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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하나님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인들

11장 - 하나님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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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생애와 품성에서 이런 원칙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의 습관, 습성 및 행습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저들로 당신께 가까이 나오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저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성취하고자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에 저들을 통하여 성취하시고자 하셨던 그 목적과 동일한 것이다.

교회에 나타난 바 양선과 자비와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봄으로써 세상은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나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이와 같이 생애 가운데서 예증될 때에 세상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이 세상의 모든 다른 백성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된 각 사람을 눈여겨보고 계시며 각 사람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당신의 거룩한 교훈을 실천하는 자들이 뛰어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영감의 영을 통하여 모세가 기록한 다음의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 7:6)라. ― 6T, 9, 12.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의 형성

기독교 신앙은 이를 받아들인 자의 품위를 결코 떨어뜨리거나 거칠고 난폭하게 하거나 무례하고 거만하며 성급하며 강퍅케 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취미를 세련시키고 판단력을 성화시키며 생각을 순결하고 고상하게 하여 저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이끌게 한다.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가장 고상한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율법에서 당신의 품성의 사본을 주셨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끊임없는 향상의 길이 열려 있다. 우리에게는 획득해야 할 표적, 도달하여야 할 표준이 있는 바 이 표적과 표준은 선하고 순결하고 고상하고 고결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품성의 완전함을 향하여 계속적인 분투와 앞과 위로의 끊임없는 전진이 있어야 한다. ― 8T, 63, 64.

우리는 각각 우리의 현재의 습관에 따라 현세와 내세를 위한 품성을 형성할 것이다. 79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고 모든 의무 수행에 신실한 자들의 생활은 빛나는 광명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길 위에 밝은 광채를 비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불신실한 습관에 빠지거나 방종하고 게으르고 태만한 습관을 허용하여 굳어버리게 한다면 밤중보다 더 어두운 구름이 금생에서의 전도에 드리울 것이요 그 사람의 미래의 생명에도 영원한 방해를 끼칠 것이다. ― 4T, 452.

영생의 말씀에 유의하는 자는 복이 있다.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될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존경과 칭찬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보기에 귀중할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 교회증언 5권, 433.

오늘을 용기 있게 살라

마음 속에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를 슬기롭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진리를 믿고 순종함으로 그대는 오늘의 의무와 시련을 넉넉히 감당할 만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대에게는 내일을 위한 은혜가 필요되지 않다. 그대는 다만 오늘에만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을 위하여 이겨라. 오늘을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라. 오늘을 위하여 깨어서 기도하라. 오늘을 위하여 하나님 안에서 승리를 거두어라. 우리의 주위 환경 우리 주위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변화. 만물을 식별하고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런 것들은 우리의 의무와 또 날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에 넉넉하다. 그대가 아무런 유익도 받지 못할 생각의 통로에 그대의 마음을 달리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당장은 지긋지긋하나 어차피 어떤 사람이 하여야만 하는 일상 생애의 의무들을 행하여야 한다. ― 3T, 333.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위에 있는 무서운 악, 도처에 있는 반역과 허약에 그들의 눈을 고정시킨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마침내 슬픔과 의심으로 층만해 질 때까지 이런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맨 먼저 대 기만자의 교묘한 역사를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경험에서 용기를 쉽게 하는 것들을 숙고하는 한편 하늘 아버지의 능력과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은 보지 않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의도하는 그대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을 작게 생각하면서 의의 원수가 그처럼 큰 능력으로 옷입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강대하심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손아귀에서 우리 자신을 구출해 내기에 전혀 무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정해 놓으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께서는 그 싸움을 우리를 위하여 싸울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 넉넉히 이”(롬 8:37)길 수 있다.

우리의 연약함과 배교에 대하여 끊임없이 곰곰이 생각하고 사단의 능력을 한탄할 때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적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80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명시된 조건들과 일치되게 당신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고 또한 구원하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하나의 산 원칙, 곧 우리를 위하여 행해진 희생 제사의 효력으로서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의 편에 두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속죄의 피를 통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보증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길을 이끄시는 곳으로 걸어간다. 그분은 사단이 우리의 길에 던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 버릴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흑암과 낙담 대신에 그분의 영광의 햇빛이 우리의 마음 속에 비추게 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구주의 사랑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함을 명상함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함으로 우리는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불쾌한 그림들-범죄와 타락과 실망, 사단의 세력에 대한 증거들을 함께 모아서 우리의 기억의 방에 걸어 두고 그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탄식하기를 마침내 우리의 심령이 실망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해서는 안 된다. 낙담한 한 영혼은 흑암의 사람이며 그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빛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빛이 비취지 못하도록 막아 버린다. 사단은 그의 승리의 그림들의 효과를 보기 좋아하고 사람들을 믿음 없고 낙담되게 만든다. ― 교회증언 5권, 736, 739.

이기심 없는 생활로써 하나님을 나타내라

최대한도로 방종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여 그렇게도 많이 전염하는 영적 질병을 낳게 하는 죄는 곧 이기심이다. 자기 부정 이외의 방법으로 주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이란 없다. 우리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힘 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남에게 선행을 하는 생애를 살 수 있고 이런 방법으로 이기심이라는 악에서 피하게 된다. 우리는 유용하고 이기심 없는 생애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욕망을 표시하기 위하여 구태어 이방 땅에까지 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교회에서, 또는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이나 사업 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것을 행하여야 한다. 자아를 부인하고 순종시켜야 하는 곳은 바로 일상의 평범한 생애 가운데서 있어야 한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를 이기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은 생활의 작은 사건에 있어서 날마다 자신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선행하기를 원할진대 자기를 잊어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타인에 대한 사랑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저들은 저희 의무를 신실히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하늘 나라에서는 자기를 생각하거나 자신의 쾌락을 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직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모두 저들 주위에 있는 하늘 거민들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가 만일 새로 지음을 받은 땅에 있는 하늘 사회에서 즐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원칙으로 통제를 받아야 한다. ― 2T, 132, 133.

나는 우리에게 확실하고 실수가 없는 모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지기 쉬운 사람들을 모본으로 삼아 우리들 상호간에 비교하는 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이나, 사람들의 의견이나,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의 우리의 상태에 의하여 헤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우리의 믿음과 위치는 현상태에서. 81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한 후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향상했다면 도달되었을 그 상태와 비교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할 유일하고 안전한 비교이다. 그 외의 모든 다른 비교는 자아 기만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특성과 영적 상태가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과 특권과 빛에 상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는 천사들의 보고를 듣게 될 것이다. ― 교회증언 1권, 424, 425.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가? 그것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를 목격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그 일이 성경과 일치된다는 것과,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의 마음에 증거해 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유혹을 받아 타락한다. 교만, 자부심, 그밖의 다른 악한 특성이 그를 지배한다. 그리하여 그 역사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모든 증거를 거절하고, 그는 그가 이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했던 것이 사단의 능력이였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의 매개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그것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즐겨 저들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비취고 있던 빛을 꺼 버린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둠에 묻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곧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3)라고 하신 말씀이 입증된다. 이 죄를 범해 온 사람들이 한동안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품성을 나타낼 환경을 만나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정신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이게 될 때, 그들이 원수의 땅에 있다는 것, 검은 깃발 아래 서 있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 교회증언 5권, 632, 633.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과 부인하는 것

사회나 가족이나 혹은 우리가 당면하는 어떤 생활 관계에서 제약을 받거나 혹은 제약받음이 없이 자유로이 사귈 때에는 우리가 우리의 주님을 시인하든지 부인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말, 곧 남을 욕하거나 어리석은 이야기나 익살이나 농담을 함으로써, 혹은 쓸데없고 불친절한 말로써 혹은 거짓말을 하여 진리와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말로써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성격 면에서 안일을 사랑한다든가 혹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감당해야만 되는 생애의 의무와 부담을 피함으로써 또는 죄된 쾌락을 사랑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의복의 자랑과 세상을 따라감으로써 혹은 무례한 행동으로써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사랑하거나 자기를 주장하고 정당화시킴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의 통로에 마음을 두게 허용하거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어려운 처지와 시험을 당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82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이 자기 속에 살아 있지 아니하다면 아무도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를 참되게 시인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을 전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말과 행동은 마음 속에 있는 은혜와 진리에 대한 실제적이고도 눈에 보이는 표현이라야 한다. 만일 마음이 성화되고 유순하며 겸손하다면 그 열매가 외관에 나타날 것이요 그 열매야말로 그리스도를 매우 효과적으로 시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 3T, 331,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