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졸업전시회… ‘존엄의 공간, 삶을 설계하다’
‘인권건축’ 주제로 39명 졸업작품 선보여
대상은 박수진의 ‘기억의 지층을 걷다’

삼육대 건축학과(학과장 류한국)는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서울 관훈동 마루아트센터 그랜드관에서 제25회 졸업전시회 ‘존엄의 공간, 삶을 설계하다’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인권건축’이라는 학과 고유의 대주제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권리를 건축적으로 실현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담아냈다. 졸업을 앞둔 39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각자의 문제의식과 공간적 해석을 녹여낸 작품을 출품했다.
출품작에 대한 심사는 디엔비건축사사무소 김형준 사장과 노현 소장이 맡아,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등 총 7개의 우수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대상은 박수진 학생의 ‘기억의 지층을 걷다’가 선정됐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대상지로 설정했다. 국가 주도의 여성 인권 유린의 상징으로 남은 공간을 기억의 장소로 재구성한 프로젝트다. 해당 시설은 1973년 설치돼 1996년까지 운영된 이른바 ‘낙검자(성병 검사 탈락자) 여성 강제 수용소’로, 최근 철거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수진은 성병관리소의 보존과 미군기지촌 피해자 인권기억관 설계를 통해 오랫동안 외면된 여성 인권유린의 역사를 공간적으로 기록하고, 그 집단적 트라우마를 건축적으로 드러냈다. 단순한 전시관을 넘어, 방문자가 직접 신체적·감정적으로 경험하며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성찰에 이르는 구조적 기억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박수진 학생은 “집단기억, 트라우마, 치유, 사회적 연대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고 되새기며, 인권과 책임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공간이 다음 세대에게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새기는 증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우수상은 김민준의 ‘RE; 메커니즘 트랜지스터(RE; Mechanism Transistor)’가 선정됐다. 재개발 정체로 슬럼화가 가속되는 영등포역 일대에 대한 대안적 해법을 제시한다. 폐자재 재활용 공장, 모듈러 생산 라인, 물류허브, 문화 공간을 한데 묶은 다층형 복합 플랫폼을 제안했다. ‘수거→재생→조립→재배치’로 이어지는 공정이 한 공간에서 순환되는 구조로, 근미래 수도권의 재건축·철거 현장에서 모듈러 허브로서의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또 다른 최우수상작인 차원빈의 ‘공간의 틈, 일상의 흐름’은 서울 성수동 한복판에 요양원을 제안한다. 도시와 돌봄이 만나는 새로운 구조로, 탈시설화와 사회적 연결성 회복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응답했다. 성수동의 유연한 골격은 이러한 변화에 적합한 장소성을 지닌다. 포켓처럼 남겨진 여백과 틈처럼 생긴 골목을 중심으로 퍼지는 흐름은 요양원이 고립이 아닌 연결의 구조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외에도 △신동준의 ‘뉴 멀티컬처럴 코어(NMC: New Multicultural Core)’ △이아연의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이지원의 ‘메멘토 아버(Memento Arbor)’ △허은서의 ‘도시의 공백에서 여백으로’ 등이 우수상을 받았다.

류한국 학과장은 “졸업생들이 던진 질문은 건축이 단순한 공간 조성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며 “삶의 사각지대를 재조명하고, 도시 속의 소외된 공간을 전환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와 포용의 건축을 고민한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창의적 해결방안이 돋보였다. 이는 단순한 졸업작품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에 대한 응답이자 미래를 향한 비전 제시”라고 평가했다.
이어 “학생들이 제안한 이 존엄의 공간들이 도면과 모형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실현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졸업전시회는 대한건축사협회를 비롯해 정림건축, 희림건축, 간삼건축, 디엔비건축, 범건축, 인선건축, PAG건축사사무소 등 국내 유수의 건축사무소들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지난 8일 열린 오프닝에서는 대한건축사협회 유준호 부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전하며, 젊은 건축인들의 도전과 성장을 격려했다.




글 하홍준 hahj@s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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