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0일 한국방송회관 코바코홀. 말끔하게 단복을 차려입은 2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무대에 섰다. 근디스트로피, 담도폐쇄증,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등 희귀·난치성질환을 가진 환아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로 구성한 ‘희망의소리합창단’이다.
<가족; 우린 서로에게>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 행사에서 단원들은 ‘웃어요 치즈’ ‘행복넝쿨’ ‘말의 향기’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감동의 화음을 선사했다. 가슴 끝에 닿는 울림 깊은 노래에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병을 앓으면서도 꿋꿋하게 일어서 무대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떨지 어렴풋하게 가늠됐다.
단원들은 이 같은 연주회 참여를 통해 자존감과 사회성을 함양한다. 심리적 안정을 찾거나 가족관계가 더욱 긍정적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이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막이 내리고,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던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조명 꺼진 스테이지에서 남몰래 감정을 추스르며 눈시울을 붉힌 사람이 있다. 바로 이 단체의 음악코치로 봉사하는 최선주 교수(소프라노 / 삼육대 음악학과)다. 그는 2014년부터 ‘희망의소리합창단’과 동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사회 희귀질환 극복에 이바지한 공로로 질병관리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관련기사▷최선주 교수, 질병관리청장 표창…희귀난치성 환아 음악코치)
최 교수가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동료 음악인의 요청으로 재능기부 공연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를 후원하는 여러 사람을 만나 자신도 자원봉사 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2013년 삼성그룹 초청 공연 이후로는 아예 음악코치로 합류하며 꾸준히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있다.
언뜻 희귀·난치질환 아동을 음악으로 지도하는 일이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떤 점이 제일 어렵냐고 물으니 그는 그런 ‘뻔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많은 분이 그렇게 묻는데, 사실 그다지 힘든 점은 없어요. 단원들이 거부감 없이 친밀하게 잘 따라주기 때문에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요. 만약 성격상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뛰고, 놀고, 장난치는 것을 즐깁니다.”
희귀·난치질환자를 돕는 활동은 다른 봉사에 비해 어려울 것이라는 기자의 ‘무지한’ 편견과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는 곧 희귀·난치질환자를 대하고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이어졌다. 그간 가슴에 담담하게 담아왔던 진정성이 오롯이 전해져왔다.
“아직도 많은 분이 희귀·난치질환이 무엇인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혹은 모든 질환이 유전인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죠. 환자 수도 적다 보니 치료제 개발이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설혹 약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비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채 중도 포기하는 일도 잦아요.”
실제로 현장에서는 의사들도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이른바 ‘진단 방랑’을 경험하는 환자와 가족이 적잖다. 어렵사리 병명을 확인하더라도 힘겹고 외로운 투병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환자와 가족이 떠안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의견이다. 전 생애 동안 증상이 더욱 악화하지 않도록 치료를 지속하면서 몸은 물론, 마음까지 아프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더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 (오른쪽부터) 최선주 교수, 질병관리청 김현준 차장이 표창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희귀·난치질환은 대부분 유전적 요인이거나 선천적이라고 여기지만, 성인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일도 많다고. 누구나 잠재적 희귀·난치질환자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단원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의 시선이 희귀·난치질환자와 가족들로 향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진솔한 바람이다.
최선주 교수가 주변으로부터 칭송받는 까닭은 단순히 노래를 잘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환아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활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도한다. 특히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억눌려 있던 내면의 감정을 승화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전인적 존재로 여길 수 있도록 이끈다. 그가 합창단을 지휘하며 가장 신경 쓰는 점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는 ‘환자’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타깝다’라는 동정심이 앞서는 것 같다.”면서 “물론 동정도 또 하나의 관심이자 사랑의 다른 표현이 될 수 있지만, 희귀·난치질환을 앓는다고 노래를 할 수 없는 것도, 생각이나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음악회도 그랬다. 항상 주변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던 환아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지친 마음을 보듬고 응원해주는 주체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멜로디를 타고 관객들에게 성공적으로 다가갔다. 설명을 듣고 보니 ‘아빠 힘내세요’ ‘엄마의 향기’ ‘햇살 같은 나의 부모님’ 등 그날의 노래가 더 생생하게 반추됐다. 객석에 흘렀던 눈물이 그토록 뜨거웠던 이유를 한 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따뜻한 관심과 동정은 고맙지만, 환아들이 질환을 갖고 있다 해서 언제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가 아닌,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인격체로 자라길 바라는 최 교수의 심정이 읽혔다. 그 자신 역시 환아 한 명, 한 명이 주체적 삶을 살도록 격려하며 노래로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교수는 요즘 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다 자주 눈물을 쏟는다며 시선을 잠시 창밖으로 돌렸다. 웬일인지 해가 지날수록 울고 싶은 일이 많아지는 탓이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여러 문제로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질병이나 남이 모르는 아픔을 갖고 있는 것의 차이일 뿐, 누구나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고 여겨져요.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척 큰 용기가 필요하고, 어느 부분은 위로를 받아야 하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나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세상은 비록 거칠고 척박하지만, 용기를 내어 살았으면 좋겠어요. 겨우내 차갑게 얼었던 대지를 뚫고 새로이 돋아나는 저 새싹처럼요.”
그는 한 걸음 더 들어갔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혹 삶의 무게에 버거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이 주변에 없는지 둘러봤으면 좋겠네요. 누구나 남들은 알지 못하는 아픔과 상처를 겪으며 살아가건만, 마음 놓고 털어놓거나 도움을 호소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고 꼭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을 가슴에 키워갔으면 좋겠어요.”
희귀·난치성질환 환아들과 목소리를 모아 ‘희망의 소리’를 빚어가는 최선주 교수가 전하는 또 다른 ‘희망의 소리’였다. 아! 그러고 보니 계절은 벌써 봄이구나.
▲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선발된 이민희(왼쪽) 학생과 김일목 총장이 장학증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 이민희(21학번) 학생이 제21회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로써 삼육대는 지난 19회, 20회에 이어 올해까지 3년 연속 대통령과학장학생을 배출하게 됐다.
대통령과학장학생은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풍부한 과학기술 분야 최우수 학생을 발굴·육성 지원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의 핵심 과학자군을 양성하는 장학제도다. 대통령 이름으로 장학증서를 주는 만큼 국내 최고 권위의 장학금으로 손꼽힌다.
장학생은 학업성적과 과학활동, 성장계획, 봉사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심층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졸업 때까지 등록금 전액과 학기당 250만원의 학업장려비를 지원받는다.
올해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민희 학생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 코로나19가 터지자, 질병과 백신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꿈을 갖고 지난 2021년 삼육대 화학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관심 분야는 ‘면역학’이었다. 재학 중 교내 학술 동아리에서 논문 스터디를 하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코로나 백신과 심근염의 상관관계를 밝힌 포스터 논문을 작성해 국제학술대회 ‘ICSU 2021’ 후속세대 세션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백신의 종류와 기전, 부작용 등 실태를 정확하게 알린 논문으로 주목받았다.
면역학 공부를 심화하면서 ‘엑소좀(Exosome)’에 흥미를 갖게 됐다. 엑소좀은 세포에서 유래한 나노 단위 크기의 소포로, 세포 간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차세대 약물 전달체로 주목받고 있다. 교내 생화학실험실에 들어간 그는 엑소좀을 통해 세포에 약물을 직접적으로 표적화(targeting)하는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을 연구하고 있다.
이민희 학생의 꿈은 의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과학자로서 목표는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고통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이 성취된다면 제 성과를 단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 널리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일문일답.
─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바이러스로 인해 매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증하는 뉴스를 보면서 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처음으로 질병을 연구하고 백신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됐다.
삼육대 입학 후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여러 교수님과 선배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코로나 백신과 심근염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포스터 논문(Study on Relationship between COVID 19 Vaccin and Myocarditis)을 작성해 국제학술대회 ‘ICSU 2021’에서 발표할 기회도 얻었다.”
─ 논문은 어떤 내용이었나.
“당시는 코로나 백신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낮은 신뢰성과 부작용으로 접종 거부자가 많았던 때였다. 하지만 이는 백신이 인체 내에서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알리고자 리뷰 논문을 작성했다. 접종자들 사이에서 심근염 환자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었는데,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기에 부작용에 관한 메커니즘도 함께 연구했다.
이 논문은 비전공자에게는 백신의 종류와 기전 부작용 등 실태를 정확하게 알리고, 연구자에게는 백신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큰 노력을 기울인 논문을 사람들에게 발표할 때 학문적 즐거움을 느꼈다. 이 소중한 경험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으면 했다. 학술제가 끝난 후에도 면역학에 관심을 가지며 학습을 이어갔고, 학술 동아리에서 두 편의 면역학 포스터 논문을 더 발표하기도 했다.”
─ 최근에는 어떤 연구 활동을 하고 있나.
“면역학을 공부하면서 ‘엑소좀(Exosome)’에 관해 알게 됐다. 엑소좀은 세포에서 유래한 나노 단위 크기의 소포로, 세포 간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백신처럼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세포가 다른 세포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엑소좀을 활용해 안전한 약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교내 생화학실험실에 들어가 엑소좀을 통해 세포의 타입 변화를 알아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 남은 학부 기간 엑소좀을 이용한 약물 전달에 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실험에서 성과를 내 위암에 특화된 안전한 치료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목표다.”
─ 과학 활동을 하면서 고민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사람이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한계를 짓고 있던 때가 있었다.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 겨울, 인턴 생활을 했던 실험실 교수님과 면담했다. 암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이게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과학자는 포기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면서, 과거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소아마비가 과학의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됐다고 하셨다.
그날 새로운 꿈이 생겼다. 지금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질병들이 언젠가는 모두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그것이 내 연구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는 꿈이었다. 이전의 나처럼 암은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치료법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
─ 마지막으로 대통령과학장학생에 선발된 소감은.
“천재환(19회 장학생), 전은선(20회) 선배 등 앞선 사례가 없었다면 도전 자체를 망설였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장학생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물론 대통령과학장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원 과정에서 준비하며 고민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다짐을 이루기 위해 더욱 정진하는 과학자가 되겠다.”
대지진으로 이재민이 된 튀르키예 유학생이 삼육대 한국어학당에 초청돼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학생은 고향이 복구되면 그곳에 한국문화센터를 열고 싶다면서 삼육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도움을 준 모든 이들을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튀르키예 앙카라대 한국어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투체 에센(Tugce Esen·19) 학생은 지난해 초 대학 첫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아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 하타이주(州)를 찾았다. 그러던 2월 6일 새벽, 규모 7.8의 초강력 지진이 이 지역을 정면으로 덮쳤다. 다음날엔 규모 7.7의 여진까지 이어졌다. 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었다.
자연재해의 위력에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모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도로에는 콘크리트 더미가 넘쳐흘렀다. 가족들이 살고 있던 아파트도 저층부가 심각하게 파손됐지만, 갈 곳이 없어 임시로 수리 후 불안에 떨며 지내야 했다. 문을 연 상점이 없어 기본적인 물자는커녕, 깨끗한 물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몇 주 후 개강했지만, 투체는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공부가 손에 잡힐 리 없었다. 학업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얻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앙카라대 유은미 교수는 공동연구과제를 수행하던 삼육대 한국어학당 이승연(글로벌한국학과 교수) 센터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센터장은 학교 당국과 협의해 투체를 6개월(가을·겨울학기) 동안 한국어학당에 초청하기로 했다. 유학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어학당 등록금 300만원도 전액 면제해 줬다.
이 센터장은 “재난 현장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문학과 학생으로서 더 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학생 개인은 물론 가족과 지역사회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투체는 “한국 유학은 튀르키예에서 한국어문학을 공부하는 모든 학생의 꿈이다”며 “학업을 그만두려고까지 했던 상황에서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완전한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가족들 역시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투체가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응원하고 지지하겠다고 용기를 줬다.
삼육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한 투체가 지원받은 것은 등록금만이 아니었다. 삼육대 교수 사모들이 운영하는 장학·봉사단체 삼육사랑샵은 투체의 이야기를 듣고 유학 기간 기숙사비 전액 15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삼육대 이승연 센터장과 앙카라대 유은미 교수는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50만원씩 5개월 동안 총 250만원을 사비로 지원했다.
▲ 지난 2월 23일 열린 한국어학당 겨울학기 수료식에서 투체 에센(왼쪽) 학생이 수료증을 들고 이승연 센터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투체는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한국 유학은 튀르키예에서 하던 공부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튀르키예에서는 수업이 끝나면 한국어와의 연결이 끝나지만, 한국에서는 지하철, 버스, 길거리, 식당 등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투체는 지난 2월 말 겨울학기 종강식을 마치고 최근 튀르키예로 돌아갔다. 그는 “대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고향은 여전히 재난 가운데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텐트나 컨테이너에 살면서 추위와 더위에 노출돼 있어요. 무분별한 주택 철거로 호흡기 질환자가 급증하고, 학교가 파괴돼 많은 학생이 컨테이너 교실에서 공부합니다. 내 동생도 그중 한 명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튀르키예에서도 학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고향 하타이가 복구되면 그곳에 한국문화센터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을 땐 먼저 멈추어 서서 깊게 심호흡하고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 계획과 꿈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꿈들이 이루어졌을 때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준 삼육대에 정말 감사합니다. 학업을 그만두려던 순간 나에게 주어진 이 귀한 경험은 앞으로 더 큰 결심으로 한국어 공부를 끝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들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겠습니다. 고향에 한국문화센터를 열게 되면 그분들을 꼭 초대하고 싶어요.”
▲ 16일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함승우(오른쪽) 학생이 김일목 총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몰아붙여서 노력하는 것. 저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어요.”
중증 청각장애인인 삼육대 컴퓨터공학부 소프트웨어전공 함승우(23) 씨가 5년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영광의 학사모를 썼다. 재학 중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그는 자신과 같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교내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중증 청각장애인 함승우 씨가 졸업장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인이었던 함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 TV에서 해킹 관련 뉴스가 나왔는데,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치는 해커의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이후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삼육대 컴퓨터공학부 진학 후에는 전공 수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기능을 계발했다. 청각장애인이었지만,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도움 덕분에 수업을 따라가기가 아주 어렵진 않았다.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옮겨 적어주는 속기사나 대필 도우미를 배정받았다. 소리를 문자로 변환해 주는 학습 보조기기도 이용할 수 있었다. 수강신청 기간에는 장애 학생이 먼저 신청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제도도 있었다.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교내 코딩 동아리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다. 교내외 경진대회에 나가 우승을 휩쓸면서 점점 실력자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1위로 입상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후 지난해 3월 프랑스 메스에서 열린 ‘제10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컴퓨터프로그래밍 직종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함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 선수단은 통산 8번째 종합우승 대기록을 세웠다. (관련기사▷[삼육人] 함승우 학생,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금메달 쾌거)
함 씨는 이 같은 공로로 지난달 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6일 열린 삼육대 학위수여식에서는 총장 명의의 공로상도 받았다. 학교의 위상을 높인 공로다.
함 씨는 지난 4년간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며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넓은 시야와 유연한 사고, 자신감을 갖는 법,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여러 규칙에 대한 이해와 배움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더 큰 세상에 나가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사회의 다양한 톱니바퀴 속에서 자리를 잡고, 나를 낮추며 다른 이들과 협력하고, 특히 장애인으로서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전했다.
함 씨는 최근 SK C&C의 청년장애인 채용연계형 IT 교육 프로그램 ‘씨앗(SIAT)’에 선발돼 과정을 이수 중이다. 함 씨는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삼육대에는 현재 71명의 장애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날 학위수여식에서는 함 씨를 비롯해, 26명의 장애인이 졸업장을 받았다.
삼육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민주당의 무너진 도덕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지난해 5월 12일.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거액의 가상자산(코인)을 보유하고 국회 상임위원회 도중 거래해 논란이 된 이른바 ‘김남국 코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민주당 내 청년·대학생 당원들이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 혁신을 촉구했다. 당시 기자회견을 주도한 이는 양소영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 우리 대학 동문(영어영문학부 13학번)이다.
이 일로 양 동문은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당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숱한 폭언과 사퇴 압박을 받았고, 심지어는 단톡방에 불시에 초대해 욕설을 퍼붓는 ‘카톡감옥’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배신자’라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 회복과 정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최초의 여성 대학생위원장이면 가만히 있어도 베네핏(혜택)이 돌아올 수 있는데 굳이 왜 지지층과 결별하고 당에 쓴소리를 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생위원장으로서 내가 부여받은 소임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소임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청년 정치인으로서 한 우물을 파면서 굴복하지 않고 내 길을 개척해 나갈 생각이다.” 유력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양 위원장을 ‘2023 차세대리더 100인’에 선정했다.
양 동문은 앞선 누구도 택하지 않은 길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자신이 ‘창업’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험난한 정치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청년 정치인이자 여성 정치인 양 동문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청년정치의 등용문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는 당내 20대 대학생과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조직이다. 민주당은 대학생위원회뿐만 아니라, 여성·노인·청년·장애인·노동·농어민·을(乙)·사회적경제·소상공인 등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0개 전국 상설위원회를 두고 있다. 상설위원회 위원장은 당 최고위원회와 함께 중앙당 지도부 체제의 일원이며, 일정 기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전국대학생위원회가 특별한 이유는 당에서 가장 젊은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 초년생들이 기반을 닦는 청년정치의 등용문 같은 곳이기도 하다. 실제 전용기(비례대표), 장경태(서울 동대문구을) 의원 등이 대학생위원장을 거치며 정치인으로서 몸집을 키웠다. 양 동문은 지난 2022년 11월 17일 위원장으로 선출돼 올해 11월까지 2년 임기를 보내고 있다.
─ 위원장으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는데 소회는.
“정말 ‘순삭’이었다. 정치권이라는 게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매일 발생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후회되는 지점, 또 미흡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개선점에 대해서도 고민한 시간이었다. 후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많은 성장을 했다.”
─ 그간 어떤 성과가 있었나.
“정말 많지만 대표적인 걸 꼽자면 전국대학생위원회를 ‘DPU(Democratic Party University)’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한 것이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과 정의당에도 대학생·청년 위원회가 있는데, 모두 앞에 당 이름을 붙여 정당의 색깔을 명확하게 한다. 하지만 요즘 20대를 만나보면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심하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 또한 꺼린다.
‘DPU’라는 단어를 보면, 민주당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이처럼 우리 대학생위원회는 어떤 정파성이나 정치색을 드러내기보다는 대학생과 청년 세대의 진정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보통 일과는 어떤지.
“대학생들을 만나는 게 가장 주된 일이다. 학기 중에는 전국의 대학에 다니면서 행사와 간담회, 지부 모임 등에 참가한다. 방학 중에는 지금 인터뷰를 하는 곳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출근해서 회의나 정책 개발에 주력하고, 여러 언론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 지난해 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서 양소영(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동문이 당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치권의 숨겨진 신의 직장
─ 정치인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사회 선생님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5공 청문회’ 영상을 보여주셨다. 광주 출신이라 김대중 석 자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그 영상을 보고 정치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팀원들은 좀 트렌디한 얘기 하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 어쩔 수 없다(웃음).
그때 부모님께 정치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여쭤봤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어른이 되면 정치에 참여해야겠다는 막연한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마자 처음 한 게 정당에 가입한 거였다.”
─ 어려서부터 정치를 꿈꿨으면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을 법도 한데.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이 ‘쓸데없는 생각 마라’ ‘굶어 죽는다’고 엄청 만류하셨다. 외동딸이라 부모님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순 없었다. 대학까지는 자식 된 도리는 해야겠다 싶어서 부모님이 원하시는 삼육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억압하면 갈망이 더 커진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한이 생기더라.
졸업하고 부모님께 교육대학원에 간다고 하고 등록금을 받아서 정치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런데 1학기 때 걸려서 그 이후로 지원을 못 받았다. 학자금대출 받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정당 활동도 마음껏 했다. 가슴이 뜨거웠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에 이바지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꼈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 직업은 현실이고 생계인데.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나이를 점점 먹다 보니 ‘엄마 말이 맞는다’ ‘이러다 굶어 죽겠다’ 싶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정치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찾아봤다. 그런데 길이 그렇게 많진 않더라.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거나, 지자체에 들어가거나, 중앙당 혹은 시도당의 당직자가 되는 길이 있다.
보좌관으로서 밑에서 일을 배워보고 싶은 분은 찾지 못했다. 가장 중립적인 직책에서 다양한 당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사무직 당직자 공채에 도전했다. 적게는 수십대 일, 많게는 수백대 일까지 지원자가 몰리는데 3수 끝에 합격하고, 2020년 민주당에 공식 입사하게 됐다.”
▲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위한 민주당 대학생위원회 기자회견. 양소영(가운데) 동문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 당직자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하다.
“쉽게 말하면 당의 사무직 직원이다. 월급을 받으며 정치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종이다. 보좌관은 4년 임기인 국회의원과 함께 계속 선거를 치러야 하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하지만 당직자는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가 보장된다. 당이 해산하지 않는 이상 60세까지 정년을 채울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하나님이 택한 직업이라고 한다 (웃음).”
─ 당직자로 월급 받으면서 직장 잘 다니다가 돌연 선출직(전국대학생위원장)에 도전했다.
“집에서는 또 난리가 났다. 당시만 해도 당직자가 선출직에 나가려면 사직해야 했다. 위원장은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잘 다니던 직장 왜 그만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러냐고 주변에서 많이 만류했다.”
─ 왜 그랬나.
“현실정치에 대한 열망이 잦아들지 않더라. 대학생위원회 활동을 계속하면서 위원장을 꿈꿨다. 그런데 남자 선배들이 ‘이번엔 내가 할게. 넌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매번 밀렸다. 입후보는 만 29세까지 가능하다. 재작년이 딱 만 29세가 되는 해였다. 안 하면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물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대학생위원회를 9년 넘게 했고, 당직자로서 당무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다른 후보들보다 경쟁력 있다는 확신이 들어 출마해 당선됐다.”
▲ 지난해 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서 양소영 동문이 꽃다발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마스코트 청년정치
─ 정치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후배들이 있나.
“모교 후배 중에서도 꽤 있다. 현실적으로 “왜?”라고 묻는다. 그리고 일단 모아둔 돈이 있는지, 또 한동안 수입이 없어도 생계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없는지 물어본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들어와도 된다고 말한다. ‘그래 같이 해보자’고 할 수 있지만, 모교 후배들이기에 친누나, 친언니라는 마음으로 더 현실적으로 조언해 준다. 물론 그럼에도 진짜로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도울 마음이 있다.“
─ 총선을 3개월여 앞둔 정치의 계절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청년정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청년층과 청년 문제에 반짝 관심을 보이며, 젊고 참신한 인재를 발탁해 청년 표심을 노리지만, 딱 거기까지다. 선거가 끝나면 이런 목소리는 금세 잦아든다. 청년정치가 기성 정치의 선거철 동원 대상으로 반짝 소비되고 이용당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지적을) 부정할 수 있는 정당은 아무 데도 없을 거다. 선거철에 청년들 기용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모양이 예쁘니까.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용하고 그 이후에는 마땅한 보상이나 성장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기성정치인들은 그런다. ‘청년들 정치에 관심 없잖아. 투표도 안 하는데 관심 가져야 해?’ 그럴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감 때문에 자기 삶과 거리를 두려는 거지. 이들은 다 보고 있고 다 머릿속에 정립해서 심판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래서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 2030세대 정치인이 5060세대의 니즈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체감할 수 없듯이, 반대로 5060이 2030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학생과 청년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는 건 청년 정치인만이 할 수 있다. 갈등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세대에게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앞으로도 그런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내려 한다.“
─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년 의원들에게는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고 하더라. ‘청년이면 달라야 한다’는 기대가 있으면서도 말을 잘 듣는 ‘마스코트’ 같은 모습을 요구한다고. 많은 청년 정치인이 주류에 찍히지 않고 다지고 올라가 정치적 미래를 도모한다고 들었다. 일단 공천받아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제일 딜레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그게 현실이다. 말이 좋아 소신이라고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서도 그러긴 쉽지 않다. 지난해 (코인 사태) 기자회견을 한 것을 계기로 의도치 않게 당내에서 반골의 길을 가게 됐다. 가만히 있으면 청년이고 여성인 데다 당직자까지 했으니까 적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데 왜 굳이 그런 험난한 길을 가냐는 질문을 정말 수도 없이 받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위에 잘 보여서 초선으로 국회의원 배지 달면, 또 재선 바라보면서 결국 그저 그런 생계형 정치인밖에 되지 않을 거 아닌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 남들에게 평가받는 건 정치인의 숙명이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부끄러우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길을 가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어느 순간 타협하게 될 거 같아서 애초에 그런 길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당주의자의 소신
─ 양소영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전질문지를 받고 챗GPT한테 물어봤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점은 강점인데, 반면 소신이 내부적인 지지자들이나 당원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한다.’ 아주 똑똑하다 (좌중 폭소). 언론은 내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정치인으로 바라보는데, 사실 나는 누구보다 민주당의 시대적 가치를 지지해서 입당한 사람이다. 정당의 내부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관철하는 노력을 해왔으며, 당무를 배우며 성장해 여기까지 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당주의자다. 하루아침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전제하에서 내가 가진 경쟁력은 ‘소신’이다. 앞으로도 어떤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길게 보고 한 우물을 파면서 청년 정치인으로서 내 길을 개척해 나갈 생각이다. 그게 내가 부여받은 소임이다.”
─ 청년 정치인이 아닌 동문으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학교 다닐 때 주변 친구들이 ‘너 국회의원 나가려고 그러냐’는 말을 할 정도로 활동량이 엄청났다. 총학생회, 신문사뿐만 아니라, MVP 캠프 리더, 선지자학교 교사·운영진도 방학마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만약 그때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정치권에 왔을 때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든다.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하고 또 공동체 안에서 내 의견만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훈련했다. 삼육교육의 강점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자양분이 됐다.
대학에서 학문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배우면서 보다 폭넓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에게 가슴 떨리는 일이 무엇인지 찾으면 좋겠다.”
─ 새해 목표는.
“총선 승리다. 2030세대의 세계관을 대변해 정치가 혐오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 역할을 하겠다.”
[비하인드] MBTI는 ESFJ… CCM 들으며 스트레스 풀어
─ MBTI는?
“ESFJ(사교적인 외교관)”
─ 직업병이 있나.
“보통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노원’ ‘별내’ ‘남양주’ 이렇게 답하지 않나. 그런데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노원갑’ ‘노원병’ 이렇게 말한다(웃음). 그러면 ‘거기 지역위원장이 누구지’ ‘현역이 누구지’ ‘아, 거기는 험지지’ 이런다. 그런 병이 있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정치 기사 읽는다. 그 외에는 딱히 없는 거 같다. 나 스트레스 어떻게 풀지, 되게 불쌍한 것 같다. 아, CCM 많이 듣는다. 힐링이 된다. 종교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여의도 밖에도 친구들이 있나.
“여기서는 맨날 기자분들 만나고 방송 나가고 현안에 대해서만 논하니까 여의도 밖 친구들을 만나는 게 훨씬 행복하더라. 장소도 어떻게든 여의도를 벗어나려고 한다(웃음). 친구들 만나선 정치 얘기 좀 그만하고 일상적인 대화 하고 싶은데 자기들이 더 관심이 많더라. 내 기사 모니터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 가족들은 정치인으로 사는 걸 보고 뭐라고 하시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 않나. 지금은 1등 지지자이자 열성 당원이시다. 내가 나오는 방송과 기사 다 찾아보시면서 응원해 주신다.”
양소영 동문 주요 이력
1993년 광주광역시 출생
2010-2013 호남삼육고 졸업
2013-2016 삼육대 영문영문학부 졸업
2013-2015 삼육대 신문사 취재기자, 편집장
2016 삼육대 부총학생회장
2018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원우회장
2018-2019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부위원장, 중앙위원
2020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공채 당직자
2022-현재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 당무위원, 정치혁신위원회 위원, 사단법인 청년김대중 상임이사
“골든타임 4분, 심폐소생술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받을 때마다 듣는 말이지만 실감이 나진 않는다. ‘이런 걸 쓸 일이 있을까.’ 삼육대 사무처 박대성(51) 경비계장도 그랬다. 그런데 그 심폐소생술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의 생명을 구했다.
삼육대 사무처 박대성 경비계장이 심폐소생술로 동료의 생명을 살린 사실이 알려져 귀감을 사고 있다.
지난 12월 9일 아침 9시 30분경 정문 경비실에서 근무하던 박 계장은 교내 순찰을 돌고 복귀한 현승배(62) 직원과 교대한 후 경비실 밖으로 나섰다. 그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현 씨가 뒤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던 것.
박 계장은 재빨리 119에 신고를 하고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심정지였다. 그 즉시 가슴을 강하게 반복적으로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심폐소생술 도중 현 씨가 긴 호흡을 두세 번 쉬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계속 심폐소생술을 하던 중 119 구급대가 와서 응급조치를 받고 인근 병원 응급의료센터로 긴급 후송됐다.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정지는 회복했으나, 의식은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이틀이 지난 11일 의식이 돌아왔고, 후유증 없이 회복돼 3일 후 퇴원했다. 현 씨는 12월 말까지 집에서 요양하다 완쾌돼 지난 1월 1일 새해부터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다.
담당의사와 119구조대원, 응급의료센터 간호사 모두 박 계장의 초기 대응이 주효했다고 입을 모았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은 불과 4분이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받으면 생존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지 못하면 심각한 뇌손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 삼육대는 신속한 심폐소생술을 통해 동료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박대성 경비계장에게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총장 명의의 표창장과 부상을 수여했다. (왼쪽부터) 김일목 총장, 박 계장
박 계장은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왕래하는 사람 없이 혼자라서 무척 당황했지만, 일단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직원교육과 안전 매뉴얼을 통해 심폐소생술 방법은 정확히 알고 있어서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 계장은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내가 이런 걸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평소 안전교육이 참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복직 3일차를 맞은 현 씨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현 씨는 “당일 일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쓰러졌을 때 바로 조치를 받지 않았다면 여기 있지 못했을 거다. 정말 생명의 은인이시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기도해주신 대학 모든 구성원 분들께도 감사하다. 새 생명을 얻은 만큼 사랑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삼육대는 신속한 심폐소생술을 통해 동료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박 계장에게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총장 명의의 표창장과 부상을 수여했다.
[SU-Creator 뉴스팀 문현민 기자] 삼육대 아트앤디자인학과 김준서(3학년, 지도교수 서정미 노주희) 학생은 ‘202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청소년작품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이 공모전은 미래세대 주역인 청소년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배우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2014년부터 올해로 10회째 열리고 있다. ‘미술·디자인’과 ‘영상·음악’ 2개 부문에서 작품을 공모받았다.
삼육대 김준서 학생은 ‘귀향(歸鄕)’이라는 제목의 3D 애니메이션 작품을 출품해 영상·음악 부문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영상은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붙잡혀 가 어떤 끔찍한 일들을 당했는지, 피해자들이 얼마나 괴롭고 아팠는지를 보여준다.
영상은 기차가 달리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기차가 역에 정차하자 일본군은 소녀를 강제로 기차에 태운다. 위안소로 이동하는 기차 속 소녀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다음 장면은 위안소. 일본군들이 길게 줄을 서서 하나둘 명패를 걸고 내부로 들어간다. 이후 철망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소녀의 얼굴은 소녀상으로 변하면서 장소는 ‘나눔의 집’으로 바뀐다. 그 앞으로 여러 소녀상이 클로즈아웃되며 영상은 끝난다.
김준서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9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한 줄의 기사가 시작이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 진심 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지만, 생존자들의 나이는 100세에 가까워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처음엔 전공수업인 ‘메타버스 콘텐츠 랩’ 과제로 영상을 제작했는데,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이번 공모전까지 나가게 됐다.
영상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를 최대한 배제했음에도, 소녀들의 고통과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준서 학생은 ”캐릭터는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표정의 움직임을 신경 써 가벼워 보이지 않게 했다. 또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과 색감을 사용하고, 음악과 영상을 활용해 감정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했다“고 연출 포인트를 설명했다.
특히 일본군의 만행을 표현하는 부분은 텍스트로 대체함으로써 선정성 시비를 피하면서도 사건을 감추지 않고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김준서 학생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아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니들을 만나고, 수요집회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는 그는 ”우리는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고, 이러한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서 학생은 내년에는 ‘미술·디자인’ 분야로 이 공모전에 또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영상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빛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며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내 역량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삼육대 경영정보학과 김가영(20학번) 학생이 ‘제2회 서울시 골목경제 부활 프로젝트’에 참가해 대상(KT대표이사상)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생들이 민·관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뒤 도움이 필요한 소상공인에게 경영·마케팅 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서울시와 KT, 서울디지털재단, 서울신용보증재단이 공동 주최·주관했다.
삼육대 김가영 학생은 지난 5월 공모를 통해 프로젝트 참가자로 선정됐다. 이후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카페 ‘커피제이’와 매칭돼 9월까지 컨설팅을 실시했다.
김가영 학생은 서울시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와 KT의 빅데이터 상권분석 플랫폼 ‘잘나가게’를 활용해 공릉동 상권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유동·상주인구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주요 타깃 고객층을 확인하고, 상권과 점포 운영 관련 데이터도 분석해 업종 분포와 매출 추이 등을 파악, 마케팅 전략의 기초 자료로 사용했다.
공릉동은 삼육대와 서울과기대, 서울여대, 육군사관학교 등 총 4개 대학이 소재한 곳으로 20대 유동인구가 많지만, 이 점포의 위치는 대학가 상권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주변 아파트 단지와 사무실 직장인구가 주 타깃 고객이라는 점을 상권분석으로 도출했다.
또한 STP(세분화·타기팅·포지셔닝) 분석을 통해 커피제이를 ‘출퇴근 혹은 점심시간에 퀄리티 높은 메뉴를 테이크아웃 하기 좋은 믿을 수 있는 카페’로 포지셔닝했다.
김가영 학생은 이에 따라 소비자의 특정 요일과 시간대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음료 할인 및 얼음 무료 제공 이벤트를 진행하고, 3가지 시그니처 메뉴를 설정해 네이버 플레이스, 블로그, 인스타그램, 당근마켓 등에 쿠폰과 함께 게시했다.
이 외에도 추가 수익 확보를 위해 기존에 판매하던 선물세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휴무일에 대관이나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고, 단체주문 또는 선결제 시스템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 결과 매출액이 전월 대비 27%, 전년 동기 대비 152% 상승하는 효과를 냈다.
한편 김가영 학생은 삼육대 벤처스타트업 아카데미 ‘AI·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양성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벤처스타트업 아카데미는 삼육대가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SW(소프트웨어)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기반 훈련과정으로 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핵심인재를 양성한다.
김가영 학생은 “목표 달성을 위해 직접 데이터를 추출하고, 인사이트에 접근하기 위해 모아둔 데이터를 분석하고, 컨설팅 결과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등 그간 벤처스타트업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을 충실히 활용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이번 골목경제 부활 프로젝트에서 도전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을 잊지 않고 훌륭한 데이터분석가가 되겠다”고 밝혔다.
삼육대 건축학과 황해승(17학번, 지도교수 사광균) 학생이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주한미국대사관을 공공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는 안을 제시해 ‘2023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에서 대상(국토교통부 장관상)을 받았다.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은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한국리모델링협회가 주최하는 건축 공모전이다. 한국 건축문화 발전과 건축인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리모델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계획부문과 설계자·시공자를 대상으로 한 준공부문으로 나눠 열린다.
올해 계획부문 주제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 우리 동네 도서관’.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공공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공간 활용방안을 고민해 미래 도서관의 공간 구축 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삼육대 황해승 학생은 ‘Urban Expansion H.Q – 광화문 광장의 도시적 확장을 위한 도서관 계획안’이라는 프로젝트로 계획부문 대상을 받았다. 주한미국대사관을 공공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건축적으로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이전을 확정하고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나, 현 건물에 대한 활용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황해승 학생은 현재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자본가와 권력공간으로 구성되어 일상적 모임보다는 공식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치중돼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한미국대사관은 광화문광장에 결절점처럼 남아 있는 대표적인 권력공간이다.
그는 “광장은 도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도시의 발전에 기여하고, 도시가 중심공간인 광장을 보호하면서 광장이 사람들의 삶에서 누적된 시공간적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며 “이렇게 중요한 광장에서 소수에게 독점되던 건축공간을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의 품으로 환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건축물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한 채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황해승 학생은 “건축이 사라지면 기억이 사라지기에, 그 기억을 지닌 채 공유화되는 공간으로써 시민의 기억으로 환기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대신 공공도서관으로서 새로운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기존 건물 전면에 확장적 입면을 생성하고, 배후 가용대지에는 새 매스(덩어리)를 계획해 추가 공간을 확보했다. 또 저층부의 다양한 보행통로와 오픈스페이스를 구축해, 광장의 부분으로서 건축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기존 권력공간에서 시민을 위한 교류의 장이자 도시를 향한 열린 공공공간으로 전환된다.
심사위원단은 “과감한 제안임에도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완성도 높은 건축적 구현, 주변 도심에서 연결 통로와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도시적 접근까지 계획한 수작”으로 평가했다.
황해승 학생은 “단순히 건물 하나를 지으려 해도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도시의 관계성 등 고려하고 관계 맺는 것들이 무한히 많다. 이를 하나하나 고려해나가고 나만의 어휘로 정리해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이다”며 “졸업 후 건축가가 되어서도 지금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욕심과 열정을 계속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한 갤러리. 삼육대 건축학과 제22회 졸업전시회 ‘인권건축’이 열리고 있었다. (관련기사▷건축학과 22회 졸업전시회 ‘인권건축’) 도시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야심만만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로 소박한 2층짜리 건축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명은 ‘비움을 위한 채움’. 최근 인도에서 개교한 게이트 선교신학대학을 설계한 작품이다. 캠퍼스 건립안에 반영되는 실제 프로젝트로, 학생작품으로서는 전례가 매우 드물다.
작품을 설계한 김현중(건축학과 17학번, 지도교수 이태은 이윤하) 학생은 “실제 건립 프로젝트인 만큼 경제성과 기능에 집중했다”며 “형태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고 말했다. “인도 특유의 기후환경에 대응하고, 건축주의 한정된 예산에 맞는 설계안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건축가가 그러하듯 저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더 경제적인 안과 더 매력적인 안 중에서 늘 고민을 겪어야 했다. 가령 이런 것. 건물의 층고를 높이면 개방감을 주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경외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건축비가 많이 든다.
매 순간 ‘이 정도 사치는 가치가 아닐까’ ‘이 정도는 드는 품에 비해 얻는 것이 많지 않을까’ 같은 고민과 계속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지도교수와 상의하고 건축주를 설득해 가며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도 타협하기도 하며 최선의 답을 찾았다. 사람이 사용할 실제 건물이었으니까.
“기본에 충실한 가장 보통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김현중 학생을 전시가 열리던 갤러리에서 만났다.
▲ 게이트 선교신학대학 본관 투시도
설계봉사
게이트 선교신학대학(GATE Adventist Theology College)은 지난 7월 4일 북인도 웨스트뱅골주 팔라카타지역에 있는 1000명선교사훈련원 부지에서 개교했다. 광활한 북인도를 비롯해, 인접국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부탄 등 서남아시아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되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아직은 학교로 들어가는 진입로 등 기초 토목공사 단계다. 일단 45명의 학생이 이번 학기에 입학해 1000명선교사훈련원 건물에서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3월부터 2기 신학생이 더 들어오기에 새로운 교실과 기숙사 건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게이트신학대학 건축은 모금으로 진행된다. 전체 모금 목표액 200만 달러(한화 약 26억 5000만원) 중 2억원까지 모금됐다. 전체 10% 수준이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1000명선교사훈련원 배진성(신학과 96학번) 목사는 “아직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모금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하다.
“작년 2학기 어느 날 이태은 교수님께서 인도로 설계봉사를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아직 마스크를 완전히 벗은 때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으나, 교수님께서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고민하다가 겨울방학 때 함께 떠나게 됐다. 물리치료학과 팀도 같이 갔다. 물리치료학과 팀은 현지에서 선교봉사를 하고 나와 교수님은 설계봉사를 했다.”
▲ 지난 겨울방학 인도 봉사지에서 김현중 학생(왼쪽)과 이태은 지도교수
─ 설계봉사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설계를 해주는 거다. 빈 부지가 있고 여기에서 뭘 하고 싶다는 구상은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안이 안 잡혀있으니 대지를 답사하고 분석해 계획안을 짜주는 거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설계를 맡은 건 아니었다. 지적도만 정리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현장에서 갑자기 바뀌었다.”
─ 당시 심경은.
“솔직히 달갑지는 않았다. 졸업 학기를 앞둔 시점이어서 졸업설계로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졸업설계 아이템을 정하고 어느 정도 진행도 된 상황이었다. 더구나 실제 프로젝트라서 부담이 컸다.”
─ 그런데도 맡았다.
“봉사 기간 현지 분들에게 너무 많은 환영과 호의를 받았다. 어떤 방식이든 갚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배진성 목사님은 ‘이곳을 학생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대학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는 설계뿐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 대지를 보니 어떻던가.
“막상 하겠다고는 했지만 기형적으로 긴 형상의 대지에 놀랐다. 29,926.92㎡로, 대략 9,050평 정도다. 이렇게나 길고 큰땅을 내가 계획할 수 있을까, 또 그 계획이 성공적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비움을 위한 채움
▲ 게이트 선교신학대학 캠퍼스 조감도. 가까이 보이는 건물은 본관, 멀리 보이는 건물은 기숙사이다.
─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비움을 위한 채움’이다. 건축에서 채워진 공간을 ‘솔리드(Solid)’, 비워진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한다. 기존의 건축계획들은 기능이 있는 내부공간(솔리드)을 먼저 채우고 자투리가 남으면 이를 야외공간(보이드)으로 조성하곤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외부공간을 먼저 발생시키고 내부는 그 외부를 감싸도록 했다. 외부공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접근이다. 비우기 위해 채우는 방식이다.”
─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신학관(본관)을 ‘E자’ 형태로 계획해 건물 사이에 빈 공간 2개를 발생시켰다. 이런 외부공간은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활용된다. 각각 ‘솔로몬 마당’과 ‘램프웨이 가든’으로 명명해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처럼 ‘빈 공간에 대한 배려’라는 주요 콘셉트는 신학관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숙사와 사택 등에도 계속 적용된다.”
─ 왜 그렇게 했나.
“기후에 대한 고려를 빼둘 수 없었다. 인도는 매우 덥다. 여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겨울에도 섭씨 26도를 오르내린다. 여름에는 비가 엄청 많이 와서 매우 습하다. 사용자의 쾌적성을 위해 실내 열기를 효과적으로 배출해야 한다.
일단 건물 매스(덩어리)를 얇게 했다. 건물이 얇으면 외부와 맞닿은 면적이 넓어 더 시원하다. 또 본관 가운데 중정을 둘러싼 각 실의 복도를 최대한 밖으로 노출해 외기와 직접 면하게 했다. 그 와중에 복도가 그늘질 수 있도록 위층이 복도의 지붕이 되도록 했다. 이처럼 기능에 집중하다 보니 형태의 반복적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 배치도(위), 평면도(아래)
─ 부지가 넓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광활한 부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품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땅값이 매우 비싼 도심에서는 한정된 대지 면적에서 용적률과 건폐율을 끌어올려 사용 공간, 즉 솔리드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 물론 실내정원이나 아트리움처럼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경제성으로 인해 일반화되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복도 하나당 한 개 실만 두는 편복도 방식을 채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개 실을 두고 가운데 중복도를 두는 게 효율적인 공간 활용 방법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환기를 좋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인 안이었다. 건축적으로 무엇이 ‘효율’이냐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인도의 상황이 달랐다.”
구글지도가 있으니까
─ 실제 건립 프로젝트였기에 건축가로서 타협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현실성은 없어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기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덥든 말든 건물을 두껍고 예쁘게 만들고 실내에는 에어컨 넣으면 되는데, 그런 건 지양했다. 층고도 2개 층이 전부다. 층고를 높이면 개방감이 있고 사용하는 사람이 경외감도 든다. 하지만 건물이 높아지면 공사 난도가 올라간다. 그만큼 건축비용이 많이 든다.”
─ 예산에 대한 고려는 어떻게 했나.
”건축비 상한선이 주어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금으로 모아야 하니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방안으로 작업했다. 예산이 얼마 있어서 그 선에서 지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금액까지 계속 모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지금도 모금 중이라고 들었다.“
─ 겨울방학 기간 짧은 답사 한 번만으로 설계가 가능한가.
”구글지도가 있으니까.(웃음) 봉사 기간에는 대지조사를 하면서 매스와 기본 설계개념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 한국에 와서는 배 목사님과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의견을 나눴다. 또 현지에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목사님 아들이 있었는데, 요청하면 드론을 띄워서 부지를 찍어서 보내주거나 정확한 길이 측정을 해주기도 했다.
물론 모든 건축가가 그러하듯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러 방향에서 수많은 안을 구상했다. 매주 2~3번씩 두 지도교수님의 깐깐한 크리틱을 받으며 토론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장점은 남기고 단점을 걷어내면서 현재 안까지 오게 됐다.“
─ 프로젝트를 맡은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시작 당시에는 고민이 많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이기에 그 상황 속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지난겨울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의 연속으로 현재에 올 것이라 생각하기에 후회는 안 한다.”
가장 보통의 건축가
─ 삼육대 건축학과는 매년 졸업작품전시회 주제를 ‘인권건축’으로 정하고 있다. 학과의 교육철학이라고 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축’이란 무엇인가.
“내가 감히 논하기엔 너무 깊은 개념이다. 그래도 짧게 이야기하자면, 건축은 얕게는 인간을 보호하는 공간을 짓는 일이고, 깊게는 누군가의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공간을 짓는 행위이다. 처음에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지만 점차 상징적 의미와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사용자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공간을 만들기까지 이어져 왔다. 사용자는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래머인 건축가가 그려놓은 동선을 따라 걷고 건축가가 미리 설정한 층고에 압도되기도, 안락해하기도 한다.
벽체의 재질, 조명의 조도, 실이나 복도의 가로·세로·높이·폭까지도 공간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건축가가 정하기에 건축은 곧 사용자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건축이라는 방식으로 소외된 이웃에게 빛을 주고,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바르게 해결해 나가고,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환경적 문화적 권리를 배려하는 것이 인권건축이며, 건축이 가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배웠다.”
─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나.
“가장 보통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 기념비적이고 특별한 공간을 짓는 건축가가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너무 잘하려고만 하면 더 못하게 된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사소한 기본 하나하나 실수하는 것 없이, 사용자를 배려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짓는 보통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
─ 설계는 끝났지만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건축가로서 바람은.
“설계하는 내내 항상 기도했다. 설계를 잘하는 것보다 모금이 잘 이뤄지도록. 평등한 교육의 기회조차 없는 척박한 북인도 땅에서 학생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