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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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감
4편국가적인 징벌

37장 -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감

452 시드기야의 치세 제9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왕하 25:1) 그 성읍을 포위하였다. 유다의 전망은 절망적이었다. 여호와께서 친히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내”었으니,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불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붙이리로다”라고 하셨다(겔 21:3, 5, 7, 31).

애굽인들이 포위된 성읍을 구하기 위하여 올라오려고 하였으므로 갈대아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하여 한동안 유다의 수도의 포위를 풀었다. 시드기야의 심중에는 희망이 솟아올랐고 그는 예레미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히브리 국가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요청하였다.

453 선지자의 무서운 대답은, 갈대아 사람이 돌아와 성읍을 멸하리라는 것이었다. 명령은 내렸고 회개하지 않은 나라는 그 이상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었다. “너희는 스스로 속”지 말라고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경고하셨다. “갈대아인이…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렘 37:9, 10). 유다의 남은 사람들은 사로잡혀 가서 저희가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기를 거절한 교훈들을 역경을 통하여 배워야 하였다. 이 거룩한 파수꾼의 명령에는 어떤 항소도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의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기록된 돌비가 들어 있는 법궤를 무자비한 자들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갖다 두기로 결심하고 그 일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법궤를 굴속에 감추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그것은 그들에게서 숨겨졌으며 다시 그들이 찾을 수 없었다. 그 법궤는 아직도 숨겨져 있다. 이것은 감춰진 이래 결코 침해를 당하지 아니하였다.

여러 해 동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으로서 백성 앞에 섰었으나 이제 운명 지워진 성읍이 이방인의 수중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자기의 사업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떠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 거짓 선지자의 아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는데 그는 예레미야가 유다 사람들에게 복종하도록 거듭거듭 간청한 바벨론 사람들과 한패가 되려 한다고 보고하였다. 454 선지자가 그 같은 거짓 비난을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옥에 “가두었다”(렘 37:15).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애굽인들을 상대하려고 남쪽으로 갔을 때에 방백들과 백성들의 마음에 솟아올랐던 희망은 곧 땅에 내던짐을 당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고 하였다. 애굽의 세력은 상한 갈대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영감의 말씀은 “애굽의 모든 거민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고 선언하셨다.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고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29:3, 6, 30:25, 26).

유다 방백들이 여전히 헛되이 애굽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동안 시드기야 왕은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옥에 갇혀 있던 하나님의 선지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날 후에 왕은 그를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비밀리에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뇨”하고 물었다. 예레미야는 대답하기를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렘 37:17~20)고 하였다.

455 이 말을 듣고 시드기야는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렘 37:21).

왕은 감히 예레미야를 믿는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는 두려워 비밀리에 예레미야에게 기별을 구할 수밖에 없었으나 선지자에 의하여 선언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으로 당할 방백들과 백성들의 비난을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약하였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서 계속 바벨론 통치자에게 복종하라고 충고하였다. 항거하는 것은 분명히 죽음을 자청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기별을 유다에게 보내셨다.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그 말씀은 분명하고도 확실하였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언하였다.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렘 38:2, 3).

마침내, 그들이 세운 저항 정책과 상충되는 예레미야의 반복된 권고에 분노한 방백들은 왕 앞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제기하고 선지자는 민족의 원수요 그의 말은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그들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하였으므로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456 겁이 많은 왕은 그 비난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으나 나라에서 높고 세력 있는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그들의 거짓을 믿는 체하면서 예레미야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그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들이 선지자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 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렘 38: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위하여 친구들을 일으키셨고 그를 위하여 왕에게 간구하였으며 그는 다시 시위대 뜰로 옮겨졌다.

다시 한 번 왕은 예레미야를 부르러 보내어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충실히 말하도록 명하였다. 그 대답으로 예레미야는 묻기를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고 하였다. 왕은 선지자와 은밀히 맹세하였다. 시드기야는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붙이지도 아니하리라”(렘 38:15, 16)고 약속하였다.

이제라도 여호와의 경고를 즐겨 들음으로 그 성읍과 나라에 내리는 형벌을 경감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기별이 왕에게 주어졌다.

457 왕은 대답하기를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였다. 선지자는 애원하며 말하기를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 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렘 38:17~20)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시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당한 요구에 복종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밝히셨다. 만일 왕이 순종하기로 선택하였더라면 백성들의 생명을 건졌을 것이요 성읍은 대 재화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발걸음을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멀리 떠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유대인을 두려워하였고, 조소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하였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배반해 온 시드기야는 이제 와서 그의 백성에게 “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나는 감히 이 모든 경고 앞에서 원수에 대하여 전쟁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비굴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드기야에게 자신과 그 백성을 구하도록 간청하였다. 예레미야는 괴로운 마음으로 시드기야에게 그가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않으면 생명을 건질 수 없고 그의 모든 소유는 바벨론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리라고 확실히 말하였다. 그러나 왕은 계속해서 그릇된 길을 갔고 그의 발걸음을 돌이키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가 참으로 멸시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요구를 그처럼 쉽게 들어주는 자기의 우유부단함을 조롱한 사람들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458 그는 자신의 성년(成年)으로서의 고귀한 자유를 희생하고 굽실거리는 여론의 노예가 되었다. 그는 악을 행할 확고한 목적도 없었고 또한 의를 위하여 담대히 설 수 있는 결심도 없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어진 권고의 가치를 깨달았으나 순종할 도덕적 정력을 갖지 못하여 그 결과로 그는 점점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왕은 너무나 연약하여 자진해서 예레미야와 만났다는 사실을 그의 궁신들과 백성들에게 알릴 수가 없었고 사람에 대한 공포는 완전히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만일 시드기야가 용감하게 서서 그는 이미 절반이나 성취된 선지자의 말을 믿는다고 선언하였더라면 파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여호와께 순종하여 성읍을 완전한 멸망에서 구원할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공포나 환심 때문에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므로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의 권고를 따르겠다.”

그러면 백성들이 그의 용감한 정신에 경의를 표하였을 것이요, 신앙과 불신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사람들은 의를 위하여 굳게 섰을 것이다. 매우 담대하고 정당한 그 행위는 그의 신하들로 하여금 경의와 충성심을 갖도록 고무시켰을 것이다. 그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유다는 살육과 기근과 화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재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드기야의 우유부단함은 일종의 죄악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는 무서운 죗 값을 지불하였다. 원수는 저항할 수 없는 눈사태처럼 성읍을 휩쓸었다. 히브리 군대는 혼란 중에 격퇴되었다. 459 나라는 정복당하였고 시드기야는 포로가 되었다. 그의 아들들은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왕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로잡혀 갔고 그의 두 눈은 뽑혔고 그는 바벨론에 도착한 후 비참하게 죽었다. 4세기 동안이나 시온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던 아름다운 성전을 갈대아 사람들은 아껴 두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대하 36:19)였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함락시킬 때 많은 사람들이 오랜 포위의 공포에서 벗어났으나 또 다시 칼에 죽임을 당할 뿐이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 특히 나라의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방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반역자로서 처단되었다. 460 다른 사람들은 사로잡혀 가서 느부갓네살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렀”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다(대하 36:20, 21).

예레미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시위 대장 느부사라단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렘 39:11, 12).

바벨론 관원들에 의하여 옥에서 놓인 선지자는 갈대아 사람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라고 남겨둔 빈천한 국민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달랴를 세워 그들을 다스릴 총독을 삼았다. 그러나 몇 달이 되지 아니하여 새로 임명된 총독은 배신당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가난한 백성들은 많은 시련을 겪은 후 마침내 애굽 땅에서 피난처를 찾자는 저희 지도자들의 권유를 받았다. 예레미야는 이 움직임에 대하여 음성을 높여 탄원하였다.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영감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고 “유다의 남은 자…남자와 여자와 유아”가 모두 애굽으로 도망하였다. 그들이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렘 43:5~7).

애굽으로 도망함으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일으킨 남은 무리에게 예레미야가 선언한 운명의 예언들에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즉시 되돌아올 사람들에게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이 섞여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권고를 버리고 애굽인의 우상숭배의 유혹적인 감화 아래로 돌아간 사람들을 아끼지 않으시는 반면에 충성과 진실을 나타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461 여호와께서는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렘 44:28)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영적 빛이 되었어야 했을 사람들의 완고한 죄에 대한 선지자의 슬픔 곧 시온의 운명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백성의 운명에 대한 그의 슬픔이 여호와의 권고를 버리고 인간의 지혜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의 기념비로서 쓴 글 애가서(哀歌書)에 나타나 있다. 파멸이 이루어진 중에서도 예레미야는 여전히 “여호와의 자비…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며 그는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였다(애 3:22, 40). 유다가 아직 열국 중에 나라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 예레미야는 그의 하나님께 문의하기를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라고 하였고 그는 담대히 간청하기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렘 14:19, 21). 혼란 중에서 질서를 잡고, 세상 열국과 온 우주에 당신의 공의와 사랑의 특성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대한 선지자의 절대적인 신앙은 그로 하여금 악에서 의로 돌이킬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확신을 가지고 간청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시온은 완전히 멸망당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은 속박 중에 있었다. 슬픔에 억눌린 선지자는 부르짖었다. 462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털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 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육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46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웠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 1:1~4, 2:1~4, 13, 5:1~3, 7, 8, 17,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