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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신적 폭력 앞에서

2025.10.22 조회수 45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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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헌 신학과 교수]

독일 사회학 교수인 볼프강 조프스키는 <폭력사회>(Tarktat uber die Gewalt)라는 책에서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폭력의 매커니즘’을 사회학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오늘날 폭력 메커니즘이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면서, 현대 사회는 “문화를 통해서 폭력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20세기 중반에 발터 벤야민이 구조적 폭력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 바 있고, 슬라보예 지젝은 인류 사회가 구조적인 폭력을 넘어서 극단적인 폭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극단적인 폭력은 소위 신적 폭력이라는 명분 아래 탈근대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젝은 강조했다.

신적 폭력이란 소위 정당화된 폭력을 말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 시장 자본주의의 폭력, 문화적 관습에 의한 폭력, 종교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 등이 신적 폭력의 유형들이다. 포스트휴먼 시대 들어서 이런 신적 폭력은 더 거세지고 있고, 대부분의 인류는 이런 신적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 등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국제적인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국가 기관은 위임받은 권력을 이기적으로 사용하여 국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종교 단체는 순수한 신앙과 신념을 넘어서 사회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신의 이름을 불경하게 만들고 있다. 직장과 사회는 가해자의 각종 희롱과 갑질 문화로 피해자의 삶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회적 계약과 제도와 문화로 정당화된 이런 극단적인 신적 폭력 앞에서 고등교육을 맡은 주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학제간 연구를 추진했던 르네 지라르는 폭력 매커니즘이 인간의 미메시스, 즉 모방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역사가 폭력의 역사로 점철된 이유는 악한 인간 본성에서 발생한 폭력을 모방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희생양 매커니즘이 작동되었지만, 이는 희생양을 향한 집단적 폭력이기 때문에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모방 욕망에서 기인한 폭력의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의적 희생양 매커니즘이 아닌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적 저항 매커니즘을 추구해야 한다. 평화적 저항이란 단순히 비폭력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반대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말한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런 반폭력 사상만이 폭력 매커니즘을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주의가 된다고 강조하는데, 이런 반폭력 평화주의가 고등교육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반폭력은 폭력을 단순히 없애려는 비폭력이나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대응하는 대항 폭력을 넘어서 폭력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맞서는 정치적 실천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빌리테’(시민다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바로 이 시민다움의 역량을 키우는 가르침이 고등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대학은 교양과 전공의 영역에서 폭력의 문제를 의식하고, 그 매커니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추구하며, 그 문제에 맞설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구현할 수 있는 교양인을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신적 폭력이 극단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와 문화는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런 폭력 사회를 구원할 주체는 시민다운 의식을 함양한 교양인이다. 대학에서 교육받은 모든 지식인들이 시민다움의 역량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인 폭력 매커니즘에 맞서 지속가능한 평화와 화합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문제를 해결할 주체로서 대학은 시민다움의 의식으로 반폭력의 정치 매커니즘을 확대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평화주의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인 교육을 강화하고 공동체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신적 폭력 앞에서 대학은 평화의 주체를 양성해야만 한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84699

최종수정일 : 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