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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간성에 대한 한 물음

2024.12.23 조회수 1,719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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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헌 신학과 교수]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된 직후,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문학상 강연이 있었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한국어로 강연을 진행했다. 21세기 한국의 민낯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 이 두 사건은 묘하게 하나의 주제로 연결돼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성’에 대한 물음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건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한 경사다. 역사상 121명의 수상자 중 아시아인은 단 5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여성으로는 한국이 최초다. 그녀의 작품이 120여 년의 역사적 장벽을 넘고 전 세계 문학계에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켜켜이 쌓은 한국 문학의 자양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문학적 물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천착해 온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소개했다. ‘폭력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담담하게 제시하는 그녀의 고백 속에 작금의 사태를 꿰뚫는 한 가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 》를 집필하기 위해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 900여 명의 증언집을 읽은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그 책에 있던 고(故) 박용준 열사의 한 메모를 읽어줬다. 야학교사로 시민 자치 활동 중 YWCA 건물에서 희생당한 그는 국가적 폭력의 마지막 밤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합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놀랍게도 이 메모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살아 있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글이 현재를 위한 예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마저 느꼈다.

▲ 사진=envato elements

고(故) 박용준 열사의 인간적 고뇌와 한강 작가의 문학적 물음은 강연이 있기 몇 시간 전 국회 본회의장의 텅 빈 의자 사이에서 맴돌았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표결에 앞서 집단퇴장할 때는 ‘보편적 인간이 지닌 신념과 양심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가 선언한 것처럼 또다시 끝난(죽은) 것일까?’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호명이 양심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도 솟구쳤다. 그 눈물은 한강 작가의 고백처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고 세계를 구원할 희망마저도 상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45년 만에 등장한 구시대의 유물인 ‘계엄’이라는 극단적 폭력 앞에 인간성은 여전히 굴복돼야 하는가? 하지만 한강 작가가 호소한 것처럼 인간성에 대한 희망(작가는 ‘사랑’이라고 칭했다)은 여전히 개인의 심장에 있어야 하고, 거기에 있다. 폭력 앞에서도 살고 싶지만 삶을 선택할 수 없게 하는 양심, 그래서 찌르고 아픈 저 양심을 가진 사람들의 심장 속 희망의 금실도 여전히 살아 있고, 살아있어야 한다.

예외 없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2024년의 마지막 달에 대한민국은 또다시 아픈 역사를 쓰고 있다. 이 역사에 인간성에 대한 절망만 기록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45년 전 고(故) 박용준 열사의 메모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아픈 양심으로 표결에 참석한 이들의 용기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역사의 많은 부분은 절망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속에서도 양심은 심장 속에 살아 있는 금실처럼 희망의 빛으로 존재할 것이다. 인간성이 존재하는 한 역사의 희망은 여전할 것이고, 교육은 바로 그 인간의 양심을 깨우는 텔로스(telos)를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절망의 시간에 희망의 금실을 전해준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72638

최종수정일 : 202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