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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동 기틀 세운 다섯 선구자… 삶과 헌신 재조명 [삼육 120년 ④]

2026.10.26 조회수 77 커뮤니케이션팀

개교 120주년 기념식서 발전공로패 수여
전쟁 폐허 딛고 캠퍼스 건립… 대학 승격·재정 자립 이끌어
96세 존스턴 교수 직접 참석

▲ 삼육대는 지난 23일 오전 교내 요한관 홍명기홀에서 열린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대학의 기틀을 다진 초기 선구자 5인에게 발전공로패를 수여했다. 왼쪽부터 제임스 리(이제명), 도널드 리(이단열), 루돌프 클라임스(구인서), 조지 헤일리(하정식), 로버트 존스턴(장수돈)

전쟁의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대학의 새 터전을 마련한 선교사, 학교를 대학으로 발전시킨 교육자, 미국에서 젖소를 들여와 대학의 자립 기반을 닦은 교수. 오늘날 삼육대의 기틀을 세운 초기 선구자들의 삶과 헌신이 개교 12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됐다.

삼육대는 지난 23일 오전 교내 요한관 홍명기홀에서 열린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대학 발전에 헌신한 선구자 5명에게 발전공로패를 수여했다.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교육과 선교에 평생을 바친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공로패는 △제임스 리(James M. Lee, 이제명) 제12대 교장 △도널드 리(Donald S. Lee, 이단열) 제15대 교장 △루돌프 클라임스(Rudolf E. Klimes, 구인서) 제2대 학장 △조지 헤일리(George S. Haley, 하정식) 초대 농업교육과장 △로버트 존스턴(Robert M. Johnston, 장수돈) 전 신학과 교수에게 수여됐다.

작고했거나 고령 등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선구자들을 대신해 자녀와 손자녀 등 후손들이 무대에 올라 패를 받았다. 특히 올해 96세인 로버트 존스턴 교수는 직접 내한해 공로패를 받으며 의미를 더했다.

기념식에는 제임스 리의 아들 엘프레드 리(Elfred Lee)와 며느리 마사 리(Martha Lee), 딸 미셸 세일러(Michele Sayler), 손녀 엘리사 세일러(Elisa Sayler), 손자 조너선 리(Jonathan Lee), 조나 리(Jonah Lee), 이선 리(Ethan Lee) 등 3대에 걸친 가족들이 자리했다.

도널드 리의 딸 샌드라 리 깁(Sandra Lee Gibb)과 사위 조지 깁(George Gibb), 루돌프 클라임스의 딸 애니타 하이디 클라임스 보러데일(Anita Heidi Klimes Borrowdale), 조지 헤일리의 딸 린다 올라코프스키(Linda Olakowski)도 참석해 뜻깊은 순간을 함께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캠퍼스를 세운 형제

▲ 제임스 리(이제명) 목사
▲ 제해종 총장이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제임스 리(이제명) 목사의 장남 엘프레드 리에게 발전공로패를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엘프레드 리의 부인 마사 리(Martha Lee).

제임스 리(1912~2013)는 삼육대가 현재의 태릉 캠퍼스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12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38년 선교사로 돌아왔으나,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필리핀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후 일본군에 붙잡혀 약 3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겪었다.

1945년 해방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 교육사업에 대한 뜻을 접지 않았다. 1947년 다시 한국을 찾은 제임스 리는 전쟁과 혼란으로 열악해진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학교 부지를 물색했다. 이여식 목사 등 한국인 지도자들과 함께 태릉 일대의 부지를 확보했으며, 1948년 지금의 삼육대 캠퍼스 터를 매입해 학교 이전과 시설 건립을 이끌었다.

6·25전쟁 중에도 교육을 멈추지 않았다. 1951년 제주도 성산포에서 피난 학교를 운영했고, 전쟁이 진정되자 다시 태릉으로 돌아와 교육사업을 재개했다. 지금도 캠퍼스에 남아 있는 ‘제명호’ 역시 그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조성한 저수지에서 비롯됐다. 대학은 그의 한국 이름 ‘이제명’을 따 호수의 이름을 지었다. (관련기사▷[공간의 기억] ⑤ 제임스 리 선교사의 유산 ‘제명호’)

▲ 도널드 리(이단열)
▲ 삼육대 제해종 총장이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도널드 리(이단열) 전 교장의 딸 샌드라 리 깁(Sandra Lee Gibb)에게 발전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

동생 도널드 리(1917~2003)는 형이 마련한 터전 위에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체계를 갖춘 인물이다. 그 역시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학을 공부했으며, 1949년 한국에 들어와 교육과 출판사업에 참여했다.

1954년 삼육신학원장에 취임한 그는 학제와 학교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교실, 강당, 기숙사, 과학관, 행정관 등 교육시설을 확충했다. 전쟁 이후 열악했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대학 수준의 교육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공로로 1959년 한국 정부로부터 선교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특히 두 사람의 부친인 하워드 리(Howard M. Lee) 역시 순안 의명학교 교장을 지낸 선교사였다. 부친에서 두 아들로 이어진 한 가족의 교육선교 역사가 삼육대의 태동과 성장에 깊이 맞닿아 있는 셈이다.

대학 체제와 교육·산업 기반 일군 선구자들

▲ 루돌프 클라임스(구인서) 학장(오른쪽)이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클라임스 학장은 재임 당시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며 대학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 데 힘썼다. 사진에는 박 대통령이 자필로 남긴 ‘친애하는 구인서 학장에게’라는 헌사와 서명이 담겨 있다.
▲ 삼육대 제해종 총장이 루돌프 클라임스(구인서) 전 학장의 딸 애니타 하이디 클라임스 보러데일(Anita Heidi Klimes Borrowdale)에게 발전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

루돌프 클라임스(1932년생)는 삼육신학대학이 종합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하는 전환기를 이끌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북미와 아시아 여러 교육기관에서 교편을 잡다가 1959년 한국 선교에 나섰다.

1965년 삼육신학대학장에 취임한 그는 학문적 교류 확대와 학과 증설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66년 삼육신학대학은 삼육대학으로 교명 변경 인가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영어영문학과도 인가받았다. 이러한 교육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클라임스 학장은 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대학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힘썼다. 1966년 정일권 국무총리를 대학에 초청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도 긴밀히 교류했다.

▲ 조지 헤일리(하정식)
▲ 미국에서 젖소를 옮겨오는 헤일리 선교사의 모습.
▲ 삼육대 제해종 총장이 조지 헤일리(하정식) 선교사의 딸 린다 올라코프스키(Linda Olakowski)에게 발전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

조지 헤일리(1934~2024)는 삼육대의 농업교육과 실업교육을 발전시키고 삼육우유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1958년 미군으로 한국에 온 그는 이듬해 군 복무를 마친 뒤 삼육신학원 농장 관리자로 교육선교를 시작했다. 이후 초대 농업교육과장과 실업부 책임자를 맡아 대학의 농업교육과 목장 운영을 이끌었다.

특히 미국에서 젖소를 들여와 대학의 낙농사업을 본격화한 공적이 크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젖소 20마리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1973년에는 65마리를 항공편으로 들여왔고 1977년에는 120마리를 추가 수입해 목장 규모를 확대했다. 우유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유제품 생산을 확대하면서 대학의 재정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농업교육과 낙농사업을 연계해 실습 중심 교육을 발전시켰으며, 삼육기술전문학교 교장으로도 봉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았다.

관련기사▷젖소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온 선교사… 故 헤일리 선생 추모예배

▲ 삼육대 제해종 총장이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로버트 존스턴(장수돈) 전 신학과 교수에게 발전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 올해 96세인 존스턴 교수는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 로버트 존스턴(장수돈) 전 신학과 교수(왼쪽)와 부인 매들린 존스턴(장미도), 장남 폴 존스턴. 부부는 삼육대에서 교육선교사로 함께 헌신하며, 신학, 영어회화, 보건위생 등을 가르쳤다.

로버트 존스턴(1930년생)은 삼육대 신학교육의 학문적 토대를 다진 교육자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58년 한국에 입국해 삼육신학원 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1961년 학교가 4년제 정규 신학대학으로 인가받는 전환기를 함께하며 종교학, 성서고고학, 성서 원어 등을 가르쳤다.

그는 신학생과 목회자 양성뿐 아니라 신학 연구와 저술, 목회자 교육에도 힘썼다. 부인 매들린 존스턴(Madeline S. Johnston, 장미도) 역시 영어회화와 보건위생 등을 가르치며 교육사업에 동참했다.

1969년 한국을 떠난 뒤에는 미국 앤드류스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세계 각국의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했다. 2004년 은퇴한 그는 96세의 고령에도 이번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120년의 역사를 함께 기념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대학교회 금요예배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이끄시는 능력’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제해종 총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교지 확보와 건축기금 마련, 재정 자립과 교육체계 선진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구자의 헌신과 희생 위에 오늘의 삼육대가 세워졌다”며 “개교 120주년을 맞아 이들이 남긴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교육과 섬김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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