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36℃]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3) 국민일보 국민엔젤스앙상블 김유경(음악학과 15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지난해 4월. 국민일보는 ‘국민엔젤스앙상블’이라는 장애인예술단을 설립하고, 중증 자폐성 장애인 5명을 단원으로 채용했다. 국민일보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천지사와 장애인 고용증진을 위한 협약을 맺고 난 뒤 나온 후속 조치다. 단원들은 4대 보험과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보장받으면서, 월 2회 이상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 일간지가 중증 장애인을 사원으로 직접 채용한 것은 국내 언론사상 최초 사례다. 이 고용모델은 즉각 장애인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민·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정책 토론회에서 장애인 고용의 우수사례로 언급되었으며, 현재 충남대병원을 비롯한 전국 10여 개 국립대병원과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등이 국민엔젤스앙상블의 자폐인 예술가 고용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예술단 창단을 추진하고 있다.
이 예술단에서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파트를 맡고 있는 김유경(자폐성 장애 1급) 씨는 우리 대학 동문이다. 2017년 음악학과(클라리넷 전공)에 일반전형으로 편입한 그는 지난해 졸업 직후 앙상블 첫 단원으로 입단하게 됐다.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는 “발달장애 학생이 사회적 기업이 아닌,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에 취직한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라며 “학생도, 어머니도, 학생을 선발해서 가르친 우리 학교도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는 김유경 동문의 어머니 이명숙 씨와의 전화 통화 내용으로 구성했다. 김 동문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소통에 조금 제한이 있었지만, 직업인으로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자존감은 분명히 느껴졌다.
언론사 직원이 되다
Q. 국민일보에 입사한 지 10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요즘 근황이 어떤가요?
“시험만 안 볼 뿐이지 계속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요. 국민엔젤스앙상블 외에도 오케스트라 2개를 더하고 있어요. 인천지역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라온제나오케스트라,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 소속 나눔챔버오케스트라는 초창기부터 9년째 계속하고 있죠.
연말까지는 아무래도 행사가 워낙 많으니까 연습하고 공연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요즘은 연초이고 코로나 바이러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행사가 많이 취소되면서 조금 한가해졌어요. 바쁘지만, 유경이가 지난 1년간 많이 편안해졌고 안정감을 찾은 게 눈에 보여요. 직장생활을 재밌어하고요.(웃음)”
Q. 취직한 것을 인식하고 있나요?
“조금 아는 것 같아요. 취직했을 때 친구들한테 국민일보 사원이 돼서 기쁘다고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 때 되면 꼭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알고요. 나름 자기 통장에 계속 급여가 들어오고 주변에서 사원이라고 하니까 조금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봤어요. 친구들한테 밥을 사주고 싶대요. 자기한테 쓰는 것보다 워낙 주변 사람들한테 베푸는 걸 좋아해서. 그간 감사한 분들도 많이 찾아뵈었어요.”
Q. 앙상블 입단 과정이 궁금합니다.
“졸업 후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좋은 기회로 연결이 됐어요. 졸업할 즈음 자폐 음악인 자녀를 둔 부모님 세 분과 아이들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의기투합했어요. 역시 계속할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더군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을 여럿 만나다가 국민일보 정창교 기자님(현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장)을 만났어요. 예전부터 장애인 분야에서 취재를 많이 하신 분이라 인연이 있었죠.”
Q.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만나 뵙고 상황을 말씀을 드리니 가능할 것 같다, 함께 알아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일단 개별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 음악을 하는 발달장애인 4~5명이 앙상블을 꾸려서 시도하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천지사에 알아봤어요. 공단 쪽에서 저희 취지를 잘 받아주셨고, 회사(국민일보)와도 이야기가 잘 됐어요. 이후 양측이 협약을 맺고, 국민일보 산하 앙상블이 창단되면서 정식 사원으로 채용됐죠. 이런 고용모델이 거의 첫 사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체계가 덜 잡혔지만, 차츰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Q. 근로조건과 급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공식적으로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해요. 공연 시간에 따라 시간은 조금 유동적이고요. 급여는 4대 보험 적용을 받고, 100만원 남짓이에요. 물론 많진 않지만, 대부분 자폐음악인들이 행사당 몇 만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안정적이죠. 국민일보 사장님과 회사에서 앙상블 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서 열심히 하면 좀 더 올려주지 않을까요. (웃음)”
Q.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유경이가 국민일보 직원이 되는 날 공식행사 일정표를 보고 몇 번이고 다시 쓰는 것을 보며 직장인이 된 딸이 자랑스러웠어요. 선생님들께 어려운 부분을 배울 때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악기를 놓지 않던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정말 대견했어요.”
의사보다 먼저 판단했습니다
김 동문의 어머니 이명숙 씨가 딸의 자폐증을 인지한 것은 48개월을 갓 넘긴 즈음이었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Q. 자폐증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48개월쯤 되었을 때였어요. 주변에서 아이가 조금 이상하다. 자폐증인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자폐증이 잘 알려지지 않을 때여서 저도 처음 들어본 말이었어요. 신문에서 보고 알았죠.”
이 씨는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20개 문항으로 된 자폐증 진단 테스트를 보게 됐다. 10개 이상에 해당하면 자폐증. 그런데 거의 모든 문항이 딸의 증상과 유사했다.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과를 찾아갔다.
Q.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나요?
“처음부터 자폐증 판정을 받진 않았어요. 그런데 치료실을 갔더니, 거기 아이들이 유경이와 똑같더라고요. 자폐증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예요. 그때 판단을 했어요. 의사 선생님 보다 제가 먼저 판단을 한 거죠.
이후에는 어떤 치료가 좋은지 백방으로 알아봤어요. 좋다는 게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찾아갔어요.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혼자 살게끔 이라도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겠다 싶었어요.”
Q. 그래서 악기를 시작했군요.
“워낙 산만하고 증상이 심했어요. 초등학교를 10살에 입학했고, 들어가서도 ‘엄마’라는 말을 못 했어요. 도저히 앉아있지를 못해서 피아노를 하면 칠 때만큼은 앉아있겠지 싶어서 선생님을 구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애인을 가르쳐본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이후로 10년을 개인레슨 했어요.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악기를 연주할 때면 놀랍도록 차분해졌어요.”
Q. 전공은 클라리넷인데요.
“클라리넷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취미로 시작했어요. 비장애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생각보다 실력이 빠르게 늘었어요. 피아노는 혼자서 하는 악기였지만,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는 오케스트라 친구가 바이올린 하는 것 보고 자기도 하고 싶다면서 시작해 지금까지 하게 됐고요.”
희망이 된 대학교육
Q. 대학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학교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삼육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장애학생도우미 제도가 너무 잘 돼 있어요. 학습에 여러 도움을 받지만, 일단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게 학교생활에 큰 도움이 되죠.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잖아요. 덕분에 정말 즐겁게 학교생활 하면서 학업을 잘 마쳤어요.”
Q. 교수님 중에서 기억나는 분들은요?
“임봉순, 조대명, 성주진 교수님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임봉순 교수님. 학생들을 보듬어주시는 게 남다르세요. 유경이 외에도 여러 장애 학생들을 많이 보살펴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셨어요. 집이 부평이라 지하철을 5번씩 갈아타면서 혼자 등교했어요. 멀고, 두렵고, 어려웠는데, 교수님들께서 힘을 주시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하셨어요. 대학에 가서 정말 많이 좋아진 걸 느껴요.”
Q. 우리 학교에 보내길 잘하셨네요.(웃음)
“그럼요. 주변에 삼육대학교를 정말 많이 홍보하고 있어요. 처음엔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 들어가서도 무리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찌어찌 대학에도 들어가서 좋은 교육을 받고, 취직까지 하게 됐어요. 전혀 생각도 못 했던 거라 너무 감사하죠. 요즘 와서 발달장애인도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음악 하는 장애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대학에 가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많은 부모님들이 유경이를 보면서 희망을 갖게 됐어요. 그런 희망을 주셔서 학교에 참 감사하죠.”
사실,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의 대학교육에 대해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에게도 기본권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과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대학교육의 경우 투자 대비 아웃풋을 고려했을 때 소모적이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일부 특수교육계 인사조차도 지적장애인이 대학교육을 제대로 이수할 수 있느냐는 문제부터, 어떤 고등교육의 결과를 예측하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류수현 학생처장은 “일정 정도의 학습지원을 받으면, 발달장애 학생들도 비장애인 학생들과 다름없는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다”면서 “많은 발달장애 학생들이 대학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졸업 후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김유경 동문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Q. 유경 씨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길 바라나요?
“대학 때 전공을 계속 살려서 예술가의 길을 계속 가고, 사회에 나와 세금을 내는 시민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다만 여태까지 받은 것들을 나눠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직 누군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힘들지만, 보조 강사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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