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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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성경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 이라고 말한다(눅 18:1).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를 느끼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기운이 쇠약해지고 생명 자체가 그들에게서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때이다. 때때로 건강한 사람들은 날마다, 해마다,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이 닥쳐오면 하나님이 기억에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들의 기운이 쇠약해 지면 하나님의 도우심의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자비하신 하나님은 당신께 진정으로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돌아서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병들 때나 건강할 때를 막론하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도다.”(시편 103편 13, 14절)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고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시편 107편 17, 18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편 107편 19, 20절)

226 성령께서 시편 기자를 통하여 이 말씀을 하시던 때와 꼭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병자들을 기꺼이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를 하시던 그 당시와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자비로운 의사시다. 그분에게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향유와 모든 약한 것들을 고쳐 주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의 그분의 제자들은 옛날의 제자들이 기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회복이 따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 조용한 믿음의 보증이 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8)는 주님의 약속은 사도시대와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신뢰할 만한 약속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을 나타내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께서 역사(役事)하시는 통로이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치료하는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원하신다.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우리의 믿음의 팔로 안아서 하나님께 가져다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위대한 치료자를 믿도록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병든 자, 희망이 없는 자,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붙들도록 격려하게 하신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병실이 벧엘로 바뀔 수 있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하기 위하여 그 장소에 계신다는 사실을 오해할 수 없는 분명한 말로 알려 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직접 병실에 오셔서 의사와 간호원들의 마음에 당신의 부드러운 사랑을 채워 주시기를 원하신다. 만일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들의 생애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병자의 침상 곁으로 갈 수 있을 정도의 생애일 것같으면, 그 환자에게는 자비하신 구주께서 계시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고, 그 확신 자체가 심령과 육체를 치료하는 일에 있어서 큰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그분께서는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말씀하신다(요 14:14, 12:26). 만일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생활하면, 그분께서 하신 모든 귀한 약속이 우리에게 성취될 것이다. 227 우리는 그분의 긍휼을 입을 자격이 없지마는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생활할 때만 우리는 그분의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한다(시 66:18). 만일 우리가 그분께 부분적이요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순종을 할 것같으면 그분의 약속들은 우리에게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병자의 회복을 위한 특별 기도에 관한 교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는 것은 가장 엄숙한 행동이므로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드려서는 안된다. 병자의 치료를 위하여 기도 드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소위 믿음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참람된 주장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방종에 의하여 스스로 질병을 초래한다. 그들은 일치되도록 생활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 입고,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였다. 때로는 어떤 형태의 부도덕이 마음과 몸을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건강의 축복을 받게 되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연법칙과 영적 법칙을 부주의하게 범하는 동일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며, 만일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들을 고쳐 주시면 그들은 그들의 불건전한 생활을 계속하고 무제한으로 왜곡된 식욕에 방종할 자유가 있다는 구실을 만들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에 이적을 행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죄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건전치 못한 생활을 버리도록 가르쳐 주지 않을 것같으면, 하나님을 그들의 연약함을 고쳐 주시는 분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쳐 주는 것은 헛된 일이 되고 만다. 그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악을 그치고 훌륭하게 생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환경은 위생적이어야 하고, 그들의 생활 습관은 고쳐져야 한다. 228 그들은 자연법칙과 영적 법칙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법칙과 조화되게 살아야 한다.

죄의 고백

건강을 회복받기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법칙과 영적 법칙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법칙을 범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과,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죄를 자복하고 버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어야 한다.

성경은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약 5:16). 기도해 주기를 요청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해 주라. “우리는 마음을 알 수 없으며, 당신의 생애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것들은 오직 당신과 하나님만이 압니다. 만일 당신의 죄를 후회스럽게 생각한다면, 그 죄를 고백하는 것이 당신이 할 의무입니다.” 개인적 성격에 속한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께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요일 2:1). 229 모든 죄는 하나님께 범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께 고백해야 한다. 공공연하게 범해진 죄는 모두 공개적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동료에게 잘못한 것은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바르게 시정되어야 한다. 만일 건강을 얻고자 간구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나쁜 말을 함으로 죄를 범하였거나, 가정과 이웃과 교회에 불화의 씨를 뿌리거나 분리와 분화를 일으켰다면, 또는 어떤 나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죄악 가운데 빠뜨렸다면, 그 모든 일을 하나님과 피해를 입힌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잘못이 바르게 시정된 후에, 우리는 주님의 영이 지시하시는 대로 조용한 믿음으로 병자의 필요를 주님께 제시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각 개인의 이름을 아시며,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마치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위대하고 무진장하기 때문에, 병자들은 그분을 신뢰하고 기쁨을 얻도록 권장을 받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관하여 걱정하게 되면 연약해지고 병을 일으키게 된다. 그들이 침체된 마음과 우울한 생각을 버리고 일어서면 그들의 회복의 가망은 더욱 양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시기 때문이다(시 33:18).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롬 8:26).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축복이 최선의 것이 될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들어있어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십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을 잘 아십니다. 그들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그들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을 위한 당신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건강이 회복되는 것이 주님의 영광과 앓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일이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건강을 회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30 만일 그들이 회복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면,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신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기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그 사람들이 살아나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험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견디지 못할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생애가 그들 자신과 세상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 아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열렬하게 탄원함과 동시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해야 한다(눅 22:42).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간구하신 후, 하나님의 지혜와 뜻에 순종하는 그 말씀을 첨가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 합당한 것이었다면,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흘러나와야겠는가!

우리의 욕망을 시종여일 완전히 지혜로우신 우리 하늘 아버지께 바쳐야 한다. 그리고 온전한 확신으로 모든 것을 그분께 신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순종하는 정신이 없이 우리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기도는 명령의 형식이 아닌 중재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에 있어서 당신의 거룩한 능력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병자들이 다 고침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잠든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고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말에 의하면, 우리는 만일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받지 못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1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가 즉시, 그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되기를 바라며, 혹시 응답이 늦어지거나 우리가 바라지 않은 형태로 응답되면 용기가 꺾이는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현명하시고 선량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 시간에, 바라는 그대로의 형태로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더 좋은 일을 우리를 위하여 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뜻에 양보해 달라고 그분께 요구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분의 목적에 흡수되어 그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욕망과 흥미는 그분의 뜻 가운데 잃어버린바 되어야 한다. 믿음을 시험하는 이같은 경험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들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놓여 진실하고 성실한지, 혹은 환경에 좌우되어 불안하고 변하기 쉬운지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믿음은 실천을 통하여 강화된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속에 귀중한 약속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 원칙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치료의 자비를 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즉시, 그리고 그들의 소원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믿음에 결함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병으로 약해져 있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권면을 받고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애쓰는 친구들에 대한 의문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때때로 여기에 잘못을 범할 위험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고침을 받아야 할 것으로 믿고 기도의 부족을 나타내는 듯한 일은 무엇이나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죽음으로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예상되면 그들은 그들의 일을 자기들이 소원하는 대로 질서 있게 처리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헤어지는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권면이나 격려의 말을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로 병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치료의 수단을 이용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232 하나님께서 고통을 덜어 주시고자 마련하신 치료의 방법을 이용하는 것과 회복시키는 자연의 역사를 도와 주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협력하고, 그들 스스로를 회복되기에 가장 유리한 상태에 두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법칙을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속에 넣어 주셨다. 그 지식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 우리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모든 편의를 이용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유리한 모든 점을 취하고, 천연계의 법칙과 조화되도록 활동해야 한다. 우리가 병자들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모든 힘을 더욱 많이 기울여 일하고,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특권을 가진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방법에 축복해 주시도록 간구할 수 있다.

우리는 치료의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한다는 것을 안다. 이스라엘의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기별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었고,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종의 탄원을 들으시고 그의 생명이 15년 간 연장될 것이라는 기별을 보내셨다. 이제 하나님께서 한마디의 말씀만 하시면 히스기야는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는 지시가 주어졌다(사 38:21).

233 한 번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셨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치료는 오직 위대한 치료자의 능력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간단한 자연의 기구를 이용하셨다. 비록 그분께서 약물치료에 대한 장려는 하지 않으셨지마는 단순하고 자연적인 요법을 사용하는 것은 인정하셨다.

우리가 병자의 치료를 위하여 기도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만일 우리가 사별(死別)을 당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쓴 잔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그 잔을 우리 입술에 대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면 치료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창조주께 새로운 의무가 지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오직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분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마음의 감동을 받지 못한 무분별한 아홉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