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1. 2

베들레헴의 교훈

주제성구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8)

그리스도 초림 당시의 사실을 참조해 보면 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었으므로 응당 그 때의 징조를 분별하고 그 허락하신 분이 오실 것을 선언했어야 할 것이었다. 선지자 미가는 그 출생지를 가리켜 말하였고 다니엘은 그분의 오실 시기를 분명하게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런 예언들을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주셨으므로 설혹 저희가 깨닫지를 못해서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였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지 못하였다고 핑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희의 무지는 실로 태만의 결과이었다. 모든 백성들은 세상의 구속자를 영접하는 무리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먼저 기다리는 자들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먼 나사렛의 산골로부터 베들레헴에 이른 피곤한 두 여행자는 좁은 길을 동쪽 끝까지 걸어가면서 쉴 곳과 잘 곳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저들을 맞아들이려는 문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저들은 외양간에 숙소를 정하였고 구주께서는 거기서 탄생하셨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증거는 보이지 않았고 그 생명의 왕자를 영접하기 위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 형편을 보고 놀란 천사는 이 부끄러운 소식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려던 차에 한 목자의 무리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메시야가 세상에 오실 예언을 명상하고 세상의 구속자의 임하심을 사모하면서 밤에 저희 양떼를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에 바로 하늘의 소식을 받고자 준비된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사자는 갑자기 나타나서 크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이 베들레헴의 놀라운 이야기는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불신과 오만 또는 자부심을 견책하는가? 그것이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죄 된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때의 징조를 분별치 못하며 권고하시는 날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시키고 경계하는가? (각 시대의 대쟁투 313~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