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36℃]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산다

[열정 36℃] (6) ‘대교어린이TV 8기 공채 성우’ 박민기(사회복지학과 10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칭찬해주마, 괴도 스톰의 제자! 자, 너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라. 이노크!” – <바쿠간 배틀 바쿠기어> 매그너스 役

“태자 전하가 오시기 전에, 이번 승전에 대한 의원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레이번 에스페린드 각하의 공이 크지 않았습니까?” – <황자님께 입덕합니다> 챈슬러 役

“미트마스터의 특별한 제안, 우리 가족의 특별한 식사를 준비하는 안심마켓 밀구루” – 롯데쇼핑 밀구루 광고 내레이션

반역 음모를 꾸미는 제국의 장군부터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깔리는 꿀 떨어지는 내레이션까지, 매일 다른 인생을 사는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성우다.

우리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박민기(10학번) 동문은 2018년 6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교어린이TV 8기 공채 성우로 데뷔했다. 이후 2년간의 전속기간을 마치고 지난해부터 프리랜서 성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간 연기한 캐릭터만 어림잡아 수십 개. 기업광고까지 따지면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미디어·콘텐츠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요즘 그를 찾는 곳은 더 많아졌다. 방송국뿐만 아니라, 유튜브, OTT 플랫폼, 오디오북, 팟캐스트, 광고까지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박민기 동문을 만나 성우의 삶을 들여다봤다.

성우의 일상

Q. 성우의 하루는 어떤가요? 직장인처럼 루틴이 있나요?

“그날, 그 주 일정에 따라 매번 달라요. 한 군데에서만 일하지 않고 여기저기 녹음실에 다녀요. 집에서 작업해서 보낼 때도 있고요. 매일 반복되는 게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목을 푸는 겁니다. 언제든지 최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하루를 시작해요. 당장 1~2시간 이내에 와줄 수 있냐고 갑작스럽게 녹음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밤 11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전화 와서 급하게 수정녹음 요청이 온 적도 있어요. 그러면 다시 녹음해서 보내드리고. 그렇습니다. 제 일상이. 하하.“

Q. 성우는 목소리가 자산인데, 특별한 관리 방법이 있나요?

“도라지 배즙 많이 챙겨 먹어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쓰고요. 목이 조금 힘들거나 무리를 한 것 같으면 한 번씩 뿌려줘요. 자기 전에 목 마사지를 하거나, 손수건을 목에 둘러서 최대한 따뜻하게 보호해주기도 해요. 상식적인 것들인데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Q. 그동안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요? 대표작을 꼽아주신다면.

“공채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짬’으로 보면 아직 막내예요.(웃음) 아실만한 작품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말씀드리면, 재능TV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 <바쿠간 배틀 바쿠기어>에서 ‘매그너스’라는 캐릭터랑 ‘라이트닝’이라는 강아지 역할을 했습니다. (▷영상보기)

제 출신인 대교에서 현재 방송 중인 <베이블레이드 슈퍼킹>에서는 아나운서, 척 두 캐릭터를 맡고 있고요. <황자님께 입덕합니다>라는 무빙툰에서는 ‘챈슬러’라는 왕국의 장군, 음모를 가지고 있는 악역을 연기했습니다. (▷영상보기)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고 있는데 굉장히 즐겁게 참여한 작품입니다.“

▲ (왼쪽) 코로나로 인해 클라이언트와 화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한다. (오른쪽) 집에 있는 방음부스에서 녹음 중인 모습.

난 성우가 될 거야

박민기 동문이 성우의 꿈을 처음 갖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KBS2에서 방송되던 생활정보 프로그램 <VJ특공대>를 본 그는 성우의 맛깔나는 목소리와 거침없이 ‘콸콸콸~’ 몰아치는 내레이션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성우라는 직업을 좀 더 알아보니,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평범한 일상에 큰 매력으로 다가왔죠.” 그때부터 주변에 ‘난 성우가 될 거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Q.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어요. 거의 1달 동안 대화를 못 했어요. 원래 지방에 살았는데,제 교육 때문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그런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성우라는 거에 빠진 거죠. 그렇게 크게 화를 내신 건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나중엔 정말 열렬한 지원자가 되어주셨죠.”

Q. 아버지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나요?

“고3 때 성우과에 지원을 했는데 자기소개서를 보여드렸어요. 성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마음으로 지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버지가 보시고 진지하구나, 생각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한 게 아니구나 한 걸 알게 되신 거죠.

공채 합격한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합격했다고 아버지한테 전화로 먼저 말씀드리고 집에 들어갔어요. 서로 얼굴 보자마자 울면서, 아이고 고생했다, 아이고 고생했다. 그리고 그날 축하하고 잠들었어요. 다음날 일어나서 얼굴 보고 또 울고(웃음). 3일간 아버지랑 서로 얼굴만 보면 울었던 기억이 나요.“

Q. 준비기간이 힘들었나 봐요. 성우 공채는 어떤 식으로 준비하나요?

“보통은 성우 학원에 다녀요. 매주 몇 시간씩 학원에 가서 여러 대본으로 계속 연기 연습하고, 감정, 발성을 배우고 훈련합니다. 방송국 시험 시즌이 되면 방송국별로 선호하는 스타일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면서 시험에 대비해요. 떨어지면 계속 또 학원에 다니고요. 저는 학원만 거의 6년 정도 다녔어요. 계속 알바를 하면서 학원비를 벌었고요.”

Q. 공채 문이 많이 좁은 편인가요?

“제가 합격한 대교어린이TV 외에 KBS, 투니버스, 대원방송, EBS 이렇게 다섯 개 방송국에서 공채 시험을 진행하고 있어요. 매년 뽑는 곳도 있고, 2~3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곳도 있는데, 평균적으로 1년에 20명 정도의 신인 성우들이 공채를 통해 데뷔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체 응시인원은 3천명 정도고요. 그만큼 참 문을 뚫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입사한 대교는 남녀 한 명씩 뽑거든요. 그때 경쟁률이 650대 1이었어요.”

Q.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네요. 잘 돼서 다행이지만, 기약 없이 마냥 준비하는 게 위험한 일일 수도 있는데.

“아마추어 성우로는 계속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리미트’를 걸어놨어요. 특정 시점까지 1차 통과 못 하면 접자. 그런데 그때 1차를 처음 붙었어요. 그리고 몇 년 내로 최종까지 못가면 끝내자 했는데, 제가 정한 마지막 공채에서 최종시험까지 올라갔어요. 그 뒤에 아버지한테 조금만 더 해보겠다고 사정해서 진짜 마지막 시험으로 대교에 도전했고 결국 합격하게 됐죠.”

Q. 아마추어로도 활동하셨는데, ‘공채 성우’가 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공채와 비공채의 신분상 차이는요?

“성우 공채시험에 합격하면 2년 동안 해당 방송국과 전속계약을 맺어요. 전속기간이 끝나면 한국성우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겨요. 협회 정회원이 되면 소속 방송사에 관계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어요.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성우라 불리는 건, 공채를 통과해서 협회 회원이 된 성우를 말해요. 조금 예민한 문제이긴 한데, 요즘은 협회와 비협회 성우들이 혼재돼서 활동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확실한 경계를 두면, TV에 온에어 되는 작품에 캐스팅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야, 너두 성우 할 수 있어

Q. 성우는 타고나는 건가요? 만들어지는 건가요?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지 않으면 성우가 될 수 없나요?

“좋은 목소리란 뭘까요? 흔히 말하는 동굴 목소리나, 간드러진 목소리가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진 안정적인 목소리,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목소리는 누구에게나 좋은 목소리가 될 수 있죠. 그렇기에 타고나지 않아도 후천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성우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야 네가 무슨 성우야’ ‘그 목소리로 무슨 성우를 한다고 그래’라는 말을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별로 상처가 되진 않았어요. 저는 성우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훈련을 통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성우는 이래야 해’ 하는 것도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목소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아요. 최소한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구들도 그렇고. 내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성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성우들의 직업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어요.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서 거의 매년 ‘톱5’에 들더군요.

“변화무쌍한 직업이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항상 출근해서 시재 점검하고 물건 점검하고 손님 오시면 상대하고 청소하고 퇴근하고 똑같았어요. 그런데 성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삶을 사는 거예요. 어제는 A였는데 오늘은 B가 될 수 있어요. 다음 주에는 어떤 캐릭터로 청취자를 만날지 전혀 모르는 거예요. 매일 매 순간이 신선하고 새로워요. 그런 기대감 때문에 직업 만족도가 높지 않나 생각해요.”

Q. 요즘 콘텐츠 업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목소리 시장’의 영향은 어떤가요? 성우로서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진 것 같나요?

“확실히 넓어진 걸 체감해요. 오디오북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기존 방송국뿐만 아니라, OTT 플랫폼에서 자체 제작하는 콘텐츠도 많아졌어요. 또 지금까지 화면 뒤에만 존재하던 성우들이 유튜브를 통해 ‘성우 누구누구’로 전면에 나올 수 있게 됐죠.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당장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떠나서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이 많아졌다는 것은 굉장히 반갑고 매력적인 일이죠.”

Q. 인공지능 성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좌중 웃음, 그리고 탄식) 아. 그렇죠. TTS(문자 음성 자동변환) 같은. 솔직히 처음 AI 음성을 들었을 땐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내가 필요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구나. 한편으론 신기하더라고요. 내레이션을 들어보면 ‘오, 이게 AI라고?’ 놀랄 때가 있어요.

저는 성우한테 가장 중요한 자질이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대본을 보고 내가 맡은 캐릭터에 공감해야 이 캐릭터가 말하는 것을 잘 표현할 수 있죠. 또 시청자들과도 공감해야 해요. 나만의 세계에 빠지면 안 돼요. 내가 표현하는 이 대사가 듣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공감시킬 수 있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공감은 AI가 따라오기에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목소리의 힘

Q. 진로를 일찍 정하셨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명확했잖아요. 그런데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전공과 대학 생활은 어떤 의미였나요?

“대학 진학할 때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실제 성우과에 원서를 넣어 합격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성우가 되고 싶은 이유는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였잖아요.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배워보고 싶었어요. 또 목소리로 사회에 봉사하고 이바지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사회복지학을 배우면 그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삼육대에 입학하게 됐죠.”

Q.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조금 혼란스러웠던 시기는 있었어요. 처음엔 괜찮았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심화된 내용을 배우잖아요. 이런 것들을 내가 어디까지, 어느 선까지 배워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우라는 진로가 너무 명확했으니까, 학업에 충실하지 못했죠.

그러다가 노인복지관에 실습을 나갔어요. 어르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청년이 잘 들어주니 고맙네’ ‘목소리가 좋네’ ‘목소리가 차분해서 내가 말할 때 존중받는 느낌이 드네’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목표를 갖고 처음 입학했을 때가 생각났어요. 내 전공과 목소리로 사회복지 분야에 이바지할 수 있겠구나, 내가 좀 더 잘 배워야겠다. 마음을 고쳐먹었죠.

배리어프리 영화(시청각장애인을 위해 음성·화면 해설을 삽입한 영화)는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성우 업계에서도 계속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에요. 저 역시 화면해설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고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낭독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Q. 어떤 성우가 되고 싶나요?

“희망을 주는 성우가 되고 싶어요. 고등학교 시절 개인적으로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에 <VJ특공대>를 보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나요. 성우라는 꿈을 갖게 됐고요.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 희망을 느낄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다른 의미의 희망도 있어요. 저는 다리에 장애가 있습니다. 공채 합격 전 면접을 보거나 일을 하러 가면 ‘넌 다리가 불편하니까 좀 어렵겠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더 잘 해내려고 노력했어요. 다리가 아프니까, 몸이 아파서 할 수 있을까, 그런 시선에도, ‘어. 난 할 수 있어. 난 해냈거든. 그러니까 다 할 수 있어.’ 그런 희망을 주는 성우가 되고 싶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Q. 목소리가 가진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울립니다. 내가 진정성 있게 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서 전하면 듣는 사람이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동화책 읽어주는 낭독 봉사를 한 적이 있어요. 한 친구가 너무 재밌고 좋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지더라고요. 내 목소리로 이 친구에게 즐거운 감정을 느끼게 했구나. 내가 이 캐릭터와 동화책을 통해 남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을 이 친구가 정말 느꼈구나. 그런 마음의 울림, 공감 같은 것들이 목소리가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건 AI 성우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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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대학 생존위기, 삼육대의 대응 방안은?

김일목 총장 <재림마을 뉴스센터> 인터뷰
“명확한 비전과 전략 수립” 강조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을 거라던 우려가 그저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2021학년도 새 학기 들어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가 줄줄이 발생하면서 대학의 정원 미달은 현실이 됐다. 역대급 추가모집에도 상당 수 대학이 수백 명씩 학생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생존위기를 걱정하는 언론보도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욱 심화할 거라는 점. 이를 바라보는 성도들의 시선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기관은 이에 대해 어떤 대응방안 갖고 있고,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재림마을 뉴스센터>는 삼육대학교 김일목 총장에게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중장기 대응책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들었다. – 편집자 주 –

Q. 삼육대학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중장기 대응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 첫째, 인구감소 시대에 대응할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인 ‘SU-MVP+ 플랜 2025’에 따라 다양한 세부 전략과제들을 추진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면서도 앞선 전략과 실행과제를 재정립하고, 발전계획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대내외 환경 변수, 정부정책 방향까지 고려해 2030년까지 적용될 새로운 ‘SU-GLORY 플랜 2030 발전계획’(가칭)과 전략과제를 연내에 발표할 것입니다.

둘째, 대형 국고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 경쟁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기존 CK-II(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 ACE+(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의 성과와 현재 진행 중인 대학혁신지원사업을 통해 학부교육 전반에서 대대적인 혁신을 이루고 있습니다. 향후 BK21+, SW중심대학, LINC+사업을 수주하여,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보다 고도화된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교육 역량 강화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첨단 강의실 및 원격강의지원 시스템 구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교육·행정의 질 관리 시스템 또한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중점전략을 업데이트하고, 실행과제를 도출해 이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넷째, 대외평가를 통해 삼육대의 브랜드 역량을 강화할 것입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QS 세계대학평가, THE 아시아 대학평가 등에 참여하여 삼육대의 역량을 객관적 수치로 입증하고, 각 평가 지표를 고려한 정책을 추진하여, 경쟁력을 높이고자 합니다.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2025년까지 세계평가 200위, 국내평가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과 영성과 신체의 균형진 전인교육을 통한 인류사회 기여’라는 삼육대의 설립이념과 ‘진리와 사랑의 봉사자’라는 인재상에 따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발전계획과 대응방안은 이 같은 대전제하에 이뤄질 것입니다. 지속적인 기도를 요청드립니다.

Q. 특성화 교육 등 삼육대학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장님께서는 어떠한 전략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 건강과학특성화, 첨단도시농업특성화, ICT특성화, 문화예술특성화를 중점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먼저 의료, 보건, 상담계열 학과를 중심으로 생활건강증진을 위한 예방의학 차원의 건강과학특성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예, 조경, 디자인 분야 학과를 통해 안전식품, 도시조경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첨단도시농업특성화,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ICT특성화, 문화콘텐츠와 연관 학문이 결합된 문화예술특성화도 강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성교육특성화는 우리 대학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분야입니다. 인성교육원과 사회봉사단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독교 정신 기반의 각종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삼육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점입니다.

이 같은 특성화 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교과, 비교과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성과 평가를 통해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특성화 교육을 위한 계획과 예산을 별도로 수립하고, 재원을 확보하여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예산이 적절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관련 위원회도 구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행정시스템을 간소화하고 고도화하여 특성화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지속적으로 마련해 실행할 계획입니다.

Q. 학령인구 감소에 맞도록 대학의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려옵니다. 대학을 연구중심, 교육중심, 직업훈련 및 평생교육 등 각각 분리해 역할을 나누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삼육대학교의 미래교육 방향성을 어떻게 그리고 계십니까?

– 대학을 연구중심, 교육중심, 직업훈련과 평생교육 등으로 각각 분담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정부 차원에서 구체화된 것은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을 기능별 분담체제로 개편하는 것 역시 하나의 현실적인 구조조정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육대는 교육중심 대학으로, 앞선 2017년 교육부의 ‘잘 가르치는 대학’(ACE+)에 선정되면서 이미 교육역량을 공인받은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학부교육의 지속적인 개선과 혁신을 추진하여 명실상부한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향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급변하는 산업 구조와 사회 수요에 맞춰 학과 융·복합 및 신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학과구조개선위원회를 통해 지난해 지능정보융합학부와 항공관광외국어학부를 신설해 첫 신입생을 선발했습니다. 지능정보융합학부는 인문사회계열인 경영정보학과와 공학계열인 IT융합공학과를 통합한 학부입니다. 항공관광외국어학부는 기존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통합했습니다. 올해는 바이오융합학과를 신설하여 바이오산업 인재를 양성하고, 인공지능융합학부로의 학과 개편도 추진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연계전공과 융합전공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여러 학문 분야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융합적인 안목을 배양하도록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CK-II, ACE+, 대학혁신지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연계전공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독연계전공과 휴먼ICT연계전공은 우리 대학의 대표 연계전공과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신설되는 학과, 학부간 연계, 융합 전공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체계를 마련할 것입니다.

아울러 ‘원격교육지원센터’를 신설해 디지털 교육역량을 강화할 것입니다. 디지털에 기반한 통합운영시스템을 갖추고, 교육 콘텐츠를 확충할 것입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적극 활용해 교육효과를 높이는 것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과제입니다. 첨단강의실, 원격강의실도 추가 구축해 원격교육의 내실화를 이뤄나가겠습니다.

▲ 김일목 총장이 화상으로 교수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Q. 끝으로 삼육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국내외 성도들에게 당부나 강조의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가 올해 입시를 기점으로 현실화된 듯합니다. 국내외 많은 성도께서도 우려를 갖고 계실 줄로 압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삼육대는 중장기발전계획과 전략과제, 특성화를 바탕으로 대내외 변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삼육교육은 우리 대학의 본분이요, 설립 목적이요, 존재 이유입니다. 올해는 삼육대가 개교 115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 근대화와 산업화 등 질곡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우리는 숭고한 교육이념의 토대 위에서 대학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리의 경쟁력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을 붙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려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성원들의 역량을 계발하고 맡겨진 과제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재림성도들께서 삼육대에 대한 긍지와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삼육교육의 이념과 선교사명을 구현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재림마을 http://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category=1&no=10470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단백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단백질은 생명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성장한 세포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고, 노년에는 건강을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합니다. 특히 운동선수처럼 일반인보다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더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죠.

독서라는 것은 우리 정신세계에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적인 활동을 더 활발히 하거나, 책임 있는 위치에 있거나, 조직에서 남다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머슬’을 갖춰야 하는데, 여기에 반드시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독서란 단백질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곡을 전공하셨습니다. 어떻게 작곡가의 꿈을 갖게 되셨나요?

“아버님이 목사님이셨는데 주로 시골에 발령을 받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다양한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밤이면 무서운 소리. 캄캄한 밤에 화장실에 가려면 대문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때의 공포감 같은 것들이요. 그런 자연이 주는 다양한 느낌과 감성을 풍부하게 겪었던 것 같습니다.

또 아버님이 클래식 음악 LP판을 많이 소장하셨는데, 그걸 많이 들었습니다. 시골이라 딱히 할 게 없었어요. 더구나 아버지가 목사님이시라 세속적인 문화에 차단되어 있었죠. (웃음) LP판을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수백 번을 듣다 보니 나중에는 음악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음’이라고 하는 세계에 어떠한 규칙, 원칙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게 됐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쯤 우연히 화성학 책을 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이 거기에 다 들어있었어요. 그렇게 화성학을 독학하고, 교회에 있는 풍금으로 멜로디에 화음도 붙여보고 아버지한테 들려드리니까 잘했다고 안아주시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꼭 작곡가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음의 세계에 빠져 있었어요. 집에서는 신학을 전공하길 원하셨지만, 결국 작곡과에 갔고 제 커리어가 시작됐습니다.“

Q. 현재 중견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간 한국과 서양의 음악기법, 정서를 융합하는 시도를 많이 하셨어요. 대표작으로 우리 민요 아리랑을 바로크부터 낭만파까지 서양음악의 양식을 빌려 재탄생시킨 ‘아리랑 변주곡’이 있습니다. 한국창작무용단과도 무대를 올리셨고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박사를 했습니다. 유학을 간 이유는 서양음악사에서 발전된 첨단 음악 기법이나, 미학적인 세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현지 교수들은 오히려 동양에서 온 한국 작곡가가 왜 서양적인 것을 추구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서양음악의 시스템이나, 테크닉, 기법을 활용하더라도, 음악적인 재료와 소재는 “너만의 것, 네 나라의 것, 우리(서양)에게 없는 걸” 하라는 거였죠. 김치를 아주 좋아하는 한 교수님은 “김치 맛을 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음악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국악개론을 공부하고 경험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으로 세계무대에서 서양음악의 수준에 매칭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한참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죠. 한국에 있을 때 공부할 기회가 많았는데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고, 후회가 많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에서 한국음악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구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부터 <한국음악사>, <국악작곡입문>, <판소리의 이해>, <한국음악의 멋> 등 한국음악의 미학, 철학, 역사뿐만 아니라, 미술, 춤, 건축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예술을 공부했습니다. 한국의 리듬이나 선율, 형식적인 특징을 이해하고, 한국음악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그 뿌리는 뭔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세계화에 보탬이 될지, 내 작품이나 정체성에는 어떻게 적용할지 하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숙제로 남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나온 작품이 ‘아리랑 변주곡’(아래 영상)이었습니다. 아리랑을 베토벤, 슈만, 리스트, 바흐 등 여러 서양 작곡가의 양식으로 변주한 작품입니다. 우리 전통놀이 음악인 ‘강강술래’를 관현악판타지로 편곡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도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서양악기로 표현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 작곡가에게 책이란 무엇입니까.

“매우 큰 영향을 받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산입니다. 지난해 비올리스트 김남중의 위촉을 받아 작곡해 스페인에서 초연한 ‘Transcendental Sonority for Viola Solo(비올라 독주를 위한 초월적 울림)’는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입니다. (관련기사▷창작곡 ‘초월적 울림’ 스페인서 세계 초연한 박정양 교수) 작곡자, 연주자, 청중 모두 경험적(Empirical) 인식보다는 선험적(Transcendental) 직관과 감성에 의존해서 작곡하고, 연주하고, 감상하는 경우가 많다는 아이디어를 곡에 담았습니다.

보통 아이디어와 악상이 만나는 지점이 계기가 돼 곡을 씁니다. 작품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책이라는 거죠. 또 작가는 과거의 유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기에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와 호흡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책을 계속해서 읽어내야 합니다.“

Q. 얼마 전 학술정보원장(도서관장)으로서 기획하고 추진하신 ‘길 위의 인문학’이 코로나 가운데서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보건, 심리, 미술, 원예, 체육,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 교수님들이 본인 전공의 관점으로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하는 통섭적 시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떻게 기획하시게 됐나요?

“대학에서 도서관은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지난해 초 학술정보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려보거나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인문학 강의, 전시회, 음악회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한국도서관협회가 비슷한 취지로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도서관 지원사업을 공모했고, 우리 학술정보원이 선정돼 예산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관련기사▷학술정보원 ‘길 위의 인문학’ 개강…10주간 인문행사 풍성)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라는 책을 주제도서로 정하고, 10주간 다양한 전공 분야 교수님을 강단에 모셨습니다. 각기 다른 전공 교수님들이 클래식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 체험을 이야기해주셔서 매우 입체적인 강연이 됐습니다. 또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 낭송 음악회 등 코로나 상황에서 공감과 치유에 포커스를 맞춘 여러 부대행사도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관련기사▷학술정보원 시낭송 음악회 “코로나 블루 위로”) 지난해 프로그램을 운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는 더 깊고 넓은 시도를 할 계획입니다.“

Q. 2019년 대학원에 통합예술학과를 신설하고, 초대 학과장을 맡으셨습니다. 작곡가로서 교육자로서 행정가로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통합예술’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야흐로 융복합의 시대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다양한 산업 분야가 합종연횡하면서 막대한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되고 있습니다. 시대정신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예술인의 역할도 이에 맞게 달라져야 하지요. 예술인들이 자신의 장르와 전문 분야에만 갇혀 있고, 융합하지 않으면 결코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예술도 산업이나 다른 학문 분야와 협력하고 융합해서 시너지를 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합예술적 사고를 갖춘 예술교육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은 대학의 역할일 것입니다. 우리 대학원 통합예술학과에서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전공실기 뿐만 아니라, 예술사, 교육론, 장르별 콘텐츠 연구, 정책 및 경영, 환경디자인 등 여러 학문 분야를 산학연과 연계된 저명한 교수진과 함께 연구해 통합예술교육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Q. 앞서 ‘길 위의 인문학’을 시작하면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위축된 정서를 치유하는 힐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초청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쓸 새 없이 확산하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 시기에 인문학, 넓게 말하면 독서가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대학시절 지하철로 통학하면서 손바닥만 한 문고판 철학 서적을 늘 읽던 기억이 납니다. 저 역시 청춘시절 고민이 많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결코 순탄한 시대가 아니었지요.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판단을 할 때 책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등불이 되어줬습니다.

삶의 문제는 결코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밥 먹고 떠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정신의 스승들에게 솔루션을 얻어야 합니다. 물론 그 자체가 어떤 갈등 혹은 고민의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특정 한 권의 책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폭넓게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상을 경험하면 분명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는 데 가이드가 되어줄 것입니다.

다만 영적인 세계는 철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성경이 어렵다면, 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 같은 책을 권합니다. 찰나를 살고 끝나는 인간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말고, 무한한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신이란 무엇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청춘시절 매우 중요한 경험일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못 만나고 아무 데도 못 가고 있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작곡하는 학생들에게는 집에서 곡 쓸 시간이 많아진 거죠. 이런 시기에 책을 통해 내면을 성장시키고 살찌우고 위안과 마음의 평화도 얻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양 교수의 추천 책


<점·선·면>
바실리 칸딘스키 저, 차봉희 역, 열화당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책입니다. 점, 선, 면은 기하학에서 다루는 용어인데, 이것이 회화는 물론 음악, 무용, 미술, 문학 등 모든 예술 장르에 다 적용이 된다는 겁니다. 칸딘스키는 예술작품들이 공통분모 없이 너무나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혼용되기에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점, 선, 면과 같은 조형적이고 기하학적인 요소가 바탕이 되어야 영속적 가치를 지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가령 점이라는 것은 어떤 작은 위치를 나타내지만, 모든 우주를 포괄하는 엄청나게 큰 무엇을 상징하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장르를 떠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예술성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것입니다.


<Trivium>
John Michell 외, Bloomsbury USA


<Quadrivium>
Miranda Lundy 외 저, Bloomsbury USA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에 이르는 시기에는 자유민의 교양을 위한 7개의 필수과목을 가르쳤습니다. 문법·논리학·수사학은 3학(學) 즉 트리비움(Trivium)으로, 산술·기하·음악·천문학은 4과(科) 콰드리비움(Quadrivium)으로 불렀습니다. 이를 통해 7자유학예(ars liberalis)라는 학문체계를 세웠죠.

트리비움은 언어에 관한 것으로, 사람들이 소통하고 설득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내용입니다. 콰드리비움은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을 다룹니다. 전부 수에 관한 내용인데, 음악도 포함되어 있어요. 음악 역시 수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 음악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과 성격을 비롯한 근본적인 질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에, 당시 리버럴 아츠의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오래전에 어떻게 이렇게 완성도 높고 지속력 있는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랍습니다. 리버럴 아츠라는 것은 인간을 무지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자신의 틀에서 해방시켜주는 학문입니다. 최근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읽고 있는데 정말 보물 같은 책입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언론인터뷰] 어려운 학생 돕던 삼촌, 백발의 봉사왕 됐죠

이한종 체육관 안전관리담당 <브릿지경제> 인터뷰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재능기부·해외봉사·헌혈 등 나눔 실천 ‘훈훈’

△ 이한종 삼육대학교 체육관 안전관리담당. 사진=브릿지경제 이철준 기자.

“봉사를 하면 하는 사람도, 도움을 받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체력이 될 때까지 봉사활동을 실천할 계획입니다.”

대학에서 10여년간 근무하며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는 학생들을 도왔던 이한종씨(64)는 그동안 지역봉사, 재능기부, 해외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1999년부터 삼육대학교 행정 직원으로 근무한 그는 2016년 정년퇴직 후 학교 촉탁직으로 고용돼 현재 삼육대 체육관에서 안전관리담당으로서 수영장을 찾는 어린이 등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학교 직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이씨는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면서 ‘삼촌’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나이가 들어 점차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 ‘할아버지’라고도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이들과 삼촌과 조카 사이처럼 소통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 전화번호는 3000여개, 학교 졸업 후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예전 학생들의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는 그다.

이한종씨는 “인연을 맺었던 학생들이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 근무 시절, 학생들을 상담하게 됐다. 숙식, 학업,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거처가 없는 학생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나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돕는 등 이씨는 대가 없이 나눔을 펼쳤다. 그렇게 그는 조카를 바라보듯 학생들의 성장을 바라봤다. 교육단체에서 청소년 상담 등 봉사활동에도 나섰던 이씨는 검찰 표창장을 받으면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이씨는 “전화상담 등을 통해 어린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을 위한 부분으로 활동했었다”고 회상했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그는 휴무일, 휴가 등을 적절히 활용하며 봉사활동에 나섰다. 여러 차례 해외봉사에도 참여했던 이씨는 봉사단 소속으로 찾은 국가에서 다소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 사진제공=이한종 삼육대 체육관 안전관리담당

그는 “예전에 봉사활동을 위해 방문한 해외의 한 지역이 봉쇄되는 상황이 있었다. 이로 인해 어려움 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없게 됐었다. 봉사의 의미를 전하고자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무작정 물 등을 전달하며 봉사활동에 대한 의미를 전했다. 다행히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봉사에 나설 수 있었고, 오히려 도움을 받기도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봉사활동과 더불어 기부를 통한 나눔도 실천했다. 한 어린이 복지단체에 꾸준한 기부로 20년 인증서를 수여받았던 그는 “실천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던 이씨는 퇴직 후 학교 촉탁직원으로 근무하며 지역봉사, 헌혈, 재능기부 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봉사단체 회원들과 함께 지역축제, 체육대회, 병원 등을 찾아 다른 이들의 지친 심신이 회복될 수 있도록 발 마사지 봉사활동에 나섰고, 60대에 접어들었지만 헌혈도 솔선수범하고 있다. 과거 잘못된 안내로 헌혈에 나서지 못했는데, 뒤늦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일 년에 두 차례 꾸준히 헌혈에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참여한 헌혈 횟수는 50회를 넘어섰다.

이씨는 “발 마사지 봉사활동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며 잠시 활동이 중단된 것에 아쉬움을 보였다.

△ 이한종 삼육대 체육관 안전관리담당이 학생상담, 봉사활동, 재능기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브릿지경제 이철준 기자.

다른 이들을 돕는데 앞장선 이씨는 배움을 통해 재능기부의 초석을 다져왔다. 공부를 통해 쌓은 지식으로, 더욱더 체계적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확신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했다.

그는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고자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요양보호사 1급,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에 이어 농학사, 지식재산권 학위를 받는 이씨는 대학원에서는 마케팅 과정을 밟기도 했다. 학교 근무 중 접한 피부·발 관리 프로그램은 발 마사지 봉사활동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봉사활동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해집니다. 유대관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노인요양센터에서 활동이 가능했고, 사회복지사 2급은 봉사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으로 지식을 쌓으면서 참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미래 설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학습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을 위해 도움을 펼쳐왔던 이씨는 앞으로도 나눔을 실천한다는 계획이다.

“봉사를 하면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더 많은 활동을 했을 겁니다. 공부하며 다양한 분야를 접했고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체력이 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할 것입니다.”

브릿지경제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210110010001817

[삼육人] 박사학위 취득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안형진씨

현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철학적 관점으로 비판 고찰
“깊은 사색과 공부로 더욱더 정진할 것”

“장애인은 어느 위치, 어디를 가더라도 그 커뮤니티를 바꿔야 하고, 밝고 자신 있고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발상 자체가 또 하나의 억압임을 알 수 있습니다.”

21일 삼육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안형진(41) 씨가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논문 ‘능동적 시민성의 입장에서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한 대목이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인 안 씨는 지난 2013년 3월 삼육대 일반대학원에 입학한 후 7년 반 만에 박사학위의 결실을 맺게 됐다.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안 씨는 대학 때부터 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 등에서 활동하며 장애 대학생 교육권 운동을 해왔다. 졸업 후에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학에 관심을 갖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됐다.

박사과정은 쉽지 않았다. 듣는 건 문제가 없지만, 말하고 쓰는 것이 불편했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보조 장치를 활용해 발표 수업에 참여했고,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수업 도우미 제도를 활용해 대필 도움을 받으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왔다. 논문 심사 역시 인터뷰 대신 서면으로 진행할 정도로 장애 정도가 중증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진지하고 악착같이 공부하는 학생이었다는 게 지도교수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사회복지학과 윤재영 교수는 “장애 당사자이기에 장애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의식이 강한 학생이었다”며 “졸업까지 7년이 넘게 걸린 것도 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을 활용하거나 깊이 있는 연구를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안형진(오른쪽) 씨와 윤재영 지도교수가 밝게 웃고 있다.

156쪽에 달하는 그의 졸업논문은 자립적 삶을 사는 것만이 바람직한 시민이라는 ‘자유주의 시민성’에 근거한 현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를 비판하고, 인간의 본질은 의존이라는 ‘능동적 시민성’에 기초해 대안적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윤 교수는 “철학적 입장을 통해 정책이나 제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규범을 제시한 규범적 정책 분석 논문”이라며 “이 같은 연구방법은 사회복지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을 통틀어서도 매우 드문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안 씨는 “논문을 쓰는 과정은 이제까지 내가 가면을 쓰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근본적인 원인을 깨닫고, 사람에게 연연하지 않으며 진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때론 형님처럼, 때론 동지처럼 저의 모든 면면을 살펴주시고 지도해주신 교수님들과 대학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도움에 특별히 감사하다”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끝까지 해내는 것이 또 다른 장애운동이라며 힘을 주신 여러 장애 운동계 선후배님들의 응원과 지지에도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깊은 사색과 공부를 통해 더욱더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00821113200004?input=1195m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PYH20200821137900004?input=1196m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856871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85531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pan/site/data/html_dir/2020/08/21/2020082103149.html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0/08/862832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ngo/959043.html
아시아경제 https://view.asiae.co.kr/article/2020082312084657374
베리타스알파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336796
메트로신문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00821500128
뉴스타운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395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56027
위드인뉴스 http://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53&item=&no=22820
아시아통신 http://www.newsasia.kr/detail.php?number=2657&thread=22r12

[파워삼육人] 탈북민 아줌마의 인생역정…’남북한 1호 약사’ 이혜경(약학 02) 동문

[파워삼육人] ‘남북한 1호 약사’ 이혜경(약학 02) 동문

지난 4·15 총선에서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탈북민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배출됐다. 이전까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탈북민은 있었지만, 지역구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방인이었던 탈북민이 한국 사회 주류에 진입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그와 함께 성공한 탈북민 사례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이가 있었으니, ‘남북한 1호 약사’로 불리는 이혜경(56) 약사. 우리 대학 동문이다.

북한의 명문 함흥약대를 졸업하고 12년간 약제사(북한의 약사)로 일하던 그는 2002년 두 딸과 노모를 모시고 탈북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후 약사직을 되찾기 위한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단 학교부터 다시 다녀야 했다. 전국의 모든 약학대학의 문을 두드린 끝에 어렵게 우리 대학 약학과에 편입했다. ‘주독야경’으로 학업과 생계, 양육을 병행하며 졸업했고, 졸업 후에는 3전 4기 끝에 약사시험을 패스했다. 당시 그의 나이 50이었다.

“끊임없는 절망과 좌절의 연속이었고, 끝 모를 터널 같았어요. 그 생활을 내가 어떻게 견뎌낸 건지. 나조차도 믿기 어렵습니다.” 그 불굴의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경기도 한 소도시 약국에서 만난 이혜경 동문은 오뚝이 같은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담하게 길어 올렸다.

전염병 창궐의 기억

이 동문의 약국을 찾은 건 지난 5월 중순. 마스크를 찾는 손님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요일제가 여전히 시행되던 때라 신분증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내주는 그의 손이 분주했다. 재고를 문의하는 전화도 걸려왔다.

“‘공산당식 배급제냐’고 불평하는 손님도 있어요. (북한에서 온)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웃음) ‘나라에서 국민들한테 골고루 보급하려고 하는 건데 얼마나 좋으냐’고 하니까 아무 말 안 해요. 한 할머니는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고 하길래 ‘그래도 지금은 나만 잘 지키면 되잖아요’ 하니까 ‘맞다’고 해요. 모두가 힘든 시기에요. 나야 마스크 하나 팔면 그만일 수 있지만, 이런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함께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힘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Q. 북한에서도 전염병 사태를 겪었다고요.

“1994년 10월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콜레라가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했어요. 병원에는 침대가 부족해 판자와 집에서 가져온 침구류로 가설 침상을 설치했어요. 그 침상이 복도에서 병원 정문까지 이어졌죠. 몇 달간 집에서 한숨도 못 잘 정도로 바빴어요.”

Q. 콜레라는 후진국형 전염병으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에서도 콜레라는 일제시대 때나 있던 병이라고 했어요. 고난의 행군 시기라 식량난에 경제난, 전력난, 의료난이 심각했습니다. 환자들은 쌀뜨물 같은 설사와 복통을 호소했어요. 전해질과 수액보충치료가 기본적으로 필요했는데, 전기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수액 수요를 맞추지 못했어요. 영양부실로 인한 체액 소실로 환자들이 하나둘 맥없이 죽어 나갔습니다. 아사자와 병사자가 속출했고 주변이 온통 시체뿐이었어요.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었죠.”

Q. 전염병은 언제까지 이어졌나요.

“당국에서는 쉬쉬했어요. 이듬해 가을께야 사태가 외부에 알려져서 유엔에서 항생제와 치료제가 전달됐어요. 수액을 맞고 일어난 환자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했어요. 그때마다 ‘내가 아니라 유엔 약이 당신을 살렸다’고 말하곤 했죠.”

이 동문이 탈북을 결심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약사라는 직업은 북한에서 상당한 엘리트층에 속했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전염병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저에겐 두 딸 아이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나도 언젠가 죽겠구나. 죽음을 실감했어요.”

먼저 첫째 딸을 데리고 북을 탈출했다. 이후 둘째 딸을 데리러 재입북했다가 체포돼 6개월간 구금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기적적으로 풀려난 그는 둘째 딸을 안고 북한을 빠져나왔다. 목숨을 걸고 두 번이나 탈북하며 식구들을 다 모아놓고 보니 이제는 이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녹록지 않은 남한살이의 시작이었다.

무늬뿐인 환희

Q. 한국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풍요롭고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림의 떡, 무늬뿐인 환희였죠. 내 것이 아니잖아요. 북한에선 부족했어도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날 필요로 하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더군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는 북한에서의 직업을 절대 고집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새겨줬다. 특히 의사나 약사, 변호사 같은 엘리트 직업 출신은 더더욱 정착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나가면 제일 밑바닥부터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열심히 하는 것이 정착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Q. 어떤 일을 했나요.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일용직 판매사원부터 파출부, 빌딩청소, 슈퍼, 마트 사원, 신문배달, 전단 돌리기, 드라마 엑스트라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2년간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생계는 꾸려지더군요. 그런데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공허감이 몰려왔어요.”

Q.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나요?

“아이들도 문제였어요. 일하는 동안 애들은 온종일 집에서 TV를 보거나 놀러 다녔어요. 북한에 있다 왔으니 얼마나 즐길 거리가 많았겠어요. 공부할 나이인데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어요. 아차 싶더군요.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를 놓치겠구나.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 동문은 경남대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에 입학해 남북한 의료체계를 연구했다. 정계, 사회계, 언론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남한 사회를 알아가고, 북한의 실상을 공유하면서 학계에서 연고를 쌓았다. ‘북한 의료체계 파행화’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북한의 보건일꾼 양성정책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탈북민 출신 여성 박사 2호’ 타이틀도 얻게 됐다.

북한 약제사, 남한 약사에 도전하다

Q. 약사는 어떻게 하게 됐는지.

“지도교수셨던 류길재 통일부 전 장관이 어느 날 절 불렀어요. 다시 약사로 일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당시 파출부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학위를 받더라도 생계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었죠. 기왕 북한에서 하던 일이니 전문 직종을 살리는 게 좋지 않으냐는 거였죠. 탈북 후 한동안 덮어두었던 약사직에 대한 소망이 꿈틀거렸습니다.”

Q. 무엇부터 했나요?

“보건복지부를 찾아가 방법을 물었어요. 그런데 북한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국가고시 자격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탈북 당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기로였어요. 유학 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졸업장까지 챙기느냐고 완강히 맞섰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죠. 해결책을 물었어요. 한국에서 다시 약대를 졸업하지 않은 이상 어렵다고 했어요.”

이후 약대가 있는 전국 모든 대학 입학처에 자신의 사정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약사 경력 10년이 넘어도 북한에서 교육받은 당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회신이 아예 없는 대학도 있었다. 직접 찾아가서 사정해보기도 했지만, 무시와 냉대, 배타가 이어졌다. 그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곳이 바로 우리 대학이었다.

약학대학 임동술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학업능력이었다”며 “당시 그의 입학을 두고 교수들끼리도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방하는 우리 대학마저 배척할 순 없었다”고 회상했다. 2004년 3월, 탈북민 최초로 약대 편입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Q.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새벽 4시에 일어났어요. 5시까지 신문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애들 밥해 먹이고 등교시켰어요. 7시에는 집을 나와야 2시간 통학 거리인 학교에 도착해 9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죠.

점심은 안 먹었어요. 첫 학기엔 학생식당에서 라면을 600원에 팔아서 가끔 사 먹을 수 있었는데, 다음 학기에 1000원으로 올랐어요. 한 달이면 2만5000원인데 그 돈이면 애들 용돈을 좀 더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처음엔 배가 무지 고팠는데 점차 익숙해져서 사탕 몇 개로도 꽤 괜찮아졌어요.(웃음)“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어느새 첫째 딸이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밥을 했다. 작은딸도 덩달아 자기 옷까지 다려 입고 엄마를 깨웠다. 그날 아이들을 붙들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 입을 앙다물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Q. 학업은 어땠는지.

“사실 공부가 더 힘들었어요. 공부라면 남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자신 있었어요. 그런데 다 때가 있더군요. 40대 아줌마가 상위 1.5% 성적으로 입학한 20대 수재들과 경쟁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죠. 다른 학과에 비해 이수학점이 많았고, 퀴즈(쪽지시험)만 매주 2~3회씩 있었어요. 특히 해부학 수업은 내용 자체도 어려웠지만, 퀴즈를 꼭 아침 8시에 봤어요. 그 시간까지 학교에 도착하려면 그날은 그야말로 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Q. 학교생활의 추억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없어요. 전혀 없어요.(웃음) 그 생활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정말 해낸 게 맞나. 나조차도 믿기 힘들어요.”

Q. 그런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교수님들의 수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한 번은 F학점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김경제 교수님 수업이었어요. 다 포기할 생각으로 연구실을 찾아갔는데 교수님이 ‘참 잘 왔다. 안아주고 싶었다’면서 당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미국 박사학위 시절 7개월 내기 아이가 있었대요. 낮에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아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밤에 공부할 때는 책상 옆에 뉘어놓고 공부하셨다고. 그러면서 ‘넌 말만 같을 뿐이지, 다른 나라에 유학 온 거나 다름없다. 넌 할 수 있다. 마더(mother)가 아니냐. Mother is strong! 그게 바로 마더의 힘이야’라고 격려해주셨어요.

다시 정신 차리고 공부할 수 있는 큰 용기가 됐습니다. 학기마다 익명으로 금일봉을 주신 교수님들께도 늦게나마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통일의 꿈

Q. 왜 그렇게 열심히 사셨나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모질게 버틴 건지.

“저는 소명이 있습니다. 어떤 일개인이 아니라, 통일의 역군이라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어요. 내가 숨 쉬고 생활하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 한반도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어요.”

Q. 무슨 말씀인가요.

“탈북민은 그 존재 자체가 ‘작은 통일’입니다. 탈북민의 정착과 남한 사회에서의 성공은 북한 주민들에게 어떠한 메시지가 될 수 있어요. 또 남북한 사회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협력이나 향후 통일 준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태구민(태영호) 국회의원의 당선은 정파를 초월해 상당히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한국살이가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탈북민에 대한 사회의 편견,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 어느 한순간도 수월하게 넘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12번도 넘게 포기하고 싶었지만,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약학교육을 이수한 사람으로서 한민족 통일의 일익을 담당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가 1년 365일 문을 여는 약국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대한약사회 정책위원과 국제위원, 경기도약사회 통일약료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약학 분야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 방안을 모색해온 것도 그래서다.

또 ‘새삶’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탈북 청소년과 여성들의 대모로서 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멘토링과 장학사업을 통해 남한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탈북민 후배들에게 등대가 되어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Q. 대한민국에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들이 요즘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계획한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이 둘에 연로한 어머니까지 모시고 탈북한 40대 후반의 여성 가장도 해낸 일입니다.

지금 약국을 운영하면서 정부에서 지원받았던 탈북 정착금보다 많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납세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해가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이런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신 대한민국 정부와 삼육대학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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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36℃] 신학과 출신 독학파 테너, 팝페라 스타가 되다

[열정 36℃] (5) 팝페라 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 이벼리(신학과 07학번) 동문
JTBC <팬텀싱어> 시즌1 우승해 데뷔
대학시절 ‘U2CAN’으로 성악 입문…독학으로 실력 키워
“내 선택 믿었다. 그리고 최선 다했다”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2016년 11월, JTBC에서 남성 팝페라 그룹을 결성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가 첫 방송됐다. 당시 ‘이벼리’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무대에 올랐다. 이 청년은 “영혼으로 노래하겠습니다”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그에게 관심을 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현장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마추어답지 않은 가창력과 진정성 있는 울림이 프로듀서들은 물론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까지 감동시켰다. 방송 직후 그의 이름은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달궜다.

이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은 우리 대학 신학과 07학번 이벼리 동문이다. 그는 이후 몇 달간 이어진 치열한 서바이벌 과정을 거친 끝에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이하 포디콰) 내에선 유일한 비성악인 출신이었다.

그를 다시 떠올린 건 얼마 전 팬텀싱어가 시즌3로 다시 돌아와서였다. 첫 시즌 우승팀인 포디콰의 성공이 없었다면 시즌3까지 나올 수 없었을 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 우승 후 3년이 지났지만, 포디콰는 방송 때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며 국내 크로스오버 최정상 그룹으로 우뚝 섰다.

전국 투어 콘서트는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방송활동도 활발히 하며 벌써 3집까지 앨범을 냈다. 일본에서 클래식 음반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짝인기를 끌다 잊혀져버린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들과는 달랐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개포동 연습실에서 이벼리 동문과 마주앉았다.

노래하는 사람

Q. 코로나19가 음악인의 일상도 바꿔놓았나.

“공연이 많이 줄었다. 예전 같았으면 꽉 찬 스케줄로 일주일이 정말 바빴을 거다. 어쩌다 쉬는 날이 생기면 몸이 버틸 수 있도록 정말 필사적으로 쉬고 그랬는데. 요즘은 지금 있는 연습실에 많이 오고 있다.”

Q. 얼마 전 포디콰 멤버들과 비대면 공연을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우리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고, 무대에 서는 사람이다. 우리 노래를 기다려주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온라인 공연을 해보자고 했다. 마침 세종문화회관이 ‘힘내라 콘서트’라는 무관중 공연을 기획해서 참여했다. 네이버TV로 관객들을 만났는데, 많이 좋아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Q. 팬텀싱어 시즌3가 얼마 전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첫 시즌 우승자로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본 사람은 트라우마 비슷한 게 있다. 치열한 서바이벌 과정에서 붙고 떨어지고 하는 장면에 감정이입이 일반 시청자들보다 훨씬 심하게 된다. 프로그램 자체를 즐기면서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응원은 하지만, 막 집중해서 보려고 하진 않는다. 내 정신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웃음)”

Q. 팬텀싱어는 애초 기획 단계부터 우려가 컸다. 이미 서바이벌형 오디션 음악 예능이 식상해질 대로 식상해진 시기였고, 마이너 장르인 크로스오버를 전면에 내세웠다. 윤종신 프로듀서조차 “조기 종영만 안 됐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성공을 거뒀고, 시즌3까지 나올 정도로 롱런하고 있다. 그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크로스오버라는 장르 혹은 4중창이라는 포맷 자체가 사람들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간 게 아닐까. 대중음악을 소재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계속 있었다. 그런데 클래시컬한 보컬리스트를 데려다 경쟁을 시키고, 그것도 제대로 잘 만들어서 보여주니까 화제가 된 거다.

또 우리나라에 클래식 음악을 잘하는 인재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클래식은 관객층이 두텁지 않고 시장이 작아서 다 흡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해외로 나가는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거다. 당장 독일이나 이탈리아만 가도 한국 유학생들이 차고 넘친다.

이렇게 일평생을 음악에 쏟아붓고 있었던 사람들이 설 곳이 없었는데,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나온 거다. 내공 있는 사람들이 방송에 쏟아져 나왔고, 실력이 발휘되면서 일반 대중들이 ‘우와’하고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다.“

Q. 포디콰가 K팝 일색이던 국내 대중음악계에 다변화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포디콰 이후 크로스오버가 하나의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한듯하다. 그런 면에서 책임감 같은 건 없나.

“우리 이전에도 크로스오버 음악을 시도한 선배들이 많았다.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임감을 느끼거나, 우리가 시장을 선도한다거나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할 뿐이다.”

▲ 팝페라 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벼리 동문. 사진=아트앤아티스트 네이버 포스트

‘자네 성악 한번 해보지 않겠나’

이벼리 동문은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갖고 우리 대학 신학과에 입학했다.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과 공부에 충실했고, 학내에서 열리는 강연이나 세미나, 비교과 프로그램에 종종 참여했다. 필리핀에 1년간 선교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대학시절을 “많은 것을 배우며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참여했던 프로그램 중 ‘U2CAN’도 있었다. 우리 대학 인성교육원이 비전공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음악 레슨 프로그램. 그게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Q. U2CAN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캠퍼스를 걸어 다니다 우연히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신청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 바이올린이 정말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악기가 필요했다. 물론 학교에서 무료로 대여해줬는데, 뭔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어서 어떻게든 구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가난한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나. 그래서 성악을 했다. (웃음)”

Q. 입문자로서 어떤 도움을 받았나.

“바리톤 이재웅 선생님께 배웠다. 자연스럽고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분이셨다. 덕분에 뻔한 발성이 아니라 경계에 있는 듯한 나만의 발성과 소리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깨우치는 순간이 왔다.”

Q. 처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나.

“맨 처음 가면 호흡을 먼저 배운다. 중학교 때 3년 정도 플룻을 해서 호흡이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플룻이 성악보다 호흡을 더 쓴다. 선생님은 그걸 모르니까 ‘이 친구 호흡이 왜 이렇게 좋지’ 하신 거다. 나중에는 소리도 짱짱하게 나오니까 한동안 ‘자네 성악 한번 해보지 않겠나’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나는 ‘저의 길이 있습니다’하고, 선생님은 ‘알~았~네~’ 하시고. (웃음)

사실 재능은 잘 모르겠고, 애정이 있는 만큼 깨우치고 배우는 속도가 판이하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천재가 아닌 이상 시간을 때운다는 마음으로 하면 그만큼 더딘 거고.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고 열정이 있으면 확실히 빨라진다.“

Q. 졸업 후에는 U2CAN을 하지 못했을 텐데.

“U2CAN 덕분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소리의 기본을 배웠다. 졸업 후에는 거의 독학이었다. 유튜브를 봤다. 동영상에 나오는 위대한 싱어들의 발성, 그리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디어와 힌트를 얻고 스스로 적용했다. 그 와중에 나만의 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정말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 쏟았다. 옥탑방에 살아서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었다. 온종일, 사계절 내내, 해가 바뀌어도, 계속 또 계속, 연습 또 연습이었다.”

Q. 독학을 고집한 이유는.

“물론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었다. 얼마나 받고 싶었겠나. 그런데 레슨비가 부담이어서 독학을 했다. 그래도 너무나 즐거웠다.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팬텀싱어

그즈음 신학과 동기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목사 혹은 전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래에 푹 빠진 이 동문은 본격적으로 예능인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무대가 없었다. 비전공자에, 작품 경력도 없고, 외모까지 평범했던 그에게는 오디션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지원서를 내는 족족 떨어졌다. 비전공자의 한계였을까. 그러다 우연히 팬텀싱어 지원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었는데, 덜컥 합격해 방송까지 나가게 됐다.

Q. 어떤 가능성을 봤던 걸까.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일반인인데 노래를 곧 잘하니까. 신기하다, 한번 써보자, 기회를 줘보자, 이런 게 아니었을까. 딱하기도 하고. (웃음) 지원할 때는 우승은커녕 본방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전혀 안 했다. 오디션 기다리면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자기들끼리 ‘어, 교수님 오셨어요?’ 이러면서 다 알더라. ‘대단하다, 난 당연히 떨어지겠지’ 했는데 붙여주더라.”

Q. 첫 방송이 기억난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는데, 노래 듣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날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달궜고. ‘반전’을 예상했나.

“반전은 있을 거로 생각했다. 프로필에 써낸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프로듀서 분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거의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앞으로 수십 명을 심사했고, 뒤로도 또 있으니 다들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그런데 노래를 그렇게 해버리니까 나라도 놀랐을 것 같다. 그런 편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래 영상)

Q. 서바이벌 과정 중 언제쯤 본인에 대한 확신을 가졌나.

“솔직히 말하면 확신이 없었다. 그 과정이 너무 피로하고 힘들어서. ‘빨리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왜 안 떨어지지’, ‘오늘만 끝나면 좀 집에 가게 되지 않을까’ 이러면서 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올라갔다. 물론 그 와중에 죽어라고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그만큼 힘이 들었던 거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Q. 쟁쟁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우승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배려’다. 중반 이후부터 2명, 3명, 4명 이런 식으로 팀을 계속 꾸려나가면서 경합을 했다. 그런데 중창의 경우 누구 하나가 돋보이고 싶어서 욕심을 내면 전체적인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다. 그러면 꽹과리 같은 음악이 되고, 중창의 매력이 없어지는 거다. 그래서 멤버들 간에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포디콰는 다 그런 음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성적이 좋았다. 우리는 이제 뭘 해도 항상 4명이 같이 움직인다. 서로 배려하고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을 통해 가능했던 거다.“

▲ 포르테 디 콰트로 3집 발매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사진=아트앤아티스트 네이버 포스트

신학과 출신 테너

Q. 팬텀싱어 우승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포디콰가 3집까지 낼 거라고 예상을 했나.

“아니 전혀. 프로젝트 그룹이라서 우승 후 1년간 활동할 수 있도록 계약이 돼 있었다. 딱 1년 열심히 하고 내 삶으로 돌아가야지 생각했는데, 어느덧 3년이 지났다.”

Q. 같은 멤버 모두 성악을 전공했고,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혹시 본인도 신학이 아닌, 성악을 전공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전혀 없다.”

Q. 단 한 번도?

“물론 삶에서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가고, 노력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큼 의미 있고 감동적인 것은 없을 거다.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자기가 뭘 잘하는지 모르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거다. 나도 그랬다.

나는 오히려 조금 놨던 것 같다. 대학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했고, 그러면서 U2CAN을 만나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됐다. 나에게 온 현실을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대처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어깨에 힘을 빼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움켜쥐고 있을 때는 두려움뿐이었다.“

Q. 혹시 신앙이 있나.

“물론이다. 나에게 신앙은 ‘잘 박힌 못’ 같은 거다. 절대로 뽑히지도, 꺾이지도 않는, 흔들리지 않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한 친구 같은 거다. 살아가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절대 나를 쓰러지지 않게 하는 아주 강력한 원동력이다.”

Q. 결과적으로 성공을 했지만, 사실 하나하나의 선택들이 정말 무모해 보인다. 누구나 선택에 앞서 리스크를 고려하는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결코 그런 선택들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봐도 내 선택들이 어이가 없으니까. 돈 아끼자고 악기 대신 성악을 했고, 신학과를 나온 애가 음악을 하겠다고 했다. 아무 경력도 없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다. 그런데 나는 당시 그 선택을 믿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했다.

보통 선택이 결과와 직결된다고 생각해서 선택마저 주저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선택은 과정일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 너무나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기회에 맞설 힘이 생긴다.

선택 그 자체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고, 그것에만 집중하고, 그다음 실행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냥 선택에서 끝나버린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 분명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Q. 어떤 음악인이 되고 싶나.

“‘요나스 카우프만’이라는 테너 가수가 있다. 전 세계 오페라 극장 캐스팅 1순위고, 팬들의 인기투표에서도 부동의 1위다. 그런데 발성이 너무나 유니크해서 호불호가 굉장히 갈린다. 기존의 전통적인 음색을 좋아하는 분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당한 혹평을 한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너무 좋더라.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이 있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해나가고 자기만의 것을 갈고 닦는 그런 모습.

음악을 하면서 여러 딜레마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나,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을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나를 갖다 맞춰야 하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내가 만들어내야 하나. 그런데 요나스 카우프만을 보면서 나다운 것이 결국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갇혀 있고 정형화되어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음악 장르가 그래서 그런지, 자꾸 스스로 갇히게 되더라. 클래식에 계속 나를 가두고 거기에 나를 맞추려고 하니 탈이 나는 것 같았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러니까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정리하면서 요나스 카우프만을 검색해 봤다. 그 역시 비전공자 출신의 늦깎이 성악가였다. 안정적인 삶을 살라는 아버지의 바람으로 수학과에 입학했다가 뒤늦게 성악으로 진로를 바꿨다. 경력 초기에는 발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한두 마디 노래하고 퇴장하는 단역 생활도 오래했다. 그렇게 밑바닥부터 올라가 21세기 최고의 스타 성악가로 발돋움했다. ‘비전공자 테너’ 이벼리가 롤모델로 삼은 것은 그의 삶 자체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리즈 연재]
[열정 36℃] (1)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2)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3)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4)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열정 36℃] (5) 신학과 출신 독학파 테너, 팝페라 스타가 되다
[열정 36℃] (6)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산다
[열정 36℃] (7) 뉴욕의 한국어교사…K-컬처의 중심에 서다
[열정 36℃] (8) “내 경쟁력은 ‘소신’…길게 보고 한우물 파겠다”

[꿀팁연구소] 코로나블루 극복법_상담심리학과 정성진 교수

삼육대학교 교수님들이 ‘생활 속 꿀팁’을 알려드립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로 인한 우울감을 표현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학생들을 위해 상담심리학과 정성진 교수님을 만나 ‘코로나블루 극복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Q. 코로나블루의 대표적인 증상은?
코로나블루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코로나’와 우울하다는 뜻의 ‘블루’의 합성어인데, 감염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스트레스가 증폭되어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불안과 우울은 누구나 경험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니 답답함이나 기분저하를 코로나블루라고 확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코로나블루는 정도가 심한 상태이니까요. 대표적인 증상은 두통, 소화불량, 불면, 어지러움, 집중력 부족, 무기력, 호흡곤란 등입니다.

사례로 알아보는 코로나블루 극복법

Q.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작은 증상에도 ‘코로나가 아닐까’ 걱정하는 두려움이 커요.
심하지 않다면 불안은 위험에 주의하도록 만드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생활방역 지침을 잘 따르고 있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잠을 충분히 잔다면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믿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면 불안을 자주 경험하는 편일 수 있으니 학생상담센터를 통해 전화상담을 받아보면 좋겠습니다. (학생상담센터 02-3399-3242)

Q.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생활도 불규칙해지고 무기력해졌어요.
매일이 공휴일 같은 느낌이 들기 쉽습니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하면 매사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악순환을 깨려면 우선 수면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가급적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9시 이전에 기상하려고 노력해보세요. 그리고 낮 시간에는 온라인수업과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독서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의욕을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Q. 감염병 관련 정보와 뉴스를 하루 종일 보고 있어요.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건강 관련 정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너무 정보에 집착하거나 가짜뉴스 등에 현혹되면 오히려 불안이 커지게 됩니다.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을 신뢰하고, 하루에 한두 번 정도만 공중파 뉴스를 통해 믿을만한 정보를 얻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을 계발하는 데 활용하려고 노력해보세요.

Q. 집에만 있으니까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서 걱정이에요.
2~4학년 학생들은 서로 알고 있으니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는 못하지만 전화나 화상채팅 등을 통해 우정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손편지나 전자우편을 보내거나, 친구들끼리 재미있는 챌린지를 온라인에서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신입생들은 인생설계와 진로를 같이 수강하는 친구들부터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에 있다 보면 가족과의 갈등이 증가할 수 있는데,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대화를 이어가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학습이나 취업에서 뒤떨어질까봐 불안해요.
강의실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온라인 수업도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강의를 계속 재생할 수 있으니 복습효과가 좋을 것이고, 잘 정리된 학습자료도 제공 받을 테니까요. 교수와 친구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학습효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취업 준비 문제는 모든 대학생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니 나만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늘어난 자유시간을 활용하여 자격증이나 어학 공부에 시간을 더 투자해보면 좋겠습니다. 또한 다양한 도움을 주는 대학일자리본부에 연락해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대학일자리본부 02-3399-3619)

Q. 상담심리학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상담심리학과는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주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과입니다. 상담심리학과 공부는 매일의 삶과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상담심리학 전공은 융·복합이 계속 이뤄지기 때문에 미래 전망이 밝습니다. 상담심리학과는 훈훈한 인간관계 덕분에 행복합니다. 관심 있는 학생들은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신청하세요~

Q. 학생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코로나19 사태는 위험요소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코로나블루가 다가오려고 할 때 열정의 빨간색을 섞어 화려한 보라색을 만들고, 온정의 노란색을 섞어 푸르른 초록색을 만들어봅시다. 건강한 모습으로 속히 교정에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무료 전문가 전화상담]
한국상담학회 1522-8872
한국상담심리학회 070-5067-2619
정신건강전화 1577-0199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독서란 ‘스승’이에요. 살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리고 방향을 설정할 때,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비롯된 가치관이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이정표가 되어주는 거죠. 그리고 매 순간의 선택이 모여서 지금의 나와 내 삶의 양식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죠. 그런 면에서 독서란 제게 스승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청춘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요?

“제가 91학번인데요. 당시에는 동아리나 학과 선배들이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하는 책’ 이런 리스트를 출력해서 나눠주는 문화가 있었어요. 리스트에는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이런 책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학과 선배들은 <딥스>, <한 아이> 이런 유아교육에서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을 소개해줬죠.

리스트를 쭉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 있었는데, 에리히 프롬<사랑의 기술>이었어요. 책 제목이 좀 그렇죠?(웃음) 대학생이 됐으니 이제 남자친구 사귀는 법 좀 배우고, 데이트하는 법, 연애 잘하는 법 알려주는 책인가 싶어서 서점에 가서 제일 먼저 샀어요. 그런데 제 기대와는 달리 너무 어려운 책이었어요. 수준 높은 철학 서적이었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어서 한 3분의 1 정도 읽다가 그냥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아 놨어요.

그러다 나중에 대학을 거의 졸업할 때쯤 우연히 다시 꺼내 읽게 됐어요. 대학 생활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연애에 실패도 해보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 어려운 문장들이 무슨 말인지 다 이해가 되고, 가슴을 파고들더라고요. 그 이후로 밑줄을 그으면서 정말 여러 번 정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란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나의 태도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내 기쁨, 내 지식, 내 유머, 내 생명력을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이 참 와 닿았어요.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 있어서는 저에게 첫 스승이 되어준 거죠.

또 선배들이 줬던 리스트에서 대하소설은 학기 중에는 읽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2학년 여름방학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읽었어요.  <아리랑> <태백산맥> <삼국지> 이런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계에 푹 빠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Q. 최근에는 어떤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최근에는 책보다는 보고서를 많이 읽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회적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문을 구독해서 매일 아침 보고 있어요. 학부 때 은사님께서 신문읽기를 강조하셨어요. 전문적인 교육학자가 되려면 사회적 눈을 갖고 어떤 이슈에 대해 교육적으로 진단하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요. 그때부터 신문읽기에 관심을 갖게 됐죠.

저는 문화나 사회면 기사, 서평, 칼럼을 좋아해요. 그래서 신문을 맨 뒷장부터 거꾸로 읽어요. 서평을 보면서 관심이 가는 책은 찾아서 읽기도 하고요. 특히 칼럼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두고도 필자가 어떤 전문 분야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고 제안하는 해결책이 다르잖아요. 그렇게 신문을 보면서 통찰력을 얻고,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각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물론 수업에도 많이 활용하고요.”

Q. 올해 초부터 우리 대학 교육혁신단 단장을 맡고 계십니다. 교육혁신단은 어떤 기관인가요?

“교육혁신단은 우리 대학에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수학습개발센터, 비교과통합센터, 데이터기반질관리센터, 디지털러닝센터 크게 4개 센터로 구성되어 있어요. 센터별로 여러 연구교수와 석·박사연구원, 행정직원이 상주하면서 다양한 교수-학습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먼저 ‘교수학습개발센터’는 학생들의 학습과 교수님들의 교수법을 좀 더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돕는 부서예요. ‘비교과통합센터’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센터예요. 그리고 ‘데이터기반질관리센터’는 실제 질 좋은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러닝센터는 교육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누구나 새로운 분야의 일을 맡게 되면,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잖아요. 그럴 때 책부터 잡는 사람이 있고, 잘 알만한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고요. 교수님은 주로 어떤 방법으로 스터디를 하시는 편인가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죠. 관련 분야의 책을 읽기도 하고, 컨퍼런스나 학회에 참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다른 대학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양한 케이스를 벤치마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결국 제가 일할 곳의 구성원과 함께 협력하고 협의해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뜻이 맞는 분들과 소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는 방식을 선호해요. 소그룹에서는 어떤 책을 읽기도 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모아서 토론과 토의를 하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어떤 변화나 개혁이라는 것은 결국 나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과 함께해야 하는 거잖아요. 협력자가 필요하고, 함께 이 일을 고민하면서 과정을 공유하고, 한 방향으로 가주는 동역자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최근 교육혁신단장을 맡고 나서 몇몇 교수님들과 삼육대학교의 교육이념과 역사를 연구하는 소모임을 꾸렸어요. 교육이념은 명문화된 개념은 있지만, 그 깊은 뜻이 무엇일까 함께 공부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또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이정표를 찾는 과정이죠. 조금 거창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모임을 통해 교육혁신의 방향성을 함께 찾아가고 있어요.”

Q. 짧은 기간이지만, 방향성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으셨을 것 같은데요. 조금 이야기해주신다면.

“여러 혁신대학의 케이스 스터디를 하면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Arizona State University)과 서던어드벤티스트대학(Southern Adventist University)의 사례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애리조나주립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혁신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죠. 서던어드벤티스트대는 우리 대학과 자매대학이면서 규모나 교육이념, 커리큘럼이 유사해서 참고할 부분이 많았어요.

두 대학의 가장 큰 공통점은 대학의 설립 이념이나 철학을 모든 교육과 행정에 효과적으로 녹여내고 있다는 것이에요. 구성원 누구에게 물어봐도 교육이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이념을 본인이 진행하는 수업이나, 행정 업무에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모든 구성원이 같은 비전을 갖고 한 방향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거예요.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혁신대학들의 사례를 보면서, ‘가장 삼육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게 됐어요.

가장 우리다운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정체성이나 가치들을 다시 한번 깊이 연구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교육과 행정에 반영해서 정합성 있는, 조화롭고 통일감 있는 교육을 운영할 것인가, 이런 것에 관심을 두고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교육혁신단을 운영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고, 아직 탐색해 가는 과정입니다.”

Q. 교육혁신단은 우리 대학의 디지털교육을 총괄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최근 ‘포스트 코로나’ 논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은 사회 전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재난 이후 대학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대학교육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실존주의 교육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나와 너>에서 “교육은 ‘나와 너’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지요. 인격과 인격이 만나 서로가 깊이 있게 융화하고 조화하면서 하나 되고, 인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그 자체가 교육이에요. 그렇기에 어떤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대면 교육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대학 현장에서 디지털은 ‘대체재’가 아닌 좋은 ‘보완재’로서 활용될 거라고 봐요. 예컨대 교육혁신단은 2017년부터 ‘MVP 혁신교수법’이라는 교육모형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전 교과목으로 확산하고 있어요. 이론 강의는 온라인으로 예습하고, 강의실에서는 함께 토의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을 기반으로 하는 교수법인데, 이 교수법은 디지털 활용을 전제로 합니다.

또한 교육혁신단은 이번 온라인 개강 이후 2+1 교육모형을 개발했어요. 학생들이 LMS에 업로드된 강의를 2시간 동안 듣고, 이후 1시간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접속해 교수와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토의하고, 발표하는 방식이에요. 물론 대면수업만큼은 아니지만, 온라인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소통과 상호작용이 이뤄지면서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어요.

저 역시 앞으로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분명 가속화될 것이라고 봐요.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모든 대면 교육을 대체하진 못할 겁니다. ‘만남의 교육’과 ‘디지털 교육’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 함께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김정미 교수의 ‘추천 책’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저, 차경아 역, 까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소유적 관점에서 볼 것인지, 존재적 관점에서 볼 것인지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는 책이에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간관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은 책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상 세계에 관한 입문서라고도 할 수 있는 책이에요.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존 가트맨, 해냄출판사

아이도 없는데 무슨 이런 책을 추천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꼭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에 감정적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잘 이끌어주고 코칭해줄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에요. 지금까지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공감의 뿌리>
메리 고든, 문희경 역, 샨티

캐나다의 유치원 교사였던 저자가 지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공감의 뿌리’라는 심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갓난아이를 3주에 한 번씩 학교에 데려와서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게 했어요. 학생들에게는 말 못하는 아기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지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게 하고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아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 10년 동안 학교 내 집단 따돌림이 90%가량 감소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인간성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죠. 공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어떻게 내 마음을 다른 사람과 깊이 섞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요. 공감에 대한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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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멍에’ 함께 나눠 질 때, ‘멍에’는 곧 ‘명예’ 될 것”

‘코로나19 위기대응 본부 ‘ 조직·운영, 실시간 모니터링 학생 건강 최우선
‘4차 산업혁명 시대’ 연계전공 준비, ‘수-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운영
섬기는 마음으로 학교 발전에 최선, 다양한 채널로 투명한 정책 결정

예년 같았으면 새내기 웃음소리와 저마다의 미래를 향해 가는 발걸음으로 가득했을 삼육대학교 교정이었겠지만, 올해는 고즈넉했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가 메마른 교정을 적시고, 빈 강의실의 창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코로나19’로 교육 역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강이 이뤄진 가운데, 삼육대는 김일목 총장 시대를 맞이했다.

김 총장은 3월 16일에 온라인 취임식을 열어 대학 구성원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학령인구 감소, 점점 어려워지는 대학 재정 상황, 학생들의 취업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혁신 과제, 여기에 팬데믹 상황 대처까지. 김 총장의 어깨에 걸려 있는 ‘멍에’가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하지만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멍에’를 함께 나눠 질 때, ‘멍에’는 곧 ‘명예’가 될 것”이라며 온화한 미소로 자신 있게 말했다. 본지는 김 총장에게 ‘코로나19’ 이후의 대학 교육 변화에 관해 묻고, 총장 재임 기간 동안 삼육대에서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들어봤다.

– 그간 삼육대는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해 왔나.
“삼육대는 학생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방역과 전체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지난 2월 3일 김남정 부총장을 본부장으로 전 유관부서가 참여하는 ‘코로나19 위기대응 본부’를 조직해 실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고, 캠퍼스 전체 시설에 방역을 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입국 시 공항 픽업부터 교내 특별시설 2주 보호 등 선제적으로 조치했다. 수업 부분에서는 ‘원격수업 TFT(태스크 포스팀)’를 구성해 수업 지원과 서버 증설로 서버 다운로드 사태와 여타 사고들을 대비했다. 지금은 ‘강의 5부제’를 시행 중이다.

이런 방식에 익숙지 않은 교수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데에도 투자했다. 원격 교육 질 관리를 위해 직원과 이러닝 지원 조교들은 e-class에 업로드된 1만여 건의 강의 영상을 전수 모니터링했고,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교육 만족도를 확인한 뒤 서비스에 반영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대학 경영자로서 예측하는 ‘대학의 미래’는 어떤가.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범 교육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수업결손과 교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혼란과 위기가 그간 답보상태였던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빠르게 당겨올 거라는 전망도 쏟아진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을 가능케 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온라인 교육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온라인 교육에 제한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교육 당국의 방침도 이번 사태를 통해 많이 달라질 거라고 본다.

그렇다고 디지털 교육이 현장 교육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자신의 저서 ‘나와 너‘, ‘만남의 교육’ 등에서 말했듯이, 진정한 교육은 나와 너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뤄진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과 성장 배경, 관점을 가진 다양한 사람을 만나 관찰하고, 상호학습하면서 자란다. 청각, 시각, 후각 단서들을 교환하고 일대일로 소통할 때 더 깊은 학습이 이뤄졌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새로운 기술도 대면을 통한 학습을 근본적으로 대체하진 못했다.”

– 그렇다면 온라인 교육은 대안이 못되나?
”대학 현장에서 디지털은 대면 강의의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다. 삼육대는 2017년부터 ‘MVP 혁신교수법’이라는 교육모형으로 강의를 온라인으로 예습하고, 실제 강의실에는 토론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진행하는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을 운영 중이다. 또한 삼육대 디지털 러닝센터는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물리치료 임상실습을 할 수 있는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해 물리치료학과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SU) 같은 온라인 교육 특화 대학교의 사례를 한국대학신문 기사로 접하기도 하고, UCN 콘퍼런스에 참여하면서 참고했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대면 접촉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과 온라인 교육이 결합할 때 가장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교육혁신’이 대학가 화두다. 임기 중 특별한 방안이 있나.
”앞서 말했듯 삼육대는 지난 2017년부터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 기반으로 ‘MVP 혁신교수법’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운영 중이다. 수업 전-중-후 학습자를 밀착 관리로 학습효과를 극대화한 교육모형이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평가원이 실시한 대학기관평가인증에서 ‘우수대학’ 사례로 선정됐다. 지난 학기 기준으로 18개 학과 49명의 교수가 총 69개 교과목에 이를 적용해 운영했다.

아울러 ‘혁신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교육, 연구, 진로지도, 행정, 학과 전공 등 대학의 모든 분야에서 상시평가를 할 계획이다. 대학 경쟁력을 갖추려면 시대 요구와 흐름을 분석·판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관련 검증 부서도 별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현재 직면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스템은 신입생 역량 분석 및 강화, 학부교육의 질 관리, 졸업생 조사를 통한 학부 교육성과 분석도 가능하다. 즉, 입학에서부터 중도 탈락, 졸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성과분석과 예측이 가능해 학생들이 원하는 맞춤 교육을 완성하고, 교수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유도할 수 있다. 삼육대는 이렇게 얻은 분석 결과를 활용해 교육과정 선진화를 꾀하고, 궁극적으로 학생 창업률·취업률이 향상되도록 할 계획이다.”

– 취임사에서 현재를 ‘일모도원(日暮途遠)’에 비유했다. 대학이 마주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무는 상황’이다. 모든 사안이 급하지만, 재정위기가 가장 심각하다. 학령인구 감소와 12년째 동결된 등록금, 2023년 입학금 전면 폐지까지 각 대학 재정난은 한계치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의 재정은 등록금과 발전기금, 법인전입금, 국고 지원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정부는 등록금을 교육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했다. 건축이나 시설 보완 및 기타 사업은 등록금 이외의 자금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감축으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운영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번 총장 임기 중 ‘발전기금 확충’을 통해 재정적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취임 직후 실무부서와 긴밀하게 협의해 모금 목표액을 정했고, 기금 유치 및 홍보 전략을 수립했다. 삼육대는 연간 30억원 정도 발전기금이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효율적 경영이 가능하다. 이에 향후 4년 임기 동안 120억원을 모금 목표액으로 정했다. 최근 미주에 설립인가를 받은 삼육대 국제재단(가칭) 조직을 정비해 연내 출범하고, 미주지역에서도 기금 유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최근에도 학교를 사랑하는 전·현직 교수들과 퇴직한 교직원, 유학생들까지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어서 학교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 삼육대 발전을 위해 이후 교수와 교직원 역량 강화는 어떻게 할 계획인지.
”재정이 허락하는 한 교수들을 위한 최첨단 교육시설과 최선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획처 산하에 국책사업 및 연구사업 유치기획단을 신설해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대학의 혁신은 ‘대학 사무혁신’에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직무분석, 목표관리, 인사고과 3대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용해나갈 것이다.

– ‘사람을 참되게, 세상을 환하게’라는 슬로건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삼육대는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개교한 이래 지난 114년간 지(智)·영(靈)·체(體) 전인교육을 바탕으로 ‘진리와 사랑의 봉사자’를 양성해왔다.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참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우리 대학의 설립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지난해 본교 학생이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맹학교 졸업생들에게 ‘손으로 보는 졸업사진’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열어 주목받았다. 차가운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따뜻하게 해주는지 보여준 사례다. 우리 대학은 학생 개인이 진행한 이 프로젝트를 지난 학기부터 정규교과목으로 개발·편성해 졸업필수 교과목인 ‘지역 사회공헌’에 ‘3D 프린팅 재능기부’로 개설했다. 이는 삼육대가 지향하는 교육과 목적이 같다.“

– 학교와 학생의 노력과는 별개로 취업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대학의 핵심 역할은 탁월한 교육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그것을 가지고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창업’과 ‘창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생전에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한다’라고 말했다. 시대는 극대화된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데, 여전히 문과·이과 칸막이 교육과 주입식 수업이 계속되고, 대학에서도 ‘해답형’이 아닌 ‘정답형’ 인간을 배출하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MIT는 약 3만 개의 동문 기업이 4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연간 매출이 약 2100조원 규모다(2015년 기준). 또한 스탠퍼드대학은 4만여 개의 동문 기업이 5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이들 기업의 연평균 총매출이 약 3000조 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대학은 가치 창출의 새로운 시대정신의 구현을 요구받는다.

대학도 지역 사회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역발전의 어젠다를 제공하고 혁신 역량을 제고하는 싱크탱크가 돼야 한다. 대학의 기술과 연구가 지역의 발전으로, 그리고 지역의 발전이 민족의 발전으로, 나아가 세계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고, 삼육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을 바꿔온 범위와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우리네 삶을 변화시킬 전망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ICT 같은 특정 산업 분야, 특정 직업, 그리고 특정인을 중심으로만 전개되진 않을 것이다. 모든 대학이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대학은 ‘수-이노베이션 아카데미(SU-Innovation Academy)’라는 4차 산업혁명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경영정보학과 컴퓨터공학부, 컴퓨터·메카트로닉스공학부, 아트앤디자인학과를 융합해 신설한 연계전공이다. △ICT 융합 비즈니스 △지능형 빅데이터 처리 △ICT 서비스디자인 △인공지능 등 4개 트랙으로 강의 중이다.

무엇보다 수-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특정 학과, 특정 전공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정보기술 및 인공지능 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경영, 인문, 사회과학, 보건의료, 문화예술 등 모든 전공자가 참여할 수 있다. ICT 기술을 능동적으로 습득해 자신의 전공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을 위해서다. 비전공자를 위한 별도의 프리스쿨(Pre-School) 과정을 마련해 정규과정의 기초 이론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우리 대학은 정보기술 및 인공지능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정보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람과 기술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진취적이고도 도전적인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여기에 삼육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적 감각 증진을 위해 유수의 해외대학교와 여러 MOU를 준비하고 있다.“

– 그렇다면 삼육대가 자랑하는 전공분야는 무엇이고, 중점 분야가 있다면?
”삼육대는 전통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강하다. 약학과,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보건관리학과, 상담심리학과가 경쟁력을 갖고 있고, 이 5개 학과가 참여하는 ‘중독 연계전공’을 개설해 중독 전문가를 양성해왔다. 지난 5년간 교육부의 수도권대학특성화(CK-II)사업으로 86억 원의 국고 지원을 받아 관련 교육과정을 고도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임기 중에는 미래 사회에 대비한 학과의 융복합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는 여러 지식과 기술이 전방위로 융합되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이 등장하고 있다. 오래전 만들어진 학과의 칸막이에 갇혀 있어서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학생들이 여러 학문 분야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융합적인 안목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학과구조개선 위원회’를 구성해 학과 융복합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이 소속된 학과를 넘어서 연계·융합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해 졸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공과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 앞으로 어떤 각오로 임기를 수행할 것인가.
”총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구성원의 집단 지성을 존중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 모든 구성원이 대학의 비전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 김일목 총장(오른쪽)과 최용섭 한국대학신문 발행인.

■ 김일목 총장은…
삼육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삼육대 대학원 신학과와 미국 앤드루스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신학박사(조직신학) 학위를 받았다. 김 총장은 1994년 삼육의명대 전임강사로 임용됐으며, 2000년부터 삼육대 신학과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그간 교목처장, 신학과장, 생활교육관장, 신학숙관장, 삼육대학교회 담임목사 등을 역임하며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김 총장의 임기는 2020년 3월 1일부터 4년이다.

<대담=최용섭 발행인 / 사진=한명섭 기자 / 정리=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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