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보내는 권면

본문보기

48장-청지기 직분에 관한 권면

48장 - 청지기 직분에 관한 권면

주제제목없음

272 관후한 정신은 곧 하늘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은 십자가상에서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주시고 드디어는 자신까지 바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스러운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박애심에 호소하고 있다. 거기에 실증된 원칙은 곧 주라, 주라는 이것이다. 실제적인 박애와 선행으로 수행될 때에 이것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참된 열매가 된다. 세상 사람들의 원칙은 얻자, 얻자는 이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들은 행복을 얻기를 기대하나 각 방면으로 힘을 쓴 후에 얻는 열매는 불행과 죽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치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책망하고 관후와 박애를 격려한다. 주라는 요구가 증가하는 것이 슬픈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당신의 백성들을 그 제한된 활동 범위에서 불러 내셔서 보다 큰 사업에 착수하라고 하신다. 도덕적인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현 시기에 있어서 무제한의 수고가 요청된다.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속과 탐심의 함정에 빠질 위험 속에 있다. 저들은 저희의 재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증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선심을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대상들이 저들 앞에 놓여져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저들은 위대한 모본이 되신 분의 성품을 본뜰 수 없다.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분부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지식을 넓히는 사업을 사람들에게 배당하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가 있는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지상의 당신의 사업을 유지하는 연보에 대한 요청에 응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수중에 재물을 맡기신 것은 우리에게 명하신 바 동료 인간들을 구원하는 사업을 행하는 중에 인간적인 통로를 통하여 그가 주신 하늘의 선물이 흘러 넘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높이는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사업이니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의 가장 깊은 동정심을 일깨워서 최고의 지능을 행사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9T, 254, 255.

정당하게 지도를 받은 자선심은 사람의 정신적, 도덕적 정력을 끌어당겨서 곤고한 자들을 축복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는 일에 매우 건전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 ― 3T, 401.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를 돕거나 혹은 진리를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돕는 모든 기회는 안전한 보관을 위하여 하늘 은행에 그대가 미리 보내어 공탁할 수 있는 진주이다. ― 3T, 249.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

273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정하신 유일의 길은 재산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햇빛과 비를 주신다. 그분은 식물이 자라게 하신다. 그분은 건강을 주시고 재물을 얻을 능력도 주신다. 우리의 모든 축복은 그분의 풍성한 손에서 온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께서는 남녀들에게 십일조와 헌물-감사 헌물, 자원하는 헌물, 속건 헌물-을 통하여 특정한 부분을 그분께 돌려드림으로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기를 바라신다. ― 교회증언 5권, 153, 154.

장막을 건조하고 성전을 건립할 때 유대인들이 나타낸 관후함은 그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이 도저히 견줄 수 없는 자선심을 실증하는 것이다. 저들은 방금 애굽에서의 오랜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고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의 다급한 여행을 좇던 애굽의 군대로부터 저희가 구함을 받자 곧 주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제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 25:2)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간의 재산밖에 없었고 또 저들에게 보탬이 될 유망한 전망도 없었다. 그러나 목표가 저들 앞에 있었으니 곧 하나님을 위하여 성막을 짓는 일이었다. 주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저들은 그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저들은 조금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원하는 손으로 바치되 저희 재산의 증가의 일부를 바칠 것이 아니라 저희들의 실소유 중에서 큰 몫을 바쳤던 것이다. 저들은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성심껏 주께 바쳤으며 그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던가? 하나님께서 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주시지 아니 하였던가? 주께서 그것을 요구하신다면 당신의 소유를 빌려 주신 그분께 돌려 드리는 것이 저희의 의무가 아니었던가?

독촉할 필요가 없었다. 백성들은 필요한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와서 그만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벌써 거기에는 충당량보다 더 많은 예물이 모인 것이었다. 다시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재물을 바치라는 요구는 진심으로부터의 응답을 받았다. 백성들은 마지못해 내는 일이 없었다. 저들은 하나님을 경배할 집을 건축한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하였으며 필요량보다 더 많이 바쳤다.

히브리 사람들보다 더 많은 빛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들보다 덜 바칠 수 있는가? 종말시기의 가까이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이 바친 헌물의 절반도 못되는 헌물로써 만족할 수 있는가? ― 4T, 77-79.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빛과 진리의 전파가 하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헌금에 의존되도록 하셨다. 목사나 선교사로 다니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재물로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라는 요구를 계속해서 받을 때, 바치는 데 지쳐 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그대도 그러한가?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자. 그대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에서 받는 것도 지쳐 있는가? 그분께서 그대에게 축복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분이 주장하는 몫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의무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대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게 하고자 그대를 축복하신다. 그대가 받는 일에 지쳐 있을 그때에, 그대는 ‘나는 바치라는 부름을 너무 많이 듣고 지쳐버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27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는 모든 것 중 특정한 부분을 그분 자신의 것으로 여기신다. 이 부분의 것이 그분께 돌려질 때, 나머지 부분이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바치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때 전체가 미구에 저주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요구가 첫째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 다음이다. ― 교회증언 5권, 152-154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이다

자원하여 바치는 헌금과 십일금이 복음 사업의 수입원이 된다. 사람에게 맡기는 재물 가운데서 하나님은 특정한 부분, 곧 10분의 1을 요구하신다. ― 교회증언 5권, 153.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들이 다른 모든 요구보다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체결하신 계약은 이것이니 곧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이다. 주께서는 인자하시게도 당신의 재물을 청지기들에게 맡기시나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당신의 재산을 주신 그 비례대로 사람은 그의 모든 재물에서 신실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이 분명한 작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드신 것이다. ― 6T, 384.

현대의 진리는 지상의 어두운 구석에 전파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사업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기적 생애를 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저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에 감동함을 받아 그와 협력하여 일하여야 한다. ― 3T, 381.

예수께서 당신이 하러 왔노라고 선포하신 큰 사업이 지상에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맡겨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사업을 자립시키는데 충분한 자금을 거두도록 계획을 주셨다. 십일조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이 단순하고 공정한 면에서 훌륭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이를 실행할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창시하신 때문이다. 그 계획에는 단순함과 유익함이 겸전하여 그 계획을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하여는 무슨 깊은 학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구원의 귀중한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저희가 부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남녀들, 청소년들이 주님의 회계가 될 수 있으며 금고에 대한 요구에 응하는 대리인이 될 수 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고전 16:2)라고, 이 제도로 말미암아 큰 목적이 성취되었다. 모든 사람이 다 이 제도를 받아들인다면 각 사람은 조심성 있고 신실한 하나님의 회계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세상에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파하는 큰 사업을 전진시키는 데 재정의 부족이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제도를 채택한다면 금고는 가득 채워질 것이요, 또한 재물을 드린 사람들도 더 가난한 처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투자를 통하여 저들은 현대 진리의 사업에 더욱더 밀접하게 결합될 것이다. 저들은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게 될 것이다(딤전 6:19).

참을성 있고 조직적인 교역자들이 저희의 친절한 노력의 경향이 하나님과 저희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육성하고 저희의 개인적 수고가 저희의 봉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볼 때에 저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된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275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도덕적 흑암에 대항하는 전쟁을 지지하기 위하여 저희 소유물에서 연보를 바치라는 저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예사로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일꾼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업은 마땅히 전진하여야 할 만큼 전진할 수가 없다. ― 3T, 388, 389.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특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의 선견지명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가장 유익하다고 보셨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금고를 채우시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직접 재물을 보내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천사들을 보내어 진리를 세상에 공포하는 그런 방법을 계획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하늘에다 쓰시고 그 생생한 글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요구를 세상에 선포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소유하는 금은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것이며”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것임이로다”(시 50:10, 12)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킴에 있어서 우리의 힘이 소용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서 짐짓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렇게 마련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삼음으로써 우리를 존귀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은 저희가 저희의 자선심을 계속하여 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시다.

도덕적 율법은 안식일을 준수하라고 명령하였는바 그 안식일은 저들이 그 율법을 범하여 이를 어김으로써 생기는 벌을 받아야 했던 때를 제외하면 그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십일조의 제도도 이 계획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히브리사람들에게 명하신바 그 제도는 이를 창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폐지하거나 늦추지 아니하셨다. 그리스도께서만 주시는 구원이 그리스도교 시대를 더욱 온전히 비쳐야 하는 것처럼 십일조의 제도도 그 효력이 이제 없어지기는 커녕 더욱 온전히 수행되고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복음이 확장되고 광범하여지므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의 전쟁을 유지시키기 위하여는 더욱 큰 장비가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연보를 바치는 법이 히브리의 국가 통치하에서보다 더욱 긴급히 필요한 것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작은 예물을 요청하시는 것이 아니요 일찌기 세상의 어떤 시기에 있어서보다 더 많은 예물을 바치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원칙은 곧 이것이니 예물과 연보는 저희가 누린 빛과 축복의 비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눅 12:48). ― 3T, 390-392.

빛의 홍수가 하나님의 말씀에게서 비쳐오고 있으니 소홀히 한 기회들에 대하여 각성함이 있어야 하겠다. 모든 사람이 십일조와 헌물로써 하나님의 것을 신실히 그에게 돌려드린다면 세상이 현대의 기별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고 교인마다 철저한 희생 정신으로 젖어 있으며, 모든 사람이 온전한 열성을 보였다면 국내나 외국 선교를 위한 자금이 부족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재원(財源)은 배가(倍加)되었을 것이며 허다한 유익한 문호가 개방되었을 것이요, 우리는 그리로 들어오라는 초청을 받았을 것이다. 276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비의 기별을 세상에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였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벌써 지상에 오셔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 6T, 449, 450.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수익 중에서 열의 하나를 요구하신다

십일조 제도는 모세 시대 이전으로 더듬어 올라간다. 명확한 제도가 모세에게 주어지기 전에 심지어 까마득한 아담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예물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저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주시는 그의 긍휼하심과 축복에 대한 감사를 헌물로써 나타내어야 하였다. 이것은 그 후 세대를 계승하여 계속되었고 아브라함도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욥 시대에도 그 같은 원칙이 존재하였다. 추방을 당하여 한푼 없는 방랑자였던 야곱은 벧엘에서 밤에 홀로 외로이 바위를 베개 삼아 누웠었는데 거기서 그는 주께 약속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바치기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저희가 바치는 것은 모두 자발적인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금고를 마음에도 없는 헌물로써 채우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필요된 분량에 대해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수익 중의 십분의 일로 명확히 기록하셨다. 이것은 사람들의 양심과 자선심에 일임되는 바 이 십일조 제도에 대한 저희 판단은 자유롭게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가 양심의 자유에 맡겨지는 한편 계획은 모든 사람이 똑똑히 알 수 있을 만큼 세워진 것이다.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에 사람들에게 저희 모든 수익 중에서 십분 일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금생의 사물들을 저들에게 맡기시고 냥쭝을 계발시켜서 당신에게 돌리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십분의 일을 요구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갚을 수 있는 중에서 최소의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십분의 구를 주나 나는 십분의 일을 요구한다. 그것은 나의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십분의 일을 바치지 않을 때 저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수입의 십분의 일에 겸하여 속죄 제물, 화목 제물, 감사의 헌물 등도 요구하셨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 곧 수익 중의 십분의 일을 거부하는 모든 것은 하늘 책에 도둑질로서 바치지 아니한 자라는 기록이 쓰여진다. 이러한 자들은 저희 창조주의 것을 횡령하고 있다. 그리고 이 태만의 죄가 저희 앞에 나타나는 때에는 저희가 저희 행습을 고치고 그 때부터 정당한 원칙에 서서 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이것이 저들에게 맡기시고, 빌려주신 하나님께 갚으라고 위탁하신 그 재물을 횡령하였다고 하는 하늘의 기록의 표시를 고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거래에서 불신실한 것과 저열한 망은(忘恩)에 대한 회개가 요청된다.

세상 역사의 어느 시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수행하고 그 요구에 일치시켜서 저희의 물질로 하나님을 존귀히 하는 때면 언제든지 저희의 곳간이 가득히 채워졌다. 그러나 저들이 십일조와 연보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을 때 저들은 하나님의 것만 아니라 저희들 자신의 것도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저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저희의 헌물을 제한한 그 비례에 따라서 저들에게 주시는 당신의 축복도 제한하셨기 때문이었다. ― 3T, 393-395.

277 불운하여 부채를 진 사람은 주님께 바칠 몫을 취하여 동료 인간에게 진 부채를 갚고자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런 거래에서 자기가 시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소용을 위하여 주의 몫을 보류함으로써 주신 분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빚진 자이다. 그런데 그가 주께서 빌려주신 자금을 가지고 사람에게 진 부채를 갚는 데 사용할 때에는 그는 이중의 채무자가 된다. 하늘책에 있는 그의 이름 아래에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함”이라는 글이 쓰여진다. 그는 주님의 재물을 자신의 편리를 위하여 훔친 데 대해서 하나님께 청산해야 할 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재물을 횡령함으로써 나타낸 원칙의 결핍은 다른 일의 처리에도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사업과 관련을 맺는 모든 일에도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의 가족에 끼지 못하게 하는 품성의 특질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 6T, 391.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고무하는 사랑으로써 예물을 평가하신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가난한 자의 예물을 성전의 저울로 잴 때에는 그 바친 양에 의하여 평가되지 아니하고 그 희생을 고무하는 사랑에 의거하여 평가된다. 예수의 허락은 많은 것으로 드리는 부자에게 그러한 것과 같이 바칠 것은 근소하나 그 작은 것이라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관후한 영세민에게도 분명히 실현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그의 작은 것으로 그가 절실히 영향을 받는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그의 많은 것으로 드리되 부족한 것을 느끼지 아니하므로 그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극기하는 일은 없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생활을 즐겁게 하는 어떤 것을 포기하고 참으로 극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연보에는 부자가 바치는 예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성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부자는 그의 많은 것 중에서 일부를 바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계통적인 연보의 완전한 계획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조용히 정지해 있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계획을 좇는다면 모두가 활동하는 일꾼이 될 것이다. ― 3T, 398, 399.

어린이가 드리는 연보는 하나님께서 가납하시고 기뻐하시는 바가 될 것이다. 연보의 가치는 그 예물을 내게 한 정신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도의 규례를 따라 매주 조금씩 저축함으로써 금고를 부풀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바 저희의 예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가납하시는 바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재물이 더 많은 저희 형제들과 같은 크기의,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을 하기 때문이다. 조직적인 헌금의 계획은 쓸데없는 물건에 재물을 소비시키는 유혹에서 각 가족을 막는 방벽임이 드러날 것이요 특히 부자들이 사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줌으로써 저들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 3T, 412.

온 심령을 다하여 행하는 너그러움의 보상은 곧 마음과 소원을 이끌어 성령과 더욱 가까운 교제를 하게 하는 것이다. ― 6T, 390.

바울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는 일에 대한 하나의 법칙을 밝히고, 그 결과가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278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 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6-11). ― 교회증언 5권, 730.

합당한 재산의 처리

부모들은 저희가 건전한 정신과 선한 판단을 가지고 있을 동안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경험을 쌓고 적당한 의논 상대자의 도움을 받아서 저희의 재산을 처분하여야 한다.

저들이 만일 곤란을 당하거나 혹은 가난에 시달리고는 있으나 재물을 현명하게 사용할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면 저들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저들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녀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저희가 단지 저희 자녀들이라는 이유로 저희들 수중에 재물을 맡김으로써 부모들은 저들을 청지기로 삼아 주신 주인에게 죄를 짓는다. 하나님의 요구를 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부모들이 이미 저희의 유언서를 작성하였다고 해서 그 유언서가 저희가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재물을 바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은 응당 저들이 할 일이다. 저들은 저희가 사는 동안 저희의 잉여 재산을 처분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고 장래의 세상에서 보상을 얻을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는 데 저희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저들은 주께서 저들에게 빌려주신 재물을 가지고 당신의 포도원에서 마쳐야 할 사업을 수행하는 데 사용하여야 한다. ― 3T, 121.

하나님의 금고에 들이기를 주저하고 저희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는 자들은 저희 자녀들의 영적 관심을 위험에 빠뜨린다. 저들은 자신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는 저희 재물을 자녀들의 행로에 두게 하여 자녀들이 그것에 부딪혀 넘어져서 파멸을 받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금생의 사물에 대해서 큰 과실을 범하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재물을 정당하게 사용하면 얻었을지도 모르는 유익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하면서까지 절약하여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된다. 저들은 저희의 영적인 중요성을 무시하여 신앙의 성장에는 난쟁이가 되는 바 이 모든 것이 다 저희는 사용할 수도 없는 재물을 쌓기 위하여 생기는 일이다. 저들은 그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겨 주는 바 십중 팔구는 그것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어서 저주가 되었던 것보다도 그 상속인 들에게 더욱 큰 저주가 된다. 자녀들은 저희 부모의 재산에 의뢰하는 나머지 흔히 금생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대개는 내세의 생명을 얻는데에도 전적으로 실패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은 유용한 노동에 대한 지식이요 사욕이 없는 박애심으로 특징지어진 생애의 모본이다. 279 이러한 생애로써 저들은 돈의 진가를 보여 주는 바 그 진가는 저희 자신의 결핍과 다른 사람의 필요를 덜어주고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킴으로써 거두게 될 유익함을 깨달을 때에만 나타난다. ― 3T, 399.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십일조의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율법처럼 영속하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에게 축복이 되었는 바 그렇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주지 않으셨을 것이었다. 그와 같이 이 제도를 끝날까지 수행하는 자들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후원하는 데 있어서 가장 조직적이고 관후한 교인들은 영적으로 가장 번영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참된 관후함은 그의 관심과 그의 주인의 관심을 동일하게 만들어 놓는다. 만일 재물을 가진 자들이 저희가 사용하는 모든 돈마다 하나님께 회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저희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양심이 살아 있다면 그녀는 식욕과 자랑과 허영과 오락에 대한 사랑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쓸데없이 사용하는 것을 표명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바쳤어야 할 주님의 돈을 낭비한 것을 보고하였을 것이다. 주의 재물을 낭비하는 자들은 곧 주님께 대한 저희의 행동을 명백히 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이들이 저희 몸을 치장하는 것과 저희 집을 미화시키는데 저희 재물을 덜 쓰고 저희 식탁 위에 낭비적이며 건강을 해치는 사치한 요리를 차리는 일에 덜 소모한다면 저들은 하나님의 금고에 훨씬 많은 금액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함으로 저들은 하늘과 그 부요함과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사 우리로 영원한 보화를 얻게 하신 저희의 구속주를 닮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재물을 모으기 시작하면 저들이 일정한 액수를 소유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가를 따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모을 염려 때문에 저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게 되지 못한다. 저희의 자선은 저희의 축적과 보조를 맞추지 아니한다. 재물에 대한 열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저희의 애정은 재물에게 묶인 바 된다. 재물이 불면 더 많이 벌려고 하는 욕망이 강하여져서 어떤 이들은 주께 드리는 십분의 일이 가혹하고 공정하지 못한 세금이라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른다.

영감의 말씀이 이르기를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시 62:10)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일 아무개와 같이 부자가 된다면 하나님의 금고에 나의 예물을 곱으로 해서 바치겠다.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 외에는 나는 나의 재물을 다른 일에는 전혀 쓰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재물을 주시고 시험하셨다. 그러나 재물을 가지게 되자 더욱 심한 유혹이 임하였고 저희의 헌금은 저희가 가난한 때보다 훨씬 박해졌다. 더 많은 재물을 벌겠다는 탐욕적인 욕망이 저희 마음과 소원을 사로잡아 저들은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하여 버린다. ― 3T, 401-405.

하나님께 드린 서약은 의무적이요 신성한 것이다

각 사람이 다 자신의 재산 평가자가 되는 바 각각 자기 마음에 의도하는 대로 바치도록 맡겨졌다. 280 그러나 개중에는 만일 저들이 하나님께서 십일조 제도에서 요구하시는 몫을 거절하는 일이 있더라도 형제들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지은 죄와 같은 죄를 범하는 자들이 있다. 범죄한 부부는 그렇게 생각하였으며, 저희의 모본은 우리에게 경고로 주시는 바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입증하신다. 사람의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에게서 숨겨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영원한 경고를 남기사 사람들의 마음이 늘 빠지기 쉬운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하셨다.

우리 형제들 앞에서 일정한 액수를 바치겠다고 구두로나 지면으로 서약을 하였을 때 형제들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계약을 목도한 증인들이다. 그 서약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한 것이며 하나의 각서로서 이웃 사람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떤 법률상 계약이라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금전을 지불할 것을 서약한 것보다 더 의무적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저희 동료 인간들에게 서약하는 사람들은 대개 저희 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은총을 주시는 이인 하나님께 드린 서약은 한층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 말한 우리의 서약에서 벗어나려고 힘쓰는가? 하나님에게 한 것이니까 그의 약속은 덜 의무적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그의 서약은 재판소의 심문을 받지 않을 터이니까 덜 유효하다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희생의 보혈로 구원함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것인가? 그의 서약과 행동은 하늘 조정에 있는 공의의 저울에 달리지 않겠는가?

교회는 그 개개인의 교인들이 한 서약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자기의 서약한 것을 이행하는데 소홀히 하고 있는 형제가 있음을 교회가 알 때에는 교회가 그와 함께 친절하게 그러나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만일 그가 자기의 서약한 것을 갚을 수 있는 처지에는 있지 않으나 그가 유능한 교인이요 또 자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가 그를 동정하여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저들은 난관을 건널 수 있고 저희 자신에게 축복이 되게 할 수 있다. ― 4T, 469-476.

가난한 자를 위하여 따로 떼 놓아야 하는 감사 연보

모든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들은 가장 편리한 대로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하나님께 감사의 헌금을 바쳐야 한다. 이 헌금은 건강과 음식과 안락한 의복등의 선물을 받은데 대한 우리의 감사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를 축복하심에 따라 우리는 가난한 자들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과 낙심 상태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저축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특별히 이 점에 대하여 우리 형제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라. 그대의 쾌락 중 어떤 것들이나, 심지어 편의까지도 없이 지내고 가장 빈약한 음식과 의복만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도와 주라. 그들을 위하여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예수님의 성도들을 통하여 그분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고통 중에 있는 인간과 동일시 하신다. 그대의 가상적 욕구가 다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대의 감정에 의존하여 그대가 바치고 싶을 때는 바치고 바치기 싫을 때는 바치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되지 말라. 그대가 하나님의 날에 하늘의 기록에서 보기를 원하는 대로 한 주일에 10센트, 20센트, 혹은 50센트이거나 간에 규칙적으로 바치라. ― 교회증언 5권, 154, 155.

우리의 재산과 하나님의 사업의 유지

281 하나님을 신실히 사랑하고 재물을 소유하는 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라는 분부를 받았다. 지금은 바로 그대가 주의 사업을 유지함에 있어서 그대의 재물을 투자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극기의 노력을 하고 있는 목사들의 수고를 격려해 줄 때이다. 그대가 도와 주어서 구원한 영혼들을 하늘 조정에서 만날 때 그대의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지 않겠는가?

작은 돈이라고 하여 바치지 않는 사람이 결코 없게 하라. 그리고 많이 소유하는 자들은 하늘에다 다함이 없는 보물을 쌓아 둔 것을 인하여 기뻐하라. 우리가 주의 사업에 투자하기를 거절하는 돈은 썩어서 없어질 것이다. 그러한 돈은 하늘 은행에 아무런 이자도 축적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주께서는 각처에 있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부르사 당신에게 헌신하고 저희 환경에 따라 당신의 사업을 돕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예물과 연보를 너그럽게 드림으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대한 감사와 그 긍휼하심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 9T, 131, 132.

환난의 때에 있을 우리의 현세적인 필요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과 반대된다는 것을 주께서 내게 여러 번 보여 주셨다. 나는 만일 성도들 이 환난의 때에 들에나 혹은 아무데든지 양식을 저장해 두었다 할지라도 전쟁과 기근과 온역이 휩쓸고 지나갈 때 포악한 자들에게 빼앗길 것이며, 낯선 자들이 그들의 밭에서 수확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할 때인 바 그분이 우리를 먹이실 것이다. 나는 그 때에 우리의 먹을것과 마실 것이 충분히 있어서 우리가 부족을 느끼거나 배고픔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식탁을 펴실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필요에 따라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던 것같이 우리를 위하여 까마귀를 보내실 수도 있으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것같이 하늘로부터 만나의 비를 내리실 수도 있다.

환난의 때에는 가옥과 토지도 성도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데 그것은 폭도들이 노도처럼 들이닥치기 전에 그들이 피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에는 그들의 소유를 현대 진리를 위한 사업에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성도들이 환난의 때가 오기 전에 모든 장애가 되는 것들을 처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았다. 그리하여 희생을 통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재산을 제단에 내어 놓고 어떻게 할 것인지 하나님께 열심히 구한다면 그분은 그들에게 그것을 처리할 때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환난의 때에 자유로울 것이며 그들을 무겁게 내리 누르는 장애물이 없게 될 것이다. ― 초기문집, 56, 57(영문).

극기와 희생 정신

구속의 경륜은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하신 희생에 의하여 그 터가 놓아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쳐오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견책하고 관후와 자선을 장려한다. 바치라는 요구가 증가하는 것이 슬픈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당신의 백성들을 제한된 활동 범위에서 불러내사 보다 큰 사업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도덕적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이때 무제한의 노력이 요청된다. 282 세욕과 탐심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침식해 들어가고 있다. 저들은 저희의 재물에 대한 요청이 증가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관후한 행위와 기도를 서로 밀접한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천사는 고넬료에 대해서 말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행 10:4)고 하였다. ― 3T, 405.

그대의 가정에서 절약을 실천하라.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간직하고 경배한다. 그대의 우상을 버려라. 그대의 이기적인 쾌락을 중지하라.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재물을 그대의 집을 장식하는 일에 소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재물은 하나님의 돈이요 그 돈을 다시 그대에게서 요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의 돈을 그대의 자녀들의 기호를 기쁘게 하는 일에 사용하지 말라. 자녀들이 세상의 세력을 얻기 위하여 유행과 겉치레를 추구하도록 가르치지 말라. 이것이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킬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시샘과 질투와 악한 상상을 일으킬 것이다. 그대의 자녀들은 세상의 허영과 사치와 어깨를 겨루게 되고 건강과 행복에는 요긴하지도 않은 일에 주의 돈을 소비하게 된다.

그대의 자녀들로 하여금 저들에 대한 그대의 사랑이 저희의 자랑과 사치와 허식에 대한 사랑을 방종하게 함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하지 말라. 이제 돈을 탕진할 방도를 강구할 시간은 없다. 그대의 발명적인 재주를 절약하려고 힘쓰는 일에 사용하라. 이기적인 경향을 만족시켜서 이성의 힘을 훼손시키는 것들을 위하여 돈을 쓰지 말고 극기하는 법을 연구하여 그대가 새 지방에 진리의 깃발을 올리는 일에 무엇인가 투자하도록 하라. 지력은 하나의 냥쭝이다.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대의 재물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에 그 지력을 사용하라. ― 6T, 450, 451.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자신과 저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바치는 자들은 이기적인 사람이 찾으나 헛되어 얻지 못하는 행복을 실감할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징지은 사심이 없는 사랑과 관후함의 열매이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관심을 높고 영원한 생각에로 붙들어 맬 것이다. ― 3T,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