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화가 카유보트는 원조 파리지앵이며, 부와 능력을 함께 쥔 금수저이자 엄친아였다. 그는 법대를 졸업해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화가가 된다. 카유보트는 법관인 부친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유산을 동료 화가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가난과 성병을 액세서리처럼 달고 살았다.
카유보트는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등 배고픈 친구들의 먹거리, 생활비를 챙겼고,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그들의 그림을 수점씩 사 주었다. 르누아르의 명작 ‘뱃놀이’의 모델로도 서 주었다. 부유한 화가 카유보트는 요트, 카누, 피아노 등 고급 취미를 가졌었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이지적이고 고상하다.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의 배경은 생라자르역 근처 ‘더블린 광장’이다. 파리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오스만 남작이 중세의 비좁은 골목길, 낡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신도시로 건설한 곳이다.

212.2X276.2cm, Oil on canvas, 1877,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카유보트는 말끔하고 상쾌한 공기의 비 오는 신도시에 파리지앵들이 오가는 순간적인 장면을 절묘하게 포착해 마치 핸드폰으로 찍은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미술사에서 인상파에 속하지만 사실주의에 가깝다.
인물 표정과 의상, 비로 인해 물이 고여 반사되는 보도블록, 파스텔 톤 노랑, 핑크, 연보라색의 세심한 건물 표현은 세밀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다. 카유보트는 ‘파리를 가장 매력적으로 그리는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은 대작으로 두 인물을 사람과 같은 크기로 그렸다. 집중이 잘되는 아카데믹 한 십자형 구도는 가로등과 지평선으로 화면을 등분하고, 중앙의 건물은 소실점이 두 개인 이른바 이점 투시 화법을 적용했다.
카유보트는 동료 화가들이 여성을 주제로 삼은 것과는 달리 남성의 뒷모습을 곧잘 표현했다. 뒷모습은 애잔하고 인생을 다시 한번 훑는다. 미술 비평가 칼 위스망은 “그는 현대인의 존재, 예술과 인생의 우수함을 잘 표현한다.”라고 했다.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46세에 요절한다. 그리고 그는 소장했던 인상파 그림을 모두 파리시에 기증하도록 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파리시는 당시 기득권층인 아카데미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다 받지 않고, 일부 작품을 거부한다. 하지만 몇 년 후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다시 상속자들을 수소문하여 그림을 수집하고 파리국립미술관에 소장했다.
필자는 한때 프랑스 거주 시 생라자르역을 자주 드나들었기에 이 그림의 배경인 더블린 광장을 수없이 가 봤다. 주변에 갤러리 라파예트백화점, 오페라 극장이 있다. 이곳에 오면 항상 착한 카유보트를 기억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카유보트의 남다른 예술 향기와 따뜻한 성품이 비처럼 촉촉이 내린다.
글 김성운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Art & Design) 학과장, 디자인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18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00회, 파리퐁데자르갤러리, 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시섬문인협회 회장,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