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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36℃] “내 경쟁력은 ‘소신’…길게 보고 한우물 파겠다”

2024.01.30 조회수 1,640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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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36℃] (8)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 양소영(영어영문학부 13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민주당의 무너진 도덕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지난해 5월 12일.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거액의 가상자산(코인)을 보유하고 국회 상임위원회 도중 거래해 논란이 된 이른바 ‘김남국 코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민주당 내 청년·대학생 당원들이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 혁신을 촉구했다. 당시 기자회견을 주도한 이는 양소영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 우리 대학 동문(영어영문학부 13학번)이다.

이 일로 양 동문은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당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숱한 폭언과 사퇴 압박을 받았고, 심지어는 단톡방에 불시에 초대해 욕설을 퍼붓는 ‘카톡감옥’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배신자’라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 회복과 정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최초의 여성 대학생위원장이면 가만히 있어도 베네핏(혜택)이 돌아올 수 있는데 굳이 왜 지지층과 결별하고 당에 쓴소리를 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생위원장으로서 내가 부여받은 소임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소임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청년 정치인으로서 한 우물을 파면서 굴복하지 않고 내 길을 개척해 나갈 생각이다.” 유력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양 위원장을 ‘2023 차세대리더 100인’에 선정했다.

양 동문은 앞선 누구도 택하지 않은 길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자신이 ‘창업’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험난한 정치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청년 정치인이자 여성 정치인 양 동문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청년정치의 등용문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는 당내 20대 대학생과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조직이다. 민주당은 대학생위원회뿐만 아니라, 여성·노인·청년·장애인·노동·농어민·을(乙)·사회적경제·소상공인 등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0개 전국 상설위원회를 두고 있다. 상설위원회 위원장은 당 최고위원회와 함께 중앙당 지도부 체제의 일원이며, 일정 기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전국대학생위원회가 특별한 이유는 당에서 가장 젊은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 초년생들이 기반을 닦는 청년정치의 등용문 같은 곳이기도 하다. 실제 전용기(비례대표), 장경태(서울 동대문구을) 의원 등이 대학생위원장을 거치며 정치인으로서 몸집을 키웠다. 양 동문은 지난 2022년 11월 17일 위원장으로 선출돼 올해 11월까지 2년 임기를 보내고 있다.

─ 위원장으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는데 소회는.

“정말 ‘순삭’이었다. 정치권이라는 게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매일 발생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후회되는 지점, 또 미흡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개선점에 대해서도 고민한 시간이었다. 후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많은 성장을 했다.”

─ 그간 어떤 성과가 있었나.

“정말 많지만 대표적인 걸 꼽자면 전국대학생위원회를 ‘DPU(Democratic Party University)’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한 것이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과 정의당에도 대학생·청년 위원회가 있는데, 모두 앞에 당 이름을 붙여 정당의 색깔을 명확하게 한다. 하지만 요즘 20대를 만나보면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심하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 또한 꺼린다.

‘DPU’라는 단어를 보면, 민주당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이처럼 우리 대학생위원회는 어떤 정파성이나 정치색을 드러내기보다는 대학생과 청년 세대의 진정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보통 일과는 어떤지.

“대학생들을 만나는 게 가장 주된 일이다. 학기 중에는 전국의 대학에 다니면서 행사와 간담회, 지부 모임 등에 참가한다. 방학 중에는 지금 인터뷰를 하는 곳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출근해서 회의나 정책 개발에 주력하고, 여러 언론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 지난해 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서 양소영(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동문이 당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치권의 숨겨진 신의 직장

─ 정치인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사회 선생님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5공 청문회’ 영상을 보여주셨다. 광주 출신이라 김대중 석 자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그 영상을 보고 정치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팀원들은 좀 트렌디한 얘기 하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 어쩔 수 없다(웃음).

그때 부모님께 정치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여쭤봤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어른이 되면 정치에 참여해야겠다는 막연한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마자 처음 한 게 정당에 가입한 거였다.”

─ 어려서부터 정치를 꿈꿨으면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을 법도 한데.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이 ‘쓸데없는 생각 마라’ ‘굶어 죽는다’고 엄청 만류하셨다. 외동딸이라 부모님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순 없었다. 대학까지는 자식 된 도리는 해야겠다 싶어서 부모님이 원하시는 삼육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억압하면 갈망이 더 커진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한이 생기더라.

졸업하고 부모님께 교육대학원에 간다고 하고 등록금을 받아서 정치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런데 1학기 때 걸려서 그 이후로 지원을 못 받았다. 학자금대출 받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정당 활동도 마음껏 했다. 가슴이 뜨거웠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에 이바지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꼈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 직업은 현실이고 생계인데.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나이를 점점 먹다 보니 ‘엄마 말이 맞는다’ ‘이러다 굶어 죽겠다’ 싶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정치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찾아봤다. 그런데 길이 그렇게 많진 않더라.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거나, 지자체에 들어가거나, 중앙당 혹은 시도당의 당직자가 되는 길이 있다.

보좌관으로서 밑에서 일을 배워보고 싶은 분은 찾지 못했다. 가장 중립적인 직책에서 다양한 당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사무직 당직자 공채에 도전했다. 적게는 수십대 일, 많게는 수백대 일까지 지원자가 몰리는데 3수 끝에 합격하고, 2020년 민주당에 공식 입사하게 됐다.”

▲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위한 민주당 대학생위원회 기자회견. 양소영(가운데) 동문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 당직자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하다.

“쉽게 말하면 당의 사무직 직원이다. 월급을 받으며 정치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종이다. 보좌관은 4년 임기인 국회의원과 함께 계속 선거를 치러야 하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하지만 당직자는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가 보장된다. 당이 해산하지 않는 이상 60세까지 정년을 채울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하나님이 택한 직업이라고 한다 (웃음).”

─ 당직자로 월급 받으면서 직장 잘 다니다가 돌연 선출직(전국대학생위원장)에 도전했다.

“집에서는 또 난리가 났다. 당시만 해도 당직자가 선출직에 나가려면 사직해야 했다. 위원장은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잘 다니던 직장 왜 그만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러냐고 주변에서 많이 만류했다.”

─ 왜 그랬나.

“현실정치에 대한 열망이 잦아들지 않더라. 대학생위원회 활동을 계속하면서 위원장을 꿈꿨다. 그런데 남자 선배들이 ‘이번엔 내가 할게. 넌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매번 밀렸다. 입후보는 만 29세까지 가능하다. 재작년이 딱 만 29세가 되는 해였다. 안 하면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물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대학생위원회를 9년 넘게 했고, 당직자로서 당무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다른 후보들보다 경쟁력 있다는 확신이 들어 출마해 당선됐다.”

▲ 지난해 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서 양소영 동문이 꽃다발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마스코트 청년정치

─ 정치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후배들이 있나.

“모교 후배 중에서도 꽤 있다. 현실적으로 “왜?”라고 묻는다. 그리고 일단 모아둔 돈이 있는지, 또 한동안 수입이 없어도 생계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없는지 물어본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들어와도 된다고 말한다. ‘그래 같이 해보자’고 할 수 있지만, 모교 후배들이기에 친누나, 친언니라는 마음으로 더 현실적으로 조언해 준다. 물론 그럼에도 진짜로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도울 마음이 있다.“

─ 총선을 3개월여 앞둔 정치의 계절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청년정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청년층과 청년 문제에 반짝 관심을 보이며, 젊고 참신한 인재를 발탁해 청년 표심을 노리지만, 딱 거기까지다. 선거가 끝나면 이런 목소리는 금세 잦아든다. 청년정치가 기성 정치의 선거철 동원 대상으로 반짝 소비되고 이용당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지적을) 부정할 수 있는 정당은 아무 데도 없을 거다. 선거철에 청년들 기용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모양이 예쁘니까.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용하고 그 이후에는 마땅한 보상이나 성장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기성정치인들은 그런다. ‘청년들 정치에 관심 없잖아. 투표도 안 하는데 관심 가져야 해?’ 그럴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감 때문에 자기 삶과 거리를 두려는 거지. 이들은 다 보고 있고 다 머릿속에 정립해서 심판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래서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 2030세대 정치인이 5060세대의 니즈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체감할 수 없듯이, 반대로 5060이 2030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학생과 청년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는 건 청년 정치인만이 할 수 있다. 갈등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세대에게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앞으로도 그런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내려 한다.“

─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년 의원들에게는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고 하더라. ‘청년이면 달라야 한다’는 기대가 있으면서도 말을 잘 듣는 ‘마스코트’ 같은 모습을 요구한다고. 많은 청년 정치인이 주류에 찍히지 않고 다지고 올라가 정치적 미래를 도모한다고 들었다. 일단 공천받아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제일 딜레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그게 현실이다. 말이 좋아 소신이라고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서도 그러긴 쉽지 않다. 지난해 (코인 사태) 기자회견을 한 것을 계기로 의도치 않게 당내에서 반골의 길을 가게 됐다. 가만히 있으면 청년이고 여성인 데다 당직자까지 했으니까 적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데 왜 굳이 그런 험난한 길을 가냐는 질문을 정말 수도 없이 받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위에 잘 보여서 초선으로 국회의원 배지 달면, 또 재선 바라보면서 결국 그저 그런 생계형 정치인밖에 되지 않을 거 아닌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 남들에게 평가받는 건 정치인의 숙명이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부끄러우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길을 가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어느 순간 타협하게 될 거 같아서 애초에 그런 길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당주의자의 소신

─ 양소영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전질문지를 받고 챗GPT한테 물어봤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점은 강점인데, 반면 소신이 내부적인 지지자들이나 당원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한다.’ 아주 똑똑하다 (좌중 폭소). 언론은 내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정치인으로 바라보는데, 사실 나는 누구보다 민주당의 시대적 가치를 지지해서 입당한 사람이다. 정당의 내부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관철하는 노력을 해왔으며, 당무를 배우며 성장해 여기까지 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당주의자다. 하루아침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전제하에서 내가 가진 경쟁력은 ‘소신’이다. 앞으로도 어떤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길게 보고 한 우물을 파면서 청년 정치인으로서 내 길을 개척해 나갈 생각이다. 그게 내가 부여받은 소임이다.”

─ 청년 정치인이 아닌 동문으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학교 다닐 때 주변 친구들이 ‘너 국회의원 나가려고 그러냐’는 말을 할 정도로 활동량이 엄청났다. 총학생회, 신문사뿐만 아니라, MVP 캠프 리더, 선지자학교 교사·운영진도 방학마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만약 그때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정치권에 왔을 때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든다.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하고 또 공동체 안에서 내 의견만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훈련했다. 삼육교육의 강점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자양분이 됐다.

대학에서 학문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배우면서 보다 폭넓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에게 가슴 떨리는 일이 무엇인지 찾으면 좋겠다.”

─ 새해 목표는.

“총선 승리다. 2030세대의 세계관을 대변해 정치가 혐오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 역할을 하겠다.”

[비하인드] MBTI는 ESFJ… CCM 들으며 스트레스 풀어

─ MBTI는?

“ESFJ(사교적인 외교관)”

─ 직업병이 있나.

“보통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노원’ ‘별내’ ‘남양주’ 이렇게 답하지 않나. 그런데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노원갑’ ‘노원병’ 이렇게 말한다(웃음). 그러면 ‘거기 지역위원장이 누구지’ ‘현역이 누구지’ ‘아, 거기는 험지지’ 이런다. 그런 병이 있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정치 기사 읽는다. 그 외에는 딱히 없는 거 같다. 나 스트레스 어떻게 풀지, 되게 불쌍한 것 같다. 아, CCM 많이 듣는다. 힐링이 된다. 종교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여의도 밖에도 친구들이 있나.

“여기서는 맨날 기자분들 만나고 방송 나가고 현안에 대해서만 논하니까 여의도 밖 친구들을 만나는 게 훨씬 행복하더라. 장소도 어떻게든 여의도를 벗어나려고 한다(웃음). 친구들 만나선 정치 얘기 좀 그만하고 일상적인 대화 하고 싶은데 자기들이 더 관심이 많더라. 내 기사 모니터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 가족들은 정치인으로 사는 걸 보고 뭐라고 하시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 않나. 지금은 1등 지지자이자 열성 당원이시다. 내가 나오는 방송과 기사 다 찾아보시면서 응원해 주신다.”

양소영 동문 주요 이력

1993년 광주광역시 출생
2010-2013 호남삼육고 졸업
2013-2016 삼육대 영문영문학부 졸업
2013-2015 삼육대 신문사 취재기자, 편집장
2016 삼육대 부총학생회장
2018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원우회장
2018-2019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부위원장, 중앙위원
2020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공채 당직자
2022-현재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 당무위원, 정치혁신위원회 위원, 사단법인 청년김대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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