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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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5 부 - 필수적인 지식

-5장 -

천연계 속에 나타난 하나님

255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지각을 흐리게 하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었다. 하나의 덮개로서 아름다운 빛, 하나님의 빛이 그들을 두르고 있었다. 이 분명하고 완전한 빛이 그들이 접근하는 모든 것을 비추었다.

천연계는 그들의 교과서였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실존은 입증되었고, 그분의 특성들은 그들을 두르고 있는 천연계의 사물에 나타났다. 그들의 눈이 머무는 모든 것은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다.

죄의 결과GG 그러나 태초에는 하나님께서 천연계를 통하여 식별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인류의 타락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천연계를 통하여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계시되지 않았다. 천연계는 죄 없는 상태에 있는 인류에게 그의 교훈을 전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범죄는 어두운 그림자를 세상에 가져와서 천연계와 천연계의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창조주께 불순종하지 않고, 완전한 정직의 길에 머물렀더라면,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솜씨를 통하여 그분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256 그러나 그들이 유혹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자 하늘의 흠 없는 의복의 광채는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하늘의 빛을 빼앗기자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솜씨에 나타난 그분의 품성을 식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인류의 불순종 때문에 천연계 자체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죄의 저주로 훼손당한 천연계는 창조주에 관하여 불완전한 증거밖에는 할 수 없다. 천연계는 그 자체의 완전한 상태에서 창조주의 품성을 드러낼 수가 없다.

거룩한 교사GG 우리는 거룩한 교사가 필요하다. 세상이 흑암 속에, 영원한 영적 밤 가운데 묻혀 있지 않게 하고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요 1:9)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나타났다(고후 4:6). 우리의 이해력을 깨우쳐 주고, 천연계의 표면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은 여전히 우리에게 그분의 창조된 업적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교훈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천연계는 하나님을 증거함GG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천연계의 사물들은 에덴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관하여 다만 희미한 개념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럴지라도 아름다운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천연계는 능력이 무한하시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비록 망가진 상태일지라도 만물은 위대한 대예술가의 솜씨를 드러낸다. 비록 죄가 천연계의 사물들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망가뜨렸을지라도, 비록 그것들에게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활동한 흔적들을 보게 될지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하여 말한다. 찔레와 엉겅퀴와 가시나무와 가라지에게서 우리는 죄의 선고의 법칙을 읽을 수 있다. 257 그러나 천연계의 사물의 아름다움에서, 또한 그것들이 우리의 필요와 행복에 놀랍게도 적합하다는 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분의 자비가 여전히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시 19:1-3).

사람이 천연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됨GG 그리스도를 떠나가면 우리는 여전히 천연계의 언어를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인간이 배워야 할 가장 어렵고 굴욕적인 공과는 인간의 지혜를 의존할 때에 그 자신은 무능하다는 것과 천연계를 정확하게 읽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분명히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다. 천연계를 하나님 위에 놓지 않고서는 그것을 혼자서 해석할 수 없다. 그는 천연계 숭배에 바쳐진 제단들 중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기록된 한 제단을 가진 아덴 사람들과 유사한 상태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정말로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분은 거룩한 교사의 지도 없이 천연계의 연구에 임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으신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세상의 현명한 사람들은 그분의 창조된 업적에서 그분에 관한 불완전한 지식을 수집한다. 그러나 이 지식이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고상한 생각을 제공하지 않는 한, 정신과 영혼을 향상시켜 주고, 인간 전체를 그분의 뜻에 일치되게 해 주지 않는 한 사람들을 우상 숭배자가 되게 한다. 그들은 눈먼 상태에서 천연계와 천연계의 법칙을 천연계의 하나님보다 더 높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과학과 예술의 발견에 있어서 빛의 홍수가 세상에 쏟아지도록 허락하셨다. 258 그러나 소위 과학자들이 이런 주제들을 단순히 인간적인 견해에서만 논하게 될 때 그들은 분명히 오류에 빠지게 된다. 가장 위대한 정신을 가진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되지 않으면, 과학과 계시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기도(企圖)에서 혼란에 빠진다.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이 천연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의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된다.

성경 기록의 확실성을 의심하는 자들은 그들의 닻을 놓고 불신의 암초에 부딪히도록 버려져 있다. 그들 자신의 불완전한 과학의 지식으로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헤아릴 수 없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무한한 능력을 천연계로 돌린다.

참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 둘은 다 같이 창시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판명될 것이다. 천연계에서나 계시에서나 간에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빛을 받지 못한 마음은 그분의 능력에 관하여 언제나 암흑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에 관한 인간적인 견해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그처럼 자주 상치된다.

창조의 사업GG 창조의 사업은 과학으로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어떤 과학이 생명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존재하게 하실 때 물질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이론은 근거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세상을 조성하시면서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만물은 물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나 간에 주와 여호와의 음성을 따라 그분 앞에 섰고 그분의 목적대로 창조되었다. 259 하늘과 하늘에 있는 모든 천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은 그분의 손으로 된 업적일 뿐 아니라 그것들은 그분의 입 기운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 9).

천연계의 법칙GG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법칙과 천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중에 부인하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계속적이고 직접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천연계가 하나님과 독립해서 활동하고, 그 자체 속에 스스로 기능할 그 자체의 한계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을 나타낸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다. 자연적인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는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원인으로 돌린다. 물질에 살아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고, 천연계는 신이 된다. 물질은 특정한 관계 속에 놓여져 하나님 자신도 간섭할 수 없는 정해진 법칙을 따라 움직이도록 되어 있고, 천연계에는 일정한 특성들이 부여되어 법칙에 종속됨으로써 그 법칙에 순종하고 본래 정해진 일을 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거짓 과학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법칙들을 폐하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일하시며 그것들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 그것들은 스스로 작용하고 있지 않다. 260 하나님은 천연계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천연계는 하나님의 뜻대로 지도를 받는 그분의 종이다. 천연계는 그 작용을 통하여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모든 업적 속에서 움직이고 계신 한 분의 지성적인 존재와 활동적인 역사를 증거한다. 해마다 지구가 풍성한 소출을 내고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은 천연계 속에 고유적으로 존재하는 본래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무한한 능력의 손이 이 행성(行星)을 끊임없이 인도하고 있다. 그 자전(自轉) 과정에서의 위치를 지켜 주는 것은 매 순간 작용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식물이 자라나고, 모든 잎들이 터져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은 그분의 능력 때문이다. 모든 빗방울과 눈송이, 뾰족뾰족 터져 나오는 모든 풀잎, 모든 나뭇잎과 꽃과 관목은 하나님을 증거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한 이런 작은 것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주시 아래 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그분의 주목에서 벗어 날만큼 작은 것도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 준다.

인체의 구조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가장 지성적인 사람을 당혹케 하는 신비들을 제시한다. 맥박이 뛰고 호흡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움직이도록 한 번 작동된 후에 그 활동이 계속되는 어떤 기계 장치의 결과 때문에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간직한다. 하나 하나의 호흡과 하나 하나의 심장 박동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끊임없이 증거한다.

태양을 하늘에서 떠오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창을 열고 비를 내리신다. 그분께서는 풀이 산에서 자라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 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 147:16; 렘 10:13)신다.

주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그것들을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고 계신다. 261 그리스도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의 신비 GG 가장 위대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도 천연계에 나타난 여호와의 신비를 이해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영감은 가장 심오한 학자들이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을 한다. 이 질문들은 우리의 대답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오묘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우리의 지혜가 한정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우리의 일상 생활의 주변에 유한한 마음이 깨달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판단과 목적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그분의 지혜는 헤아릴 수가 없다.

회의론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시는 무한한 능력을 그들의 유한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일을 거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이해력에 펼쳐진 것에 의해서 보다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신 것에 의해서 더 많이 인지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계시를 통하여, 또한 천연계를 통하여 믿을 수밖에 없는 오묘들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계속해서 탐구하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계속해서 배울지라도 여전히 무한한 저편은 남아 있다.

26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12-31).

인격적인 하나님

263 모든 천연계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는 전능한 힘은 어떤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느 곳에나 편만한 하나의 원리, 곧 생동하는 하나의 기운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인격적인 존재이시다. 사람이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천연계는 하나님이 아니다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솜씨는 천연계 속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다. 천연계의 사물들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이며, 우리는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영광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천연계를 하나님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예술적인 재간이 매우 아름다운 작품, 눈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이 그 고안자의 사상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이 그 사람은 아니다.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이다. 이와 같이 천연계가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을지라도 높임을 받아야 하는 것은 천연계가 아니고 천연계의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렘 10:11, 16, 12).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암 5:8).

264 인격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심GG 인간의 창조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의 힘이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의 형체는 그 모든 구성 면에서 완전했지만 생명은 없었다. 그 때에 인격적이요 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형체 속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그러자 사람은 살아서 호흡하는 지적 존재가 되었다. 인체 기관의 모든 부분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심장, 동맥, 정맥, 혀, 손, 발, 감각, 마음의 지각, 그 모든 것들이 각각 활동을 시작했고, 모두가 법칙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성과 힘을 부여하셨다.

우리가 은밀하게 창조되었을 때 우리의 본질은 그분에게 숨겨지지 않았다. 그분의 눈은 아직 불완전한 그대로의 우리의 본질을 보셨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지체들은, 아직 그것들이 존재하기 전에 그분의 책에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걸작품인 인간이 모든 하급 생물들보다 뛰어나게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여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시 100:1-4, 99:9).

265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GG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그분의 아들 안에서 계시하셨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히 1:3)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모양을 입으시고 땅 위에 계셨다. 그분께서는 인격을 가진 구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격을 가진 구주로 승천하셨다. 그분께서는 인격을 가진 구주로 하늘 법정에서 중보하신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인자 같은 이”(계 1:13)가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소실당하지 않고 그들의 창조주와 친숙해지게 하시고자 세상의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성의 빛나는 광채를 가리우시고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생애하시려 오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신 것 외에는 어떤 사람도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요 10:30; 마 11:27).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셨다. 우리는 하늘에서, 땅에서, 넓은 대양의 물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본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별들이나 대양이나 큰 폭포에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그대로의 하나님의 인격을 배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품성과 인격을 묘사하기 위해서 천연계보다 더욱 분명한 계시가 필요함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시력이 감당할 수 있은 한도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천연계의 사물들, 곧 꽃과 나무와 풀잎 속에 개인적으로 거하시는 것으로 나타내어지기를 바라셨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언급된 적이 한 번도 없다. 266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간이 멸망을 당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거룩한 교사이시며 계몽자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주신 것들 외에 다른 계시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그것을 주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심GG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하신 말씀들을 연구해 보자. 그분께서는 자신의 시련의 때에 접근해 가고 계셨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매우 혹독하게 시험을 받고 시련을 당할 당신의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10).

제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관하여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267 그분의 교훈 대부분이 그들에게는 여전히 캄캄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와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이익에 대하여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많은 질문들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더욱 분명하고 뚜렷하게 하나님을 알기 바라셨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 16:25).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강림하셨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진리를 깨달았다. 그들에게 비밀로 여겨졌던 교훈들이 밝혀졌다. 성령의 강림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이해는 그들의 환상적인 이론들을 부끄러워하게 했다. 그들이 이제 받아들인 하늘의 사물에 대한 지식에 비교할 때 그들의 상상과 해석들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들은 성령으로 지도되었고, 한때 어두워졌던 그들의 이해력은 빛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약속의 완전한 성취를 아직 받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께 대한 모든 지식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관하여 그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지식은 부분적이요 불완전하다. 대쟁투가 끝나고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 세상에서 그분을 위하여 참 증거를 해 온 그분의 충성된 일꾼들을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실 때, 그들은 지금 그들에게 신비가 되어 있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화롭게 된 그분의 인성을 하늘 조정으로 가지고 가셨다.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시고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268 이생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할 것 같으면,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계 22:4)을 것이다. 하늘의 행복이란 하나님을 보는 것 외에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을 아버지로 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주어질 수 있겠는가?

성경의 증언GG 성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인격과 개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 1:1-5).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스도에게는 뛰어난 지위가 제공되었다. 그분은 아버지와 동등하게 되셨다. 하나님의 모든 의도가 그분의 아들에게 공개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269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요 5:17-20)신다.

여기에 다시 아버지와 아들의 인격을 보여주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을 알려준다.

이 연합은 요한복음 17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위하여 드린 기도 속에 다시 나타난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0-23),놀라운 말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 사이에 있은 연합은 어느 편의 인격도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에 있어서, 정신에 있어서, 품성에 있어서 하나이다. 그러나 인격에 있어서는 하나가 아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하나가 되심도 이와 같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두 사이의 인격이 다음의 성경 말씀에서도 밝혀져 있다.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슥 6:12, 13).

270 “영원하신 하나님”GG 말씀에는 하나님이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일컬어진다. 이 이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총망라한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신 33:27-29).

“산이 생기기 전,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시 90:2-6).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 90:12, 14-17).

27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시 93:1, 2).

여호와의 인자하심GG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시 33:4, 5, 12, 18-21).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4-10, 17, 18).

272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시 34:22).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 103:8-18).

하나님의 섭리의 돌보심GG 우리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통어하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아신다. 우리는 목전의 것도 잘 알지 못하지만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히 4:13)난다. 273 하나님은 세상의 혼란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좌정해 계실지라도 만물은 그분의 거룩한 눈앞에 드러나 있다. 그리하여 영원 전부터 그분께서는 당신의 섭리가 가장 좋다고 여기시는 대로 명령하신다.

한 마리의 참새도 아버지의 주목을 받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사단은 하나님께 대한 증오 때문에 말 못하는 생물들을 죽이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 새들이 기쁜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보존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참새들도 잊지 않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27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 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젊은 사자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 굴혈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 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 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 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 저가 땅을 보신 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신 즉 연기가 발하도다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시 104:1-34).

27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주께서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시 65:5-11).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시 145:14-16).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자비GG 이 세상의 어떤 부모도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 범죄한 자에게 탄원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열렬하게 잘못한 자녀에게 지금껏 탄원한 적은 없다. 어떤 인간의 자비로운 관심도 완고한 자들에게 그처럼 부드러운 초청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사 43:22).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미 6:3).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호 11:1).

276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신 32:9-11).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시 78:10).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 11:2-7).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 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 78:38, 39).

비록 그분께서는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을지라도,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시 78:61, 89:33)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렘 31:20).

277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 11:8, 9).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호 14:1-3).

“저희가…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호 11:10, 11).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호 14:4-9).

27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8, 19).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 11, 13,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4-17).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 48:14).

하나님에 대한 거짓 지식과 참 지식

279 추상적인 이론GG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 29:29).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그분 자신에 관한 계시는 우리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우리가 간파할 수 없다. 가장 높은 지성이 지칠 때까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하여 추측할지라도 스스로 혹사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하도록 맡겨지지 않았다. 어떤 인간의 정신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다. 유한한 사람은 그분을 설명하기 위하여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그분의 본성에 관해서 추상적인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침묵이 웅변이다. 전지 하신 분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시다.

구원의 계획이 세워질 때 심지어 천사들까지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의논에 참여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묘 속으로 억지로 끼여들고자 하는 인간들은 영원한 영적 사물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보여준다. 자비의 음성이 아직 들리고 있는 동안, 그들이 스스로를 티끌 속에 낮추고 하나님의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그분께 탄원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다. 그분의 본성이나 대권(大權)에 관하여 추리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분께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고 하신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욥 11:7-9).

280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치 못하겠고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산호나 수정으로도 말할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홍보석보다 귀하구나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측량하지 못하리니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레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 28:12-28).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를 통찰하기 위하여 땅의 깊은 곳을 살핌으로써도, 헛되게 노력함으로써도 지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분께서 주고자 하시는 계시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생애를 그분의 뜻에 일치시킴으로 그것은 발견된다.

281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GG 성령께서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신 바에 따라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배우도록 하자. 선지자 이사야는 기록한다.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사 6:1-7).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렘 10:6, 7).

282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 139:1-6).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시 147:5).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단 2:22).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행 15:18; 롬 11:34-36).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 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딤전 1:17, 6:16).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욥 26:7-10).

“그가 꾸짖으신 즉 하늘 기둥이 떨며 놀라느니라 그는 권능으로 바다를 흉용케 하시며… 그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손으로 날랜 뱀을 찌르시나니 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요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레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 (욥 26:11-14).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나 1:3).

283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시 113:5, 6).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시 145:3-21).

뻔뻔스러움에 대한 경고GG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분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는 그분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옛적에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선언하신 것에서 버릇없이 벗어나고자 한 자들의 운명에서 경고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땅에서 돌아오는 중에 있던 법궤를 열어 보았을 때 그들의 불경한 대담성은 두드러지게 벌을 받았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삼상 6:19, 20).

284 웃사에게 내린 심판을 다시 생각해 보라. 다윗의 지도 아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운반되고 있을 때 웃사가 손을 뻗어 그 궤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만지고자 한 뻔뻔스러움 때문에 그는 즉시 죽임을 당하였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고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자 돌이켰을 때 명령이 주어졌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출 3:5, 6).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3-15).

지상에서 하나님의 거처의 상징이 되었던 성소와 성전에서, 한 칸은 그분의 임재하심에 바쳐졌다. 그룹을 수놓은 그 입구의 휘장은 한 사람 외에는 어떤 사람의 손으로도 들려져서는 안 되었다. 그 휘장을 들어올리고 명령 없이 지성소의 거룩한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이었다. 왜냐하면 속죄소와, 머리 숙여 경배하고 있는 천사들 위에 지극히 거룩하신 분의 영광, 어떤 사람도 쳐다보고는 살 수 없는 영광이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285 지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지정된 일년 중 한 날에 대제사장은 향의 구름이 그의 눈에서 영광을 가리우고 있는 동안 떨면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들어갔다. 성전 뜰 전역에는 모든 소리가 조용해졌다. 어떤 제사장들도 제단에서 봉사하지 않았다. 경배자의 무리들은 침묵의 두려움 속에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자비를 얻고자 탄원을 보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20).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99:1-3).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시 11:4, 102:19).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시 33:14, 15, 8).

사람이 탐구함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어떤 사람도 그분의 영광을 감추고 있은 휘장을 뻔뻔스런 손으로 들어올리고자 시도하지 말라.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그분의 능력이 숨겨져 있은 것은 자비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감추고 있는 휘장이 들려진다는 것은 죽임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마음도 전능하신 분께서 거하시고 역사하시는 비밀을 꿰뚫을 수 없다. 286 그분께서 계시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시는 범위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있다. 이성(理性)은 자기보다 우월한 하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마음과 지성은 위대하신 자존자(自存者)께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계시하심GG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알 필요가 있거나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분의 아들의 생애와 품성으로 계시되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와 하나가 되시고 동시에 죄 많은 인간들에게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일에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입으셨다. 그분께서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하셨다. 그분께서는 음식으로 지탱되셨고 수면으로 생기를 얻으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운명을 함께 나누셨다. 그러나 그분은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서, 곧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체류자이셨으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오늘날의 남녀들처럼 시험과 시련을 받으셨지만 죄와 상관없는 생애를 사셨다.

부드럽고 인정 많고 동정 깊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사려 깊으신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셨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고 계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6, 26).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마 5:44, 45; 눅 6:35, 36).

287 십자가의 영광GG 사람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십자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 완전한 의미는 혀로 말할 수 없고,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쳐다봄으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할 뿐이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구원의 과학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34; 히 7:2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여기에 무한한 지혜, 무한한 사랑, 무한한 공의, 무한한 자비, 곧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롬 11:33)이 있다.

우리가 온갖 축복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선물을 통해서이다. 288 그 선물을 통하여 여호와의 선하심의 물줄기가 끊임없이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다. 섬세한 색깔과 달콤한 향기를 가진 각종 꽃도 그 한 선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 해와 달은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어떤 별도 그분께서 만드시지 않은 것은 없다. 우리의 식탁 위에 놓이는 어떤 식료품도 그분께서 우리의 생계를 위해 제공하지 않으신 것은 없다. 그리스도의 표제(表題)가 그 모든 것 위에 있다. 모든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선물, 곧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하여 사람에게 공급된다. 이 모든 풍요가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로 흘러가게 하고자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의 열매는 초자연적인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다. 그 열매는 죽음의 해독제였다. 그 잎사귀들은 생명의 지탱과 불멸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에게 만지지 못하도록 금지되었던 열매를 먹었다. 그의 범죄는 우리 인류에게 불행의 수문을 열었다.

죄가 들어온 후 하늘의 농부께서는 생명의 나무를 하늘의 낙원으로 옮겨 심으셨다. 그러나 그 가지는 담을 넘어 아래 세상으로 늘어졌다.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하여 우리는 여전히 생명을 주는 그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분께 순종하면 영혼을 기쁘게 하는 생명력이 주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언하신다. 289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요 6:35, 57-63; 계 2:7).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변화를 일으키는 지식GG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그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소유해야 할 지식이다. 그것은 품성의 변화를 일으키는 지식이다. 이 지식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할 것이다. 그것은 온 몸에 거룩한 영적 능력을 나누어 줄 것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고후 3:18).

구주께서는 당신 자신의 생애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15:10, 8:29). 예수께서 인성을 입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그렇게 되도록 의도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구주께서 생애하신 순결하고 고결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

바울은 말한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4-19).

추상적인 지식의 위험

290 거짓 과학은 사단이 하늘 조정에서 사용한 매개물들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도 그가 사용하고 있다. 그가 천사들에게 한 거짓 주장들과 그의 교묘한 과학적 이론들은 많은 천사들을 꾀어 충성심을 버리게 하였다.

하늘에서 있을 곳을 잃어버린 사단은 우리의 첫 조상에게 그의 유혹을 제시하였다. 아담과 하와는 원수에게 굴복하였고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류는 하나님과 멀어졌다. 그리하여 땅은 하늘과 분리되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나무를 결코 만지지 않았다면 주께서는 그들에게 지식, 죄의 저주가 없는 지식, 그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가져다 줄 지식을 나누어 주셨을 것이다. 그들이 불순종으로 얻은 모든 것은 죄와 그 결과를 아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의 기만들GG 사단이 우리의 첫 조상을 이끌어 간 곳은 그가 오늘날 사람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 곳과 동일하다. 그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우화들로 세상을 범람시키고 있다. 그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우리는 큰 빛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소위 빛이라고 불려지는 많은 것이 사단의 지혜와 술책을 위한 길을 열고 있다. 참인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많은 기도로써 주의 깊이 심사숙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럴듯한 원수의 계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류의 길은 빈번히 진리의 길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성결과 하늘로 인도하는 길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291 그러나 성령에 의하여 빛을 받은 마음은 그것이 옳은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식별할 수가 있다. 얼마 후에는 그 두 길이 크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나타난다.

범신론의 이론GG 우리 백성들 사이에 이미 강신술의 가르침이 들어오고 있는데 거기에 마음을 두는 자들은 신앙에 손해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천연계에 두루 퍼져 있는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하는 이론은 가장 간교한 사단의 속임수 중 하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고 그분의 위대하심과 존엄하심을 욕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범신론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분의 진리의 빛은 이 이론들이 영혼을 파멸시키는 매개물들임을 보여 준다. 흑암이 그 요소이며 관능이 그 영역이다. 그것들은 육신적인 마음을 만족시키고 방종으로 기울여지게 한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그 이론들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죄 때문에 우리의 상태가 불가사의해졌으므로 우리를 회복시키는 능력은 초자연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악의 세력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피를 통해서만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다.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경향을 저항하고 굴복시킬 수 있게 한다. 이 능력은 하나님께 대한 강신술적인 이론을 무익하게 만든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천연계에 편만한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라면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 안에 거하실 것이고, 또한 성결에 이르기 위하여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능력을 계발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 이론들은 그것들의 논리적인 결론을 따르면 전체적인 그리스도교의 체계를 쓸어버리게 된다. 그것들은 속죄를 위한 필요를 제거해 버리고 사람을 자기 자신의 구주로 만든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이론들은 그분의 말씀을 무효로 만들고, 그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마침내 전체적인 성경을 하나의 꾸며낸 이야기로 인정하도록 인도될 큰 위험에 빠진다. 292 그들은 선행을 악행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의 위치에서 제거되고, 그들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게 된다. 독립적인 인간의 의지는 악을 저항하고 정복할 진정한 능력이 전혀 없다. 영혼의 방호벽은 무너져 버린다. 사람은 죄에 대한 방벽(防壁)이 없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의 제지가 거절당하면 사람이 어떤 깊이까지 가라앉게 될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이 강신술적인 이론들을 계속해서 신봉하는 자들은 분명히 그들의 그리스도인 체험을 망가뜨리고,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끊어지고, 영생을 잃어버릴 것이다.

회의주의로 세상을 범람케 하는 하나님과 천연계에 대한 궤변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진리를 알고 그의 성경 연구가 세상에 다가오는 것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사람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진리에서 마음들을 떠나가게 하는 타락한 원수에게서 나온 영감이다.

나는 배교와 강신술과 또한 자유 연애에서 하나님께 대한 이처럼 환상적 견해들의 결과를 보았다. 이런 가르침에 속한 자유 연애의 경향은 너무도 잘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참 성격을 밝혀 내기가 어려웠다. 주께서 그것을 나에게 제시해 주시기 전에는 나는 그것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부정한 영적 사랑이라고 부르도록 지시를 받았다.

1844년 이후의 광신GG 1844년의 시기를 지난 후에 우리는 온갖 종류의 광신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강신술의 이론들을 주장하는 몇 사람들에게 전해 줄 책망의 증언들을 받았다.

하나님에 대한 거짓 사상들을 전하는 데 활동적인 자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진리를 무효로 만들고 있다는 빛이 내게 주어졌다. 293 나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인 이론들을 제시함으로 영혼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는 교훈을 받았다.

나는 그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의 사업의 본질을 그들 앞에 펼쳐 주었다. 주께서는 그들의 위험을 그들 앞에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나에게 힘을 주셨다. 다른 여러 견해들 가운데서 그들은 일단 성화된 자들은 결코 범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은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아름답게 단장된 이론들의 해독을 깨달을 수 없는 자들에게 강신술의 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거룩해졌다는 교리는 성화된 자들의 애정이 결코 곁길로 갈 수 없다는 신조를 갖게 했다. 이 신조의 결과는 비록 성화 되었다고 공언하지만 생각과 생활이 순결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의 마음의 악한 욕망의 성취를 초래했다.

불경건한 가르침에는 죄의 행위가 뒤따른다. 그것은 거짓의 아비에게서 나온 미혹의 미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아 만족의 불순한 완고함을 초래한다.

이것은 모든 천연계에 편만해 있는 비인격적인 하나님에 관한 교리와 그와 유사한 오류들을 가르치고 있는 자들을 책망하도록 내가 부름을 받은 경우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거의 경험들이 반복될 것임GG 과거의 경험이 반복될 것이다. 미래에는 사단의 미신들이 새로운 형태를 취할 것이다. 오류들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비위를 맞춰 주는 모양으로 제시될 것이다. 빛의 옷을 입은 거짓 이론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제시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속이고자 애쓸 것이다. 가장 크게 미혹시키는 감화가 발휘될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은 최면술에 걸리게 될 것이다.

홍수 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 것과 유사한 온갖 종류의 타락이 사람들의 정신을 사로잡기 위해 도입될 것이다. 294 천연계를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 제어되지 않은 인간 의지의 방종, 경건치 않은 자들의 권면, 이것들은 사단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편들이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정신력으로 정신을 지배하려 들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생각은 사람들이 사단의 기만적인 영향 아래서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결 없이 경건의 모양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실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기만적인 오류의 부스러기를 먹고 살아간다.

사단의 대리자들은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뱀을 통하여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우리의 첫 조상에게 숨겼던 것처럼 매력적인 의상(衣裳)으로 거짓 이론들을 가리고 있다. 이 대리자들은 사실상 치명적인 오류를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하고 있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우화들을 택하는 자들에게는 사단의 최면술의 감화가 머무를 것이다.

사단이 올무를 놓고자 가장 끈기 있게 애쓰는 대상은 가장 크게 빛을 받은 자들이다. 그는 만일 그들을 기만할 수만 있으면 그들이 그의 통제 아래 죄를 의의 두루마기로 옷 입히고 많은 사람을 곁길로 인도할 것을 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라. 사단이 빛의 천사처럼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의 집회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에서 사람들을 그의 편으로 가담시키고자 애를 쓰면서 걸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갈 6:7)라는 경고를 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감정적인 신앙을 경계하라GG 이 시대에 우리는 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 원칙에 확고하고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하다.

295 나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롭고 환상적인 교리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훈 받았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추측들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 디모데에게 준 다음의 명령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2-5).

그대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걸어가라. 그대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신앙은 감정적인 신앙이 아님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추상적인 교리와 이론들을 위한 입맛을 돋구게 하는 짐을 아무에게도 지우지 않으셨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가르침에서 이런 것들을 제거해 버려라. 그것들이 그대들의 경험 속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말라. 그대들의 평생 사업이 그것들 때문에 망가지지 않게 하라.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경계GG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경계가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나타나 있다. 사도는 신자들의 마음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말한다. 그는 또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2-10).

296 나는 우리 백성들에게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스도를 따르자. 그분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의 모본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런 관념들을 안심하고 버릴 수가 있다. 나는 우리의 목회자들에게 그들의 발이 영원한 진리의 기초 위에 놓여 있음을 확신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그대가 충동을 따르면서도 어떻게든 해서 그것을 성령이라고 부를까 조심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 위험에 처해 있다. 나는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해지고 그들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을 현재의 의무에서 돌아서게 함GG 원수는 이 마지막 날에 서도록 한 백성을 준비시키는 사업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의 궤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대의 위기와 의무에서 떠나가게 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요한에게 주신 빛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평가한다. 그것들은 우리 앞에 있는 장면들이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것들은 하늘에서 온 진리를 효력 없게 만들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그들의 과거의 경험을 빼앗아 버리고 그 대신에 거짓 과학을 그들에게 준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렘 6:16).

297 아무도 우리의 믿음의 기초, 곧 우리의 사업의 초기에 경건한 말씀의 연구와 계시에 의하여 놓여진 기초를 헐어 버리고자 시도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과거 50년 동안 이 기초 위에서 세워져 왔다. 사람들은 그들이 새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미 놓여져 있던 것보다 더 튼튼한 기초를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큰 기만이다. 어떤 사람도 이미 놓여진 것 이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는 없다.

지난날에 많은 사람들이 새 믿음의 건축, 새 원칙의 설립에 착수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것이 얼마나 오래 서 있었던가? 그것은 곧 무너졌다. 영원한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제자들은 사람들의 말에 맞서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거짓 이론들을 들은 후에 모든 것을 대처하고 굳게 서서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고전 3:11)다 라고 말해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와 같이 우리도 처음 믿을 때에 확실했던 것을 끝까지 굳게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이 백성에게 능력의 말씀을 보내시고 그들을 세상에서 나오게 하여 현대 진리의 밝은 빛 가운데로 일일이 이끌어 가셨다. 하나님의 종들은 거룩한 불에 접촉된 입술로 기별을 선포했다. 거룩한 어조는 선포된 진리의 순수함에 그 인을 쳤다.

솔직한 증언의 재생GG 주께서는 지나간 시대에 있었던 솔직한 증언이 재생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영적 생명의 재생을 요구하신다. 그분의 백성들의 영적 활력은 오랫동안 동면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죽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부활이 있어야 한다.

기도와 죄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왕의 대로를 청결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우리는 오순절의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이 올 것이다. 298 주께서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능력으로서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시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진리의 지식을 가진 각 사람은 깨어서 그 자신을, 몸과 영혼과 심령을 하나님의 훈련 아래 두어야 한다. 원수가 우리의 뒤를 밟고 있다. 우리는 눈을 넓게 뜨고 그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우리는 예언의 신을 통하여 받은 지시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사랑하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강력한 기만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교회에 보낸 증언들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차지하고 있어야 할 현재의 의무와 위치를 분명하게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된 책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주어진 경고들은 유의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무시한다면, 우리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자들에게 진짜 대신에 가짜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간청하는 바이다. 인간의 이성이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진리가 차지해야 할 자리를 대신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믿음과 사랑을 불붙이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오류의 이론들이 영원한 진리의 기초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할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실한 권위 위에 기초를 둔 기본적인 원칙들을 굳게 붙들도록 요구하신다.

처음 사랑을 찾으라GG 진리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냉혹하고 비판적인 정신이 들어왔다. 그들은 날카롭고 비평적이며 흠잡기에 민감하다. 그들은 그들의 의견에 맞지 않는 자들에게 선고를 내리기 위하여 재판석으로 올라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회개로써 그분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의 죄를 자백하기를 요구하신다. 299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5). 그들은 첫째 자리를 위하여 다투고 있으며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정신에 대하여 또한 똑같이 위험한 감상주의적인 거짓 종교에 대하여 나는 경고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조심하라. 그대들의 지도자가 누구인가? 그리스도이신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인가? 스스로를 살펴보고 그대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한지의 여부를 확인하라.

우리의 안전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GG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이 말씀이 우리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귀중한 진리로 가득한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식의 알파와 오메가, 곧 시작에서 끝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딤후 3:16, 17) 한다. 성경을 그대의 교과서로 삼으라. 모든 사람이 그 교훈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우리의 목사들과 의사들과 모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그분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을 연구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이 교훈들은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만 얻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언하셨다. 30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47-63).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라고 요구하신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 거기에 동화되고 그것을 모든 행동의 일부, 모든 품성의 특성의 일부로 삼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의 신앙이 하늘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그들은 이상한 길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감상주의와 흥분의 종교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천사들 앞과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강하고 언행이 일치된 그리스도인 품성을 가진 자로 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 속에 제시된 그대로, 우리는 진리의 금 향로 속에 영혼들을 깨우치고 회개시킬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선포하기 위하여 오신 진리들을 그분의 단순성 그대로 제시하라. 그리하면 그대의 기별의 능력이 사실 그대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고 성경에도 기초되지 않은 이론들이나 시험거리들을 제시하지 말라. 우리는 제시해야 할 중요하고 엄숙한 진리들을 가지고 있다. “기록되었으되”는 모든 사람의 심령에 깊이 새겨져야 할 시금석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평안에 속한 것들을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다. 자비의 음성이 부르는 소리가 여전히 들릴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301 안식을 발견하고 영구적인 행복을 얻는 것은 영적 생명이 주어지는 때뿐이다. 우리는 사나운 폭풍과 태풍 속에서도 “나에게 있는 닻 튼튼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가자.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말씀을 찾자. 우리는 인간의 방법들을 충분히 경험해 왔다. 세속적인 과학으로만 훈련을 받은 마음은 하나님의 사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일한 마음이 거듭나고 성화되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정결해진 정신과 마음만이 하늘의 사물을 분별할 수 있다.

형제들이여,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들의 의무에 대하여 눈을 뜨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마음을 성령의 능력에 굴복시켜라. 그리하면 그 마음들은 말씀의 가르침에 민감해질 것이다. 그 때에 그대들은 심오한 하나님의 사물을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성령의 깊은 감동하에 이끌어 주시기를 바란다. 그분께서 그들을 지도하셔서 그들이 깨어 일어나 그들의 위험을 깨닫고 지구상에 다가오고 있는 일을 위하여 준비하게 되기를 바란다.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라GG 주께서는 마지막 날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필요할 것으로 보신 주제들을 요한에게 열어 보이셨다. 그분께서 주신 교훈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이 책에 나타난 진리에 깊은 흥미를 보일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계시하신 놀라운 일들을 분명하게 밝혀 주기 위하여 말과 글로써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1-3).

302 요한계시록에서 차례로 주어진 엄숙한 기별들은 하나님 백성들의 마음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우리의 주의를 빼앗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귀중한 시간이 신속하게 지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에 보내 주신 기별을 전파하는 데 사용해야 할 시간을 도둑맞을 위험에 처해 있다. 사단은 영원한 사물과 관계가 있는 진리들을 연구하는 데 바쳐져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다른 데로 돌려지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

그리스도의 증언, 가장 엄숙한 특징을 가진 증언이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하여 가장 귀중하고 고상한 약속들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가장 두렵고 엄숙한 의미를 가진 경고들이 있다.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주신 증언을 읽지 않을 것인가? 여기에는 아무런 억측도 없고 과학적인 기만도 없다. 여기에는 우리의 현재와 장래의 행복에 관한 진리들이 있다. 어찌 쭉정이를 곡식에 견주겠는가?

303 사데 교회에 보내는 기별GG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1-6).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GG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7-12).

304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별GG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14-22).

주께서는 곧 오실 것이다. 시온의 성벽 위에 있는 파수꾼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들의 책임에 대해 깨어 있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할 파수꾼, 밤의 시간을 알릴 파수꾼을 찾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남녀들이 죽음의 잠을 자지 않도록 그들을 혼수상태에서 깨울 파수꾼들을 찾고 계신다.

교육에서의 허위와 진실

305 악의 동맹체를 지배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완전히 시계(視界)에 채우고자 언제나 역사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길이니 너희는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도록 꾀한다. 교육 과정들을 통하여 그는 하늘의 빛을 흐려 버리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다.

철학적인 추상적 사변(思辨)GG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적인 추상적 사변과 과학적인 탐구가 수많은 젊은이들을 회의론자로 만들고 있다. 오늘날의 학교에서 학자들의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얻은 결론들이 주의 깊이 교수되고 충분하게 설명되고 있는데, 만일 이 학자들이 옳다면 성경은 옳을 수 없다는 인상이 분명하게 주어진다. 회의론은 인간의 마음에 매력적이다. 젊은이들은 그 속에서 상상력을 사로잡는 자주성(自主性)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만당한다. 사단은 승리한다. 그가 의도했던 그대로 된다. 그는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뿌려지는 씨앗 하나를 기린다. 그는 그것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게 한다. 그리하여 미구에 불신의 풍성한 수확이 거두어진다.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회의론의 씨앗을 뿌릴 때 그처럼 큰 위험이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악으로 기울여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유혹을 저항하는 힘을 마음에서 빼앗는다. 그것은 죄에 대한 유일한 참 안전책을 제거해 버린다.

우리는 스콜라 철학의 학교들이나 소위 “고등교육”을 위한 학교들을 세워서는 안 된다. 우리의 위대함은 매일의 생활에서 단순하고 실제적인 경험에 의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데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을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으로 모셔들일 필요가 있다.

306 불신앙의 저자들GG 많은 사람들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불신앙을 가르치는 저자들의 작품들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작품들이 어떤 밝은 사상의 보석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런 사상의 보석들을 창시한 자가 누구였던가? 하나님, 오직 하나님뿐이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빛의 근원이시다. 모든 진리가 우리의 손에 들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은 양의 지적 진리를 위하여 왜 우리는 이교도들과 불 신앙의 사람들의 작품 속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오류들 사이를 걸어서 지나가야 할 것인가?

이 사람들이 때때로 놀라운 지혜를 발휘하는 이유가 있다. 사단은 하늘 조정에서 직접 교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악에 대한 지식과 마찬가지로 선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다. 그는 귀중한 것들과 부도덕한 것들을 혼합시키기 때문에 속일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사단이 하늘의 광채로 옷을 입었다 해서 우리가 그를 빛의 천사로 영접할 것인가? 유혹자는 그의 방법을 따라 교육을 받고, 그의 정신으로 고무되고, 그의 사업에 적응된 대리자들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과 협력할 것인가? 우리가 그의 대리자들의 작품들을 교육을 받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그런데 젊은이들의 교육이 주로 이교도들과 무신론자들과 불 신앙의 사람들의 가르침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는 동안,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원칙들을 고수하고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계발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만일 불신앙의 사람들의 빛나는 사상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데 바쳐진 시간과 노력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귀중한 것들을 연구하는 데 바쳐졌다면, 오늘날 흑암과 죽음의 그늘 속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빛 되신 분의 영광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307 역사와 신학 지식GG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신학의 저서들을 많이 수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런 저서들의 연구가 사람들과 접촉하는 법을 배우는 일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나는 이런 책들 중 어떤 것들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꽂혀 있는 선반들을 볼 때, 왜 양식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35, 63)고 말씀하신다.

정죄받지 않아야 할 역사의 연구가 있다. 거룩한 역사는 선지자의 학교에서 공부한 학과들 중 하나였다. 나라들을 취급하신 그분의 행동의 기록에서 여호와의 발자취가 추적되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 나라들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예언의 성취를 보고, 위대한 개혁 운동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役事)를 연구하고,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을 위하여 나라들이 집합하는 사건들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이런 책들을 연구하는 자들의 동기가 정신이나 영혼을 위한 양식을 얻고자 하는 데 있지 않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로 더불어 친숙해지고자 하는 일종의 야망, 그리스도교를 박식한 말과 주장으로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욕망에 있다.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나의 온유와 겸손을 내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대의 지적 교만은 생명의 떡이 없어서 죽어 가는 영혼들과 교통하는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308 이런 책들을 연구하므로 그대는 그대가 위대한 교사로부터 배우고 있어야 할 실제적인 교훈들을 정신과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대신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런 연구의 결과로 백성들은 굶주리게 된다. 정신을 그처럼 피곤하게 하는 공부와 연구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영혼들을 위해 성공적인 일꾼을 만들어 주는 무엇인가가 주어지게 된다.

생애를 소박하고 평범한 일로 보내는 남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훈에서 주신 것처럼 단순한 말, 쉽게 이해되는 말이 필요하다. 구주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 그리고 “백성이 즐겁게 들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자들은 그분께서 주신 교훈들을 보다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교육에서 최고의 것이다. 교양인처럼 보이는 자들의 취향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궁구해 낸 어법들은 표적에서 벗어난다.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자들은 생명의 떡을 먹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그들에게 영적인 힘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봉사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경건, 곧 교회의 영적 힘은 하늘에서 내려 온 떡을 먹음으로써 유지된다.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우리는 참된 경건의 단순함을 배워야 한다.

신화와 동화GG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교육에서 동화와 신화와 가공적인 이야기들이 오늘날 큰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성격의 서적들이 학교에서 사용되고, 그것들이 많은 가정에서도 발견된다. 어떻게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처럼 거짓으로 충만한 책들을 사용하도록 자녀들에게 허락할 수 있는가? 자녀들이 부모들의 가르침과 너무도 반대되는 이야기들의 의미를 물어 보면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 라는 대답이 주어진다. 309 그러나 이런 대답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나쁜 결과들을 씻어 버리지는 않는다. 이런 책들 속에 나타난 사상들은 어린아이들을 잘못 이끈다. 그것들은 인생에 대해 거짓된 견해를 제공하고,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욕망을 낳아서 기르게 한다.

이 시대에 그런 책들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은 사단의 간교한 계책들 중 하나이다. 그는 세상에 다가오고 있는 일들을 위해 준비하는 큰 사업으로부터 늙은이와 젊은이들의 마음을 떠나가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범람시키고 있는 영혼을 파멸시키는 기만들에 의하여 우리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쓸려가 버리게 하고자 의도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의 안전책이 될 진리의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그들을 방해한다.

진리를 왜곡시키는 내용으로 된 책들을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 앞에 결코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성숙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괜찮을 경우일지라도 그들에게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깨끗한 샘 근원GG 우리는 진실한 것과 거룩한 것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다. 지식에 목마른 자들은 더렵혀진 샘 근원으로 갈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통하여 진리의 원칙들을 제시하셨다. 그분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전에 발표한 어떤 것보다 훨씬 능가하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므로 다른 모든 발견의 배경을 만들 수도 있으셨다. 그분께서는 신비를 차례로 여시고, 이 놀라운 계시의 주변에 시대의 끝까지 계속되는 세대의 적극적이고 진지한 사상을 집중시킬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구원의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 한 순간도 양보하고자 하지 않으셨다. 310 그분의 시간과 그분의 재능, 그분의 생명 자체는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할애되고 사용되었다.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분의 목적에서 돌아서실 수 없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딴 데로 돌아서게 하는 일을 전혀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용될 수 있는 지식만을 전하셨다.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교훈은 실제적인 생활에서 그들 자신의 상태에 필요한 것에 국한되었다. 탐색하는 질문들을 가지고 그분을 찾아오게 한 호기심은 그분을 즐겁게 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그런 모든 질문들을 엄숙하고 열렬하고 주요한 호소를 위한 기회로 삼으셨다.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자 그처럼 열광했던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제공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좁은 길 외에는 모든 길이 닫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생의 샘 외에는 모든 샘이 닫혀졌다.

우리 구주께서는 랍비들이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또한 “이미 말한 것”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해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사람도 그 당시의 랍비 학교에 다니도록 권유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보다 위대하고 분명한 지혜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의 말을 고상한 지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 앞에 제시해 주신 그대로 영원한 사물에 관하여 내가 본 것, 그리고 사람들의 연약함에 관하여 내가 본 것은 나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고 나의 생애와 품성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나는 사람이 높임을 받거나 찬양을 받거나 영광을 받아야 할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안다. 나는 세속적으로 현명한 사람들의 의견이 신뢰를 얻고 높임을 받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계몽을 받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과 길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가?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 창공에서 별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시고 해와 달이 그들의 일을 하도록 정해 주신 분에게서 즐겨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311 나는 불신앙의 저자들에게로 갈 필요가 없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길을 택한다.

마음의 교육GG 젊은이들이 그들의 지적 능력의 최고의 발달을 이루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옳은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는 교육을 제한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식이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복리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식이 최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데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과 영혼을 강하게 해 줄 지식, 우리를 보다 좋은 남녀들로 만들어 줄 지식이다.

마음의 교육은 책에서 얻는 교육보다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며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원을 우리의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

강한 적용을 요구하지만 실제 생활에는 이용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공부로 마음을 꽉 채우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런 종류의 교육은 학생에게 손실이 될 것이다. 이런 공부는 유용한 일에 적응하게 해 주고 책임을 완수 할 수 있게 해 주는 공부에 대한 욕망과 경향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만일 젊은이들이 그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이해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힘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분의 지혜 안에서 지혜롭게 될 것이며 그들의 생애는 세상에 축복의 결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순전히 세속적이요 순 이론적인 공부에 마음을 기울인 결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다면 그들은 생애를 풍요롭게 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참 지식 탐구의 중요성

312 우리는 우리가 치르고 있는 투쟁에서 계쟁점들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주신 진리의 가치와 큰 기만자에 의하여 그 진리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분리되도록 허용하는 위험을 더욱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요구된 희생의 무한한 가치는 죄가 무서운 악이라는 것 이상의 사실을 보여준다. 죄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기관은 혼란해지고, 마음은 왜곡되며 상상력은 부패해졌다. 죄는 영혼의 기능들을 타락시켰다. 밖에서 오는 유혹들은 마음속에서 하나의 공감대를 발견하고, 모르는 사이에 악을 향하여 발길이 돌아선다.

우리를 위한 희생이 완전했던 것처럼 죄의 더럽힘으로부터 얻는 우리의 회복도 완전해야 한다. 율법이 용서해 줄 악행이 없고, 율법의 정죄를 피하게 해 줄 불의도 없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율법의 모든 조항을 완전히 이루었다.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요 15:10)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생애는 순종과 봉사에 대한 우리의 표준이다.

하나님만이 마음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나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빌 2:13, 12).

우리의 생각을 요구하는 사업GG 몇 차례의 연약하고 간헐적인 노력으로는 잘못이 바로잡힐 수 없고, 품성의 개혁도 이루어질 수 없다. 성화는 하루나 일년의 과업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다. 313 자아의 정복을 위해 거룩함과 하늘을 위하여 싸우는 싸움은 평생의 싸움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부단한 활동 없이는 거룩한 생애에 발전이 있을 수 없고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을 수도 없다.

보다 고상한 상태에서 인간이 타락했다는 가장 강한 증거는 원상태로 돌아가는 데 그처럼 큰 희생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돌아가는 길은 매 시간 조금도 틀리지 않고 힘들게 싸움으로써만 얻어질 수가 있다. 한 순간의 의지의 작용으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악의 세력에 둘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속박을 깨뜨리고 보다 고상하고 거룩한 생애에 이르는 데는 한 순간의 의지의 작용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목적이 설정되고 일이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성취는 수고와 시간과 오래 참음과 인내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셀 수 없는 유혹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굳세게 저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복당한다. 우리가 우리의 사업을 완성하지 못한 채 생애의 끝을 맞게 되면, 영원한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바울의 성화는 자아와 더불어 치르는 끊임없는 싸움의 결과였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말했다. 그의 의지와 그의 욕망은 매일 의무와 하나님의 뜻으로 더불어 싸웠다. 자기 자신의 육신에 대해서는 아무리 고통스러웠을지라도 그는 기질을 따라가는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한 걸음씩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싸움이요 전진이다. 이 싸움에는 면제가 없다. 노력은 계속적이고 끈기로워야 한다. 우리가 사단의 유혹에 대하여 승리를 지속하는 것은 중단 없는 노력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실은 불가항력의 힘으로 얻어지고 확고부동한 목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을 위한 엄격하고 줄기찬 노력 없이는 향상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이 싸움을 치러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 싸움의 계쟁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314 비록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 이 땅에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 아들도 딸도 구원할 수 없었다.

통달해야 할 과학GG 통달해야 할 그리스도교의 과학,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어떤 인간적인 과학보다 더 깊고, 넓고, 높은 과학이 있다. 마음은 연단을 받고 교육을 받으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타고난 기질과는 반대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정복되어야 할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어지는 기질들이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기 위해서 때로는 일생 동안 받은 훈련과 교육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확고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유혹을 저항할 수 있게 해 줄 생각의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위를 향해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들, 하늘처럼 높고, 영원을 획득하는 원칙들을 우리는 일상 생활과 관련지어 모든 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행동, 모든 말, 모든 생각은 이 원칙들과 일치되어야 한다.

성령의 귀중한 은혜들은 한 순간에 계발되지 않는다. 용기, 견인 불발, 온유, 믿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고하게 의지하는 것 등은 여러 해 동안의 경험에 의하여 얻어진다. 거룩한 노력의 생애와 정의에 대한 확고한 고수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인 쳐야 한다.

잃어버릴 시간이 없음GG 우리는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빨리 끝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혀지려 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 자신과 세속적인 사물들로부터 우리를 끌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자.

315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일어나셔서 중보자의 옷을 입으실 때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 12)는 명령이 내릴 것이다.

그 분노가, 무지막지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우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날들의 위기는 미구에 우리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이미 그것들은 왔다. 우리는 지금 육신의 정욕과 식욕과 격정의 바로 중심부와 골수를 잘라 버리기를 위하여 주님의 칼이 필요하다.

생각을 해이하게 하는 데 바쳐친 마음들은 변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3-16). 생각들은 하나님께로 집중되어야 한다. 지금은 육신적 마음의 천성적인 기질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우리의 노력, 우리의 자아 부정, 우리의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무한한 가치에 비례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함으로써만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자아 포기의 필요성GG 사람의 큰 위험은 자기 기만에 사로잡히고, 자기 만족에 빠져서 그의 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우리의 천성적인 기질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정되지 않는 한, 그 자체 속에 도덕적인 죽음의 씨앗을 간직한다. 316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적인 연결을 이루지 않으면, 이기주의와 방종의 부정한 영향과 죄에 대한 유혹을 저항할 수 없다.

그리스도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신에 관하여 진정으로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자만이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수 있는 죄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철저하게 속수무책인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기 신뢰를 완전히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자아의 포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시작에서만이 아니다. 하늘로 향해 가는 매 발걸음마다에서 그것은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은 우리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고, 쉬지 말고 진지하게 죄를 고백하고, 그분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위험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고 믿음의 손으로 능력 많은 우리의 구원자를 굳게 붙들 때에만 안전하다.

최고의 관심사가 주의를 요구함GG 우리는 주의를 끄는 수많은 문제들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시간을 빼앗고 의문을 일으키지만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이 있다. 최고의 관심사는 너무도 흔히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바쳐지는 면밀한 주의와 정력을 요구한다.

새로운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혼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실제로 중요한 사실과 이론들을 잘 알지라도 그것들이 실제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별반 가치가 없다. 우리는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자극해 줄 양식을 우리의 영혼에 공급해 줄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스도에 관한 개인적인 지식GG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 6).

3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신 것들을 우리가 사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연구하기 위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이 시대를 위한 진리, 곧 간직하고 사랑하며, 존중하고 순종해야 할 진리인가?” 과학에 골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발견해 내고자 한 그들의 노력에서 좌절하고 실망 당했다. 이 시대에 그들에게 필요한 질문은 “우리에게 영혼의 구원을 얻게 해 줄 진리가 무엇인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루시고자 우리에게 허락해 주기를 오랫동안 강권해 온 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일을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실현시킨 방법대로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셨다. 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하므로 구주의 산 모본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겸손하고, 자아 부정적인 일꾼으로서의 그분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이다. 매일 우리는 그분의 임재에 대해 새롭게 계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의 자아 포기와 희생의 모본을 더욱 밀접하게 따를 필요가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는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 가졌던 경험이 필요하다.

품성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땅 위에서나 하늘에서 평가받는 어떤 것보다 높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최고의 교육이다. 그것은 하늘 도성의 정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의 목사들과 의사들과 교사들과 그밖에 주님의 사업의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전해 줄 기별이 있다. 주께서는 그대들에게 더욱 높이 올라오고, 더욱 거룩한 표준에 도달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대들은 여태껏 갖고자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경험을 소유해야 한다. 318 이미 하나님의 큰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희미한 지각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대들의 영혼은 기쁨으로 감격한다. 그대들은 구주의 사랑에 대하여 더욱 완전하고, 더욱 깊은 깨달음을 갈망한다. 그대들은 충족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가장 좋은 가장 거룩한 마음의 애정을 예수께 바치라. 모든 빛의 광선을 소중히 간수하라.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영혼의 모든 소망을 소중히 간직하라. 영적인 사상과 거룩한 교제를 그대들 스스로 배양하라. 그대들은 그분의 영광의 이른 새벽의 첫 광선만을 보았다. 그대들이 계속해서 주님을 알게 되면 그대들은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것들을 고백하며 용서를 얻은 후에 우리는 완전한 복음 신앙의 정점(頂點)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은 지식

319 전체적인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면, 그것은 품성의 변화에 큰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지적 계발의 유일하고 확실한 수단이다.

젊은이들과 심지어 성년층의 사람들까지도 너무도 쉽게 유혹과 죄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만큼 그것에 대하여 명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는 확고하고 단호한 의지력의 부족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교훈을 등한히 하는 데서 온다. 그들은 진지한 노력에 의하여 순결하고 거룩한 생각을 고취시켜 주는 것을 향하도록 마음을 지도하지 않고 불순하고 거짓된 것으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더 좋은 편을 택하는 자, 거룩한 교사에게서 배우기 위해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아래 앉는 자는 별로 없다. 그분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생애에서 실천하는 자는 별로 없다.

성경의 진리들을 받아들이면 마음을 세속과 타락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연할 만큼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면 노유를 막론하고 그들이 유혹을 저항할 수 있는 마음의 염직(廉直), 곧 원칙의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성경에 있는 귀중한 것들을 가르치고 기록하도록 하라. 생각과 재능과 예민한 정신력의 활용이 하나님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 사람의 추측에서 나온 철학을 연구하지 말고, 진리가 되시는 분의 철학을 연구하라.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저술은 거의 가치가 없다.

세속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데서 기쁨을 찾지 못한다. 320 그러나 성령으로 새로워진 마음에는 거룩한 책의 페이지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하늘의 빛이 비추인다. 곧 세속적인 마음에는 황량한 광야였던 것이 영적인 마음에는 생명수의 강이 있는 땅이 된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GG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할 지식이다. 제일 처음 이성의 눈이 떨어질 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생애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맨 처음 교훈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이라는 사실이어야 한다. 그들의 맨 처음 훈련은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경건하고 부드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이해에 적합하고 그들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분량만큼씩 그들에게 읽어 주고 반복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그분의 사랑과 그 위대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교육의 학문, 모든 가르침과 모든 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실제 생활에서 매일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구주께서는 젊은이들에게 매일의 동료와 친구가 되실 것이다. 모든 생각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일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도 바울처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321 체험적인 지식GG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경험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의 실체, 그분의 약속의 진실성을 스스로의 힘으로 입증했다. 그들은 맛을 보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

사랑받은 요한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소유했다. 그는 이렇게 증언할 수가 있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 1:1-3).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요 3:33)칠 수 있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증거할 수가 있다. 곧 그는 이렇게 증거할 수 있다.

“나는 도움이 필요했고,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했다. 모든 필요는 채워졌고, 나의 영혼의 굶주림도 충족되었다. 성경은 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거룩한 구주가 되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믿는다. 나는 성경이 나의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다.”

놀라운 가능성GG 하나님의 품성의 더욱 분명한 계시를 위하여 더 높이, 그리고 더욱더 높이 도달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모세가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기도했을 때, 주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32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출 33:19)고 선포하셨다.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지각을 흐리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죄가 씻겨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고 천연계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출 34:6) 분을 점점 더 완전하게 선포할 것이다.

그분의 빛 가운데서 우리는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그분의 성결의 형상으로 바뀔 때까지 빛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보증들을 굳게 붙잡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영광스러운 진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다가와 있다. 성경에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특권과 의무들이 그들 앞에 열려질 것이다. 그들이 겸손하게 순종의 길을 따르면서 그분의 뜻을 실천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점점 더 깨닫게 될 것이다.

학생은 성경을 그의 지도자로 삼고 원칙을 위하여 바위처럼 서야 한다. 그리하면 그는 학식의 어떤 높이까지도 이르고자 열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유 안에 계신 만유로 인정받지 못하셨을 때, 인간의 본질에 관한 모든 철학들은 혼란과 수치로 이끌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깨우쳐 주는 귀중한 믿음은 힘과 품성의 고결함을 나누어 준다.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사랑을 깊이 생각할 때, 진리에 대한 지각은 더욱 분명해지고, 더 한층 분명해질 것이며, 마음의 순결과 생각의 정결을 위한 욕망은 더욱 높고, 더욱 거룩해질 것이다. 거룩한 생각의 순결한 분위기에 싸여 있는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를 통하여 그분과 교통함으로써 변화를 입는다. 진리가 너무도 크고, 너무도 원대하고, 너무도 깊고, 너무도 넓기 때문에 자아는 잃어버린 바 된다. 마음은 부드러워져 겸비와 친절과 사랑에 정복당한다.

323 그리고 타고난 능력들은 거룩한 순종 때문에 확대된다. 생명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학생들은 넓어지고, 향상되고, 고상해진 마음들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요. 행하는 자가 되면, 그들은 그와 같이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향상할 것이다. 마음이 순결해진 그들은 강한 마음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 모든 지적 능력은 활기를 띨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연결될 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또한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그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들은 스스로를 교육하고 단련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결과GG 이것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통하여 얻은 체험이다. 그는 말한다.

324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시 119:1-6, 9, 30, 11, 45, 18, 24, 72, 97, 54, 129, 130, 98-104, 140, 160, 165-167, 174, 175, 111).

천연계의 연구에서 얻는 도움GG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갖는 사람은 자연 과학의 연구에 임할 준비를 이루게 된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고 기록되어 있다. 325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성결의 의복을 잃어버렸을 때 그들은 천연계를 비춘 빛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그들은 천연계를 올바로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하여 천연계는 다시 조명을 받는다.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 가운데서 우리는 천연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는 자는 성경의 신성을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다. 그는 과학에 속한 인간적인 사상에 의하여 성경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사상들을 오류가 없는 표준의 시험을 받게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진리는 결코 모순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소위 과학의 가르침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에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간의 추측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현명하고 과학적인 탐구에는 사상과 정보의 넓은 분야들이 열린다. 천연계와 사람을 취급하는 그분의 섭리에 계시된 그대로의 하나님의 길은 그리스도의 학교에 있는 모든 학생이 꺼내 갈 수 있는 보고를 이룬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참 증거는 단순히 이론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조명하고 설명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기록해 주신 확신에 있다. 그것은 성령으로 일깨워진 눈에 보이는 그분의 창조된 업적 속에 있는 산 능력에 있다.

하나님의 솜씨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위대한 사람들의 추측으로 판단하지 않는 자들은 모든 것에서 그분의 임재를 본다. 그들은 상쾌한 햇빛 속에서 그분의 미소를, 가을의 풍성한 들판에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본다. 심지어 땅을 꾸미고 있는 것들, 싱싱하게 푸른 풀, 온갖 색깔로 된 아름다운 꽃들, 숲 속의 여러 가지 키 큰 나무들, 춤추는 시냇물,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 평온한 호수는 온유하고, 자부적(慈父的)인 하나님의 보호와 그분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자 하는 그분의 욕망을 증거한다.

326 하나님의 신비들을 여는 열쇠가 되는 천연계GG 학생이 천연계의 사물들을 이와 같이 명상할 때, 진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그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위대한 천연계의 책 속에 있는 교훈들은 기록된 말씀의 진리에 대해 증거해 준다.

구속의 계획에는 인간의 정신으로 측량할 수 없는 신비들, 인간의 지혜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천연계는 경건의 오묘에 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온갖 관목, 열매를 달고 있는 온갖 나무, 모든 식물은 우리의 연구를 위한 공과들을 가지고 있다. 씨앗의 성장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들을 읽을 수가 있다.

태양과 달과 별들과 나무들과 들판의 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드러워진 마음에 격려의 말을 한다. 씨앗의 파종은 영적 파종을 마음에 가져다준다. 나무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열매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한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 심지어 가라지도 교훈을 준다. 그것은 사단이 뿌린 것이다. 그러므로 뽑아 버리지 않으면 그것들의 무성한 성장으로 알곡을 망가뜨린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여, 그대의 자녀들에게 이적을 행하고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르치라. 그분의 능력은 모든 식물에,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에 나타나 있다. 자녀들을 정원으로 데리고 가서 그분께서 어떻게 씨앗을 자라나게 하시는지 설명해 주라. 농부는 땅을 쟁기질하고 씨앗을 뿌린다. 그러나 그는 씨앗이 자라게 할 수는 없다. 그는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 주께서는 당신 자신의 영을 씨앗 속에 넣어 주시고, 그것이 생명으로 돋아나게 하신다. 그분의 보호 아래 배종(胚種)은 그것을 둘러싸 있는 껍질을 깨뜨리고 움을 트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다.

어린이들이 천연계의 위대한 교과서를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실 것이다. 327 그들이 그분께서 씨앗을 위하여 하시는 일에 대하여 들을 때, 그들은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비결을 배운다. 올바르게 이해하기만 하면 이 교훈들은 창조주께로 인도하고, 마음을 하나님과 밀접하게 접속시켜 주는 단순하고 거룩한 진리들을 가르쳐 준다.

순종의 교훈GG 천연계는 천연계를 위한 하나님의 법칙들을 순종한다. 구름과 폭풍, 햇빛과 소나기, 이슬과 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감독을 받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하여 곡물의 싹은 땅을 뚫고 나와서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마 4:28)이 된다. 열매는 처음에 꽃봉오리 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역사하심을 거역하지 않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것을 적절한 시기를 따라 자라게 하신다. 마찬가지로 새들도 무한한 능력의 손으로 지도를 받아 무궤도의 공중을 통과하여 대륙간의 긴 이동을 할 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이성과 언어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홀로 그분의 선물에 감사하지 않고 그분의 법칙에 불순종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고상하고 고결해져서 그분과 협력하는 자가 되기에 적절한 자들이 품성이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 우리의 세상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겠는가? 하나님이 값으로 사신 유업에 속한 몸과 영혼들이 세상에 속한 습관과 불결한 행실로 괴롭힘을 당할 것인가? 그들은 모든 것을 선하게 결론지어 주신 분,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불완전한 사람이 마침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라는 그분의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신 분의 아름다움을 반영하지 않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에서 순종의 교훈을 배우도록 우리에게 바라신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욥 12:7-9, 13).

328 “복 있는 사람은…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천연계의 책과 기록된 말씀은 서로 빛을 비추었다. 둘 다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께서 역사하시는 법칙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알게 해 준다.

미래의 생애에 있을 교육 이 땅에서 시작된 교육은 이생에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을 통하여 진행되고, 언제나 향상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들, 우주를 창조하고 지탱하시는 데 나타난 그분의 이적적인 능력의 증거들은 새롭고 아름다움으로 마음 앞에 펼쳐질 것이다. 보좌에서 비취는 빛 가운데서 신비들은 사라지고, 심령들은 이전에 결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의 단순함을 보고 경이(驚異)로 충만해질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우리를 아신 것 같이 우리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의 큰 필요

329 품성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우리에게 크게 필요하다. 우리가 그분의 목적을 이루려면, 그분의 말씀의 교훈에 일치되는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생애에 있어야 한다.

에녹과 침례 요한의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는 이 사람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과 그리스도의 초림 전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의 생애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에녹의 경험GG 에녹에 관해서는 그가 65년간 살면서 아들을 낳았고, 그 후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의 세월 동안, 에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켰다. 그러나 첫 아들의 출생 이후로 그는 더욱 높은 경험에 이르렀고,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에 들어갔다. 그가 아버지에 대한 그 아이의 사랑, 그의 보호에 대한 그 아이의 단순한 신뢰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첫 아들에 대한 깊고 애절한 마음의 부드러움을 느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께 신뢰할 수 있는 확신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밤낮으로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다. 심령의 열정을 다하여 그는 그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애를 썼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이나 이상 가운데가 아니고 일상 생활의 모든 의무 가운데에서였다. 그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킨 은둔자가 되지 않았다. 330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 친구로서 시민으로서 그는 확고부동하고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세기가 지나감에 따라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그의 사랑은 더욱 열렬해졌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았다. 그는 하늘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장래의 광경들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을 때 에녹은 의의 전도자가 되어 경고의 기별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다. 가인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도망하고자 했던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의 눈앞에 지나간 놀라운 광경들을 알렸다. 그는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 15)고 선언했다.

하나님의 종에게 역사한 하나님의 능력이 듣는 자들에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경고에 유의하고 그들의 죄를 버렸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그 엄숙한 기별을 조롱했다. 하나님의 종들은 마지막 날에 동일한 기별을 세상에 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별 역시 불신과 조롱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인간의 범죄의 조류는 점점 더 깊어졌고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은 점점 더 짙게 몰려왔다. 그러나 믿음의 증인 에녹은 자기의 길에 굳게 서서 범죄의 조류를 물리치고 복수의 분출을 저지시키고자 경고하고, 탄원하고, 가르치며 애쓰고 있었다.

그 세대의 사람들은 금이나 은을 모으거나, 이 땅에서 소유물을 축적하고자 하지 않는 그 사람의 어리석음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영원한 보화에 있었다. 그는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온의 한 가운데서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보았다. 존재하는 죄악이 커져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집을 바라는 그의 열망은 더욱 열렬해졌다. 331 아직도 지상에 있으면서도 그는 믿음으로 빛의 왕국 안에서 살았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300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마음의 순결을 추구해 왔다. 3세기 동안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날마다 그는 더욱 밀접한 연합을 갈망했고, 그 교통은 점점 더 가까워져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께로 데리고 가셨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 어귀에 서 있었고, 그와 축복의 땅과는 한 걸음만이 남았다. 이제 문은 열렸고 지상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진행되었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그대로 계속되어 그는 거룩한 도성의 정문을 통과하였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 곳에 들어간 첫째 번 사람이 되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교통을 요구하고 계신다. 주님의 재림 때에 사람들 사이에서 구속받을 자들의 품성의 성결은 에녹의 품성처럼 되어야 한다.

침례 요한의 경험GG 침례 요한은 그의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을 배웠다. 그는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했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 아래 그는 선지자들의 두루마리 책들을 연구했다. 밤낮으로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영광스런 이상(異像)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그는 그리스도를 그의 연구, 그의 명상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바라보고 자아를 잃어버렸다. 그는 거룩함의 위엄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이 부족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선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의 안에 서야 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 기별의 전달자로서 나갈 준비를 갖추었다. 332 그가 하나님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떨면서 만왕의 왕 앞에 머리를 숙였기 때문에 세상의 주권자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설 수가 있었다.

요한은 정교한 이론이나 너무도 세밀한 학설을 가지고 그의 기별을 선포하지 않았다. 너무도 놀랍고 엄격하면서도 희망으로 가득한 그의 음성이 광야에서 들렸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새롭고 이상한 힘을 가지고 그 음성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온 나라가 흔들렸다. 무리들이 광야로 몰렸다.

주변의 시골에서 온 무식한 농부들과 어부들, 헤롯의 병사(兵舍)에서 온 군인들, 반역의 기미로 보이는 어떤 것이라도 쓰러뜨리고자 준비를 갖추고서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는 두목들, 세금 징수소에서 온 욕심 많은 세리들, 산헤드린에서 온 경문을 넓게 한 제사장들, 이 모두가 마치 넋을 잃은 듯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 심지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냉랭하고 감수성이 없는 조소자들까지도 조롱을 그치고 돌아갔으며 그들의 죄에 대한 의식으로 가슴이 사무쳤다. 헤롯은 그의 왕궁에서 그 기별을 들었고, 교만하고 죄로 굳어진 그 통치자는 회개하라는 호소에 떨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직전에, 요한의 사업과 같은 그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큰 날에 설 수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킬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공중 봉사 전에 있었던 기별은 “세리와 죄인들이여, 회개하라. 바리세인과 사두개인들이여, 회개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믿는 한 백성으로서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 4:12)고 증거해야 할 기별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기별은 요한의 기별처럼 직설적이어야 한다. 그는 왕들의 범죄에 대하여 그들을 책망했다. 333 생명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우리의 사업도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요한이 전한 것과 같은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경험과 같은 영적 경험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바라봄으로 자아를 잃어버려야 한다.

요한은 천성적으로 인간에게 공통적인 결점과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그를 변화시켰다. 그리스도께서 봉사를 시작하신 후에 모든 사람들이 새 교사를 따르고 있다는 불평을 가지고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로 왔을 때, 그는 메시야와 자신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로 분명히 이해했는지, 그리고 그가 길을 예비한 분을 어느 정도로 기쁘게 영접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말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7-30).

믿음으로 구속주를 바라봄으로 요한은 자아 포기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고자 노력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의 어린양에게로 쏠릴 때까지 그들의 사상을 점점 더 높이 끌어올렸다. 그 자신은 광야에 있는 하나의 소리, 하나의 외침에 불과했었다. 이제 그는 기쁨으로 모든 사람의 눈이 생명의 빛 되신 분에게로 향할 수 있도록 침묵과 무명인(無名人)의 상태를 받아들였다.

하나님을 위한 기별자로서의 그들의 부르심에 성실한 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영광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자아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 삼켜질 것이다. 334 그들은 침례 요한처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선포하는 것이 그들의 사업임을 인정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그분과 함께 인간도 높여질 것이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자아가 비워진 선지자의 심령은 하나님의 빛으로 채워졌다.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과 거의 같은 말로 그는 구주의 영광에 대하여 증거했다. 그는 말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1-34).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이 영광에 동참해야 한다. 구주께서는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요 5:30)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요한은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자아를 즐겨 비우고자 할 때만이 하늘의 빛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고자 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께서 한량없이 주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골 2:9, 10)진다.

335 하나님의 약속들GG 자아를 즐겨 낮추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들이 주어져 있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출 33:19).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엡 3:20, 1:17, 3:18, 19).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여 받아들이게 하시는 지식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