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가정 이야기] 사랑을 먹다
[노동욱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교수]
먹는 것은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 건강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 의미보다 더욱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단계로 내려가면, 먹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 때문인지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표현에는 유독 먹는 것과 관련된 것이 많다. 예컨대, 우리는 생계 수단을 “밥줄”이라 부르고, 생업을 “밥벌이”라 부르며, 생존권이나 기득권을 두고 싸우는 것을 “밥그릇 싸움”이라 부른다. 진로를 고민할 때도 “앞으로 뭐 먹고 살지?”라고 하며, 자식을 부양하는 것도 “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식구(食口)는 ‘함께 밥 먹고 사는 입’이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말은 ‘먹는 것’과 ‘사는 것’이 나란히 쓰인 말로, 이 두 가지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예증한다.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은 물론 인류 보편의 일이겠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예부터 먹는 것을 유난히 중요하게 여겼던 국가다. 그래서 오죽하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인사말부터가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그렇게 만나서 인사하고는 헤어질 때 다시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바로 ‘K-인사말’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겪는 해프닝 중에,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는 인사치레의 ‘K-인사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언제 밥 먹지?’ 궁금해하며 오해가 생긴 해프닝이 종종 있다고 한다. 만나서 식사 여부를 묻고 헤어지면서 밥 한번 먹자고 기약하는 나라인 한국은 그만큼 먹는 것에 ‘진심’이다.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송강호는 살인 용의자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툭 내뱉는데, 이는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영화 역사에 길이 남는 명대사로 자리매김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후 《살인의 추억》이 외국에 수출될 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를 번역하는 것을 두고 “인류 최대의 난제”라고 칭한 바 있다. 이를 어떻게 번역했든지 간에, 한국 사람들만이 느끼는 ‘밥’에 대한 정서를 온전히 살리지는 못했으리라.

사랑의 메타포로서의 음식
우리나라가 음식을 중요시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한국전쟁과 뒤이은 빈곤한 시절을 겪은 경험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음식이 정(情)과 사랑을 표현하는 메타포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정서는 대표적으로 가수 god의 노래 《어머님께》(1999)에 잘 담겨 있는데, 이 노래가 IMF 구제 금융이라는 ‘어려운 시절’에 발표되어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노래의 가사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에는, 가난해서 못 먹던 시절 짜장면이 싫다는 하얀 거짓말로 자식에게 음식을 양보하는 어머니의 먹먹한 사랑이 담겨 있다.
과거 못 먹던 시절에는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못 먹었다면, 요즘은 챙겨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 못 먹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메타포로서의 음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故) 신해철의 노래 《도시인》(1992)에는 현대인들의 바쁜 삶이 음식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아침엔 우유 한잔 / 점심엔 FAST FOOD …… THIS IS THE CITY LIFE.”
현대인들의 삶이 이러하니, “어머니의 된장국”은 그리운 음식으로 마음에 와 닿을 수밖에 없다. 다이내믹 듀오의 노래 《어머니의 된장국》(2008)은 바쁜 현대인들이 느끼는 “어머니의 된장국”의 가치를 잘 말해 준다. “야근을 밥 먹듯 아침은 안 먹듯 하며 소화제를 달고 사는 더부룩한 날들 …… 냉장고엔 인스턴트식품 / 혀끝에 남은 조미료 맛이 너무 지겨워 / 그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바로 어어어어어어 어머니의 된장국”

어머니가 양보하신 짜장면과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국에서 보듯, 어머니, 음식, 그리고 사랑은 삼위일체로 자주 소환되는데, 그중 절정은 아마도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의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2021)일 것이다. 이 책은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자우너의 자전적 이야기다. 자우너는 한국인 엄마를 둔 한국계 미국인으로,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한아름 마트’의 약자로,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그녀가 H마트에서 우는 이유는, 슈퍼마켓에 진열된 한국 음식이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상기시키면서 엄마 잃은 상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그 상실감을 치유해 나가는 매개물도 음식이다. 예컨대,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그는 것은 그녀의 “새로운 치유법”이 된다. 그녀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의 기억이고, 추억이며, 회상이고, 사랑이다. 자우너는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한다고.
이처럼 『H마트에서 울다』에서 음식은 “우리의 유대”이자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체성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2023)에서 음식을 통한 ‘우리의 유대’는 더욱 확장적인 의미를 띄며, 이는 타인의 정체성을 포용하고 환대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켄 로치 감독은 난민과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음식을 소재로 풀어낸다. 이 영화는 영국의 한 폐광촌을 배경으로 하는데, 정부에서 탄광 문을 닫으려 하자 노동자들은 연대하여 시위를 한다. 그때의 구호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이다. 그러나 함께 먹으며 연대하는 그들의 단단한 정체성은 다른 이들의 정체성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오자 잔잔했던 마을에 혼란이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난민들에게 “우리” 애 챙기기도 바쁘다며 “너희” 나라로 꺼지라고 소리친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리’와 ‘너희’의 경계는 이처럼 명확하다. 그러나 펍을 운영하는 TJ는 펍에 딸린 방을 난민들에게 개방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도움과 한 끼 식사가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싶어. …… 전쟁을 피해서 우리 동네에 온 새 친구들을 따뜻하게 맞고 싶어. 이 공간에서 같이 어울리고 나란히 앉아서 함께 밥 먹고 싶어.” 음식을 통해 ‘우리’와 ‘너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살지만, 사실은 음식에 담긴 사랑을 먹고 사는지 모른다.
월간 <가정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