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가정 이야기] 빽 투 더 패밀리
[노동욱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교수]
“시간은 환상이다. 점심시간은 두 배로 그렇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의 저자로 잘 알려진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말이다. 근무 시간 한 시간은 그리도 더디게 지나가면서, 점심시간 한 시간은 왜 두 배로 빠르게 지나가는 걸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워얼, 화아, 수우, 모옥, 금, 퇼”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평일은 ‘워얼~, 화아~, 수우~, 모옥~’하며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지나가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은 ‘퇼!’하고 순식간에 지나감을 뜻한다.
이처럼 시간은 상대적이다. 물리적인 시간은 늘 동일한 속도로 흐르고 있지만, 지루하고 힘든 시간은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토끼처럼 뛰어간다.
시간여행에서 ‘테스 형’을 만난다면
애덤스의 말처럼 시간이 ‘환상’(illusion)이라면, 시간여행은 ‘환상적’(fantastic)이다. 2022년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다. 이 드라마에서 순양그룹의 김현우 실장은 죽은 뒤 순양그룹 회장의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환생한다는 점이다.
미래의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는 진도준에게 과거에서 살아가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이자, 동시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된다. 그는 분당이 허허벌판일 때 아무도 눈독 들이지 않던 분당 토지 5만평을 할아버지인 진양철 회장에게 요청하여 결국 240억 원을 벌어들인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Amazon)이 소위 ‘떡상’하기 전에 아마존 주식을 대거 매입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나홀로 집에》(Home Alone)를 수입하여 개봉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간여행 모티프는 문학 작품,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주 사용되며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시간여행을 이야기할 때 H. G. 웰스(H. G. Wells)의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타임머신』의 초반부에서 ‘시간여행자’는 사람들에게 타임머신의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자 한 청년이 이렇게 말한다. “호메로스와 플라톤에게서 직접 그리스어를 배울 수도 있겠군요.”
호메로스와 플라톤뿐이겠는가.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말이 떠오른다. 힘겨운 인생살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애타게 ‘테스 형’을 부르짖던 가수 나훈아도 떠오른다. 만약 웰스의 ‘타임머신’이 일찍이 현실화 되었다면, 잡스는 살아생전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꿈을 이뤘을 것이고, 나훈아는 소크라테스를 만나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며 투정을 부렸을지 모른다.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부르며 인생의 질문들을 던지는 나훈아의 노래, 《테스 형》이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철학적이기까지 하다면,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잡스의 말은 그 자체로 상당히 자본주의적이다. 나훈아에게 소크라테스가 인생의 방향성을 물을 수 있는 존재라면, 잡스에게 소크라테스는 그와 함께 한 시간조차 경제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기업 가치를 고려해 봤을 때, 잡스의 말대로라면 소크라테스와의 점심을 위한 시간여행의 가치는 약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 21세기 자본의 상징인 잡스에 이르러, ‘시간은 돈’이라는 명제가 일반화 된 현대사회에서 시간여행조차 돈의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된 듯하여 마음 한편이 아릿하다.
《빽 투 더 퓨처》에서 《어바웃 타임》까지
만약 당신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맨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처럼 과거로 돌아가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겠는가? 아니면 스티브 잡스의 염원처럼 명사(名師)를 만나 지혜를 구하겠는가?
그런데 의외로 시간여행 모티프를 활용한 영화들 중에서 ‘가족’의 가치를 주제로 한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간여행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빽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7)에서 주인공 마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한다. 과거 여행에서 마티는 아직 결혼 전인 자신의 부모님과 대면한다. 마티가 과거 여행 중 알게 된 사실은, 만약 변수가 생겨 자신의 부모님이 결혼을 하지 않게 되면 마티 자신을 비롯해 누나와 형 모두 미래 사회에서 소멸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마티의 과거 여행은 ‘가족 사수 작전’으로 바뀐다. 마티는 숫기 없는 자신의 아버지를 독려하여 어머니와 무사히 결혼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한다. 《빽 투 더 퓨처 2》(Back to the Future Part 2, 1990)에서 마티는 자신의 미래 자녀들이 범죄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될 처지에 놓이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번에는 미래로 향한다.

2013년에 개봉하여 큰 사랑을 받았던 《어바웃 타임》(About Time)은 《빽 투 더 퓨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잔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지만, 가족의 가치를 주제로 한 시간여행 서사라는 점에서 《빽 투 더 퓨처》의 계보를 이어받고 있다. 주인공 팀은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비밀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원할 때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다. 팀은 과거로 돌아가 망쳐 버린 순간을 바로잡기도 하고, 인생의 여러 갈림길을 다양하게 체험해 보며 그 중 최선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부러운 능력인가.
그런데 이처럼 ‘환상적’인 시간여행에도 큰 제약이 따른다. 어느 날 팀은 여느 때처럼 시간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자신의 자녀의 모습이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시간여행 중 변수가 작용하여 자녀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시간여행에 대한 팀의 관점이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시간여행이라는 ‘환상적’인 능력보다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서의 가족이 더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 모티프를 통해 유일무이하고 대체불가능한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데프콘의 노래 《힙합유치원》의 가사처럼, 자녀에게 “넘버 원(일등)”이 되라고 말하기보다, “온리 원”이어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 보자.
월간 <가정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