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

본문보기

41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선언된 축복을 받는 조건에 일치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오늘날 주어져 있다. 그들은 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에서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가? 세속적인 습관과 관습으로부터 나와서 분리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사단은 거짓된 표현을 통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도록 하자. 영원한 유익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주장이 먼저 와야 하고, 하나님의 요구가 우리의 첫번째 주의를 받아야 한다.

타락한 아담의 모든 후손은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가장 분명한 말씀의 교훈들에 대해 눈을 감는다. 왜냐하면 그 길에 바로 십자가가 서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십자가를 질 것 같으면,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저하고 의문을 품고 십자가를 피할 어떤 구실을 찾는다. 사단은 언제나 준비해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영혼들은 치명적으로 속임을 당한다.

성공적인 기만

사단의 가장 성공적인 기만들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할 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42 그렇다. 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성화는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분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큰 반역자의 대리인으로서 사단이 에덴에서 시작한 일 즉, 암암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그럴듯한 핑계를 만드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키도록 사람들을 유도하는 그들의 사업은 그 진실한 결과가 어느 날 그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영생의 조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에, 성화되지 않은 영혼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므로 진리보다는 오류를 택하지 않는 한 아무도 실족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 나온 율법사는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으로 그리스도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사에게 그 짐을 지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었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5-28). 이 말씀은 우리 각 개인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우리는 그 조건에 즐겨 일치되고자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인가?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일뿐만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될 것인가?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품성처럼 변경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율법을 무효로 만들기 위하여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라도 율법의 주장은 변치 않으며, 그 율법을 순종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수도 없다.

우리는 매일 신령한 계몽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윗처럼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계명을 존중함으로써 당신의 명예를 옹호하는 한 백성을 이 땅 위에 두실 것이다. 그분의 계명들은 가혹한 것이 아니며 속박의 멍에가 아니다. 다윗은 그의 시대에 이렇게 기도하였다. 43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이니이다”(시 119:126).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시킬 수는 없다. 성경을 소홀히 여기고 세상의 보화를 추구하는데 우리 스스로를 바치는 것은 측량할 수 없는 손실이다. 오직 영원만이,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손실, 영원한 부의 손실을 당하면서 세상의 명예와 세상의 이득을 얻기 위해 치른 큰 희생을 드러내 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헤아려지는 그 생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고상한 하늘의 평가로 가난하고 가련하고 곤고하게 헤아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늘의 축복과 보화를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범위에 가져다 주시고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계명을 범한 자로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음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자로서는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수 없다. 그분의 율법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된다. 만일 그들이 고의적으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경멸하면, 그곳에서도 동일한 일을 하도록 그들은 천국으로 데려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품성의 변화는 없다.

은혜의 시기 동안에 품성 형성이 계속 되어야 한다. 날마다 그들의 행동은 하늘의 책에 기록되며, 그들은 하나님의 큰 날에 그들이 행한대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에 누가 축복을 받는지 알려질 것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하나님의 율법에 대항하는 자들은 하나님 자신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가장 큰 비난을 품은 많은 자들이 거룩하고 죄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가장 크게 자랑한다. 이 사실은 오직 한 가지 길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곧 그들은 그들의 품성의 결함을 스스로 찾아내어 보게 해주는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사도들 중 어느 누구도 죄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44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살았던 자들, 하나님께 고의적으로 죄를 짓기보다는 자신의 생명자체를 희생하고자 했던 자들, 하나님께서 신령한 빛과 능력으로 명예롭게 했던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기에 무가치한 죄인임을 시인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그들의 죄 때문에 슬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다만 두 부류­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

세상에는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와 불순종하는 자 두 부류만 있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청중 앞에 심판의 사업을 제시하셨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1-40).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관심을 고통받는 인간의 관심과 동일하게 생각하신다. 그분의 자녀에게 기울인 모든 관심을 하나님 자신에게 직접 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45 오늘날 성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랑스럽게 앞으로 나아와, “주여, 주여 우리를 알지 못하시나이까?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묘사된 사람들, 그들의 모든 행동속에 예수님을 공공연하게 연결시키면서 뻔뻔스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현대의 성화를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대항하고 있는 자들을 적절히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로 호칭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품성의 결함, 거룩하지 못한 심령의 사악을 가리기 위해 의의 옷을 입는 기만자들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이 마지막 때에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역사하기 위해 내려왔다. 그의 사단적인 권위는 거짓 선지자들과 인간의 눈 앞에서 기적을 행하고 그가 정말로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사단은 자신의 기만적인 일을 돕는 자들에게 그의 능력을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위대한 탐지기, 곧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서만 식별될 수 있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양의 탈은 너무도 진짜 같고, 너무도 참인 것같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도덕적 표준에 나아가서 거기서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범한 자들인 것을 발견할 때에만 이리가 식별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우리에게 믿음과 영적인 계몽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기도로 깨어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매일 성경을 상고하는 자는 사단의 어떤 기만으로도 잘못 인도되지 않는다. 그들만이 교활한 인간들이 속이고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 꾀하는 구실을 분별할 것이다. 세상에, 그리고 입고 먹고 마시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관심을 바치기 때문에 기도와 성경연구를 위한 시간이 없다.

46 우리는 모든 점에서 진리를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찾아야 한다. 우화의 성찬(盛餐)은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펼쳐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오류를 믿는 길을 택한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부정되어야 한다.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듦으로써 좀 더 쉬운 길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실 때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 된다. 왜냐하면 완고하고 불순종하는 자녀가 그 자신의 길을 가도록 방치해 두는 것, 그 자신의 마음의 경향을 따르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검은 구름이 그를 둘러싸게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은, 너무나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의 사업을 무너뜨려 발 아래 짓밟아 버리는 그의 대리자들을 갖고 있다. 이런 자들이 모든 결과의 모든 책임과 함께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대하게 될 때 그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인 날이 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구원되었어야 할 영혼들이 그들의 가르침과 영향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위해 돌아가셨다. 그분은 당신의 공로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는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계 3:8)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그 문을 닫아 버리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 그러나 그들은 할 수가 없다. 요한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계 11:19)라고 증거한다. 속죄소 아래, 언약궤 속에 여호와의 율법이 새겨진 두 돌비가 있었다.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은 세상에 전해 주도록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그들에게 비취는 빛을 보았다. 오늘날 사단의 맹렬한 활동은 그 빛의 문을 닫아버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그 빛을 외면하고, 그것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그것을 경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은 그것을 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고 축복하기 위해 여전히 뚜렷하고 분명한 광선을 발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혼의 원수와 맹렬한 전쟁을 치를 것이며 그 투쟁은 종말에 이를수록 점점 더 격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일어서는 자들을 도와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