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4. 30

생명의 떡을 먹은 결과

주제성구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세상에 주심으로써 인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 “영생”이다. 이것이 율법의 성취로서의 사랑이다. 타락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그런 목적을 기꺼이 행하는 사람이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한 가지 목적으로 자기 동료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다. 그 까닭은 우리의 교회에 참된 생명력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만일신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차고 넘치지 않는다면 그 신학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지존하신 분이시다. 인간 가슴속에 있는 그분의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열매를 맺게 하는 사업을 행하도록 인도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게 된다. 오 복된 생명나무 잎사귀여!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사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우리의 ‘안내서’가 명명백백하기에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원수와 마주치셨을 경우,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신 그 간단한 말씀의 모본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구주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을 적게 말할수록 대화는 더 순수하고 은혜로워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화된 언어 습관을 요구하신다. 그 이유는 성결한 언어는 살아 있는 향기가 되기 때문이다.(letter, 156,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