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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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말과 행실을 삼가도록 훈련을 받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그들의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과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나 어두움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주의하고 신중하며, 모든 죄악은 모양이라도 피하기 위하여 먼저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예수께서만 주실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단장

많은 사람들은 잘 생긴 용모와 화려한 의복만 있으면 능히 세상에서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함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그러나 단지 외적인 치장만으로 형성된 매력은 천박하고 변하기가 쉽다. 이런 것들은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명령하신 단장이야말로 결코 시들지 않는 것이다. 그는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 4)고 말씀하신다.

청년들이 매력적인 외모를 가꾸는데 사용되는 시간의 절반을 정신적 수양 곧 내면적 단장에 바친다면 그들의 태도와 말과 행동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나타나겠는가. 346 진실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그들이 입는 의복에 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주께서 밝히 말씀하신 이 명령의 요구에 응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제는 의복을 장식하는데 지출되는 돈이 하나님의 사업을 진전시키며 그들의 머리에 유용한 지식을 쌓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리하여 신망 있는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들은 그들을 무한한 대가를 주고 사신 예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이여,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늘 집으로 그대들을 영접해 들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셨다. 주께서는 하늘 집을 떠나 죄로 얼룩진 세상에 내려오셨다. 즉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의 순결과 거룩함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당신의 교훈을 경홀히 여기고 마침내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당신을 사형에 처한 백성들에게로 오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우리의 외모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위하여 행하신 그 위대한 희생의 대가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다만 이름뿐만 아니라 의복과 언어에서까지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그대들이 간소한 의복에 만족하고 많은 잔주름이나 우모(羽毛), 그 밖에 불필요한 장식은 하지 말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매력적인 태도를 지니기를 바라신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려도 좋은가?

347 우리의 외모는 때때로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표식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지 유의하여야 한다. 나는 그대들이 귀한 자녀들로서 예수를 따르며, 모든 일에 나타나 있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대들이 열심으로 속사람의 단장을 위하여 간구함으로써 구주를 기쁘게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날마다 예수의 도우심을 힘입어 자아를 이길 수가 있다. 교만과 과시욕이 그대들의 마음과 생애에서 사라질 것이다. 온유한 마음과 간소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청년들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군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 3:2-5).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이러한 무리 가운데서 발견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대들은 이 모든 죄악들을 어떻게 피하여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배울 수 있다. …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계 12:11),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증거

348 악의 모양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대는 이보다 더 전진하여, “선행을 배우”(사 1:17)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업을 행할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대들의 날마다의 연구가 되어야 한다. 주를 따르는 자들은 산 편지가 되어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 (고후 3:2)가 되어야 한다.

그대들은 단순히 바라기만 해서는 좋은 품성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노력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이것을 바라는 그대들의 소원은 열렬하고 진실한 기도(企圖)와 견인 불발의 노력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진보의 사닥다리를 한 계단씩 올라가면 마침내는 꼭대기에 우뚝 선 자신 곧 그대들을 사랑하는 분을 통해 넉넉히 이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청년 지도자, 1896년 11월 5일

신앙은 의복으로 판단됨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이 유행에 맞추어 옷을 입고 레이스나 금붙이, 또는 장신구를 달아 돋보이게 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그대들이 공언하는 신앙이나 진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분별력 있는 사람들은, 외모를 아름답게 치장하고자 하는 그대들의 노력을 약한 마음과 자긍하는 정신의 증거로 볼 것이다. 나는 젊은 자매들에게 단순하고 평범하고 장식 없는 의복을 추천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단순한 의복과 태도로써보다 그대들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비춰줄 수는 없다. 그대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물과 비교하여 이 세상 사물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교회증언 3권, 376.

349 주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표현하셨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감화가 없다면 세상은 그 자체의 부패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무리들에 대한 묘사를 보라. 그들은 의복과 처신을 함부로 하고, 영업상 거래에 있어서도 그들의 의복처럼 셈이 흐리고, 무뚝뚝하고 무례하고 행동이 거칠고, 저속한 언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좋지 못한 특성들을 진정한 겸손과 그리스도인 생애의 특성인 것처럼 오인한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다면 그들을 가리켜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겠는가 생각해 보라. 아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언어로 말미암아 격상된다. 그들은 비록 스스로 낮추어 어리석게 아첨하는 것을 죄라고 믿고 있으나 그들은 여전히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또 인자하다. 그들의 말은 진실되고 참되다. 그들은 형제들과 또한 세상 사람들과의 거래 관계에 있어서도 신실하다. 의복에 있어서 그들은 사치와 자랑을 피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복은 깨끗하고 단정하고 아담하여, 그 사람을 질서 있고 세련되게 보이도록 할 것이다. 거룩한 안식일과 하나님 경배에 대하여 신성한 존경을 나타낼 수 있는 의복을 입도록 특별히 주의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 사이의 경계선은 너무나 명백하여 착오를 일으킬 리가 없을 것이다. 350 전에는 부주의하고 단정치 못한 습관을 가졌던 남녀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의해서 고상하여지고 거룩하게 되어, 단정하고 고상한 취미의 의복을 입는 습관을 갖는다면 그 신자의 감화력은 십 배나 커질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난잡함이나 불결함, 혹은 죄를 절대 기뻐하지 않으신다.

유행과의 관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판이하게 다른 복장을 함으로써 주목의 대상이 되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정숙하고 깨끗한 의복에 대한 믿음과 의무를 고수하느라 혹 유행에 뒤지게 입는 경우에라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복장을 바꿀 필요는 없다. 비록 세상이 모두 그들과 다르다 할지라도 고상한 개성과 바르게 살려는 도덕적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이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 아담하고 편리하고 위생적인 의복 양식을 지어내는 경우, 그러한 양식을 택하는 것이 하나님이나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변경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고, 그들의 의복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게 입어야 한다. 그들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그들은 칭찬이나 비난에 구애됨 없이 겸손하게 바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또 의(義)는 충분한 진가가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굳게 붙잡아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0년 1월 30일

351 성경은 의복에 있어 아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딤전 2:9). 이 말씀은 의복의 사치와 화려한 빛깔과 지나친 장식을 금한다. 입는 사람에게 주의가 끌리거나 감탄을 일으키기 위하여 모양을 낸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된 아담한 의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의복에 있어서의 절약

우리의 의복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딤전 2:9) 만든 것이 아닌 비싸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돈은 자랑이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손에 있을 때 돈은 주린 사람을 위한 식물이 되고 벗은 사람을 위한 의복이 된다. 눌린 자에게 방어가 되고 병든 자에게 건강을 주는 수단이 되며 불쌍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된다. 그대들은 자랑을 위하여 사용하던 돈을 이제부터는 지혜 있게 사용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하여 보라. 그분의 품성을 연구하고 자신을 부인하신 그분과 동역하는 사람이 되라.

소위 그리스도계라고 일컫는 사회에서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기에 충분한 돈을 보석들과 필요치도 않은 값진 의복을 사는데 소비하고 있다. 유행과 자랑이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는 재정을 흡수하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구세주의 사랑에 대한 복음을 도둑질하고 있다.

품질과 세련미

그러나 우리들의 의복은 아담하고 단순하면서도 품질이 좋고 색깔이 어울리며 일하기에 적합한 의복이어야 한다. 352 화려한 것보다 질긴 감으로 만들어진 의복을 선택하여야 한다. 따라서 의복은 보온과 몸을 적당히 보호하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잠언서는 지혜 있는 여인에 대하여 “그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 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잠 31:21) 않는다고 말하였다.

건강과 청결

우리들의 의복은 청결하여야 한다. 의복이 청결하지 못하면 건강에 좋은 의복이 아니며 그런 옷은 몸과 영혼을 더럽힌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고전 3:16, 17).

모든 점에 있어서 의복은 건강을 위주로 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우리가 “강건하기를”(요삼 2) 원하시는데 영혼과 육신이 다 같이 건강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들은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건전한 영혼과 육체는 다 같이 건강에 좋은 의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품위와 자연미

의복은 품위와 아름다움과 알맞는 자연적인 단순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교만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경고하셨으며 의복의 품위와 자연미에 대하여 경고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들에 핀 아름다운 백합화를 가리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천연계의 사물을 이용하여 천국에서 가치 있게 평가하는 아름다움을 예시하셨는데 아담하고 단순하며 정결하고 어울리는 옷차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47, 248.

353 우리는 단정한 의복을 폄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른 취향은 멸시받거나 정죄받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실생활에 나타날 때에 간소한 의복을 입고 선행에 열중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단정하고 청결한 의복에 대한 기호를 상실할 때 사실상 진리를 떠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진리는 우리들을 결코 타락하게 하지 않고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아무렇게나 옷입고 거칠고 무뚝뚝한 태도를 보일 때 그들의 감화력은 진리를 손상시킨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바울은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고 말하였다. 온 하늘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자들이 날마다 세상에 끼쳐주는 영향을 주목하고 있다. … 간소한 의복은 현명한 여인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입은 의복의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판단한다. 현숙하고 경건한 여인은 검소한 옷차림을 할 것이다. 고상한 취미와 교양 있는 마음이 단순하고 알맞는 의복을 선택하는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유행의 노예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젊은 여인은 사회의 자랑이 될 것이다. 의복과 품행에 있어서 단순하고 가식이 없는 여인은, 참된 여인의 특징이 도덕적 가치에 있음을 이해하는 여인임을 나타낸다. 단순한 의복은 참으로 매력 있고, 참으로 흥미 있는 것으로써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비교될 수 있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4년 11월 17일.

35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 4).

인간적 추론은 언제나 단순하고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회피하고 제쳐놓으려고 노력해 왔다. 각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이, 극기와 겸손을 요구하고 말과 행실과 의복에 있어서 겸양과 단순성을 권하는 모든 교훈을 무시해 왔다. 그 결과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었다. 즉 복음의 교훈을 떠나는 것은 유행과 관습과 세상의 원리를 채택하도록 이끈다. 죽은 형식주의가 산 경건을 대신한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세상을 사랑하는 이러한 무리들에게서 떠나 성경 말씀의 교훈에 즐겨 순종하는 좀더 겸허한 신도들과 함께 하는 것을 본다. 이러한 과정이 여러 세대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서로 다른 교파들이 줄을 이어 일어났으나 단순성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초창기의 능력을 대부분 상실하여 버렸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올무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서 유행과 과시를 사랑하는 일이 성행하는 것을 볼 때, 나는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이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것인가라는 슬픈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355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행을 사랑하는 허영적이요 경박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자처할 수 있으나 그들의 의복과 언어는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으며 무엇에다 그들의 애정을 쏟고 있는지 드러내 준다. 그들의 생애가 그들이 세상과 짝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세상은 그들을 그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일찍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적이 있는 자가 어찌 부박(浮薄)한 유행에 만족할 수 있을까? 온유하고 겸손한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처럼 의복에 대한 세상의 표준을 따라가는데 급급하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은 심히 아프다. 그들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공언하지만 불신자와 거의 구별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들은 신앙 생애를 즐기지 않는다. 그들의 시간과 재물은 멋있는 의복을 입는다는 한 가지 목적에 적용된다.

의복에 대한 자랑과 사치는 특히 여인이 범하기 쉬운 죄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훈계는 직접으로 여인에게 관계된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 2:9, 10).

개혁이 필요함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는 죄악이 교회 내에 차츰 자리를 굳히는 것을 본다. 이 문제에 관하여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은 무엇일까? 많은 신도들이 명백히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유행의 지시에 복종할 때 교회가 마땅히 끼쳐야 할 감화를 끼칠 수 있겠는가? 356 이러한 것들이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것을 용인하면서도 어찌 성령의 임재와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주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의 교훈을 저버리는데도 우리는 잠잠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감독하는 사람들에게 슬픔과 당혹감을 안겨준다. 나의 그리스도인 자매들 스스로가 이 문제에 대하여 솔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성해 보지 않으려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르고자 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유행을 쫓아 외모를 가꾸는데 허비된 시간은 마음을 면밀히 조사하고 성경을 연구하는데 바쳐져야 한다. 불필요한 장식을 위하여 낭비된 백해 무익한 시간을 바른 원칙과 건전한 학문을 얻는데 바친다면 금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젊은 여인들이 사실에 있어서 주의 품성과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나는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젊은이들은 이제까지 껍데기를 핥는데 만족하여 왔다. 반짝이는 금박 비단이 그들에게는 영원한 재산보다 더 가치 있게 보인다. 겉에 입는 의복을 영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용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색과 연구로 말미암아 계발될 수도 있는 모든 정신적 능력이 잠자는 상태로 묶여 있고 애정은 훈련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속사람을 단장함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속사람의 단장 곧 하나님께서 큰 가치를 부여하신 온유하고 침착한 정신을 얻기를 구하려는가, 아니면 짧은 은혜의 시기를 허식을 위한 쓸데없는 노력에 낭비하려는가? 357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이 가치 있고 행복한 생애 곧 세상에 축복이 되고 창조주께 영광이 되는 삶의 원동력인 지적·도덕적 힘을 축적하면서 끊임없이 정신과 마음을 수양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나는 오늘날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고백하는 청년들에게 어떠한 점에서 그들이 진리를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는지 묻고 싶다. 한 가지 옷이나 장식품, 또는 그 밖의 편의 시설을 갖고 싶을 때 그대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이러한 금전의 지출을 허락하시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하여 기도로써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가? 의복을 장만하는데 있어서 그대들은 자신의 신앙 고백에 손상이 없도록 주의하는가? 그대들은 이렇게 사용된 시간에 대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수 있는가? 교회에 입교하는 것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전연 별개의 문제이다. 온전히 헌신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약하게 된 하나의 중대한 요인들 중 하나이다.

지금 이 시대는 쾌락에 대한 열망이 유례 없이 크다. 낭비와 무모한 사치가 각처에서 성행되고 있다. 군중은 오락을 열망한다. 명상의 습관에 익숙치 않고 연구의 훈련을 받지 못한 까닭에 마음은 경솔하고 천박하게 된다. 무지한 감상주의가 유행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계발되고 세련되고 향상되고 고상하게 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유행을 좇는 허식과 피상적인 쾌락을 위하여 모든 가치 있는 것의 습득을 등한히 하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여인들은 유행으로 인해 심령이 주리고 위축되는 것을 방치한 까닭에 사회에 축복이 되는 대신 저주가 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1년 12월 6일

358 의복의 우상 숭배는 일종의 도덕적 질병이다. 이것은 거듭난 생애에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복음의 요구에 굴복하는 데는 의복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의복을 입는 일에 부주의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우리의 외양을 가장 단아하게 꾸며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봉사에서, 당신 앞에서 봉사하는 자들의 의복에 관하여 세밀하게 가르치셨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의복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두루마기에 관하여 매우 특별한 지시를 내리셨는데 이는 그의 두루마기가 표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의복도 이처럼 표상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외모는 어디로 보나 단정하고, 우아하고, 정결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유행을 따르기 위하여 의복에 변화를 가하여 세상과 똑같게 보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값진 옷이나 고가의 장신구로 몸을 단장하여서는 안 된다.

의복에 관한 성경 말씀은 면밀히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지어 몸에 걸치는 의복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주신 바 교훈의 말씀에 유의할 것이다. 심지어 의복의 모양도 복음의 진리를 표현할 것이다.―교회증언 6권, 96.

359 타락을 조장하는 사치가 도처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영혼들은 그들의 의복과 과시를 사랑함으로 멸망에 이르고 있다. 유행에 열중하는 자들의 생애의 십분의 구는 살아 있는 허위이다. 기만과 사기가 그들의 일과로 되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실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고상한 정신과 친절과 관용은 악한 것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헐값으로 팔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데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하여 그들의 도덕을 팔아버린다. 변천하는 세상의 유행에 관한 이러한 광란은, 단순하고 평범한 의복을 선호하는 개혁자들의 군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사단은 돈과 시간과 건강을 희생하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는 유행을 언제나 불러들이고 있다.

세상을 따름

유행에 대한 세상의 타락상을 눈 앞에서 보면서 어찌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감히 세상 사람들의 길을 따를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러한 타락적 유행을 용인해도 좋을 것인가? 실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유행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는 영광의 소망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형성되어 있지 않은 연고이다. 호화로운 생활과 사치스런 의복은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하고 있다.

자긍과 허영심이 각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360 그러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위대한 도덕적 거울이 되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도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이 의복의 우상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모두 파괴해 버린다. 이것은 명상하고 반성하고 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바쳐야 할 귀중한 시간을 소모해 버린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특별히 우리를 지도하기 위한 교훈들을 기록하셨다. … 의복에 대한 열중은 은혜와 자선의 사업을 하도록 위탁된 자금을 소비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치를 위한 지출은 하나님의 것을 강탈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모든 재산은 자만심과 과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착한 청지기가 되어 헐벗은 자를 입히고 주린 자를 먹이고, 또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우리의 재산을 바쳐야 한다. 우리에게 단장이 필요하다면, 온유와 겸손과 정숙과 근신 등의 덕행이야말로 계급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단장이 된다.

우리는 성실한 파수꾼으로서 우리의 입장을 굳건히 하고, 교훈과 모범으로써 이 타락된 시대의 방탕과 사치에 대한 방종을 굴복시키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 청년들에게 바른 모본을 설정해 주고, 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지 않겠는가? ― 리뷰 앤드 헤랄드, 1912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