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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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예수님께서 유월절 절기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위대한 연례 축제일에 참석하기 위하여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으셨습니다.

두 사람의 제자들은 그분의 명령을 받고 그분께서 예루살렘성으로 타고 들어갈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옷을 그 짐승 위에 깔고 주님이 그 위에 타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분께서 그 짐승 위에 타시자마자 승리의 함성이 울려퍼졌습니다. 무리들은 그분을 메시야, 곧 그들의 왕으로 환영하였습니다. 5백년 전에 선지자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 니라”(슥 9:9)

급속히 증가되어 가는 군중들은 모두 기쁨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값진 선물들을 그분에게 드릴 수는 없었지마는, 그분의 길에 그들의 겉옷을 깔아 드림으로 융단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감람나무와 종려나무의 가지들을 꺾어서 길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기 위하여 가고 있는 그리스도를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84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왕으로 존경하는 일을 결코 허락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는 그분께서 특별히 당신 자신을 구속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고자 열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바야흐로 사람들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실 것이었습니다. 각 시대의 그분의 교회는 그분의 죽음을 깊은 명상과 연구의 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눈은 이제 그분께로 집중되어야 했습니다.

이와같은 장면이 있은 다음에는 그분의 재판과 십자가의 죽음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결코 숨겨질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구주의 마지막 생애의 모든 사건을 분명하게 드러내 줌으로, 어떤 세력도 그것들을 잊어버리게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구주의 주위에 몰려든 많은 군중들은 그분께서 이적을 행하신 능력의 증거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소경이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능력으로 혀가 풀린 벙어리가 가장 큰 소리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기뻐 뛰면서 종려 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그분의 앞에서 흔들며, 가장 활기 있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과부와 고아들은 그분께서 그들에게 보여 준 자비로운 행동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은 문둥이들은 그들의 옷을 길에 깔았습니다.

생명을 주는 구주의 음성으로 죽음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육체가 썩어 있었지만 이제는 활기에 넘치는 힘을 간직하게 된 나사로는 예루살렘까지 구주를 수행한 행복한 무리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85 또한 새로운 사람들이 무리들과 합세하고, 그들은 그 감동적인 시간에 기쁨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울려 퍼지는 기쁜 함성을 다 같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

많은 바리새인들은 그 장면을 보고 불쾌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제지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권위를 십분 발휘하여 그 사람들을 침묵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협과 호소는 다만 사람들의 열성을 증가시킬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제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무리들을 헤치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까지 갔습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와같은 시위는 불법으로서 지도자들이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눅 19:39, 40)

그 승리의 장면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일이었으므로 세상의 어떤 권세로도 중지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비록 사람이 방해하고 무너뜨리고자 온갖 수단을 간구할지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행렬이 예루살렘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꼭대기에 이르게 되자, 아름다운 그 도성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무리들은 아름다운 도성에 정신을 빼앗기고 외치던 소리를 뚝 그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느낀 것과 꼭 같은 경탄(驚歎)의 모습을 그분의 얼굴에서 찾아 볼 것으로 기대하고 구주를 바라보았습니다.

86 예수님께서는 발을 멈추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에는 슬픔의 구름이 끼어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고통스럽게 우시는 그분을 보고 놀랐습니다.

구주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분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멸망으로 운명지어진 그 도성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돌보시는 자녀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미구에 그 도성이 황폐해질 것을 아셨으므로 당신의 마음이 고통으로 충만해지셨던 것입니다.

만일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에 유의하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였을 것같으면, 예루살렘은 영원히 굳게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 도성은 만국의 여왕이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을 것입니다.

그 성문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파수를 보고 있지 않고, 그 성벽에는 로마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문에서 평화의 비둘기가 모든 나라로 날아갔을 것입니다. 그 도성은 세상의 가장 훌륭한 영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주를 거절하였고, 그들은 바야흐로 그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저녁에 해가 넘어가자 예루살렘의 운명은 영원히 인쳐졌습니다(약 40년 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불에 타 버렸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을 데리고 도성에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지도자들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큰 권위를 보이면서 “이는 누구뇨”(마 21:10)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담은 그분을 `뱀의 머리를 상하게할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87 아브라함은 그분을 `멜기세덱, 살렘 왕, 곧 평화의 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야곱은 그분을 `유다 지파의 실로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분을 `임마누엘,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분을 `다윗의 가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말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분을 `메시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호세아는 그분을 `만군의 하나님이요, 여호와는 그의 기념칭호라고 할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그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위대하신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보좌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된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 메시야, 생명의 왕, 구속주이라고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흑암의 왕자까지도 그분을 인정하여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