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뷰

‘시각장애인’ 윤선미 원우, 두 번째 박사·여섯 번째 학위 취득

2025.08.14 조회수 48 커뮤니케이션팀

‘우수학위논문’ 선정도… 시각장애인 라이프스타일과 만성질환 연관성 규명

▲ 14일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윤선미 박사(오른쪽)가 이금선 지도교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 개의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단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어렵다고만 하죠.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면 끝은 반드시 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올해 환갑을 맞은 중증 시각장애인 윤선미 박사가 삼육대 대학원 중독과학과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이자, 여섯 번째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수여식은 14일 교내 요한관 홍명기홀에서 열렸다. 그의 논문은 ‘우수학위논문’으로 선정돼 학문적 완성도와 사회적 기여를 동시에 인정받았다.

윤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시각장애인의 인구사회학적 요인, 중독행위, 정신건강 및 라이프스타일과 만성질환 간의 연관성’(지도교수 이금선)이다.

국내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보건·중독·라이프스타일 융합 연구는 전례가 드물다. 그는 전국의 50세 이상 중증 시각장애인 450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설문을 진행했다. 성별·연령·경제활동·교육수준, 음주·흡연 행태, 스트레스·우울 정도, 식습관 등을 조사하고, 고혈압·간질환·뇌혈관질환·당뇨병·신장질환 등 만성질환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 14일 학위수여식에서 윤선미 박사(오른쪽)가 제해종 총장과 함께 학위기와 우수학위논문상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각장애인 중 고혈압이나 당뇨 없으신 분을 거의 못 봤어요. 뇌졸중과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례를 숱하게 보면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습관과 정신건강을 반드시 함께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번 연구가 향후 보건교육과 제도 설계의 기반이 되길 바랍니다.”

연구 과정은 험난했다. 한 사람당 15분이면 끝날 설문이 대부분 1시간을 넘겼다. 장애 원인을 묻는 순간, 응답자들은 자신의 삶의 역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 80세 고령 응답자와는 1시간 45분간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하루 11명을 인터뷰해 11시간을 채운 날은 멀미가 날 정도였다고.

선천성 백내장으로 태어난 그는 망막박리와 녹내장 등으로 시력이 점차 악화돼 현재는 색과 형태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다. 시각장애인 보조기기를 사용하지 못해 논문 작업의 90% 이상을 학습도우미와 활동지원사의 도움에 의존했다. 도우미가 바뀔 때마다 문서양식과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 했고, 사비로 인력을 충원하는 부담도 컸다.

“스스로 발등을 찍었죠. ‘뭐 하러 이걸 시작했나’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낸다’는 마음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마태복음 19장 26절)는 말씀을 붙잡고 버텼습니다.”

▲ 윤선미 박사가 삼육대 커뮤니케이션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 박사의 학위 여정은 폭넓다. 1987년 삼육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2004년 보건학석사(M.P.H.), 2010년 신학석사(M.Div.), 2015년 목회학박사(D.Min.)를 취득했다. 2020년에는 삼육보건대 사이버지식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사를, 이번에 보건학박사(Ph.D.)를 더해 총 6개의 학위를 갖게 됐다. 5개 학위가 삼육대에서 나왔다.

“삼육대는 저를 만든 곳입니다. 신앙을 키워주고 ‘진리·사랑·봉사’의 정신을 심어준 곳이죠. 여러 장학 제도와 장애학생 지원 정책이 있었기에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윤 박사는 학위를 “인생이라는 집을 짓는 도구”에 비유한다. “도구가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요. 한쪽이 힘들면 다른 분야로 숨을 고르며, 배움을 즐겼어요. 기회가 올 때마다 잡았고,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환갑 선물로 6번째 학위이자 두 번째 박사학위를 스스로에게 안긴 그는 ‘120세 시대’, 봉사할 분야와 할 일이 많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난 4월 말에는 서울 휘경동 ‘화이트케인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2대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전공 분야의 강점을 살려, 건강·보건 분야에 특화된 동료상담, 권익옹호, 자립생활지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건강이 있어야 자립도, 권익 찾기도 가능하니까요. 논문 작업을 하며 인터뷰했던 450명 중 벌써 몇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드릴 수는 없지만, 마음의 빛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이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천연치료·통증관리·수치료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1994년부터 미국, 유럽, 아시아 등 40여 개국과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이어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며, 새로운 봉사의 길을 넓힐 계획이다.

‘혹시 7번째 학위에 도전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질린 듯 손사래를 쳤다. “학위는 이제 족합니다. 대신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요. 초등학교 때 눈이 나빠져 포기했거든요. 학위가 아니라 제 취미를 위해서요. 물론, 그게 학위가 된다면… 거절하진 않겠어요.”

글/사진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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