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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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인간의 이해 관계와 자신을 연결시키신 그리스도의 모본은 주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과 또 그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모두가 따라야 할 모본이다. 우리는 사교적 교제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계층의 사람들과도 접촉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우리를 찾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강단 위에서만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로써 감동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하나의 영역이 있으니 비록 그보다는 작을지라도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유망한 것이다. 이는 미천한 자의 가정에서, 부귀한 자의 저택에서, 식탁에서, 또 순진한 사교적 친목을 위한 모임 중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단순히 쾌락을 즐기기 위하여 세상과 혼합하여 어리석게 그들과 연합하지 말 것이다. 이러한 교제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말이나, 우리의 행실이나, 우리의 침묵이나, 혹은 우리의 참여함으로 죄를 시인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예수를 모시고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구주의 고귀하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을 돌벽 속에 감춤으로 그 신앙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선을 행할 귀한 기회를 잃어버린다. 사교적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는 세상과 접촉하게 된다. 하늘의 빛을 받은 각 사람에게는 생명의 빛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비추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모두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된 사교의 능력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이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404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기적 이해 관계에 열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도리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축복과 특권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신앙은 냉정하거나 혹은 강제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하라. 그리스도를 발견하였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라.

우리는 결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침울하고 기쁨이 없는 백성이라는 거짓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눈이 예수에게 고정된다면 우리는 자비하신 구주를 볼 것이요, 또 그의 얼굴에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주의 영이 주관하시는 곳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또한 기쁨이 있을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 대한 평온하고 거룩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비록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의 품성에 참여한 자가 된 것을 나타낼 때에 기뻐하신다. 그들은 조각된 상이 아니요 산 남자와 여자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늘의 은혜의 이슬로 말미암아 새로워져서 의의 태양을 향하여 문을 열고 크게 벌리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빛나는 행위로 그들이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한다.―시대의 소망 1권, 196, 197.

교제는 운명에 영향을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지어 성인들에게도 교우 관계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역설한다. 하물며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정신과 성격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겠는가! 그들이 교제하는 동무들과, 그들이 채택하는 원칙들과, 그들이 이루는 습관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유용성과 그들의 장래의 운명에 관한 문제를 결정할 것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80.

405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그리스도인의 사교성이 너무 적게 배양되어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 부분의 교육을 등한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각각 독립된 원자가 아니라 다른 실과 합하여 옷감을 짜내는 한 올의 실인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 교훈을 학교 만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 학교에서 그들은, 만일 활용만 한다면 품성의 사교적인 일면을 계발하기에 큰 도움이 될 많은 기회들로 둘려 있다. 그들을 행복하고 유용한 사람으로 만드는 품성의 개발은 시간과 기회를 활용하는 그들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 스스로 고립되는 자들, 즉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한 친밀한 교제를 꺼리는 사람들은 많은 축복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상호 접촉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연마 단련되기 때문이다. 또 사교적 접촉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마음의 일치와 사랑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우정을 맺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자들은 사교적 능력을 계발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감추어 두어서는 안 되며 홀로 자기만 그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독점하는 탐스러운 보물과 같이 봉해 두어서도 안 된다. 또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들의 뜻에 맞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져서는 안 된다. 406 학생들은 비록 그들이 스스로 택한 친구들이 아닐지라도 가장 큰 곤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친절한 관심과 친밀한 기분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을 배워야 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 대한 이런 사랑의 관심을 보여 주셨고 주위에 기쁜 경건의 빛을 비추셨다. 학생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배워야 한다. 그들은 젊은 친우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관심과 동정과 사랑을 나타내고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샘물로 그들의 마음 속에 거하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은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즐겨 사랑의 봉사를 베푸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언행 일치하는 신앙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산 선교사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시간을 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 투자된 시간은 유용하게 사용된 것이니 학생들은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세상에 제시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밀한 교제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거절하시지 않으셨다. 바리새인이나 세리로부터 잔치 초대를 받으셨을때 그분은 그 초대에 응하셨다. 이런 경우 그분께서 발하신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은 듣는 자들에게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다. 이는 만찬의 시간을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귀중한 교훈의 부여 기회로 삼으셨던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신자들의 모임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모임 중에 있을 때에도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교회증언 6권, 172, 173.

407 마음은 예수께 속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한한 값을 치르셨다.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변호를 하고 계시되 탄원자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소유를 마땅히 요구하시는 승리자로서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 하실 수 있으니 예수는 항상 살아 계시사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마음은 귀한 재물이며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다. 그대들의 모든 인격과 소유한 모든 능력은, 거룩한 헌물로 다시금 하나님께 즐겨 되돌려야 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성한 위탁물이다.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그대들에게 주시지 않은 것을 드릴 수는 없다. 그런 고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셨고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선물을 드리는 것이다.

청년들은 흔히 시간과 애정과 체력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단은 청년들을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며, 수많은 청년들이 그들이 가진 모든 능력과 재능을 그에게 돌린다.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제 소유로 요구하지만 사실은 속량하신 구주의 소유이다. 만일 마음을 세상에 내어준다면 그 마음은 걱정과 슬픔과 실망으로 가득 찰 것이며 결국에는 불순하고 부패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사랑과 봉사를 세상에 내어주는 것은 가장 악독한 약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을 구하는데 마음을 바친다면 아무런 유익도 얻을 수 없다.

의의 대적 사단은 여러 가지 생활 환경에 처한 청년들을 위하여 각종 쾌락을 준비해 놓고 있다. 408 그리고 이 쾌락들은 혼잡한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이 상주하는 모든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사단은 청년들을 군사로 그의 대열에 끌어들이기를 좋아한다. 악마의 괴수는 어떠한 재료를 사용해야 될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청년들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키는 습관과 쾌락들의 고안에 그의 흉악한 지혜를 발휘하였다.

탕 자

탕자의 비유는 청년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이 탕자는 상속받은 재산을 쾌락과 죄악적 방종의 생애로 모두 탕진해 버린다. 친구도 없이 타향에서 남루한 의복을 걸치고 굶주린 나머지 돼지 먹이라도 얻어 먹기를 갈망한다. 탕자의 마지막 소망은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며 그는 그 곳에서 환영을 받고, 용서를 얻고, 아버지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된다. 많은 청년들은 이 탕자가 행한 것처럼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생수의 근원, 곧 진정한 희락의 원천을 버리고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초청

하나님께서 청년들을 모두 초청하시기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 내가 깨끗이 지키며 참된 쾌락으로 그 모든 요구를 채우리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을 기쁘게 하기를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청년들로 하여금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 모든 천부의 능력을 활기차고 건강한 상태로 보전되게 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을 갖고 있다. 주께서는 심장의 고동을 뛰게 하시고 모든 기능에 힘을 주신다. 순전한 즐거움은 하나님의 선물 중 단 하나라도 그 기능을 저하시키지 않을 것이다. 409 우리의 애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쾌락을 추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체와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청년들은, 천사들과 함께 거하기에 합당한 품성을 가졌는지를 알기 위해 세상이라는 시험 무대에 올려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대들의 동료들이 그대들을 악하고 어리석은 길로 들어가기를 강요하고, 그대들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잊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맡겨주신 재능들을 파괴하고, 모든 고상한 성품을 저열하게 하려 할 때에는 단호히 저항하라. 그대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고통과 번민을 대가로 주고 산 하나님의 소유임을 기억하라. … 주 예수께서는 그대들의 봉사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대들을 사랑하신다. 예수의 사랑이 의심스러우면 갈바리를 바라보라. 십자가에서 반사되는 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을 보여줄 것이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라.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계명을 연구하고 익히고 유순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로 둘러싸임

하나님의 은혜는 순간마다 그대들을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날마다 축복이 어떻게 또 어디로부터 이르러 오는지를 생각해 보면 유익할 것이다. 하나님의 귀하신 축복이 그대들의 마음에 감사의 정신을 일으키게 하라. 그대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그대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인자하심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만물을 새롭게 하는 빗방울처럼 무수한 까닭이다. 자비의 구름이 그대들 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곧 방울이 되어 떨어지려 하고 있다. 410 만일 그대들이 구원의 귀한 선물을 감사히 여긴다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며 예수의 보호와 사랑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화평의 길로 인도함을 받으리라.

천연계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물들을 보라. 그대들은 마음을 다해 조물주께 감사하도록 하라. 자연의 책 가운데는 우리의 마음에 유익이 되는 연구가 있다. 감사치 않고 무분별한 자가 되지 말라. 총명의 눈을 떠서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칙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라. 찬미하라. 그리고 하늘과 땅의 최고의 통치자인 조물주를 찬미하고 그분께 경의를 표하라. 사랑으로 그대들에게 허리를 굽히시고 동정에 넘치는 말로, “나의 아들, 나의 딸이여, 너희 마음을 나에게 달라”고 하시는 구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예수께 그대 자신을 드리라. 그리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주가 살아 계시니”(욥 19:25)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예수를 믿는 믿음은 그대들이 세운 모든 목표를 향해 힘차게 매진하게 하며 언행 일치하는 품성을 갖게 한다.

이생에서의 모든 행복과 평화와 기쁨과 성공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의 신앙에 달려 있다. 이 신앙만이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참된 순종을 촉진시킬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은 모든 악습을 다루는 가장 힘있는 제어책이며, 또 모든 선행의 동기가 된다.

그대들은 예수를, 죄를 사유해 주시고 그대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집에서 행복스럽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믿어라. 주께서는, 그대들이 당신의 존전에서 함께 살고 영생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를 원하신다.―청년 지도자, 1887년 1월 5일

411 청소년들이 교제하는 친구들을 갖게 되는 것과 교제의 감화를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영혼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신비한 고리들이 있어서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응을 주게 된다. 또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상과 감상과 정신을 받아들인다. 이 교제는 축복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청소년들은 피차에 서로 돕고 격려하여 품행과 성격과 지식이 발전한다. 그러나 부주의하고 불성실함으로 그들은 타락케 하는 감화를 끼칠 수도 있다.

교제의 상대자를 선택하는 일은 학생들이 신중히 고려하도록 배워야 할 문제이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중에는 언제나 두 가지 부류의 학생들이 있음을 발견할 것인데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교사들에게 순종하는 학생들이며 또 하나는 불법적인 정신으로 가득 찬 학생들이다. 만일 청년들이 많은 무리들과 함께 악을 자행한다면 그들의 감화력은 영혼들의 대적인 사단의 편에 서게 될 것이며 그들은 확고 부동한 신앙의 원칙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너의 친구를 보여달라. 그러면 내가 너의 성품을 보여주리라”는 말은 참으로 진실한 말이다. 청소년들은 교제하는 상대의 선택에 따라 그들의 성품과 그들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받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취미, 습관 및 성향이 서로 맞는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지혜 있고 선한 자들과 교제하기보다는 사악하고 무지한 자들과 교제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품성에 어떤 결함이 있음을 나타낸다. 412 처음에는 자신의 취미와 습관이 자기가 교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취미와 습관에 전반적으로 동일하지 않을지라도 그가 이런 사람들과 섞이게 될 때 그의 사상과 감정은 변하게 되고 바른 원칙들을 희생시키며 은연 중에 그리고 불가피하게 그가 교제하는 자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마치 시냇물이 흐를 때에 통과하는 곳의 토질의 성분을 항상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청소년들의 관심과 습관들은 반드시 그가 교제하는 자들의 품성에 물들게 된다.

능력의 측정

성품의 힘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들은 곧 의지력과 자제력이다. 많은 청소년들은 강하고 분방(奔放)한 열정을 품성의 강한 힘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사실상 정욕의 지배를 받는 자는 약한 사람이다. 사람의 참된 위대성과 고결성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그의 힘으로 평가되며 그를 굴복시키는 그 자신의 감정의 힘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굴욕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격정을 억제하고 그의 원수를 용서해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적·도덕적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각 사람은 자신의 품성의 건축가이다. 그 건물은 거의 다 완성되어 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건축하는지 유의하여 우리의 건물이 영원한 반석 위에 세워지는지 살피라고 경고하신다. 우리 행위가 현실 그대로 나타날 시기가 온다. 모든 사람이 현세에서는 유용하고 또한 내세에서는 더욱 고상한 생애에 합당한 품성을 형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들을 계발시킬 때는 바로 지금이다.

413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신앙이 품성에 힘과 견고함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이 그들 위에 계시며 만인의 재판장이 도덕적 가치를 달아보시고 하늘 천사들이 어떤 품성이 계발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근신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까닭은 그들보다 더 오래 살아온 어른들의 경험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부모들과 교사의 경계하는 말과 교훈을 다만 희롱과 조소로서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든 교훈을 간직하여야 하며 이와 동시에 어떤 인간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깊은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거하실 때에 그분의 영께서는 영혼을 순결케 하고 생기를 주는 힘이 되신다. 마음 속에 있는 진리는 반드시 생애를 바르게 교정하는 감화를 준다. … 가정을 떠나 있으므로 부모들의 직접적인 감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하늘 아버지의 눈이 저들 위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을 기억하게 하라. 주님께서는 청소년들을 사랑하신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알고 계시며 그들의 유혹을 이해하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청소년들 속에 위대한 가능성들이 있음을 보시고 만일 청년들이 그들의 부족을 인식하고 주님께 도움을 구한다면 언제나 그들을 도와서 최고의 표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학생들이여, 밤낮으로 그대들을 위한 부모님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다. 날마다 그들의 사랑하는 관심이 그대들을 따르고 있다. 414 그들의 호소와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전력을 다하여 그대들을 둘러싸고 있는 죄악에서 벗어날 것을 결심하라. 대적이 그대들의 마음과 습관을 부패하게 만들고 그대들 속에 건전치 못한 사상을 계발시키려고 얼마나 교활하게 일하고 있는지를 그대들은 식별하지 못하고 있다.

경박한 희롱과 쾌락을 얻기 위하여 첫발을 들여놓을 때에는 실지로 위험한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굴복하여 나쁜 일을 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방향을 변경하려고 할 때 쉽사리 바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쁜 친구들을 선택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덕을 행하는 길에서 떠나 한 때 도저히 그 가운데 빠지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불순종과 방탕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유혹에 굴복하는 학생은 선에 대한 자신의 감화력을 약화시키며 그릇된 행동을 취함으로 영혼들의 대적 마귀의 대리자가 된 자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 행로에 거치는 돌들을 놓아둔 데 대해서 하나님께 추궁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찌하여 학생들이 큰 배도자로 더불어 손을 잡아야 하는가? 어찌하여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는 마귀의 매개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그보다도 동료 학생들과 교사들을 돕고 용기를 주기 위하여 어찌하여 연구하지 않는가? 사단이 교사들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곤경에 처하게 만들 때에 또는 교사들을 낙담시킬 정도로 그들의 부담을 무겁고 괴롭게 할 때 교사들을 도와주는 것이 학생들의 특권이다. 학생들은 도움이 되는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모든 학생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질서와 근면과 순종을 존중히 하며 약간의 힘이라도 모든 선하고 고상한 것의 큰 원수가 되는 자에게 빌려주기를 거부해야 한다.

415 진리에 대하여 성실한 관심과 진정한 의무감을 가진 학생은 그의 동료 학생들을 감화시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크게 공언할 수 있다. 구주와 함께 멍에를 메고 있는 청소년들은 방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쾌락과 만족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도 또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상급 학생들은 어린 학생들의 습관과 관례들을 형성하는 것이 오로지 그 자신들의 힘에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하며 모든 기회를 가장 잘 이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의 좋지 못한 감화로 그들의 친구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는 일이 없도록 결심하게 하라.

예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사람들은 자유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은 구주를 위하여 세속적인 애정과 정욕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구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간다. 그들은 저희의 소망을 그리스도 위에 세웠으므로 지상의 아무리 거센 폭풍이라도 그들을 휩쓸어 견고한 기초를 떠나게 할 힘이 없을 것이다.

신뢰할 만하고 신실함

젊은 남녀들이여, 그대들이 어떠한 경우에서도 신뢰할 만하고 신실하며 정의의 편을 들 준비와 결심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그대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대들은 바른 습관을 형성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도덕에 건전하고 선행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과 사귀도록 힘써라. 416 귀한 시련의 시간은 그대들이 모든 품성의 결함을 제거하도록 허락되었으며 그대들은 내세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유용한 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결함을 제거해야만 한다. 좋은 품성은 금이나 은보다도 더 가치 있는 재산이다. 이러한 품성은 공포나 어떤 실패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재물이 쓸어버림을 받는 날에 품성은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이다. 근실, 견고, 인내는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계발시켜야 할 특성이니 대개 이러한 특성은 이를 소유한 자로 저항할 수 없는 능력 곧 선을 행하는데 강하게 하며 악을 대항하는데 강하게 하고 역경을 견디는데 강하게 하는 그런 능력으로 옷입혀 줄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책임감은 지력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자극제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충동에 의해서 행동이 이루어질 때 그 학생은 경박한 자가 될 수 없다. 그 학생은 항상 진실하게 행할 것이다. 그는 모든 하늘이 그를 교육하는 일을 위해서 지지하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할 것이다. 그는 결국에 고상한 정신을 가지게 되고 관대하며 친절하고 예의 있고 그리스도와 같은 유능한 사람이 될 것이다. 마음과 정신이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어 작용할 것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80-185.

417 그리스도의 생애는 언제나 넓어지고 있는 무제한의 감화력, 즉 당신을 하나님과 온 인류에게 연결시키는 감화력을 가졌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서는 살 수 없게 하는 감화력을 주셨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동포들과 연락되어 있어 하나님의 크신 가족의 한 부분이 되나니 우리는 상호간에 의무를 지고 있다. 아무 사람도 자기 동포들에게서 고립할 수는 없으니 이는 각 사람의 행복은 각각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는 까닭이다.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필요한 자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도록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분위기로 둘러싸여 있으니-이 분위기는 생명력을 주시는 믿음과, 용기와, 소망으로 가득 차서 사랑의 향기로운 분위기가 될 수 있다. 이와 반면에 이 분위기는 불만과 이기심과 불만의 우울과 쓸쓸함으로 둘러싸일 수도 있으며 품은 죄로 몹시 오염된 유독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를 싸고 있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우리와 접촉하는 자들이 은연 중에 그 감화를 받게 된다.

우리의 책임

이것은 우리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의복과 품행과 심지어는 안색까지라도 각각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끼친 감화에는 선악간에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결과가 따르게 된다. 이렇게 끼친 충동은 반드시 수확을 거두게 하는 씨가 된다. 418 이 충동은 우리로서는 어디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의 사건들로 이루어진 길다란 사슬의 한 고리가 된다. 만일 우리가 실지 모범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선한 원칙을 실행하도록 도와준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선을 행할 힘을 주는 것이 된다. 그들도 또한 같은 감화를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하고, 또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한다. 이리하여 우리가 무의식 중에 주는 감화로써 여러 천만 인이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약돌을 호수 가운데 던지면 한 파문이 생기고, 연달아 다른 파문들이 생기게 되고, 그 파문이 증가됨에 따라 그 원형(圓形)은 넓어져서 마침내는 그 호수의 아주 변두리까지 달하게 된다. 우리의 감화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이 감화력은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또 조종할 수 있는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기도 하고 저주를 주기도 한다.

품성은 힘이다. 진실되고 이기심이 없는 경건한 생애로써 증거하는 무언의 증거는 소멸할 수 없는 감화를 발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 우리는 영혼 구원 사업에 그리스도와 협력하게 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협력할 수가 있다.

우리의 감화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더욱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그들의 생애 가운데 율법의 원칙을 실천하는 때에, 그들의 모든 행동이 그들의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들의 이웃 사람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함을 증거하는 때에 교회는 능히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350-352.

419 우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가장 유익한 교제를 선택하고 우리에게 이르는 모든 도움을 잘 활용하여야 한다. 이는 하늘로 향하는 우리의 길을 가능한 한 힘겹게 만들기 위하여 사단이 많은 장애물을 놓아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그들의 뜻대로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품격 형성에 거슬리는 나쁜 감화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의무 이행을 위하여 부득불 그러한 환경에 들어가야 할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견고히 서서 타락하지 않도록 갑절이나 경계하고 기도해야 한다.

롯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에워쌀 도덕적 감화보다는 현세적 이익만을 보고 소돔을 거주지로 선택하였다. 롯은 이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가? 그의 소유는 모두 소멸되었고, 자녀들 중 몇은 그 죄악의 도시가 파멸될 때 함께 멸망을 당하였으며, 아내는 길가의 소금 기둥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마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고전 3:15)이 구원을 얻었다. 롯의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소돔의 도덕적 타락이 그의 자녀들의 성격에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선과 악, 죄와 의를 구별할 수 없었다.―시조(영문), 1884년 5월 29일

420 타인과 교제할 때 자신을 그의 처지에 두라. 그들의 자각과 곤란과 실망과 기쁨과 슬픔에 들어가라. 그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라. 그리고 그대가 그들과 입장이 바뀌었을 때 그대가 그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라. 이것이 의의 진정한 법칙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 하신 것은 율법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지자들의 교훈의 대강령이다. 그것은 하늘의 원리이며 그 거룩한 교제에 적합한 모든 사람에게서 계발될 것이다.

예수께서 교훈하신 금언은 진정한 예의의 원칙이다. 그리고 그 가장 진실한 모본은 예수의 생애와 품성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아! 구주의 매일매일의 생애 가운데서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이 비치었는가! 예수에게서 아름다운 향기가 얼마나 흘러넘쳤는가! 그 같은 정신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거하시는 사람은 거룩한 분위기에 싸일 것이다. 그들의 깨끗하고 결백한 옷은 여호와의 동산에 풍기는 향기를 드러낼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반사할 것이요, 피곤한 발로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는 길을 비칠 것이다.

완전한 품성에 대한 진정한 이상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동정심과 친절함을 나타낼 것이다. 은혜의 감화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감정을 순결하게 하고, 하늘로부터 난 우미(優美)함과 예절 감각을 준다.―산상보훈, 192, 193.

421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각 사람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신다.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와 또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예의와 겸손을 가지고 대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사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는 예의를 지키셨고 당신을 핍박하는 자에게까지도 그리하셨다. 따라서 참으로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통치자들 앞에 불려온 바울을 보라. 아그립바 앞에서 행한 그의 변론은 설득력 있는 웅변 뿐 아니라 참된 예의의 실례가 된다. 복음은 이 세상에 유행하는 형식적 공손을 장려하지 않고 충심어린 친절에서 우러나오는 예의를 장려한다.

인생의 외모에 나타나는 예의를 가장 세심하게 계발하는 것으로는 모든 성내는 일과 가혹한 판단과 부단한 언사를 물리치는데 역부족이다. 진정한 세련이란 자기를 최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결코 나타날 수 없다. 사랑을 마음 속에 품지 아니하면 안 된다. 철저한 그리스도인은 행동의 동기를 자기 주께 대한 충심의 사랑에서 이끌어 온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뿌리에서 그 형제에 대한 무아의 관심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사랑은 이를 가진 자에게 우아와 예의와 아담한 행동을 준다. 이는 얼굴로 빛나게 하고 소리를 낮추게 한다. 이것이 전인격을 세련시키고 향상시킨다.―치료봉사, 451.

참된 예의가 필요함

422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남녀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유능한 일꾼들이 되는 길을 배우는 일이다. 그들은 세상의 기만적인 겉치레와 자랑을 따르지 않고, 하늘의 향기이며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누구나 누리게 될 참된 예의와 친절함을 갖춘 세련되고 총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안식일 준수자들 가운데서 보이는 참된 위엄과 그리스도인의 품위의 부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게 하고 믿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를 향기롭지 못하게 한다. 마음과 행실을 도야하는 사업은 완전에 이르기까지 진행시킬 수 있다.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남녀의 완전한 분량에까지 장성하도록 그들의 특권과 기회를 지금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진리 사업과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교회증언 4권, 358, 359.

친구의 선택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는 청년들은 바른 일을 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친구들을 선택할 것이요 바른 원칙과 고상한 목적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교는 피할 것이다. 비속한 습성을 가진 청년들을 각 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청년들과 교제하게 되는 경우에 그리스도의 편에 굳게 서 있는 자들은 이성과 양심이 바르다고 가르치는 바를 굳게 견지할 것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기별, 185.

423 청년들은 무엇을 자신의 목표와 일생 사업으로 삼을 것인지 진실히 생각하여야 하며 부패에 물들지 않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기초를 세워야 한다. 만일 청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서려 한다면 자립 정신을 가져야 한다. 연못에 있는 수련이 티끌과 진흙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기공이 있는 줄기를 통하여 성장을 촉진시키는 양분을 빨아올린다. 그리하여 흠 없는 꽃을 피워 못 한가운데에 곱고 순결한 모습을 드러낸다. 연꽃은 자신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더럽히거나 손상시키는 것을 모두 거절한다.

우리는 이 수련을 통하여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비록 도덕을 부패하게 하고 영혼을 멸망케 하는 감화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우리는 부패를 거부하고 나쁜 교제가 우리의 마음을 부패하게 할 수 없는 곳에 우리 몸을 둘 수 있다. 개인적으로 청년들은 흔들리지 않는 보조로 위를 향해 나아가려고 고투하는 사람들과 교제해야 한다. 그들은 모든 나쁜 감화를 받아들이는 자들과 교제하지 말 것이요, 높은 성품의 표준에 도달하려는 열성을 갖지 아니한 나태한 사람들, 그리고 원칙에 진실한 사람으로 신뢰를 받기에 부족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여야 한다. 청년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힘쓰도록 하라. 이와 같은 사람들의 고결하고 견고한 품성은 연못 한가운데서 순결한 꽃을 피우는 수련으로 대표된다. 424 그들은 타락적인 감화에 의해 품성이 형성되는 것을 거부하고, 순결하고 고귀한 품성의 발달에 필요한 것만을 모은다. 그들은 하늘 모형에 일치되기를 구한다.―청년 지도자, 1893년 1월 5일

도움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언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그들이 경험한 귀중한 사건들에 대한 대화가 너무 적다. 말의 재능을 남용하므로 하나님의 사업은 불구가 되고 하나님은 욕을 받으신다. 시기와 그릇된 주측과 이기심을 마음에 품는다면 부패한 속마음이 말로 표출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악한 생각과 말에 젖어 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하여 아들을 주심으로써 나타내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사랑에 대하여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마땅히 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말이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피차에 서로 돕고 권면하는 근원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우리의 말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불신자들은 종종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감사의 청아한 말을 들을 때 감화를 받는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8년 1월 25일

우리의 감화력

언어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모본과 품행은, 죄인에게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11월 29일

425 최고의 학문을 수학한 사람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가장 효과적인 그릇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학과를 통하여 지식을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실제적인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를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종 배우기를 멈추고 오만하여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인 예수에게서도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긴다.

장성하고 발달된 사람들, 즉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추리력이 발달된 사람들은 유용한 지위에 서게 될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생애와 품성에 들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작용을 하나니 심지어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분을 얻어 영적·지적으로 강건해질 것이며 진리와 의를 위하여 싸울 것이다.

표준이 낮은 이유

우리 청년들과 성인들이 왜 그토록 유혹과 죄에 쉽게 빠져드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연구하고 명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426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긴다면 내실 곧 악을 행하려는 사단의 유혹에 저항할 영적 능력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신성한 교훈을 연구와 명상의 제목으로 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굳고 단호한 의지력이 생애와 성격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을 순결하고 고귀한 사상에 연결시키는 한편 불순하고 거짓된 것에서 떠나게 하기 위하여 당연히 기울여야 할 노력을 다하지 아니한다. 마음에 축척되었다가 일상 생활 속에서 실행되는 하늘 교사의 가장 신성한 교훈을 배우기 위하여 마리아와 같이 예수의 발 아래 앉는, 좋은 편을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거룩한 사물에 대한 명상은 마음을 향상시키고 세련시키며, 그리스도인을 신사와 숙녀로 성장시켜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과 행동과 사상으로 자기의 모든 능력을 육욕적·세속적 타락의 지경으로 하락시키는 자를 받아주지 아니하실 것이다. 하늘은 순결하고 거룩한 곳이므로 세련되고, 신령하고, 청결하고 정화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그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각각 할 일이 주어졌으며 우리는 예수께로부터 힘을 받음으로써만 이를 능히 이룰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책보다도 성경을 우리의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음성으로 여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한하신 것과 요구하신 것, 즉 “너희는 할지어다” 라는 말씀과 “너희는 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씀을 알고 이해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깨달아야 한다.

경건의 필요성

427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고문으로 삼고, 또 빛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상고할 때 하늘 천사들이 다가와 마음을 감화시키고 총명을 주어서,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라는 말씀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청년들 가운데서 더 이상의 경건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의 죄를 피하고 품성 가운데 있는 모든 더러운 흔적을 깨끗게 하기 위하여 하늘의 충고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훈계를 따르지 아니하며, 은혜와 하늘의 지혜를 찾지 아니한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시 119:27).

청년들의 마음과 연장자들의 마음이 올바른 지도 하에서 서로 교제한다면 그들은 고상한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을 것이다. 마음이 순결하고 사상이 하나님의 진리로 고상하게 될 때 언어는 곧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 25:11)와 같은 성질을 띄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해력과 행습, 그리고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만족하고 있는 낮은 표준을 갖고서는 그들의 대화가 저열하고 무익할 수밖에 없다. 이는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고전 15:47) 것으로 진리의 향기, 하늘의 향기가 되지 못하고 양식 있는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성화의 강력한 과정

그리스도와 하늘을 명상의 제목으로 삼을 때 언어가 이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428 말은 은혜를 머금을 것이며 말하는 사람은 하늘 교사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음을 나타낼 것이다. 시편 기자는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시 119:30)라고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겼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마음에 들어가, 등한시되지 아니하고, 그의 생애에서 실천되었다. … 날마다, 시간마다 극기와 성화의 과정이 마음 속에서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밖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마음 속에 거하심을 증거할 것이다. 성화는 지식에 이르는 심령의 통로를 막지 아니하고 도리어 마음을 발달시키고 격려하여 마치 숨은 보화를 찾는 것과 같이 진리를 찾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성화의 사업을 진전시킨다. 하늘은 분명히 있다. 오! 우리는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으로 노력하여야 할 것인가!

나는 우리 학교와 대학의 학생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믿으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께 나아갈 때 언제든지 당신의 은혜로 그대들을 돕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자. 그대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대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씨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분투하라. 사단이 그대들을 꽉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대들이 몸을 돌이켜 사단의 손을 뿌리치지 아니하면 그대들은 마비되고 멸망당할 것이다. 원수가 그대들의 전후 좌우에 있으며 그대들은 그를 짓밟지 않으면 안 된다. 분투하라. 그대들에게는 쟁취해야 할 면류관이 있다. 분투하라. 만일 그대들이 면류관을 쟁취하지 않으면 이생과 내세에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분투하라. 그러나 그대들의 부활하신 구주의 힘을 의지하여 하라.―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8월 21일(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129-137)

429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이 젊은이의 만용으로 사용한 짧은 방탕의 시간이 그대들의 전생애를 아픔 가운데 몰아넣을 그런 수확을 거두게 할 것이다. 부주의한 한 시간-유혹에 한 번 굴복한 일-이 일생의 전조류를 나쁜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 청춘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그것을 잘 이용하라. 그대들이 한 번 그 곳을 지나면 그 과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거절하고 자신을 유혹의 길에 내어놓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청년 하나 하나를 시험하고 계신다. 많은 청년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경험 많은 사람들의 나쁜 본을 빙자하여 자기의 부주의와 불경건을 변명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를 행하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후 심판의 날에는 오늘날과 같은 변명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정죄함을 받을지니 이는 그 길을 알면서도 그 가운데로 행하기를 선택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유혹

대기만자 사단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그럴 듯한 유혹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을 정복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의무의 길에서 떠나게 한다. 사단은 참소자, 거짓말장이, 고통을 주는 자, 그리고 살인자 등으로 묘사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 3:8). 하나 하나의 범죄는 사람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의 생각까지도 보신다. 430 불순한 생각을 품었을 때 그것이 언어와 행동으로는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완전한 죄가 되어 영혼을 정죄한다. 그의 순결은 더럽혀졌고 따라서 시험하는 자가 승리를 거두었다.

누구든지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 미혹될 때 시험을 받는다. 사람은 자신의 성벽을 따름으로 도덕과 참된 선행의 길에서 떠나게 된다. 만일 청년들이 도덕적 완전 무결함을 소유하였다면 아무리 강한 유혹도 무력할 것이다. 그대들을 시험하는 것은 사단의 행위이지만 굴복하는 것은 그대들 자신의 행위이다. 사단의 온 대군도 시험받은 자로 하여금 억지로 범죄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청년들 중의 더러는 헛되고 어리석은 일에 그들의 힘을 소모하고 있지만 한편 다른 무리들은 그들의 마음을 훈련하고, 지식을 쌓으며, 성공적인 일생을 살려는 결심을 가지고 인생의 싸움에 참가하려고 갑옷에 허리띠를 두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올라가려고 발버둥칠지라도 애정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지 않는 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서고 의를 행하려 하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약화시킬 염려가 있는 자들의 아첨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힘과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헛된 오락은 참된 행복이 되지 못함

사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경향에 도취되어 필경에는 그 욕망의 지배를 받고 만다. 의복을 잘 입고 오락의 장소에 출입하며 헛되고 무가치한 문제에 대하여 웃고 떠드는 것-이것이 그들의 생애의 목적이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하늘의 사물을 명상하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어떤 자극적인 것이 없으면 비참해 한다. 431 그들은 행복하게 되는 능력을 내면에 갖지 못한 채 자신들처럼 생각 없고 부주의한 다른 청년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행복을 얻으려고 한다. 고상한 목적에 이용되어야 할 모든 능력을 어리석은 일에 사용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 가운데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는 청년들은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마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그는 탁월한 도덕의 높은 표준과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광범위한 사상에 도달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훌륭한 사상과 고상한 욕망,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고상한 행동의 목적을 장려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의 영혼을 그분께 연결시키는 자들을 당신의 아들과 딸로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의 빛과 지혜의 통로로 삼으실 때까지 그들은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견해를 더욱 분명히 하고 더 높은 곳으로의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고 유쾌하고 즐거울 것이다. 그의 차분한 음성은 온화함을 나타낼 것이요, 행동은 신령하고 영원한 사물에 대한 존경심을 보일 것이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 곧 즐거운 음악이 그 입술로부터 메아리칠 것이다. 이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경건의 신비이다. 그렇지만 분명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완악하고 반역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아름다운 감화력과 성령 안에서의 모든 즐거움에 대하여 문을 닫을 수 있다. 그러나 지혜의 길은 유쾌한 길이요, 그 모든 길에 평화가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밀접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우리의 언행은 복종시키고 변화시키는 그의 은혜의 힘을 더욱 잘 드러낼 것이다.―교회증언 4권, 622-626.

432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행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선택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지된 영역에 대담하게 발을 들여놓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사치하고, 경박하고, 경건하지 못한 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이런 불경건한 친척들의 모범과 감화가 때때로 그 집 어린이들의 마음에 항구적인 인상을 끼친다. 이런 감화는 히브리 사람들이 불경한 가나안 족속들과 교제함으로 얻은 결과와 방불한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 친척과 친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양보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계선을 긋는 일이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므로, 한 번의 양보는 또 다른 양보의 길을 닦아서 마침내는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이 생활과 성격에서 세상의 습관과 일치하는데 이르게 된다. 이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만다. 그들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다. 시험의 때가 이르면 그들의 소망은 아무런 기초도 없음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자녀들을 원수에게 팔아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이를 때 그들은 심은 것을 거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삿 2:2)라고 말씀하실 것이다.―시조(영문), 1881년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