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본문보기

주제제목없음

426 복음은 많이 전파되고 있지만, 진리를 통해서 성화된 이들이 거의 없다. 경건과 의가 실생활 속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주님께서는 모욕을 당하고 계신다.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전혀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련하고 연약한 인성은 유혹을 저항할 힘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며,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이 영혼을 사로잡을 때까지 결코 그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심판에 가까이 이르고 있으며, 세상을 향해 경고의 기별을 전파하는 이들은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상은 순결하고 거룩하며, 영혼은 흠이 없고, 신체와 영혼과 정신은 하나님께 순결하고 깨끗한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그것을 가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최근에 죄악이 고통스럽게 증가하는 것은 종말이 가까움을 보여 주는 가장 큰 증거 중 하나이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만일 이 위태로운 시대에 현재 빛을 비추고 있는 눈부신 빛 아래에서 남녀가 간음자로 발견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업으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킬 것을 인해 나는 두려워한다.

결정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성질의 비행(非行) 때문에 매우 혹독하게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건심의 모본으로 간주되어 왔던 경험이 풍부한 남녀들이 그들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낼 때,그 생각이 성화되지 않고, 거룩하지 않고, 불순하며, 그 행동이 야비함을 드러낼 때그 때야말로 그러한 사람들을 단호한 태도로 취급해야 할 때이다. 427 그들에게 더욱 크게 관용을 베풀게 되면,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음란과 간음을 아주 가벼운 문제로 여기도록 하는 영향력을 끼쳤고, 그들의 온갖 가면적 행동은 해가 비치면 사라지는 아침 이슬 같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시험에 처하게 되자마자 자신의 도덕적 결함을 드러낸다. 그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아니요, 정욕으로 썩어져 가는 이 세상의 것으로부터 탈출한 자도 아니며, 세상적이요, 육욕적이요, 마귀적이다. 사단은 두드러진 악행을 저지르게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그들 속에서 발견하여 그 기회를 무르익게 한다. 그 결과로 양떼의 목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육욕적인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서 자신들이 돌보아야 할 양들의 순결과 정숙과 덕성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란과 외설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하늘의 천사들은 수치와 슬픔과 불쾌감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하늘의 순결한 천사들이 어떻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그러한 목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면서도 좋은 기회만 생기면 그 율법을 깨뜨려 버리고, 거짓된 삶을 살고, 음험한 길을 추구하고, 은밀하게 활동하고, 불결한 생각을 키움으로 정욕을 불태우고, 자기처럼 시험 당하는 남녀들을 이용하여 모든 장벽을 깨뜨려 버림으로 그들의 몸을 더럽히고 그 영혼을 불결하게 하는데, 이러한 형편에 처해 있는 회중 속에 천사들이 어떻게 하늘의 빛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그 영혼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간직하겠는가? 진리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최고의 인물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진영으로부터 이 도덕적 타락을 청소해 버리라.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음란이 우리 대열 속에 있다. *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힘을 얻어 그 타락적 모습을 확장시켜 가는 것이 내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428 우리가 결코 알지 못하게 될 것도 많이 있다. 그러나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그 죄악을 일소하기 위해서 그들이 결정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에게 책임과 죄가 있게 된다. 진영을 정결하게 하라. 이는 저주받은 것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수 7:12.13). 이것은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기록되었다.

거짓 목자들

양떼의 목자로 있으면서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견책과 경고와 간청을 했지만 그 악한 길을 숨기고 계속적으로 그 안에서 행함으로 음란한 짓을 통해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한 이들을 위한 진정한 소망의 근거가 내게는 전혀 없다. 우리는 그들을 개혁시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해 본 후에 그들 스스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그들에게 영혼의 수호자직을 맡겨서는 안 된다. 거짓 목자들이시여! 오, 이 사업에 오랫동안 참여해 온 인물들이 큰 경험과 특별한 빛을 받은 후에 주님 앞에서 자신의 길을 부패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오실 분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그 믿음의 열매로 행해진 모든 선행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429 어떤 한 별이 다른 별과 그 영광이 차이나는 것처럼 신자들도 미래의 삶 속에서 그들에게 할당된 제각기 다른 영역을 갖게 될 것이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사단 편에서 동행하여 그 제안을 듣고, 그가 충동질하는 대로 순종하여 자신의 영혼은 물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까지 위태롭게 하고, 육욕적인 마음을 만족시킴으로 자신의 모본으로 죄에 대해 관용을 보인 인물들, 이런 인물들이 이기는 자 가운데 들 수 있겠는가?

인간은 죽어도 그의 영향력은 그로 더불어 죽지 않고 계속 살아서 그 자체를 재생해낸다. 사라지는 태양의 저녁놀이 하늘을 가로질러 그 영광을 던지면서, 산너머로 태양이 넘어간 지 한참 후까지도 산꼭대기를 빛나게 하는 것처럼, 선하고 순결하며 거룩한 생애를 산 인물들의 영향도 사후에 살아남는다. 마찬가지로 순결한 자와 거룩한 자와 선한 자들의 업적도 그들이 더이상 살아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할 때에도 그 빛을 반사할 것이다. 그들의 업적, 그들의 말, 그들의 모본은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육욕적이고, 마귀적인 인물들의 생애는 이것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그는 육욕적 쾌락에 몰두하였다. 심판의 빛 속에서 그 사람은 하늘의 옷을 벗은 채로 제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의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선다. 우리 각자는 우리를 따르게 되는 업적이 하늘의 부드러운 빛이 될지 혹은 어두움의 그늘이 될지, 그리고 우리가 물려받는 유산이 축복의 유산이 될지 혹은 저주의 유산이 될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하자.

현재 흘러가고 있는 매 시간이 우리의 미래의 생명을 꼴 짓고 있다. 전혀 가치가 없는 것처럼 부주의한 중에, 자신을 만족시키는 중에 허비한 이런 순간들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발하는 말들이 더이상의 시간이 없게 될 때 계속 메아리칠 것이다. 430 미술가에 의해 얼굴 생김새가 윤기나는 금속판 위에 옮겨지는 것처럼, 오늘 행한 일들은 하늘 책에 옮겨지고 있다. 그것들이 영원에 걸친 우리의 운명, 곧 천국의 기쁨인지 혹은 영원한 멸망과 통탄스러운 죄책감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품성은 바뀌어질 수 없고,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품성 건설은 이생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자기 방종적 죄악에 물든 영혼들에게 회개가 너무 늦게 이르러 올까봐 걱정이다. 몇 번의 결심, 몇 번의 눈물이 죄된 과거 생애를 결코 번복하지 못하며, 진리의 귀한 빛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설명해 줄 수 있었지만 훔친 물 마시듯이 죄와 불법을 마셔버린 이들의 범죄와 고의적이고 알고 있는 죄들을 하늘 책에서 도말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바위 위에 철필로 기록한 것처럼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경고의 필요성

할 수 있는 한 나는 내 형제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나는 펜과 목소리로 그들을 강권하고 싶다. 만일 그대가 죽어서 주님께서 영원토록 거하시는 곳에 멀지 않아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주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라. 하늘의 경고에 불순종하지 말라. 등한시하였던 하나님의 호소와 간청, 경고와 견책, 그리고 위협을 붙잡고, 그것들을 통하여 그대의 방황하는 죄된 심령이 고침 받게 하라. 호수의 넓은 수면 위에 활짝 피어 있는 순결하고 흰 수련처럼 그리스도의 변화시키시는 은혜가 그대를 순결하고, 진실되고, 거룩하고, 사랑스럽게 만들도록 하라. 그대의 사랑과 애정을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 그대를 위해 죽으신 분께로 옮기라. 그분께 찬양을 돌리고, 거룩한 향으로서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그대의 입술을 훈련하라.

나는 다시 한번 묻고자 한다. 이 시대를 위한 소중하고 엄숙한 기별을 가진 사람이 결코 졸거나 주무시지 않는 분께서 모든 행동을 보시며 마음의 모든 생각을 읽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불순한 생각과 거룩하지 못한 행동에 몰두할 수 있는가? 431 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거의 일하실 수 없는 것은 그분의 공언하는 백성들 속에서 죄악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령 속의 진리가 성화시킨다

진리는 마음속에 받아들여 질 때 받아들인 자를 성화시킨다. 생활과 행실로부터 유리될 때, 그것은 받아들인 자에게 죽어 쓸모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 그대는 어떻게, 감히 어떻게 그대의 구속주를 슬프게 할 수 있는가? 그대는 어떻게 영광의 주를 또다시 못 박고, 그분을 남들 앞에서 모욕할 수 있는가? 그대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는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이들을 이기고 기뻐 날뛸 수 있는 기회를 사단과 그 천사들에게 줄 수 있는가?

모든 간음자들은 하나님의 도성 밖에 있게 될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천사들은 심판을 수행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께서는 서서히 세상으로부터 떠나가고 계신다. 교회의 승리는 가깝고, 받게 될 보상은 거의 우리 손안에 들어왔지만, 하늘 빛의 온전한 광휘(光輝)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 중에서 아직도 죄악이 발견되고 있다.

당신의 교회와 국가들의 운명을 주장하시는 분께서 이 세상을 위해 성취되어야 할 최후의 사업을 수행하고 계신다. 당신의 천사들에게 그분께서는 당신의 심판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주신다. 목사들은 깨어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심판 사업이 성소에서 시작된다.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에스겔 9장 2-7절을 읽으라. 명령이 주어졌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고 말씀하셨다.

432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계 16:1)는 말씀이 곧 발해질 것이다. 진노를 시행하는 천사들 중 하나가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계 16:5).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이들 하늘의 존재들은 아무런 이의도 없이 그들이 명령받은 대로 행한다. 만군의 여호와, 전능하신 주 하나님, 공의로우시고, 진실되시고, 거룩하신 분께서 그들에게 행해야 할 일을 주셨다. 그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그 허리에 황금 띠를 띤 후에 흔들림 없는 충성심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일이 다 이루어진 때에, 하나님의 진노의 마지막 대접이 부어진 때에, 그들은 돌아와서 그들의 빈 대접을 주님의 발 앞에 놓는다.

그러고 다음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일 후에 …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그들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지도자에게 가까이 하라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갈피를 못잡게 되고, 교회와 세상, 그리고 각 개인을 주장하시는 섭리자를 시야에서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행동 속에는 심오한 신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국을 잃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곤혹스러운 것 중에 행하며 ‘주의 심판은 알려지지 않았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마음이 하나님께 충성되다면, 모든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433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난 바 되고, 그분의 모든 길이 옹호 받으실 날이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닥쳐올 것이다. 그 때에 공의와 긍휼과 사랑이 그분의 보좌의 속성일 것이다. 땅 위의 싸움이 마쳐지고 성도 모두가 본향으로 모일 때, 우리의 첫째 주제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일 것이다. 두번째 주제는 은혜와 구속의 노래인 어린양의 노래일 것이다. 이 노래는 더욱 크고, 더욱 고상하고, 더욱 웅장한 가락이 되어 하늘 궁전에 메아리치고 다시 메아리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는 노래로 불려지는데, 그분의 다양한 시대들을 연결시킨다. 이는 이제 모든 것이 율법 시대, 선지자 시대, 복음 시대 사이에 아무런 휘장도 없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땅 위의 교회 역사와 하늘의 구속함을 받은 교회는 모두가 갈바리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 되신 그리스도와 만유 속에 계신 그리스도-이것이 만만 천사와 구속함을 받은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에 의해 온 하늘에 울려 되질 찬송의 주제요 노래이다. 모든 존재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여기에 연합할 것이다. 이것은 새 노래인데, 이는 이전에는 하늘에서 결코 불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밧모섬의 요한에게 보여진 계시에 비추어 나는 또다시 묻고 싶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에는 이 세상을 비출 빛의 통로로 요한을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계시된 빛, 위대한 빛이 있다. 그토록 놀랍고, 엄숙한 진리가 계시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기 직전에 벌어질 사건들에 관한 그토록 장엄한 진리가 우리에게 밝혀졌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놀라운 것들을 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진리에 대해 발뺌하며 은밀하게 죄악을 저지름으로 불결한 자, 음란을 행하며 간음하는 자들의 명부에서 발견되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434 그대는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그 길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전혀 알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청함을 받지 않은 손님들

벨사살은 신성 모독적인 잔치를 벌이고 있는 동안에 그가 청하지 않은 손님들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금과 은 기명들 위에 쏟아 붓는 찬양을 들으셨다. 그분께서는 거룩한 봉헌을 통해 당신께 바쳐진 것들이 불경스럽고 음란한 목적에 사용되어 당신을 모독하는 것을 보셨다.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이 벨사살보다도 훨씬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울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많은 면으로 가능하다. 사람들이 헌신의 서약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의 신성한 봉사에 바치기로 할 때, 그들이 성경 진리를 강해하는 위치에 앉음으로 엄숙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 천사들이 영혼과 육체와 정신을 하나님의 봉사에 엄숙하게 구별해 드리는 일의 증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으셨을 때-지극히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이런 인물들이 불경스런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고귀하고 거룩한 일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하는 신성한 그릇이 저열한 정욕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그 드높은 지배하는 영역에서 질질 끌려나가야 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크게 품위를 떨어뜨리는 우상숭배가 아니겠는가? 그 입술은 죄된 인간을 칭송하고 찬양하며, 마땅히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말을 매혹적으로 상냥하게 아첨하며 쏟아 놓는다. 엄숙한 봉헌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진 능력들이 창녀에게 바쳐진 바 된다. 자기 남편 외의 다른 남자가 접근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자, 그의 구애를 듣고자 하는 여자, 애정과 찬사와 사랑의 헤픈 말이 퍼부어질 때 그 귀로 달콤하게 듣는 여자, 이런 여자는 누구든지 간부(姦婦)요 창녀이다.

435 거짓 신의 경배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하늘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만큼 비참한 어두움에 빠진 사람은 없다. 그는 황홀경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그에게 거짓 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적이고,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 것을 경배하는 일로부터 경배 받으셔야 할 유일하시고 참되신 대상께로 돌이키는 일은 가망 없는 일처럼 보인다. 우리 시대에도 벨사살의 잔치와 벨사살의 경배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순결하고 거룩한 헌신으로 당신께 드려지기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마음이 그분께로부터 떠나 인간에게로 향하고, 그 입술이 하늘의 주 하나님께만 속한 칭송과 찬양의 말들을 떠벌리게 될 때, 벨사살의 죄는 반복된다. 당신을 중심으로 하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신 애정이 땅 위의 대상, 곧 한 여성, 한 남성, 또는 땅 위의 그 어떤 것에 집중될 때, 하나님께서는 감각과 애정을 사로잡는 그 대상에게 자리를 빼앗기시고, 하나님께 엄숙하게 봉헌된 능력들은 죄로 더럽혀진 한 인간에게 쏟는 바 된다. 한때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지만 불순종과 죄로 잃어버린 바 된 남녀들을 하나님께서는 정욕을 인하여 썩어져가는 이 세상의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심으로 다시 한번 회복하고자 하신다. 그리고 남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능력들을 정욕을 도모하기 위해서 거룩하지 못한 목적에 바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고, 행위자들은 멸망을 받는다.

남녀 숭배에 빠질 때, 벨사살의 잔치에 참석하셨던 바로 그 증인께서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 술 잔치가 무르익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육욕적 감정이 불붙었을 바로 그 때에 공포의 전율이 각 영혼을 뚫고 지나갔다. 436 왕에 의해 찬양을 받고 우상화되었던 잔이 맥빠진 그의 손에서 떨어졌고, 하나님의 영의 말씀 앞에서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단 5:6). 핏기 없는 신비한 손이 벽에 글자를 쓰는 것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권세에 속하여 그 지도를 받는 이 신비스러운 손가락들은 전적으로 불가해한 글자를 기록하여 이것을 본 공포에 질린 이들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번갯불같은 불빛이 뒤따르며 각 글자를 이룬 후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에게 두렵고 떨리는 의미를 살아 있는 글씨로 전달해 주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벽에 기록된 문자의 의미에 대한 전적인 무지와 그 곳에 머물러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은 그들의 죄악된 마음을 공포로 채웠다. 각성된 양심을 통해서 그들은 이 글자들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되었다. 의심과 두려움과 경고가 왕과 방백들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비록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증인되시는 한 분이 계심을 보여 주는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움에 사로잡힌 벨사살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의 역사, 그분께서 뜻대로 행하심에 대해 알게 되는 위대한 기회를 일찍이 가졌었다. 그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지녔었다. 그의 조부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함으로 처하게 될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았었다. 벨사살은 그가 사람들의 사회에서 내쫓겨 들짐승과 함께 지낸 것을 알았다. 그에게 교훈이 되었어야 할 이런 사실들을 그는 마치 전혀 벌어지지 않은 일인 것처럼 무시하였다. 그는 그 조부의 죄악들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는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 죄들을 감히 범하였다. 437 그는 스스로 사악하게 행한 것 때문만이 아니요. 계발했더라면 올바르게 되었을 기회와 능력들을 활용하지 않은 것 때문에 정죄를 받았다.

왜 정죄를 받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거짓을 믿고, 양심적으로 오류를 간직한 것 때문에 심판 때에 그 어떤 사람도 정죄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정죄를 받는 것은 그들이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들을 등한히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교도는 그가 이교도였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가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놓아두신 방법들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심판 때에 드러날 것이다. 자신의 신체를 더럽히고 음란으로 그 영혼을 더럽히는 죄를 범한 남녀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책망은 명백하게 주어졌다. 그들은 유사한 환경 가운데 처한 다른 이들, 곧 유혹자에게 정복당한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경고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들 위에 머물러 있음을 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요셉과 다니엘의 모본이 있다. 요셉은 유혹을 만났을 때 하늘을 바라보았으며, 하나님의 눈길이 자기 위에 있음을 깨닫고,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라고 외쳤다. 그는 자기를 그토록 신임하는 그 주인에게 대한 의무를 유혹을 저항하는 이유로서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길에 빛을 비추고 계신다. 유사한 형편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견책과 경고와 주의가 주어지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죄에 대한 정죄를 표현하셨다. 음란죄는 명백하게 책망과 정죄를 당하고 있다. 남녀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등한시하였던 교훈들은 두려운 심판이 된다. 하나님의 경고들은 인간이 그것들을 거절하고 스스로 선택한 길로 돌아서 버릴 때, 교훈을 주는 실제적인 공과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438 이 경고들은 심판 때에 그들을 정죄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유일한 안전책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교훈을 자기를 위해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기별이 주어질 때, 개인적 책임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진리를 증거하도록 선택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모든 곳에서, 높은 자와 낮은 자 모두에게,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의 샛길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들에게 고상한 일을 해주었으며,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을 다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보다도 그들이 더욱 거룩하고, 더욱 행복하다는 것을 나타내라고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개인의 생활 속에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품성을 드러내고, 경계와 모본으로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지 않으셨음을 증거하고, 당신의 구속적인 은혜를 통해서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을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그들의 말, 그들의 행위, 그들의 동기, 그리고 품성을 결정하는 그 어떤 것을 달아보시는 분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KJV: 달아보시도다)”(시 62:9).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KJV: 달아보시느니라 ― 역자 주)”(잠 16:2). 이상의 성경 말씀 속에는 중요한 교훈들이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시는 마음의 생각이나 동기는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는 마치 살아 있는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시며, 개인의 동기와 행동들을 달아보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마음을 소유하셔야 함

439 우리 목사들과 교역자들은 강단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욱 많은 빛이 아니라 이미 받은 빛대로 사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은 백성들에게 엄숙한 진리를 설교하고, 그 다음에 내일은 지극히 가증스러운 행습에 빠져버리거나, 그 다음 주일에는 비뚤어진 길을 추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심령을 살피시는 분, 품성을 달아보시는 분께서는 당신의 위대한 법정에서 모든 불의한 행위를 정죄하실 것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시 139:1.3.2), 이제 이것을 고려하라. 그대의 가장 은밀한 행동, 사람들 앞에서는 그대가 결코 행하지 않을 것들 모두를 주목하시는 분이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대는 그분이 전혀 알지 못하시는 것처럼 그분의 목전에서 가증한 짓들을 행한다. 모든 남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보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그분께서는 당신의 요구를 조금도 감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마음의 반쪽은 어떤 우상에게 바쳐지고 있는 때에 반쪽만의 경배를 가납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심령, 마음 전체를 요구하신다. 그대가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돌려서 다른 어떤 대상에게 집중시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품성을 달아보심

하나님의 요구는 한쪽 저울판에, 인간의 품성은 다른 쪽 판에 놓인다. 하늘 성소의 저울에 의하여 인간의 운명이 영원히 확정된다. 부주의하게 살며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대여, 이것을 바라보라. 여러 해 동안 그대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이 없이 지내왔다. 440 금지된 길 속에서 이기적 방종으로 허송한 세월을 바라보라. 그대가 입술로 그 요구를 옹호해 왔던 완전하고 변함이 없는 율법의 성격을 생각하라. 율법은 온전하고 확고 부동한 순종을 요구한다. 다른 쪽 판에는 죄, 어리석은 짓, 기만, 불결한 생각, 불경스런 행동들도 마찬가지로 놓여진다. 무거우냐 가벼우냐에 따라서 개인의 행복이냐 재앙이냐가 결정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저울에는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경우를 생각하고, 그 어느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의 빛 속에서 자기 자신의 품성을 생각할 것인가?

그대의 품성은 변화되었는가? 어두움 대신에 빛이, 죄에 대한 사랑 대신에 순결과 거룩에 대한 사랑이 자리를 잡았는가?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그대여, 그대는 회심했는가? 그대 속에 철저하고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대의 품성 속에 그리스도를 짜 넣었는가? 그대는 이 문제에 있어서 불확실할 필요가 없다. 의의 태양께서 떠올라서 그대의 영혼 속을 비추고 계시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그것을 안다. 그대가 회심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면, 알게 될 때까지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서지 말라. 그대 자신이 마셔 보지도 않은 생명샘으로 어떻게 그대가 영혼들을 인도할 수 있는가? 그대는 겉만 번드레한 사람인가, 혹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대는 하나님을 섬기는가, 혹은 우상들을 섬기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변화되었는가, 혹은 허물과 죄로 아직도 죽은 사람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보다도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들이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알고 있는 죄를 저지르며 살고 있을 때 인간은 저울에 달려서 그 부족함이 드러난다. 441 매 순간마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이다. 그 때에 온 하늘이 그의 편에 기록된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심령 속에 거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게 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받아들여 그대로 살아가는 영혼은 모든 범죄와 죄로의 모든 접근을 대항해 싸울 것이다. 그는 날마다 점점 더 밝게 빛나는 빛처럼 되고, 더욱더 승리하게 된다. 그는 능력에 능력을 더할 것이며, 점점 더 연약해지지 않는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일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대가 교만심, 자부심, 지배욕, 허영심, 불경건한 야망, 불평, 불만, 매정함, 험담, 거짓말, 기만, 중상 모략 등을 품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께서 내재하고 계시지 않으며, 그 증거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사단의 마음과 품성이 그대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그대는 지속성이 있는 그리스도인 품성을 가져야 한다. 그대에게는 선한 의도와 선한 충동이 있으며, 납득이 되도록 진리를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대는 하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그대의 품성은 그 속에 천한 재료를 갖고 있어서 그것이 금의 가치를 망치고 있다. 그대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날인이 그대 위에 찍혀 있지 않다. 풀무불이 그대를 사를 것인데, 이는 그대가 가치 없는 모조 금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철저한 회심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시련의 날에 타락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들은 선한 일에 열중하는 거룩한 민족, 특별한 백성, 선택된 세대가 되어야만 한다.

마음을 시온을 향해 고정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가 세상 사람들의 정욕과 취미와 습관을 소유하도록 그대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442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품성상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분을 섬기지 않는 자를 구별하는 것이 힘들다. 그대는 하나님과 벨리알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다른 민족, 곧 순결과 거룩의 제국에 속해 있다. 그들은 하늘의 귀족이다. 하나님의 인이 그들 위에 찍혀 있다. 대조적으로 그들을 향해 세상의 적의는 너무 선명하고 분명하게 일어난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위대한 진리를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즉 우리가 하늘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며, 우리가 불멸의 유업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밖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인간 대상을 향하여 압도적이고 용솟음치는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경배하고 그 마음의 애정을 쏟는 어떤 우상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틀림없는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의 대화, 그들의 동정, 그들의 흘러 넘치는 사랑과 애정이 모두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대의 감정, 그대의 취미, 그대의 경향의 지배적인 흐름은 무엇인가? 그대의 동정, 그대의 애정, 그대의 대화, 그대의 갈망의 주된 흐름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마음을 그리로 향하지 않고서 웅장한 영광의 정문을 통과할 자는 하나도 없다. 그러면 급소를 찌르는 질문을 해보자. 그대는 땅의 것들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그대의 생각은 순결한가? 그대는 하늘 분위기를 호흡하고 있는가? 그대는 타락의 독기(毒氣)를 갖고 다니는가? 그대는 그대가 사랑할 권리가 전혀 없는 어떤 여인을 사랑하고 경배하는가?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어린양의 보혈로 그대의 품성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하였는가? 혹은 도덕적 타락으로 그대의 품성의 옷을 더럽혔는가? 443 복음의 목사들은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그대는 성경을 이해하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대의 눈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대는 열렬하고 헌신적이며, 성결의 아름다움 속에서 순결하게 하나님을 섬기는가? 진실되게 물어보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다니엘의 행동을 보고 다리오는 얼마나 놀라운 인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다니엘은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첫번째이셨다. 진실된 그리스도인 신앙이 마음속을 다스릴 때면 언제든지 그 모습이 품성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뉘어지지 않은 애정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철저한 개혁이 필요함

우리의 모든 교회 안에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회심시키시는 능력이 교회 안에 들어와야만 한다. 지극히 열렬하게 하나님을 찾고, 그대의 죄를 벗어 버리고, 위로부터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 안에 머물라. 하나님께서 사업을 위하여 그대를 구별하시도록 하라. 진리에 순종함으로 그대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예비하는 날을 미루지 말라. 그대의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전혀 갖지 않은 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졸지 말라. 아무도 영원에 대한 안전을 우연에 맡겨 두지 말라. 그 문제가 위험스러운 불확실성 속에 방치되어 있게 말라. 나는 구원받은 이들 중에 있는가, 혹은 구원받지 못한 이들 중에 있는가? 나는 서게 될 것인가, 혹은 서지 못하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물어보기를 바란다. 손이 깨끗하며 그 마음이 순결한 이들만이 그 날에 서게 될 것이다.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444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취급하는 목사들에게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라고 당부한다. 강단으로부터 진리들을 들은 백성들에게 나는 묻는다. 그 큰 날을 바라볼 때 그대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가? 그날에 대하여 그대 각자는 개별적이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하는 태도에 속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라.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도처로부터 지진과 화재와 폭풍, 바다와 육지의 재해들, 염병과 기근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다. 이러한 징조들은 그대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은 있을 일의 시작일 따름이다. 하나님의 날에 대한 묘사가 계시자에 의해서 요한을 통해 주어졌다. 공포에 질린 무수한 사람들의 외침이 요한의 귀에 들렸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7). 사도 자신도 두려움에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날에 그대의 피난처는 무엇인가?

이처럼 놀라운 장면이 벌어지고, 죄악 세상에 그토록 무시무시한 심판이 떨어진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피난처는 어디가 될 것인가? 진노하심이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어떻게 숨김을 받겠는가? 요한은 천연계의 세력들-지진, 큰 바람과 정치적 분쟁-을 보고 있는데, 이것들은 네 천사에 의해 붙잡혀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이 바람들은 하나님께서 나가라는 말씀을 주실 때까지 통제 아래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전책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쳐지기까지 땅 위에나 바다에나 그 어떤 나무 위에도 불지 못하도록 땅 위의 바람을 붙잡고 있다. 힘센 천사가 동편으로부터(혹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445 천사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이 천사는 그 손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혹은 오직 홀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의 인을 갖고 있는데, 그는 불멸과 영생이 허락될 자들의 이마에 표 혹은 글을 쓸 수가 있다. 이 사업이 마칠 때까지, 그가 놓아주라는 명령을 내릴 때까지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으라고 네 천사에게 명령할 권세를 가졌던 것은 최고로 높은 이 천사의 목소리이다.

세상과 육체와 마귀를 이기는 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기뻐함을 입은 자들일 것이다. 그 손이 깨끗하지 못하고, 그 마음이 순결하지 못한 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죄를 도모하고 그것을 행하는 자들은 지나침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취하는 그 태도에 있어서 원형적인 대속죄일에 회개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들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과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아침을 기다리는 이들보다도 더욱 열렬하고 간절하게 굳건히 구주의 오심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살펴보는 이들의 이름이 인침을 받은 이들과 함께 계수될 것이다. 그 영혼 위에 모든 진리의 빛이 비치고 있는 동안에 서약한 믿음에 일치한 행동을 했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죄에 사로잡혀 그 마음에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을 타락시키며, 그와 함께 죄에 연합한 이들을 타락시킨 자들은 생명 책에서 그 이름이 도말될 것이며,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밤중의 어두움에 남겨진 바 될 것이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말 4:2).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이러한 인침은 이상 중에 에스겔에게 보여진 것과 동일한 것이다. 요한도 지극히 두려운 이 계시의 증인이었다. 그는 바다와 포효하는 파도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낙담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이 움직이고, 산들이 바다 한가운데로 옮겨지는 것을 보았으며(이것은 문자 그대로 성취된다), 그 안의 물들이 소리를 내며 요동을 치고, 산들이 융기하면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는 온역과 염병과 기근과 사망이 그 무서운 사명을 다하는 것이 보여졌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446 소돔을 찾아갔던 동일한 천사가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는 경고의 음성을 발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심판을 받고, 죽은 자는 물론 산 자들에게 판결이 날 때까지 악인과 그들의 행위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잔은 부어질 수 없다. 그리고 성도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인침을 받은 후일지라도 그분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개인적으로 시련을 겪어야 한다. 개인적 고난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나 정금이 소멸되는 것을 용납치 아니하시는 한 분의 눈이 그 풀무를 자세히 살펴보고 계신다. 지워 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표가 그들 위에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이름이 거기에 있다고 주장하실 수 있다. 주님께서 그들을 닫아 넣으셨다. 그들의 목적지가 기록되어 있다.-“하나님, 새예루살렘.” 그들은 하나님의 재산, 그분의 소유이다.

이 인이 불순한 마음의 사람들, 음란한 자들, 간음을 행하는 자들 그 이웃의 아내를 탐내는 자 위에 찍혀질 수 있겠는가? 그대의 영혼이 다음 질문에 대답하게 하라. 나의 품성은 그리스도께서 합당한 자들을 위해 마련하신 집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권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에 일치하고 있는가? 거룩이 우리의 품성 속에 짜 넣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에서 시대의 징조들이 성취되고 있는 바로 이 때에, 일월성신이 그 사명을 이루는 발걸음 소리가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 때에, 지성인들과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이들이 썩은 재목, 곧 하나님의 날에 불에 사르어질 재료로 자신의 품성을 건설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늘에 마련된 집에 들어가기에 부당한 인물로 결정될 것임을 내게 보여 주셨다. 447 그들은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길 거절해왔다. 그들은 그것들이 마치 귀한 가치라도 있는 것처럼 거기에 매달려 왔다. 그들은 하늘과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그것들 때문에 잃게 될 것이다.

회심한 사람이 되라

신성한 일에 봉사하는 그대들에게 내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나의 주님의 일에 어떤 일을 맡아 행하기 위해 그대들이 나가기 전에 회심한 인물이 되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이 우리 앞에 있는 두려운 시험을 위해서 예비하고 준비할 때이다. 거룩함,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내 길은 주님께 숨겨졌으며,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전혀 알지 못하신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너무 늦은 때가 아닐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대가 회개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의 이름에 용서가 기록된다고 할지라도, 그대는 두려운 상실을 겪을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영혼에 낸 상처는 남게 될 것이다.

진리의 빛,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위대한 빛을 소유한 사람 중에 그 누가 어떻게 그분을 거스려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들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멸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토록 사단에게 눈이 멀어 하나님을 대면하여 모욕하고, 고의로 죄를 범함으로 그 영혼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사도는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고 말한다. 시온에 있는 이 죄인들이(나는 그들을 위선자라고 부르겠다), 내가 어떤 면에서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과 특권과 긍휼을 남용함으로, 영혼을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보기 흉한 행동을 통해서라고 스스로 대답해 보라.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하면서 나는 그분을 내 생각에서 몰아내고, 우상으로 대체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모본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보도록 이끌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도덕적으로 방종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구경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 448 나는 음탕한 행동과 신체를 도덕적으로 더럽히는 일에 있어서 천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 사도는 우리를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하나님의 표준

하나님께서는 한 법을 갖고 계시는데, 그것은 의의 위대한 표준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업신여기고 죄악을 행하는 이들은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라고 그대에게 경고하셨다. 그분께서는 마귀를 대적하고, 그를 존귀한 손님으로 맞이하지 말라고 그대에게 개인적으로 명하셨다. 마치 등불을 밝히고 살피듯이 예루살렘이 살핌을 받는 때가 이르러 왔다. 하나님께서는 품성을 조사하시며, 도덕적 가치를 달아보시며, 개인에 대해 판결을 선포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죄를 범한 이들이 열심을 내어 회개하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이런 근심은 기만적인 것이다. 그 속에는 어떤 덕성도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죄가 알려진 것에 대해 근심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단지 부인할 수 없이 드러난 것들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그 어떤 고백도 행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사망을 이루며 양심을 무마시키는 세상 근심이다. 449 죄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기회가 생기고 발각이 되지 않는다면, 똑같이 행하려 할 것이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빛과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행동 노선을 지닌 이들을 취급해야 할 일을 짊어지고 있는 교회의 의무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 위에 설 것인가, 혹은 신중한 생활과 거룩한 품성으로 믿음과 순종 안에서 복음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이교도들보다도 더 악해져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진리에 대해 비방거리를 줄 것인가?

진리의 빛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약속들의 성취가 달려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에 합당한 자가 되지도 못하였다. 교회의 성격과 봉사는 받은 바 달란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믿음과 순종은 자신의 빛과 기회를 충성스럽게 향상시킴으로 도덕적 영적 기품 속에서 얻게 되었을 분량과 같아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소수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그들의 영적 열성과 헌신을 상실하고 끊임없이 더욱더 밝게 빛나고 있는 빛으로부터 돌아섰으며, 영혼 위에 임한 그 성화시키는 능력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행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거룩함 안에서 새롭게 될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고상한 표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죄가 그들 위에 떨어졌다. 많은 목사들과 많은 백성들이 어두움 속에 있다. 그들은 지도자, 세상의 빛 되신 분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450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이해력 앞에 공개된 풍성하고 능력이 넘쳤던 은혜와 진리에 비례한다.

표준을 높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표준을 높이라고 요구하신다. 위대한 진리를 공언하면서도 그리스도께 공개적으로 모욕을 가하는 이들을 취급하는 일에 있어서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그 열성을 보여야만 한다. 그들은 진리를 위태롭게 하였다. 그들은 충성스럽지 못한 파수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비난과 치욕을 안겨 주었다. 교회의 순결을 흐리게 하는 진흙과 쓰레기를 교회로부터 제거하기 위해서 열렬하고 힘찬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왔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거룩하고 능력 있는 백성, 명성을 떨치며 칭송을 받는 백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해서 모든 더러움과 죄를 씻는 샘이 열렸다. 신령하고 거룩한 진리를 위탁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뒷걸음질쳤다. 그들의 믿음, 그들의 봉사, 그들의 행위는 그들이 받은 바 은혜와 거룩한 진리에 따라서 끊임없이 앞을 향해서, 또한 위를 향해서 전진했더라면 이루게 되었을 것과 비교되어야 한다.

성소의 이 저울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자 개인들이 측정될 것이다. 만일 그의 도덕적 품성과 영적 상태가 자기에게 제공된 특전과 축복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부족함이 발견될 것이다. 만일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하나님께서 뒷걸음질 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숨겨진 것처럼 보인다. 451 촛대가 그 자리에서 옮겨졌는가? 나는 현재 죽어 있는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무관심한 자들 모두에게 죽은 자들 가운데서 깨어 일어나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편안히 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하지만, 그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한다. 그들은 자기의 생애를 거룩하게 하고 세상에 전파하도록 특별하고 엄숙한 기별을 지키는 책임을 받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친 백성 중에 자기를 계수하지만, 진리의 능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을 위한 열성적인 활동을 통해서 우리 중에 나타나고 있지도 않다. 우리의 어두움은 엄청난데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빛은 감소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빛 가운데서 행하지 않는다.

두려운 기만

하나님의 명백히 드러난 뜻을 거스려 행함으로 그분께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진리가 있고, 자기야말로 유일하게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고, 하나님의 사업의 어떤 부분에 활동적으로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다고 스스로 아첨하는 것보다도 더 크게 인간의 마음을 기만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들은 마치 기계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 품성의 성화가 부족하다. 신성하고 거룩한 일이 평범한 것 수준에까지 떨어졌으며, 속됨과 천박함이 우리 교회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예배는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타락하고 있다.

표준을 높여야 한다. 더욱 차원 높게 행동해야 한다. 세상 관습과 행위로부터 나와야 하며, 분리되어야 한다. 목사들과 백성들은 더욱 높은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452 예수님과 그분의 온유, 그분의 겸허, 그분의 겸손, 그분의 자기 부정, 그분의 순결, 그분의 참된 선하심과 품성의 고결함 등이 하나님의 신령한 사업의 어떤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험과 품성 속에 훨씬 많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안내자와 규율로 삼아야 한다. 당신의 계시된 명령을 표현하고 있는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명백히 제시된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책임 있는 존재로서 자기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도록 명하신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행한다면, 그대는 그것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영적 전진을 가로막기 위해 싸우는 그대 자신의 품성 속에 있는 타고난 결함과 더불어 씨름하는 것, 이것은 그대가 행해야 할 그대의 몫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무도 부당한 애정, 비합법적인 사랑의 감정 상태에 빠져 그것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라. 그것은 기만이다. 그대는 악을 간직하고 그것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대는 진리와 순결과 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더 사랑한다. 그대는 거룩한 도우심을 힘입어 해롭고 위험스러운 관계로부터 빠져나오지 않는다. 그대는 마치 자유로운 도덕적 힘이 없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악한 길로 빠져 버린다. 요셉과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며 연구하고, 굳건하고 단호하게 그 요구를 따르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약속하신 도우심을 붙잡으라.

그대는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순종을 강요하실까? 그분께서 그대의 의지를 강요하실까? 결코 그렇지 않다. 주께서는 능력과 지성과 이성을 그대에게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불멸의 길을 그대의 손이 미치는 곳에 두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하늘로부터 보내셨다. 그대의 연약함, 그대의 불순종, 그대의 불순함, 그대의 악한 생각과 악한 행위에 대해 그대는 하나님께 어떻게 설명해 드릴 수 있는가?

453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배도 파선되지 않고 격랑과 폭풍을 이기고 행복이 넘치는 천국에 결국 닻을 내릴 수 있도록 그대가 하고자 하면 열심히, 그리고 기도하며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을 정해 놓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정해 놓으신 것들과 특권들을 멸시하고 등한히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에 아무도 구원하시기 위해 기적을 행치 않으실 것이며, 우리는 유다와 사단처럼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악을 간직하고, 죄를 행하는 그 연약한 영혼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또한 그들의 생애에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져 자아를 초월한 높은 차원의 세계로 그들을 끌어올림으로 어떤 특별한 노력, 어떤 특별한 싸움이 없이, 또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이도 그것을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 그렇게 되도록 사단의 진영에서 빈둥거리는 모든 사람은 악행하는 자들과 함께 멸망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혀 회복할 길이 없이 갑자기 멸망될 것이다.

지금 거룩하라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셨다면, 인간이 이생에서 거룩을 실천해야 한다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길도 갖고 계신다. 그들이 미래의 생명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계시된 것을 따름으로 여기에서 새로운 삶 안에서, 순결과 거룩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생애, 그들의 품성을 통해 실제적으로 나타내 보일 것이다.

하늘로 가는 길이 아버지와 아들의 무한한 값을 치르고 활짝 열렸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 길로 행하며, 조건들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는 그 길 가운데 있는가? 그대는 지도자, 생명의 빛이 되신 분을 따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택함을 받았는가?

개인과 한 백성에 대한 택함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택함인데,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 택함을 입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천국의 축복을 누리도록 분명히 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면서 종말을 바라본다. 454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택함이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갑옷을 입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사단이 그의 영혼을 앞잡이로 삼으려고 하는 동안에 모든 거룩하지 못한 정욕을 거스려 싸울 수 있도록 그의 수중에 놓아두신 하나님의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깨어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피해 가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도록 택함을 입었다. 이것이 성경의 택함이다.

큰 빛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방백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상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누리고 당신의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에이렇게 은총을 입은 이들이 이후로는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길을 더럽히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양, 그렇게 하나님께 존귀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스려 죄를 지적하지 않으실 것인 양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기만이다. 부여받은 큰 빛과 특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빛에 상응하는 덕성과 거룩함을 되돌려주기를 요구한다. 이것에 못 미치는 것은 어떤 것이나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이런 위대한 일들은 결코 마음을 누그러뜨려 안심시키거나 부주의하게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결코 음란에 대한 자격증 역할을 할 수 없으며, 그 위대한 일들을 체험한 이들이 위대한 사업에 일익을 담당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그의 재능과 지식을 의지하신다고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심각하게 행하지 않으신다고 느끼도록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모든 혜택들은 정신에 열의를, 노력에 열성을,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수행하는데 엄격함을 불어넣으시려는 그분의 수단들이다.

나의 형제인 그대들은 팔짱을 끼고 악습에 떠밀려 다니면서도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사 그대들의 품성을 변화시켜 주시고 그대들이 순결하고 거룩한 인물이 되도록 강권해 주시길 기다리고 있다. 455 그대는 음란하게 자신을 유혹에 노출시키면서, 하나님께서 그대의 마음과 성향을 강요하여 그대가 타락하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겠는가? 그대는 독사를 품속에 안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홀리심으로 그것이 독이빨로 그대를 물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겠는가? 그대는 독을 마시면서, 하나님께서 해독제를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장부가 되라

하나님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방법들을 사용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우리 홀로 할 수 있는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해 일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해야만 한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는 마음과 생애 속에, 가정과 교회 속에 들어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가 흘러갈 수 있도록 당신께서 마련하신 통로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오, 나의 형제들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 일치하는 장부들이 되고, 창조와 구속 안에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전체 속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인류라는 거대한 피륙 속에서 제자리를 지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직 장부가 되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결정적인 진보를 이루라.

수단은 마련되어 있으며, 아무도 죄에 대해서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정복에 실패한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대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는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는 분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는 악한 습관과 거룩하지 못한 생각과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는 하나님보다도 더 강한가? 그대는 감히 영원하신 분과 싸울 수 있는가?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없고, 그분의 진노를 견딜 수 없다면, 그대 자신의 악한 길로 더이상 계속해서 나가지 말라. 깨어서 사단을 대적하라. 무엇인가를 하며, 지금도 그렇게 하라. 지금 회개하고, 고백하고, 떠나라. 456 불과 폭풍의 날이 우리 세상에 닥쳐오려고 한다. 그대의 생애를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지시에 일치시키라.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러면 그대는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통해서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0절을 읽으라.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교회증언 5권, 209-218.가려뽑은 기별 2권, 376-383(영문).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

영혼의 거처가 되며, 영혼이 그것을 통해 활동하는 바로 그 육체는 주님의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기계의 어떤 부분이든지 등한히 할 권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우리 자신의 신체 기관에 대한 지식은 각 지체는 의의 병기로써 하나님의 봉사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인간 마음속의 교만을 정복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중생케 할 수 없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자신을 정결케 하고, 내 자신을 구속한 내게 영광과 존귀와 축복과 찬양이 있으라는 노래가 불려지는 것을 하늘 궁전에서는 결코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세상 여기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불려지고 있는 곡조이다. 그들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피할 수만 있다면, 이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복음은 그리스도께로부터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 속에 들어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영광을 티끌 속에 내던지고,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 목사와 교역자에게 보내는 특별 증언(Series A, NO.9.1897.6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