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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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하늘 율법의 무아적 봉사
1편고상한 교육

4장 - 하늘 율법의 무아적 봉사

32 창조와 구속의 기초인 사랑은 참된 교육의 기초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이끄는 안내자로 주신 율법 가운데 이 점을 밝혀 놓으셨다. 첫째되고 가장 큰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막 12:30)다.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능력의 최고의 계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은 것으로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막 12:31)다.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과 우리 동료 인간들에 대한 봉사로써 몸과 마음과 영혼의 헌신을 요구한다. 이러한 봉사는 우리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서도 가장 큰 축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무아의 정신은 모든 참된 계발의 기초가 된다. 무아적인 봉사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기능은 최고로 세련된다.

이기주의의 결과

루스벨은 능력과 권위에 있어서 하늘에서 첫째가 되기를 바랬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였으며 천국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많은 천사들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었다. 사단이 그의 반역한 천사들과 더불어 추방당하였을 때에 반역과 이기주의에 대한 공작이 이 지상에서 계속되었다. 33 방종과 야심으로 이끄는 유혹을 통하여 사단은 우리 시조의 타락을 완성시켰으며 그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적인 야심과 이기적인 욕망의 방종을 충족시키는 일은 인류의 파멸을 증거할 뿐이었다.

하나님의 지도 밑에서 아담은 지상 가족의 수령(首領)으로서 천국 가족들의 원칙들을 굳세게 보존해야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평화와 행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단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롬 14:7)는 율법을 극력 반대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자기만을 위해서 살기를 바랬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감화의 중심으로 삼고자 노력하였다. 바로 이 정신이 천국에서 반역을 선동한 것이었고 이 원칙을 인간이 받아들일 때 이 지상에 죄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천국에서 규정한 중심적 사상에서 떨어져 나갔다. 마귀는 이 세상에서 중심세력이 되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던 곳에 사단은 자기의 보좌를 두었다. 온 세상은 원수의 발 앞에 엎드려 마치 자원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존경을 그에게 바쳤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범죄는 결과적으로 재난과 사망을 가져 왔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능력은 악용되었고 이기심은 사랑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허약하여져서 악의 세력을 저항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유혹자는 인간을 창조하신 거룩한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자신의 목적이 성취되어 이 지상에 불행과 슬픔이 가득 찬 것을 보게 되었다. 인간은 저들을 사로잡아 수레에 붙들어 맨 통치자를 선택하였다.

구제책

인간을 바라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절망적인 반역을 파악하셨고 그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하셨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화해를 위하여 세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34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인성을 취하시도록 택함을 입으셨으며 당신 자신의 모본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위대한 교육의 힘이 되게 하신 것이었다. 인류를 위한 그의 체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단의 능력을 거부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품성을 형성하고 정신력을 주며 참된 교육의 빛을 널리 비치게 하여 참된 생애의 목표를 놓치지 않게 하시려고 오셨다. 인간의 아들들은 악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가졌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저들에게 당신이 심으신 생명 나무를 보이시고 민족을 치유(治癒)케 하는 그 나무의 잎사귀들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이 지상에서 나타내 보이신 그리스도의 생애는 고상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인기를 얻거나 세속적인 편의를 도모하거나 모든 세속적인 결핍을 풍성히 채우는 것이 아니며 세상의 명예와 재물로써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셨다. 생명의 왕이신 주님께서는 빈곤의 불편을 참고 견디시므로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식별할 수 있었으니 그분이야말로 굶주린 허다한 무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신령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비록 대제사장의 호화스러운 두루마기를 입지 않으시고 이방인들의 풍성한 재물을 소유하지 않으셨으나 고통당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봉사하시기 위하여 이 지상에 오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온갖 이기심을 견책하신다. 주님께서 선한 사업을 위하여 두루 행하실 때에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특성과 당신의 봉사의 본질을 뚜렷하게 밝히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과학의 가장 깊은 진리들을 공개하여 보이실 수 있으셨다. 주님께서는 여러 세기 동안의 수고와 연구를 요하는 신비들을 펼쳐 보이실 수 있으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과학분야에 제안(提案)을 주어 역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유있는 사상적 양식과 발명에 대한 자극을 충분히 주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일을 행치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이기적인 야망을 자극시키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시지 않으셨다. 35 그분께서는 추상적인 이론들을 다루지 않으셨으나 품성의 계발의 필수적인 것과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인간의 능력을 확대시키며 선행을 위한 인간의 능력을 증가시키는 일에만 관여하셨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과 사업에 관한 인간적인 학설들을 연구하도록 사람들을 지시하는 대신에 당신의 사업과 말씀과 당신의 섭리 가운데 나타난 당신 자신을 바라보도록 저들에게 가르치셨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정신을 무한하신 분의 정신에 접촉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기심의 뿌리를 겨누어 때리는 원칙들을 공개하셨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교훈과 모본으로 보이신 것처럼 교육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은 무엇이 고상한 교육의 구성요소가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주님의 겸비의 생애와 수치스러운 죽음은 모든 영혼을 위한 구속의 댓가를 갚으셨다. 주님께서는 타락하고 죄악적인 인간을 높이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다. 우리들은 주님과 더불어 협력함으로 얻을 수 있는 이보다 더 고상한 교육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신다. “오늘 내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타락으로 고민하는 이 세상에 참된 교육에 따르는 축복을 나타내 보이라. 지치고 근심이 많으며 상심되고 당황하는 자들에게 모든 능력과 모든 생명과 모든 희망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라”. 교사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충성된 민병(民兵)들이 되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기 위하여 고상한 교육을 추구하라. 그대는 그 교육을 받으므로 오는 보상을 분명히 거두게 될 것이다. 그대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둘 때에 여호와의 이름은 그대를 통하여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

입술의 봉사나 공언(公言)뿐이 아닌 겸손하고 헌신적인 생애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36 교사들과 학생들은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헌신적인 생애를 산다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 품성의 기초인 거룩한 원칙들을 나타내는 생애가 어떤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도리와 뜻을 배우려고 자기 자신들을 바치는 자들은 유한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고상한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저들은 세상의 궤변 위에 저들의 체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원칙 위에 쌓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자신의 일상 연구과제로 삼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인 교육이란 마음의 생각이나 원칙적인 면에서 구세주의 교훈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방법으로 인간이 얻을 수 없는 하나의 능력을 인간에게 주실 수 있기 위하여 인간의 형체를 쓰시고 세상에 오실 것을 찬성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매일 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능력이었을까? 그 능력은 곧 그리스도의 교훈들을 받아서 문자 그대로 따르게 하는 힘이다.

악에 대한 주님의 저항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수고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고상한 교육의 모본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특별한 일을 행하시는 방법으로 저들에게 나타내셨으니 그 특별한 일이란 곧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들어와 행하실 수 있도록 오랫동안 호소하여 오신 일이다. 주로 학설과 이론에만 의존하는 많은 사람들은 구세주의 모본에서 보여준 산 능력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극기하시며 겸손하신 일꾼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매일 저들에게는 주님의 임재(臨在)에 대한 참신한 계시가 필요하다. 저들은 자아포기(自我抛棄)와 희생의 거룩한 모본을 밀접히 따를 필요가 있다.

3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기록하였을 때 바울이 체험한 바로 그 체험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품성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자체가 바로 고상한 교육인 것이다. 또한 이 지식이 하늘 도성의 성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옷입는 모든 자들이 이 지식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연구함으로 깨우침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식할 것이며 그는 자신의 재능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계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벧전 2:9)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안에서 자라면서 그는 자기 자신의 불완전성을 절실히 깨달을 것이며 자신의 실제적인 무지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정신력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배양하여 지성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지도를 받는 학생들은 저들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지식을 배우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 없이는 교육은 그 참된 슬기와 영광을 빼앗긴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황홀감을 맛본다는 것은 거룩한 진리를 심령에 적응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영혼을 순결케 하고 정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전적으로 바친 재능들은 거룩한 영의 지도를 따라 끊임 없이 조화를 이루면서 계발될 것이다. 헌신과 경건은 예수님과 당신의 제자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 그리스도인이 당신을 닮게 하신다. 38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인간의 연약하고 동요되는 품성은 강하고 확고부동한 상태로 변화될 것이다. 그는 확고한 원칙, 맑은 지각 및 믿음직하고 원만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빛과 지식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자기 자신의 선입관념에 의하여 공정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견해들이 넓혀질 것이며 그의 식별력은 전보다 더 예민하고 먼 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곧 하나님의 나타난 섭리에 대한 이해를 인간의 정신력이 미치는 한 품성 가운데 받아들일 때 유능한 인물들이 될 것이다.

지식이 힘이기는 하나 오직 참된 경건과 연합할 때에만 선을 위한 힘이 되는 것이다. 가장 고귀한 목적을 받들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지식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들은 참된 과학의 가치를 더욱 밝히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들은 모든 진리의 창작자(創作者)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가 가장 밝히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자야말로 지식을 최고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니 성령의 완전한 지배를 받게 될 때 저들의 모든 재능을 최대한도로 활용하게 된다.

61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들과 교사들이 해야 할 큰 일은 품성을 건설하는 일 곧 저들의 슬하에 있는 자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이다. 과학에 대한 지식은 이 큰 목적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모든 참된 교육은 다만 의로운 성품의 계발을 돕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품성의 형성은 일생 동안의 과업이며 영원토록 계속될 일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들 각자가 영생이나 영원한 멸망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의 운명과 우리 자녀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우리들의 집행유예 기간을 얼마나 다르게 보낼 것이며 우리들이 사는 세계에 고결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타날 것인가!

우리들 각자에게 심각히 물어보아야 할 질문은 내가 어느 기초 위에 품성을 건설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영생을 위하여 노력할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깊이 파서 모든 무용지물들을 제거해 버리고 튼튼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품성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중차대한 일이다. 62 주님은 확실한 기초이시다.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다.”(고전 3:11) 오직 그분 안에만 우리들의 구원이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행 4:12)이다.

견고한 기초가 놓여 있기는 하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설하는 방법을 아는 지혜이다. 모세가 광야에 성막을 지으려 할 때에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다.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히 8: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 가운데 우리들을 위하여 한 모형을 주셨다. 우리들의 품성 건설 역시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야 한다. 율법은 의에 대한 위대한 표준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며 그분의 정부에 대한 우리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난 모든 율법의 아름다움과 탁월성이 이미 우리들에게 계시되었다. … 품성 건설의 공사(工事)를 성공적으로 이룩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철두철미한 정신이 필요하다. 거장(巨匠) 예수님의 계획을 수행하려는 열렬한 목적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건축 자재는 반드시 견고한 것이라야만 한다. 건물을 파괴할 부주의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공정을 용납하지 말 것이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이 일에 열중하여야 한다. 품성 건설은 인격적인 능력과 활기를 요구하며 중요치 않은 일에 남은 힘과 기운을 낭비해서는 안될 것이다. … 세속적인 풍속, 처세술, 및 교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열렬하고 신중하며 끈질긴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깊은 사색, 열렬한 목적, 확고한 성실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

게으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생의 결과는 마침내 내세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므로 생애란 매우 중요한 것이며 거룩한 위탁물인 동시에 모든 순간을 현명하게 계발시켜야만 한다. 63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모든 가능한 선행을 행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분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재능은 최대한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의 영예와 영광 그리고 동료 인간의 복리를 위하여 그 재능들을 우리 손에 맡기셨다. … 주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이생에서 고귀한 허락들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1-4)고 말씀하신다.

견고한 반석되신 분 위에 그들의 사업의 기초를 놓고 살아 있는 말씀에 일치하도록 균형잡힌 품성을 형성하는 자들에게 지상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보다 더욱 값진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히 11:10) 준비하셨다. 그 성의 도로들은 정금으로 포장되었다. 그 성 안에는 하나님의 낙원이 있고 보좌에 근원을 둔 생명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길 한복판과 생명강 양쪽에는 매달 열매맺는 생명나무가 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

부모와 교사와 학생들이여, 그대들은 영원토록 품성 건설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들의 기초가 확실한지 살피고 든든히 건설하되 끈질긴 노력 뿐만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유혹의 태풍이 불어 닥치고 하나님의 진노의 파도가 세상을 온통 휩쓸지라도 그대의 집은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교육을 위한 특별한 증언 72-77).

140 예수님께서는 천연계와 일상생애의 통속적인 사건들을 인용하여 예화들과 비유들로써 가르치셨다. … 이런 방법으로 주님께서는 천연계의 사물들을 연상케 하여 영적 사물들을 생각하게 하셨으며 기록된 말씀의 숭고한 진리로써 천연계의 사물들을 청중들의 생활 체험에 연결하셨다. 그런 교훈을 받은 이후로 청중들은 주님께서 영원한 진리를 연상케 하신 실물들을 목격할 때마다 주님의 교훈들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가장 아름답고 감명적인 비유 가운데 하나는 씨뿌리는 자와 씨에 대한 비유이다.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6-28) … 이 비유를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친히 씨를 창조하셨고 그 씨에 살아 있는 특성을 주셨으며 그 씨를 자라게 하는 법칙을 제정하심으로 주님께서는 자연계와 영적 세계에 관련된 진리에 대하여 하나의 살아 있는 예화를 만드셨다.

이 비유가 가르친 진리는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서 하나의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식물로 예증한 하늘의 성장의 순서를 좇으셨던 바 그리스도는 모든 청소년들이 어떻게 자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주재이시며 영광의 왕이었지만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되어 얼마 동안은 어머니의 보호를 받는 무력한 아기로 나타나시게 되었다.

141 예수님께서는 유년 시절에 순종하는 아이의 할 일을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셨으며 아이의 능력에 따라서 부모들이 원하는 것을 유용한 방법으로 수행하셨고 어른의 지혜로써가 아니라 아이의 지혜로써 말하고 행동하셨다. 그러나 그의 성장의 매 단계에서 그는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죄없는 생애를 사심으로 온전하셨다.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에 대하여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의 청년시절에 대하여는 “예수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40, 52)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여기에 부모들과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제시되었다. … 부모들은 생애의 매 성장 단계마다 그 연령에 알맞는 자연미를 나타내며 정원의 식물처럼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청소년들의 취향(趣向)을 길러 주는 일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단순함의 아름다움

자연스럽고 소박한 어린이들은 매우 매력이 있다. 어린이들을 남의 눈에 특별히 띄게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저들의 용모나 언행을 칭찬함으로써 허영심을 조장시키지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값지고 사치스러운 모양으로 옷을 입혀서도 안 된다. 이런 것은 저들의 자만심을 북돋아 주고 저희 동무들의 마음에 시기심을 일으킨다. 참다운 단장은 외관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 4).

142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운 단순성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저들은 작고 요긴한 의무들과 나이에 어울리는 쾌락과 경험들로 만족하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 유아기는 비유 가운데 있는 싹에 해당되며 그 싹은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들은 억지로 조숙하게 키워서는 안되며 가급적 오랜 동안 유아시절의 신선함과 우아함을 간직하게 해야 한다.

마음의 밭

씨뿌리는 자와 씨의 비유는 깊은 영적 교훈을 의미한다. 종자는 마음 속에 뿌려진 원칙을 상징하며 그 성장은 품성의 향상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한 가르침을 실제로 응용하도록 하라. 어린이들은 밭을 마련하여 종자를 뿌릴 수 있으며 저들이 일할 때에 부모나 교사는 좋은 씨나 나쁜 씨가 뿌려진 마음 밭에 대하여 마치 밭이 천연의 종자를 위하여 준비되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도 진리의 씨를 위하여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 식물이 자라날 때에 천연적인 파종과 영적 파종 사이의 일치점이 계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저들의 나이에 알맞는 체험을 가짐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기대하시는 전부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신령한 사물에 대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부모들은 저들에게 모든 편의를 주어 저들로 그리스도의 품성을 꼭 닮은 품성을 형성하게 할 수 있다.

143 정신은 그 활동성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신은 언제나 선과 악에 대한 감화력에 개방되어 있다.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광택 있는 접시에 사람의 얼굴이 햇빛에 반사되어 비추이는 것처럼 어린이의 정신에 생각들과 인상들이 찍히게 된다. 이러한 인상들이 지상에 속한 세속적인 것이든, 도덕적이며 신앙적인 것이든 간에 이러한 인상들은 거의 지워버릴 수 없다. 이성(理性)이 일깨워질 때 정신은 가장 감수성이 강하게 되므로 제일 처음에 배운 교훈들은 매우 중대한 것이다. 처음에 받는 교훈들은 품성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그 교훈들이 올바른 특성에 속하는 것이며 어린이가 자랄 때 참을성 있는 끈기를 가지고 교훈을 따른다면 이생과 내세의 운명이 선하게 형성될 것이다. 16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143 그리하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고 하신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다.

부모들이여, 주님께 그대들의 자녀들을 바치고 저들이 주님께 속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양떼에 속한 어린 양이며 참된 목자의 보호를 받는 자들임을 항상 명심하게 하라. 한나가 주님께 사무엘을 바쳤으며 그에 대하여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 3:19)라고 기록되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이며 사사인 사무엘의 생애에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하나님과 협력하여 저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할 때에 자녀들에게 모든 가능성들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자녀들은 주님께서 주신 유업이며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저들이 피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으로서 부모들과 교사들에게 엄숙하고 거룩한 힘으로써 위탁하신 사업이다. 144 이 사업을 등한히 할 때 저들은 충성되지 못한 종들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씨가 일찍 마음 속에 뿌려져서 신중하게 가꾸어질 때에는 보상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비유의 말씀을 결론지어 말씀하셨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9). 지상의 수확이 끝나게 될 때, 우리들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니 우리가 수고하고 하늘 창고에 모아 들이기 위하여 기도해 준 자들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사 53:11)기게 될 때 주님의 즐거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교육에 관한 특별한 증언 67-72).

어머니가 하는 일은 자신들에게 흔히 중요하지 않은 봉사처럼 보인다. 그 일은 거의 인식을 받지 못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머니의 많은 할 일과 책임들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의 날들은 작은 의무의 순환으로 점령되고 있으며 이 모든 의무들은 참을성 있는 노력과 자제와 재치와 지혜와 희생적인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른 어떤 위대한 사업의 성취만큼 그가 행한 것에 대해서 자랑할 수 없다. 그는 다만 가정의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였을 뿐이다. 가끔 피곤하고 곤란을 당하여도 그는 자녀들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들로 바쁘고도 행복하게 하여 주며 그들의 작은 발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힘썼다.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고생으로 여윈 어머니를 지켜 보고 그가 날마다 지는 무거운 짐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비록 세상에서는 알려지지 않을지라도 어린 양의 생명책에는 기록된다.

178 예수님의 모본은 다 자란 청소년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빛이 되시는데 그분의 생애는 하나의 대표적인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초년기로부터 완전한 모본을 보이셨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로서 당신의 부모들과 자연계의 법칙에 순종하셨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눅 2:40)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청년들처럼 오락을 즐기는 일에 시간을 바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말씀에 익숙해질 때까지 성경을 연구하셨다. 유년기에 있어서도 주심의 생애와 모든 습관들이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셨으며 말씀을 인용하시는 일에 탁월성을 보이셨다. … 기록된 말씀 외에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피조물 가운데서 즐거움을 발견하시므로 자연계에 기록된 책을 연구하셨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갖가지 기쁨과 슬픔을 보시고 동정에 잠기셨다.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들, 비천하고 가난하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취하셨다.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인간 관계, 인간의 애정 및 자연계의 위대한 보화 속에서 당신의 예화들을 꾸며 내셨다. 알려진 사실로써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설명하셨고 사람들이 가장 익숙히 알고 있는 자연계와 세속적인 사물들을 통하여 거룩하고 신령한 진리들을 깨우치셨다. 이러한 예화들이 저들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었고 저들의 심령에 가장 깊은 감명을 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자연계의 가르침에 대하여 새로운 고찰을 하게 하였고 그 가르침들이 새로운 계기가 되게 하였다. 179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손으로 친히 만드신 사물들에 대하여 말씀하실 수 있었는데 그러한 사물들은 당신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낸 자질들과 공통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 성경의 거룩한 말씀에서처럼 자연계와 주님의 가르침 가운데도 거룩하고 중대한 진리들이 계시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자연계의 아름다움으로 엮어 놓은 진리들을 사람들 앞에 공개하셨다. … 예수님께서 해석하신 것처럼 꽃, 가시덤불, 뿌린 씨, 거둔 곡식 및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모두 진리의 교훈들을 내포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아름다운 백합화를 뽑아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손에 쥐어 주셨다. 하늘 아버지의 얼굴의 광채로 밝아진 당신 자신의 젊은 얼굴 모습을 저들이 바라보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단순한 자연미와 사랑스러운 모양으로 자라지 않는가! );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28-30).

그리스도께서는 대중을 가르치신 교사로서 어린이들을 시야에서 놓치신 적이 결코 없으셨다. 혼잡한 도시의 소동과 잡음으로 지치시고 교활하고 위선적 인간들과 접촉으로 피곤해지셨을 때 주님의 심령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과 사귐으로 안정과 화평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타나심으로 저들이 쫓겨나야 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주님의 넓으신 사랑의 심령은 어린이들의 시련과 필요를 헤아려 줄 수 있었고 저들의 단순한 기쁨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주님께서는 저들을 당신의 팔에 안으시고 축복해 주셨다.

180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더불어 접촉하게 된 이 어린이들 중에서 장차 당신의 은혜의 상속자들이 되고 당신의 왕국의 신하들이 되며 저들 중의 더러는 당신을 위해서 순교자들이 될 남녀들이 있음을 보셨다. 주님께서는 이 어린이들이 세상 일에 능란하고 무정한 많은 어른들 보다는 훨씬 쉽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을 저들의 구주로 받아들일 것을 아셨다. 주님께서는 가르치실 때에 저들의 수준으로 낮추셨다. 천국의 황제이신 주님이셨으나 어린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고 어린이들의 이해력에 알맞도록 당신의 중대한 교훈들을 단순하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날로 커지는 저들의 정신 속에 후년에 자라서 영생에 이를 열매를 맺을 진리의 씨를 심으셨다.

부모들과 교사들이여,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 19:14)고 말씀하고 계신다. 저들이야말로 기독교의 교훈들에 대해서 가장 감수성이 강한자들이며 저들의 심령은 순결과 미덕의 감화에 개방적이며 마음에 받아들인 감명을 독실하게 간직한다(교육에 관한 특별한 증언 62-66; 1896년 5월 17일).

청소년들의 정신과 심령을 계발시키며 남의 정신을 부당하게 제재함으로 성장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기지와 이해력이 필요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사들은 성품의 다른 면들을 지혜롭게 다룰 줄 알며 선행을 위한 기회를 재빠르게 포착하여 최선껏 활용할 줄 알고 열의가 있으며 “가르치는 소질”이 있고 사상을 고취시킬 줄 알며 활기를 띠게 하고 용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교사들이다.

253 베르링 스프링스에 있는 교사들에게:

나에게는 그대들이 매일 위대하신 교사에게 배웠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 다음에 학생들에게 나간다면 그대들은 매우 귀중한 사업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대들이 근면하고 겸손하다면 하나님께서는 매일 그대들에게 지식과 가르치기에 적합한 재능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신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그대들의 학생들을 돕고자 하는 신중하고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저들을 지식의 터전으로 인도하라. 그대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저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라. 교사들이 저희의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온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저들은 거칠고 오만한 교장의 정신을 지나치게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 21-23).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복음의 그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바라신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대들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하여는 망사가-성경의 적용-좁아야 하며 그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물을 당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중요한 대목을 바로 지적하라. 그대들이 하는 모든 설명은 자명하게 하라. 아무리 인간의 지식이 위대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254 깊은 감정으로 호소하는 그대들의 음성이 심령에 감명을 주도록 하라. 학생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굴복하도록 권고하라.

교사들이여, 주님께서 그대들의 능력이 되심을 기억하라. 학생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사상들을 주기 위하여 노력하라. 예화를 들어서 가르치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한번은 어린 소녀가 “오늘 오후에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실 분이예요?”라고 물어 왔다. 나는 “아니 나는 오늘 오후에는 설교하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에 소녀는 “미안해요 아주머니가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실 분으로 알고, 저는 내 친구들을 많이 오라고 했어요. … 아주머니께서 목사님에게 부탁하여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설교하시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겠어요? 우리들은 ‘의롭다 하심’ 혹은 ‘성화’라는 낱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목사님에게 말씀해 주세요. 우리들은 정말 이런 낱말의 뜻을 모르겠어요”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린 소녀의 불평 가운데는 모든 교사들과 목사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가치있는 교훈이 있다.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해 주세요”라는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이 많지 않을까?

그대들의 모든 설명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진리를 들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그대들의 언어를 다듬고 꾸미게 할 것이며 모든 찌꺼기를 떨어버리고 정결케 하라. 나이는 먹었을지라도 이해력에 있어서 어린 아이에 불과한 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어린 아이들처럼 말하라.

열렬한 기도와 부지런한 노력으로써 말하는 재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재능 가운데는 음조를 분명히 할 것과 음성의 억양과 강약을 조절하는 법이 포함되어 있다. 천천히 말하라. 255 많은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말함으로 그 말의 효과를 상실하고 있다. 그대들이 하려는 말 가운데 그리스도의 정신과 생애를 주입시키라.

한번은 유명한 배우인 벳텔톤이 영국 국교의 대주교(大主敎)인 쉘돈 박사와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대주교는 그에게 뜻하지 않은 질문을 하였다. “벳텔톤 씨, 배우들은 어떻게 상상적인 내용들을 가지고 청중들에게 그처럼 능력있는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때에 벳텔톤 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주교님, 말씀드리기는 황송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모든 것이 열정의 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배우들은 상상적인 일들을 가지고 마치 실제인 것처럼 열변을 토하지만 교직에 있는 분들은 실제적인 일들을 가지고 마치 상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것이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이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요 21:15, 16; 눅 22:32)고 하였다. 듣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다. 단순한 그대로 복음을 증거하라.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라. 그러면 그대들은 학생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1902년 7월 6일 캘리포니아주 위생병원.

우리 백성들은 세상이 일찌기 알지 못했던 가장 위대하신 교사에게서 지혜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갈 것인가 하는 분기점에서 지금 시험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교육 정책에 우리들이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을 결심하자.

294 건강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축복이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더욱 밀접하게 양심과 신앙에 관계되고 있다. 건강은 사람의 봉사할 수 있는 능력과 큰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품성과 같이 신성하게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건강이 완전할수록 하나님의 사업의 전진과 인류의 축복을 위한 우리의 노력도 더욱 완전하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에게 건강개혁의 법칙들을 가르쳐야 할 중대한 사업이 있다. 교사들은 먹고 마시며 입는 문제에 있어서 개혁적인 감화를 끼쳐야 하며 저희 학생들에게 극기와 자제의 습관을 기르도록 격려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저희에게 있는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모든 기능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건강에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고귀한 축복을 무시하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에 봉사하도록 저희에게 건강을 주셨으며 저희 체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내력이 강해지고 주님을 위하여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저희의 체력을 오용하거나 과용하는 대신에 당신의 목적에 쓰여지기 위하여 저들은 방심하지 않고 건강을 지켜야 할 것이다.

청소년기는 일생을 통해서 매일 실천해 나갈 수 있는 분야의 지식을 쌓아 둘 때다. 따라서 청소년기는 건전한 습관들을 기를 때이며 그릇된 습관들을 고치고 자제력을 길러 그 힘을 유지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다른 동료 인간의 복지에 관하여 모든 생활 양식을 정돈해 나가도록 스스로 습관을 붙여야 할 때이다. 295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는 이생과 내세의 수확을 결정할 파종기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형성된 습관들, 버릇된 기호들, 길러진 자제력 등은 그 사람의 장래를 결정하는데 있어 거의 절대적인 요소들이 된다.

건강을 보존하는 중요성을 성경 과목의 필수 조건으로서 가르쳐야만 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은 건강 법칙에 일치하는 생활을 요구한다.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과학적 지식 가운데는 생리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포함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물이라는 의무감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이상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를 완전히 이해 할 수 없다. 생명과 건강의 법칙에 대하여 무지 속에 묻혀 사는 자들이나 이러한 법칙들을 일부러 범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적하여 범죄하는 자들이다.

신체 운동에 사용한 시간은 낭비한 시간이 아니다. 끊임없이 책만 들여다 보면서 옥외 운동을 등한히 하는 학생은 스스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된다. 신체의 여러 기관과 기능에 알맞는 운동을 하는 것은 각 기관의 기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일이다. 계속적으로 두뇌를 혹사하면서 다른 기관들을 무위 상태에 버려 두는 것은 육체적 및 정신적 질병을 초래하는 것이 된다. 모든 체력은 건강을 빼앗기고 정신은 발랄함과 활기를 잃게 되어 결과적으로 병적인 흥분 속에 빠지게 된다.

남녀를 막론하고 균형이 잡힌 정신을 유지하려면 지, 덕, 체의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이를 발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는 일부의 기능만을 계발시키고 다른 방면의 기능들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편향적(偏向的)인 인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청년들의 교육은 실패하고 말았다. 저들은 지나치게 공부하면서 실제적인 생활에 관계되는 것들을 소홀히 한다. 296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육체적 노동의 현명한 제도가 정신적 활동과 연결됨으로써 모든 체력의 조화된 발달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체력이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하며 이런 일로 인해서 피로하게 된다 할지라도 저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피로하신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피로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피로감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로는 휴식을 더욱 달콤하게 해줄 뿐이다. 신체적인 힘을 쓸모있게 만들지 못하는 교육은 전혀 가치가 없는 교육임을 자꾸만 강조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는 입학할 때보다 더욱 튼튼한 건강과 생리법칙에 대한 더욱 많은 지식을 가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나친 공부

2년 동안에 마쳐야 할 학업을 1년 동안에 마치기를 원하는 학생은 자기 뜻대로 일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경우 두 배나 되는 학업을 시도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과로와 육체적 운동의 소홀함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과잉 공급의 정신적 양식을 다 흡수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며 소화기관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이 병을 초래하는 것처럼 정신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 역시 큰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유능한 일꾼들이 되고자 원하는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약 그대들이 뇌에 지나친 과로를 시키면서 항상 공부를 해야만 실패하지 않을 줄로 생각한다면 그대들은 즉시 견해를 바꾸고 그런 학습과정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보다 세심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너무 일찍 무덤에 내려갈 자들이 많게 될 것이다.

297 수면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하는 일을 아무렇게나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책을 보다가 대낮에 낮잠자는 습관을 길러서는 안 된다. 자기 집에서 이런 습관을 길러온 자들은 습관을 고치고 제 때에 취침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저들은 다음 날의 의무를 위하여 피로를 회복한 맑은 심신으로 아침에 일어날 것이다. 우리 학교들은 아홉 시 반이면 불을 꺼야 할 것이다.

음성의 계발

음성의 계발은 학생들의 건강과 깊은 관계를 가진 문제이다. 청소년들은 적당히 숨쉬는 법과 목과 폐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고 복부 근육의 조력을 받아서 할 수 있는 독서 방법을 배워야 한다. 목구멍에서 말하고 목소리를 발성 기관의 상부로부터 나오게 하는 것은 그 기관들을 손상시키고 효능을 저하시킨다. 복부근육은 발성의 가장 힘든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목구멍은 통로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만일 음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올바르게 배웠다면 오래 살 수 있었을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읽기와 말하기에 있어서 복부 근육의 올바른 사용은 발성기관과 흉곽의 각종 질환들을 고치는 치료제가 되며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식생활

음식물의 특성과 음식물을 먹는 방법 여하에 따라 건강은 큰 영향을 받는다. 많은 학생들은 식욕을 억제하며 먹는 습관에 따르는 올바른 법칙을 지키는데 있어 전혀 결정적인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식사 시간에 지나치게 먹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유혹이 따를 때마다 식간에 간식을 한다.

모든 학생들의 마음 속에 식생활에 관한 바른 습관을 가짐에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야 한다. 나는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육식을 제공하거나 건강을 해칠 음식물로 준비된 것들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 298 또한 식탁 위에 자극성을 갈망는 마음을 일으킬 음식물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건강을 해칠 음식물들을 먹는 일을 거부하도록 모든 학생들에게 호소하는 바이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저들은 희생적 정신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

건강 법칙을 준수하는 사람들은 신체의 요구와 소화의 법칙에 대하여 연구할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저들은 맑은 사고력과 강한 정신력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에 사람들은 위를 혹사함으로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망칠 가능성이 있다. 소화작용을 혼란시키는 음식물들은 마음의 섬세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한 음식물들은 피부를 어둡게 하고 거므스레하게 하며 정신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마음의 평화를 파괴한다. 건강을 해치는 모든 습관들은 정신에도 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건강한 몸과 정신적 건강을 확보하고 유지해 나가도록 교육하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써야 한다. 안정되고 조용한 신경과 건강한 혈액 순환은 사람들로 올바른 원칙들을 따르게 하고, 양심의 지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한다.

통풍과 위생

통풍과 위생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99 교사는 생리학과 위생학의 원칙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교실에서 실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사는 위생 법칙에 대한 무지와 소홀함으로 노출된 많은 위험에서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사들이 이런 일들에 부주의하므로써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온도의 급격한 변화를 피해야 한다. 학생들이 찬바람을 맞는 자리에 앉아서 덜덜 떨게 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사가 자기 기분에 따라 교실의 온도를 조종하는 일은 안전하지 못하다. 자기 자신의 유익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유익을 위하여서도 균일한 온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순종의 보상

뇌는 인체의 사령 탑이다. 그릇된 육체적 습관들은 뇌에 영향을 미치며 학생들이 바라는 건전한 정신적 단련을 저지한다. 청소년들이 신체적 보건과 정신위생에 대한 과학에 정통한 지식이 없는 한 저들은 성공적인 학생이 될 수 없다. 공부 자체가 정신력이 쇠약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정신쇠약의 중요한 원인은 부적당한 음식물, 불규칙적인 식사, 육체적 운동의 결핍 및 다른 면의 건강 법칙들에 관한 부주의 등이다. 우리들이 건강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후에 우리들의 노력을 축복해 달라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학생들이 소위 “고등교육” 과정의 이수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먹고 마시는 법을 배우고 가장 고상한 봉사의 생애를 살기에 알맞도록 뇌와 골격과 근육을 운동시키는 법을 배우게 하라. 학생이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것도 좋으나 자기 몸을 주관하는 법칙에 불순종할 때 그는 자신의 능률을 약화시킬 것이다. 300 그릇된 습관들을 버리지 않음으로 자존심과 자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신에 관련된 가장 심각한 문제들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다루는 일에 무모하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린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신체적 건강을 돌보는 의무는 우리들 각자의 책임이다. 주님께서는 각자가 날마다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기를 요구하신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원인과 결과를 추구하고 우리들이 당신의 소유임을 기억하며 신체를 정결하고 건강하게 보존하는 일과 당신께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일에 당신과 연합하도록 권고하신다.

청소년들은 저희의 생애를 저희가 원하는 대로 방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고귀한 은사들을 가볍게 취급하는 자들을 죄없는 자로 보시지 않으실 것이다. 인간은 능력, 재능, 재산 및 기회들을 더욱 많이 받은 자일수록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책임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인식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생애를 하나의 거룩한 위탁물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은 청소년들은 이 시대의 수 많은 유망한 청년들을 삼켜버리는 방탕의 소용돌이와 범죄 속에 빠져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질병이나 과로로 인하여 이미 체력이 허약해진 교사는 건강법칙에 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충분한 휴양을 취해야 한다. 교사는 자신의 건강이 과중한 연구의 압박을 이겨내기 힘들다고 판단될 때에 신체가 주는 경고에 주의하여 부담을 가볍게 해야 한다. 그는 학과를 가르치는 것 외에 다른 책임을 맡지 않도록 하여 신체와 정신의 과중한 부담에서 오는 신경조직의 불안정 상태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01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그런 교사는 지성을 다루는 일에 적합하지 못할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학생에게까지도 공정한 일을 할 수 없다.

때때로 교사는 자기 영혼을 에워쌌던 어두운 그늘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간다. 그는 지나친 과로로 신경과민 상태에 놓이게 되거나 아니면 소화불량증으로 자신의 주위 환경을 침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 교사는 떨리는 신경과 긴장 상태의 위를 가지고 교실에 들어선다. 그에게는 만사가 귀찮으며 자기 학생들이 선생에게 무례하게 행하는 것만 같으며 좌충우돌(左衝右突)식으로 예리한 비판과 날카로운 질책을 퍼붓는다. 가령 한 두 학생이 과오를 범하거나 규칙을 따르지 않을 때가 있다. 교사는 그 일을 크게 과장하여 생각하며 자기 생각에 과오를 범했다고 여겨지는 학생에게 가혹하고 날카로운 처벌을 내린다. 이처럼 부당한 처단을 반복하게 될 때 그는 자신의 그릇된 처사를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된다. 그는 선생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고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지도 모를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각 교사는 자기 몸을 육체적으로 완전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더럽혀짐이 없는 산 제물로 그리스도에게 바침으로 주님께서 영혼구원하는 사업에 그를 동역자로 쓰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336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신체에 활기를 추구하는 한편 우리들의 모든 힘을 항상 최선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취하는 휴양으로 부여된 모든 의무들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고, 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유익한 감화를 끼치기에 합당한 방법으로 휴양을 계획하고 또한 그렇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새로운 정신과 원기를 회복한 몸으로 휴양지를 떠나 집에 돌아와서 더 좋은 희망과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일에 착수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매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사는 것을 우리들의 특권으로 여기고 순전히 우리들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오락을 추구하는 생애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믿는 무리들이다. 우리들은 인류 사회에 유익을 주고 축복이 되기 위하여 살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헛되고 어리석은 것들만을 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쏟는 헛된 길로 우리들의 마음을 쏠리게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우리 동족들과 이 세대에 유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주위에 있는 사회에 대하여 축복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평범한 의무들을 더욱 성실히 이행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오락이든지 무턱대고 즐길 수는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휴양을 즐기는 것과 쾌락과 오락만을 위주로 한 세속적인 모임과의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기도와 그리스도 및 거룩한 사물들에 대하여 말하는 대신에 세속적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어리석은 웃음과 경박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저들의 목적은 대체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있다. 337 저들의 오락은 어리석게 시작하여 헛되게 끝마친다.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에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죄책이 없는 양심과 우리와 사귄 자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도 상처를 주거나 해로운 감화를 끼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우리들은 회합을 경영하고 우리 자신이 그렇게 처신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본성은 쾌락과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편만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술책이다. 사람들이 “나의 신령적 상태는 어떠한가?”라고 스스로 물어볼 시간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 속을 세속적 오락에 대한 욕망으로 채워 주려고 힘쓴다.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염된다. 이에 굴복할 때에 마음은 언제나 계속하여 또 다른 오락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때에 우리는 이러한 성벽을 막고 경건치 못한 것을 방어하는 장벽을 쌓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저들이 향유하는 모든 특권, 시간의 이용, 저들의 재능의 올바른 사용 등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저들은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오락도 휴양도 없는 것인가? 아무런 변화 없이 일하고 또 일할 것인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그대들이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서 참석할 수 있는 오락이라면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로 조용한 기도를 드릴 수 없게 하거나 기도의 제단에 헌신할 수 없게 하는 것 또는 기도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떤 오락이라도 안전하지 못하고 위험한 것들이다.

401 우리들은 세상에서 현재 널리 행해지고 있는 교육의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의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는 경고를 거듭 받았다. 교육의 문제는 모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관심을 이끌어야 할 문제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모르는 교사들의 권고나 지도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정신을 도야하고 형성하는 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측정하는 생애를 위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교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없는 저술가들의 감정에 매력을 느껴왔다. 내게 보여 주신 계시 가운데서 나는 한 손에 이런 책을 들고 그것이 마치 교육 부문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인양 우리 교사들에게 추천하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 거룩하신 한 분이 전혀 성격이 다른 책들을 손에 들고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불신자의 저서를 추천한 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대가 말한 충고는 사단이 그의 궤변을 우리 학교에 침투시킬 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이런 책들 속에는 그대들의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될 내용들이 있다. 인간의 정신은 불신으로 인도하는 학문에 쉽사리 매혹당한다. 이런 책들을 읽음으로 학생들의 정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게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교훈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영생이 되는 것이다. 이런 책들은 가장 위대하신 교사의 학생들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있는 어떤 학교에도 침투해서는 안 된다.”

402 그분께서는 엄숙한 음성으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이 저서들 중에서 참된 교육을 받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발견하였는가? 그대들은 이런 책들의 참된 특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학생들에게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감히 추천할 수 있는가? 그릇된 사고방식을 일단 받아들이면 마치 강철의 힘으로 붙드는 것처럼 정신을 단단히 졸라매는 횡포력으로 변해 버린다. 만일 이런 책들을 받아들이고 읽은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그런 책들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그 대신에 거룩하신 교사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인간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말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에 대한 지식에 저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진보하였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수천 수만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금하신 지식 곧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곳으로 인도하였다. 그런 책들이 가르치는 교훈들로 말미암아 학생들은 주님의 말씀에서 떠나 꾸며낸 이야기들을 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전해야 할 말을 지시 받았는데 지식을 탐구하는 그대들의 생활에서 세상이 세운 표준보다 더욱 높이 향상하라. 예수께서 인도하시는 곳에 따라가라. 또한 나는 교사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이 인간의 심령과 정신에 불신의 씨앗을 심게 되지 않을까 조심하라. 육신과 정신의 온갖 더러움에서 그대 자신을 정결케 하라. 그리스도의 속성 가운데 나타난 최고의 영광은 그분의 거룩하심에 있다. 천사들도 주님 앞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자세를 굽히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계 4:8)라고 외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하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과 간구로 주님을 찾을 때 그대들은 주님과 같이 변하게 될 것이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그리스도를 저희 모본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 학교의 교육 수준은 낮아질 것이다. 403 교사들은 저들이 해야 할 일이 교과서에 포함된 지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도 훨씬 고상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자아 훈련의 과정은 학생들로 거룩하신 분의 품성을 닮도록 교육하는데 있다. 자아란 좀체로 죽지 않는다. 그러나 교사들이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받게 될 때에 저들은 교육 사업의 참된 목적을 식별하게 될 것이며 주님의 발전 계획에 일치되는 훈련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개혁사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교사들이여, 그대가 하는 모든 말 가운데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선한 성질의 것이 아닌 것들을 모두 추려서 제거하라. 학생들 앞에는 오직 긴요한 내용의 것들만을 제시하라. 의사, 목사 및 교사들은 자기의 이론을 너무나 장황하게 늘어 놓아 전체의 요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말을 길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식의 교육은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한다. 만약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면 학생들의 정신은 혼잡한 언어의 수렁에 빠져서 한 마디의 말도 건져내지 못할 것이다. 요점을 지적해서 간단명료하게 말하라. 부드럽고 순결하게 정신을 보존하여 하늘의 첫째되는 계명 곧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하신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다. 청소년들을 훈련시키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많은 사실들을 언급하지 않은 채 버려두고 다만 학생들로 영생을 얻도록 순종해야 할 원칙들의 중요성을 가르칠 때에 참된 개혁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438 하늘 아버지와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하늘 총회에서 인간의 구원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신 것들이 분명하게 성경에 제시되었다. 구원에 대한 무한한 진리들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진리를 알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거룩한 계시들은 인간에게 의를 교훈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므로 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저희 동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으며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유혹을 대항할 수 있는 최선의 방패는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저들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 인류에게 성실한 봉사를 하는 방법, 즐거이 의무를 수행하며 매일 당하는 시련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 및 용감하게 생애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위대한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정신을 세속적인 사물에 대한 집념에서 떠나게 하여 하늘에 속한 사물들에 대하여 가르치시려고 애쓰셨다. 만약 예수님 당시의 교사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으려 하고 세상에 진리의 씨를 뿌리는 일에 주님과 연합했더라면 세상은 오늘날의 상태와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구세주의 대열에 합세하였다면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은 저들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을 회복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참된 지식의 근원에서 돌아섰다. 439 저들은 다만 저희의 유전을 지지하고 인간이 꾸며놓은 관습을 강경히 주장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였다. 저들은 엉뚱한 해석으로 하나님께서 전혀 뜻하시지 않은 취지들을 표명하였다. 저들의 불가사의적(不可思議的)인 해석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해 놓으신 것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저들은 전문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논쟁하였으며 가장 중대한 진리는 부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능력을 빼앗겼으며 악한 영들이 저희들의 의지를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산상보훈은 위대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너무나 단순하여 어린 아이까지라도 오해하지 않고 배울 수 있게 하였다. 팔복을 교훈하신 산은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서 계셨던 영적 수준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말씀하신 것이며 주님께서는 천국의 권위를 가지시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교훈 가운데는 인간의 고상한 포부와 가장 탁월한 연구로도 비교되지 않는 고결하고 심원한 진리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는 두려운 멸망에 대해서 민감하셨으며 당신 자신의 의로써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소망에 대한 절대적인 보장과 완전한 위안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무시되고 교육사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차적인 위치로 밀려나게 됨으로써 불신이 판을 치고 악이 횡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사들의 정신 가운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은 과목들 가운데는 진리의 모양만을 갖춘 허다한 관습적인 교훈들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인간적인 교육의 효력은 진리에서 찾을 수 없으며 근거없는 주장에 있다. 현대의 교사들은 다만 선배 교사들의 능력을 활용할 뿐이며 가장 위대한 인간들의 저서들 가운데서 모든 중대한 지식들을 배운다 하여도 근본적인 위대한 원칙이 되시며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분을 더듬어 찾을 수 없다는 무능을 의식하게 된다. 440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보증을 지속적으로 탐구함에 있어서 괴로운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나팔 소리가 날는지는 모르나 그 소리는 분명치 못한 소리이며 믿음직하지 못하고 그런 소리로서는 영혼들의 구원이 보장될 수 없다.

세속적인 지식을 탐구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보물을 얻는 줄로 생각하며 성경을 한편으로 제쳐놓고 성경 가운데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가장 가치있는 보화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성경의 교훈에 불순종하므로 이 세상에 혼란이 이르게 되었다. 인간들은 큰 반역자이며 흑암의 왕인 사단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보호를 저버렸다. 이상한 불이 거룩한 불과 혼합되었다. 정욕과 야심을 위해서 섬기는 모든 것들이 누적되어 이 세상에는 하늘의 심판이 이르게 되었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이 없이 저희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저들은 하늘들과 땅에 관한 저희의 철학을 멋대로 발표하며 저들 자신의 추상적인 과학적 이론을 통해서 재앙, 흑사병, 전염병, 지진 및 기근을 설명하고 있다. 창조와 천연계의 섭리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될 때에 저들은 천연계의 법칙에 의존해서 어떤 해답을 얻으려고 한다.

순종으로 얻는 지식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광대한 지식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441 만약 인간이 순종하였더라면 하늘 정부의 계획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모습, 언어 및 노래에 있어서 인간은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탁월한 존재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구원의 신비,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의 대속하시는 희생 등에 대한 신령한 진리는 저들에게 막연하고 모호한 문제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성경의 연구를 통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더욱 밝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전체적으로 고상하게 인식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는 것이 정신적인 허약과 무능의 커다란 원인이 된다. 영감을 받지 못한 인간들의 저서를 읽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을 때 인간의 정신은 위축되고 무가치한 것이 된다. 그러한 정신은 심오하고 광범위하며 영원한 진리의 원칙들과 접촉할 수 없게 한다. 이해력은 일반적인 사물들에 대한 납득에만 순응하므로 유한한 사물에 대해서는 이해력이 작용할 때 정신은 약화되고 그 힘이 수축되며 얼마 후에는 그 정신을 전혀 발달시킬 수 없게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거짓된 교육이다. 청소년들의 정신을 영감으로 된 위대한 진리의 말씀에 집착시키는 것이 모든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생과 내세를 위해서 가장 긴요한 교육이다.

성경에 대한 연구가 과학 분야의 연구를 저지시키거나 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하늘처럼 높고 우주처럼 광범위하다. 우리들의 영생에 관련된 중요한 주재에 대한 연구만큼 고상하며 고무적인 연구가 없다. 청소년들로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들을 이해하도록 힘쓰게 할 때에 저들의 정신은 발달할 것이며 능력이 강화될 것이다. 성경 연구는 말씀을 실천하는 모든 학생들을 광활한 사상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며 소멸되지 않는 부요한 지식을 얻게 할 것이다.

442 지금 세상을 얽매는 무지는 성경 연구를 등한히 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의무적인 요구에 대하여 전혀 알고 있지 못한 데서 온 결과이다. 정신을 잃게 하거나 혹사시킴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안내서인 성경을 가장 위대한 책으로 생각지 않게 하며 죄인이 범죄의 길에서 떠나 순종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이 오랫동안 연구한 계획이다.

왜 우리 청소년들과 나이 먹은 어른들까지라도 쉽사리 유혹에 이끌리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말씀을 명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을 매일 연구하였다면 정직한 마음의 자세와 올바른 정신으로 원수의 유혹을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무시하는 까닭으로 악에서 돌이키려는 확고하고 결정적인 노력이 생애 가운데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순결하고 거룩한 사상으로 마음을 채우며 불순결하고 참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거룩한 교사에게서 교훈을 배우기 위하여 마리아가 한 것처럼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선한 편을 택하려는 결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권고자로 삼고 빛을 탐구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할 때 하늘 천사들은 마음에 감화를 주고 이해력을 깨우치려고 가까이 와서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상태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공언하는 청소년들 가운데에 하늘로 향한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룩한 권고의 말씀들을 귀담아 듣지 않으며 신령한 권면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 443 부패케 하는 생애의 모든 오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은혜와 하늘의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

금단(禁斷)의 통로

만약 청소년들의 정신을 올바로 지도하였다면 저들의 대화는 고상한 주제(主題)를 다루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정신이 순결하게 되고 사상이 고결하게 될 때에 말씀은 마치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 25:11)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해력과 현재의 생활습관 및 그리스도인들이 만족하게 여기고 있는 낮은 수준에서 대화의 내용은 저속하고 무익한 것뿐이다. 현상태는 저속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도로서 이 세상의 교양층에 있는 사람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천국이 명상의 주제가 된다면 대화의 내용은 그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언어는 품위있게 길들여질 것이며 말하는 자는 거룩한 교사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왔다는 것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우리들은 성경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는 영원한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로 여겨야 하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대한 사실들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마치 연구가 끝난 책처럼 도외시하고 있으나 천년 동안 연구해도 다 깨달을 수 없는 숨은 보화들이 아직 그 가운데 있다. 오직 영원한 시대를 통해서 이 책의 지혜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인간 저자들의 작품들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도 될 것인가? 참 지식의 대용물을 갈망하는 동경심은 도저히 저들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지 못하는 것인데도 결코 갈급해서는 안될 것을 열망하고 있다. 444 인간의 주장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될 때 그것들을 진리로 여기지 말라.

모든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천지의 창조주는 최고의 존재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소위 위대한 학자들이라고 하여 저들의 저서들을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으며 저들의 이론이 용납되고 영광을 받고 있다. 그런 서적들을 연구함으로 사람들은 금단의 통로로 이끌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불순종함으로 얻은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불필요한 수고로 극도로 지치게 되었다.

오늘날 청년 남녀들은 마지막 날의 대화염 속에서 불타 없어질 나무나 덤불과도 같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육에 아무런 가치를 인정하시지 않으신다. 많은 학생들은 저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 경의와 존대로 대했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난다.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성적을 얻으려는 노력 때문에 저들의 신앙심은 빛을 잃게 되었다. 성경은 저들의 교육에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다만 불신사상으로 오염되고 근거가 없는 학설로 보급된 서적들만이 저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모든 불필요한 재료들은 학과에서 추려내야 하며 오직 학생들에게 가치있는 것만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진정한 가치가 있는 연구에 정진할 필요가 있으며 저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측정되는 생애를 누리게 될 것이다. 445 구원의 대주제를 생각하는 일에 정신이 몰두될 때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수준이 점차로 향상될 것이며 저속하고 하찮은 문제들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예 화

무엇 때문에 침례 요한이 위대하게 되었을까? 그는 유대 나라 교사들이 가르치는 전체적인 유전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하늘이 주시는 지혜만을 받아들였다. 그가 탄생하기 이전에 성령께서는 요한에 대하여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5-17)는 말씀으로 증거하셨다.

사가랴는 요한에 대하여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6-79) 라고 예언하였다. 누가는 이 말씀에 이어서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눅 1:80)고 기록하였다.

광야의 엄격한 훈련을 받기 위하여 도시 생활의 향락과 사치를 버린 것은 요한 자신의 선택이었다. 446 광야의 생활은 단순성과 자제력에 대한 습관을 기르는데 유리한 환경이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차단된 환경에서 그는 천연계, 계시 및 신의 섭리에 대한 교훈을 연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한의 부모들은 사가랴에게 하신 천사의 말씀을 종종 반복해서 말해 주었다. 유년기로부터 그는 항상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거룩한 책임을 수락하였다. 사막의 고독한 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의혹, 불신 및 불순결이 편만한 사회에서 도피할 수 있는 안성마춤의 생활이었다. 요한은 유혹을 저항하는 자기 자신의 힘을 불신하였으며 죄와의 끊임없는 접촉을 피하였는데 만약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엄청난 죄악상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생애는 태만으로 소일한 게으른 자의 생활이 아니었으며 금욕(禁慾)주의적인 침울한 감정이나 이기적인 고립생활도 아니었다. 그는 종종 사람들 사이에 섞였으며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였다. 그는 조용한 은둔 생활에서 사건들이 전개되는 형편을 주의하여 살펴 보았다. 그는 거룩한 영의 계시를 통해서 천국 기별을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품성을 연구하였다.

시므온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기록 가운데 보면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29-32, 52)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과 요한은 그 당시의 교육자들에 의해서 무식한 자들로 인정되었는데 그 까닭은 저들이 랍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까닭이었다. 447 저들의 교사는 하늘의 하나님이었으며 저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저들의 성경에 대한 지식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모든 교육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교훈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일상 생활에서 이 지식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인간적인 해석만을 통해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그릇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배우는 것은 곧 천국의 학문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음으로 교육에 혼란을 초래하였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무엇보다도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18, 19, 25, 30, 31).

말씀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성령의 빛이 말씀 위에 비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물들을 깨달을 수 있어야만 한다. … 인간의 말들이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딤후 3:17) 할 수 없다.

509 그리스도인 사역자들 가운데는 사정상 여의치 못하여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저들을 택하셨고 당신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도록 저들을 임명하셨다는 증거를 주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을 당신과 함께 일하는 유력한 동역자로 만드셨다. 저들은 배우고자 하는 정신이 있었으며 하나님을 굳건히 의지하였고 성령께서는 저들의 약점들을 보충해 주시기 위하여 저들과 함께 하셨다. 성령께서는 정신을 일깨워 주며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시고 사상을 지도하시며 진리를 증거하는 일에 조력하신다.

일꾼이 백성들 앞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려고 할 때에 자기 음성 가운데 그리스도의 음성이 메아리치게 된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예수님을 만나 보았으며 주님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 된다. 그는 영혼의 내적인 성전에 진리를 들여 놓았으며 진리는 그에게 하나의 살아 있는 실체가 되고 성령과 능력의 시위(示威)로서 진리를 증거하게 된다. 사람들은 즐거운 소리를 듣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헌신한 인물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신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높일 때에 그는 실제로 웅변가가 된다. 그는 열렬하고 성실하게 되며 자기가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람을 비판하며 틀린 문법이나 정확지 못한 발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모순들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희가 하는 말을 듣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의 죄가 얼마나 클 것인가! … 철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역자는 때때로 문법이나 발음에 실수를 범할 것이다. 510 아마도 그는 가장 웅변적인 표현이나 가장 아름다운 은유법을 사용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이 생명의 떡을 먹고 생명의 샘물을 마셨다면 그는 굶주린 영혼들을 먹일 수 있고 목마른 영혼에게 생명수를 줄 수 있다. 그의 결함들은 용납될 것이며 잊혀질 것이다. 그의 청중들은 지루하거나 싫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께 당신의 종을 통하여 은혜의 기별을 보내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사역자들의 자아계발

만약 사역자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능력과 하늘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의 교사가 될 것이며 그는 자신의 결함들을 정복하게 되고 더욱 더욱 하나님의 사물에 대하여 총명하여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점을 미끼로 하여 태만하고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며 유능한 일꾼이 되는 데 필요한 훈련을 등한히 함으로 방종의 길을 택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지식을 얻을 기회들을 충분히 가지고서도 저들에게 부여된 모든 특권들을 향상시키는 데 게을리한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은 자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성경통독을 더욱 많이 하고 다른 학문도 더 열심히 공부하여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큰 소망과 사업을 가진 까닭이다.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와 밀접히 연결될수록 영적으로는 물론 지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배우지 않으면 안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그러므로 모든 참된 사역자는 이 지식을 얻기 위하여 항상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