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된 생애

본문보기

주제제목없음

53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로서 동료들 가운데서 뛰어났다. 그의 품성 가운데에는 조금도 비겁하거나 유약하거나 우유부단한 것이 없는 반면에 상냥한 기질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감성으로 그리스도의 우정을 즐기는 듯했으며 구주의 신뢰와 사랑에 대한 증거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변화산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쓰라린 고민을 목격하도록 허락받은 세 제자중의 하나이었으며,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고통을 당하실 때 당신의 모친을 그에게 맡아 주도록 부탁하셨다.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구주의 애정은 모두 열렬한 헌신의 정력으로 바꾸어졌다. 포도나무가 우뚝 선 지주에 든든히 매달려 있듯이 요한은 그리스도께 매달려 있었다. 주님을 위하여 그는 심판정의 위험에도 용감히 나아가서 십자가 주변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성급한 베드로도 앞질러 무덤으로 급히 갔었다.

구주에 대한 요한의 사랑은 단순하고 인간적인 우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값진 보혈로 말미암아 구속받았음을 깨닫고 회개한 죄인에게서 우러나온 사랑이었다. 54 그는 주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일하고 고통 당하는 것을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은 그를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하였다. 그의 신앙은 실질적인 품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사랑 가운데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듭거듭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고 하였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19, 20). 그 사도의 생애는 자기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음 가운데 타오르는 사랑은 동족, 특히 그리스도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참으로 열렬하고 지칠 줄 모르는 수고를 하도록 하였다. 그는 능력 있는 교사였으며 열성적이고 매우 진지했으며 그의 설교는 그들로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였다.

은혜로 말미암는 새로운 피조물

요한의 생애와 품성 가운데 나타난 믿음직한 사랑과 희생적인 헌신은 그리스도교회에 말할 수 없는 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관계 없이 이러한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요한은 본성적으로 해로운 품성의 결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곧 그는 자만스럽고 야심적이었으며 화를 잘 내고 남을 멸시하기를 잘하고 남에게 곧잘 해를 끼쳤다.

주님을 위한 깊고도 열렬한 요한의 애정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의 결과로 일어났다. 55 요한은 예수님과 같이 되기를 갈망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변화시키는 감화 아래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었다. 자아는 예수님 안에 감추어졌다. 그는 살아 계신 포도나무와 밀접히 연결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되면 언제나 그렇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참된 성화다.

개개인의 품성 가운데는 뚜렷한 결점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그가 예수님의 참다운 제자가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화시키고 성결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생애에 관련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신앙으로 보다 더욱 성장한 남녀 곧 성품과 기질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산 대리자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자들이다.

품성 건설에 필요한 교훈

한번은 요한이 그의 형제들과 더불어 그들 중에 누가 가장 크게 여김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 다투게 되었다. 그들의 말이 주님의 귀에까지 들리게 하려 하지 않았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채시고 제자들에게 겸손에 대한 교훈을 주실 기회를 마련하셨다. 그 교훈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모인 작은 무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말세에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위하여 기록 되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하셨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한 자들은 저희 형제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크게 평가될 사람들이 그들이 보기에는 작다고 생각되는 자들이다. 56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 함이니라”(막 9:36, 37)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귀한 교훈이 되는가! 자기들의 행로에 곧게 놓인 생애의 의무들을 무시하며 어린 아이들에게 일지라도 자비와 친절, 호의와 사랑을 나타내기를 소홀히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요한은 이 교훈의 진의를 깨달았으며 그것으로 유익을 얻었다.

또 한번은 요한이 그의 형 야고보와 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그들을 즉시 따르지 않으므로 그가 이런 일을 행할 아무 권리도 없다 하여 결국은 그를 금하였다. 요한은 진지한 마음으로 그 경우에 대해 주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께서는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 9:39, 40)고 하셨다.

또다시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어머니를 통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지위에 앉게 하여 줍시사고 간청하였다. 구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막 10:38) 하셨다. 우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드리는 기도의 참된 뜻을 이해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영광을 얻기 위하여 치루어야 할 무한한 희생을 아셨다. 그 후에 그분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히 12:2). 57 그 즐거움은 당신이 굴욕을 당하시고 고민을 하시며 당신의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구원받은 영혼들을 보시며 느끼신 즐거움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이었으며 두 제자들이 나누어 주기를 간원했던 영광이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시니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막 10:39)하였다.

그 침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그들이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 10:39, 40)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견책받은 자만과 야심

예수님께서는 그런 요청을 하도록 자극한 동기들을 아시고 두 제자의 자만과 야심을 이와 같이 견책 하셨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2-45).

58 한번은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제자들을 앞서 보내시며 그 사람들에게 당신과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도록 부탁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구주께서 그 마을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예루살렘으로 계속 가시려는 듯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마리아인들은 적개심을 일으키고 구주를 초대하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어 그들과 유하도록 권하는 대신에 일반 여행자들에게 베풀던 예의마저 행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곳에라도 결코 억지로 유하시지는 않으셨다. 따라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이 구주를 손님으로 맞고자 간원하였더라면 그들에게 허락되었을 크나큰 축복을 상실하였다.

우리는 하늘의 주재 되신 분께 대한 이런 무례한 대우를 이상히 생각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우리도 매우 자주 그와 비슷한 경우를 경시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과 우리의 가정을 거처로 삼으시도록 그분을 강권하는가? 그분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고 이 선물들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서 계신다. 우리는 자주 사마리아인들처럼 이 선물들이 없어도 만족하려 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임재하심으로 사마리아인들을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목적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주님께 보인 냉담과 시기와 무례함을 보고 놀람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유달리 분개하였다. 그들이 그토록 높이 존경하던 분을 이와 같이 대우한 것은 그 죄과가 너무 커서 즉시로 처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은 선지자 엘리야를 잡으려고 파송되었던 수리아의 군대장관과 그 부하들이 멸망당한 일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흥분하여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라고 하였다.

59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온 것이 아니라 구하러왔노라”(55, 56절 난외주)고 하셨다. 요한과 그의 동료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교사가 되시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결점을 보며 품성을 개선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다. 요한은 모든 교훈을 중히 여기었으며 그의 생애가 신성한 모본과 조화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는 데 필수적인 사랑과 온유와 겸손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교훈과 그분의 사업의 적합성은 요한에게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이러한 교훈들은 그리스도의 초대 제자에게 행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 각자에게도 주어진 교훈이다.

요한과 유다

요한과 유다의 품성 사이에 나타난 현저한 차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의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요한은 성화에 대한 하나의 생생한 실례가 되었다. 반면에 유다는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그의 품성은 거룩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단과 유사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하였으나 말과 행실로는 주님을 부인하였다.

유다는 요한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모본을 배워서 살아갈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졌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들었으며 그의 품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수 있었다. 60 그러나 요한이 자신의 결점을 대항하여 싸우며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동안 유다는 양심을 거스리며 유혹에 굴하고 그를 사단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부정한 습관에 자신을 얽어매고 있었다.

이 두 제자들은 그리스도교계를 대표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하고 있으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겸손과 온유 가운데서 행하지만 반면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는 않음을 알려 준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는 반면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거룩한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시키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전자는 매일 자아를 버리며 죄를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자기자신들의 정욕에 빠져서 사단의 종이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