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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과 서문
- 1장-어린 시절
- 2장-회 심
- 3장-의심과의 투쟁
- 4장-공적(公的) 활동의 시작
- 5장-교회에서 출교됨
- 6장-1843-44년의 대실망
- 7장-첫번째 이상
- 8장-여행하라는 부르심
- 9장-기도의 응답들
- 10장-뉴햄프셔 주에서의 활약
- 11장-광신을 대처함
- 12장-여호와의 안식일
- 13장-결혼과 그 후의 연합된 활동
- 14장-가난과의 투쟁
- 15장-1848년 서부 뉴욕 지방에서의 활동
- 16장-인침에 대한 계시*
- 17장-격려가 되는 하나님의 섭리
- 18장-출판 사업을 시작함
- 19장-흩어진 무리를 방문함
- 20장-다시 출판 사업을 함
- 21장-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 22장-난관을 무릅쓰고 전진함
- 23장-미시간 주로 이주함
- 24장-중서부에서의 활약(1856-1858)
- 25장-개인적인 시련들
- 26장-질병과의 투쟁
- 27장-투쟁과 승리
- 28장-뉴잉글랜드 지방의 교회들을 위한 활동
- 29장-잃은 자를 다시 찾음
- 30장-좁은 길의 여행
- 31장-짐을 진 자들
- 32장-엄숙한 꿈
- 33장-선교 사업*
- 34장-더욱 광범위한 계획들
- 35장-온 세상으로
- 36장-인쇄물을 널리 분포함*
- 37장-1877년의 공중 봉사 사업
- 38장-오리건 주 방문
- 39장-여러 주를 여행함
- 40장-심판에 관한 이상
- 41장-제임스 화잇 목사의 서거
- 42장-고통 가운데서의 용기
- 43장-건강의 회복
- 44장-저술과 연설
- 45장-중부 유럽에서의 활동
- 46장-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의 활동
- 47장-확신을 굳게 함
- 48장-하나님의 사업 수행에 세상적인 정책을 채택함의 위험성
- 49장-태평양을 건너
- 50장-최초의 호주 장막 부흥회
- 51장-아본데일 학교
- 52장-남부를 지나 1901년 총회에 이르기까지
- 53장-수도 워싱턴에서
- 54장-남캘리포니아에서
- 55장-샌프란시스코 지진
- 56장-1909년 대총회에서
- 57장-마지막 활동들
- 58장-마지막 병환
- 59장-‘엘름스해븐’ 장례식
- 60장-리치몬드에서의 추도식
- 61장-배틀크릭에서의 장례식
9장 - 기도의 응답들
74 1845년 봄에 나는 메인 주 톱샴을 방문하였다. 한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스토크브리지 하우랜드씨의 집에 모였다. 그의 큰딸이며 나의 절친한 친구인 프란시스 하우랜드 양이 류머티즘 열로 의사의 가료를 받으며 앓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너무 심하게 부어서 마디를 분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앉아서 그녀의 병세 이야기를 하면서 하우랜드씨에게, 기도의 응답으로 그의 딸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딸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더니 이어서 그것이 가능함을 믿는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고 그녀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우리는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 16:24)라고 하신 약속을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기도에 임했으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자를 즐겨 치유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참석자 중 한 형제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녀에게 가서 손을 붙잡고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명할 만한 믿음이 있는 자매가 이 자리에 있습니까?”
프란시스 양은 이층 방에 누워 있었는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커티스 자매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병실로 들어가서 환자의 손을 잡고 “프란시스 양이여,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완전해지라”고 말하였다. 새로운 생명력이 아픈 처녀의 혈관에 약동했고 그녀에게 거룩한 믿음이 생겨, 그녀는 일어나고픈 충동에 순종하여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걸어다니면서 자기를 회복시켜 주신 데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녀는 곧 옷을 입고 우리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로 빛났다.
75 이튿날 아침, 그녀는 우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였다. 곧 이어서 화잇 목사가 가족 예배를 위해 야고보서 5장을 읽었다. 그 때에 의사가 현관으로 들어와서는 전처럼 그의 환자를 보러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이층에 없자 의사는 급히 내려와서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가 모여 앉아있는 큰 부엌문을 열었다. 그의 환자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보자 그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곧 “프란시스가 나았구나!” 라고 소리쳤다.
하우랜드씨가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그녀를 고쳐 주셨습니다.” 목사는 중단되었던 성경 읽기를 계속하였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 기도할지니라” (약 5:14). 그 의사는 경탄과 의심이 뒤섞인 이상한 표정으로 듣다가 머리를 끄덕이며 급히 방을 떠났다.
같은 날 저녁, 프란시스 양은 마차를 타고 3마일쯤 떨어진 집으로 갔다. 비록 비가 왔지만 그녀의 건강은 조금도 악화되지 않았으며 급속도로 호전되어 갔다. 며칠 후,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는 물에 내려가 침례를 받았다. 비록 날씨와 수온이 매우 찼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며, 그 때부터 그녀는 병에서 완전히 놓여 평소의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 무렵에 윌리엄 H.하이드씨가 이질로 몹시 앓고 있었다. 그의 병세는 아주 중태였으며, 의사는 그가 거의 회복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그를 방문하여 함께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사업에 불명예를 초래하는 어떤 광신주의자들의 감화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그런 자들에게서 떠나기를 원하였으므로, 그에게 그 장소를 떠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주님께 탄원하였다. 76 우리의 기도의 응답으로 그는 힘을 얻어 그 곳에서 4마일 떨어진 패튼씨 집으로 마차를 타고 갔지만, 그 곳에 도착한 후 그의 용태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그가 빠졌던 광신주의와 오류들의 나쁜 영향이 그의 믿음의 활동을 방해하는 듯했지만, 그는 그에게 전달된 명확한 증언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의 과오에 대해 겸손히 고백하며 진리를 위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겠다고 하였다.
믿음이 강한 몇 사람만이 환자의 방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었다. 우리가 그의 건강의 회복을 위해 열렬히 기도하는 동안, 그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쳐 왔으며 패튼씨 집까지 따라온 광신주의자들은 절대로 그의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이 때처럼 간절히 매달린 경험을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성령의 구원의 표적이 나타났으며, 위에서부터 오는 능력이 환자와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하이드씨는 옷을 입고 하늘의 빛으로 환히 빛나는 얼굴로 밖으로 걸어나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농사꾼의 일상 음식이 식탁에 차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만일 건강하다면 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주신 것을 믿으므로 내 믿음을 실천해야 겠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아무 고통도 없이 마음껏 먹었다. 그의 치유는 완전하고 영구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