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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장-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49장 -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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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저희가 저희의 이웃을 사랑하는지 그 여부를 보일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곤핍하고 고통을 당하며 상처를 입은 자들, 빈사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그 등한히 한 일을 보상하고 창조주의 도덕적 형상을 인류 안에 회복시키고자 힘쓰라고 요구하신다. ― WM, 49.

다른 사람을 위한 이 사업은 노력과 자기 부정과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선물로 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바치신 희생에 비교하면 우리가 바칠 수 있는 희생은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 ― 6T, 283.

우리 구주께서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영생을 기업으로 받을 조건들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상처를 입고 강도를 만난 사람(눅 10:30-37)은 우리의 관심과 동정과 자선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표상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눈을 끄는 곤핍한 자들과 불행한 자들의 사정을 무시한다면 저들이 어떤 사람일 지라도 이에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영생의 보증이 없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응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친척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동정적이거나 인정을 표시하지 아니한다. 그대들은 마지막 여섯 계명이 들어 있는 둘째로 큰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누구든지 계명 중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하는 것이다. 곤핍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아니하는 자들은 율법의 처음 네 계명에 말씀된 하나님의 요구에 저희의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우상이 마음과 애정을 차지할 것을 주장하고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시거나 지상(至上)으로서 통치를 하지도 않으신다. ― 3T, 524.

자비와 동정과 의를 무시하는 자, 불쌍한 자들을 등한히 하는 자,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묵살하는 자, 불친절하고 예모없는 자는 그렇게 처신함으로 하나님께서 품성 계발에 저와 더불어 협력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이 철필을 가지고 바위 위에 쓴 것처럼 양심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과 정신의 함양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온유한 동정을 느낌으로 저희의 필요를 구제하기 위하여 우리의 은혜와 특전을 부여할 때에 한층 더 쉽사리 성취된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고 이를 간직하는 것은 영혼의 빈곤을 초래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신 노선을 따라 일하면서 저들에게 행하라고 임명하신 바로 그 사업을 행하는 자들은 곧 그리스도의 모든 속성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 6T, 262.

구주께서는 신분과 계급, 세상의 명예와 재물을 무시하신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품성과 목적을 위한 헌신이다. 284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와 세상의 고임을 받는 자들의 편을 드시는 것이 아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자들을 일으키시기 위하여 몸을 굽히신다. 그는 서원과 보증의 말씀으로써 잃어버리고 멸망하는 영혼을 당신에게로 인도하시려고 힘쓰신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중 누가 부드러운 연민의 정과 동정을 발휘할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지켜 보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누가 과연 예수의 사랑을 나타낼 것인가를 알아 보기 위하여 지켜보고 있다. ― 6T, 268.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자비심을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그대의 명랑한 표정, 희망을 주는 말, 그대의 손의 포옹을 요구하신다. 그대가 고통받는 주의 자녀들을 방문할 때에는 희망을 버린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에게 다시 햇빛이 비치게 하여 주어라. 저들 중에는 생명의 떡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어라. 어떤 사람에게는 지상의 어떤 위안물로도 움직일 수 없고 어떤 의사라도 치유할 수 없는 영혼의 질병이 있다. 이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들을 예수에게로 인도하라. ― 6T, 277.

교회내의 불쌍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

항상 우리 변두리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는 바 곧 자신의 독립적인 행동으로써 스스로 멸망하게 하여 범죄를 계속하는 자들과 진리를 인하여 궁핍에 빠진자들의 두 부류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우리는 건전한 지혜의 지도와 권면을 받아서 옳은 일을 행하게 될 것이다.

가난한 주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삼을 것이 없다. 저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면 모든 경우에 저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저들로 멸망하도록 버려 두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주기를 원하신다. 진리를 인하여 저희 집에서 내쫓기고 부득불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돕기 위하여 특별히 수고해야 한다. 마음이 크고 열려 있는 관후한 사람들, 즉 자신을 부정하고 주께서 사랑하시는 이런 사람들의 사정을 돌봐 줄 사람들이 점점 더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가난한 자들이 저들의 곤핍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아니한 채 버려두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저들이 생계를 세울 수 있는 어떤 길을 찾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하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심한 일을 하고 저희 최대의 능력을 다해서도 저희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원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자들의 사정에 관심을 가지고 저들에게 직업을 얻어 주기 위하여 도와 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이런 훌륭한, 그러나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하여 자금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이 주위 환경으로 말미암아 가난하여진다. 어떤 사람들은 신중하지 아니하다. 즉 저들은 처리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질병과 재난으로 말미암아 가난하여졌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저들은 곤란을 당하고 있으니 저들을 돕는 것이 선교 사업의 중요한 분야이다.

교회가 세워진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 교인들이 곤핍한 신자들을 위하여 신실한 사업을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저들은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저들은 또 그 신앙에 구애됨이 없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들중의 어떤 이는 이 시기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 6T, 269-271.

궁핍한 자들을 도와 주는 방법

285 궁핍한 자를 도와 주는 방법은 신중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야 하는 바 이는 그가 만드신 피조물을 돌보는 방법을 근시안적인 인간들보다 더 잘 아시기 때문이다. 도움을 청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분간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저들은 이 일에 과오를 범하고 있다. 궁핍한 자를 도와 주고자 힘쓸 때에 우리는 저들에게 정당한 도움을 주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도움을 받으면 저희 자신을 계속해서 특별한 궁핍의 대상자가 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저들은 무엇이든지 의지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을 보는 한 이에 의뢰할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지나친 시간과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우리는 나태와 무력과 방종과 부절제를 장려하게 될 것이다.

궁핍한 자들을 도와줄 때에는 우리는 “내가 낭비를 조장시키고 있는가? 내가 그들을 과연 돕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스스로 생계를 세울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뢰할 하등의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식별력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인 하나님의 남녀들은 불쌍한 자와 궁핍한 자들을 돕되 믿음의 가정을 먼저 돌보도록 지시를 받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보고하여 무엇을 행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상의해야 한다. ― 6T, 277, 278.

하나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이,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모든 가난한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목사들은 자금의 고갈로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근면과 검약의 부족으로 가난하게 산다. 그들은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만일 그들이 도움을 받을 것 같으면 그들은 오히려 손해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가난할 것이다. 그들이 최선의 유익을 얻으려면, 그들의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올바른 계획을 세우지 않음으로 적든 많든간에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물을 다 사용해 버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기별을 받아들일 때, 그들은 그들보다 부한 형제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만일 그들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고, 형제들이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경우에 누가 어려움을 당해야 할 것인가? 이 많은 가난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활기를 잃고, 여러곳에 있는 재원이 고갈되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안식일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는 그 전에 당한 것보다 더 큰 어떤 결핍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교회증언 1권, 296, 29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가난한 자들이 모든 교회의 주위에 있도록 허락하신다. 저들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모든 교회의 교인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줄 개인적인 책임을 지우신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 경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대해서 우리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입장에 계시다면 그리스도께서 응당 보이셨을 그와 같은 사랑과 동정을 나타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노선을 따라 일할 준비가 되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한다. ― 6T, 272.

고아들을 돌봄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곤란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과부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우리의 부드러운 동정심에 가장 강력한 요구를 하고 있다. 286 저들은 주님께서 특별히 염려하시는 대상자들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바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믿음 안에서 죽은 많은 아버지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허락들을 의지하면서 주께서 저희 사랑하는 자녀들을 돌보아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중에 저들을 남겨 두고 갔다. 그러면 주께서는 이 유자녀들을 위하여 무슨 대책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보내주심으로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저들에게 양식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까마귀를 보내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이적을 행하신다. 즉 사람의 마음에서 이기심을 쫓으시고 자선의 샘물을 열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당하는 자와 부모를 사별한 자들을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부드러운 자비심에 위탁함으로써 당신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자들은 이런 아이들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저희의 마음과 가정을 열어야 할 것이다. 큰 기관에서 고아들을 간호하는 것은 최선의 계획은 못된다. 만일 저들을 부양할 수 있는 인척이 저들에게 없으면 우리 교인들이 저희 가정에 이 어린아이들을 양자로 맞아들이거나 다른 가정 중에서 저들에게 적당한 가정을 찾아 주어야 한다. 이 아이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시는 바 저들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행하여진 모든 친절한 행위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행하여진 것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 6T,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