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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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교사들과 가르침
2편우리 학교의 목표

5장 - 교사들과 가르침

64 참된 교육이란 어떤 특정 과목을 이수하는 것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뜻은 매우 광범위하다. 모든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인 재능의 조화된 계발을 이룩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교육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며 생애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교육이 있다. 그러한 교육의 목표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기적인 야심을 만족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교육을 얻기 위하여 많은 학생들은 불필요한 지식을 저들의 머리에 주입시키기 위하여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세상은 저들을 학문을 닦은 자로 간주하지만 저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저들은 교만을 살찌게 하고 기운내게 하는 세상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있다. 저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되며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고 저들에게 위탁된 재능들을 원수의 편에 두게 되는 것이다. 현 시대에 주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교육은 이런 성격을 띠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교육을 상당히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다만 학생들의 위기를 증가시킬 뿐이다.

매우 성격이 판이한 다른 종류의 교육이 있다. 세상이 전에 알지 못하던 가장 위대하신 교사께서 말씀하신 참 교육의 근본적인 원칙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마 6:33)는 것이다. 참 교육의 목표는 이기적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한다. 이수하는 과목들과 실업 교육 모두가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과의 산 연합을 유지하며 계발된 감정과 품성의 습성들을 활용한다. 이러한 종류의 교육이야말로 영원한 결과를 낳게 한다. 65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잠 9:10)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모든 지식을 능가하는 것이 된다.

우리들의 학교에서 주는 교육의 특성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세상의 지혜를 따라 주는 교육이어야 할까 아니면 하늘로부터 내리는 지혜를 따라 주는 교육이어야 할까? … 교사들은 저들의 학생들에게 책 가운데 있는 지식을 나누어 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하여야 한다. 청년들의 안내자이며 스승이 된 저들의 위치는 가장 중대한 책임이니 저들에게 정신과 품성을 형성하는 사업이 맡겨졌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수행할 교사들은 원만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 품성을 가져야만 한다. 저들은 품행이 세련되어야 하며 의복이 단정하고 모든 습관에 있어서 신중하며 신뢰와 존경을 얻는 참된 그리스도인적 예절을 지녀야만 한다. 교사는 자기 자신이 먼저 자기 학생들이 장차 되기를 바라는 그러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마치 목자가 자기의 거느린 양떼를 잘 지키고 살피는 것처럼 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 저들은 마치 그 일로 인해서 심판을 받을 것처럼 영혼들을 돌보아야 한다.

비록 교사가 물리적 우주에 대하여 많은 사실들을 이해하고 동물의 생리, 자연과학의 발견 및 기계 분야의 발명들을 안다고 할지라도 교사 자신의 영혼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그를 교육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으며 청년들을 지도하는 교사직에 적합하지 못하다. 교사는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으로서 거룩한 교사에게 교육을 받기까지는 참된 교육자가 될 수 없다.

66 우리의 의존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지혜의 근본이시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선하시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지금껏 살아온 가장 지혜로운 인간들도 그분을 이해할 수 없다. 저들이 비록 지혜롭다고 공언하고 저들이 성취한 일들에 대하여 영광을 받을는지는 모르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위대한 진리에서 떠난 단순한 지능적 지식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내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 9:23, 24).

만약 인간이 순간적으로나마 유한한 안계(眼界) 너머를 바라볼 수 있고, 만약 저들이 영원한 세계에 대한 광경을 잠깐만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의 입들은 그 자랑하는 일들을 그칠 것이다. 하나의 원자처럼 작은 이 세계에 사는 인간은 유한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순종하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운행되고 있는 무수한 세계들을 가지고 계시다. 인간이 저들의 능력이 미치는 한도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과학 연구에 도달하였을지라도 아직도 파악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남아 있다.

인간은 참으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기 전에 하나님께 대한 저들 자신의 의존성을 인식해야 하며 그분의 지혜로 충만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능력의 근본이 되시는 것처럼 지적 능력의 근원도 되신다. 세상 사람들이 과학의 놀라운 절정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에 도달한 가장 위대한 인간들일지라도 사랑하는 요한이나 사도 바울과 비교할 수 없다. 지적 능력과 영적 능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인격의 가장 고상한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격을 도야하는 자들을 정신을 훈련시키는 동역자로 받아들이실 것이다.

67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하나의 큰 지식이다. 자기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교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정신을 형성하시고 단련하시도록 용납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그는 자기 능력의 근원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 자기인식은 겸손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지만 자아계발을 위한 노력을 대신하게 하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의 결함들을 인식하는 자는 탁월하고 가능한 지, 덕, 체의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더 낮은 표준으로 만족하는 자는 아무도 청년들을 훈련하는 일에 참여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유능한 조력자

참된 교사는 교훈과 모범으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는 사랑하므로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진리가 그의 심령을 정결케 하고 그의 생애를 형성케 해야 한다. 모든 교사는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심령에 말씀하실 수 있으며 그분의 음성은 사랑의 음성이 된다. 마음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사랑은 선을 위한 원동력이 되며 정신과 영혼을 자극하며 그 도량을 넓혀 줄 것이다. 교사는 그 자신의 마음이 뜨겁고 거룩한 사랑에 젖어 갈바리의 주님을 높일 것이며 학생들에게 예수님을 “만 사람에 뛰어난”(아 5:10)자로, “전체가 사랑스”(아 5:16)러운 분으로 보이게 될 때까지 한눈 팔지 않고 골똘히 주목하게 할 것이다.

성령은 인간의 영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유능한 조력자가 되신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 그분의 유능성과 능력이 바르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 유능한 조력자는 선지자의 학교에 오셨으며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늘과 선지자의 학교들 사이에는 산 연결이 있었으며 사랑하는 마음의 기쁨과 감사가 천사들이 참여하는 찬미의 표현 가운데 나타난다.

68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다. 성령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 자신께서 진리이시며, 신실하시고 참된 증인이시다. 성령께서는 심령을 살피시는 대감찰자(大監察者)이시며 모든 자들의 품성을 잘 알고 계시다.

성령께서는 때때로 우리 학교에 오셨지만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낯선 분으로 혹은 방해꾼의 대우를 받으셨다. 모든 교사는 이 천국의 귀빈(貴賓)을 알아야 하고 환대(歡待)하여야만 한다. 만약 교사들이 성령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연다면 저들은 학생들을 위하여 일하는데 협력하실 그 분을 모실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게 할 때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성령께서는 각자의 마음에서 역사하시고 이기심을 바로 잡으시고 품성을 형성하고 단련하실 뿐만 아니라 생각들을 그리스도께 사로잡히게 하실 것이다.

교사의 위대한 목표는 자기 자신과 자기 학생들 안에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시키는 일이어야 한다. 교사들이여, 그대들의 등잔불의 심지를 곱게 다듬고 불을 부쳐서 그대들의 학생들에게만 비치게 할 것이 아니라 저들의 가정들과 이웃들에게도 비치게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도덕적으로 흑암한 세상을 환하게 비치게 할 것이다(교육에 관한 특별한 증언 47-52; 1896년 5월 15일).

우리 형제들은 말하기를 목사들과 부모들로부터 우리 학교의 교육을 받아야 할 청년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으나 저들은 수업료를 내리지 않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호소하여 왔다고 한다.

69 낮은 수업료를 호소하는 자들은 다각적으로 모든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만약 학생들 자신이 교육을 충실히 받기 위한 실제적인 비용을 지불할 충분한 자금을 낼 수 없다면 그 부채의 부담을 학교에 지우기 보다는 부모, 친구 혹은 저들이 속해 있는 교회들 또는 저들이 속한 대회 안에 있는 마음이 너그럽고 자선적인 형제들이 그런 학생들을 보조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학교를 빚으로 운영하기보다는 기관을 사랑하는 많은 후원자들이 비용을 서로 분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여러 다른 지방에 산재하여 있는 교회들은 청소년들을 훈련시키고 선교사업에 종사할 재능을 교육해야 할 엄숙한 책임이 저들에게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유용한 일꾼들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도 학비를 스스로 조달할 수 없는 자들을 교회 안에서 보게 될 때 교회들이 그런 자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야 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사업에 꼭 기여할 필요가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 주님의 포도원에서 훌륭한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대부분이 학비의 보조가 없이 교육을 받기에는 지나치게 가난한 자들이다. 교회들은 그러한 자들의 비용을 지불하는 일에 일익(一翼)을 담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겨야만 할 것이다.

마음 속에 진리를 가진 자들은 항상 허심탄회하게 필요한 일에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저들이 먼저 앞장 설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저들의 모본을 본보기로 삼아 배울 것이다. 만약 교육의 혜택을 받고자 하면서도 수업료를 전담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면 교회들은 그런 자들을 도움으로 관대성을 보일 것이다.

70 이러한 일 외에도 각 대회마다 자금을 마련하여 선교사업에 헌신할 가치가 있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 주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 그런 학생들은 기부금까지라도 받아야 할 것이다. 배틀크릭 대학이 처음으로 설립되었을 때에 교육을 받고 싶으면서도 학비가 없는 자들의 혜택을 위하여 리뷰 앤드 헤랄드 사무실에 자금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러 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지 않을 때까지 이 자금을 사용할 수 있었고 저들이 나중에 번 돈으로 빌려 간 만큼 갚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자금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교사업을 위하여 스스로 준비하기를 원하는 가난하면서도 가치가 있는 학생들에게 빌려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지금 어떤 계획을 세워야만 할 것이다. 청년들은 저들의 힘이 미치는 한도까지는 저들이 벌어서 공부할 것이며 저들의 일부 비용만을 지불한다는 원칙을 밝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값이 적게 든 것은 적게 든 만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며 값이 많이 든 것이면 많이 든 것만큼 제값에 가까운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교사의 편의성(便宜性)은 제한되어 있어 자신이 바라는 만큼 높은 학문적인 자격들을 얻지는 못하게 될 것이나 만약 그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참된 통찰력을 가지고 이 사업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이 사업을 위한 진정한 사랑을 가졌다면 만약 그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열심있고 겸손하며 끈기있게 수고하기 원한다면 그는 자기 학생들의 필요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동정적인 정신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게 되고 학생들을 전진케 하고 향상케 할 것이다. 교사의 노력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함으로 학교가 하나의 살아서 성장하는 선의력(善意力)이 될 것이며 참된 발전에 대한 기백(氣魄)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145 생애란 게으름을 피우고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로 소일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의 재능들을 계발하는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가능성들을 주셨다. 이런 까닭으로 청소년들을 훈련하는 일은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가정에 태어난 모든 어린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탁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이 어린이를 데려가 나를 위하여 기르면 그 아이는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며 나의 축복을 세상에 흘려 보낼 통로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생애에 적합한 자녀가 되게 하려면 체력을 희생하여 정신력만을 계발시키는 부분적이며 편파적인 교육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정신과 신체의 모든 기능들을 계발시킬 필요가 있으며 바로 이것이 저들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하여 교사들의 도움을 얻어 부모들이 해야 할 사업이다.

제일 처음으로 주는 교훈들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아직 어린 정신에 부담을 주는 책들을 가지고 공부를 하도록 시키며 때때로 음악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종종 부모들은 학비 조달의 제한을 받게 되며 그로 인하여 빚을 지면서도 인위적(人爲的)인 교육을 주기 위하여 모든 희생을 감내(堪耐)한다. 이런 방침은 현명하지 못하다. 신경이 나약한 어린이는 그의 신체가 잘 발육될 때까지 과중한 지도를 받거나 음악을 배워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어린이가 처음으로 받는 교훈들을 주는 교사는 어머니어야 하며 가정이 그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146 그 어린이가 받는 교훈들 중에는 근면에 대한 습관도 포함되어야 한다. 어머니들이여, 어린이들로 옥외(屋外)에서 놀게 할 것이며 새들의 노래를 듣게 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 가운데 나타난 당신의 사랑을 배우게 하라. 자녀들에게 자연계에 관한 책과 자연계에 관계된 사물들에서 단순한 교훈들을 가르치고 저들의 정신이 자람에 따라 책들에서 배울 교과들을 첨가할 때에 저들의 기억에 뚜렷하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초년기에서도 유용한 역할을 하는 법을 배우게 하라. 가족의 일원으로서 집안의 일들을 나누어 각자가 공평하고 요긴한 부분을 맡아야 하며 필요한 가정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건전한 운동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끔 자녀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저희의 연령과 능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유용한 일거리를 찾아 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들을 바쁘게 할 뿐만 아니라 흥미를 일으킬 만한 일감들을 자녀들에게 주어야 한다. 활동적인 손들과 머리들이 일찍부터 사용되어야 한다. 만약 부모들이 자녀들의 활력을 요긴한 통로로 경주(傾注)시키도록 노력하지 않을 때 사단은 언제나 저들을 위하여 일감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큰 손상을 입히게 된다.

교사와 부모들의 협력

어린이를 학교에 보낼 적령기가 되었을 때 교사는 부모들과 협력하여야 하며 학교 교육의 일부로서 노동훈련도 계속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러한 종류의 일을 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저들은 유익한 노동을 마치 장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천박하게 여기고 있으나 그러한 태도야 말로 무엇이 진정으로 존엄한 것인지를 모르는 소치(所致)에서 비롯된 것이다.

147 그리스도의 모본

지상에서 생애하시는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 가족의 한 모본이셨으며 가정에서는 순종하시고 조력하셨다. 주님께서는 목공 일을 배우셨으며 나사렛의 작은 목공소에서 당신의 손으로 친히 일하셨다. …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고 기록하였다. 소년과 청년 시절에 일하심에 따라 심신도 발육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체력을 무모하게 사용하지 않으시고 심신을 강하게 보존하여 각 분야에서 최선의 일을 행하실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사용하셨다. …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저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될 어떤 일을 함으로써 활용할 수 있도록 저들의 포부를 각성시켜야 한다. 정신과 품성을 계발시키며 유용한 손들이 되도록 가르치고 저들에게 맡겨진 생애의 부담을 짊어지도록 청소년들을 훈련시키는 수련이야말로 체력을 강화시키고 모든 기능을 촉진케 한다. 선행을 위한 생활 습관을 길러 주는 고결한 근면성에는 보상이 있는 법이다.

부요한 가정의 자녀들도 뇌와 근육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필요한 일에서 얻는 큰 축복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노동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아담과 하와에게 경작할 아름다운 밭을 주셨다. 이 일은 매우 즐거운 노동이었으며 만약 인류 시조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의 세계에는 즐거운 일 만이 있었을 것이다. … 부자들도 세계적인 지도자들 사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특권과 축복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148 부자들은 저들에게 맡겨진 소유물들을 사용하는 일과 저들의 능력, 시간 및 돈을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책임이 저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 하나님의 윤허하심이 가정 생활의 여러 의무에서 그들의 맡은 일을 즐겁게 하고 부모의 부담을 나누어 지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보증으로 임하신다. 그들은 신체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그 보상으로 받을 것이다. 저들은 부모들이 사교의 즐거움과 건전한 휴양에 참여하여 더 긴수한을 누리게 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인생의 실무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자녀들은 심신이 과로에 견딜 만큼 튼튼하지 못한 초년기에 학교 교실에 답답하게 갇혀서 얻은 교육보다 훨씬 우월한 교육을 받고 사회의 유능한 일원이 되기 위하여 가정에서부터 나갈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교훈과 모본을 통하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진실되고 이타적(利他的)이며 근면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저들은 태만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용납되어서는 안되며 저들의 손이 무위(無爲)로 쉬고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들과 교사들은 모든 능력의 계발과 올바른 품성의 형성을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부모들이 저희 책임을 인식할 때에 사실상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별로 없게 되는 것이다.

천국은 청소년들을 위한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혜로운 교훈과 정숙하고 결정적인 태도로써 부모들과 교사들은 자녀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염려해 주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은 자녀들로 이기심을 극복하게 하고 많은 유혹들이 침투할 수 있는 문을 닫게 할 것이다. 149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러한 충성된 교사들과 협력할 것이다. 천사들은 이 사업을 저들 스스로 하도록 책임을 위임받지 않았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청소년들에게 유용된 생애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힘과 능력을 줄 것이다.

우리 학교들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선교 사업에 적합한 인물이 되게 할 주님의 특별한 방편으로 세워진 것이다. 부모들은 저희 책임을 인식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교육적인 편의를 위하여 준비하신바 커다란 특권과 축복을 저희 자녀들이 깨닫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러나 저들의 가정 교육은 저들이 받는 선교분야의 교육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있어서 실제적인 훈련과 학문적인 교육이 병합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가정 의무의 일부를 맡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자녀들은 저희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돕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자녀들의 정신은 저희가 맡은 일을 생각하고 기억하도록 훈련되어야 하며 가정에서 유용한 습관을 갖도록 훈련시킴으로 자녀들은 저희 연령에 적합한 실제적인 의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어린이들이 합당한 가정 교육을 받는다면 문란한 교육을 받은 그처럼 많은 아이들을 거리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현명한 방법으로 저희가 나태한 버릇을 가지고 자라게 하거나 가정 의무를 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무지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무지는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으며 당신의 사업을 수행하는데 불리하게 할 것이다.

181 인간이 쓴 모든 책 중에서 성경의 이야기들처럼 마음을 사로잡으며 어린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그처럼 적합한 것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대한 원칙들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부모들과 교사들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예화들을 가지고 주님의 교훈에 관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매우 일찍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이런 교훈들을 설명하고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실물교훈, 흑판 및 지도 등을 보조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부모들과 교사들은 계속적으로 향상된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성경 교수는 우리들의 가장 참신한 생각과 가장 좋은 방법과 가장 열렬한 노력으로 해야만 한다.

능률적인 공부를 위해서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특히 성질, 가정 배경 및 사고방식이 크게 다른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다루는 자는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정신적 경향, 저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물들을 엄밀히 관찰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성경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도록 관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적성을 갖게끔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가운데 각자를 위해서 주신 것이 있다. 182 학생들이 성경의 교훈들을 저들의 생애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성경을 상담자로 여기도록 저들을 가르치라.

성경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도록 저들을 도우라.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한 샘에서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때에 어째서 우리 자녀들이 이런 오염된 시냇물을 마시도록 지도할 수 있겠는가? 사상에 뿐 아니라 표현 방법에 나타난 성경의 진리들을 탐구하도록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격려해 주라.

이러한 귀중한 진리의 아름다움이 저들의 정신을 매혹시킬 때 유연하게 하고 누그러지게 하는 능력이 저들의 심령을 감동시킬 것이다. 그처럼 당신 자신을 나타내신 주님께 저들은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의 사업과 섭리에 대하여 더욱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자들의 수는 적어질 것이다.

믿음의 승리

초대 교회의 경건에 관하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들이 많이 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그 믿음은 미신적이며 가공적인 감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가르칠 때에 그런 생각들을 제거해 버릴 것이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동일한 종류의 교훈 곧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하신 단순한 믿음의 교훈들을 가르칠 것이다.

악을 정복하는 일은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싸움터로 나가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믿음의 방패는 저들의 방어물이 될 것이며 저들로 정복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게 할 것이다. 183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쓸모없을 것이니 이 믿음은 곧 만군의 여호와를 믿는 믿음이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이다. 다른 모든 기능을 갖춘 군사가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 대쟁투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천사의 무리들도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오직 산 믿음만이 저들로 무적의 군사가 되게 하며 악한 날에 설 수 있게 하고 처음에 가진 신뢰심을 끝까지 견지하는 가운데 단호하며 요지부동하게 할 것이다.

진리가 성화시키는 작용을 저들의 마음에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보이지 않는 젊은 남녀들은 어떤 교회 학교에서도 가르치려는 시도에 실패할 것이다. 가장 편의한 직장을 선택하는 것, 비위에 맞는 성경 말씀만을 이해하려 하는 것, 욕망에 어울리는 것들만을 순종하는 것, 저들의 기호(嗜好)를 끊게 하는 것과 자제력과 십자가를 지는 일을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등은 아무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별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먼저 순종의 도리를 배워야 한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주여, 저로 무엇을 하게 하시려나이까?”라고 주님께 질문할 것이며 주님께서 길을 마련해 주셨을 때 믿음은 어떤 곤란과 희생을 치루면서도 주님의 뜻을 이행하려 할 것이다.

교사들이여, 성경의 단순성을 연구하여 젊은이들의 정신에 진리가 명백히 새겨지도록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이들의 현세와 내세의 복리를 열렬히 바라는 마음은 자주 그대들로 무릎을 꿇게 하고 전혀 실수함이 없으시고 그대들의 지혜가 무력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시는 선하신 주님의 권고를 구하게 할 것이다.

성경 교수는 교사의 거룩한 생애로써 강력한 감화를 끼치는 것이 되게 하여야 한다. 184 경건한 교사들은 저들이 어린이들의 정신에 감명을 주고자 하는 모든 원칙을 몸소 실천할 것이다. 그러한 교사들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대하여 배우고 가장 괴로운 처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저들은 받은 바 어떤 처분에 의해서 창조주를 판단하지 않으며 저들은 창조주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 또한 저들은 당신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신령하고 영원한 복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실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교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교훈을 배우며 그 교훈을 자신의 생애에 완전히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배웠다면 그는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위대한 교사에게 매일 배우는 자들은 새것이나 옛것을 꺼낼 수 있는 가장 값진 보고(寶庫)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교회 학교 교사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알라. 그대들의 생애 가운데 진리의 변화시키는 감화력을 나타내 보이라. 그대들 자신의 가능성들을 계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함으로 그대들의 학생들에게 향상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정신이 하나님의 정신과 일치하자마자 그대들은 가르치는 일에 매우 귀중한 도움이 될 교훈들을 전수해 줄 지성적 존재와 접촉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때에 그대들 자신의 영혼이 실망과 낙담의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구주의 무한하신 희생을 생각하는 가운데 그대들은 세속적인 사물에 대한 모든 욕망을 잃게 될 것이다.

256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고전 9:24-27).

나는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자들에게 가능한 성장, 두뇌의 발달, 품성의 고결성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를 단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필요성을 증거하여 왔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상호간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열렬한 활동으로 현명한 계획들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들은 모든 영적 능력을 활용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은사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상호간의 관계는 인간적인 표준에 의해서 지배되어서는 안되며 거룩한 사랑 곧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은사 가운데 나타난 사랑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한다.

우리 학교의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남자는 말과 행동에 있어서 지극히 조심하여야 한다. 그는 학생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학생의 팔이나 어깨에 자기의 손을 얹는 것과 같은 치근치근한 행동으로 접근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그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지 일반적이거나 허물없는 친교가 허용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257 그의 말이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당할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우리의 모든 교사들이 이점에 있어서 깨끗하거나 진실하지 못하였고 확고부동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였다. 저들은 교사와 학생 간에 존재해야 할 관계에 대해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문제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생애와 품성은 모든 악의 오점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모든 깨끗지 못한 정욕은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은혜를 통하여 얻은 바 성화된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

우리들은 악마적인 마법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원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방책을 세우지 않는 모든 영혼들의 주위에 음란의 마술을 걸 것이다. 유혹들이 엄습해 올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원수를 대항하기 위하여 경계하고 자제력과 순결성의 균형을 유지한다면 유혹하는 영혼들이 우리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유혹을 조장하는 일들을 전혀 행하지 않는 자들은 유혹이 이를 때에 그것을 저지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나 스스로 악한 분위기 속에 처하는 자들은 정복을 당하고 실패하게 될 때 저들 스스로 원망할 수 밖에 없다. 장차 유혹하는 영들에 관하여 경고들을 주신 충분한 이유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효력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참된 신학과 상식에 의해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 우리 영혼들의 천국의 분위기에 둘러싸여야 한다. 남녀들은 스스로 살펴야 하며 계속적으로 경계함으로 저희의 선행이 악한 평가를 받을 어떤 말이나 행동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는 스스로 경계하여 순결을 지키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더럽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258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그의 감화력은 향상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의 생애는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밝은 빛을 반사해야 한다.

은밀한 기도와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통을 갖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영구적인 경계는 안전의 댓가이다.

주님의 언약은 당신의 성도들과 맺은 언약이다. 누구든지 자기 품성의 취약점들을 식별해야 하며 강력하게 그 약점들을 조심해야 한다.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를 지내고 당신의 부활하심과 함께 물에서 나온 자들은 스스로 거듭난 생애를 살기로 서약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용감한 마음과 자원하는 손으로 책임을 짊어질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는 인내와 불굴의 정신으로 생애에 따르는 시련들을 대항하고 가치있는 금언(金言)들을 따르며 승자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습관들을 스스로 확증하도록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능력을 인정하고 거룩한 율법의 원칙에 의해서 지배를 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적절한 시기는 없다.

하나님께서 어떤 섭리 가운데 그대들을 처하게 했든지 그분께서 그대들을 지키실 것이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

302 성경은 의복에 있어 아담해야 함을 가르친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딤전 2:9). 이 말씀은 의복의 사치와 화려한 빛깔과 지나친 장식을 금한다. 입은 사람에게 주의가 끌리거나 감탄을 일으키기 위하여 모양을 낸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된 아담한 의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의 의복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딤전 2:9)만든 것이 아닌 비싸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돈은 자랑이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손에 있을 때에 이는 주린 사람을 위한 식물이 되고 벗은 사람을 위한 의복이 된다. 눌린 자에게 방어가 되고 병든 자에게 건강을 주는 수단이 되며 불쌍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된다. 그대들은 자랑을 위하여 사용하던 돈을 이제부터는 지혜있게 사용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하여 보라. 그분의 성격을 연구하고 자신을 부인하신 그분과 동역하는 사람이 되라.

소위 그리스도계라고 일컫는 사회에서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기에 충분한 돈을 보석들과 필요치도 않은 값진 의복을 사는데 소비하고 있다. 유행과 자랑이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는 재정을 흡수하고 있다. 저들은 이 세상에서 구세주의 사랑에 대한 복음을 도둑질하고 있다. … 그러나 우리들의 의복은 아담하고 단순하면서도 품질이 좋고 색깔이 어울리며 일하기에 적합한 의복이어야 한다. 화려한 것보다 질긴 감으로 만들어진 의복을 선택하여야 한다. 따라서 의복은 보온과 몸을 적당히 보호하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303 잠언서에 지혜있는 여인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 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잠 31:21)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들의 의복은 정결하여야 한다. 의복이 정결하지 못하면 건강에 좋은 의복이 아니며 그런 옷은 몸과 영혼을 더럽힌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 3:16, 17).

모든 점에 있어서 의복은 건강을 위주로 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우리가 “강건하기를”(요삼 2) 원하시는데 영혼과 육신이 다같이 건강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들은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건전한 영혼과 육체는 다같이 건강에 좋은 의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의복은 품위와 아름다움과 알맞는 자연적인 단순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교만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경고하셨으며 의복의 품위와 자연미에 대하여 경고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들에 핀 아름다운 백합화를 가리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천연계의 사물을 이용하여 천국에서 가치있게 평가하는 아름다움을 예시하셨는데 아담하고 단순하며 정결하고 어울리는 옷차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영혼에게 입히라고 권고하셨다. 어떤 외부의 치장도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 “값진 것”(벧전 3:4)이라고 하신 그 가치와 사랑스러움에 전혀 비교할 수 없다.

부적당한 의복이 몸에 끼치는 영향

항상 변하는 유행의 창출을 선동하는 것은 온갖 선을 대적하는 마귀의 짓이었다. 304 마귀는 인간의 불행과 파멸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슬픔과 불명예를 안겨 주는 것 외에 더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이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수단 중의 하나는 유행을 조작하는 일로서 유행은 몸을 허약하게 하며 정신을 나약하게 하고 영혼을 얕보게 한다.

여성들은 위독한 병에 걸리기 쉬우며 주로 저들의 고통은 옷입는 방식 때문에 증가되었다. 분명히 닥칠 위기를 위해서 건강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릇된 습관들을 기르므로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희생시킬 때가 종종 있으며 저희 자녀들에게 병든 몸, 타락한 습관들, 거짓된 생활 관념 등 재앙의 유산을 물려 주게 된다.

비경제적이며 해로운 유행의 고안품 중의 하나는 땅을 쓸고 다니는 스커트이다. 질질 끌리는 치마는 불결하며 불안하고 불편하며 비위생적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옷감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꼭 길게 해서 입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옷은 무모한 사치에 속하는 옷이다. 질질 끌리는 치마를 입고 두 손에는 물건들을 잔뜩 든 채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할 때, 전차를 타려고 할 때, 군중들 틈을 비집고 걸을 때, 비오는 날이나 진창을 걸을 때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과연 그런 의상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심각한 해로움은 무거운 치마를 입음으로 허리를 꼭 조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치마의 엄청난 무게가 신체의 내부 기관을 압박하고 밑으로 끌어내려 위장을 약하게 하며 피로를 느끼게 하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게 할 경향이 있어 폐에 압박을 주므로 호흡작용에 지장을 초래한다.

305 근년에 이르러 허리에 주는 압착(壓搾)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가지 위험들에 대하여 충분히 거론되어 왔으므로 이 문제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기는 하나 아직도 유행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해로운 습관들이 지속되고 있다. 이 습관에 얽매여서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은 저희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최대한으로 팽창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 폐가 충분한 호흡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건강에 절대적으로 긴요한 것이다. 폐가 제재를 받게 되면 폐 안으로 흡수되는 산소의 양이 감소된다. 혈액이 온 몸에 적당한 활력을 공급해 주지 못하며 폐에서 내보내야 할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혈액 순환에 장애가 오고 내부 기관들이 압박을 받아 제자리에서 밀려나가기 때문에 그 기관들이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속옷 끈을 바짝 죈다고 해서 몸매가 아름답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균형미로서 신체 각 부분에 조화된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체적 발육을 위한 정확한 모델은 불란서의 의상가들이 전시해 보이는 모양들 속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연계 가운데 보이신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계발된 인간의 형체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움의 창작자이시며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이상에 순응함으로써만 참된 아름다움의 표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풍습이 조장(助長)하는 또 하나의 악습은 옷감의 분포가 너무나 고루지 못한 점으로써 몸의 어떤 부분은 필요 이상의 천이 사용되고 다른 부분은 알몸이 노출될 정도로 불충분하게 천을 사용한다. 중요한 생리 기관의 위치로부터 먼 곳에 있는 손과 발은 특별히 보온이 잘 되도록 두터운 천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 상습적으로 손발을 차게 할 때에 건강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차디찬 손발에 피가 너무나도 적은 반면 몸의 다른 부분에는 과도한 양의 피가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306 완전한 건강에는 완전한 혈액 순환이 요구되는데 중요한 기관들이 마치 손이나 발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혹은 네 배나 두텁게 하여 옷을 입는다면 완전한 혈액 순환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뿐이다.

수 많은 여성들이 신경질적이고 근심에 시달리는 이유는 저들 스스로 피를 맑게 해 주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지 못하며 자유로운 활동을 하지 못하므로 혈액이 동맥을 통하여 활발하게 유통 될 수 없고 온 몸에 생명과 건강과 활력을 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건강을 향유할 수 있는 나이에 병약한 환자로 전락하게 되고 만약 저들이 건강 원칙을 따라 옷을 입고 옥외에서 마음껏 운동했다면 정한 수명을 다 누렸을 저들이 폐병이나 기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위생적인 의복을 준비하려면 신체 각 부분의 필요가 무엇임을 주의 깊이 연구해야 한다. 기후의 특색, 주위 환경, 각자의 건강상태 연령 및 직업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어떤 옷이든지 몸에 편하게 맞는 것이어야 하며 혈액 순환이나 호흡 작용이 자유롭고 충분하며 자연스럽게 될 수 있는 의복이어야 한다. 모든 옷은 품이 넉넉하여 두 팔을 높이 올릴 때에 옷이 따라 올라가게 되어야 한다.

건강이 쇠퇴해 가는 여성들은 스스로 의복과 신체 운동에 유념함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옥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의복이 마련되었을 때 저들은 밖에서 운동을 하되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할 것이며 정도를 참작하여 운동량을 증가시키도록 하라. 이런 과정을 밟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생애에서 저들에게 분담된 일들을 맡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치료봉사 287-294).

338 만약 이 세상에 인간의 참된 정열을 불러 일으킬 만한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갈바리의 십자가일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리스도는 받아들여야 하고 믿어야 하며 높임을 받으셔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심 바로 이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쾌락을 위한 모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따르는 흥분과 열정에 대한 큰 염려가 있어 온 반면에 많은 사람들에게 꼭 알맞는 듯한 다른 분야에 열정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지금 우리 백성들 사이에 즐겨 해 왔던 쾌락을 위한 모임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임들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백성들의 많은 시간과 관심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들이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는가? 이러한 집회의 진행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초청을 받으셨는가?

사교적 집회는 거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빛나고 있을 때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거나 혹은 주의 사업을 전진시키고 인류 동포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려고 모였을 때 가장 유익되고 교훈적인 집회가 된다. 339 이런 집회에 성령을 반가운 손님으로 환영할 때, 성령을 근심케 하여 떠나시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은 영화롭게 되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새로워지며 힘을 얻게 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17).

그러나 ――에서 사교집회로 모이는 무리들이 있어 왔는데 그것은 곧 우리의 기관이나 교회의 치욕이 되어온 환락의 회합들이었다. 이들은 의복의 자랑과 외모의 자만과 자기 만족과 환락과 경박한 것들을 조장하고 있다. 사단은 영예로운 손님으로 환대를 받으며 이런 모임들을 장려하는 자들을 자기 손아귀에 넣는다.

이같은 무리에 대한 광경이 내게 제시되었는데 거기에는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회합하였다. 한 사람이 악기 앞에 앉아 있는데 지켜보는 천사들을 통곡시킬 그같은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환락이 있었고 비열한 웃음이 있었고 많은 열광이 있었으며 일종의 흥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란 사단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수치로 여길 열성이요 심취함이었다. 이러한 것은 여기에 참석한 자들로 거룩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준비시킨다. 그러한 환경에 이끌리었다가 그 수치스러운 행동을 충심으로 회개한 어떤 사람들을 생각해 볼 만하다.

340 많은 이같은 모임들이 내게 제시되었다. 나는 환락과 의복의 자랑과 용모의 장식을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훌륭하다는 인정을 받기 원하며 떠들며 노는 것과 어리석은 농담과 천하고 비루한 감언과 너털웃음 등에 정신을 빼앗긴다. 눈들은 번쩍이고 볼은 상기되며 양심은 잠자게 된다. 먹고 마시는 것과 환락으로써 저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쾌락의 현장은 저들의 낙원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면서 눈여겨 살피시고 계신다. … 대화의 주제는 마음의 생각이 무엇임을 드러낸다. 경박하고 천한 이야기나 아첨하는 말이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어리석은 희롱의 말들은 사단의 상품들이며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자들은 사단의 상품들을 사고 파는 자들이다. 이러한 말들을 듣는 자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인상은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 왕 앞에서 춤출 때에 그 왕의 얼굴에 나타났던 표정과 흡사하다. 이런 내용의 모든 대화가 하늘 책에 기록되며 마지막 큰 날에 그 기록된 진상이 범죄한 자들 앞에 밝히 드러날 것이다. 그 때에 모든 영혼들은 그러한 말들 가운데 저들을 넓은 길로 인도하여 파멸시키기 위해 크게 열린 문으로 인도하는 유혹적이며 기만적인 책략(策略)이 있음을 식별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에 그의 올무를 크게 펴 왔다. 품성과 신앙적인 체험면에 피상적이면서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이들은 마귀의 미끼로 이용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항상 쾌락이나 운동 집회에는 민감하며 저들의 감화는 다른 사람들을 유혹한다. 성경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힘써 왔던 젊은 남녀들은 이 집회에 참여하도록 설득된다. 그리하여 저들은 이 무리들 속에 이끌려 들어간다. 341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나무에 맺혀야 할 열매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를 배우기 위하여 하늘의 표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은 이러한 오락들이 영혼들로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오라는 초청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고 저들로 그리스도의 의인 품성의 흰 두루마기를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준비된 사단의 집회인 것을 실로 깨닫지 못한다. 저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저들은 고립됐다는 인정을 받고자 하지 않으므로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모본을 따라가고 싶어한다. 이와 같이 하여 저들은 심령에 전혀 신령한 감화를 받은 적이 없는 자들의 감화를 받게 된다. …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죄인, 회개한 자와 회개하지 않은 자와의 사이에 구별하는 선을 그으셨다. 이 두 계급은 무지개의 빛과 같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섞여 버리는 일이 없다. 그들은 대낮과 한밤중처럼 확연하다.

그리스도의 의를 갈망하는 자들은 크신 구원에 대한 주제를 깊이 생각할 것이다. 성경은 저들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양식을 공급해 주는 창고이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명상하며 저들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여 사유하심과 평화의 영원한 의를 주시기 위하여 치루신 커다란 희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다. 이처럼 웅장하고 고상한 문제들은 영혼을 흥분시킨다. 신성과 진리, 은혜와 의는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자아는 죽고 그의 종들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된다. 성경 말씀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때에 저들의 심령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시면서 당신 자신에 관하여 두 제자들과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웠던 것처럼 뜨겁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께서 저들 곁에서 걷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저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님께서 저들의 어리석고 비천한 말을 전부 들으셨음을 알게 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만약 저들이 구세주께서 저들 곁에 계셨고 거룩한 임재의 분위기가 저들을 둘러 쌌으며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령이 거룩한 기쁨으로 뜨거워졌을 것인가! 342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추종자들이 당신의 교훈의 가치를 말하는 것을 듣게 되고 저들에게 거룩한 사물에 대한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때에 얼마나 기뻐하실 것인가!

진리가 그 마음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비평하거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에 대하여 헐뜯는 마음이 없게 될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입으로 흘러 나온다. 그것을 억누를 길이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들이 대화의 주제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흐르는 곳곳마다 생명과 기쁨을 주는 원천으로 영혼 안에 자리잡게 된다(배틀크릭 교회에게 보내는 특별한 증언, 1896년 11월 18일).

그리스도인들은 저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행복의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쾌락이 정당하며 바른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정신을 흐트러지게 하지 않고 영혼을 타락시키지 않으며 실망케 하지 않고 따라서 자존심을 파괴시키는 서글픈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며 유용성을 망치게 하지 않는 그러한 휴양들을 즐길 것이다.

404 소수의 학생들에게 여러 분야에 걸친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하여 온갖 편의를 제공해 주는 제도는 저들이 배운 것을 모두 실제적으로 사용하기에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온갖 편의를 제공받은 학생들에게 유익이 되기 보다는 손해가 되며 그런 편의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다른 학생들의 특권을 빼앗는 것이 된다. 만약 이처럼 오래 계속되는 준비가 훨씬 줄어들고 공부에만 치중하는 일이 훨씬 감소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학생들의 신앙심을 증가시킬 더욱 많은 기회들이 생길 것이다. 나는 어떤 학생들이 저들의 영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저희의 믿음이 점점 약화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끊임 없는 교제를 갖고 있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저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탐독하는데 소비하며 그 외에 다른 것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이러한 모든 준비가 저들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인가? 저들은 이처럼 낭비된 시간과 돈으로 어떤 유익을 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이것보다 더 치명적인 손실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학자금을 최선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일에 가장 신중한 배려를 해야 한다. 막대한 학비가 드는 교육 과정을 위해서 소수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반면에 단시일 내에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을 갈급하는 많은 학생들이 있으며 저들에게는 1년이나 2년의 교육 과정이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만약 소수의 학생들에게 다년간에 걸친 교육 과정의 혜택을 주기 위하여 모든 재정을 써버린다면 누구에도 못지 않게 자격이 있는 많은 청년 남녀들이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405 …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지나친 교육의 혜택을 베풀어 주는 대신에 자선 사업의 범위를 넓히라. 사업에 종사할 일꾼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대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금은 다른 모든 학생들을 도움이 없이 버려둔 채 단순히 한 사람을 위하여 그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이상의 교육을 받게 하는 일이 없도록 결정하라. 학생들로 학업을 시작하도록 도와 줄 것이며 해마다 저들을 재정적으로 도와 주는 것이 그대의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 것이다. 학자금을 벌기 위하여 학생들이 일터에 나가 일해야 할 의무가 저들에게 있으며 그대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청소년들에게 그대들의 자선의 손길을 뻗쳐야 할 것이다. … 비록 참된 학문일지라도 지나치게 공부에만 치중할 때 배움에 따라서 비정상적인 욕구가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욕구는 주님의 사업에 필요한 이상의 지식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품게 한다. 단순히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의 탐구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인 정신을 소멸시키고 실제적인 거룩함에 전진하는 길을 차단해 버린다. … 주 예수께서는 실제적으로 응용할 만한 정도의 교훈을 나누어 주신다. … 때때로 제자들의 정신은 호기심에 의해서 흥분된 적이 있었으나 저희 사업을 바르게 수행하는데 필요치 않은 것들을 알고자 하는 저들의 욕심을 만족시켜 주는 대신에 주님께서는 저들의 정신에 새로운 사상의 분야를 공개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실제적인 경건에 관하여 더욱 필요한 교훈을 주셨다. … 공부의 부절제

공부의 부절제는 일종의 흥분제이며 그런 습관에 방종하는 자들은 마치 술주정꾼처럼 안전한 길에서 방황하며 비틀거리고 흑암 속에 빠지게 된다. 주님께서는 모든 학생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겠다는 결심을 하기를 바라신다. 406 학생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적 능력을 학문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전적으로 소모해서는 안되며 영혼들을 도와 의의 길을 찾게 하는 바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의 새로운 활력을 보존해야 한다. … 하늘의 명령은 우리 동료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는 생애를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어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 주님께서는 저들이 누린 어떤 혜택에 따라서 혹은 저들이 받은 우수한 교육 수준에 따라서 일꾼들을 선택하시거나 받으시지 않으신다. 인간 대리자의 가치는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는 그 마음의 폭에 따라서 평가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선의 표준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요 17:3)다. 이 지식이야말로 모든 능력이 흘러나오는 비밀의 샘이다. … 모세의 교육

모세가 왕의 손자로서 받은 교육은 매우 철저한 것이었다. 애굽인들이 모세를 현명한 지도자가 되게 하는데 있어서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단 한 가지도 소홀히 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모세가 자기 일생의 사업을 위하여 가장 적합한 자격을 얻게 된 것은 목자의 생활에서 얻은 교육이었다. 모세가 양떼를 끌고 산중의 야수들이 있는 곳과 계곡의 푸른 초장을 따라 다닐 때에 천연계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장 고상한 지혜를 가르치셨다. 자연계의 학교에서 그리스도를 교사로 모시고 모세는 겸손, 온유, 믿음, 신뢰 및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가까이 머물게 하는 모든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407 산중의 고독한 생활에서 그는 궁전에서 배운 모든 지식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교훈 즉 단순하고 흔들림이 없는 믿음과 주님께 대한 끊임 없는 신뢰심을 배우게 되었다.

모세는 애굽의 지혜로 받은 그의 교육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군대의 장군으로서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을 습득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교육 기관의 모든 혜택을 받지 않았던가? 사실 그렇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백성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먼저 자기 백성의 잘못을 고쳐 줌으로 저들의 환심을 사려는 일부터 착수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살해하였다. 이런 행위로써 그는 태초부터 살인자였던 마귀의 정신을 나타냈으며 자비와 사랑과 온유의 하나님을 증거하기에 부적당한 자신을 드러냈을 뿐이다.

모세는 첫 계획에서부터 비참한 실패를 저질렀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그 즉시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을 잃어버렸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업을 등지고 돌아섰다. 그는 바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하였다. 모세는 애굽인의 생명을 살해한 자신의 큰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잔인한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는 사업에 자기가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일꾼들이 당신을 위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하여 반드시 소유해야 할 온유와 선함과 오래 참는 정신을 모세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런 일들을 용납하셨던 것이다. … 모세는 자신의 탁월한 재능들을 빙자하여 백성들의 아첨하는 말이나 찬양의 말들을 의당히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교육을 받았으나 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교훈을 배워야만 하였다. 양을 치는 목자로서 모세는 고통당하는 짐승을 돌보며, 병든 양을 간호하고, 길을 잃고 헤메는 양을 끈기있게 찾아다니고, 다루기 힘든 것을 오래 참으며, 고독을 벗 삼아 어린 양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늙고 허약한 양들을 보살펴 주는 그런 일들을 배워야만 하였다. 408 그는 이 경험을 통해서 목자장이신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과 연합하게 되었고 그분 안에 깊이 잠기게 되었다. 그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겸손한 기도의 생애를 통해서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였다. 따라서 모세는 신령한 사물들에 대한 교육과 충성된 목자로서 가져야 할 의무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나아갔다. 그의 생애는 너무나 밀접히 하늘과 연결되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직접 대면하여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출 33:11) 대화를 나누셨다.

이처럼 교육을 받은 모세는 목자의 지팡이를 버리고 권위의 지팡이를 바꾸어 쥐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준비가 되었으며 자기 양떼를 떠나 우상숭배에 열중하며 반역적인 백성을 지도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도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도자를 의뢰하여야만 하였다. 자기 손에 있는 지팡이가 하나의 도구인 것처럼 그는 기꺼이 그리스도의 손에 쓰일 기구가 되어야만 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치리하는 목자가 되어야만 하였으며 그의 확고한 신앙과 주님께 대한 영속적인 신뢰를 통하여 많은 축복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게 되었다. … 모세를 그러한 인물이 되게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앙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에 따라 그는 행하였다. 모세가 자신감을 잃고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으며 자신의 신뢰를 하나님께 두기까지, 그가 자신의 인간적인 이성으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옳게 보이든 옳지 않게 보이든 간에 기꺼이 순종하기까지, 이 세상 박사들의 모든 가르침도 주님께서 쓰실 만한 인재로 모세를 만들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 모세로 그의 원수들에게 승리하게 한 것은 애굽의 학교에서 배운 교육이 아니었으며 영구적이며 굽힘이 없는 믿음 곧 가장 극심한 시련의 환경에서도 실패하지 않은 그러한 신앙 때문이었다. 409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세는 자기 발 앞에 아무것도 밟을 것이 없었으나 앞으로 전진하였다. 백만이 넘는 수의 백성이 그를 의지하고 있었으며 그는 매일 저들을 한 계단 한 계단 전진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외로운 여행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고난을 참는 경험을 얻게 하고 저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저들에게 도움을 주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저들은 하나님을 알고 의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며 산 믿음으로 당신을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가장 중대한 교훈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교육을 받은 인간을 의존하시지 않으신다. 당신의 사업은 마치 우리의 어떤 학교들이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종들이 장기간의 어려운 교육을 받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더불어 동역자가 되는 특권을 감사히 여기는 자, 과거에 배운 학문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당신을 영화롭게 할 자들을 원하신다. 자아를 버리고 성령께서 저희 마음에 역사하시도록 마음 문을 여는 자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생애를 살며 불평이나 실망함이 없이 주님께서 명하신 필요한 훈련을 참는 자들의 유용성에는 제한이 없다. 만약 저들이 주님의 견책을 받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냉혹하거나 완고하게 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매일 매 시간 어른들이나 아이들에게 꼭 같이 가르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시기를 갈망하시며 만약 당신의 택하신 백성이 장애물들을 제거해 버린다면 주님께서는 인간의 경로를 통하여 구원의 물이 넘치게 흐르도록 부어주실 것이다.

410 인간의 학교에서 최종 교육 과정을 마침으로 하나님의 고귀한 사업을 위한 능력을 얻으려는 많은 사람들은 저들이 더욱 중요한 교훈을 배우지 못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들 자신을 성령의 감동에 굴복시키는 일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지 않으므로 저들의 영적 능력은 약화되었으며 저들은 주님을 위한 성공적인 사업에 쓸 수 있는 재능을 상실하였다. 저들 스스로 그리스도의 학교에 출석하지 않으므로 위대하신 교사의 음성을 잊어버리게 되고 주님께서는 저들이 나아갈 길을 지도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인간 교사가 가르치는 가능한 모든 지식들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더욱 고상한 지혜이다. 모세처럼 저들도 온유 겸손 및 자신에 대한 불신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 구세주께서도 인성을 쓰시고 시련을 당하실 때에 당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우리들 역시 인간의 힘만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오직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됨으로써만 인간이 참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지도를 구해야 함

학생은 책을 처음으로 펴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참된 지혜를 가르치시는 분으로 인식해야 한다. 학생은 매 단계마다 거룩한 지도를 구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참여하실 수 없는 약속,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없는 연합은 있어서 안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혜의 근본이신 그리스도를 안내자로 인식해야 한다. 411 이리하여 책에서 얻은 지식은 무한하신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으로 말미암아 제한될 것이다. 학생은 장기간에 걸친 어떤 특정 교육 과정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런 문제에 관하여 성령의 지도를 받도록 해야 한다. … 아무도 진리와 주님의 능력에 대한 저희의 믿음을 약화시키거나 거룩한 생애에 대하여 흠모하는 정신을 감소시키는 어떤 학과도 택해서는 안될 것이다. 학생들이 먼저 성령의 감화를 받기 위하여 마음 문을 열어 하나님께 간구하고 저들이 곰곰히 생각하여 전 교육과정에 대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받지 않는 한 비록 저희의 교사들이나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권고를 받을지라도 그런 분야에 단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 놓지 않도록 나는 경고하는 바이다. 신앙에 근거하지 않은 모든 포부는 소멸시켜야 한다. 자기 자신의 특색을 드러내기 위한 모든 이기적인 욕망을 버려야 하며 모든 인간적인 제의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성령의 지도를 신뢰해야 할 것이다. … 그대들 자신이 인간적인 전통에 얽매이지 않도록 할 것이며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나는 주의 권고를 따를 것이며 주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라. 그대들이 향유하는 모든 편의들이 한결같이 그대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충고의 교육을 받을지라도 거룩하신 성령의 협력을 얻지 않는 한 그대들을 빛의 통로가 되게 하지는 못한다. 애굽의 우상들이 저희를 섬긴 자들을 구원하지 못한 것처럼 신령한 교육이 없이 우리들이 인간에게서 자격을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학생들은 저희의 교육 기간을 연장케 하는 모든 제안이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든 제의는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 주님의 지도를 구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한번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하여 주님의 뜻을 여쭤보라. 412 그 권고가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혹은 사람에게서 왔는지 확신을 얻을 때까지 주님께 간구하라. …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고 말씀하셨다. 깨어 기도하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그대들의 연구 생활은 누적되어 그대들의 관심을 완전히 빼앗을 것이며 그대들의 정신은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되고 경건에 대한 욕망은 그대들의 영혼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많은 학생들의 경우에 있어서 본래 학교에 들어갈 때 가졌던 동기와 목적을 점차적으로 상실하였으며 고등교육을 받고자 하는 비신앙적인 포부는 저들로 진리를 희생케 하기에 이르렀다. 인간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저들의 열렬한 관심은 저들의 타산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참된 지식은 진리의 거룩케 하는 능력을 통하여 성화된 생애에 이르게 한다.

연구 생활이 누적됨에 따라 하늘의 지혜는 둘째 자리로 밀려났으며 이런 생활에 전념할수록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이 적어진 실례가 종종 있었다. 그런 학생은 생애에 따르는 성공의 본질이 높은 학문을 쌓는데 있는 줄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본다면 저들은 전혀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참된 교육에 대한 중대한 원칙이 없이 주는 교육, 구세주를 봉사하는 방법과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에 대한 지식이 결여된 교육은 유익이 되기보다는 더욱 해로운 것이다. 교육이 인간적인 의견에 밀려서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이지러질 정도에 이르게 되면 기도를 등한히 하게 되고 신령한 품성을 기르지 못하므로 완전히 비참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최고의 교육을 얻고서 영원한 이득을 상실하느니보다 오히려 그런 교육을 중단하고 영혼을 쇠퇴일로의 상태에서 회복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413 … 나는 하나님께서 한정하지 않으신 교육에 어떤 제재를 가하려는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교육은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그런 유익으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배우는 자들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영혼을 위태롭게 하는 교육 방법을 따르는 것에 제재를 가하려는 뜻에서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이다. 교육은 광대한 필생의 사업이다. 따라서 참된 교육을 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교육면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증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만 책에서 얻는 지식만을 위하여 여러 해를 바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어느 기간 동안 공부한 후에 아무도 그 즉시로 또 다른 장기간의 학과를 택하도록 권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저들이 그동안 준비하여 온 그 사업에 종사하도록 저들을 권고할 것이다. 저들이 받은 교육을 실제로 사용하도록 격려해 주라. … 많은 사람들의 정신은 새롭게 되고 변화되며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형성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공부에 지나치게 치중함으로 신체와 정신과 도덕면에 저들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다. 저들은 교육을 받기 위한 노력 때문에 부절제한 습관들을 행함으로 이생과 내세에 따를 저들의 특권을 빼앗기고 있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온유와 겸손에 대한 교훈을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상실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견지에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이 시대에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저들이 신속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학생들에게 고취시켜야 한다. … 얼마나 위기가 신속히 이를 것인가에 대하여 그대들이 예기치 못하고 있는 사실을 말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414 그 위기는 마치 도둑처럼 우리들에게 서서히 다가서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으며 언제나 마찬가지로 제 궤도를 돌고 있으며 하늘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며 심고 건설하며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다. 상인들은 사고 파는 일에 종사하며 출판물은 계속해서 간행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당기며 가장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여전히 극장, 경마장, 도박 장소 및 극단적인 흥분으로 가득 찬 곳들을 출입하고 있다. 그러나 집행유예의 시간은 신속히 끝나가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야흐로 영원한 결정 단계에 이르고 있다. 우리들이 쟁취해야 할 천국이 있고 멀리 피해야 할 지역이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는 자들이 지극히 적다. 저들은 다만 저희의 행실로 믿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징조는 신속히 성취되고 있다. 사단은 자기가 일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는 세상의 모든 요소들을 격동시키기 위하여 자기 대리자들을 활동시키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기만을 당하며 현혹되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고 자비의 문이 영원히 닫힐 때까지 정신이 팔리고 넋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왕국들은 아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속히 행동할 것인데 사람이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때문이다. 동료 인간을 구원하는 사업의 사명감을 가지고 그대를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연구 생활에만 치중하도록 장려하지 말 것이다. 교육을 받기 위한 기간을 여러 해로 연장시키지 말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아직도 때가 넉넉하다는 인상을 저들에게 주는 것이 되며 바로 이러한 계획이 저들의 영혼에 올무가 되게 한다.

415 대부분의 사람들은 졸업할 때 보다도, 공부를 시작할 때에 더욱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며 영적 식별력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더욱 명철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하여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학자가 되려는 포부로 정신이 고취되며 마침내 저들은 혼미해질 정도로 연구 생활에 몰두하게 된다. 저들은 책들을 우상으로 삼으며 교육을 얻기 위한 댓가로 건강과 영성을 희생시킬 것을 서슴치 않는다. 저들은 기도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며 선행을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계발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저들은 이미 얻은 바 지식을 활용하지 뭇할 뿐만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학문에 정진하지 못한다. 책에서 뛰어난 지식을 얻으려는 정열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선교적인 활동에 대하여는 점차적으로 취미를 잃게 된다. 저들은 공부에만 치중하므로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다. 어떤 사람들은 저들의 학업 발전을 축하하며 계속해서 학위를 얻도록 격려한다. … “그대들은 진리를 믿는가? 그대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가? 만약 믿는다면 그대들의 믿음을 따라 행하라”는 질문이 있었다. … 집행유예 기간은 장기간의 연장된 훈련의 시기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마 21:28)는 말씀을 하실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 지금, 바로 지금이 일할 때이다. …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나 1:3). 아,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속성들을 스스로 억제하신다. 416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전능자의 지배하에 두신다. 아, 하나님께서 세상의 타락 때문에 낭패하시는 일이 없이 가장 무가치한 인간에게까지라도 용서에 대한 희망을 붙들게 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항상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이 갑자기 변동될 것을 위해서 준비된 자가 있는가? 죄인들에게 분명히 내리실 벌을 피하기 위하여 준비될 자가 누구인가? … 완성해야 할 큰 사업이 있으며 주님의 포도원에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은 강제로 일을 못하게 하는 일이 있기 전에 일터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사방에 문이 열려 있으며 학생들은 여러 해 동안의 훈련 기간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데 우리들에게는 일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며 해가 있을 동안에 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내가 교육을 경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을 불합리한 극단으로 이끌어 가며 너무나 지나치게 인간적인 교육에 치중하게 하는 위험에 처한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말한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오히려 신앙적인 경험의 발전을 강조할 것인데 이런 것을 강조하는 일이 없다면 학생들의 교육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만약 학생들이 저희의 영혼의 영원한 복리를 얻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성경에 대한 연구를 등한히 할 정도로 공부에만 몰두하는 위험에 빠진 것을 보게 된다면 그대들은 교육 기간을 연장케 하는 어떤 유혹도 제시하지 말 것이다.

417 시기가 허락하는 한 우리들에게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항상 교육의 필요성이 있을 것이지만 그 교육이 모든 영적 관심을 빼앗지 않을 것인지 주의하여 살펴야 할 것이다. 학생들로 계속해서 교육을 받는 일에만 치중하도록 권고하는 데는 절대적인 위험이 있는데 그렇게 지도함으로 저들은 많은 교육이 완전에 이르게 하는 줄로 생각하게 된다. 그처럼 얻는 교육은 모든 면에 결함을 드러낼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19-21)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애굽인들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그는 광범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그 교육의 대부분을 고쳐 배워야 할 것으로 혹은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40년의 긴 세월을 통해서 양떼와 어린 양을 돌보는 가운데 애굽의 교육에서 얻은 인상을 깨끗이 지워버려야만 하였다. 만약 주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처럼 격리되고 저희 마음이 온유하게 될 때까지 어떤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환경에 구속된다면 … 저들은 저들 자신의 재간을 뽐내거나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지식 대신에 얻은 고등 교육의 지혜를 자랑해 보이려고 애쓰는 일이 없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인간을 찬양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교육자들은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실 기회를 주어야 한다. 418 성령에 의해서 가장 위대하신 교사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이 상징되었다. 그대들이 아무리 공부하고 높은 수준에 도달하며 그대가 가진 바 집행유예 기간의 모든 시간을 지식 탐구에 바칠지라도 그대들은 완전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때가 다 지난 후에 그대들은 스스로 “흑암 속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행하였는가? 나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 또는 내가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하여 얻은 지식을 누구에게 나누어 주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라.

얼마 안있어 하늘에서는 “다 이루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 12)는 말씀이 들리게 될 것이다. 이 명령이 나아갈 때에 이미 모든 자들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일꾼들이 큰 사업을 위하여 준비에 다년간의 세월을 보내므로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하며 예수님의 발 앞에 전리품을 바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작은 일을 택하여 서서히 그리고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짐을 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알고 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원칙에 일치하여 일하고 있는가? 물론 과거에 어느 정도의 사업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많은, 훨씬 많은 일들을 성취해야 한다. 할 일은 점점 많아지는데 일할 시간은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 지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붙이고 빛을 발하여야 하건만 많은 사람들이 저희 등잔에 은혜의 기름을 채우지 못하며 심지를 다듬어 빛을 발하지 못하므로 오늘날 불빛이 흐려지고 있다. 419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내일의 긴 연장 속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모든 학생들이 오늘을 위한 특별한 사업의 중요성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을 받게 하라. 모든 학생들이 하나님과 영혼들을 위하여 수고하게 하라. 각자가 지혜를 나타내 보이고 결코 게으름을 피우거나 어떤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일감을 마련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라. 그대들에게 일감을 마련해 줄 그 어떤 사람은 너무나 할 일이 많으므로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일을 바로잡는 지혜를 주실 것인데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마 21:28; 히 3:7, 8)는 부르심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애정을 나타내는 “아들아”라는 말씀으로 당신의 요구들을 부탁하셨다. 그 부르심이 얼마나 부드럽고 동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긴급성을 나타내고 있는가! 주님의 초청은 또한 명령이다.(교육에 관한 특별한 증언 108-146; 1895년 3월 21일 미쉬간주 배틀크릭에 있는 위생병원과 대학교의 교사들에게 보냄)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위대한 지식이다. 참된 자기 인식은 겸손한 정신을 갖게 하여 주님께서 정신을 계발시키고 품성을 형성하며 단련시킬 수 있도록 길을 열 것이다. 어떤 교사라도 자기 자신의 결함을 생각하지 않고 영적 생애를 약화시키는 모든 계획들을 내버리지 않는 한 만족할 만한 사업을 할 수 없다. 교사들이 영생에 긴요하지 않은 것들을 내어버릴 때에 저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저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게 되며 영생을 위하여 지혜로운 장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48 성경은 영혼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와 동시에 정신을 강화시키고 훈련시키는 일에 응용할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 성경을 교과서로 사용할 때 이생에 따르는 모든 사건들을 지혜롭게 다루도록 지도하며 영혼이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에 오르도록 도와줌에 있어서 다른 어떤 책들보다도 훨씬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참으로 탐구하는 자에게 진지한 정신적 훈련을 주며 그는 거룩한 사물들에 대하여 명상함으로 자신의 기능들을 부요하게 한다. 하나님과 그의 진리가 높임을 받을 때에 자아는 겸비하게 된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진리를 너무나 모르는 까닭으로 인간을 찬양하는 일이 너무나 많으며 하나님께 영화를 돌리는 일이 극히 드물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장엄하고 영원한 장면들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흑암의 권세를 전복시킨 신비스런 투쟁에 관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위치에서 독생자로서의 굴욕을 당하시기로 찬성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우며 얼마나 믿기 어려운 일인가! 학생들로 이 위대한 사상을 명상하게 하라. 그러한 명상을 통해서 저희의 심령은 고상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며 정신은 고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강하게 자라게 하는 영적 양식으로서 진리와 의를 위해서 투쟁하게 한다. 성경은 모든 붙어 다니는 죄를 버려야 할 것과 모든 그릇된 점을 바로잡을 때까지 악에 대항하여 전쟁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449 인간 대리자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열심있는 학생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가 거저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일 때에 생각과 심령 가운데 나타나시는 구세주의 임재는 그에게 모든 잡념을 물리칠 뚜렷한 목적의식을 줄 것이며 그의 심령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청년들로 세상의 타락으로부터 피하는 방법을 알게 하려면 우리 청년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참된 경건에 대한 단순성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이란 일의 형편이 저희 성향에 일치할 때에만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 자제력과 십자가를 지는 것을 요할 때에 하나님을 섬길 것을 저들은 가르쳐야 한다. 에워싸는 죄들과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이거나 간에 못마땅한 성격들은 의의 위대한 원칙과 비교해야만 하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정복해야만 한다. 날마다 혹은 시간마다 자제와 성화에 대한 열렬한 활동이 마음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그럴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마음 속에 계실 것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성화는 지식에 이르는 영혼의 통로를 폐쇄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신을 넓히고 감동케 함으로 숨은 보화를 찾는 것처럼 진리를 탐구하게 한다.

틀림이 없는 안내자

성경을 자기 안내자로 삼는 청년들은 의무에 대한 도리와 안전한 길에서 실수할 이유가 없다. 그 거룩한 책은 청년들에게 품성의 견실성을 보존하도록 가르칠 것이며 진실되고 속이는 습성을 기르지 않도록 가르칠 것이다. 또한 성경은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거나 비록 희생이 요구되는 순종을 해야 할 경우에 있어서도 결코 그 율법을 범해서는 안될 것을 가르친다. 450 따라서 성경은 사람이 바른 행실에서 떠날 때 하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지 않을 것과 비록 사람이 불순종한 생애에서 번영을 누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들은 분명히 저희가 심은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알고 읽는 자들이야말로 참된 연구자들이다. 저들은 그 말씀이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이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떨게 된다. 저들은 거룩한 가르치심에 대하여 저희 이해력이 깨우침을 받게 되며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봉사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마치 하늘이 주는 횃불을 자기 손에 든 것처럼 진리를 탐구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덧없음과 허약함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기대가 절망에 부딪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는 자기 안에 아무것도 하나님께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성령께서 자기의 끊임없는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할 것이며 자기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도록 간구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는 허락의 말씀을 반복하여 말할 것이다.

주기 위하여 받음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경 공부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유익을 끼칠 것이다. 저희 마음에 진리의 거룩한 원칙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증진되는 활동력으로 일할 것이다.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최고의 표준에 도달하려는 저들의 결심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은 저희가 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저들이 생수가 흐르는 샘에서 스스로 마시게 될 때에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활기를 주기 위하여 저들에게서 생수가 흘러 넘칠 것이다.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은 지식과 식별력이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451 그의 지력은 고상한 문제들을 파악할 것이며 영원한 실제에 속하는 진리들을 붙잡게 될 것이다. 그의 행동의 동기는 바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신 천부의 책임을 더욱 완전히 이해하도록 도와 주는 일에 자기의 영향력을 활용할 것이다. 그는 자기가 받은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자신의 노력이 성공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자기의 심령이 기쁨의 원천이 될 것이다.

성화되고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사용된 지식의 냥쭝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 선행을 위한 자아희생적인 노력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고전 3:9)다. 주님께서는 인간 동역자와 협력하실 것이다.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위해서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된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맡기신 바 냥쭝을 퇴화시키거나 악화시킬 때에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자기의 냥쭝을 향상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특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게 할 특권을 얻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그러나 많은 빛과 기회들을 받은 허다한 사람들은 저희 수중에 들어온 축복들을 놓쳐 버린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정하신 가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야말로 건전하고 긴요한 것이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저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가치있는 존재이며 무한한 값으로 사신 바 되었음을 배워야 한다. 또한 저들은 인간의 모든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옷입어야 하며 저들의 모든 능력은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 끈기있게 수고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452 학생들은 도움이 필요되는 자들을 도와주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저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할 때에 저들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벧후 3:18)게 될 것이며 저들의 능률은 증가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는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을 증진시키고, 저들이 받은 바 은사들을 열렬한 봉사로 주님께 바칠 때에만 저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새 마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단순한 견해가 아니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진리의 말씀들을 자기 생애의 한 부분으로 삼는 자는 모든 면에 있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그에게 새로운 정신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무지와 죄로 말미암아 이해력을 흐리게 한 흑암을 거두어 주실 것이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겔 36:26) 준다는 말씀은 새로운 정신을 주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항상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진리의 깨달음에 대하여 밝은 개념을 가질 때에 생기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가 얼마나 명료하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력이 얼마나 깊으냐에 비례된다. 치밀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마치 고상한 지능의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명료한 이해력과 확고한 판단력을 얻게 될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정신을 기울인다면 이해력은 강화될 것이며 추리하는 기능들은 향상될 것이다. 성경과 관련이 없는 책에서 지식을 얻을 때보다도 성경 연구의 생활에서 정신은 확장되고 더욱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5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세운 학교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을 사용하실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은 분명히 불신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학문을 무시하거나 교육을 경시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주님께서 복음사업을 위하여 불학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신 것은 저들이 세상의 거짓된 풍습과 유전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때문이었다. 저들은 탁월한 선천적인 재능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정신을 가진 자들이었고 주님께서 당신의 위대한 사업을 위하여 능히 교육하실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평민들 가운데 자신의 일상 업무의 테두리에서 참을성 있게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저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들을 활용하였더라면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과 맞먹을 그러한 잠재적인 능력들을 저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동면 상태의 재능들을 일깨워주고 계발시키기 위하여 재능이 탁월한 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친히 접촉하신 인물들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으며 당신 자신의 지도 밑에서 삼년간의 훈련을 제공하는 유익을 저들에게 주셨다. 랍비들의 학교나 철학의 전당에서 배우는 어떤 학문도 그 가치에 있어서 이에 비교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헌신한 자의 생애가 무지에 속하는 생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불학무식한 어부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주장하며 교육에 반대하는 말을 한다. 따라서 저들은 예수님께서 교육을 받지 않은 자들에게 특혜를 베푸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훈을 믿은 자들 중에는 많은 학자들과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 있었다. 만약 이러한 인물들이 두려움없이 저희 양심의 확신을 따라 순종하였다면 저들은 주님의 뒤를 따랐을 것이었다. 만약 저들이 저희가 가진 재능들을 주님께 바쳤더라면 주님께서는 그 재능들을 받아 당신의 사업에 사용하셨을 것이다. 512 그러나 저들은 험상궂은 제사장들과 시기하는 지도자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없었으며 비천한 갈릴리 출신의 인물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저희 명예를 내던질 수 있는 도덕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모든 인간의 심령을 파악하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셨다. 만약 교육을 받고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자들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는 일에 순종적이며 충성된 인물들을 선택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비천하고 겸손한 인물들을 선택하셨으며 당신 자신에게 저들을 연결하여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이 지상의 위대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저들을 교육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이었다. 또한 그분은 모든 지식의 원천이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위탁하실 고상한 사명을 완수할 불학무식한 어부들에게 자격을 부여하실 수 있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진리에 대한 교훈을 위탁하신 사실은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저들은 온 세상을 움직여야만 하였다. 이처럼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당신 자신과 연결시키는 일이 예수님에게 매우 단순한 일처럼 보였을지는 모르나 그것은 놀라운 결과들을 자아낼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저들의 말과 저들의 업적은 온 세상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이 스스로 당신께 헌신할 때에 저들의 재능과 풍부한 애정과 더불어 저들을 받으실 것이다. 저들은 위대한 지력의 정상에 미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신앙적인 원칙으로 균형이 잡힌다면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오신 바 그 사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균형진 품성을 교정해 주는 덕성들을 배양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특권들을 누리고 있다. 513 저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워준 인간 대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위탁하신 재물에 대한 냥쭝, 일터 및 지능을 주신 까닭은 그것들을 더욱 지혜롭게 계발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신의 종들 자신이 알고 있는 능력과 재능들에 비례하여 나누어 주신 이러한 여러 가지 위탁물들은 각자의 사업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다.

은사들을 주신 분께서는 은사의 분량에 따라 보답을 기대하신다. 가장 비천한 은사일지라도 경멸히 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특이한 활동범위와 기능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들을 최선껏 활용하는 자는 기회들을 계발시킴으로 위탁된 자본에 비례되는 이자를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주님께서는 수고의 큰 분량을 따라 보상하시지 않으신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사업의 위대성보다도 그 사업에 기울인 충성심을 더욱 소중히 여기신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보상을 받는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계발시킬 때에 우리들은 지식과 식별력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식을 쌓는 일에 불굴의 노력을 보일 때 청년들은 이생에서 선을 위한 증가된 능력을 받게 될 것이며 고상한 업적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저희의 기회를 최선껏 활용한 자들은 저들이 이룬 업적을 가지고 내세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저들은 소멸되지 않는 것을 구하고 얻은 것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한”(고전 2:9) 영광들을 감상하는 능력은 저들이 이룬 업적에 비례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허영심과 쓰레기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우는 자들은 정신을 순결하게 하며 빈 마음을 지식과 순결과 진리를 쌓아 두는 보고로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은 세속적인 생각의 협소한 한계를 벗어나 계속적으로 광막한 무한대의 세계로 뻗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