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의술로 독립운동 헌신…김창세 박사를 아시나요

2021.05.10 조회수 390 홍보팀
share

순안의명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韓 최초 보건학박사
이종근 교수, 김창세 박사 생애 조명한 논문 발표

삼육대 전신인 순안의명학교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인 최초의 보건학박사 김창세의 삶을 조명하는 논문이 국내 대표적 기독교계 학회지에 게재돼 눈길을 끈다.

이종근 교수(삼육대 명예교수 / 구약학)는 한국기독교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20호에 ‘한국 공중보건학의 선구자 김창세의 삶과 죽음 – 80여 년 만에 빛을 본 회고록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기독교학회는 한국구약학회, 한국신약학회, 한국조직신학회, 한국교회사회, 한국실천신학학회 등 13개 학회가 가입해 구성한 학회. <한국기독교신학논총>은 매 호마다 각 분야별 대표 성격의 논문 7-8편을 선별해 공개한다.

해당 논문은 한국 공중보건학의 선구자이자 현대의술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창세 박사의 삶과 죽음을 그의 사후 80여 년 만에 발견된 회고록(김창세, 어느 한국인 의사의 무제(無題) 회고록 / Kim, Chang Sei, Untitled Memoirs of a Korean Physician)을 중심으로 발전시킨 전기적 연구이다.

생존한 그의 아들 Arthur Kim(현 91세)의 장남 Greg Kim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 회고록은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Stanford Hoover Institution)에 소장돼 있다. 영어로 기록했는데, 세월이 흐르며 상당 분량의 글자가 훼손됐지만 근래 해독을 완결했다.

이종근 교수의 논문은 김창세 박사의 출생과 성장, 재림신앙 및 삼육교육, 상해 홍십자병원에서의 의학 수련 및 미국 유학 등 기독교적 시각에서 그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특히 국내외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김창세 박사가 직접 기록한 자료에 기초해 공중보건 활동을 통한 독립이라는 측면에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되짚는다.

김창세 박사의 삶에 관한 이 같은 총체적 연구는 그가 우리나라 공중보건의 기초를 놓는데 일조하며, 의학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함에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그의 행적에 대해 제3자가 단편적으로 기술한 것에 그쳤다. 반면, 이종근 교수의 이번 논문은 김창세 박사 본인이 쓴 회고록과 기고문 등에 기초해 그에 관한 실제적이고 전체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해 의미를 더한다.

김창세 박사는 192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보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천재 의학자. 일제강점기에 공중보건을 비롯한 세균학 및 위생학 등의 씨앗을 뿌린 우리나라 의학계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서이자 주치의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서 인정받는 의사였지만, 개인적 안일보다는 의술을 통한 독립이라는 공익적 가치에 삶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국공합작의 결렬로 인한 중국의 극심한 혼란과 미국의 경제 대공황 파고 앞에 우울증을 앓다 뉴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논문은 자살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 회고록과 유럽 여행 후 수차례에 걸쳐 「동광」지에 기고한 기행록 그리고 그의 초기부터 기술했던 자전적 내용에 근거해 저술했다. 김창세 박사의 삶의 족적뿐 아니라 그의 성장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총회, 삼육대, 시조사 등 교단 기관이 등장한다.

이종근 교수는 논문에서 “오늘날 전 세계는 미증유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뇌하고 절망하고 있다. 한국도 의료제도나 공중보건/공중위생(public health) 분야에서 일부 앞서 있다고 회자되기는 하지만, 방역과 거리두기 등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앞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김창세는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민지를 일깨우고 공중보건 활동을 통한 독립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도전한 인물이다. 특히 전염병 위기 상황에서 공중보건학과 세균학 및 예방의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분야의 토대를 놓는 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회고록에 의하면 김창세 박사는 일제강점기 민족 수난의 질곡에서 일어나 거의 영웅적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중국, 미국의 당대 최고 의학교육 기관에서 수학했다. 유럽의 앞선 공중보건 관련 연구소와 의료기관 및 저명인사를 만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귀국해 민지를 일깨우기 위하여 기행문을 발표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강의 및 대중강연 등으로 공중보건 활동을 펼치고 백성들을 계몽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논문을 끝맺으며 “본 연구는 김창세 박사의 미완 회고록에 기초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 관한 부분적인 일차적 연구”라며 “회고록의 절반 이상의 추가 자료가 빛을 보아 김창세 박사의 전체 삶에 관한 후속연구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의 짧고도 굵은 삶과 죽음은 한반도에서 세기적 격랑 앞에 굴절되고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자화상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재림마을 뉴스센터>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창세 박사는 우리나라 예방의학의 기초를 놓는데 기여한 인물이자 ‘의술을 통한 독립’이라는 애국충정으로 살다간 재림교인”이라고 소개하며 “전대미문의 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재림교회 특히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청운의 뜻을 품고 도전하는 삶에 대한 담론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편, 이종근 교수는 적목리 신앙유적지를 가평군 향토문화재로 지정하는데 공헌했으며, 일제강점기 믿음 가운데 민족혼을 일깨웠던 최태현 목사와 임기반 장로 등의 사료를 발굴해 이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는데 일조했다. 특히 김창세 박사의 자손들과 오랜 기간 교류하고 연구하며 한국에서는 최초로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국가보훈처에 신청하여 국민훈장 건국포장을 추서받도록 주도했다.

해당 논문은 한국연구재단학술지 사이트한국기독교신학논총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열람할 수 있다.

재림마을 http://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category=1&no=10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