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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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하나님의 백성들의 유업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식별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며 세상을 의로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그분에 대한 소망, 그것이 영광스럽게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그 소망을 간직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때에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며, 그분처럼 변화되어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성도들이 무덤에서 호명되어 영광스러운 불멸의 몸으로 일어날 것이다. 구원의 날이 이르러 올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믿는 자들은 칭송 받는 날이 될 것이며 이 땅의 왕국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이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나타나실 것을 고대하는 자들은 생애와 품성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고자 할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미워하셨던 것처럼 죄와 의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116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분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역 안에서 순결하신 것처럼 사람들도 그들의 영역 안에서 순결해지기 위하여 그들은 진리에 대한 교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진리가 반드시 심령 속에서 적용되어야 하고 생애에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듣는 자일뿐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될 것

각 시대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율법의 더 중한 바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와 사랑은 소홀히 여기므로 경건치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해 온 자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기만에 빠져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비록 매우 거룩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 진정한 경건의 모본을 보여 주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계명을 듣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지키는 자가 되어 그들의 길에 품성의 순결한 빛을 반사하는 일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자기 기만에 빠진 자들의 눈을 뜰 수 있게 해주겠는가?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됨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받아들인 진리는 그들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고 품성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을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의 본질적인 부패 가운데 여전히 있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심령 속에 거한다면, 그분은 가정과 일터와 시장과 교회에 나타나실 것이다. 진리의 능력은 마음을 고상하게 하고 고귀하게 하는 데서, 심령을 부드럽고 양순하게 하여 전체적인 인간 자체를 하나님과 조화롭게 만드는 데서 느껴질 것이다. 진리로 변화를 입은 자는 세상에 빛을 발산할 것이다.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진 자는 그분께서 깨끗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한 소망은 크고 원대한 소망이다. 그것은 왕을 아름다운 그대로 보는 소망이며, 그분처럼 되는 소망이다.

117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땅은 그분 앞에서 진동할 것이며, 하늘은 종이 축처럼 말릴 것이며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시 50:3-6). 하나님의 큰 날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이 모든 죄와 불의에서 떠나는 데서 발견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죄악 가운데 계속 머무르는 자들은 정죄받은 자들과 멸망받는 자들 가운데서 발견될 것이다.

범죄한 자의 운명

요한은 범죄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의 운명을 보았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5-17).

무서운 운명이 죄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피하기 위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요한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고 말한다. 여기에 죄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있는데, 죄는 “불법”이다. 죄인이 얼마나 자주 죄에서 떠나 예수님께로 나아오라는 권면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자 하는 기별자가 그 방법을 얼마나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는가? 그는 “죄는 불법”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을 회개하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았는가?

11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타락한 상태 그대로 만나시기 위하여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일점 일획이라도 변개하실 수 없으셨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통치하시기 위해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불신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인간을 위한 대리인과 보증인이 되게 하셔서 범죄자들이 받아야 했던 형벌을 받게 하시고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그분의 완전한 의를 나누어주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인류를 위한 죄 없는 희생제물이 되셔서 사람들을 소망의 죄수로 만드시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저들의 대리자요 보증인이요 의로 믿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되고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순종하는 자로 회복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순종을 가능케 한다

죄인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는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짐으로 이 불가능은 사라졌다. 죄 많은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아버지께 가납되게 해주는 의를 그에게 나누어 주어 하나님의 은총을 죄인에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들어 구원의 계획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이 언제나 사단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그는 갈바리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희생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의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는 거짓말을 창안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헌법을 폐지하시고, 당신의 도덕적 표준을 버리시고, 당신의 거룩하고 완전한 율법을 무효로 만드셨다는 기만을 세상에 슬그머니 퍼뜨렸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얼마나 무서운 희생이 하늘에 있었겠는가! 율법의 폐지를 선언하는 대신에, 갈바리의 십자가는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변함없고 영원한 율법의 특성을 선포한다. 만일 율법이 폐지되고서도 하늘과 땅의 정부와 하나님의 무수한 세계가 유지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실 필요가 없다. 119 그리스도의 죽음은 여호와의 율법의 유효성에 대한 문제를 영원히 종식시켰다. 예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을 대신하여 충분한 형벌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고, 회개한 영혼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회복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글자 그대로 완성시키기 위해 오셨다. 갈바리의 속죄는 타락한 세상 앞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기 위하여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