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에세이] 베토벤 7번 교향곡 제4악장

2024.12.04 조회수 1,241 커뮤니케이션팀

[이관호 스미스학부대학 연구원 / 철학자]

패션디자이너는 한 해를 열두 계절로 나누어 작품을 기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날씨의 영향을 받는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가을 특히 낙엽이 지는 늦가을을 타는 편이다. 대략 10월 말에서 11월까지는 평소보다 좀 더 고독해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공원이나 가로수길의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곤 한다.

가을은 열매를 맺고 수확의 풍성함을 전하지만 이내 스러짐의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상승과 하강을 빠르게 겪으면 우리의 정서는 차분해지고 유행하는 것보다는 잘 변하지 않는 것에 관심이 가는 듯하다. 봄이나 여름에 비해 신간보다는 스테디셀러나 인문 고전을 펼치게 되고 평소에는 뜸하게 찾던 클래식을 먼저 듣게 된다. 올가을에는 벤치에서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베토벤의 음악을 틀 것이다.

클래식 초심자라도 베토벤의 ‘영웅’(3번), ‘운명’(5번), ‘전원’(6번), ‘합창’(9번)처럼 후대인이 제목을 붙인 곡들은 일부라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특별히 베토벤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5~6년 전 가을 클래식 해설가로 꽤 알려진 어느 피아니스트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을 물었고 그는 몇 가지를 추천했는데 그중 교향곡으로는 베토벤 7번, 그 가운데서 4악장을 꼽았다. 우울할 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파티를 열 때, 분위기를 좀 더 고조시키고 싶을 때 자신은 빠른 템포의 이 음악을 튼다는 것이다. 헤어진 날 청취했는데 즉시 나는 4악장의 마니아가 되어 버렸다.

▲ 뉴욕 센트럴파크의 베토벤 흉상. 사진=envato elements

요즘 읽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책에 따르면 같은 예술이라도 음악과 미술은 ‘철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그림들을 살펴보자.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물론 어떤 인물을 보고 그린 초상화이다.

초현실주의 작품인 뭉크의 ‘절규’는 어떤가? 노르웨이 오슬로의 어느 언덕에서 친구와 길을 걷던 뭉크는 해 질 녘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죽을 것 같은 피로감을 느끼면서 난간에 기댔다고 한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의 상황을 그린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뭉크는 실제로 귀를 막고 절규하는 사람을 보았을 수도 있고 자연의 소리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환청을 들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회화는 세상 안에서 본 것이나 들은 것을 그대로 혹은 상상력을 가미해서 시각적으로 그려 낸 것이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이 세상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베토벤이 창조한 음은 모델이 되는 인물이나 절규하는 누군가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음악은 그 배후에 숨겨져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의 원인이 되는 존재의 목소리를 작곡가가 음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세상의 근원자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은 미술과 달리 소재도 형체도 없는 무형으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베토벤의 작품은 ‘모나리자’나 ‘절규’처럼 옥션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판매될 수 없다. ‘모나 리자’를 보기 위해서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야 하지만 음악은 누군가의 지휘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의해 그 순간 구현되었다가 사라질 뿐이다. 베토벤이 오선지에 그린 악보는 하나지만 그것이 연주될 때는 그 어느 것도 동일하지 않다.

▲ 사진=envato elements

나는 수년간 베토벤 7번 교향곡 4악장을 들으면서 유튜브의 힘을 실감했다. 이 곡은 무수히 많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연주를 간접적으로나마 듣기 위해 레코드 가게에서 구매해야 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한 곡의 여러 버전을 갖춘 클래식 애호가가 되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튜브는 많은 공연을 즉시 검색할 수 있게 해 주고 나중에는 굳이 찾지 않아도 알고리즘으로 추천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려 준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곡을 정말 수도 없이 듣게 되었다. 어느 필하모닉인지, 지휘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이렇게 음색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한결 깊어진다. 게다가 나보다 이 곡을 많이 들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별로 영양가 없는 자긍심까지 올라오는 건 덤이다.

가을에는 분위기 있는 가요와 팝, 재즈도 어울리지만 그에 더해 클래식 한 곡은 어떨까?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브람스 등 우리를 근원의 세계로 인도할 명작들을 지휘자가 그리는 아름다운 곡선 아래 수십 명의 연주자가 혼신을 다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정서가 올라오는지 느껴 보자.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벤치에 앉을 필요는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 뼘의 손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시 무엇을 들을지 고민된다면 검색창에 ‘베토벤 7번 교향곡 4악장’을 검색해 보자.

월간 <가정과 건강>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