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정신건강 칼럼] 질병과 회복탄력성

2023.09.15 조회수 813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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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상담심리학과 교수]

생로병사의 비밀

우리 인생을 네 글자로 요약한다면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서 늙어 가다가 병들어 죽는다고? 성장기도 있으니 생(生) 다음에 장(長)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생(生)은 ‘태어나다’라는 뜻도 있고 ‘살다’라는 뜻도 있으니 성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더욱이 성장이 멈추면 노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표시는 잘 나지 않지만 25세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니 인생을 생로병사라고 요약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장수 TV 프로그램인 ‘생로병사의 비밀’은 2002년 10월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제작되어 방영되고 있다. 기획 의도는 “건강지수와 행복지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익한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건강 정보 말고 생로병사에는 ‘비밀’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생로병사 중 그 어느 것도 본질상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는 태어났고 늙어 가고 병에 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래서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난 것을 두고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고,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실존적 불안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노화를 막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에 좋은 습관을 실천하는 것은 좋지만 인위적인 노화 방지에는 한계가 있고 가족력이나 환경 요인 때문에 질병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질병과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은 “역경을 경험했거나 경험하면서도 이전의 적응 수준으로 돌아오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시 말하면 오뚝이나 갈대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능력이다. 회복탄력성은 사는 내내 중요한 능력이지만 생로병사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병(病)’뿐이다. 신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태어난 다음에는 다시 탄생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고, 죽은 다음에는 다시 사망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 노화를 늦출 수는 있지만 노화되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직 질병만이 잘 치료받고 회복된다면 발병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질병 치료와 회복탄력성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자가 많다.

환자의 태도는 질병의 진행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살고자 하는 욕구를 보이는 사람은 이러한 태도 덕분에 면역 체계가 강해지고 질병에 더 잘 저항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치료될 것이라는 희망이 강한 환자가 질병을 극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심각한 질병을 진단받았을 때 회복탄력성이 부족하다면 환자는 두려움과 불안과 부정적인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되어 저항력이 약화되고 질병이 악화될 수도 있다.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

그렇다면 의학적인 치료를 잘 받는 것 외에 어떻게 질병에 대처하는 것이 회복탄력성과 치료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가? 우선 질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진단받은 환자들 가운데는 현실을 부인하거나, 두려움에 압도되거나, 격분하며 삶과 신을 저주하거나, 벌받은 것이라며 죄책감에 빠지는 이들이 있다. 가장 좋은 태도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포기하고 운명에 자신을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도전에 응하되 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질병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므로 가능하다면 전문가에게 질병의 특성과 치료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 이해하고, 투병도 성숙과 인내를 훈련하는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둘째, 마음이 명랑해지도록 연습하면 좋다. 여전히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기관과 장기로 인해 감사하며 내가 완치 혹은 생존 확률에 해당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과 주변 사람을 돌아보지 못했다면 선량한 마음을 품기 위해 노력하고, 건강에 좋고 활력 넘치는 장소를 방문하며, 명랑한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관리하고, 감사한 사람과 일에 대해 표현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있다.

셋째, 희망을 품되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질병을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회복을 꿈꾼다면 건강 상태가 향상될 것이다.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하지만 완전한 회복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삶을 괜찮게 누릴 정도로 회복되면 좋겠다고 기대를 조정하는 것이 좋다.

넷째,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과 친구의 지지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최고의 비법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이어 가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질병과 통증, 두려운 감정, 회복의 희망에 관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큰 힘이 된다.

다섯째, 적절한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아픈 사람이라도 대부분은 계속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다. 독서, 글짓기, 가사, 산책, 봉사 등 체력에 적합한 활동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자각은 치료 촉진에 도움이 된다.

치유하시는 하나님

생로병사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는 원래 노화와 질병과 사망이 없었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이 세 가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목적과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며, 죽음을 경험할 수 있지만 부활과 영생을 선물로 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늙고 병들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곁에서 사랑하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치료하는 여호와”(출 15:26)이신 하나님에게 치유와 회복을 기도로 요청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회복탄력성 증진과 질병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만드시고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월간 <가정과 건강>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