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뷰

바리톤 김형구, 伊 산타체칠리아 국립합창단 ‘동양인 최초’ 종신단원 발탁

2026.09.07 조회수 44 커뮤니케이션팀

130년 합창단 역사상 최초 사례
30대 후반 늦깎이 유학… 바리톤 전향 3년만 이룬 쾌거

삼육대 음악학과 동문 바리톤 김형구(05학번)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기관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합창단(Coro dell’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의 동양인 최초 종신단원(stabile)으로 발탁됐다. 공식 입단일은 9월 7일이다.

이는 김 동문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 성악가의 역량을 유럽 클래식 음악의 중심 무대에서 입증한 쾌거로 평가된다. 특히 130여 년의 합창단 역사상 아시아계 성악가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종신단원의 빗장이 열린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는 1585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의 칙서로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기관 중 하나다. 팔레스트리나를 비롯해 코렐리, 파가니니, 멘델스존, 리스트, 베를리오즈 등 서양음악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족적을 남겼다.

아카데미 소속 상임 관현악단과 합창단은 1895년 공식 창단됐다. 심포니 합창을 전문으로 하는 이 합창단은 클라우디오 아바도, 발레리 게르기예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경, 안토니오 파파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협연하며 유럽 정상급 앙상블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이 아카데미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바 있다.

김 동문은 2025년 5월부터 1년간 합창단의 객원 단원(Aggiunti)으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지난 7월 진행된 종신단원 선발 콩쿠르에 지원해 최종 우승자(Vincitori)로 선정되며 정식 종신단원 자격을 획득했다.

선발 과정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적 역량과 현장 대응력을 요구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차 블라인드 심사를 시작으로, 2차에서는 심사위원들의 지시에 따라 발성과 테크닉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고난도 테스트가 이어졌다. 기존 종신단원들과 함께하는 아카펠라 4중창, 고난도 초견 및 앙상블 평가 등도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김 동문은 정확한 언어 구사와 섬세한 음악적 표현, 뛰어난 초견 능력, 단원 간 완벽한 호흡을 종합적으로 검증받았다. 심사위원장이자 합창단 지휘자인 안드레아 세키(Andrea Secchi)는 김 동문이 객원 단원으로 활동한 지 불과 1년 만에 종신단원으로 선발된 것을 두고 “매우 이례적인 성과”라며 찬사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동문의 성취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안정적인 경력을 내려놓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 이뤄낸 결실이기 때문이다. 삼육대 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 교직원으로 8년간 근무한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성악 본고장의 최고 명문인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Conservatorio di Santa Cecilia)에 진학해 2022년 졸업한 그는, 현지 마에스트로들의 진단을 수용해 20년간 고수해 온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과감하게 성부를 전환했다.

성부 전향 직후 움브리아주 주요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주역으로 데뷔했고 각종 오페라 오디션에서 주역으로 캐스팅되는 등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후 바리톤 전향 3년여 만에 세계적인 명문 합창단의 종신단원으로 발탁되며,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이 만들어 낸 성공 사례를 몸소 증명했다.

김 동문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선 성악가로 자리매김 하겠다”며 “모교 후배들 또한 실패나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며 당당하게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동문은 오는 10월부터 새로운 상임 지휘자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을 비롯해 안토니오 파파노(Antonio Pappano)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호흡하며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의 2026/27 시즌 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합창단·오케스트라의 지난해 스페인 그라나다 공연 무대. 객원 단원으로 활동하던 김형구 동문(합창석 우측 세 번째 그룹 뒷줄)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합창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공식 페이스북

다음은 일문일답.

─ 귀국 일정이 모두 잡혀있던 상태에서 종신단원 선발 콩쿠르에 참가했다고.

“지난해 산타체칠리아 합창 콩쿠르에서 파이널까지 오르며 1년간 객원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지난 3월쯤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완전히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비행기표를 끊고 집을 내놓았으며, 전기와 가스까지 모두 해지 신청했다.

그런데 5월, 바리톤 종신단원 2명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나왔다. 사실 지원하면서도 합격 가능성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130년 역사상 동양인 종신단원의 전례가 없었고,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객원으로 활동해 온 뛰어난 성악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콩쿠르는 최종 우승자가 종신단원이 되지만, 파이널에 올라도 일정 자격을 갖추면 객원단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내가 또 다시 파이널에 올라간다면 누군가에게 절실한 객원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고민돼 시험 전날까지도 응시 여부를 망설였다.”

─ 결과는 동양인 최초 우승자였다.

“파이널 무대 후 최종 우승자로 이름이 불렸을 때의 감정은 복잡미묘했다. 너무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당장 5일 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짐은 이미 다 싸둔 상태였다.

일단 예정대로 귀국 후 현지 마에스트로들과 계속 소통하며 상의를 거쳤다. 돌아온 대답은 명확했다. ‘합창단 종신은 언제든 네가 원할 때 그만둘 수 있지만, 지금 포기했다가 내년에 다시 한다고 뽑아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다시 이탈리아로 가 부딪혀 보기로 했다. 인생에서 어떤 기회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 유럽 최상위 합창단 오디션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상상 이상으로 까다롭다. 1차는 심사위원과 지원자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한 완전한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페라 아리아, 음역, 초견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본격적인 시험은 2차부터다. 한 지원자가 약 1시간 30분에서 1시간 40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노래한다. 미리 제시된 합창곡 몇 곡을 잘 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래하는 도중 심사위원들이 ‘이 구간을 모두 스타카토로 불러보라’,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로 해보라’, ‘이 부분은 팔세토로 바꿔보라’는 식으로 악보에 없는 여러 요구를 즉석에서 던진다.

결국 완성된 노래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나 심사위원의 요구를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발성과 음악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가창력뿐 아니라 음악적 이해력과 순발력, 기술적 유연성을 모두 시험한다.“

― 기존 종신단원들과 직접 앙상블을 맞추는 테스트도 있다고.

”반주가 없는 고난도의 아카펠라 4중창 악보를 받은 뒤 혼자 약 25분 동안 분석하고 연습할 시간이 주어진다. 거의 모든 음표에 임시표가 붙어 있을 정도로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다.

이후 현직 종신단원인 소프라노·알토·테너와 함께 심사위원 앞에서 4중창을 한다. 개인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정확한 화음과 앙상블을 만드는 능력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마지막으로 멘델스존이나 브람스, 또는 라틴어로 된 미사곡 등의 작품 가운데 약 6페이지 분량의 악보를 받아 즉석에서 초견으로 노래한다. 일반적인 오페라극장 주역 오디션보다 훨씬 종합적이고 혹독한 시험이라고 느꼈다.“

▲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합창단·오케스트라의 지난해 멘델스존 ‘안티고네(Antigone)’ 공연 무대. 바리톤 김형구 동문(합창석 왼쪽에서 두 번째)이 4중창 멤버로 참여해 연주하고 있다. 사진=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공식 SNS

― 객원단원으로 들어간 지 불과 1년 만에 종신단원이 됐다. 비결을 꼽는다면.

”특별한 비법보다는 매일 지켰던 나만의 ‘루틴’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식 연습이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면 나는 반드시 오전 9시까지 출근했다. 본격적으로 노래하기 전에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충분히 목을 풀고 준비하는 시간, 즉 리스칼다레(Riscaldare)가 나에게는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산타체칠리아의 연습 시설이 매우 훌륭한데 의외로 아침 일찍 빈 연습실이 많았다. 매일 혼자 일찍 나가 연습했고, 객원으로 활동한 1년 동안 연습과 연주가 있는 날은 그 원칙을 한 번도 빠짐 없이 지켰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돌이켜보니 합창단 측에서 그런 내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합격 후 지휘자께서 ‘객원으로 들어온 지 1년 만에 곧바로 종신단원이 된 경우는 거의 처음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대학 출신인 아내에게 ‘이게 바로 삼육의 인재상’이라고 했다. (웃음)“

― 20년 가까이 테너로 활동하다 유학 중 바리톤으로 전향했다.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입학 후 만난 마에스트로들이 하나같이 ‘너는 테너가 아니라 바리톤’이라고 했다. 하지만 테너에 대한 로망과 미련이 컸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테너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바리톤으로 바꾸면 마치 ‘테너로 실패해서 바리톤이 된 성악가’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1년 반을 고집부렸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 지휘자 마르코보에미 등을 비롯한 여러 거장을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제발 단 한 명이라도 ‘테너를 계속해도 된다’고 말해주길 빌었다. 하지만 답은 놀라울 만큼 같았다. ‘너는 20년이라는 세월을 잃었다. 정통 진짜 바리톤(Proprio Baritone)이 맞다.’ 결국 어렵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바리톤으로 전향했다.“

― 바리톤으로 전환 직후 곧바로 오페라 주역으로 발탁됐다고.

”놀랍게도 불과 한 달 만에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마르첼로 역에 캐스팅됐다. 이후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역 3개 극장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처음에는 두 번째 캐스트였는데 두 차례 리허설 후 지휘자와 연출자가 나를 첫 번째 캐스트로 올렸다.

‘내 목소리에 맞는 옷을 입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렸다. 때로는 포기가 실패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발견하는 결단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 바리톤 전향 직후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주요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의 주역 마르첼로 역으로 데뷔한 김형구 동문(무대 위 왼쪽). 사진=김형구 동문 제공

― 합창단보다 솔리스트를 더 높은 성취로 보는 편견도 일부 존재한다.

”나 역시 유학 전에는 비슷한 편견이 있었다. 솔리스트로 활동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성악가들이 합창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산타체칠리아에서 직접 활동하면서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적인 콩쿠르 우승자를 비롯해 베로나, 로마를 비롯한 유럽 주요 극장에서 오랫동안 솔리스트로 활동한 톱클래스 성악가들이 합창단 안에 즐비했다.

그들이 이곳을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최고의 수준에서 음악을 하면서도 안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스타성만을 추구하기보다 세계적인 앙상블 안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하고, 음악가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전문적인 길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 앞으로의 목표는.

현지 마에스트로들과 모교 은사이신 김철호 교수님께서 공통적으로 해주신 말씀이 있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것에 만족해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합창단을 발판으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세계적인 합창단의 종신단원이 됐다는 것은 분명 큰 영광이지만 이것을 내 음악 인생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도 오페라 주역이나 솔리스트로 무대에 설 기회는 계속 열려 있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단번에 잡을 수 있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매일 훈련하고 준비할 것이다.”

― 모교 교직원으로 8년 일하다 서른 후반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유학길이었다. 두렵지는 않았나.

“물론 두려웠다.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특히 올해 초 귀국을 결정했을 때는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현실적인 막막함도 컸다. 아내와 함께 늘 아침예배를 드리며 ‘어디든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우리를 놓아 달라’고 기도했다.

금요일에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주 수요일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기막힌 타이밍 속에서, 아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축하한다’ ‘고생했다’는 말이 아니라, ‘여보, 하나님의 뜻이 뭘까요’였다. 지금도 그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 세계 무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중요한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유럽에 유학을 와서도 자신이 한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내세우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유럽의 마에스트로들에게 당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대단한 대학을 나왔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현장에서는 ‘노래 잘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아직 더 준비가 필요한 사람’인가 그게 전부다.

출신 학교라는 배경에 얽매여 지레 주눅들 필요도, 반대로 자만할 이유도 전혀 없다. 세계 무대에서는 결국 자신의 실력과 준비가 자신을 증명한다. 후배들이 한국 사회의 시선이나 꼬리표를 두려워하지 말고, 거침없이 그리고 당당하게 세계 무대에 들이받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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