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② 삼육동의 심장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2026.04.08 조회수 71 커뮤니케이션팀

전교생 600명 시절, 3천석의 비전을 품다

▲ 1980년대 초,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교70주년기념관(대강당) 전경

190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동한 삼육 교육 이념은 1948년 이곳 삼육동에 터를 잡으며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삼육 120년 : 공간의 기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겨진 건물의 역사를 발굴하고, 낡은 도면과 빛바랜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대학의 뿌리를 다시 깨워 기록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기독교 고등교육기관으로 출발한 우리 대학에 있어 교회는 단순한 부속 건물이 아닌 ‘대학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교직원과 학생이 한자리에 모일 예배당조차 마땅치 않았다. 1955년에 지어진 낡은 강당은 날로 성장하는 대학의 규모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재림교회 한국연합회는 선교 70주년을 맞이하는 1974년, 1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대강당 건립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후 건축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4억원을 웃도는 막대한 건축자금이었다. 재정적 압박에 더해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탓에 인허가 과정 역시 험난했다. 국방부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물론, 구청과 시청, 국무총리실, 청와대까지 거쳐야 했던 복잡한 행정 절차 앞에 대강당 건축의 꿈은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듯했다.

수포로 돌아갈 뻔했던 이 숙원사업을 몇 년 뒤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당시 지도자들의 굳건한 신념이었다. 교회는 곧 대학의 심장이었고, “그리스도를 높이고 순종하는 영적 교육의 구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였다. 대학의 존재 이유이자 고유한 정신적 유산을 지켜내겠다는 이 선명한 사명감이 멈춰 있던 건축에 다시 불을 지폈다.

1979년, 마침내 부지에 대한 ‘대학시설 용지 지정고시’를 이끌어내며 극적인 반전을 맞는다. 그해 6월 4일 정부의 최종 건축 허가를 받고, 불과 사흘 뒤인 6월 7일 정오에 역사적인 기공식 첫 삽을 떴다.

▲ 1979년 6월 7일 정오 선교70주년기념관 기공식. 선교 70주년을 기념하며 참석자들이 숫자 ’70’ 모양으로 대열을 갖춰 기념 촬영을 했다. 본 이미지는 저해상도 원본을 AI 업스케일링 기술로 정밀 복원해 당시의 현장감을 선명하게 되살렸다.

놀라운 것은 당시 설계 도면에 담긴 ‘비전의 크기’였다. 김종화 학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당초 계획을 대폭 수정해 무려 3천석 규모의 매머드급 강당을 짓기로 결단했다. 전교생이 600여명에 불과했던 시절, 무모하리만치 거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는 머지않아 도래할 대학의 성장을 예견한 혜안이었다. 불과 10여년 뒤, 우리 대학이 2천500명 이상의 학생을 품은 종합대학으로 급성장하면서 그 담대한 비전은 정확히 현실이 되었다.

뼈아픈 시련도 있었다. 부족한 건축비 탓에 학교 직영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고, 보상금 청구 소송에 휘말리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산재보험 등을 통해 고비를 넘기며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 준공 직후 선교70주년기념관 모습

외형은 웅장하게 솟아올랐으나, 빈 공간을 채울 의자 구매 비용도 턱없이 부족했다. 의자 하나를 놓는 데 필요한 금액은 1만원. 우리 대학은 전국의 성도들과 해외 동문들에게 ‘대강당 의자 헌납 캠페인’을 호소했다. 1979년 10월부터 이어진 모금 행렬을 통해 무려 1천917석의 의자가 마련됐다. 헌납된 의자마다 기부자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그 숭고한 의미를 더했다.

1980년 9월 25일 준공 및 개관식을 거행한 선교70주년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총 940여 평의 위용을 자랑하며 우리 곁에 섰다. 총 5억5천338만원이 소요된 공사비는 한국연합회 지원금과 교인들의 헌금, 그리고 학교 실업부의 수익금으로 충당됐다.

건축 당시 실무자들은 태릉선수촌,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이화여대 강당 등을 직접 순회하며 각 공간의 장점만을 모아 내부와 천장 설계에 반영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시대를 앞선 안목은 오늘날 이곳이 채플과 종교행사를 넘어, 대규모 문화 공연과 외부 대관까지 완벽히 소화하는 공연장으로 자리 잡는 든든한 초석이 됐다.

▲ 오늘날의 선교70주년기념관
▲ 오늘날의 선교70주년기념관 내부

이후에도 끊임없는 내외부 리모델링을 통해 변모를 거듭한 이곳은, 현재 전면 대형 LED 스크린과 최첨단 조명, 음향 시스템까지 완비하며 명실상부한 전문 콘서트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건립 당시 ‘그리스도를 절대로 높이고 순종하는 최고의 영적 교육의 구현’을 목표로 세워졌던 선교70주년기념관.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삼육동의 심장으로 고동치며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찬양, 그리고 문화를 품어내고 있다.

글·자료 최환철(박물관)
기획·편집 하홍준(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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