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뷰

[삼육人] 전재산 털어 만든 예능, 디즈니+ 뚫었다

2026.08.04 조회수 281 커뮤니케이션팀

‘머더클럽’ 송준수(아디과 17학번) 감독

빠니보틀, 페이커, 최양락, 엄지윤, 신성록, 김선태, 최강창민, 범규, 김현수(야구선수), 박주성(셰프). 각 분야를 대표하는 10명의 인플루언서가 정장을 입고 원탁에 둘러앉아 치열한 심리전을 펼친다. 지난 7월 29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 6부작 추리 예능 ‘머더클럽’의 한 장면이다.

거대 자본과 대형 프로덕션이 독식하던 글로벌 OTT 예능 생태계에 이례적인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 화려한 캐스팅을 성사시키고 작품을 메인 화면에 올린 주역은 카카오나 TEO 같은 대형 제작사가 아니다. 전 재산을 털어 맨몸으로 디즈니의 문을 두드린 20대 대학생 연출자, 우리 대학 아트앤디자인학과 17학번 송준수(스톤필름·스카퍼 공동대표) 학우다.

‘머더클럽’은 국내 최초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영상 제작 전반에 도입한 예능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야구장, 조선시대, 교도소 등 매회 새로운 시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전말과 재연 영상은 대규모 세트장이나 재연 배우 대신, 그가 직접 개발한 AI 영상 제작 플랫폼 ‘스카퍼(SKAPER)’를 통해 시네마틱하게 구현됐다.

졸업까지 단 10학점을 남겨둔 10년 차 ‘화석’ 대학생. 그러나 그는 수백 명의 스태프가 분담하던 프로덕션 과정을 컴퓨터 한 대로 통제하며 영상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준비를 마친 기획자이기도 하다. 글로벌 플랫폼 메인 화면에 단독 연출작이 떠오른 순간, 창작자로서 벅찬 성취감을 느꼈다는 그와 마주 앉았다.

중소 프로덕션 대표로서 기세 하나로 일궈낸 디즈니플러스 입성기부터 생성형 AI가 뒤바꿀 콘텐츠 시장의 미래까지. 아침에 시작된 인터뷰는 장소를 옮겨가며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는 테이블 위 심리전

─ 추리 예능은 코어 팬덤이 강력하고 눈높이도 높은 장르다. 기존 명작인 ‘크라임씬’이나 ‘대탈출’과 비교했을 때, ‘머더클럽’만이 가진 독창적인 무기는 무엇인가.

“‘머더 미스터리’라는 보드게임 장르를 화면으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플레이어가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하며 플레이하는 추리 형식의 롤플레잉 게임이다. 잘 알려진 ‘크라임씬’은 출연진이 거대한 사건 현장 세트장에 직접 들어가서 오직 범인만 찾아내면 되는 동기화 게임이다. 범인 혼자 진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며 빠져나가야 하기에 범인이 불리한 구조다.

반면 ‘머더 미스터리’는 모두가 진실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참가자 전원이 자신만의 치명적인 ‘비밀’을 하나씩 쥐고 있다. 범인을 콕 집어내고 싶지만 본인의 비밀도 숨겨야 하기에 심리전의 밸런스가 맞춰진다. 출연진들은 머더클럽이라는 미스터리한 공간에 정장을 입고 모여, 각자의 롤지(역할지)를 숙지한 상태로 테이블 위에서 끊임없이 변명하고 밀담을 나눈다.”

─ 세트장을 누비는 역동적인 추리물과 달리 테이블에 앉아 대화로만 진행된다. 자칫 시각적으로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데.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생성형 AI’를 도입했다. 출연진의 과거 서사나 사건 현장을 재연하려면 본래 거대한 야구장이나 교도소를 빌리고 대규모 재연 배우를 동원해야 한다. 전문 배우가 아닌 예능인들이 직접 재연 연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자체 개발한 ‘스카퍼(SKAPER)’ AI를 활용해 과거 사건 현장이나 CCTV 단서 영상 등을 모두 시네마틱한 영상으로 구현했다. 테이블 위에서 대화가 오가는 사이사이, AI로 생성된 재연 영상이 증거물로 제시되며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방송 직전까지도 최신 AI 기술 모델을 적용해 수정을 거듭했다. 시각적인 퀄리티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지난주까지도 AI 생성 작업을 다시 했을 정도다.”

─ 전공인 아트앤디자인학과에서의 경험이 이러한 시각적 연출이나 씬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나.

“확실히 톤앤매너를 잡는 데 큰 무기가 됐다. 디자이너나 미술 감독과 소통할 때, 시각적인 분위기가 카메라 화면에 어떻게 어우러질지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었다. 특히 세트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머더 미스터리를 즐기는 비밀스러운 클럽’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게임적인 요소를 공간에 녹여냈다.

출연진 뒤로 샴페인이 놓여 있고, 게임 칩이나 트럼프 카드가 연상되는 중후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기획했다. 1회에서 빠니보틀이 냄새를 맡으며 ‘새 냄새가 난다, 고급스럽다’고 했던 메인 원탁은 기성품이 아니다. 포커 테이블 전문 제작사에 직접 연락해 특유의 형태를 주문 제작했다. 크기가 커서 이송이 까다로워 촬영 당일 현장에서 결합해 완성했다.”

─ 빠니보틀, 페이커, 최양락, 김선태 등 캐스팅 라인업이 화려하다. 중소 프로덕션으로서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섭외 과정이 궁금하다.

“오로지 기획한 대본과 포맷의 힘으로 설득했다. 1편 야구장 살인사건의 경우, 현역인 김현수 선수에게 ‘야구 관련 추리 게임이니 한 번 오시라’고 제안했고, 예능이 처음이었던 김 선수가 흔쾌히 응했다. 마침 최강창민이 열렬한 야구팬이라 김현수 선수가 나온다는 소식에 합류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현장에서 김현수 선수가 전문적인 야구 지식으로 날카로운 추리를 쏟아내 제작진도 놀랐다.

페이커 선수의 섭외는 천운이었다. 대형 제작사도 섭외하기 힘든 현역 e스포츠 전설 아닌가. 빡빡한 해외 경기 일정 중 유일하게 하루, 그것도 4~5시간 정도 비는 날이 우리 촬영일과 기적적으로 겹쳤다. 김포 촬영장까지 와서 급하게 촬영을 마치고, 바로 다음 일정인 팬사인회를 위해 중국으로 출국했다. 비슷한 시기 T1 유튜브 영상에서 페이커 선수가 숙소에서 보드게임을 즐긴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보드게임 기반 예능이라는 점에 흥미를 느껴 출연을 결심해 줬다.”

▲ ‘머더클럽’에 출연한 페이커. 사진=디즈니플러스 제공

─ 대본은 어느 정도까지 역할을 하나.

“보통의 예능은 화면 뒤에서 작가들이 ‘여기서 이런 캐릭터로 웃겨야 한다’며 오밀조밀하게 대본을 짜고 연출을 가미한다. 하지만 나는 예능 연출이 처음이어서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대신 ‘리얼리티’를 택했다. 중간에 단서가 될 아이템을 투입해 추리의 방향성만 제시할 뿐, 실제 게임의 진행은 출연진에게 온전히 맡겼다.

최양락 선배는 특유의 개그감으로 초반부터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며 맹활약했고, 최강창민은 뛰어난 추리력은 물론 방송적인 토크와 인터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현장의 삐그덕거림을 매끄럽게 잡아줬다. 출연진들이 단서를 발견하는 타이밍이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 순간도 있었지만, 그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우리 프로그램만의 리얼한 재미로 완성됐다.”

명함 수백 장의 기세

─ 대형 제작사가 독식하던 디즈니플러스에 1인 중소 프로덕션이 들어간 것 자체가 업계에서는 하나의 사건이다.

“코엑스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박람회를 노렸다. 세미나실에서 디즈니플러스 최연우 로컬 콘텐츠 총괄 이사님이 포럼 발표를 하신다는 걸 알고 무작정 기다렸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달려가 명함을 건네고 연락처를 받았다. 그 바쁘신 분의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기필코 연락해서 내 작품을 글로벌 OTT에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어도 이메일로 제안서를 보내면 결정권자에게 닿지 않는다. 실무진 선에서 가려지거나, 체계가 잡힌 회사일수록 회의를 거치며 시간이 지체된다. 박람회야말로 비즈니스를 성사시킬 수 있는 임원이나 대표들이 직접 나오는 자리다. 광고 영상 할 때부터 가구, 커피, 로봇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박람회라는 박람회는 다 찾아다니며 명함을 수백 장씩 뿌렸다. 심지어 ‘아딸’ 대표님께도 명함을 드리고 영업을 뛰었을 정도다. 그 수많은 거절과 영업의 경험치에서 나온 기세였다.”

─ 돈(제작비)은 누가 댔나.

“일반적으로는 기획안 단계에서 투자를 받고 제작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처음 예능을 연출하는 신생 제작사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는 이미 기성 제작자들의 훌륭한 기획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생초짜 신인의 기획안 쪼가리만 보고 수억 원을 투자할 플랫폼은 세상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제품’을 직접 눈앞에 들이미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사비를 들여 일단 제작했다.”

▲ ‘머더클럽’ 메인 포스터. 사진=디즈니플러스 제공

─ 너무 무모하지 않나. 안 팔리면 망했을 텐데.

“안 되면 유튜브에라도 올리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물론 리스크가 컸지만, 우리가 신기술인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 정도 규모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몸소 보여주면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라 확신했다. 사실 ‘머더클럽’은 2024년에 쿠팡플레이와 기획을 진행하다 무산됐었다. 그 거절이 오히려 ‘어떻게든 완벽하게 만들어서 증명해 보이겠다’는 오기를 만들었다. 다행히 첫 컨택에서 디즈니로부터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제작비 전액을 회수하고 이익도 꽤 남길 수 있었다.”

─ 디즈니를 어떻게 설득했나.

“디즈니플러스는 자체적으로 예능을 많이 제작하지 않고 드라마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었는데, 마침 예능 콘텐츠를 찾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페이커 선수의 합류가 큰 관심을 끌었다. 디즈니플러스가 리그오브레전드(LoL) 단기 컵 대회인 ‘2025 롤 케스파(KeSPA) 컵’ 전 경기를 글로벌 독점 생중계하게 된 시점과 맞물렸다. 여러모로 소위 ‘아다리’가 맞았고, 운도 따랐다.

늘 보던 뻔한 예능이 아닌 ‘생성형 AI’를 결합한 새로운 기술 포맷이라는 점도 높게 샀다. 무엇보다 거대 자본 없이 부딪혀 온 20대 젊은 감독의 도전과 젊은 피에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

─ ‘글로벌 OTT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신뢰’가 생겼다. 글로벌 OTT에 내 이름이 걸린 단독 연출작이 생기니 그다음 걸음이 훨씬 수월해졌다.

‘머더클럽’을 하며 친해진 빠니보틀 님과 함께 곧바로 차기작을 제작 중이다. ‘카드 한 장에 우정이 흔들릴 줄은 몰랐습니다만’이라는 가제의 보드게임 토크 예능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와 빠니보틀이 메인 MC를 맡고 최강창민, 이영지, 허성태 배우, 르세라핌, 잇지 등 매회 화려한 게스트가 출연한다.

궤도 님이 그러더라. 디즈니플러스 연출 PD라는 타이틀 덕분에 신뢰가 생겨 합류한 거지, 아니었으면 안 왔을 거라고. 당연한 말이다. 그들도 그들의 커리어를 보호하기 위해 잘 모르는 감독과 협업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컴퓨터 한 대에 스태프 수백 명이 들어가는 시대

─ 영상 프로덕션인 ‘스톤필름’에서 생성형 AI 영상 제작 플랫폼 기업인 ‘스카퍼(SKAPER)’로 사업 방향을 대담하게 확장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영상 제작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는 구조적 위기감을 느꼈다. 기술의 발전으로 화장품 광고나 영화 특수효과 영역까지 AI 모델과 생성형 도구가 대체하고 있었고, 콘텐츠 제작의 진입장벽과 비용이 눈에 띄게 하향 평준화되는 흐름이 보였다. 이제는 거대 자본이 없어도 개인이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파도 위에서 ‘우리는 어떤 도구를 쥐어줄 것인가’를 고민했다. 오래전부터 대본과 스토리보드만 입력하면 영상이 한 번에 출력되는 시스템을 꿈꿨다. 기술적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능해졌다. 단순 영상 제작사에 머무르지 않고, 창작자가 오직 기획과 대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용 AI 플랫폼을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 오픈AI의 소라(Sora)나 구글의 비오(Veo) 같은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이미 생성형 영상 도구를 내놓고 있다. 스카퍼(SKAPER)만의 차별점과 무기는 무엇인가.

“기존 프롬프트(문자 입력) 기반 생성 AI의 가장 큰 약점은 일관성이다. 짧은 숏폼 클립은 잘 만들어내지만, 전체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는 긴 호흡의 콘텐츠에서는 장면마다 캐릭터의 얼굴이나 배경 분위기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스카퍼는 대형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노드(Node) 시스템’ 방식의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이다. 사용자가 대본이나 시놉시스를 입력하면 AI가 전체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관계를 분석해 장면을 쪼개고, 배경과 소품 등 비주얼 에셋(visual asset)을 자동으로 배치한다.

비유하자면, 바리스타가 서로 다른 원두를 조합해 최고의 커피를 내리듯, 구글이나 클링(Kling), 시댄스(SeaDance) 등 다양한 AI 엔진의 장점만을 모아 한 화면에서 조립하고 제어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AI 영상 편집용 깃허브(GitHub)’다. 사용자는 복잡한 코딩이나 프롬프트 작성에 시간을 뺏길 필요 없이, AI가 자동으로 짜놓은 노드 위에서 원하는 부분만 손쉽게 수정하면 된다.”

─ AI 기술이 영상 생태계 전반에 도입되면서, 기존 촬영·조명·미술 등 수많은 스태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미디어 업계의 공포와 거부감도 상당하다.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등장했던 마차 시대의 산업혁명과 똑같다. 당장 마부나 말 모이를 팔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큰 곤혹을 치렀지만, 이후 거대한 자동차 공장이 생겨나면서 훨씬 더 많은 노동자와 기술자가 필요해졌다.

영화 한 편을 찍으려면 최소 80명에서 100명의 스태프가 투입된다. 그동안 이들은 1년에 겨우 한두 작품을 하며 월급을 받는 구조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AI 시대가 되면 컴퓨터 한 대에 그 수백 명 스태프의 기능이 압축된다. 이것은 일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창작의 대중화’다. 80명의 스태프가 한 편의 영화를 만들던 시대에서, 그 80명 각자가 1인 제작사가 되어 80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시대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동안 참신하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작비와 인력의 한계 때문에 머릿속에서 그냥 사라져 버린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나. 기술이 장벽을 허물어 주면 ‘창작의 폭발’이 일어난다. 시대를 빠르게 읽고 기술을 도구로 활용한다면, 과거 노동으로 벌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기회와 부를 창출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미래 영상 현장에 남게 될 1인은 누구인가.

“’총감독(Director)’, 즉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인간이다. 이미 챗GPT나 클로드 같은 LLM에 아이디어만 던져줘도 대본이 나오고, 스카퍼에 집어넣으면 알아서 영상이 구현되는 단계다.

하지만 AI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서 ‘어벤져스’ 20편 같은 3시간짜리 대작을 뚝딱 만들어 낸다고 치자. 그걸 보고 ‘이게 진짜 재미있는가’, ‘이대로 대중에게 내보내도 될까’를 판단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대단한 AI가 영상을 뽑아내도 연출자가 애초에 원하던 방향과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이건 좀 아닌데’라고 짚어내어 끝내 방향을 잡아주는 건 사람의 몫이다. 이는 과거 편집 감독이 아무리 편집을 잘해와도, 총감독이 최종 컨펌을 하며 영화의 색깔을 맞추던 것과 완전히 같은 이치다.

대신 자유가 커진 만큼 책임도 명확해진다. 예전에는 ‘제작비가 부족해서’, ‘스태프와의 마찰 때문에’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이제 연출의 모든 통제권이 1인에게 주어진다. 핑계의 시대가 끝나고 온전히 연출자의 직관과 완성도로 평가받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 스카퍼(SKAPER)의 정식 출시 일정은. 어디까지 가고 싶나.

“지난해 12월 반얀트리 서울에서 ‘2026 AI 미디어 서밋’을 직접 개최하고 업계 관계자들에게 스카퍼의 핵심 시스템을 공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현재 서비스 고도화와 테스트를 진행 중인데, 올해 연말 정식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플랫폼 안에서 사용자들이 자신이 만든 영상 노드나 콘텐츠 자산을 서로 사고팔 수 있는 크레딧 기반의 스토어 기능도 구축했다.

단순히 국내에 머무는 제작사가 아니라, AI 영상 기술과 콘텐츠를 동시에 보유한 하이브리드 기업으로서 미국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AI 기술을 통해 K-콘텐츠의 제작 경계를 글로벌 무대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 송준수 대표가 ‘2026 AI 미디어 서밋’에서 자체 개발 중인 생성형 AI 영상 제작 플랫폼 ‘스카퍼(SKAPER)’의 특징과 미래 영상 산업의 변화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IT동아

핑계 댈 시간이 없다

─ 콘텐츠 기획자나 연출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먼저 길을 낸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다. 일단 저질러야 한다. 대기업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에 도전하는 것을 지레 겁먹고, 선배들이 많이 간 길만 따라가려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대기업도 실무 능력을 갖춘 고졸 인재를 뽑는 세상이다. 기업이 원하는 건 학벌이 아니라, 당장 어떤 아이디어로 어떤 역량을 낼 수 있느냐다.

특히 지금처럼 AI가 팽창하는 시기에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은 혼자서 2~3인분의 폭발적인 역량을 낸다. 기술이 평준화된 세상에서 학벌이나 경제 위기 같은 외부 환경을 핑계 댈 시간이 없다.”

─ 전 재산을 털어 예능을 제작하고, 맨땅에 헤딩하면서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 없는 것 같다.

“실패를 수도 없이 했다. 프로덕션을 막 설립했을 때 광고 시장이 침체되면서 일거리가 뚝 끊겼다. 촬영장 알바를 뛰며 생계를 이어갔다. 만약 그때 힘들다고 포기하고 아예 다른 업계를 찾아 떠났다면, 그건 진짜 ‘실패’로 남았을 거다.

2024년에 다른 OTT 플랫폼과 론칭 논의가 무산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길은 아닌가 보다’ 하고 멈췄다면 지금의 ‘머더클럽’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끝까지 밀고 나갔기에 결국 디즈니의 문이 열린 것이다. 잠깐 힘들어졌을 뿐이지, 실패가 아니었다.

취업도 똑같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떤가. 그날 운이 없었나 보다 하고 다른 중견이나 중소기업에서 실무를 구르며 부족한 점을 채우면 된다. 1~2년 만에 안 되면 나는 3~4년 걸릴 사람인가 보다 하고 스펙과 경력을 더 쌓아서 또 문을 두드리면 된다. 내가 멈추는 날이 곧 포기하는 날이고, 실패하는 날이다.

나는 영상이나 방송계에 인맥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족 중에 디즈니 직원이 있는 것도, 할리우드에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명함 수백 장을 들고 발로 뛰며 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해외에 나가서 언어가 서툴러도 ‘기세’로 밀어붙이면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비즈니스의 신뢰도 결국 기세에서 나온다. 내가 비록 지금 당장 저것까지는 완벽히 못 해도, 이것만큼은 확실히 해낼 수 있다고 당당히 증명하며 부딪히면 세상은 결국 문을 열어준다.”

─ 17학번인데. 졸업은 대체 언제 할 건가.

“10학점 남았다. 돌아오는 학기에 시간표를 잘 짜서 무조건 졸업할 거다. 학업에 대한 욕심도 커서, 졸업이라는 매듭을 확실히 지어놓고 대학원 석박사 과정까지 진학할 계획이다. 기획도, 기술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다음 챕터를 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남은 편집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영상계에 아는 선배 한 명 없던 20대 청년은 두려움 대신 명함 뭉치를 쥐고 세상에 부딪혔다. 남들이 좁은 취업문과 환경을 탓하며 주춤거릴 때, 그는 전 재산을 베팅해 디즈니플러스라는 거대한 성벽을 뚫고 들어갔다. 전통적인 산업 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원망하는 대신, 컴퓨터 한 대로 수백 명의 스태프를 지휘할 수 있는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가장 먼저 올라탔다.

실패는 멈출 때만 실패가 된다는 그의 맹렬한 기세는 이미 다음 목적지인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를 향해 있었다.

글/사진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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