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뇌에 숨겨진 행복의 비밀

[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까 딱 5분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어느새 새벽 5시가 되었어요. 뭐에 홀린 거 같아요.” 그리고 잠이 들어 5교시 수업에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대학생의 말이다.

“네 살 된 아들이 눈을 자꾸 비비고 깜박거려 안과에 갔는데 근시가 많이 진행되어 안경을 써야 한대요.” 엄마는 둘째를 출산하고 맞벌이 생활이 버거웠다. 아빠는 밥 먹을 때마다 씨름하지 않으려고, 피곤한데 자꾸 와서 놀아 달라고 할 때마다 칭얼거리는 아들을 달래려고, 스마트폰을 아들에게 쥐여 줬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은퇴 후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 어느 중년 남편은 유튜브에서 정치시사 콘텐츠를 시청하다가 “스마트폰으로 야한 동영상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처음 음란물을 접한 후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동영상 앱을 켜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왜 온갖 것들에 중독이 되는가?

마음이 약하거나 의지가 박약해서일까?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많아서일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일까? 우울증에 빠져서일까? 수준이 낮은 쾌락주의자이기 때문일까? 그럼 평상시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면 중독되지 않을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뇌를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독될 수 있다.

1954년 캐나다 맥길 대학의 제임스 올즈와 밀러는 쥐의 뇌 특정 부위를 전기로 자극하는 실험 장치를 고안했다. 실험 중 쥐 뇌의 시상하부에 우연히 전기 자극이 되었는데 쥐가 전기 자극을 받았던 장소로 계속 돌아왔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어떤 쾌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 후 다시 쥐 뇌의 시상하부에 직접 자극을 줄 수 있는 지렛대를 개발했다. 그 결과 어떤 쥐는 한 시간 동안 7천 번씩 지렛대를 누르다가 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새끼 쥐가 옆에 있어도 돌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계속 그 지렛대를 눌렀다. 보상이 강한 약물의 경우 쥐는 먹이, 물 심지어 교미할 수 있는 짝조차도 무시하고 더 이상 지쳐서 누를 수 없을 때까지 지렛대를 계속 눌렀다.

이때 자극된 뇌의 부위를 쾌감 회로(보상 영역)라 정의했으며 이곳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 도파민이 전전두엽으로 전달될 때 쥐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도파민은 이 쾌감을 주는 행동을 기억하고 반복하게 만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쥐가 지렛대를 누르면 쥐는 쾌감을 느끼고, 이 쾌감은 쥐로 하여금 지렛대를 누르게 만들었다. 이러한 반복 행동은 쾌감 회로의 변형을 가져와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된다. 이러한 보상회로는 사람의 뇌에도 존재한다.

복권이 당첨되었거나 주식과 코인 투자에서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큰 수입을 얻었을 경우 이것은 큰 행운이기도 하지만 불행의 시작이요 중독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하게 되어 중독이 될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인간의 뇌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중독자가 될 수 있다. 연세대 김병규 교수는 중독의 시대를 사는 개인을 ‘호모 아딕투스(Homo addictus)’라고 이름 지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보상회로를 수시로 자극하고 중독에 빠진’다고 했다.

왜 청소년에게 중독은 위험한가?

우리의 뇌는 일반적이지 않은 쾌감을 억제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뇌는 이마에 있는 전전두엽에서 글루타메이트라는 물질을 분비하면서 이러한 쾌감을 차단하고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전전두엽은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며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등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모든 부분을 관장하는 인간다움의 뇌이다. 따라서 전전두엽은 다양한 감정과 욕망, 충동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스리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윤리와 도덕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게 한다.

그런데 전전두엽은 어릴 때는 아직 덜 발달되었다가 20대 초중반까지 계속 성장하며 발달하여 완성된다. 미성숙한 전전두엽을 가진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중독성 물질을 사용하거나 중독 행위를 할 경우에 전전두엽이 파괴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보상 회로에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파괴된 전전두엽은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제어 장치가 손상되어 마치 쾌락을 위해 지렛대만 누르는 쥐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독은 성인에 비해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훨씬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중독(좋지 않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산업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과거 농경 시대에는 거의 보기 어려웠던 성인병이 많아져서 건강 관리가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수많은 중독 물질(술, 약물, 니코틴, 카페인 등)과 중독 행위(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도박, 쇼핑, 성형, 미디어, 투자 등)로 인한 유해 환경으로부터 우리의 뇌를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

첫째, 우리가 중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중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는 매우 약하고 중독을 만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이 오면 그것으로부터 회피하거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그때 술이나 스마트폰이나 담배나 약물, 영상물을 찾는 대신 잠깐 멈춰 서서 ‘내가 뭔가 결핍감을 느끼고 있구나. 왜 그럴까? 일에 지쳐서 힘든 걸까, 마음이 힘든 걸까, 외로운 걸까, 일이 안 풀려서 낙심된 것일까 걱정 근심으로 불안한 것일까?”라고 자신의 마음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마음을 살피고 돌봐주어야 한다. 평생에 걸쳐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 관리도 해야 한다.

둘째,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싸움은 도망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강한 의지로도 중독을 이길 수 없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본인이 중독될 만한 상황을 피하는 사람이다. 중독과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지 분리하고 격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답이다. 휴대폰을 침실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기, 게임기를 창고에 넣기, 신용카드는 자르고 오로지 현금만 사용하기, 홈쇼핑 채널 보지 않기 등은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셋째,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성공했을 때, 비록 실패했을 때도 격려를 받으면 도파민이 즉시 뇌에 공급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긍정적 도파민이 많이 나오게 하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누고 베풀며 누군가를 도와줄 때이다. 넷째, 취침과 기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이 뇌 관리의 시작이다. 쉬는 수면과 정리하는 수면을 합하여 8시간을 자게 되면 뇌는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가 된다.

다섯째, 행복은 ‘한 방’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불꽃놀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다. 아무리 큰 기쁨이 있더라도 우리 뇌는 곧바로 적응을 한 후 잊어버린다. 오히려 행복의 역치가 너무 높아져서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 뇌가 되고, 부족한 것만 보면서 불만족스럽다. 작은 일을 차근 차근 성취하기,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 먹기, 운동하기, 한 잔의 시원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마실 때 도파민 수치는 증가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충만해진다.

월간 <가정과 건강> 1월호

[문학 속 가정 이야기] 이불 ‘안’은 위험해!

《데미안》

[노동욱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상상해 보라! 한겨울에 따듯한 이불 속에 엎드려 있다. 따끈따끈하게 올라오는 온수매트의 온기. 그리고 내가 읽고 싶은 책 한 권 혹은 넷플릭스. 거기에 귤이 한 아름 담긴 바구니까지.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그 안락함과 평온함에 파묻히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란 늘 이런 소소한 여유조차 사치일 만큼 녹록지 않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에서, 화자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눈 덮인 숲을 조용히 관조한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로지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눈송이 흩날리는 소리뿐. 화자는 눈 내리는 저녁 적막한 숲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언제까지고 멈춰 서서 이를 바라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promises to keep)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그에게는 “잠들기 전 가야 할 먼 길”(miles to go before I sleep)이 있다.

따듯한 이불로 나 자신을 돌돌 말아 꽁꽁 싸매고 싶은 유혹이 들 때, 슬프게도 내게는 늘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 되뇌인다. “나는 힘겹게 투쟁하여 이불에서 나온다. 이불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이불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것은 저 유명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Demian)》의 한 구절을 패러디한 것이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알’이라고 하는 세계를 깨뜨려야만 비로소 한 마리 새로 거듭나 창공을 자유로이 훨훨 날 수 있다.

그런데 알을 깨뜨리고 나오는 것이 ‘힘겨운 투쟁’에 비유될 정도로 그토록 어려운 이유가 뭘까? 알 껍질이 단단해서일까? 그보다는 알 속이 너무나도 따듯하고 안락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가혹한 것은 그 따듯하고 안락한 알을 ‘스스로’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알을 깨뜨리는 작업이 곧 힘겨운 투쟁에 비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깨뜨려야만 새가 될 수 있지, 남이 깨뜨리면 곧장 ‘계란 프라이’가 되어 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새에게 너무 따듯하고 안락한 환경은 그로 하여금 새가 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린 매일 아침, 잠의 유혹을 떨궈내고 깨어나, 따듯하고 안락한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것일 게다. 알을 스스로 깨뜨리지 못한 새는 알 속에서 괴사하고 만다. 새를 따듯하고 안락하게 보호해 주는 ‘알’이라는 세계가 역설적으로 새를 ‘죽이는’ 공간이 되고 만다. 그렇다. 따듯한 알 속이 가장 위험하다. 우리에게 이불 ‘안’이 가장 위험한 것처럼.

매미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어릴 적 여느 아이들처럼 곤충채집망을 들고 매미를 잡으러 그 울음소리를 쫓아다녔더랬다. 찢어질 듯 울어 제치는 매미 특유의 울음소리 때문에, 매미는 다른 곤충에 비해 찾기 쉽고 잡기 쉬운 곤충이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큰 소리로 울어대며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매미가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매미의 일생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는, 매미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매미는 성충이 되기 위해 유충으로 7년의 시간을 보내며 5번의 탈피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7년 만에 마지막 허물을 벗고 나온 매미가 살 수 있는 시간이라곤 불과 2주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컷 매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죽어라 울어 댄다. 그것은 짝짓기를 위한 처절한 울음이다. 죽어라 울어 대서 힘들었는지, 매미는 씨를 뿌리고 그렇게 죽어 간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자신의 씨를 뿌리기 위해 죽어라 울어 대는 매미의 모습이 맹목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한 허망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 인생도 매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일생을 거칠게 요약해 보면, 결국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생동안 무언가를 이뤄 내기 위해 죽어라 울어 대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 아닌가? 아니, 우리 인생이 꼭 매미의 그것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언가를 이뤄 내기 위해 매미만큼이나 그토록 간절하고 처절하게 울어본 적이 있는가?

매미에게 ‘허물’은 하나의 ‘세계’였을 것이다. 구태여 허물을 벗고 나와 고된 여름을 살아 내야 하는 그 엄연한 탄생을 앞둔 매미에게, 허물 속은 차라리 따듯한 이불과도 같은 안락한 공간이었으리라. 하지만 매미는 자신이 가치 있다 여기는 일생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힘겹게 허물을 벗고 나오는 것이다. 이런 성장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매미의 울음소리는 내게 더 이상 단순히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었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애처롭지만 숭고한 소리였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소리였다.

그래서 난 이제 더 이상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매미를 잡으러 다니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숭고한 울음소리를 원 없이 내다 갈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 그의 울음소리를 존중심을 담아 귀 기울여 들으며, 그에게서 삶과 죽음을 배운다. 자기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처절하게 울어 대는 모든 존재는 신비롭고 경이롭다. 그러니 우리, 처절하게 울어 대는, 우리 앞의 모든 존재를 존중하기로 하자.

‘알’이라는 세계를 ‘이불’이라는 일차원적 공간으로 한정해서 비유하지 않고, 우리의 사고나 관념 등으로 환원해 본다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데미안》은 자신의 사고나 관념을 단단한 알 껍질로 형성하여 그 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一針)이다. 내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요즘 말로 ‘꼰대’는 바로 스스로 알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탄생하지 않으려 하는 새와 같다. 《데미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방황하는 청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는 《데미안》의 한 단면만을 설명해 줄 뿐이다. 성장은 물리적 나이와 크게 상관없다. 모든 존재는 정신적·영적 성장을 필요로 한다. 성장에는 나이가 없다. 《데미안》은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 안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월간 <가정과 건강> 12월호

[시론] ‘에코 리터러시 교육’도 중요하다

[이국헌 신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이 등장한 시점에서 교육계의 화두 중 하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였다. 정보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은 과거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즉 단순한 문해력을 넘어서 이 시대를 이끌어갈 가장 유용한 능력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각 대학은 컴퓨팅 사고력, 코딩, 디지털 리터러시 등을 교양 필수 과목에 포함시켰다. 특별히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대학들의 경우 이런 과목들의 운영은 필수 요건이 됐다. 특히 올해 챗GPT의 등장과 더불어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더 고도화되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기술인본주의의 시대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핵심 역량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인 대외 환경을 고려할 때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은 기초 교양의 수준에서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필수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 덴마크 출신의 미래학자인 롤프 옌센은 일반 문해력에 기초한 근대사회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를 강조한 정보기술 사회로의 발전으로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인류 문명의 미래 전망은 유토피아적 희망보다는 디스토피아적 불안 요인이 더 커 보인다. 그 대표적 현상이 바로 기후 변화로 인한 지속가능성의 위기다.

인류가 직면한 이같은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는 ‘에코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 에코 리터러시(Eco Literacy)란 ‘인간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과 기후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삶의 양식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제인 구달은 자연이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오늘날 인간의 환경 파괴 수준은 그 회복력이 임계점에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 인해 기후 변화의 영향은 인간을 포함한 전체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에코 리터러시 교육이 중요해졌다. 이제 모든 대학은 디지털 리터러시에 집중하는 만큼 에코 리터러시에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이자 대학의 미래를 여는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코 리터러시의 중요성은 최근 정부와 민간 기업의 신산업 전략에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미래 먹거리 산업 신성장 전략에서 6대 산업으로 에너지, 바이오, 탄소중립 대응, 방산우주항공, 인공지능(AI), 스마트 농업 등을 제시했다. 미래 신성장 전략에 등장한 6대 산업 중 무려 4가지가 에코 리터러시와 관련이 있다. 글로벌 대기업인 삼성도 미래 신사업 투자 대상으로 반도체, IT와 더불어 바이오를 핵심 먹거리로 정하고 5년간 45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바이오-에코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핵심 분야에 속한다.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대학은 에코 리터러시 교육을 기초 교양과정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소비 억제와 재활용, 공유 경제 참여, 화석 연료 사용 제한과 친환경 에너지 활용, 탄소발자국 관리, 로컬푸드 이용 등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윤리적 책임 의식을 지닌 시민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바이오-에코 특성화를 통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특히 이 특화 사업에는 지자체와 산업체와 대학이 연계한 프로젝트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리터러시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는 생명과학의 발전과 에코 리터러시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기 위한 시민의식과 기술 교육이 이뤄지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6763

[대학通] 미래교육에 대처하는 새로운 자세

[김기석 교육혁신원 원격교육지원센터 팀장 / 콘텐츠학 박사]

코로나19 팬데믹과 ICT 기술 발전을 차례로 거친 이후 우리의 교육 환경은 새롭게 변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과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 태블릿PC는 대학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디지털 기기가 됐다. ICT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학습자 중심의 교육 형태를 원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또 다른 교육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푹 빠진 학생들, 더 이상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은 자극적인 콘텐츠에 시선을 돌린다. 교실이나 집에서 스마트폰을 24시간 곁에 두고 생활하기에 전 세계가 전통적인 교실 교육의 한계를 느끼며 교육 위기를 겪고 있다.

새로운 미래교실 전환으로 교육 위기 타파

교권 추락과 함께 공교육 위기가 대두되면서 한국 교육의 미래 방향이 위태롭다. 이에 최근 교육계에서 화두가 되는 화제로 ‘미래교실’이 있다. 미래교실은 하이브리드 교실과 비대면 온라인 수업, 인공지능을 도입한 학습자 맞춤형 교육 콘텐츠 활용 등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교육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이 점점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학교육과 평생학습 전반에 걸친 범용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종이와 연필로 공부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앱 서비스와 SNS, 인공지능 교육 콘텐츠 등 에듀테크를 기반으로 한 맞춤학습은 대학가에 새로운 교육환경을 제시하고 전통적 교수학습법을 탈피한 혁신적인 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 영역에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을 융합한 에듀테크는 디지털 기반의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학습자의 교육 만족도를 높이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 비대면 온라인 미래교실은 선생님의 주입식 수업이 아닌 학습자 중심의 학습으로 수준별, 단계별 세분화된 학습이 가능하다. 클라우드 교육 플랫폼 등을 활용해 학습자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개인 학습자는 인공지능으로 자신의 학습 진단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상의 사이버 개인 교육비서를 두고 개인 학습 진단을 받고, 인공지능 튜터에게 언제든지 효과적인 학습지도를 받을 수 있기에 학습 효율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주목받는 ‘플립러닝’

미래교실의 새로운 대안으로 ‘플립러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플립러닝은 ‘거꾸로 교실’로 불리며 학생이 교수가 제공하는 강의 영상을 먼저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강의를 듣지 않고 과제 참여나 토론 학습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처럼 수업의 방식이나 구조가 전통적인 방식과 다르며 지식 전달의 주체가 교수에서 학생으로 변화되는 형태다. 삼육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플립러닝’을 MVP 혁신 교수법에 통합시켜 교육을 진행해 왔다.

대학의 미래교육에서는 증강현실을 이용한 사이버 캠퍼스가 등장하고 교수 대신 1인 개인 학습자를 위한 인공지능 교육 비서가 학생의 학습지도와 학습관리를 서포트한다. 더 이상 교수의 역할이 중요해지지 않고 빅데이터 사이버 강의실에서 실시간 학습 피드백으로 더 전문적인 교육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무한 학습 공간으로서의 대학은 새로운 교육과 학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대학의 미래교육 공간은 실시간으로 사이버 온라인 교육 콘텐츠가 등장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어서다.

이에 인터넷 기반의 미래교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방법적 논의의 필요성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학습자의 지적 능력과 창의성, 융합적 사고력을 동시에 계발하고 진정한 자기주도학습 효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온라인 교육과 대면 교육, 효과적인 교육 콘텐츠의 개발 3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재택 학습, 온라인 교육, ICT 연계 학습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교수자는 신지식과 기술의 새로운 등장으로 빠른 교육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학습자는 미래교실의 격동적인 변화를 수용하고 스스로 맞는 학습 방식과 방식을 주체적으로 탐색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며 미래교실의 교육 효과를 높여야 한다.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유연한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학습 효과 극대화를 추구해 미래교육의 긍정적 변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6185

[정신건강 칼럼] 실직과 회복탄력성

[정성진 상담심리학과 교수]

“일자리를 얻은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늘을 날 것 같죠.” 어느 영화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주인공의 대사이다. 일자리를 얻는 것은 큰 행복감을 안겨 준다. 또한 직업만큼 인간의 기본 욕구를 여러 가지 충족시켜 주는 것도 없다. 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소속감을 느끼며, 사는 곳을 결정하고, 접촉 대상의 범위가 정해지며, 개성을 발휘하고, 성장과 자기실현을 이룬다.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와 역경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기 일에 만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일수록 심리적 안녕감 즉 행복감을 많이 느끼고 우울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덜 느낀다.

실직의 영향

반면에 일자리를 잃으면 여러 가지를 잃고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계획이 있어서 스스로 사표를 내고 다음을 준비하거나 정년 퇴임 후 여가를 즐기는 사람은 부정적인 영향을 적게 받을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데 계약 만료, 건강 문제, 회사 문제, 경기 악화 등으로 인해 실직하거나 퇴직하는 사람은 생계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우울감에 빠지거나 인간관계 갈등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가족을 부양하던 사람이 실직하면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2022년 고독사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고독사 사망자의 60%는 50~60대인데 이들은 대부분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면서 삶이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잃으면 생업뿐 아니라 생의 의미와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실직의 부정적인 영향은 모든 실직자에게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 실직 스트레스로 인해 위축되거나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실직을 도전의 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고 구직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실직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현실에 맞춰 적응하는 동시에 약점을 보완하고 역경을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실직을 기회로 삼아 오히려 개인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경험하고 재취업이나 창업을 하여 성공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진로 준비

실직의 ‘위기’에서 위험에 빠지지 않고 이를 기회로 삼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물론 높은 자존감, 긍정적인 사고, 유연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겠지만 여기서는 ‘진로에 대한 준비’를 살펴보고자 한다. 직업은 ‘보수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한 일을 가리키는 용어인 반면에, 진로는 ‘평생 일과 관련해 경험하는 모든 체험’을 가리킨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진로 준비는 아동과 청소년의 주제에 그치지 않고 모든 연령대의 문제가 되었다. 진로 상담은 학교의 일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업무로 확대되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진로를 파악하려면 크게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바로 자기 이해와 직업 세계의 이해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흥미)과 잘하는 일(적성), 자기에게 잘 맞는 일(성격)과 보람 있는 일(가치관)을 파악하고, 이 네 가지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직업의 특성, 직업에서 요구하는 것, 직업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요즘처럼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여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는 직업이 많아진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자기와 직업을 제대로 이해한 다음, 자기에게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신규로 입사해서 퇴직할 때까지 한 직장에서 일하던 ‘평생 직장’ 시대가 저물고, 이직을 여러 번 하지만 동일한 직업에서 성장하는 ‘평생 직업’ 시대가 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해 볼 때 10년마다 직업을 바꾸는 시대가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실직과 이직을 더 자주 경험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안전망 구축과 실업 및 이직 지원 제도 외에도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자신의 경력을 성찰하면서 다음 진로를 준비하는 역량이다.

필자의 지도 학생이었던 김현숙 박사가 학위 논문으로 ‘중년의 진로 준비도 검사를 개발했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와 직업 이해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정보 및 도구 활용, 문제 해결, 자기 계발, 자원 관리를 잘하는 기술을 터득하며, 직업 윤리를 지키고 적극적으로 직무에 임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왜곡된 직업 가치관과 노동 시장의 영향 속에서 입시 위주와 부모 위주의 교육을 받는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장년도 자기에게 맞는 진로 준비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들 따라서 열심히 달려서 명문대나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맞지 않아서 자퇴하거나 퇴사하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어느 강연가의 주장대로 성취보다는 자기 성찰을, 성공보다는 나답게 성장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실직에 대처하는 법

실직과 이직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자기 탓으로 돌리지 말되 실직의 진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좋다.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교육과 훈련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직자를 위한 지원은 자신의 권리이니 정확하게 알아보고 신청한다. 또한 덜 가져도 살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줄어든 수입에 맞춰 지출을 조정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여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실직으로 인해 마음이 힘들다면 친구나 지인 혹은 전문가에게 상담을 청하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직과 재취업을 도와주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지인들에게도 일자리 소개를 부탁한다. 즉각 일자리를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경력과 관련된 분야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다면 좋은 기회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일이 없더라도 휴식과 여가를 즐기며 활력을 충전해야 한다. 특히 실직자가 빠지기 쉬운 알코올 중독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행성 도박이나 투자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진로(進路)는 직진도 있고 우회도 있으며, 넓은 길도 있고 좁은 길도 있으며, 달릴 때도 있고 잠시 휴식할 때도 있다. 어떤 길을 가든지 회복탄력성을 발휘한다면 그 길은 마이웨이(my way) 즉 나의 길이고, 내일(tomorrow)로 이어지는 내일(my job)이 될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사도인 바울의 말처럼 풍족할 때도 부족할 때도, 재직 중에도 실직 중에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빌립보서 4장 13절)다는 믿음으로 성장을 멈추지 않도록 하자!

월간 <가정과 건강> 12월호

[문학 속 가정 이야기] 육아는 스릴러다

영화 《풀 타임》

[노동욱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거북은 장수하는 동물이다. 물론 거북의 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바다거북의 경우 평균 수명이 150년 정도로 인간보다 오래 산다. 2022년 한 기사에 따르면, ‘조너선’이라는 이름의 ‘세이셸 코끼리 거북’은 190세가 되어 육지에서 사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동물로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올해도 살아 있다면 191세가 되었을 조너선은 일생의 대부분을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알려진 남대서양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섬의 주지사 관사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너선이 주지사 관사에서 사는 동안 무려 31명의 주시사가 그 관사를 거쳐 갔다고 하니, 조너선은 세인트헬레나섬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거북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거북의 장수 비결을 분석해 냄으로써 인간 장수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분석 결과를 내 놓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과학적 분석 결과보다, 육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거북이 장수한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추측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왜일까.

거북은 알을 낳기 위해 해안으로 와서 모래사장에 알을 낳은 뒤 곧바로 바다로 돌아간다. 거북은 육지 위에 오랫동안 머물면 장기가 손상되기 때문에, 알을 낳자마자 바다로 돌아가는 것은 거북의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거북은 출산은 하지만 육아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 거북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알을 깨고 태어나야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모래사장을 엉금엉금 기어 바다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처럼 육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자녀를 강하게(?) 키우는 거북과는 달리, 해달은 하루 종일 아기 해달을 배 위에 얹은 채 물 위에 누워 헤엄치며 육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달이 먹이를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에는 아기 해달을 데려 갈 수 없으니 물 위에 놓고 간다. 아직 헤엄을 칠 수 없는 아기 해달을 어떻게 물 위에 놓아두고 갈까? 해달은 털을 손질하면 털가죽 속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 몸이 물 위에 뜰 뿐만 아니라, 털이 폭신폭신해지면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해달은 아기 해달을 물 위에 놓아두고 물속으로 잠수를 할 때면, 아기 해달의 털을 열심히 쓰다듬어 손질한다.

해달은 아기 해달이 물 위에 떠 있는 사이에 잽싸게 물속으로 잠수하여 아기 해달에게 줄 먹이를 잡아 와야 한다. 먹이를 잡은 후에는 일종의 요리(?)가 시작된다. 해달은 잡아 온 조개를 돌로 두들기거나, 두 조개를 서로 부딪쳐 깨뜨려 먹는다. 그렇게 아기 해달에게 먹이를 먹이고는 다시 아기 해달을 배 위에 얹어서 돌본다. 수달의 육아는 이러한 과정의 무한반복이다. 이렇게 고된 육아를 하는 해달의 평균 수명은 공교롭게도 20여 년에 불과하다.

해달의 육아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마치 ‘워킹 맘’ & ‘워킹 대디’의 육아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워킹 맘 & 워킹 대디는 ①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안거나 업고(아기 해달을 배 위에 얹고) 육아를 한다. ②직장에 일을 하러 갈 때에는(물속으로 먹이를 잡으러 갈 때에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열심히 어르고 달랜다(아기 해달의 털을 열심히 쓰다듬어 손질한다). ③아이를 유치원,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에 맡긴다(아기 해달을 물 위에 띄운다).

④직장에서 일을 끝마치고는 곧바로 집에 돌아와 아이를 찾는다(먹이를 잡고는 곧바로 물 밖으로 나와 아기 해달을 찾는다). ⑤요리를 하여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조개껍질을 깨뜨려 아기 해달에게 먹인다). ⑥아이를 다시 안거나 업고(아기 해달을 다시 배 위에 얹고) 무한한 육아의 굴레 속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해달의 육아 과정은 워킹 맘 & 워킹 대디의 육아 과정과 정확히 겹쳐진다.

축구 선수 박지성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축구가 더 어려운가요? 육아가 더 어려운가요?”라는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육아가 더 어렵다고 했더랬다. 현역 시절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그라운드를 종회무진 뛰어다니던 박지성 선수가 축구보다 육아가 더 어렵다고 하니,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심장이 필요한 걸까? 박지성 선수는 축구보다 육아가 더 어려운 이유에 대해, “축구는 종료 휘슬이 있지만, 육아는 종료 휘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육아는 그야말로 ‘풀 타임’인 것이다.

▲ 영화 《풀 타임》 스틸

이러한 맥락에서, 2022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풀 타임》(Full Time)은 제목을 아주 적절하게 잘 붙였다고 할 수 있다. 파리 교외에서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워킹 맘’이자 ‘싱글 맘’인 쥘리는 파리 시내의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쥘리의 일상은 두 아이를 깨워서 아침을 먹인 뒤, 아이들을 돌봐 주는 할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적인 대중교통 파업이 발생하여 쥘리는 늘 뛰어야만 한다.

직장에서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면서도, 그 와중에 자신의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이직을 위한 인터뷰 준비까지 한다. 일을 하는 중에는 대출 이자 지급을 독촉하는 은행에서 온 전화가 끊임없이 울려 댄다. 퇴근 후에는 다시 지하철, 버스 등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아이들을 찾아 먹이고 씻기고 책 읽어주고 재운 뒤, 침대에 드러누우면 마침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쥘리는 날마다 지각 위기에 놓여 절박한 표정으로 파리 시내를 전력 질주한다.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직장에서 실수를 하여 혼이 나고, 직장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아이 돌봐 주는 할머니에게 늦었다고 혼이 나는 쥘리는 언제나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간다.

영화의 ‘상영 시간’(running time) 88분의 상당 부분은 쥘리의 ‘뜀박질하는 시간’(running time)으로 채워진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장르가 궁금해진다. 이 영화는 소위 ‘스릴러 영화’라고 불릴 만한 요소는 하나도 갖추지 않았지만, 워킹 맘인 쥘리의 바쁘고 꽉 찬 일상, 아슬아슬한 일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스릴러 영화’가 되고 만다.

이 영화 《풀 타임》은 ‘육아는 곧 스릴러다’라고 관객들에게 말하는 듯하다. 출생율이 세계 최하위인 대한민국, 요즘도 출생률이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늘도 ‘해달’처럼, 쥘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워킹 맘 & 워킹 대디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의 말 한마디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월간 <가정과 건강>

[칼럼] 크리스마스엔 봉사를

[정구철 상담심리학과 교수]

크리스마스에는 일 년 동안 착하게 살아온 아이들이 보상으로 양말에 들어갈 정도의 선물을 받는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전통은 다들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3월에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나쁜 일을 멈춘 기억이 있는가? 나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4월에 “이런 일을 하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아요!”라고 하면서 어떤 행동을 멈추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다.

다 잊고 살다가 12월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면서 양말을 보면 문득 선물을 받기에 내가 합당한가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돌아본 나의 1년은 선물을 받기에 부족함이 많다. 더 놀라운 것은 12월에 이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크리스마스 날까지라도 착하게 살아야지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지켜본 적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 걸까?

크리스마스엔 왠지 누군가를 도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수많은 영화와 TV 등을 통해 학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 년간 남을 도운 적이 없어도 왠지 연말에는 누군가를 도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연탄 봉사와 같은 힘든 일은 못 하겠지만 기부금이라도 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연말에 겨우 한 번 한 봉사나 기부 행동이 과연 나를 착하게 변화시킬까?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심리라는 단어가 인간의 마음만을 연구하는 듯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측면이 더 강해서 심리학을 행동과학으로 분류한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을 직접 볼 수 없으므로 행동을 관찰함으로 마음을 추론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인간의 행동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들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가진 마음가짐 즉 태도와 그 마음 그대로 행동하는가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고 있다.

두 차례의 큰 세계 대전이 종결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포로들도 모두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준다. 그런데 일부 포로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다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대부분 포로 기간 중에 자신이 포로로 잡힌 나라에 의해 강제로 자신은 잘살고 있으며 그들의 이념이나 사상이 좋다는 편지나 방송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아마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는 포로 된 자로서 강제로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한 이들이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자신의 마음을 따라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따라 포로 된 나라에 남기로 한 것이다.

어이없어 보이지만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란 태도와 행동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불균형진 감정의 상태이다. 사람은 이러한 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태도를 바꾸어 행동에 맞추거나 행동을 바꾸어 태도에 맞춘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태도를 맞추어 인지부조화를 해소한다. 행동보다는 태도를 바꾸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만일 이미 벌어진 행동이 취소가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포로들이 썼던 편지와 방송들은 취소가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태도를 바꾸어 부조화를 해소하게 된다. 그래서 나쁜 사람들은 주변인에게 나쁜 일을 직접 하게 시킨다. 나쁜 말을 직접 하게 시킨다. 그 행동은 태도의 변화를 불러올 테니까.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을까?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처음 이 성경을 읽었을 때 이상함을 느꼈다.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비로소 제자가 되어 침례를 받는 게 아닐까?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달랐다. 제자로 삼고 침례를 받는 행동이 먼저였다. 침례를 받고 나서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교인이라는 사실이 공고하다면 다시금 회개하고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 모태 교인, 신앙 교육, 집사 및 장로 안수를 받은 행동들은 우리를 다시금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 번도 한 적 없는 봉사를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도 드는가? 일 년 내내 봉사를 생각해 본 적도 없다가 크리스마스에 한 번 헌금하고, 한 번 연탄을 나른다고 우리가 착한 사람이 될까?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행동하라.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행동하라.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도 변화될 것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실재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우리 마을에서 나만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재하신다. 우리 마음은 예수님을 맞이하기에 충분히 준비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먼저 작은 행동을 시작해 보자. 조금 일찍 나가서 집 앞을 청소하고, 새벽에 오시는 청소부 아저씨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드려 보자.

금요일에 시간이 조금 난다면 교회에 일찍 가서 청소를 해보자.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면 남들을 도울 수 있도록 특별 헌금을 드려 보자.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가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하더라도 일단 참석해 보자. 작은 행동들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듯 우리도 작은 봉사를 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설렘을 함께 느껴 보면 어떨까?

월간 <시조> 12월호

[교육칼럼] 노인을 위한 미래 교육 방식

[김기석 교육혁신원 원격교육지원센터 팀장 / 콘텐츠학 박사]

대한민국이 늙고 있다. 2050년 예상되는 한국 노인 인구는 1,800만 명으로 매년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나날이 증가하는 노인의 수에 따라 교육계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실버 교육과 평생 교육, 학습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노인을 위한 에듀테크 지원 사업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상황이다. 기술과 교육이 만난 에듀테크(Edu-tech)의 등장은 노인 대상 AI 교육, 노인 간호 및 돌봄 등 보건 의료 특화 서비스, 시니어 인턴 제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다.

초고령화 국가에서 시행 중인 노인 교육의 실제

노인 교육의 필요성은 초고령화를 이미 겪고 있는 해외 선진국 사이에서 유명한 화두로 제기되었다. 독일의 경우 동독과 서독을 통일 후 수요자 중심의 ‘프로 제니오레스’라는 자발적 노인 교육 조직이 등장했다. 이곳에선 노인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를 500개 이상 운영하는데, 지역 사회와 대학이 공동으로 교육 시설을 제공하고 연구 기획을 지원하는 등 노인의 건강한 교육 참여를 돕고 있다.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줄이고 활발한 사회 참여를 도움으로써 건강한 네트워킹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는 ‘골든 ID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니어 대학을 운영 중이다. 60세 남짓한 노인들이 무료나 저가로 주립대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낮에는 청년, 밤에는 노인 및 직장인이 학교에 다니며 평생 교육과 학습에 힘쓰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도 정부가 주도하는 ‘뉴호라이즌 프로그램’을 통해 시니어를 대상으로 취미, 역사, 문화, 레크리에이션 강좌 등을 열어 노인의 외로움을 덜어 주고 다양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성장을 돕고 있다. 이처럼 초고령화를 일찍이 맞이한 선진국에선 노인 교육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뜨겁다.

국내 노인 대학 운영 활성화 및 노인 교육 지원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노인의 평생 교육을 위해 어떠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까? 먼저 노인의 심리적, 신체적 특성을 파악하고 생애주기적 특성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노인의 경우 인생 후반의 노화 과정을 겪고 있기에 건강과 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이에 저렴한 수강료나 무료 교육 혜택을 기반으로 한 국가 차원의 공공 교육 서비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노화에 따른 제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취미 교육, 건강 관리 교육, 전문 노인학 등 노인의 수요에 맞는 특별 강좌를 개설해 공공 기관 및 지역 대학에서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건전한 취미 생활과 레크리에이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경제 교육, 학습 프로그램 등 노인의 수요에 맞는 전문가 강의를 운영하며 노인의 학습 역량을 계발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을 위한 에듀테크를 접목한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4차 산업 혁명의 필수 기술인 AI부터 증강 현실, 빅데이터, SW, 3D 기술, 로봇 코딩 등 ICT 기술에 대한 기초 교육을 시행함으로써 노인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도모하고 장노년층과 청년층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배움으로써 노인은 자기 효능감을 증진하고 성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및 지방 자치 단체, 대학 교육 기관의 공동 연대이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노인의 잉여 노동력과 생산성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평생 교육과 학습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해 제공하면서도 노인의 경제 참여와 건강한 사회 활동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공공 기관 교육 시설이나 각 지역 대학교에서는 노인 대상 프로그램과 맞춤형 강좌를 다수 마련하여 제공하고, 청년층과 장노년층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노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의 사회 참여를 높이며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인 대학 강좌 확대, 노인 교육 무료 및 저비용 프로그램 마련, 노인 인구의 교육 활동 및 사회 참여 증가를 위한 제도적 장치 설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모두가 합심하여 초고령화 사회를 건강하게 대응하고 다가오는 노인 문제들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월간 <가정과 건강> 11월호

[건강칼럼] 자녀의 성(性)교육, 이렇게 시작하세요

[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2016년, EBS(LIVE TALK)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성교육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조사했다. 1위는 지도하는 방법을 몰라서, 2위는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3위는 지식이 부족해서였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대부분의 부모는 아래의 경험에 동감할 것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아빠에게 아기는 어떻게 생겨?”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크면 다 알게 돼.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핀잔을 주었어요. 그냥 궁금해서 물었다가 무안하고 혼났던 기억만 남았죠. 그 이후에 다시는 부모님과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어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성은 비밀스럽고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각인시켰다.

“남자들은 짐승이고 도둑놈이야. 가까이하지 마라.”거나 “저거 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 불법 촬영을 당하는 거야”, “성기 만지지 마! 벌레 들어간다!”, “책임질 일 만들지 마라, 알겠어?”, “그러니까 늦게 다니면 안 돼.” 간혹 성에 대한 대화를 하시는 부모님들은 겁박하거나 금기 사항을 당부하므로 자녀들에게 성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했다.

왜 가정에서 성교육을 해야 할까?

모든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남자와 여자로서 성(性)적인 존재가 된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나와 다른 이성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이 넘쳐나는데 부모들은 아직 성교육을 할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텐데…’라며 성에 대해 무지한 것이 미덕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녀가 순수한 것은 좋으나 오염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자녀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성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부모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대중매체는 ‘내 몸을 가지고 내가 성관계하는 건데 뭐가 문제지?’, ‘혼전순결, 아직도 그런 것을 지킨다고?’, ‘동성애는 아름다운 사랑이야’, ‘너와 내가 동의만 하면 언제든지 성을 즐길 수 있어’라는 왜곡된 성문화를 우리의 자녀에게 주입하고 있다. 이렇듯 문화라는 이름으로 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들어올 때 자녀 스스로 필터링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역할은 부모의 몫이다.

성교육은 단순히 성행위에 국한되거나 성 지식을 전하는 것인가?

성교육은 생명 교육이자 자아 가치감 교육이다. 자녀를 임신했을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태교를 하면서 자녀를 상상하고 기대했던 이야기들, 출산의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자녀를 처음 만나 품에 안았을 때 힘들었던 모든 것을 다 잊고도 남을 환희와 희열에 찬 기쁨, 양육하면서 느꼈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녹화해 둔 영상 혹은 육아 일기와 같은 글을 읽어 주며,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표현한다.

양육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마음 아팠던 일들,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가족이 함께 오래 참고 이해하며 사랑으로 극복한 이야기들을 자주 나누면 자녀는 ‘나는 사랑받는 존재구나!’라고 인식할 것이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성교육은 자녀가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또한 성교육은 사랑에 따른 책임 교육이다. 피임 교육만이 진정한 책임 교육이 될 수 없으며, 청소년들에게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성적 권리를 주는 것은 자칫 성적 문란을 조장할 수 있어 위험하다. 윤리가 빠진 청소년 성교육은 독이 들어 있는 사과를 청소년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즉 성교육은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성 교육이다.

가정에서 어떻게 성교육을 할까?

첫째,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자녀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한다. “아들, 혹시 몽정했니?, 자위는 해봤어?”, “우리 딸, 이리 와봐. 성에 대해서 뭐 궁금한 거 없니?” 부모가 갑자기 이런 돌직구 질문을 하면 자녀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당황스럽거나 굉장히 민망할 것이다. 성은 민감한 주제라 어느 정도 관계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누기 어렵다. 평상시 자녀와 친밀해야 성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먼저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 보자. ‘유치원 또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친구들이 마음에 드는지, 자녀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성교육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이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친밀한 신뢰 관계를 형성한 후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대화로 넘어간다. 자녀 성교육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자녀와 일상을 함께 나누고 대화하는 것이 성교육의 시작이다.

둘째, 단발적 특강이 아닌 매일의 삶 속에서 스며들 듯이 성교육을 한다. 우리 집 거실에서 혹은 함께 식사하는 식탁에서도 가능하다. 자녀와 함께 TV를 보다가 스킨십 장면이 나오면 부모는 “야, 눈 가려”라고 하거나 슬며시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이때 부모가 “저 장면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니?, 넌 어떤 장면에서 마음이 불편했어?”라고 대화할 수 있다.

또한 남녀 간에 스킨십에 대한 생각들, 남자와 여자의 심리적인 차이와 에티켓을 주제로 대화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경청한다. 미혼모나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 “너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고 부모의 생각도 들려준다. 마치 식사를 하면서 “이 음식 맛이 어때?”라고 편안하게 대화하듯이 말이다.

셋째, 신체 기관의 명칭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자녀들과 성에 관한 대화를 할 경우 음경, 음순, 난소, 난자, 고환, 정자 등과 같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다. 다른 신체 부위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 주면서 생식기 이름은 왜 알려 주지 않을까?

막연하게 ‘소중한 곳’이라고만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원하지 않는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소중한 전부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깊은 우울에 빠지는 경우가 꽤 많다. 신체의 다른 부위를 다쳤을 때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생식기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 주자.

넷째, 자녀는 보통 10대가 되면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이 시기는 성호르몬의 왕성한 분비로 인해 2차 성징이 나타난다. 자녀가 월경, 사정 등의 변화를 경험하면 임신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관계와 임신, 피임, 성병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음란물과 성폭력에 대한 주제도 함께 다루면 좋겠다.

사이버 활용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성범죄 행위의 증거물인 불법 촬영물을 클릭하는 행동은 성범죄의 공범이 될 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너무 큰 상처가 됨을 알려 준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줄 때도 아래와 같이 약속을 할 수 있다.

“사이버상에서 누군가 너에게 말을 걸 때가 있을 거야. 어, 너 예쁘다. 멋있다. 너 우리 동네 살았니? 이런 말을 하며 너에게 접근을 할 경우 반드시 엄마, 아빠에게 말해 줘야 해. 혹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등을 돌려도 우린 무조건 네 편이야.”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를 하거나 사이버상에서 채팅 한 사람과 만나러 나갈 경우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먼저 성교육을 하지 않으면 왜곡된 성적인 문화가 자녀 마음에 깃발을 꽂고 점령할 것이다. 친구나 미디어를 통해 왜곡된 성정보가 들어올 때 필터링할 수 있는 분별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자녀의 마음을 먼저 선점하라. 준비된 부모만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성적인 오염에서 우리의 자녀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

월간 <가정과 건강> 11월호

[문학 속 가정 이야기] 타이거 마더와 스카이 캐슬

영화 《4등》

[노동욱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Amy Chua)는 ‘호랑이 엄마’(tiger mother)로 유명하다. 에이미 추아가 2011년에 출간한 《타이거 마더》(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는 교육방식과 관련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책은 에이미 추아가 하버드에 입학한 두 딸을 어떻게 교육했는지, 자신의 교육관과 교육방식을 담고 있다. 독자로서,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그 어떤 관점으로 이 책을 읽든, 나는 읽는 내내 그저 숨 막히는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

《타이거 마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이미 추아의 독선과 독단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동양 교육과 서양 교육을 이분화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서양 교육을 혹독하게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오만함, 자신의 방법만이 옳다는 아집, 결과만 중시하는 성과주의로 가득 차 있다. 자식을 잘 키워내겠다는 ‘호랑이’ 같은 집념은 자식에 대한 사랑인지, 자신의 욕심인지 분간할 수 없다. 에이미 추아는 딸들이 자신의 교육방식에 대해 극렬한 증오심을 발산하는 것조차 은근히 즐기는 듯 했다. 밤늦게까지 딸에게 악기 연습을 시키며, 저녁도 거르게 하고, 물을 마시러 가지도 못하게 하며,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게 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것이 교육인지 아동학대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는 에이미 추아의 자기 확신은 어떤 면에서 부럽기조차 하다. 옆도 뒤도 돌아볼 필요가 없고, 딱히 깊은 고민이나 성찰을 할 필요도 없으며, 아이들의 기분이나 정서, 인성 등은 살피고 돌아볼 필요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며 목표 달성을 위해 고집스럽게 자기 갈 길만 가면 되니까 말이다. 에이미 추아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식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두 딸은 ‘신동’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결국 모두가 부러워마지 않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타이거 마더 교육법’은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2011년 《월 스트리트 저널》에 〈왜 중국 엄마는 우월한가?〉(“Why Chinese Mothers Are Superior”)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는 에이미 추아는, 자녀를 따뜻하게 대하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서양 교육을 시종일관 조롱하며, 일방적 주입과 고된 훈련을 강조하는 중국식 교육을 예찬한다. 그런 그녀조차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더 나아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 학생들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 학생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김 씨네 아이들은 뭘 하는 줄 아니? 연습이야. 김 씨네 가족은 휴가를 떠나지 않거든. 그들이 우리보다 앞서 나갔으면 좋겠니?” 에이미 추아조차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K-교육’ ……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부끄러워해야 할까?

한편, 2018년에 JTBC에서 방영된 《스카이 캐슬》에서 보듯 그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타이거 마더》는 비판적 성찰보다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수용되고 소비된 측면이 있다. 에이미 추아의 중국식 교육방식과 한국식 교육방식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골프선수 박세리의 아버지는 딸의 담력을 기르기 위해 밤늦게 공동묘지에서 훈련을 시킨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되었다. 특히 서양에서는 이를 두고 ‘아동학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박세리 선수에 따르면, 공동묘지 훈련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골프장들은 대부분 산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내려가다 보면 아직 조명이 없던 시절이라 근처에 무덤이 보여 무서웠다는 말이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에서 공동묘지 훈련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박세리 선수 아버지의 훈련이 ‘신화화’ 되었다는 것이다. 훈련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은 삭제된 채, 공동묘지 훈련은 그저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한 일환으로 소비된 것이다. 실제로 박세리 선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후배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언니, 저도 공동묘지 훈련 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동묘지 훈련은 자식을 세계적인 골프선수로 키워내기 위한 일종의 보증된 훈련과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영화 《4등》 스틸

영화 《4등》은 우리나라의 성과주의 교육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4등’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영 선수 준호는 순위권 밖인 4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등에 목말라 있는 준호의 엄마는 광수를 수영 코치로 채용하는데, 광수는 준호에게 폭력을 가하며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고, 엄마는 아들의 좋은 성적을 기대하며 이러한 폭력에 눈 감는다. 드디어 준호는 수영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여 은메달을 목에 건다.

준호의 은메달 소식에 모처럼 화기애애한 준호네 집. 그런데 준호의 동생 기호의 질문은 그런 집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사실 이것은 준호네 집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이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부모들에게, 교육자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의 불편한 현실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일 것이다.

폭력이 이처럼 단순히 물리적 폭력뿐이겠는가? 수많은 학생들,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폭력이야말로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에 비해 비(非)가시적이고 그 폭력의 경계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쉽게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이라는 절대적 지상과제 앞에서 우리의 교육은 오늘도 여전히 교육과 아동학대의 경계에 우뚝 서 있는 담벼락 어디쯤을 아슬아슬하게 곡예 하듯 걸어가고 있다.

월간 <가정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