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정신건강 칼럼] 자녀는 사춘기인데 엄마 아빠는 갱년기래요

2024.02.14 조회수 448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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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자녀가 사춘기일 때 부모는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갱년기를 보냅니다. 정서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인 부모가 한 집안에서 만나게 되니 매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 자녀의 목소리가 변하고, 하룻밤 자고 나니 송송 솟아 나온 턱수염, 예고도 없이 찾아온 생리로 팬티가 붉게 물들고, 봉긋 솟아오르는 가슴이 살짝 아파지는 등 몸의 변화로 불편하고 혼란스러워한다면 갱년기인 부모는 깊어만 가는 주름살, 파 뿌리처럼 희끗희끗 자라나는 흰머리, 탄력을 잃어 가는 피부, 처지는 뱃가죽과 여기저기 몸이 아파지면서 미래가 불안하고 건강에 자신이 없어집니다.

사춘기 자녀의 정서 상태도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널뛰기합니다. 갱년기인 부모도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오면서 만사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공허하며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사춘기나 갱년기 때 공황장애, 강박장애, 우울증, 불안으로 불면증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게다가 사춘기의 자녀는 성호르몬의 왕성한 분비로 이성 교제를 갈망합니다. 강한 성적 충동이 일어나면서 성적 자극을 주는 영상물이나 이성에게 정신을 빼앗깁니다.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외모를 꾸미는 데 집착하거나 더 나아가 랜덤 채팅방과 같은 매체를 통한 만남으로 위험한 성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갱년기인 ‘사추기’도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유혹이 가장 강렬한 시기입니다. 권태로웠던 결혼 생활의 활력을 찾기 위해 외도와 같은 일탈을 하거나 불법 영상물에 심취하면서 가정의 위기, 중년의 위기가 시작됩니다. 사춘기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부모의 외도를 자녀가 먼저 발견하고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인생의 첫 격동기를 맞이한 사춘기 자녀와 인생의 가을 앞에서 허무와 공허감으로 방황하는 갱년기 부모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불안하게 서 있습니다. 판(거대한 땅덩어리 조각)이 충돌하는 지점은 지진 발생 위험이 큰 것처럼 사춘기 판과 갱년기 두 판이 충돌하면서 가정은 대혼란 그 자체가 됩니다. 마치 뇌 안에 브레이크 역할을 했던 이성이 고장 난 것처럼 자녀의 감정 폭풍과 부모의 감정 폭풍이 만나 거대한 태풍이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이때 부모는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지 못하고 사춘기가 된 자녀의 문제점을 비난하며 불평을 쏟아냅니다. 불안정한 사춘기 자녀는 위기의 중년기를 보내는 부모님의 거울과 같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보면서 느슨해지던 마음을 조이고 흐트러지던 삶의 태도를 다시 추슬러야 합니다.

사춘기 없이 어른이 되면 안 되나요?

청소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의 손에 핸들링(?) 되던 아이들이 저항하고 거부하면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순종적이던 자녀가 무섭게 변하면 부모도 당황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고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큰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못마땅한 행동을 고치려 달려들기 바로 전에 사춘기라는 특별한 기간이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애는 사춘기가 없나 봐. 말도 너무 잘 듣고 참 착해.”하는 분들에게도 결국 언젠가는 자녀의 사춘기가 찾아옵니다. 오히려 부모에게 억눌려 있다가 성인이 되어 사춘기가 찾아온다면 더 힘든 늦깎이 사춘기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춘기는 단순히 부모를 힘들게 하는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가 아닙니다. 조용히 지나간다고 사춘기를 건너뛰는 것도 아닙니다. 사춘기는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성인기 삶의 질과 행복이 결정됩니다.

사춘기에는 아이에서 성인으로 독립하면서 몸도 성장하지만 자기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세우는 중요한 발달 과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의견을 부정하고 무조건 반대해 보고 기존의 관행이나 질서에 역행하는 일을 하기도 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아이가 엄마의 모태에서 태어날 때 피를 흘리며 탯줄을 자르는 분리의 고통이 있었다면 사춘기는 부모와 정서적, 심리적인 분리를 하는 또 다른 산고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변신하는 것처럼 인생의 중요한 과업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골칫덩어리인가요? 선물인가요?

사춘기 자녀는 중년의 부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녀도 몸과 마음이 성장하지만 동시에 부모도 성숙하도록 도전을 주시고 단련시키십니다. 때로 자녀는 부모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넣으면서 오래 참고 인내하도록 마음 그릇을 키울 뿐 아니라 겸손하도록 훈련을 시켜 줍니다. 사춘기는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님이 사춘기 자녀로 인해 겪게 되는 경험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면 “지혜가 자라고 사랑스러워”지는 성숙한 부모·자녀 관계라는 귀한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면서 심리적인 재조정, 리모델링 과정을 겪는다.”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중년의 위기가 아닌 중년의 성숙함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 주면 됩니다. 부모가 먼저 불안하고 우울해하면 아이들의 심리 상태는 더 불안하고 더 많이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부모의 본보기가 중요합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성장하려는 부모의 몸부림을 자녀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녀도 성장의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는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모두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제2의 기회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걱정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녀의 방을 청소하다가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라이터가 나왔습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너 담배 피우니? 넌 어쩜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있어. 내가 못 살아 정말.”라고 자녀를 비난하며 부모의 불안을 쏟아 놓는 대신 식사 후 자녀에게 대화할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오늘 엄마가 청소하다가 라이터를 발견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 줄래?”라고 물어봅니다. 자녀가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갈 때 곧바로 “야!”하고 소리를 지르기보다 “아빠가 얘기하는데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면 내가 무시당한 것 같아서 상처받게 된단다.”라고 마음을 얘기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거칠게 말하고 반항적으로 말하면 강하게 보인다고 착각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가 버릇없이 말할 때 부모도 화를 내면 자녀는 부모의 화만 기억하지 부모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이성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있다가 다시 말하자.” 부모가 화를 내면 감정에 휘둘려 객관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감정을 다스린 다음 정중하게 표현합니다.

성 문제는 다른 어떤 세대들보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성적 욕망이 절정에 달하는 이 시기 아이들의 욕망은 쉽게 자극받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자극하는 덫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춘기 아이들은 가끔 동성연애에 빠지거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연애하면 성적이 떨어져. 대학교에 가서는 얼마든지 이성 교제해도 돼.”라고 말하는 대신 “너는 그 이성 친구와 신체적인 접촉을 어디까지 허락할지 생각해 보고 만나는 거니?”, “넌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남자 친구가 네게 키스하고 네 몸을 만지면 어떻게 할 거니?”라고 질문하고 한계를 설정하도록 명확히 말해 줍니다. 그리고 만약 그 이상의 일이 발생하면 부모와 함께 상의하도록 요청합니다.

아들에게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특징과 충동의 차이로 인한 오해로 벌어지는 실수와 성적 행동에 따른 책임과 생명 존중에 대해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전달하도록 합니다. 누군가의 인권을 유린하고 잘못된 성의식을 조장하는 불법 영상물을 보유하거나 시청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단호하게 단절하도록 합니다.

그 외에도 부모 자녀 간에 좋은 접점을 찾아야 할 많은 주제가 있는데 이것은 소통이 될 때 가능합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부모 자녀 간에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믿음이 전제된 이해와 경청은 사춘기 자녀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습니다.

월간 <가정과 건강>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