로부터 받은 탤런트(재능)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성격이 참 긍정적이다. 주어진 사물이나 문제 상황을 보면 가능성부터 보이고, 뭐든지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을 보면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 성격이 살면서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Q. 엄마로서는 몇 점이라고 생각하는지.

“일을 너무 많이 해서(웃음). 자녀가 넷이고, 막내가 15살이다. 아이들한테 자주 물어본다. 엄마가 일을 많이 해서 서운하지 않으냐고. 아이들은 엄마가 이민 1세로 여기까지 와서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한다. 덕분에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다. 물론 전통적인 잣대로 엄마로서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굉장히 점수가 낮을 거다(웃음).

남편이 좋은 파트너가 돼주고 있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건 아빠가 하고, 나는 밖에서 진취적으로 일을 한다. 한국 남편들은 아내가 더 성공하는 것을 꺼리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 남편은 그런 게 없다. 그냥 도와주고 성공하면 됐지 그게 뭐 중요하냐, 이렇게 말한다.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는 데 남편이 많이 도움을 줬다. 남편과 20년 넘게 파트너십으로 일하고 있다(웃음).”

지도자로 키워준 삼육교육

Q. 대학 시절 삼육대에서 배운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삼육대뿐만 아니라, 삼육교육이 다른 교육과 다른 점은 지도자로 클 수 있는 자질을 많이 가르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아이들을 삼육 학교에 보내고 있다. 공립학교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앞에 나갈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삼육 학교는 기도하거나 예배를 인도하는 등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연습을 많이 한다.

돌아보면, 삼육대에서 배운 것들이 인생에 참 많은 도움이 됐다. 간호학과 학회장을 하면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다. 다른 좋은 간호대학 나오신 분들도 이민을 많이 왔지만, 그들보다 내가 더 좋은 조건을 갖춘 게 있다면, 바로 삼육대에서 배운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장기적인 계획이다. AHC에서 1년에 몇십 명씩 삼육대를 졸업한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나가려 한다. 물론 이를 통해 AHC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지만, 삼육교육을 받은 인재들로 채운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열정 36℃]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2) ‘꿈을 배달하는 마술사’ 이석원(원예 12학번) 동문

▲ “후회요? 아예 없습니다!”. 취업 대신 가슴 뛰는 삶을 선택했다는 이석원 동문. 인터뷰 내내 그는 웃는 표정이었다.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4학년 졸업을 앞둔 때였다. 주변 동기들처럼 그 역시 취업준비에 열심이었다. 대학생활 중 쌓아온 화려한 대외활동 경력에 성적과 스펙도 준수해 대기업 서류전형과 면접을 무난히 통과했다. 그런데 자꾸만 마술도구가 눈에 밟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해 교내 마술동아리 ‘일루젼’까지 10년 넘게 마술을 해온 그였다.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주저했다. 과연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마술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무렵 취업을 해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선배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놨다. 좋은 회사에 들어간 선배는 “취업했다고 결코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털어놨다. 다른 선배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압박이 있다”고 했다.

‘어차피 똑같이 스트레스 받을 거면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자. 물론 취직하는 것보다 돈은 적게 벌고 불안할 수 있겠지. 하지만 미래는 어차피 불확실한 게 아닌가.’ 그렇게 이석원 동문(원예학과 12학번)은 안정적인 삶보다는 가슴 뛰는 삶을 선택했다. 2017년 여름의 일이었다.

이후 함께 활동하는 크루들과 지하 연습실에 둥지를 틀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명은 ‘꿈달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과 희망을 배하는 마술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 의미 있는 기획에 여러 기업과 정부기관이 후원사로 나섰다. 우리은행, 한화그룹, 아시아나항공, 외교부, 한국장학재단,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태국과 러시아, 필리핀, 프랑스, 일본, 부탄,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꿈과 즐거움을 배달했다.

꿈과 희망을 배달하는 마술사

Q. ‘꿈달사’의 시작이 궁금해요.

A. 대학시절 교내 마술동아리 ‘일루젼’ 회장을 했어요. 당시 서울 대학 마술 연합동아리 활동도 했는데, 그때 만난 친구들 네 명이 모여서 팀을 만들었죠. 우리가 가진 마술이라는 특별한 기술을 활용해 재미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자고. 그러던 중 ‘꿈달사’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네 명 각자가 맡은 역할이 확실해요. 일단 마술은 제가 제일 잘하고요(웃음). 한 친구는 프레젠테이션 대회 우승경험이 있어서 기업에 피칭할 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다른 친구는 창업 경험이 있고 기획을 잘해요. 또 다른 친구는 영상과 사진을 잘 찍어요. 넷이 함께 했을 때 시너지가 있고 조화가 잘 되죠.

Q. ‘꿈달사’ 활동은 주로 해외에서 하고 있어요. 국내 공연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의사소통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말은 최대한 배제하고 표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넌버벌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하고 있어요. 또 대상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연령대에 맞는 공연을 준비해가는 편이에요.

나라마다 문화마다 관객의 반응이 달라서 재미있어요. 필리핀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학교에서 공연을 했는데, 아이들의 에너지가 정말 좋았어요. 작은 손짓에도 반응을 잘해주고, 공연 끝난 뒤에도 찾아와 인사를 하더라고요.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웃음과 순수한 반응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 꿈달사 프로젝트 – 베트남

Q. 마술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됐나요?

A.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께서 ‘멀린의 신비한 마술학교’라는 마술도구 장난감을 사주셨어요. 그걸 학예회에서 해봤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마술 동아리를 했고, 삼육대에 와서도 ‘일루젼’에 가입하고 회장까지 했어요. 그렇게 꾸준히 사람들 앞에 서고 실력도 늘어나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죠.

Q. 마술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 분야인 것 같아요. 엔터테인먼트업이기 때문에 트렌드나 관객 취향이 금방 바뀌고 새로운 기술도 계속 나오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궁금해요.

A. 매일 연습실 나오는 거죠(웃음). 꼭 마술이 아니더라도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 아닐까싶어요. 직장을 다니는 주변 친구들을 봐도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저 같은 경우 마술은 오래했지만, 본격적인 직업으로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이 분야에 진지하게 임하다보니 정말 배울 게 산더미더라고요. 잔동작이나 몸에 배어있던 안 좋은 습관들도 보이기 시작하고요. 어느 분야든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디테일에서 나타나잖아요.

요즘은 마술이 다른 예술,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협업하는 사례도 많아지면서, 인접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일단 마임을 배우고 있고, 연기에도 관심이 많아요. 근래 가장 주력하는 콘텐츠는 저글링과 서커스예요.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서 저만의 공연물을 만들고 있어요. 마음 깊숙이 마술사라는 뿌리는 가지고 있지만, 요즘은 ‘거리공연가’로 불리는 게 더 맞을 것 같네요(웃음).

▲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Q. 간혹 마술이 거짓말과 속임수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본인은 ‘꿈달사’라는 프로젝트명처럼 마술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A. 저글링이나 서커스를 할 때 공 5개를 동시에 돌리면, 관객들은 ‘엄청난 노력을 했겠구나’ 생각을 해요. 바로 눈앞에 보이니까요. 마술 역시 한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죠. 하지만 어떤 관객들은 공연자의 노력과 공연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무슨 속임수가 있을 것 같은데’ 하고 봐요. 그런 모습에 약간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죠.

하지만 마술은 단순한 트릭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마블(Marvel)이나, 공상과학(SF), 판타지 영화는 기존의 틀을 깬,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체험하게 해요. 마술도 마찬가지에요. 작은 마술이지만, 이걸 보는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경험을 교류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큰 꿈과 희망을 갖게 할 수 있죠.

“후회요? 아예 없습니다!”

Q. 취업할 생각은 없었나요?

A. 4학년 때는 취업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대학시절 대외활동을 많이 했는데, 관련 경력으로 얼떨결에 모 대기업에 서류합격을 했어요. 마술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긴 했지만, 직업으로 까진 생각하지 못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었죠.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잖아요. 취업한 선배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어요. ‘취업했다고 다 편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어차피 똑같이 돈 벌면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조금 적게 벌어도 내가 좋아하고, 내가 가슴 뛰는 일을 하자는 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즈음 마술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쪽(마술)에도 길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게 보였죠.

Q.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A. 네. 전혀요! 아예 없습니다!

Q.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보통은 다들 취직을 하잖아요.

A.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졸업할 때까지 명확한 본인의 꿈을 찾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게 되고요. 그런 친구들은 직장생활을 힘들어해요. 하루하루 ‘아, 오늘 하루 어떻게 가지’ 이런 생각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친구들이 많아요. 굉장히 안타깝더라고요.

반면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직무나 업종, 회사를 확실하게 정하고 취직을 하니까 일을 즐겨요. 심지어 야근과 주말근무도 행복해하죠.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매일매일 연습실에 가고 공연을 하듯이, 그 친구들도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도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 해요. 거리공연가가 조금 뻔하지 않은 직업군이라 그렇지, 그런 면에서 저 역시 그 친구들과 똑같은 ‘직업인’이죠.

중요한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저는 대학생활이 꿈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동아리나 여러 대외활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학교의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학점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내 꿈을 찾는 것이 대학생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행복하세요?

A.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든지 생각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는데요. 이 질문만은 확실하게 답할 수 있어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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