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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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33 호 - 교회증언

-3장 -

교회의 연합과 사랑

477 힐즈버그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사단이 교회를 상대로 준비한 가장 위험한 올무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지 않고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교인들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 사단은 자기 자신을 형제들 사이에 끼어들고자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그는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지배하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그가 그들의 육신적 본성을 통하여 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그와 연합할 수 있게 할 수 있으면 그는 기뻐 날뛴다.

건강 기관, 대학, 목회, 선교 단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기구들이다. 만일 사단이 이런 기구들로부터 인재들과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무엇인가를 고안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스스로 기만당하는 몇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노라고 스스로 자고하고 있지만, 그들은 큰 기만자의 손안에 들어가 이용당하고, 그에게 효과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이런 기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그리스도인 공언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언제나 기억하라. 그리고 개인의 독자적 위치를 구축함으로써 그대의 영향이 하나님의 목적에 반대되는 역할을 하고, 그대가 사단의 계책에 의하여 약하고 주저하는 자들의 길에 거치는 돌이 될까 조심하라. 478 우리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하고, 진리를 믿는 신자들을 조롱할 기회를 줄 위험이 있다.

원수의 손에 쥐어진 도구가 되어 어떤 사람들-남녀들과 어린이들-의 마음을 하나님과,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한 사업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일에서 떠나게 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라. 젊은이들에게 재정적 이득의 전망, 훌륭한 교육적 혜택, 개인적 큰 업적 등을 계속해서 제시함으로 우쭐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첨하는 말이 듣기 좋다. 그리고 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결코 성취될 수 없는 희망으로 현혹되고, 기만당하고, 도취되어 버린다. 이와 같은 길을 통하여 큰 잘못이 범해진다. 모든 사람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에 관하여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교만과 자부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남녀들은,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면, 도덕적 능력이 약해지고, 인간의 능력에 관하여, 또한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성실성을 이루게 되는지에 관하여 평가하는 일에 완전히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기관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관심을 약화시키는 어떤 권유도 하지 말라.

A 형제는 모든 경우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좋은 판단력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균형이 잘 잡혀 있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걸어가지 않는 한 그는 위험한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는 분별력이 없으므로 품성을 그릇되게 판단하고, 어떤 사람들의 영혼을 해치는 과장된 아첨의 말들을 그들에게 한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어떤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길에 바로 놓여있는 의무들을 등한히 할 것이다.

나는 활동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 않고, 이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정신을 극복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교인들의 유익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활동에 조화와 연합을 가져다 주는 사업은 어떤 것이나 안전하게 착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신자들의 연합을 위하여 열렬하게 일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 연합을 반대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거나 둘 중 하나임을 결코, 결코 잊지 말라.

479 힐즈버그의 학교와 그 어떤 분야의 선교 사업을 약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지 않고, 허약하게 만들고 파멸시키는 목적을 가진 다른 대장의 지도 아래 일하고 있다. 힐즈버그 교회의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의 유용성은 그대들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솔직해지기를 요구한다. 그대들이 겸손하고, 거룩하고, 정결하기를 요구한다. 교만한 이기주의가 적어지고 잰 체하는 일이 적어져야 한다. 교인들이 겸손으로 옷입고, 그들이 자만심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때, 바로 그 때에야 그들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이시라. … 각 사람이 사단의 간계에 대항하여 서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힘이 필요한 위기가 우리 앞에 박두했다. 사단의 기만은 가능한 온갖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단의 유혹의 놀림감으로 허용해 온 자들은 그 때에 바른편에 설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혼란해질 것이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단에 속한 것을 분별할 수 없다.

우리의 기관들마다 위기를 당할 것이다.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다 같이 그 기관들을 대적하는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지금은 자기를 유익되게 하거나 높이기 위하여 신임과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에 그릇된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방심하지 않는 주의력으로 우리의 생애를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하라.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세상의 처세훈(處世訓)대로 행동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나의 유용성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거나 나의 감화를 약화시키거나 하나님의 기관에 있는 어떤 사람의 확신을 깨뜨리는 어떤 일도 허용하거나 묵인할 수 없다.” … 하나님의 백성은 믿노라고 공언하는 그리스도교계와 세상을 좋아하는 무수한 남녀들과 비교해 보면 적은 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은 성경상 그리스도인이 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의롭고 철저한 모본이 되어야 한다. 480 젊은이들을 두르고 있는 모든 감화는 거룩한 성격의 것이어야 하고, 이 감화는 우리의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형제들의 유익을 돌봄

모든 교인들은 침례 서약을 통하여 형제들의 유익을 돌보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에게 건전해 보이는 그들 자신의 평소의 계획과 사상을 고수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상에서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형제 자매들을 이 시대를 위한 사업에서 분리시키거나 그들의 관심을 그 사업에서 떠나게 하는 가장 적은 경향이라도 갖게 하는 모든 영향을,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피하라는 요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영적 유익에 대한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자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감도 나타내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른 교인들에 대하여 강권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의 말과 행동은 극기와 자아희생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도록 그들을 이끄는 감화력을 가져야 한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사랑과 이기심 없는 자비와 반대되는 영향을 발휘하는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있다면, 만일 그들이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성실한 사람들은 지혜롭게 그런 경우들을 다루고 그들의 영혼들을 위하여 활동하되, 그들의 영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의 불만과 좋지 못한 소문 때문에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만으로 충만해진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몇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서 결점을 찾는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유익을 위태롭게 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교회의 도덕적 기풍을 일으키기 위하여 각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 있는 것처럼 엄격한 성경의 원칙을 실천함으로 개인의 영적 계발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481 모든 교인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고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 품성을 나타내고 유용성에 대한 모본을 보일 수 있다. 만일 각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교회는 영성이 증가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모든 교인은 자신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쳐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눈으로 보는 대로 따르거나 그들의 이기적 마음의 성향대로 함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허영심의 충족이나 다른 어떤 자아 방종을 위하여 그들의 재물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사단의 올무에 얽히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재물을 얻을 재능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그분의 제단 위에 놓여져야 한다. 우리는 “네 재물(로) …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는 요구를 받고 있다. 탐욕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은 끊임없이 억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남녀들의 마음을 침식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득을 얻고자 탐욕적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시험의 광야에서 영혼들의 원수 사단은 이 세상의 영광을 그리스도 앞에 제시하고,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고 말했다. 구주께서는 사단을 물리치셨다. 그러나 사람은 큰 원수의 제안에 얼마나 쉽게 매혹당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매력에 이끌린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재물의 신을 섬기므로 그들의 영혼을 잃어버린다.

잠시 후에 우리는 우리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활용한 것과, 우리의 감화와 우리의 소유물의 달란트에 대하여 그분께 어떤 회계를 할 것인가? 우리의 기쁨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힐즈버그 교회에 엄숙히 물어 본다. 하나님께서 그대들 사이에 진정으로 계시는가? 참된 증인은 말씀하신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 3:4). 그대는 이 수에 속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성실성을 굳게 붙들고 있는가? 물에 빠진 사람들처럼 그대는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있는가? 그대는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위하여 살고,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 각 교인은 순결하고 거룩하고 더러움이 없고, 입에 거짓이 없는 자들인가? 482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가장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사 13:12)해지기 때문이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신을 섬기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섬기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세상에서 깨끗하게 자신을 보존해 온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능력이 될 것이다. 이 계층의 사람들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심령을 정결케하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고상한 그리스도인 원칙을 수범한다. 그들은 빛의 근원 되신 분과 개인적으로 연결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끊임없는 발전을 하고, 가장 완전한 범위까지 모든 능력을 계발시키고자 힘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생애 가운데 결코 꺾이지 않는 정직과 성실을 가져다 주시고자 하신다. 이것은 그대를 세상 앞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해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치열한 투쟁 가운데서, 가장 심한 반대의 와중에서도 조용하고 부드러우셨고, 자제를 잃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큰 빛을 가진 그대에게, “더 높이 올라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하늘을 향하여 더 가까이 나가라. 앞으로 전진하라. 그대는 믿음과, 형제들에 대한 거짓 없는 사랑과, 그들에 대한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신성한 책임을 위탁하셨다. 모든 교인들에게는 선을 위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선교 지역이 있다.

만일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신성한 의무를 느낄 것 같으면 우리의 대학은 과거와 같지 않고 미래에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교회에서 영성의 표준을 높일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모든 태도에 있어서 성실의 모본을 보일 것 같으면, 만일 모든 사람들이 경건과 그리스도인의 위엄을 계발할 것 같으면, 대학의 감화는 널리 퍼져 갈 것이며, 빛은 풍성과 축복과 함께 거기서 나갈 것이다. 나는 대학이 적절히 운영되기만 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활동적인 일꾼들이 되기 위하여 거기에서 나오게 될 것을 보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말과 행동을 통하여, 헌신하지 못한 생애로 대학을 반대하거나 나쁜 불평이나 좋지 못한 소문으로 진리를 반대하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83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일을 그들에게 불리하게 기록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지배되지 않기 때문에 대학은 언제나 어려움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악을 주시하여 우리 기관들을 멸시하는 말을 하고, 일어나는 모든 불쾌한 것 하나하나를 모으는 자들을 우리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만 있으면 사단은 기뻐할 것이다. 대학이 모든 특수한 면에서까지 사람들의 이상을 충족시켜 주지 않기 때문에 사단은 대학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자신의 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젊은이들을 이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 그는 교회를 강화시키고 세우기보다는 낙심시키기 위하여 온갖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힐즈버그에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사단이 그것들을 사용하지 못하면 그는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동일한 다른 영향력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마 18:6, 7). 하나님께서는 친히 일하시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그 방법들을 반드시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노력에 너무도 많은 중점을 둠으로 그들은 주님께 일하실 자리를 드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분을 대항하여 일하고 있음이 판명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7, 18).

우리는 시대의 종말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 밖에서 오는 시련들이 많아질 것이다. 시련들이 교회 안에서 오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진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형제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교통하면 할수록 그의 애정은 그리스도 안에 더욱 집중되고, 이 세상에서 그가 당하는 고생과 난관에 의하여 적게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48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남녀들로 자라나고 있는 자들은 성품에 있어서 더욱 더 그리스도와 같아지고, 불평하고 불만족해 하는 기질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점을 찾는 자들이 되는 것을 멸시할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는 한때 성도들에게 주어진 믿음 즉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시 54:4, 빌 4:13)고 담대히 말할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 앞으로 전진하라고 명령하신다. 어느 때에나 교회가 죄를 버리고, 믿고, 진리 안에서 행하면, 그들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을 받았다. 믿음과 겸손한 순종에는 세상이 저항할 수 없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분의 섭리의 명령은 전진하라는 것, 곧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성과 성결의 길에서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바로 시대의 끝에 이르기까지 밝은 빛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 가운데서 더욱 더 높이 향상하라는 것이다. 아,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훈의 초보적인 원칙만을 언제까지나 배우고 있는가?

교인들이 이 무서운 미지근한 상태에서 각성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면 주님께서는 교회에 주실 풍성한 축복을 갖고 계신다. 허식적인 종교, 생명력이 없는 말, 도덕적 힘이 없는 품성. 이것들은 참된 증인이 교회에 보낸 엄숙한 기별 가운데서 지적되어 있고, 그들에게 교만과 세속주의와 형식주의와 자만에 대하여 경고한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자에게 하늘에 계신 주님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고 선언하신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겸손한 자, 고통당하는 자, 성실한 자, 인내하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 주어진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485 참된 증인은 모든 사람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계 3:15)고 말씀하신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교회들이 이렇게 자세히 조사되고 있다. 아무것도 살펴보시는 그분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그들의 결점과 오류, 그들의 태만과 실패, 진리로부터의 그들의 죄악적인 이탈, 그들의 쇠퇴와 부족,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히 4:13) 드러난다.

나는 그대가 오로지 겸손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피차간에 축복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신부의 등불은 손질되고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벧후 3:9)기 때문에 지체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받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금 거문고와 영광의 면류관을 가지고 유리 바닷가에 서고, 무궁한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기다리던 은혜의 기간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7).

우리는 모든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고 하신 구주의 명령에 특별히 유의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 성실하고 충성되며, 진리를 믿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자. 구주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마 11:29)라고 초청하신다. 주님께서는 즐겨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고 축복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품성에서 모든 불순물들이 제거될 때까지 순화시키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모든 교인은 태워 버려지기 위해서가 아니고 정결해지기 위하여 풀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대들 사이에서 역사하셨다. 그러나 사단도 또한 광신을 일으키기 위하여 침입했다. 피해야 할 다른 악들이 또한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빛과 하나님의 사랑을 일별한 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위험에 빠진다. 깨어 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지속되지 않는다. 486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렘 7:4)고 부르짖을 바로 그 때에 유혹이 엄습하고, 흑암, 곧 세속주의와 이기심과 자아 만족의 흑암이 영혼을 둘러싼다. 주님께서 당신 자신의 사상을 영혼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으시다. 얼마나 놀라운 사상인가! 우리의 빈약하고, 세속적이고, 옹색한 사상과 계획 대신에 주님께서는 고상하고, 넓고, 원대하고, 언제나 하늘로 이끌어 주시는 그분 자신의 이상, 그분 자신의 사상을 우리에게 전해 주실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빌 3:14)지 못하는 데 그대의 위험이 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빛을 주셨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그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데, 단순히 그 빛의 광선이 그대에게 비취고 있을 동안 뿐만 아니라 그 빛이 과거에 그대에게 계시해 준 모든 것에 대하여서도 책임이 있다. 그대는 그대의 의지를 날마다 하나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그대는 빛 가운데서 걸어감으로 더 많은 빛을 기대해야 한다. 사랑하는 구주에게서 오는 빛은 더욱 밝게 빛나고, 도덕적 흑암 중에서 더욱 분명한 빛을 발하고, 대낮이 되기까지 점점 더 밝은 광도(光度)를 더해 가야한다.

그대의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새 만나를 모으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깨우치심을 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영화롭게 할 수단을 고안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온 영과 힘과 마음과 능력을 다하여 그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세상의 빛 되신 분에게로 인도함으로 그들을 축복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고 있는가? 그대는 과거의 축복으로 만족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것처럼 걸어가며,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그대의 말과 행동으로 그분을 세상에 나타내고 있는가? 그대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는 그대의 생애 속으로 들어가셔야 한다. 그분만이 그대에게서 질투를 치료해 주고, 그대의 형제들에 대하여 악한 추측을 하는 일을 치료해 주실 수 있으시다. 그분만이 그대들 중 몇 사람들이 간직하므로 영적 손해가 되고 있는 오만한 정신을 그대에게서 떠나가게 해주실 수 있으시다. 예수님만이 그대의 연약함과 그대의 무지와, 그대의 타락한 본성을 느끼게 하실 수 있으시다. 487 그분만이 그대를 순결하고 세련되게 해주고, 축복받은 자들의 처소에 적합하게 해주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시 60:12). 그대는 하나님과 그대의 형제들에게 성실함으로써, 모든 불친절한 생각, 모든 질투의 감정과 자존심을 억제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대의 생애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한 봉사로 채워지게 하라. 그대가 얼마나 신속하게 갑옷을 벗으라는 요청을 받을지 그대는 모른다. 죽음이 갑자기 그대에게 엄습하여, 그대의 마지막 변화를 위한 시간을 주지 않고, 그대의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시켜 그분과 화목할 수 있는 육체적 힘이나 도덕적 능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구에, 인간의 도움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그들을 만족시켜 온 자부심이 얼마나 강하고 오만한 의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주님의 명에 의하여 지금은 그대의 특권의 날이요, 신임과 축복의 날이라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도록 권유받은 것을 느낀다. 그대는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 이익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눈으로, 그대의 자아 만족과 재정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세속적 성공의 찬란한 전망을 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가장 비참한 실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배우라고 초청하신 교훈들을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날마다 배우므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지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대는 세상의 환경이 좌우할 수 없는 화평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애는 안식의 생애이다. 불안과 불만과 불안정은 구주의 부재(不在)를 나타낸다. 예수님이 생애에 들어오시면, 그 생애는 주님을 위한 선하고 고상한 일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대는 이기적이 되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구주와 점점 더 가까이 살게 될 것이다. 그대의 품성은 그리스도를 닮게 되고, 그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대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을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근원을 그 자신 속에 가지고 있다. 488 만일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되고 있는 저속하고 감상적(感傷的)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우쭐한 상태에 놓여 있는 한 주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사단은 감각을 현혹시키기 위하여 야망적인 계획들을 제시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빌 3:14)을 우리 앞에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대가 이 세상에서 추진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들을 박력 있게 하라.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만일 우리의 생애가 거룩한 향기로 충만해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선한 생각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을 높인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선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오두막 속에 사느냐 왕궁에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환경은 영혼의 경험에 별반 상관이 없다. 우리의 행동을 빛나게 하는 것은 간직된 정신이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 인간들과 화목을 이룬 사람은 불행하게 될 수 없다. 시기가 그의 마음 속에 있지 않을 것이며, 악한 추측도 용납될 수 없다. 증오심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마음은 이 세상 생애의 번민과 시련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안이 없는 마음은 불행하고,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 사람은 모든 것에서 결점을 찾고, 가장 신령한 노래에 불협화음이 생기게 할 것이다. 이기심의 생애는 악한 생애이다. 마음을 자아에 대한 사랑으로 채운 자들은 형제들에 대하여 악한 생각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기구들을 대적하는 말을 할 것이다. 사단의 충동으로 뜨거워지고 거칠어진 감정은,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쓴 물을 언제나 흘러보내고 있는 쓴 물의 근원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주장하는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은 낮게, 다른 사람들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단합하라, 단합하라! 연합에는 힘과 승리가 있고, 불화와 분열에는 약함과 패배가 있다. 이 말들은 하늘에서 나에게 전해졌다. 나는 하나님의 대사로서 그 말들을 그대에게 한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의 기도에 응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요 17:21). 489 아, 이것은 얼마나 귀중한 연합인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우리에게 속한 한 사람이 죽을 때, 우리는 그가 받은 대접에 대하여 무엇을 기억하는가? 기억의 벽에 새겨진 그림들은 반사해 보기에 유쾌한 것인가? 그것들은 적절한 때에 한 친절한 말과 동정에 대한 기억들인가? 그의 형제들은 무분별하게 참견하는 자들의 악한 추측에서 돌아섰는가? 그들은 그의 일을 변호했는가? 그들의 다음과 같은 영감의 명령에 성실했는가?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살전 5:14).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욥 4: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사 35:3, 4).

우리가 교회에서 교제해 온 사람이 죽을 때, 하늘 기록책에 있는 기록이 끝난 것을 우리가 알 때, 또한 심판의 때에 그가 그 기록을 대하게 될 것을 알 때, 그들이 그에게 대하여 취해 온 행동에 대하여 그의 형제들은 무엇을 회상할 것인가? 그에게 대한 그들의 감화는 무엇이었는가? 이제 모든 거칠은 말들, 온갖 무분별한 행동이 얼마나 분명히 마음에 떠오르는가! 만일 그들이 또 하나의 다른 은혜의 시기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겠는가!

사도 바울은 슬픔에 처했을 때에 그에게 주어진 위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 4). 바울이 그의 영혼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로와 따뜻함을 느꼈을 때, 그는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했다. 우리의 기억의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우리가 그것들을 회고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그런 성격의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행동을 잘 조절하자.

우리와 교제하고 있는 자들이 죽은 후에는 그들에게 한 어떤 말도 취소하거나 어떤 고통스런 인상도 기억에서 지워 버릴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490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도록 우리의 습관을 조심하도록 하자. 모든 냉담과 불화를 제거하도록 하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하자. 하나님의 영이 거룩한 불꽃처럼 마음 문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태워 버리고, 예수님이 들어오시게 하라. 그리하면 그분의 사랑은 부드러운 말과 사상과 행동이 되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갈 것이다. 만일 죽음이 우리를 친구들과 분리시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만나지 못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말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눈을 감길 때, 손들이 조용한 가슴 위에 접혀질 때, 불화의 감정은 얼마나 신속하게 바뀌어질 것인가! 앙심도 없고, 빈정댐도 없다. 경멸과 실수도 용서되고, 잊혀진 바 된다. 죽은 자들에 관하여 얼마나 좋은 말을 많이 하게 되는가! 그들의 생애에 있었던 얼마나 많은 훌륭한 것들을 기억하게 되는가! 찬양과 칭찬이 이제는 거리낌없이 표현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듣지 못하는 귀에,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 떨어진다. 피곤에 지친 마음이 이런 말들을 그처럼 필요로 하던 때에, 귀가 들을 수 있고 마음이 느낄 수 있을 때에, 그 말들을 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 곁에서 놀라고 조용해진 채 서 있을 때, 이제 영원히 조용해진 가슴에 슬픔을 안겨준 말과 행동을 부끄러움과 슬픔으로 회상하게 되는가! 우리가 생애 속에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과 친절을 지금 가져오도록 하자. 우리가 피차간에 교제할 때 사려 깊고, 감사하고, 인내하고, 오래 참도록 하자. 죽어가는 자들과 죽은 자들 주위에서 표현하는 생각과 감정을 생애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과 날마다 교제하면서 나타내도록 하자.

하나님의 집에서 취할 태도

492 겸손하고, 믿는 영혼에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집이 하늘의 문이다. 찬양의 노래와 기도와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이 하는 말들은 한 백성을 하늘의 교회를 위하여 준비시키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기능이다. 그 고상한 예배에는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상 성소에 속한 거룩함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를 그들이 어떻게 여겨야 할지 배울 수 있다. 종교적 예배에 관한 백성들의 습관과 관습에 큰 변화가 생기되, 더 좋게 변하지 않고 더 나쁘게 변했다. 우리와 하나님과 관련된 거룩한 것들과 귀중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 힘을 신속하게 잃어버리고 있으며, 통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다. 옛날에 사람들이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성소에 대하여 가졌던 존경심은 거의 상실되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을 예배하는 질서를 명령하셨고, 그것을 세속적 성격에 속한 어떤 것보다 더 높이셨다.

가정은 가족을 위한 성소이며, 골방과 가장 궁벽한 곳에 있는 숲은 개인의 예배를 위한 성소이다. 그러나 교회는 회중을 위한 성소이다. 예배하는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관한 규칙들이 있어야 한다. 거룩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예배에 속한 것은 무엇에든지 부주의하거나 냉담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그들의 교제는, 그들의 마음에서 거룩한 것을 속된 것과 구분할 수 있게 보존되어야 한다. 원대한 이상과 고상한 사상과 대망을 가진 자들은 거룩한 것들에 대한 모든 사상을 강하게 하는 교제를 하는 자들이다. 높거나 낮거나, 도시 안이거나 거칠은 산중 동굴 속이거나, 비천한 오두막이거나 광야이거나 간에 성소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복이 있다. 만일 그것이 주님을 위하여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곳이라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임재로써 그 장소를 거룩하게 하실 것이며, 그 곳은 만군의 여호와께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예배자들이 집회 장소에 들어갈 때,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단정하게 그들의 자리로 조용히 가야 한다. 만일 방안에 난로가 있을 경우에는 나태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그 주위에 모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예배 전후를 막론하고, 예배당 안에서는 세속적 이야기와 속삭이는 것과, 웃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활기 있고, 적극적인 경건이 예배자들을 특징지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몇 분 동안 기다려야 한다면, 그들은 조용한 명상으로 참된 헌신의 정신을 유지해야 하고, 예배가 그들 자신의 마음에 특별한 유익이 되고 다른 영혼들을 확신시키고 회개시키게 해주도록 기도로써 마음을 하나님께 상달시켜야 한다. 그들은 그 집안에 하늘의 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침착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또한 반성과 기도의 순간을 장려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귀중한 교제를 많이 상실한다. 영적 상태를 가끔 살펴보고 마음과 정신이 의의 태양에게로 끌려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예배하는 집으로 들어올 때 주님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이 그분의 임재를 마음 속에 생각한다면, 침묵 속에 귀중한 응변이 있게 될 것이다. 세속적인 사업장에서는 죄가 되지 않을 속삭임과 웃음과 이야기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에서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말씀은 합당한 무게를 갖게 되고, 올바르게 마음을 감동시키게 될 것이다.

목사가 들어올 때는 위엄 있고, 엄숙한 태도로 들어와야 한다. 그는 강단에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숙여 묵상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열렬하게 구해야 한다. 이것은 얼마나 큰 감명을 주겠는가! 사람들에게는 엄숙함과 경외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사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고 있다. 엄숙함이 모든 사람에게 깃들고, 하늘의 천사들이 매우 가까이 이른다. 49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회중의 각 사람들도 그와 함께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그 집회에 은혜를 주시고 인간의 입술로 선포된 그분의 진리에 능력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기도로써 집회가 시작되면, 거룩하신 분이 계신 자리에서 모든 사람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야 하며, 모든 마음은 조용한 헌신으로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한다. 성실한 예배자들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며, 말씀의 봉사는 효력이 있음이 입증될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의 생기 없는 태도는 목회가 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하나의 큰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분명하고 뚜렷한 음성으로 흘러나온 노래의 선율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방법들 중 하나이다. 모든 예배는 마치 “회중의 스승”(전 12:11)께서 볼 수 있게 임하신 것처럼 엄숙하고 경외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말씀이 전해질 때,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대신 보내신 종들을 통하여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깊이 들으라. 한 순간도 졸지 말라. 왜냐하면 그렇게 졸므로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바로 그 말씀, 유의하기만 했다면 그대들의 발을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건져 주었을 바로 그 말씀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감각을 마비된 상태로 만들어서 주의와 경고와 책망을 들을 수 없게 만들고자 분주히 활동한다. 혹은 들었다할지라도 그것들이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생활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때때로 어린아이가 청중들의 주의를 끌므로 귀증한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때로는 젊은 남녀들이 하나님의 집과 예배에 대한 존경심을 별로 갖지 못하므로 그들은 설교하는 동안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만일 그들을 쳐다보고 그들의 동작을 살피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런 일들을 본다면, 그들은 수치와 그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충만해 질 것이다. 하나님은 주의 깊은 청중들을 원하신다. 사단이 그의 가라지를 뿌린 것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이었다.

마지막 축도가 마친 후에도 모든 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평안을 상실할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여전히 정숙해야 한다. 494 모든 사람은 밀치거나 큰소리로 이야기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다는 것과 그분의 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마치 그들이 그분의 가시적(可視的) 임재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이야기하고 잡담하기 위하여 복도 안에 멈추어 섬으로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도록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교회의 구내는 신성한 경외심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것은 옛 친구들을 만나고 세속적 생각과 사업을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은 교회 밖에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부주의하고 시끄러운 웃음과 어떤 곳에서 들려온 발을 질질 끄는 소리 때문에 모욕을 당해 왔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교의 표준을 높여 주라. 예수님이 그들의 경험 속에 직조(織組)되도록 그들을 도와주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가장 존중하도록 가르쳐 주고,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때 이런 생각으로 부드러워지고 양순해진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라.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이 곳은 그분의 집이다. 나는 순결한 생각과 가장 고상한 동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교만과 질투와 시기와 악한 추측과 증오와 속임수를 마음 속에 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만나고 축복하시는 장소이다. 영원히 거하시는 높고 거룩하신 분께서 나를 보시고, 나의 마음을 살피시고, 나의 생애의 가장 은밀한 생각과 행동을 읽으신다.”

형제들이여,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집에서의 그대의 행동이 어떠하며 그대가 자녀들에게 존경심을 길러 주기 위하여 교훈과 모본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많은 책임을 전도자에게 넘기고 그로 하여금 그대들의 자녀들의 영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부모요 교훈자로서의 그대들 자신의 책임을 느끼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그대의 권속들이 그대를 따라 여호와의 법도를 지키도록 명령하지 않는다. 그대들의 아들과 딸들은 그대 자신의 모본과 게으른 교훈 때문에 타락해진다. 495 그리고 이와 같은 가정 교육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목사에게, 그대들의 매일의 일을 중화시켜 주고 자녀들의 마음과 생애를 덕성과 경건으로 훈련시키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 주기를 기대한다. 목사가 영혼을 교화시키고 구원하고자 성실하고 애정 어린 권면과 꾸준한 훈육과 열렬한 기도로써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후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회개하지 못한 이유가 그들 자신의 게으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목사를 비난한다. 그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사업을 맡아서 충성되게 이행할 것인가? 그들은 전진하고 향상하므로 그들 스스로 고상한 표준에 도달하고 자녀들도 그들과 함께 향상시키기 위하여 겸손하고, 꾸준하고, 인내하는 방법으로 활동하겠는가? 우리의 교회들이 연약하고, 그들의 영역에서 마땅할 만큼 깊고 열렬한 경건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룩하고 신성한 것을 세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내려가게하는 우리의 현재의 습관과 관습은 우리에게 반대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시험하는 진리가 있다. 만일 우리의 습관과 행동이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빛을 대적하는 죄인들이며, 그것에 비례해서 죄가 있다. 하나님의 보응하는 심판의 날에 이교도가 우리들보다 훨씬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진리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교인들 각 사람이 그들의 이웃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더 큰 열성과 성실을 나타내고, 더 애정 깊고 열렬한 노력을 하기를 바라신다. 부모들은 그들의 사업을 높은 차원의 행동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전신 갑주를 입고 영혼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간구하고 경고하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진리를 들려 주기 위하여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 우리는 영혼들을 불에서 끄집어 내기 위하여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존경심이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496 거룩한 사물과 장소가 식별되지 못하고, 신성하고 고상한 것이 이해되지 못한다. 우리의 가정들에 뜨거운 경건이 부족한 원인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신앙의 높은 표준이 먼지 나는 길에 버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옛날 백성에게 완전하고 정확한 질서의 법칙을 주셨다. 그분의 품성이 바뀌었는가? 그분은 하늘들의 하늘을 통치하시는 위대하고 강한 하나님이 아니신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친히 히브리인에게 주신 지시를 자주 읽고,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영광스러운 진리의 빛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을 본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열렬하고 헌신적인 정신을 유지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유대인들보다 더욱 신중하고 경건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원수는 그리스도인 예배의 신성성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기 위하여 활동해 왔다.

하나님께 바쳐진 장소는 세속적 업무를 취급하는 방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어린이들이 평일 동안에 학교나 창고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다면, 그들이 예배에 대한 생각과 아울러 그들의 공부나 평일에 일어날 것들에 관하여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보통 인간 이상의 존재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교육과 훈련은 거룩한 사물을 높이고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헌신을 격려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하늘 왕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사물의 신성성에 관하여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근엄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가르칠 뿐 아니라 명령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서 예배하는 자들의 도덕적 취향은 고상하고, 세련되고, 거룩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슬프게도 등한히 여겨져 왔다. 그 중요성은 간과되어 왔다. 497 그러므로 무질서와 불경건이 널리 퍼졌고, 하나님은 모독을 받아 오셨다. 교회의 지도자들, 목사들과 백성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드높은 견해를 갖지 못했다면, 미숙한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너무도 흔히 그들을 책임져야 할 부모에게서 떠나서 그룹에 가담한다. 그들이 하나님 면전에 있고, 그분의 눈이 그들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박하고, 경솔하며, 그들은 속삭이고, 웃고, 부주의하고, 불경스럽고, 무관심하다. 그들은 목사가 하나님의 대사이며, 그가 전하는 기별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택한 기능 중 하나이고, 그 기능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특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도 될 수 있고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도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좀처럼 받지 못한다.

민감하고 예민한 마음을 지닌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활동을, 그 문제에 대한 부모의 평가에 의거하여 평가하게 된다. 많은 가장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비판의 대상으로 만들고 몇 가지만 찬성하고 다른 것들은 정죄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기별은 비판과 의심을 받고 경솔하게 취급된다. 이와 같이 부주의하고, 불경한 말로써 젊은이들에게 주게 된 인상은 오직 하늘의 책들만이 나타내 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이런 것들을 보고 깨닫는다. 그들의 도덕적 지각은 시간이 결코 완전히 바꾸어 줄 수 없는 그릇된 선입관을 받는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이 굳어 있는 것과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도덕적 지각을 깨우치기가 어려운 것을 슬퍼한다. 그러나 하늘의 기록책들은 실수 없는 펜으로 그 참 원인을 써 놓는다. 부모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이나 하늘의 일과 조화되지 않았다. 목회와 하나님의 성소의 신성성에 대한 그들의 낮고 통속적인 사상은 자녀들의 교육에 혼합되었다. 여러 해 동안 이와 같이 어두운 가정 교육의 영향을 받아온 어떤 사람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기능과 그분의 목회에 대하여 철저한 존중심과 고상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498 이런 것들은, 그대가 그대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기별을 하나님께서 직접 그대에게 전하는 기별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존경심을 가지고, 적절한 언어로써 훌륭한 감성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부모들이여, 어떤 모본과 어떤 사상을 그대들이 자녀에게 주는지 유의하라. 그들의 마음은 감수성이 강하므로 쉽게 감명을 받는다. 성소의 봉사에 있어서, 만일 설교자에게 흠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라. 그가 하고 있는 좋은 일과 그가 제시한 좋은 사상만 이야기하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를 통하여 오는 것으로 유의해야 한다. 왜 자녀들이 말씀의 봉사에 그처럼 감명을 받지 못하며 왜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 대하여 그처럼 존경심을 갖지 못하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의 교육은 이런 면에서 결함이 있어 왔다. 그들의 부모들은 매일 하나님과 교통할 필요가 있다. 그들 자신의 사상은 세련되고 고상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의 입술은 제단에서 취한 핀 숯에 대여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의 습관과 가정에서의 그들의 행동은 자녀들의 마음과 품성에 좋은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신앙의 표준은 크게 향상될 것이며, 그런 부모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덜 세속적이요, 덜 관능적이 되는 반면에 가정에서 더욱 세련되고 성실해질 것이다. 생애는 그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한 엄숙함으로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봉사와 예배에 속한 것은 전혀 속된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에 들어가서 남녀들의 단정치 못한 의복을 볼 때 흔히 괴롭다. 만일 마음과 품성을 외부의 의복으로 나타낸다면, 분명히 그것들 주변에는 신성한 것이 아무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예배하러 당신의 존전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질서와 산뜻함과 세련된 태도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갖고있지 못하다. 이런 일이, 분별하는 데 예민하고 그들 스스로의 결론을 내리는 불신자들과 젊은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집을 가장 통속적인 장소보다 더 거룩하게 여기는 사상이 없다. 499 어떤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흙이 묻은 더러운 옷을 입고 예배의 장소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전 교회들을 통하여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목사들 자신이 그들의 사상을 고상하게 하고, 그것에 관하여 더욱 예민하게 느껴야 한다. 그것은 슬프게도 등한히 취급되어 온 사업의 한 분야이다. 태도와 의복과 행동에 나타난 불경과, 예배드리는 정신 자세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흔히 당신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 자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셨다.

모든 사람들은 의복에 있어서 산뜻하고, 깨끗하고, 정연하되, 성소에 전혀 적합하지 않는 외모적 단장에 탐닉하지 않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의복을 과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불경이 권유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주의가 흔히 이런 저런 좋은 의복으로 끌리게 되므로 예배드리는 자들의 마음에 용납되어서는 안 될 생각들이 개입된다. 하나님이 생각의 주제가 되고, 예배드리는 자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엄숙하고 거룩한 예배에서 마음을 빼앗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하나님께서는 불쾌히 여기신다. 나비 넥타이와 리본, 주름 가장자리 장식과 새의 깃털, 금, 은의 장신구 등은 일종의 우상이며, 모든 예배자들의 눈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아야 할 거룩한 하나님의 예배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의복에 관한 모든 문제는 엄격히 경계하고, 성경의 법칙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 유행은 외부의 세계를 다스려 온 여신이었지만, 그는 때때로 교회 안에서도 교묘히 환심을 산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고, 부모들은 이 문제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자녀들이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권속들이 그들을 따르도록 단호하게 명령해야 한다. 그들을 세상과 연합시키는 대신에 하나님과 연결을 이루어 주라. 어떤 사람도 화려한 의복으로 하나님의 성소를 모독하지 않게 하라.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기에 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께서는 당신의 사도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500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교회가 세워졌을 때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고 버려 두면, 목사는 그의 의무를 등한히 했으므로 그가 보급되도록 허용한 인상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다. 참된 예배와 참된 경외심에 대한 바른 사상이 백성들에게 감명되지 않으면, 거룩하고 영원한 것을 세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에 두는 경향이 있게 될 것이며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불쾌한 일을 하고 신앙이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연마되지 않은 사상을 가지고서는 순결하고 거룩한 하늘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것이 순결하고 완전하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함에 대하여 완전한 존경심을 가진 하늘 왕궁의 예배자들과 연합할 준비를 결코 갖추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대사들의 사업을, 그것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드려져야 할 것으로 묘사한다. 하늘에서 온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진리로 말미암아 세련되고, 고상하고, 거룩해져야 한다. 진정한 인격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려면 많은 고통스런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채석장에서 떼어낸 거칠은 돌들은 끌로 다듬어져야 하고, 그것들의 거칠은 면들이 갈리어져야 한다. 오늘날은 표면적 사업, 쉬운 방법, 하나님께서 세운 품성의 표준에서 떠난 과장된 성결 등이 인기 있는 시대이다. 모든 짧은 통로, 모든 지름길, 하나님의 율법을 신앙적 품성의 표준으로 높이지 않는 모든 가르침은 허위이다. 품성의 완성은 평생의 과업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느리고 힘든 단계를 거쳐서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어떤 실수도 범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날마다 우리는 우리의 산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자라나기를 바란다.

신앙과 과학 교육

501 사랑하는 B 부부에게: 그대들은 다 같이 영적으로 위험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대들은 바른길에서 떠나가고 있으며 그대들의 발은 넓은 길에 놓여 있다. B 자매는 많은 것들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세밀하게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뿌려진 씨가 되어 분명히 수확될 것이다. 그는 불신을 조장하고 있었고 그들이 걸어온 길이 오로지 너무 좁고 낮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남편의 자격이 높은 수준에 속한 것이므로 더욱 넓고 더욱 영향력 있는 방법으로 발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B 형제 역시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그가 B 자매에게 이런 생각을 품게 했다. 그대들은 다 같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대들이 인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날 때, 그대들은 그 깃발을 내려서 등뒤에 숨기고, “우리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우리의 영향력은 끝장나고 우리는 많은 특권을 잃어버릴 것이다”고 말한다. 나는 그대들의 뒤에서 질질 끌려가는 진리의 깃발을 보았다. 그 때 나에게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대체 그것을 왜 가지고 다니는가? 우리는 진리인 줄 아는 것을 믿을 수는 있지만 이 인기 없는 깃발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교육자들과 학생들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다.” 그대들의 단체 안에는 이런 제안들을 좋아하지도 만족해 하지도 않았던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깃발을 높이 들므로 그들의 빛을 비추어 주는 대신에 그대들의 모본을 희미하게 따랐다. 그들은 그들의 깃발을 감추고 행진했으며, 하늘에서 그들에게 준 빛을 모든 사람 앞에 비추기를 두려워하였다.

나는 당당한 발걸음과 슬픈 얼굴로 그대들에게 접근해 가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고 말했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겪으신 굴욕을 잊었는가? 그분께서 멸시와 비난과 모욕과 증오와 조소와 배반을 당하셨는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초인간적인 사단의 공격을 받으신 후에 재판정에서 얼마나 수치스런 재판을 받으셨는지 잊었는가? 502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폭도들의 사나운 부르짖음과 그가 어떻게 한 사람의 죄인으로 돌아가셨는지 잊었는가? 종이 그 주인보다 큰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인기가 없을지라도 그들은 주님처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할 것이다. 그대들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노력하고 있을지라도 그대들 자신이 결국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정당하게 행동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걸어갈 것 같으면,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의 영광을 함께 나눌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축복하셨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하여 감사한 일이 얼마나 적은가! 그대들의 입술에서 그분께서 받으신 찬양이 얼마나 적은가! 그대들이 주님을 위하여 훌륭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그대들의 생각을 최선의 것으로 삼지는 말라.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더 높은 학년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고, 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가서 영광과 존귀와 불멸로 관씌움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사단은 그의 정체가 탄로나지 않는 많은 방법으로, 심지어 신임받는 위치에 있는 남녀들을 통하여 일한다. 그는 그들이 안전의 보증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의심을 일으키고 불신을 자아낼, 그럴 듯하지만 오류가 깃든 생각과 행동과 말을 그들의 마음에 암시할 것이다. 그는 불만의 요소들에 공작하여 그것들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위대함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것이다. 시기는 그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마음 속에서 일어날 것이며 그것이 발동될 수 있는 환경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의심이 생길 것이며, 십자가를 그처럼 두드러지게 부각시키지 않는다면 이득을 얻게 해주겠다는 그럴 듯한 약속들이 주어질 것이다. 사단은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을 큰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고 세속적인 높은 지위에 이르러 현저한 남녀들로 불리워지는 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도록 유혹할 것이다.

최초의 불만을 나타낼 때 사단은 매우 간교했다. 그가 주장한 모든 것은 그가 더 나은 질서 안으로 이끌고, 큰 개선을 하고자 원한다는 것이었다. 503 그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아 타락하는 동일한 지점에서 그 거룩한 부부를 하나님에게서 떠나 그분의 계명에 충성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곧 그들의 헛된 상상에 의한 것이다. 진정한 지식은 거룩한 것이다. 사단은 우리의 최초의 조상의 마음 속에 사변적인 지식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넣어 주었으며, 그것으로 그는 그들의 상태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을 얻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반대되는 길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불순종을 기초로 한 지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다. 이것은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인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던 넓은 분야였고, 그가 그의 유혹을 통하여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열어 주고 있는 동일한 분야이다.

그대들은 교육이 하나의 독립적인 사업으로 서야 한다는 사상을 제시하고 있었다. 신앙적 문제와 성경의 교리들과의 과학 교육의 이같은 혼합은, 우리의 교육 사업에 있어서의 하나의 약점이요 학생들을 높은 수준의 과학 지식으로 이끄는 사업에 있어서의 하나의 장애로 그대들은 생각했다.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과 대학 교육을 받고 있는 자들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도록 지도받는 자들이 거의 없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교육과 신앙을 분리시켰고, 그것들이 각각 독자적인 분야를 점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탐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식을 완성시켜 주기에 충분히 넓은 분야를 제시하셨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감독 아래 얻어졌다. 그것은 여호와의 불변의 율법과 결부되었으므로 그 결과는 완전한 축복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신 자신과 같은 선(善)만을 만드셨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는 일에 만족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호기심은, 하나님께서 그가 알도록 계획하지 않으신 것을 알기 위하여 긴장되었다. 악과 죄와 죽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것들은 사단에게서 나온 불순종의 결과였다. 504 그러므로 지금 세상에 있는 악의 지식은 사단의 간계에 의하여 초래되었다. 이것들은 매우 어렵고 비싼 수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수업을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만스런 욕망과 거룩하지 못한 목적에서 생기는 특정한 종류의 지식은 모르는 것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결코 믿지 못할 것이다. 아담의 자손들은, 금지된 지식을 구할 때의 하와처럼 완전히 호기심이 많고 주제넘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지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신 경험과 지식을 얻게 되는데, 그 결과로 그들은 우리의 첫 조상들처럼 에덴 가정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어느 때에 인간들은 그들 앞에 그처럼 철저하게 입증되어 있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인가?

과거의 역사는 마귀가 적극적이며 활동적임을 나타낸다. 그는 해(害)가 없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게으르지도 않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기 위해 오직 한 나무에만 가 있었다. 그는 그 거룩한 부부를 그 하나의 나무로 이끌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 지식의 나무를 먹게 하는 그 일을 하도록 계획했다. 다른 어떤 나무에 접근할 때는 그들에게 위험이 없었다. 그의 말은 얼마나 그럴 듯한가! 그는 그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논법, 곧 아첨, 시기, 의혹, 의문, 불신을 사용했다. 사단이 처음부터 그처럼 간교했다면, 수천년의 경험을 얻은 오늘날은 그가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분명한 주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단보다 더 현명하다. 사단의 교활은 감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빛과 거룩한 지식의 근원되신 분과 산 연결을 이룰 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지혜는 그의 계책과 간계에 비례 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아담이 견디지 못한 시험을 견디고, 하나님의 모든 요구가 옳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 모든 요구에 순종하기를 원하면 그들은 부당한 지식을 결코 알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에서 초래되는 이 지식, 실천에 옮겨지면 영원한 죽음으로 끝나는 이 지식을 사람들이 소유하도록 결코 계획하지 않으셨다. 505 사람들이 거의 변함없이 사단이 제시하는 지식을 택할 때, 그들의 미각이 마치 그 지식이 최상의 지혜의 근원인 것처럼 갈망할 만큼 왜곡되어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고 그리스도를 반역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게 된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

사랑하는 C 자매에게: 만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로 _____에 있는 우리 백성들 사이에 한 학교를 세우셨는데 그대가 그대의 딸을, 진리를 사랑하는 자들과 교제하고 그들의 감화 아래 있게 될 곳으로 보내는 대신에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을 존중하지 않는 세속적 계층의 사람들과 교제하게 될 ______신학교에 그를 둔다면, 나는 그대가 그를 둘러쌀 수 밖에 없는 악한 영향과 그대가 자원해서 택한 것을 중화시켜 주시도록 주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어떻게 기대하는지 묻는 바이다.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그분의 천사들이 하도록 맡겨 주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빛을 우리가 따르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죽이고자 하셨을 때,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녀들을 애굽인들 사이에서 집안으로 불러 모으고 문설주에 피를 발라 진멸하는 천사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집을 넘어가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자녀들을 모으는 것은 부모들의 일이었다. 이것은 그대의 일이요, 이것은 나의 일이며, 진리를 믿는 모든 어머니의 일이다. 천사는 죄와 죄인들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모든 사람의 이마에 하나의 표를 할 것이며, 진멸시키는 천사가 그 뒤를 따라 노소를 막론하고 완전히 죽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주의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인 그분의 축복을 경하게 여기는 일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자녀들을, 세속적인 교제가 그들의 취향과 성향에 가장 알맞다는 이유로 그런 교제 속에 방치해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506 그대의 자녀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하려면, 그대는 그대의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속적 교제에 대한 그대의 태도를 전혀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금은 위험이 드러나 있다. 그대는 또한 이야기책 읽는 것을 권장했다. 그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이런 것들과, 연재된 이야기가 있는 인쇄물들은 그대의 딸이 마침내 정신적으로 심취되어, 그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것보다 더 강한 힘, 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기까지 그의 취향을 교육시켰다.

원수는 마치 쇠줄로 동여매듯이 그대의 딸을 동여매기까지 그를 자기 마음대로 꼴 지어 왔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서는 강하고 끈질긴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대가 만일 이 경우에 성공하려면 불완전하게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여러 해 동안의 습관은 쉽게 깨뜨려질 수 없다. 그는 확고하고, 튼튼하고, 영속적인 감화가 끊임없이 발휘되는 곳에 있게 되어야 한다. 나는 그대가 그를 _______에 있는 대학에 두도록 충고하는 바이다. 그가 기숙사의 규율 아래 살게 하라. 그 곳은 그가 여러 해 전에 갔어야 할 곳이다. 기숙사는 그 곳을 좋은 가정으로 만드는 계획 아래 운영된다. 이 기숙사가 어떤 사람들의 성향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거짓 이론, 방종과 자아 만족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 왔고, 그들의 모든 습관과 관습이 그릇된 길에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우리는 시대의 끝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세상의 취향과 풍습에 응하기를 원치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를 원하며, 성경이 말하는 바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에 따라 걸어가기를 원한다. 우리의 성향, 우리의 관습과 풍습이 우선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표준이다.

그대의 딸의 건강을 생각해 볼 때, 그릇된 습관은 이생과 미래에 불멸의 생애를 누리지 못하도록 그를 파멸시키는 반면에 올바른 습관은 그에게 건강을 얻게 할 것이다. 얻어야 할 하늘이 있고, 피해야 할 지옥이 있다. 그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대 편에서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을 때 그대는 주님께서 그분의 몫을 하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507 현재의 결정적인 행동은 한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딸에게는 그가 좋아하는 사회의 감화를 중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감화가 필요하다. 그가 이 정신적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주정뱅이가 술에 대한 갈망을 고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에게는 다른 아무도 그대를 위하여 해줄 수 없는 사업이 맡겨져 있는데, 그대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대는 주님의 이름으로 영원한 멸망의 위험에 처해 있는 한 영혼을 취급하듯이 그대의 자녀를 취급할 것인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이고,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일 것 같으면, 그의 위험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그의 의무나 하늘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고집스럽게 제멋대로 한다. 그는 유혹을 저항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날마다 힘을 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하나님께로부터 그의 생각이 떠나고, 진리에서 떠나고 의에서 떠나게 하고자 의도된 영향을 받는 곳에 그를 두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원수의 힘을 저항하거나 그의 유혹을 이길 힘이 없는 상태 그대로 그를 원수의 전쟁터에 두게 된다.

만일 그가 신령하고 거룩한 감화가 있는 곳에 있게 된다면, 지금 마비되어 있는 그의 도덕적 지각은 일깨워지고, 그의 사상과 목적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뀌어져서 하늘의 수로를 통하여 흘러나올 것이며, 그는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마음 속의 부패와 외부의 유혹을 통하여 위험에 처해 있다. 사단은 그의 영혼을 놓고 벌이는 생명의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는 그 경기에 이길 수 있는 온갖 이점을 갖고 있다.

꿈에 나는 여기에 기록한 그대로를 그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그대를 매우 동정한다. 그대의 상황이 지금처럼 어려울지라도 낙심하지 말라. 그대는 즐거운 마음과 결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은 그대의 친구이시다.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성경은 그대의 상담자이다. 그것은 어둠 가운데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이 된다. 시련의 시간에 확고 부동하라. 그대에게는 대항해야 할 새로운 시련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그분을 그대의 힘으로 삼으라.

젊은이들의 위험

508 D 형제에게: 나의 기도는 그대를 위하여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고, 그대의 영혼을 위한 나의 사랑은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쓰게 한다. 나는 그대의 상황에 대하여 크게 슬픔을 느끼는데, 그것은 내가 그대를 크게 핍박받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없고 자신의 분명한 멸망에 대하여 스스로 속고 있는 기만당하고, 잘못 인도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업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이 그대에 대한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의 의무만을 다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_______으로 가는 것과 그대가 대장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 지위에 있어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은 그대가 처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대 자신을 하나의 대장부로 나타내라는 것이며, 그대가 죄인들과 교제함으로 그대 자신의 위치를 떨어뜨리지 말고, 악한 습관으로 그들과 연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대 자신을 동정하지 말고 세상의 구속주를 기억하라. 그분께서 인류를 위하여 당하신 무한한 희생을 생각하라. 그리고 그분께서 인간을 위하여 그와 같은 희생을 하신 후에 인간이 그리스도와 의를 미워하는 자들과 스스로 동맹하는 길을 택하고, 왜곡된 식욕에 빠지는 자들과 하나가 되어 그의 영혼에게 영원한 파멸을 자초하는 것을 보실 때의 그분의 실망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대는 이 모든 것에 관하여 나에게서 들었다. 내가 그대에게 편지했을 때, 그대는 그것들을 읽었지만 그것들이 그대의 마음과 생애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대는 선을 대적하기로 마음을 작정하고 악을 향하여 마음을 열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원수의 길에 두고, 그의 유혹을 저항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굳게 붙들지 않았다. 그대의 형제들이 진리를 그대에게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복수의 마음으로 ________와의 모든 관계를 그대가 끊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이 누구에게 손해가 되겠는가, 그대에게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인가?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그들을 슬프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업은 똑같이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도처에서 일꾼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그분은 당신의 사업을 하시기 위하여 그대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대의 마음이 순결하지 못하고, 그대의 손이 그분의 눈에 깨끗하지 못하면, 그분께서는 그대와 함께 일하실 수 없다. 509 그분께서는 그대의 마음과 생애 속에 있는 진리가 그대의 품성에 함께 짜여지기를 바라신다.

나는 그대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그대의 잘못을 고백하도록 권면한다. 다윗이 임종할 즈음에 솔로몬에게 한 엄숙한 명령을 생각해 보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2, 3). 이 명령을 그대의 마음에 받아들이라. 어떤 사람도 잘못을 범하고 있는 그대를 치켜세우지 않게 하라. 죄를 범하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지만,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라기보다 명예로운 일이다. 참된 개성을 유지하고, 남자다운 위엄을 계발하라. 교만과 허영심과 거짓된 위신을 버려라. 이런 것들을 간직하면 그대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결과만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대를 대장부로 만들어 주고 질병과 슬픔 가운데서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시끄러운 노래나 즐거운 단체나 자극적인 술이 아니다. 참된 신앙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대의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다. 직무에서 그대가 받은 단련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에게 부과한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가혹한 것은 아니었다. 그대는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부르겠는가? 그대는 범죄자가 그분의 임재에서 분리될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해서 그분이 전제적인 분이라고 대면해서 말하겠는가?

혼인 잔치에 오라는 초청을 받고서도 그를 위하여 구입해 둔 혼인 예복, 곧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않은 자를 취급한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는 자기의 더러운 옷이 그리스도 앞에 나가기에 충분할 만큼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님을 모독하고, 그분의 은혜로운 자비를 멸시한 자로 쫓겨나게 되었다.

510 나의 형제여, 그대의 의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식욕 때문에 유혹의 광야에서 겪으신 극심한 시험을 생각해 보라. 그분은 그대와 나를 위하여 오래 절제하심으로 여위어지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유리한 위치를 제공해 주시고, 식욕과 모든 부정한 정욕을 이길 거룩한 힘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사단과 싸워 그를 정복하셨다.

나는 그대가 이 문제를 사실 그대로 직시하기를 바란다. 그대가 맥주와 술과 독주를 마심으로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들과 연합할 때, 그대 앞에서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정복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자 극심한 주림의 고통을 겪고 계시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라. 진리를 거절하고 구원을 저버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그대가 거품이 일고 있는 맥주잔을 높이 들고 있을 때, 그대가 그대의 구주라고 주장하고 그대의 영생의 소망이 집중되어 있는 바로 그 예수님이 거기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 이런 일이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지 못할 만큼 그대가 도덕적 지각에 있어서 어떻게 그처럼 약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가장 엄숙한 서약을 깨뜨리면서도 핍박당하는 일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사단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발휘하고 있는 능력을 깨뜨리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강력하게 느끼고 있는 자들이, 그대의 습관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대를 번역자로서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일하게 할 수 없다고 그대에게 이야기할 때 어떻게 그대가 그대의 행동에 대한 슬픔의 증거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어떻게 그들 앞에 방약 무인하게 설수 있겠는가? 그대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신 구주께서는 그대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분의 판결에 대하여 항소할 길도 없고, 오해도 결코 없고, 오인도 있을 수 없는 이 장엄하고 무서운 재판석에 그대가 설 때, 그대는 침묵해질 것이다. 511 그대가 지금 죄를 버리고, 열심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아니하면, 그대는 범죄하고, 정죄받고, 소망 없는 상태로 서게 될 것이다.

그대에 대하여 지금껏 취해 온 것 외에 어떤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대의 영혼을 위하여 가장 부드러운 동정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대를 반역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책임 있는 위치에 놓아 주신 자들을 무시하게 하는 거짓된 동정의 말은 내게서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러한 노선을 따르고 그대의 인격을 욕되게 하고, 그대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말살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면서, 자신의 피값으로 그대를 속량하신 분을 욕되게 할 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라고 어떤 사람들이 분명히 말할 것이지만, 나는 그대를 너무도 중시하기 때문에 그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그대는 승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 자신의 육욕과 식욕과 정욕에 정복당하고 있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업들에게 대한 번역을 안전하게 위탁받고 거룩한 사물을 취급하기 위하여 그대는 하나님과 가장 완전하게 연결을 이루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헌신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를 섬길 수 있고, 그대가 번역하는 일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지혜와 지식을 그대에게 주실 수 있는 곳에 마땅히 그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사단의 암시에 대하여 마음을 열기로 선택하고 그리스도의 원수된 자들과 교제하기로 선택하면서도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를 지켜서 사단의 세력에 굴복하지 못하도록 이적행하시기를 기대하는가? 악한 천사들은 그대의 영혼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그들은 초청된 손님들이다. 그들은 제안하고, 그대는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기 전에는 그분의 지도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군사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섬기기를 기대하신다. 512 그분은 그대가 원수를 알아내어 그를 저항할지언정 그를 신임하여 초청해 들임으로 신성한 사명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신다. 주님께서는 그대를 고상하고 향상된 위치에 두시고 그분의 사업에 끊임없이 적합해지게 하셨다. 만일 그대가 이 자격을 얻지 못하면 탓할 사람은 그대 자신밖에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기에 적합하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어떻게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낯선 사람의 음성과 분별해서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그 음성을 거짓 목자의 음성과 구별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그분의 음성은 또한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우리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거룩하지 못한 마음의 충동을 따르되 마침내 지각이 너무 혼란해져서 영원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고 사단의 음성이 너무 변조되어 버리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우리의 심령이 그분에게서 분리되지 않으면 그 음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또 하나의 길은, 마음에 감명을 주는 성령의 호소, 곧 품성 가운데서 역사하게 될 호소를 통해서이다. 만일 어떤 문제에 관하여 의심이 생기면 그대는 먼저 성경을 참고로 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믿음의 생애를 시작했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주님의 것으로 완전히 그분에게 바쳤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대를 취하셔서 귀히 쓰는 그릇으로 만들고자 그분의 뜻을 따라 꼴 짓고 빚으신다. 그대는 그분의 손안에서 유연해지고 그분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 위하여 열렬히 소원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는 그분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분을 신뢰함과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그대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그분과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여기에서 어려움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는 아직까지 선한 목자의 음성을 깨닫는 법을 경험을 통하여 배우지 않았으므로 그대가 의심과 의문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분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의지의 활용

513 순결한 신앙은 의지와 상관이 있다. 의지는 사람의 본성 가운데 있는 지배력이며, 다른 모든 기능을 통제한다. 의지는 취향이나 경향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그대는 지능에 있어서 어린 사람이다. 그대는 그대의 생애가 마침내 하늘에 적합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대는 도덕적 능력이 약하고, 의심에 사로잡히고, 그대의 죄악적 옛 생애의 습관과 행습에 지배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주 낙심한다. 그대는 그대의 정서적 본성이 그대 자신에게, 그대의 최선의 결정에, 그리고 그대의 가장 엄숙한 서약에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진실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대의 불안정은 그대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의 진실을 의심하게 한다. 그대가 의심 가운데서 더욱 투쟁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그대에게 더욱 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며, 마침내 어떤 곳에도 그대를 위한 견고한 땅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된다. 그대의 약속은 썩은 새끼와 같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가 신임해야 할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똑같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

그대가 의지의 참 힘을 이해하기 전에는 끊임없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모든 것을 믿고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약속이나 그대의 믿음은, 믿음과 행동의 측면에서 그대의 의지를 활용하고서야 비로소 효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의지를 다하여 믿음의 싸움을 싸우면 그대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감정, 그대의 느낌, 그대의 정서는 믿을 수 없다. 그것들은 그대의 왜곡된 사상과 함께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진 그대의 약속과 그대의 상실된 서약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그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신임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그대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비록 아무것도 그대에게 진실하고 참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믿고자 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그대 자신을 이처럼 부러워할 것이 없는 위치에 이르게 한 것이 그대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514 그대는 하나님을 믿는 그대의 믿음과 형제들을 신뢰하는 그대의 신임을 회복해야 한다. 그대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에 굴복시키는 것은 그대를 위해서이다. 그대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소유하셔서 그대 안에서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실 것이다. 그대의 전체적인 본성은 그때에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그대의 생각은 그분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그대의 충동과 그대의 정서를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의지를 지배할 수 있고, 그대의 생애에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모든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능력과 연합할 수 있다. 그대는 그대를 하나님의 능력에 굳게 붙들어 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생애, 산 믿음의 새 생애가 그대에게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의지는 사단이 그대를 사로잡아 파멸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는 동료들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와 협력해야 한다.

그대는 지체없이 그대 자신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두지 않겠는가? 그대는 “예수님께 나의 의지를 바치되, 지금 곧 바치겠다”고 말하고, 이 순간부터 완전히 주님 편에 속하지 않겠는가? 관습과 식욕과 정욕의 강한 부르짖음을 무시해 버리라. 사단에게 “그대는 가엾은 위선자다”고 말할 기회를 주지 말라. 문을 닫아 버림으로 사단이 이와 같이 그대를 비난하고 낙담케 하지 못하게 하라.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는다”고 말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의지를 주님 편에 굳게 고정시키고 있을 때 모든 정서는 예수님의 뜻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대는 그대의 발이 단단한 반석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의지력을 총 동원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대를 위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대는 꼴 짓는 과정을 통하여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나오게 될 것이다.

믿음을 이야기하라.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라. 그대의 발을 원수의 편에 두지 말라.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그대를 도우시는 분이 되실 것이다. 그분은 그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대를 위하여 하실 것이다. 그 결과로 그대는 “레바논의 백향목같이”(시 92:12) 될 것이다. 515 그대의 생애는 고상해지고, 그대의 행동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대를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세련된 도구로 만들어 줄 능력과 열성과 단순함이 그대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그대는 주님 안에 있는 즐거움과 기쁨의 비결을 이해하기 위하여 날마다 진리의 샘에서 마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의지가 그대의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품성에 있어서 그처럼 요긴한 요소를 이루는 이 의지는 타락으로 사단의 지배하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하여 사단은 언제나 그 자신이 기뻐하는 뜻을 따라 역사함으로 사람의 완전한 멸망과 불행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희생은,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을 주셔서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그분의 정부의 원칙을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그분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게 한다. “그대 자신을 나에게 바쳐라. 그 의지를 내게 달라. 나는 그것을 사단의 지배에서 빼앗아 내가 소유하겠다. 그렇게 될 때 나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따라 그대 안에서 역사할 수 있다.” 그분께서 그대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실 때, 그대의 뜻은 그분의 뜻과 같아지고, 그대의 품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이 변화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대의 목적인가? 그대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가?

그대가 기호를 만족시키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결심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같은 일은 없다. 그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그대의 감정, 그대의 정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대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면 그대의 앞에는 유용한 생애가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인격, 곧 훌륭한 행위의 모본으로 설 수 있다. 그리고 그대는 교훈의 법칙들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는 대신에 그것들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대는 질서를 멸시하고 그대 자신의 행동을 통하여 생활의 불규칙을 선동하는 대신에 그것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대에게 말한다. 나는 그대의 의지가 하나님 편에 놓일 때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 그대는 그대의 사업이 심판을 견딜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현재와 영원을 위하여 추진할 수 있다. 516 그대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겠는가? 그대는 지금 일치되고자 노력하겠는가?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중보의 대상이다. 그대는 지금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수호하는 파수꾼으로 서 있는 자들을 슬픔과 낙망에 빠지게 하는 대신에 그들을 도와주겠는가?

어린이에게 적합한 독서

사랑하는 E 형제에게: 나는 방금 리뷰 앤드 헤랄드 지를 읽고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양서(良書)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 그대의 기사를 보았다.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그와 유사한 책들에 관한 그대의 추천을 읽고 매우 염려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집필에 있어서 무엇인가 부주의해질 위험이 있다. 인쇄물을 통하여 길이 남게될 것은 무엇에나 유의하고 주의 깊이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위한 독서의 선택과 추천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그대의 영적 시력이 더욱 밝지 않는 것을 보고 정말로 놀라는 바이다.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같이 혹하게 만드는 책들을 우리의 출판물에서 추천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다른 책들을 읽는 일도 정당화시킬 것을 안다. … 이 추천은 젊은이들에게 소설 읽는 일을 버리도록 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자들의 일을 힘겹게 만들 것이다. 나는 그대가 추천한 이런 책들을 읽는 일의 해악을 거듭거듭 보아 왔고,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경고하는 기사를 완전히 준비해 두었다.

나의 형제여,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일반적으로 주일학교에서 보급되고 있는 그런 이야기책들을 우리 형제들이 사고 파는 것은 우리의 백성들,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의 올무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 계시되었다. 그런 일은 상상력을 병들게 하고 그들을 실 생애의 진정한 의무에 적합하지 않게 하는 그런 종류의 독서에 돈을 쓰게 한다. 517 그대는 이와 같은 그대의 추천을 좇아 행동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그와 같은 인정이나 자유가 필요 없다. 그들의 취향과 경향이 모두 이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추천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그대는 예수님과 그분의 교훈에서 떠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지각을 매혹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할 의욕을 잃게 하는 신문의 연재 소설과 이야기책들을 제시하는 것은 사단의 사업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리뷰 앤드 헤랄드 지에 게재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쓰라. 만일 그리스도의 영이 그대를 감동시켜 쓰게 하거든,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욜 2:17)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부르짖으면서 그대의 붓을 사용하라. 그러나 그대에게 쓰도록 충동하는 것이 오직 그대 자신의 감정과 능동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면, 주님의 영이 그대에게 강요하고 감동시키기까지 쓰지 말라. 그대가 어떤 길을 좇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옳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법칙이나 지침으로 그것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영성이나 경건으로 향하게 하지 않는 책들을 추천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복리에 관계되는 것처럼 그런 문제들에 관한 그대의 견해를 말할 자유가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은 그대에게 있어서 최선의 길이 아니다. 만일 그런 독서가 확고하고 순결한 원칙을 계발시켜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대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를 조심성 있고 겸손하게 행동하게 해주심으로 출판물을 통하여 오해하기 쉬운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은 우리 백성들에게 공인된 것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런 말들의 영향을 제기시키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워 주고 있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안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다. 나는 다른 목사들을 위한 권면과 법칙을 제시하고 있는 그대의 많은 기사들을 읽을 때 전율한다. 이런 방면에서 그처럼 많이 말하는 것은 그대에게 거의 적합하지 않다. 만일 그대가 자족하고 자만해진다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을 범하도록 그대를 떠나실 것이다. 그대는 조심스럽게 그대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 하나님께 속한 일에 날마다 산 체험을 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518 그대는 자아를 보지 말고 예수님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대의 힘이시며, 그대의 방패이시다. 그대는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이므로 넘어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대가 말이나 행동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해치지 않도록 경계하기를 그대에게 권유한다.

나는 그대가 이 위대한 사업에 한몫을 담당하게 된 것을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 왔다. 예수님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룰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의 활동에 동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경성과 기도의 생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주의해지지 말라. 예수님에게서 분리되지 말고, 그대의 매일의 생애에 그분을 모셔들여라. 경솔한 승인과 권면으로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혼란시키지 말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대와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그대의 눈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지 않으면, 교만이 그대의 마음을 점령하고, 자존심이 우세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라. 그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는 부주의하게 행하게 될 것이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3).

우리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하나님께로부터 우수한 재능들을 부여받은 자들이 많다. 그분께서는 가장 좋은 재능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원기를 빼앗기고, 그들의 정신은 혼란해지고 약해졌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은혜 안에서와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야기책을 읽는 미각을 충족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피상적인 독서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는 것은 주정뱅이가 독주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의 출판소들과 관련되어 서적들을 간수하고 인쇄를 위한 사본을 만들고, 교정을 하는 데 유능한 일꾼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적 소화 불량자가 되어 결과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책임 있는 위치에 부적합해지기까지 그들의 재능들은 왜곡되어 왔다. 상상력은 병들어 있다. 그들은 비현실적 생활을 한다. 그들은 실제적인 생애의 의무에 부적합하다. 그리고 가장 슬프고 낙망적인 것은 그들이 건전한 독서에 대한 흥미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519 그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있는 극히 흥분적인 이야기들과 같은 것을 바로 마음의 양식으로 매력을 느끼고 혹해져 버렸다. 그 책은 거짓된 노예 사상에 관하여 각성할 필요가 있었던 자들에게 그 당시에는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에 서 있다.

우리 중 누구에게나 유일한 안전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친숙해져서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의 대열 전체를 통하여 노력하는 목사들과 교역자들의 특별한 활동은 젊은이들의 주의를 모든 흥분적인 이야기에서 분명한 예언의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영생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의 주의는 성경에 집중되어야 한다.

내가 흥분시키는 이야기들을 읽는 것에 관하여 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로빈슨 크루소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이솝의 우화를 읽으라고 그대가 쓴 추천은 나에게는 놀랍게도 이상하게 여겨진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그 기사를 씀으로 실수를 범하였다. 만일 이 책들이 그대가 판매하는 책들 중에 속한다면, 나는 그것들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결코 주지 말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그들의 주의를 성경으로 돌이키는 것이 그대의 의무이다. 그들의 마음을 성경 연구에서 분리시키는 매력적인 이야기책들을 그들에게 제공함으로 그들의 유혹자가 되지 말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명수를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끊임없이 파게 될 것이다.

사단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 위하여 몰래 들어오는 수천가지 방법과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혼이 확고하고 완전하게 하나님께 고정되지 않으면, 그리고 성경을 탐구하는 데 마음을 몰두케하여 우리의 믿음 안에 굳건히 서도록 하는 바로 그 점을 양심적으로 수호하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다. 520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도록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파수꾼을 세움으로써 그들이 사단의 유혹에 미혹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큰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현재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업은 우리의 끊임없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표상적인 대속죄일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하여 또한 하나님 앞에서 크게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는 특별한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실제적인 대속죄일도 동일한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교훈과 모본으로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사람은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게 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영성을 계발시킬 필요가 있다. 그대가 신령한 마음으로 바뀌어지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세속적인 습관과 행동에서 떠나게 하고, 점점 더 높이, 영성과 경건을 향하여, 또한 하나님을 위한 열렬한 사업을 하도록 이끄는 큰 사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고, 마지막 경고의 음성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그대의 사업이다.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셔서 영적 시력을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의 위험을 보고 사랑으로 이것을 기록한다. 경건한 마음과 기도하는 정신으로 이것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

사우스 랭캐스터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고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믿음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라. 결코 원수의 편에 서지 말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그대의 믿음은 귀중한 진리, 모든 사람이 반드시 소유해야 하고 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리로 드러나야 한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소수에 속하며, 인기가 없다.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를 해칠 기회를 엿보고 해치기 위하여, 우리를 배반하고,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킬 기회를 엿볼 것이다. 521 그들은 우리의 동기를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이해하게 해주기 위한 우리의 간절한 열망과 강한 의욕을 오해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함으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다는 것도 오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고전 15:58)자들이 되어야 한다.

내가 젊은이들의 상태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관대하게 재능을 위탁해 주신 것으로 내가 아는 자들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권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될 때, 나는 표현할 수 없이 슬픈 감정, 때로는 거의 절망감을 느낀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어떤 위치에서나 활동 불능이 되고 쓸모 없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교육을 받음으로 그들은 위험과 유혹에 노출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계발된 능력들을 그의 사업에 이용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을 악한 목적에 사용한다. 육욕의 포착하기 힘든 독소는 그들의 혈관을 통하여 흐른다. 그것은 진로에 거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것은 매혹시키고 황홀케 한다. 도덕적 고결을 적절히 존중할 때 가장 높은 수준까지 계발되고 글자 그대로 탁월해질 수 있는 정신은 흔히 정욕에 지배되기까지 타락한다. 이렇게 미혹당한 영혼들에게는, 고결한 도덕과 실제적 경건이 아무런 매력도 없다. 그들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노력을 좌절시킬 어떤 영향을, 교훈으로나 모본으로 그들에게 작용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젊은 남녀들이 즐겨 배우고자 하고, 경험 있는 자들에게서 즐겨 권면을 듣고자 하지 않으면, 그들은 사단의 간계에 의하여 분명히 타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은혜 안에서, 또한 진리를 아는 지식과 진정한 영적 식별력을 가지고 꾸준히 자라나지 않으면, 그들은 그들의 모본과 그릇된 사상을 발전시킴으로써 모르는 사이에 원수의 일을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않고 그들의 영혼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간주하게끔 영혼들을 이끌어갈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워서 실천하게 된 계획들은 어느 것이나 충분히 포괄적인 것이 아니다. 522 그들은 한편으로 편중된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모든 능력에 똑같은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 도덕적 원리, 성경 연구, 육체적 훈련은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연구들과 병행되어야 한다. 모든 능력, 육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은 최고의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계발되고, 단련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균등하게 발달되지 않으면, 한 가지 기능이 인간 기계의 어떤 부분에 지나치게 짐을 지우지 않고 철저하게 그 일을 할 수 없다.

최고의 봉사를 위하여 정신을 훈련시키는 중요성에 관하여 많이 언급되고 기록되어 왔다. 이것은 만일, 지성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을 받으면 그것이 전인적(全人的) 발달을 위하여 육체적·도덕적 특성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을 때때로 갖게 했다. 시간과 경험은 이것이 하나의 오류임을 판명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놀라운 육체적 기관을 적당하게 사용할 자격을 결코 갖추지 못한 남녀들이 대학 졸업자로 배출되는 것을 보아왔다. 모든 육체는 활동하도록 의도된 것이지 무활동을 위하여 의도된 것이 아니다. 만일 육체적 힘이 정신적 힘과 균등하게 짐을 지지 않을 것 같으면 후자에게 너무 많은 긴장이 주어진다. 인간 기계의 모든 부분이 각각 맡은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잠깐 동안도 그것들이 최고의 역량껏 이용될 수 없다. 천연의 능력은 천연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하고, 재능들은 이 법칙들과 조화되고 일치되게 활동하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우리 학교에 있는 교사들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한 이 독특한 재능들 중 어느 하나도 무시해 버릴 수 없다. 자존심은 학생들에게 세속적인 높은 지적 학식을 위하여 노력하게도 하고, 그들이 훌륭한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견실한 학식 즉, 실 생애의 어떤 상황이나 모든 비상시에 남녀들을 적응시키기에 필수적인 학식에 있어서는, 그 학생들은 생애의 성공을 위하여 다만 부분적으로 준비한 데 불과하다. 그들의 결함된 교육은, 그들이 담당하는 어떤 분야의 사업에서도 흔히 실패하게 한다.

523 체육관의 운동은 어떤 경우에 유익이 될 수도 있다. 그것들은 유용한 육체적 훈련의 부족을 보충해 주었고, 교육 기관에서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주의 깊이 통제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유익보다 손해를 더 많이 자아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체육관 운동 때문에 일생 동안 육체적 손해를 받아 왔다. 우리 학교들과 관련된 노작 교육은, 올바로 지도되기만 하면 거의 체육관 운동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교사들은 우리 학교에서 육체적·지적·도덕적 감화에 훨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과학의 연구가 학생들에게 높은 학식을 제공해 줄지라도 그것은 충분하고 완전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육체적·도덕적 능력의 철저한 계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학생들은, 실생활을 위하여, 또한 가장 완전한 품성의 계발을 위하여 그들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지식을 얻지 못한 채 자신들이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대학들을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결함들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아프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건강의 상실과 주의 깊이 육성된 재능의 부족과, 생애의 성공에 가장 필수적인 그런 종류의 활동에 대한 적응의 부족 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사기와 횡령, 가정의 불행, 곧 남의 아내들과 눈이 맞아 달아나는 남편들과 남의 남편들과 눈이 맞아 달아나는 아내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는 데, 이 모든 것은 그런 남녀들이 근면의 습관을 훈련받지 못하고 시간을 절약하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길을 결코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국에 있는 모든 교사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깨우쳐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는 교육 사업을 확장하고 향상시키기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있다. 세상의 상태가 가망 없이 되어 가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되”에 순종하는 참 신앙이 거의 사라질 때가 우리 앞에 박두해 왔다. 하나님께서 심한 분노로 범죄자들을 즉시 벌하지 않으신다 해서 악한 행위가 잊어버린 바 되거나 간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524 하나님께서는 국가들을 심판할 재료를 간직하고 계신다. 이 세상 역사의 모든 세기를 통하여 악한 일꾼들은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아 왔다. 그 범죄가 정해진 하나님의 자비의 영역에 완전히 이르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치게 될 것이다. 하늘의 기록책에 집계된 총계가 범죄의 양을 다 채웠음을 나타낼 때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임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려질 것이다. 이 위기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드는 일에 연합할 때 이르게 될 것이다.

불법이 성함으로 의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성으로 일어설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외의 어떤 것도 악인들과 연합한 사단의 오만을 중단시킬 수 없다. 그러나 교회가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충성된 남은 자들은 교회를 위하여 가장 열렬한 기도를 드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범죄자의 악이 절정에 달해 있는 바로 그 때에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눅 18:7)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은 기도에 열심을 나타내고, 그들의 믿음은 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는 열심이 너무 없다. 그들은 더욱 열렬히 노력해야 한다. 공부하는 법을 깨닫기 위한 많은 연구가 요망된다. 모든 학생은 근면의 습관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의 손에서 2류에 속한 일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그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3-16).

525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의무는 단순하고 적극적인 언어로 밝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가 거짓과 사단의 속임으로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위기의 때에 우리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과 시련의 때에 전능하신 분의 방패는 그분의 율법을 맡은 자들에게 덮여질 것이다. 입법자들이 가톨릭을 후원하고 친교의 오른손을 뻗기 위하여 개신교의 원칙들을 버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명예와 그분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간여하실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계발시킬 필요가 있는 원칙들을 그들의 매일의 교육을 통하여 항상 그들 앞에 제시해 줌으로써, 모든 사람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명령이 주어질 때, 종교계에 의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무효화되는 바로 그 때에도 그들은 바른 선택을 하고,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 안에 있는 그들의 확신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되어야 한다. 오늘날 주저하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딤전 4:1)을 좇는 배교자들의 본을 따르도록 유혹을 받는 자들은, 회개하고 그들의 발을 단번에 성도들에게 주신 믿음에 굳게 고정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는 자들 편에서 분명히 발견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가장 무서운 위기에 처해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상황의 실재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왜 그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왜 우리 각 사람에게 가장 큰 중요성이 있는 것을 가장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가? 성경은 우리의 가장 귀중한 보배가 되어야 하고 가장 진지하게 연구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열렬히 가르쳐져야 한다. 빛과 지식을 간직해 온 자들에게 어떻게 이 무서운 무관심이 계속될 수 있는가?

예언과 역사는 우리의 학교에서 연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고, 교육자의 위치를 수락하는 모든 사람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학생들을 단순하게 가르쳐야 한다. 526 그들은 성경을 펼쳐야 하고 그들 자신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성경에 입각한 신앙의 귀중함과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한 순간이라도, 그의 원칙이 알려지면 그가 그처럼 크게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그의 믿음과 교리를 숨기는 것이 그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인상을 결코 한 순간도 어떤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우리의 믿음을 부끄러워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이다. 온 우주는 말할 수 없는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일을 보고 있다.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바야흐로 시작되려고 하는 이러한 때에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야망이 마음을 점령하도록 허용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하늘의 하나님께 충성되고 진실한 것으로 판명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바로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있는 지금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대한 지식이 그처럼 필요한 우리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하나님께 영웅적으로 충성한 사람들 요셉은, 애굽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을 숨기지 않았다.

엘리야는 보편적인 배교 가운데서도 그가 하늘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애쓰지 않았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450명, 그 제사장들은 400명, 그를 섬기는 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가 대중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홀로 섰다. 산은 열렬한 기대에 부푼 사람들로 덮였다. 왕은 호화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승리의 확신을 가진 우상 숭배자들은 그를 환영하는 소리를 외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게 모욕을 받아 오셨었다. 한 사람,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옹호하기 위하여 나타났다. 분명하고,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엘리야는 많은 군중에게 외쳤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527 그 결과로 하늘을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옹호되고, 바알을 경배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다. 오늘날의 엘리야들은 어디에 있는가?

다니엘의 역사는 두드러진 것이다. 그는 큰 반대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믿음과 원칙을 실천했다. 그는 왕의 조서 앞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을 조금도 감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엿보는 눈들이 그를 감시하고 있고 그의 원수들이 왕에 대한 불충에 관하여 고발하고자 준비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열린 창문 앞에 가서 늘 하던 습관대로 기도하기 위하여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지나친 의라고 불리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의 죽음이 예상될지라도 그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세상의 권력도 개입되도록 허용하고자 하지 않았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지 않으셨지만 천사들이 그와 함께 가서 사자들의 입을 봉했기 때문에 아무런 해도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아침에 왕이 그를 부르자, 그는 대답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단 6:22). 그는 고상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하거나 비겁해 함으로 유익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우리의 믿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우리의 빛을 숨기면 결국 재난만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함 그대로 우리를 버려 두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께서 부르시는 어느 곳에서나 우리의 빛을 비추지 않겠다고 거절하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만일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앞으로 전진하고, 우리 자신의 생각과 우리 자신의 계획을 따르고, 예수님을 뒤에 버려 두면, 우리는 강한 참을성과 용기와 영적 힘을 얻고자 기대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적 영웅들을 소유해 오셨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그러한 사람들, 그분의 특별한 백성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들의 의지와 계획들은 모두 하나님의 율법에 종속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했다. 528 그들의 사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빛을 취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빛을 세상에 계속 비추게 하였다.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이 그들의 좌우명이다.

교육받은 목회 활동 상인. 목수, 농부, 변호사는 모두 그들의 사업이나 직업을 익혀야 한다. 처음에는 지식의 부족으로 그들이 불완전하게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꾸준히 그들의 직업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여러 직임에 숙달자들이 된다. 정신과 마음, 사람의 모든 힘을 철저하게 기울이지 않으면, 목사는 실패할 것이다. 그는 설교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목양자로서의 직임을 감당하기에도 적합해야 한다. 연구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활동을 위하여 아무리 자격을 잘 갖추었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라도, 그의 활동의 전 기간을 통하여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시대는 풋내기가 아닌 지성적이요 교육받은 목사를 요구한다. 거짓 교리들이 증가하고 있다. 세상은 교육을 받아 높은 수준의 학식을 얻고 있다. 그리고 지적 지식과 예리함을 얻음에 따라 죄와 불신과 불충은 더욱 담대하고 반항적으로 되어 간다. 이런 상태는 모든 지적 능력을 활용하기를 요구한다. 목사가 맞이해야 할 것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예민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적 원칙에 의하여 균형이 잘 잡히고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너무도 많은 일이 되는 대로 행해졌기 때문에 정신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의 목사들은 허울 좋은 오류를 옹호하는 자들과 함께 성경의 증거를 헤아려 봄과 동시에 비열한 배교자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리는 대담한 주장들과는 대조적인 위치에 놓여져야 한다. 우리 목사들은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어야 하고 결코 교양 없는 사람들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신앙의 열기로 불타올라야 하고, 하늘에서 온 거룩한 광선을 모아서 세상을 덮은 흑암과 만민을 둘러싼 심한 어둠 가운데서 그것을 비추어야 한다.

529 부도덕과 범죄, 모든 종류의 죄악은 꾸준히 증가되고 있다. 성경의 진리의 관통력이 진리와 오류를 구별해 보여 주어야 한다. 주님을 위하여 선한 봉사를 하려면 보다 높은 차원의 준비가 요구된다. 그러나 만일 목사가 그가 수득한 지식을 의지하고 날마다 거룩한 빛이 크게 필요함을 느끼지 않으면, 받은 바 교육은 죄인들에게 거치는 장애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든 지혜의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활동 안으로, 우리의 모든 경험 속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얻은 바 모든 작은 지식은 선을 위한 능력이 되고, 역량과 그리스도와 같은 열성을 계발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세속적인 마음가짐

사랑하는 F 형제에게: 지금은 우리가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여부를 알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살피고 있어야 할 때이다. 그처럼 큰 빛과 그처럼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 각성이 없으면 우리는 멸망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운명은 고라신과 벳새다의 운명보다 더 비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도시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마 11:21)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대 자신의 영혼과 그대의 자녀들의 영혼들을 위하여 크게 열성을 내어야 할 심각한 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가 부름받은 것은 이 일을 요구한다. 내가 그대의 상태를 깊이 생각할 때, 나의 심령은 슬픔으로 무거워지고 나의 마음은 아프고 비통해진다. 그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대의 닻은 끊임없이 떠내려가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나는 그대가 하나님 앞에 그대의 마음을 낮추고, 그대가 다른 사람이 되기까지 결코, 결코 그 노력을 중단하지 말기를 탄원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의 영적 상태에 깊은 관심을 느끼고 있으며, 그대 자신의 구원과, 엘리가 그의 자녀들을 다루는 것과 똑같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그대의 귀여운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대가 진지하게 애쓰고 있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530 그대의 모든 영향을 주님편에 두라. 그대가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확고 부동한 원칙에 좌우되는 사람임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라. 그들은 그대가 보여 주는 본을 따를 것이다. 그대가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때까지 나는 그대에게 계속해서 애원하고 그대를 권면할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 우리는 강단에서 현대 진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강단 밖에서 그것이 실천되기를 바란다. 그대의 구원의 소망의 기초를 철저하게 살피라. 그대가 진리의 사자, 시온 성벽의 파수꾼의 위치에 서 있는 동안, 그대는 그대의 관심을 광업이나 부동산 사업에 기울이면서 동시에 그대의 손에 맡겨진 신성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사람들의 영혼이 위기에 놓여 있는 곳, 영원한 것이 관련되어 있는 곳에서는 관심이 나뉘어지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이것은 특별히 그대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진정한 경건을 계발시키지 못했다. 그대는 재물을 얻으려는 열렬한 욕망을 품어 왔다. 그대는 ________에 있는 토지에 투자함으로 얻을 수 있는 재정적 유익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왔다. 거듭거듭 그대는 이런 사업의 이득을 설명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영과 혼과 몸을 영혼 구원 사업에 바치기로 서약한, 그리스도의 안수받은 목사로서 이 일을 했다. 동시에 그대는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금고에서 돈을 받아 왔다. 그대의 이야기는 우리 백성들의 주의와 돈을 우리의 기관들과, 이 땅에서 구속주의 나라를 촉진시키는 사업에서 떠나게 하고자 의도된 것이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재물을 짧은 기간에 배가시킬 수 있음을 그대가 보장해 준 곳에 투자할 욕망을 그들에게 일으켜 주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더 크게 도울 수 있다는 기대로 그들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대는 짐짓 하나님의 사업에서 그들의 재물을 회수하도록 그들에게 충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기관들에 투자한 것 외에는 굴릴 돈이 없었다. 531 그러므로 그대의 제안대로 투자하기 위하여 그들은 재물을 우리의 기관들에서 회수하게 되었다.

우리는 특별한 의미에서 우리의 형제를 지키는 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찾을 수 있는 영혼들과 개인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순결과 진실과 열성과 언행 일치와 경건은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성실한 의무 수행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교회에서나 개인들에게, 믿음의 고백, 심지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하는 고백까지도, 진정한 경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전혀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신앙의 빛은, 교회에서, 특별히 목사들에게서 분명하고 한결같은 광선으로 비쳐져야 한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 불꽃이 되어 타오르다가 차츰 희미해지고, 마치 꺼져버릴 듯이 깜박거려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은 진실한 신자들의 품성을 통하여 언제나 빛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우리 구주의 교훈에 광채를 더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의 탁월함과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각 교인은 모든 빛의 근원되시는 분과 연결을 이루어 신령한 일꾼이 되고, 착한 행실로써 세상에 빛을 반사하는 자신의 몫을 담당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특별히 목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올바르게 나타내기 위하여 세속적인 모든 얽힘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모든 능력의 근원되신 분에게 언제나 묶어 두어야 한다. 그는 조금이라도 하나님과 이 시대를 위한 큰 사업에서 그의 마음을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끊어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고용된 그분의 종으로서 정신과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분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펴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그런 식으로 어리석게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지 말고, 주의 깊고 현명하게 일하므로 주님을 위한 선한 사업을 하기에 적임이 되기를 바라신다. 532 모든 사람은 사업의 여러 분야들 중 어느 하나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목자께서는 그분의 양떼를 이끄시고 지도하실 것이다.

목사의 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재산을 땅에 묻어 두는 최선의 방법을 말해 주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는 하늘의 은행에 안전하게 투자하는 법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나는 주님께서 그대에게 영적 식별력을 나누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대가 영적으로 다른 상태가 되지 아니하면 분명히 믿음의 파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변화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대는 분명히 진리를 붙든 손을 놓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온 세계를 얻을지라도 그것은 그대의 영혼의 상실에 대한 빈약한 보답이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주님께서 그대를 도와주셔서 그대의 지각을 신속히 깨우쳐 주시고 잘 균형잡힌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그대가 거룩하게 된 마음과 입술로 일에 착수하여 하나님과 함께 겸손하게 동행하기를 바란다.

실제적 경건

오클랜드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의 마음은 그대들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다. 거듭거듭 나는 꿈에서 그대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그대들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그것이 그대들의 도덕적 용기를 약하게 하고 그대들의 신앙을 냉랭한 형식 가운데로 전락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풍성하게 축복하시고자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열렬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함으로 경험을 얻을 필요가 있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나타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인간 도구가 된 우리에게 주신 고상한 책임에 대한 반역자들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살피고, 거룩하지 못한 우리의 본성에 속한 가장 적은 동기도 살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지난 세대에 그분의 백성에게 주신 경고와 제재를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빛이 부족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일들을 피해야 하고 우리에게 지키도록 요구하셨는지 안다. 533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옳은 것을 깨닫고 행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행이 선행보다 육신적 마음에 더 잘 적응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의하여 앞으로 나가게 되기를 기다리는 신실하지 않은 자들이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에 대하여 체험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그들 자신의 영혼에 거룩케 하는 진리의 능력을 느끼지 못했다. 조용하고 부지런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의 생애와 품성이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과 일치되고 있는지 알아 보는 것이 모든 교인의 일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캘리포니아에서, 특별히 오클랜드에서 그대들을 위하여 큰 일들을 하셨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의 행위가 그대들의 믿음과 일치되게만 한다면 그분께서 즐겨 행하시고자 하는 것이 더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을 풍성한 축복으로 결코 영화롭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회고해 보라.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즐겨하시고자 바라시는 것의 시작에 불과함을 알라.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 그것은 마치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씀의 교훈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

악한 천사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적 시력으로 그들의 존재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그대로의 그들의 존재의 실재를 마땅히 생각해야 할 만큼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성경에 이해하기에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사람은 그 책장들을 연구하는 중에 교만과 자만심으로 우쭐해졌을 것이다. 사람이 진리의 모든 부분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최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성경의 모든 부분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그가 이해하는 그대로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로 그것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534 지적 교만을 버려야 한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영적 교만에 대하여 경고하는 음성을 높이는 바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그것이 많이 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진리가 성경의 진리로 처음에 인정되었을 때,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던가, 그리고 처음으로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반대는 얼마나 강했던가. 그러나 순종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일꾼들은 얼마나 열렬하고 진실했던가! 우리는 정말로 독특한 백성이었다. 우리는 수가 적고, 재산도 없고, 세속적 지혜나 세속적 명예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고, 강하고 성공적이었으며, 악행자들을 두렵게 하였다. 피차간의 사랑은 확고했다. 그것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났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침착하고, 즐겁고, 거룩한 기쁨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빛은 계속해서 증가되었지만 교회는 거기에 비례해서 발전하지 않았다. 정금은 점차적으로 희미해졌고, 죽음과 형식이 교회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들어왔다. 그들의 풍성한 특권과 기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순결과 거룩함을 따라 전진하고 향상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한 재능들을 성실하게 활용했을 것 같으면 그 재능들이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많이 주어지는 곳에는 많이 요구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을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들만이, 그리고 극기와 자아 희생으로 고상하고 높은 위치에 서는 자들만이 세상에 대하여 빛의 통로가 될 것이다. 전진하지 않는 자들은 하늘 가나안의 바로 경계에서도 뒤로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행실이 조금도 주어진 진리의 빛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 제시되었다. 우리는 반신 반의의 믿음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깨끗케 하는 완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대들을 부르신다.

한 가지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개인적인 독자성이다.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한 군인들로서 사업의 여러 부분에 있어서 행동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535 어떤 사람도, 우리들에게 속한 다른 사람들이 그 주제에 관하여 다른 의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논쟁이 일어날 것이 알려져 있을 때 그것에 관하여 우리의 인쇄물에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사상을 제시할 권리가 없다. 일요일 준수 재림교도들은 이렇게 해왔다.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독자적 판단을 따르고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 사이에는, 아마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반대하는 일 외에는 일치된 행동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의 본을 따라서는 안 된다. 모든 일꾼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피차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이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께 그 근원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상하고, 집약된 행동으로 발휘되기 위하여 절약되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운동에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연합에는 힘이 있다. 우리의 출판소들과 다른 기관들 사이에는 연합이 있어야 한다. 만일 이 연합이 존재했다면 그것들은 하나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일꾼들 사이에는 다툼이나 불화가 없어야 한다. 그 사업은 한 지도자에 의하여 관리된 사업이다. 간헐적이고 돌발적인 활동은 손해를 주어 왔다. 그런 활동들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그것들은 별반 가치가 없다. 그 반작용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꾸준한 인내를 계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아야 한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인기의 조류(潮流)를 타고 떠내려가서는 안된다. 우리의 현재의 사업은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거룩한 감화가 그의 인간적 활동에 끊임없이 함께 역사하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강하고, 생기 있고, 활동하는 믿음을 소유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밝혀진 조건들에 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죄 가운데서 죽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집에 살기에 적당해지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품성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어떤 도덕적 변화가 필수적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대들에게 말한다. 536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주변에 찬란한 진리의 빛이 빛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하고 그분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갈 위험이 있다.

수십만번 율법과 복음에 순종하노라고 공언하면서도 범죄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진리의 주장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방법으로 제시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마음은 육신적일 수도 있다. 은밀하게 죄를 사랑하고 범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들에게 진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진리로 거룩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주의 사랑은 그들의 저열한 정욕에 강권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이 신성한 위치에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되게 취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딤전 2:8) 하나님께 거룩한 손을 들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진리는 그들의 마음에 결코 인쳐지지 않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롬 10:10) 이른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그대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며, 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다만 피상적이었다.

사도는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 2). 마음은 사람의 성채(城砦)이다. 생명과 사망의 문제가 거기에 달려 있다. 마음이 순결해지기 전에는 사람이 성도들과의 교제에 있어서 어떤 몫도 담당하기에 부적합하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는 영혼을 돌보지 않고 죄악 가운데 머뭇거리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시는가? 각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은밀한 것들을 보는 한 목격자가 지금껏 없었던가? 나는 어떤 남자들이 여자들과 소녀들에게 하는 말, 아첨하는 말, 속이고 황홀하게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은 영혼들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이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함으로 그의 대리자가 될 수 있었다. 만일 그대들이 그렇게 된다면 그대들은 이 일들을 심판에서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결코 바쳐지지 않았다. 537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계시지 않다. 진리가 거기에 있지 않다. 그 자리는 죄와 기만과 거짓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지지 않고 실천되지 않고 있다.”

마음에 작용하고, 교회들과 나라에 역사하고 있는 사단의 현재의 활동은 예언을 탐구하는 모든 학도들을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끝은 가깝다. 우리 교회들은 일어나야 한다.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교인들의 마음 속에서 경험되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깊은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죄의 용서가 예수님의 죽음의 유일한 결과가 아니다. 그분은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죄의 파멸에서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고, 다시 아름답게 만들고, 소성시켜서 하나님 앞에 서기에 적합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무한한 희생을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많이 간직하려면 더 큰 열망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에 교회의 힘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떼어 놓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단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적은 사랑, 하나님께 대하여 또한 피차에 얼마나 적은 사랑을 소유하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는 진리의 말씀과 정신은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킬 것이다. 진리와 사랑의 불변의 원칙들은 마음과 마음을 연합시킬 것이다. 그리고 연합의 힘은 받은 바 은혜와 진리의 양에 비례 될 것이다. 거울 즉 하나님의 “최고(의) 법”을 들고 그 속에서 하나님 자신의 품성을 반사해 보는 것이 우리 각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어진 위험 신호와 경고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경고들에 유의하지 않고 품성의 결함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결함들이 그것들을 소유한 자들을 정복할 것이며, 그들은 오류와 반역과 공공연한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최고의 표준까지 향상하지 않는 마음은 한때 얻었던 그 힘을 간직하는 능력을 언젠가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7, 18).

538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그분의 율법의 보관자로 삼으신 한 백성을 택하셨으며, 이 백성은 언제나 수행하기에 까다로운 일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 3). 우리의 교회에서 악을 제거하려면 많은 근면과 끊임없는 투쟁이 요구될 것이다. 엄격하고 공평한 규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의 형식만 가진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훼손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들 스스로를 높이고자 몰래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높은 영적 상태에서 떨어진 부류의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들이 우리의 마음에 엄숙하고 엄격한 능력으로 새겨지게 하라. 우리가 믿노라고 주장하는 위대한 진리에 상응한 열성,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 대한 사랑, 좋아하는 어떤 죄악에 대한 애착은 기도를 좋아하고 거룩한 사물을 명상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심령에서 떠나게 했다.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는 고수되고 있지만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영성은 죽어가고 있다. 이 무감각 상태, 이 슬픈 타락의 경향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이 진리의 등은 은혜의 기름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깜박거리다가 꺼져 버려야 하는가?

나는 모든 목사와 우리 교역자들 중 각 사람이 나에게 제시되었던 그대로 이 문제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자존심과 자만심은 영적 생명을 죽이고 있다. 자아가 높임을 받고, 자아가 이야기의 대상이 된다. 아, 자아가 죽을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말했다. 이 교만하고 뽐내는 자만심과 이 자기 만족의 독선이 영혼에 퍼질 때는 예수님이 들어갈 장소가 없다. 539 자아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어 전체의 영혼의 성전을 채우는 동안, 예수님에게는 열등한 자리가 주어진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처럼 적게 일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의 활동과 더불어 함께 일하실 것 같으면 도구에 불과한 사람은 모든 영광을 자기 자신의 재치, 그의 지혜와 그의 능력에 돌리게 될 것이며, 그는 마치 바리새인이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2)라고 기도한 것처럼 자기 스스로 기뻐할 것이다.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 숨겨질 때, 그것은 그처럼 빈번하게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마음에 합당한가? 우리는 실제적 경건을 더욱 많이 생각하고, 기계적 제도를 훨씬 더 적게 생각하겠는가?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분의 눈앞에서와 천사들의 눈앞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요구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 요구에 응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사단은 새롭고 아직 실험해 보지않는 방법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군대에 속한 지도자들이 무능해야 하는가?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이 있다. 그러므로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조화로운 행동에 어떤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이기심과 자존심 때문이다. 우리가 유능하고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은 그 사업에 우리의 특징과 개성을 남기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때 뿐이다. 천사는 “단합하라, 단합하라”고 말했다.

나는 거룩한 사업에 봉사하는 그대들에게 실제적 경건을 더 깊이 생각하라고 권유하는 바이다. 부드러운 양심과 영혼에 대한 진실하고 진정한 슬픔과 죄에 대한 깨달음을 너무도 좀처럼 볼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들 사이에 하나님의 영의 깊은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구주는 야곱이 본 사다리이신 바, 그 맨 아래는 땅에 세워지고 맨 위의 발판은 가장 높은 하늘에 닿았다. 이것은 정해진 구원의 방법을 알려 준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마치 사다리의 발판에 매달리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매달림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 540 어떤 사람도 원수를 정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그에게 해당된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불멸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뒤를 돌아보면 현기증이 나고, 붙든 손을 놓아 버리면 멸망할 것이다. 승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그들은 근면한 상태에서 해이해진다. 결과적으로 이기적이요 자아 방종에 빠진다. 영적 각성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적 노력에 있어서의 열성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나타나지 않는다.

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크게 넘어지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부주의가 영혼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하나의 죄는 두번째의 죄로 이끌어가고, 두번째의 죄는 세번째의 것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그와 같이 이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한 사자들로서 그분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분께 탄원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의무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우리는 멸망으로 끝날 죄의 길을 따라갈 위험이 있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는데, 단 하나의 길에서만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고, 그분의 품성의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길이다.

죄를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해주고, 죄인의 행동과 상관없이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해주는 종교는 다만 죄인으로 하여금 그가 죄를 범하고 있는 줄 알면서 그 죄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그를 받아 주실 것이라고 믿도록 격려해 줄 뿐이다. 이것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는 바이다. 진리가 생애와 분리되어 있는 바, 그것이 영혼을 각성시키고 회심시킬 능력이 없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생애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 사실을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들은 성경상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결코 회심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이 받아들인 진리를 통하여 거룩해지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라지와 함께 다발로 묶여질 것이다. 그들이 산 포도나무의 가지들임을 보여 주는 귀중한 열매의 송이들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6, 7). 541 많은 사람들의 생애는 그들이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세상의 수로(水路)안으로 떠내려가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와 함께 할 일이나 몫이 없다. 그들은 오락을 사랑하며 이기적인 생각과 계획과 희망과 야망으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공언 아래 원수를 섬긴다. 그들은 엄한 주인에게 매여 있다. 그들은 이 속박을 택하고, 스스로 자원해서 자신들을 사단의 종으로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거짓된 사상 곧 자녀들을 제지하는 것이 손해가 된다는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경계하지 않으면 사단이 분명히 자녀들을 소유할 것이다. 불경건한 자들과의 교제를 그들에게 권유하지 말라. 그들에게서 떠나게 하라. 그런 자들에게서 그대 스스로 나와서, 그대들이 주님 편에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단순히 집회에 모였을 때 뿐만 아니라 생애가 계속되는 동안 표준을 높이겠는가? 그대들은 주님편에 서서 마음의 목적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지 않겠는가?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를 버리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처럼 한다면 그대들은 분명히 그분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죄를 버리고 산 믿음을 발휘한다면, 가장 풍성한 축복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1887년 3월 1일 스위스 바젤에서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고대 이스라엘 당시에는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로 비쳐진 모든 제물을 정밀하게 검사했다. 만일 어떤 결함이 발견되면, 그 짐승은 거절되었다. 주님께서는 제물이 흠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42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제물이 할 수 있는 한 완전한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적 지적 도덕적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습관을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표준과 일치되게 하는 것이 우리 각 사람의 의무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에 미급한 어떤 것을 기뻐하시겠는가? “네 마음을 다하여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할 것 같으면 그대는 그분께 그대의 생애의 최선의 봉사를 하고자 할 것이며, 그대는 그대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그대의 힘을 그분의 뜻을 행하도록 촉진시켜 줄 법칙과 일치되게 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능력은 우리의 창조주께 가납될 봉사를 하게 하고자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을 악용하고 우리의 능력을 흑암의 왕에게 팔아 버렸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속량의 값을 치르시되, 그분 자신의 귀중한 피를 주셨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그대는 세상의 관습을 따라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세속적 영향

사랑하는 G 자매에게: 나의 마음은 그대에 대한 사랑과 동정으로 끌려간다. 그대의 가족의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그대의 그릇된 사상을 따른 결과이지만, 결말은 아직 이르러 오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의 친척들과 그처럼 자유롭게 교제하는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그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그대와 그대의 가족에게 끼쳐왔다. 그들이 그대의 친척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대의 영적 복리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적지 않게 범하게 한다. 543 그들의 행동은 빛과 진리를 거절하고 거기서 유리한 어떤 증거를 듣고자 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완전히 거슬리고 있다. 해를 끼치는 인상들이 그대의 마음에 새겨지고 그대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까지 구원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뜻을 무시하고 구원을 우리에게 강제로 안겨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조건들을 제시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집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일에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도록 부지런하고 열성껏 마음과 뜻을 다하여, 그 조건들을 배우는 일을 착수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세속적인 친척들에게 우리의 애정을 집중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과 교제하는 동안 우리의 빛을 비추어 주기 위하여 모든 면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습관과 행실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들의 사상과 습관에 의하여 꼴지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과의 모든 교제에서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들과 교제를 적게 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성을 위하여서는 더 좋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훌륭한 자격을 잊어버리게 하는 경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친구들 사이에 우리 자신을 두게 되면 우리는 유혹을 불러들이게 되고 그것을 저항할 도덕적 힘이 아주 약해진다. 우리는 우리와 교제하는 자들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상을 간직하게 되어 거룩하고 영원한 것들을 우리 친구들의 사상보다 더 낮은 위치에 두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모든 의의 원수가 우리에게 대하여 의도했던 그대로 영향을 받게 된다.

젊은이들은 이런 영향 아래 놓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그 영향을 훨씬 더 쉽게 받는다. 그들이 쳐다보는 얼굴, 그들이 방문하는 장소, 그들이 나누는 교제, 그들이 읽는 책, 모든 것이 그들의 마음에 인상을 남긴다. 이 세상과 그 다음으로 우리 자신과 특별히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택하는 교제의 중요성을 아무리 과대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애의 초기는 다른 어떤 기간보다 더욱 중요하다. 올바른 방향에서든지 그릇된 방향에서든지간에 결정적인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544 한편에서는 하잘것없는 학식을 어느 정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실생활에 대한 건전하고 가치 있는 지식을 얻어서 하나님을 잘 알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모든 능력을 강화시키는 길을 깨달을 수도 있다.

우리는 거짓되고 피상적인 모든 것이 진실되고, 자연적이고. 영구적인 것보다 더 높임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은 그릇된 방향에서 지도될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정신력에 힘을 더해 주지 않는 쓸모없는 이야기로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사상은 우리가 정신을 위하여 제공하는 음식과 같은 성격의 것이 될 것이다. 쓸데없고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바쳐진 시간은, 구원의 계획의 놀라운 오묘를 명상하는 데 쓰여지거나, 우리의 발이 불신의 산에 걸려 넘어지거나 주님의 속량받은 백성들이 걸어가게 하고자 무한한 희생으로 놓여진 거룩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주님의 길을 배우는 데,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데 쓰여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지성의 힘, 획득된 실제적 지식은 오빌의 금으로 살 수 없는 소득이다. 그 값은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하다. 이런 종류의 교육을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 그들의 호불호(好不好), 그들의 기호와 성향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부모들이 하나님과 진리와 자녀들을 둘러싸게 될 감화와 교제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졌다면 그들은 미숙한 젊은이들을 바른길에서 착실하게 지도해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느끼고, 그들이 뿌린 것을 또한 거두게 될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음성이 전국에 있는 부모들에게 들릴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의 자녀들이 친구와, 교제의 대상을 택하는 일에 자녀들의 욕망에 양보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싶다. 해를 끼치는 인상은 거룩한 인상보다 젊은이들이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545 그러므로 그들의 교제는 은혜의 성장을 위하여, 또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시된 진리가 마음 속에 굳게 세워지기에 가장 유리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어린이들이, 중요하지 않는 세속적인 것들을 화제로 이야기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의 마음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신앙의 원칙을 중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실시하는 말을 듣는다면, 비열하게 진리를 반대하는 말이 그들의 귀에 들린다면, 이런 것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고정되고 그들의 품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의 마음이 사실이거나 가공적인 것이거나 간에 이야기들로 채워지게 되면 그 마음에 마땅히 채워져야 할 유용한 정보와 과학적 지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이와 같이 경박한 독서를 좋아할 때 얼마나 큰 파괴가 마음에 이루어졌던가! 그것은 균형잡힌 품성의 기초가 되어 있는 성실의 원칙과 참된 경건을 얼마나 파괴해 버렸던가. 그것은 신체 조직 속으로 들어간 독소처럼 서서히 작용하여 조만간 그 쓰라린 결과를 나타낼 것이다. 젊은이들의 마음에 그릇된 인상을 남기게 되면, 모래 위에가 아닌 영구적인 바위 위에 하나의 표가 생기게 된다.

그대의 자녀들의 교제는, 건강을 파괴하는 그들의 습관을 방해하거나 깨뜨리는 모든 감화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는 성질의 것이다. 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 안달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조언이 그들에게는 싫다. 그들은 멸망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어떤 영향도 그들의 마음에 가장 나쁜 충동을 일으킨다. 그들은 환경의 피조물이다. 신앙적 감명에 불리한 이 초기의 유대 관계는 모든 후속 관계에서 하나의 강력하고 지배적인 영향을 그들에게 미쳐 왔다. 젊은이들을 가능한 가장 유리한 환경에 놓이게 해주라. 그들이 유지하는 교제, 그들이 적용하는 원칙, 그들이 형성하는 습관은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이 땅에서의 그들의 유용성과, 그들의 장래의 영원한 복리에 관한 문제를 결정지어 줄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성향에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분명한 의무의 길을 따르고, 친절로써 그들을 제지하고. 확고하고 단호하면서도 사랑으로 그들의 그릇된 욕망을 부신하고. 열렬하고 경건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신들의 발을 세상에서 돌이켜 하늘로 향하여 나아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546 자녀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떤 길로나 빠져 들어가고, 바른길에서 떠나게 하는 각 방면에 열려 있는 길로 들어가도록 방임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주의와 권면을 감내하지 못하는 자들만큼 큰 위험에 빠져 있는 자는 없다.

나의 자매여,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바와 같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대의 위험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권면으로 축복을 나누어 주고자 노력하지 않고 그대에게 아첨하고 그대의 환대를 받고자 하는 동안, 나는 그대의 현재와 영원한 행복을 위태롭게 할 보이지 않는 위험을 그대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폭풍의 시대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참 기초를 연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불멸의 유업을 얻을 우리의 자격에 하나의 흠이라도 없는지 보기 위하여 율법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백성들은 주목해 볼 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변화는 올 것이다. 그리스도교계는 오늘날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을 반드시 두드러진 위치에 놓이게 만들 운동들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에게서 나온 이론과 거짓 교리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끊임없이 대신하고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하는 자들의 양심을 사로잡고자 하는 운동들이 시작되고 있다. 입법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할 것이다. 모든 영혼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아,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우리 스스로 현명해지고, 교훈과 모본으로 그 지혜를 우리 자녀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믿음의 모든 입장은 조사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철저히 성경을 연구하는 자가 아니고, 확고하게 서서, 강하고,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의 지혜가 우리를 곁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세상은 분주하고, 초조하고 몰두되어 있다. 악을 마치 의처럼, 오류를 마치 진리처럼, 죄를 마치 거룩함처럼 열렬하게 따르고 있다. 547 흑암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때에 잠들어야 하겠는가? 진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침묵을 지키겠는가?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노라고 공언하는 바를 그들이 만일 믿는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인들보다 열성에 있어서 훨씬 앞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움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벧후 3:11, 12) 바라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진리를 믿는 모든 영혼은 거기에 상응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열렬하고 엄숙해질 것이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그들의 활동에 지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진리가 그들 자신의 영혼에 깊이 심겨진다면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고자 노력할 것이다. 진리는 오로지 바깥 뜰에서 너무 많이 보존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의 성전 안으로 가져와서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하고, 그것이 생애를 지배하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은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찾게 될 것이고, 하늘을 향한 열망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생애와 무관하게 바깥 뜰에서 보존되면, 마음은 타오르는 하나님의 자애(慈愛)의 불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특정한 몇 일 동안, 혹은 특정한 경우에 간직했다가 다른 때에는 버리고 등한히 한다. 영속적인 진리의 원칙은 단순히 안식일의 몇 시간 동안, 혹은 적은 구제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품성을 세련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 만일 하늘에서 온 이 특별한 빛과 힘이 없어도 사람이 안전한 순간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진리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말씀인 성경이 그의 고문과 지도자가 되고, 그의 생애를 지배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것 같으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다. 주님께서는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창 18:19)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가정의 신앙을 향상시키고 그의 온 권속에게 여호와를 경외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다. 548 그가 명한 것을 아노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맡겨진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 외에 어떤 사람에게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율법이 있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것을 지키게 될 것이며, 맹목적인 애정이 의에 대한 그의 지각을 흐리게 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의 영혼과 차단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로 잔인한 그런 종류의 방종이 아브라함을 곁길로 가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부모들과 자녀들은 다 같이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애정과 권위를 공존시켜 그의 집을 다스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도하기 위한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법칙들은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할 때 정로를 벗어날 수 없는 표준이 된다. 하나님의 뜻은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숙고해야 할 질문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나의 친척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가 이 길을 따르면 그들이 내게 대하여 어떻게 말할 것인가, 등에 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에 대한 것이다. 부모도 자녀도 주님의 길 외의 어떤 다른 길에서는 진정으로 형통할 수 없다.

나는 그대가, 주님의 길을 걸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고상한 아들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가 그들의 교제에 관해서는 더욱 분명한 의무의 길을 분별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대가 영적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신앙 생애에 있어서 난쟁이가 되어 있는지 결정할 것이다. 엄격한 양심의 명령은, 비록 어려울지라도 순종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는 도덕적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의무는 때때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이다.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투쟁 없이 항상 드려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도달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에 극기와 십자가를 지는 일이 바로 놓여 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셨다. 우리는 따라갈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위대한 구속의 계획에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고 점차적으로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빌 3:14) 좇아가도록 요구하신다. 나는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시도록 기도한다. 549 그러나 그대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면 그대는 그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의 정신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닐 것 같으면 우리의 경건과 신앙적 의무는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 국한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인 품성에 넓이와 깊이와 안정을 주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주님께서 오신다. 우리는 본향에 가까이 가고 있다. 우리는 하늘 분위기의 큰 영감을 얻기를 원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구주의 모든 계획에 있어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며, 우리도 향상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향상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선한 일에 유능해질 것이다.

우리 기관들의 필요

때때로 나는 여러 기관들과 사업의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에 바로 가장 좋은 재능을 얻을 필요성에 관하여 증언하도록 주님의 영을 통하여 촉구받고 있다고 느껴 왔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분야를 위하여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확보하고자 하는 충분한 고심이 있지는 않았다. 책임을 지는 자들은 사업을 위하여 훈련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가르칠 수 있고 다니엘처럼 그분께서 지혜와 명철로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이어야 한다. 그들은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특징을 간직하고 거룩함과 도덕적 위엄을 지니고, 그들의 사업을 이해하는 가운데 꾸준히 향상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산에 올라와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사업을 책임지도록 임명된 하늘 존재자들의 위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모세처럼 산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식양(式樣)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얻을 수 있는 바로 최선의 재능을 얻어서 사업과 관련시키고자 각성하고 있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자라나는 사람들이요 성화된 지성을 소유한 사람들일 것 같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에서 오는 빛의 모든 광선을 붙잡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들은 태양과 같이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는 길을 따를 것이며, 지혜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자라게 될 것이다.

550 출판부는 하나님의 사업의 중요한 한 분야이다. 그러므로 그 사업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임명한 사업이며 모든 하늘이 그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별히 그 사업의 관리에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넓은 아량과 성화된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무분별과 사업상 기능의 부족으로 그들의 주님의 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또한 좁은 계획들을 채택하고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업을 위탁함으로 그 사업을 제한시키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기관들이 영적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들 자신의 결함된 사상과 계획들을 그들의 관리에 혼합시키지 않을 사람들에 의하여 관리되어야 할 것임이 반복해서 나에게 제시되었다. 이 사업은 신령한 것을 통속적인 것과 혼합시키는 자들, 하나님의 사업을 세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에 놓고 취급하는 자들에게 맡겨져서 그들이 자신의 세속적인 사업을 관리하는 데 습관적으로 해온 것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관리되어서는 안 된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업의 성장과 그 사업의 고상한 성격과 조화되게 계획을 세울 자들이 우리의 기관들과 관련을 이루기 전에는 수행되는 모든 것이 편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모욕을 받으실 것이다. 아,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책임을 진 모든 사람이 진실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처해야 할 고상하고 거룩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올 수 있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그들이 그렇게 되면 그들과 그들이 대표하는 사업은 다 같이 높임을 받고 거룩한 위엄으로 옷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관에 고용된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권면을 구하지 않은 자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밝혀진 위대한 진리의 원칙들과 일치되지 않은 자들, 그 결과로 뚜렷한 품성의 결점들을 나타낸 자들이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지금껏 위탁된 가장 위대한 사업은 사람의 결함된 관리 때문에 훼손당해 왔다. 551 만일 하늘의 법칙이 지배적 원칙으로 되어 왔다면 사업의 모든 부분들은 완전에 더욱 가까워졌을 것이다.

지도적 위치에 놓인 자들은, 세련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을 식별해서 그들이 감당하는 책임에 합당하게 보답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아량을 충분하게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 진실로,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받는 임금만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또한 불멸의 부를 얻기 위하여 일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생각과 힘든 노력을 요구하는 일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할 수 있는 자들이 덜 숙련된 일꾼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재능을 참되게 평가해야 한다. 선한 사업과 진정한 능력을 식별할 수 없는 자들은 우리 기관의 관리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향은 사업을 제한시키고 그것을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기관들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만큼 번영하려면 쇠하지 않는 열성과 영적 열의가 섞인 신중함과 열렬한 기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 올바른 계층의 일꾼들을 사업과 연결시키는 일은 더 많은 재정상 지출이 요구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그것이 경제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에 절약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낮은 임금으로 일을 하고 그들의 일이 성격상으로 그들의 임금에 상응한 그런 사람들을 채용함으로 절약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손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은 지체되고 축소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개인적 업무를 행하고 집을 짓고, 의복을 마련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일반적 경비를 지출하는 데서는 그대들의 원하는 만큼 절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절약을 능력과 진실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그런 방법으로는 그분의 사업에 적용시키지 말라.

552 사도 바울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올림픽 경기에 있어서 경주에 임한 자들은 가장 철저한 준비를 하도록 요구되었다. 여러 달 동안 그들은 육체에 힘과 활기를 주기 위하여 계획된 육체적 훈련을 여러 감독들을 통하여 받았다. 그들은 가장 건강한 상태로 육체를 보존할 수 있는 그런 음식만을 제공받았고 그들의 의복은 모든 육체 기관과 근육을 자유롭게 해주는 그런 것이었다. 세속적 영광을 얻기 위한 경주에 임하는 자들도 성공을 위해서는 그처럼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면, 주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성공을 얻고자 할 때는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준비할 필요가 얼마나 더 많겠는가! 하늘의 사물이 지상의 사물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으므로 세속적 영광을 바라는 자들의 것보다 그들의 준비는 훨씬 더 철저하고, 그들의 열성과 극기의 노력은 훨씬 더 커야 한다. 근육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도 가장 부지런하고 꾸준한 노력을 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왕궁의 수레를 타고 가는 순탄한 길이 아니고 힘든 노력으로만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가득한 거친 길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사업에서 일할 수 있는 자들에게 그 사업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중요성을 알려 주기 위하여 기울여졌어야 할 주의의 절반도 기울여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미숙한 그들의 힘으로 그들은 불완전한 사업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지혜롭고 헌신적인 교사들을 통하여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을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 스스로 훌륭한 사업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올바른 특성을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종사하는 사업에서 더욱 지혜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그들의 끊임없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 아무도 안락과 무활동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부족한 이해력으로 고상한 사업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한정된 표준에 맞추기 위하여 그것을 낮추지 않도록 그들 스스로를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553 나는 사업의 많은 분야에서 부기(簿記)가 크게 약한 것을 보았다. 부기는 사업의 중요한 한 부분이며, 또한 언제나 그럴 것이다. 부기를 전공한 자들은 우리의 기관들과, 모든 분야의 선교 사업에 크게 필요하다. 그것은 정확하고 신속하면서도 걱정이나 지나친 부담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를 요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유능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부끄럽게도 등한히 여겨져 왔다. 우리의 사업처럼 이렇게 중요한 일이 결함되고 부정확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도록 허용되는 것은 하나의 수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완전 사업을 원하신다.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사업을 하는 것은 거룩한 진리와 그 진리의 창시자에게 수치가 된다. 나는 우리 기관에 있는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들 사이에 행동의 조화와 연합이 없을 것을 보았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지시에 순종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보이지 않은 지휘관으로 서실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보이는 우두머리도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부주의하고 무질서한 일꾼들의 집단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또한 고집스럽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고상한 수준과 분명한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전진케 하고 향상하게 하는 일을 담당하지 않으실 것이다. 영혼의 향상은 예수님이 마음 속에서 다스리고 계심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은혜와 기쁨, 그분의 사랑의 복된 열매를 확산시키는 통로가 되는 마음은 그분의 성전과 그분의 보좌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기관들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그 기관들과 관련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친교를 나누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라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배우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점점 더 유능해지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그분께 가까이 나오고 그분의 도움을 구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들과 동행하고 그들과 이야기하실 것이다. 그분은 모든 일에 그들의 상담자가 되시고, 마치 다니엘에게 주신 것처럼 하늘의 지혜와 총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554 여러 해 전에,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서 신임할 만한 위치를 감당할 자격을 갖추어 줄 지식을 얻는 일에 우리의 백성들이 매우 뒤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교인들은 주님을 위하여 일할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 사람에게는 그의 재능대로 일이 맡겨져 있다.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일지라도, 우리는 사업을 위하여 재능 있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자 각성하고, 그들이 신임받는 위치에 있는 동안 그들과 교제하는 모든 사람을 교훈과 모본으로 교육시킬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기적 야망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간직해 왔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짐을 지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할 수 있었던 바로 최선의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야 한다.

만일 주님께서 이것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에 유의했더라면, 우리의 기관들은 오늘날 처해 있는 것보다 더욱 고상하고 거룩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적은 업적에 만족해 왔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하여 정신적·도덕적·육체적 능력에 있어서 향상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셨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로 하여금 바로 이 사업을 하게 하고자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결과로 그들은 지성에 있어서, 또한 생각하고 계획하는 능력에 있어서 도달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그들은 덕에 덕을, 지식에 지식을 더함으로 주님 안에서 강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제 각 사람은 확고한 결심으로 일어나 일하러 나가자. 지금 사업은 보다 많은 수의 일꾼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꾼들의 훌륭한 기술과 헌신을 더욱 필요로 한다.

베틀크릭의 우리 기관들

555 배틀크릭에 너무 많은 책임이 집중되므로 야기되는 악은 적은 것이 아니었다. 환경만 바뀌어지면 그들의 모든 영향력을 악한 편으로 발휘하도록 권유하고자 기다리는 신성하지 못한 요소들 때문에 위험이 많이 있다. 만일 우리의 기관에 연결된 자들이 오로지 헌신적이요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들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 같으면 우리가 지금껏 목격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번영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겸손히 의지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일이 이처럼 결정적으로 부족한 이상,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에 사업을 확장시키는 대신에 제한시키는 사람들, 혹은 “신앙은 신앙이고 사업은 사업이다”라는 표어를 따르는 사람들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멀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 상황을 보고 원인에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대 학

우리 대학의 교사들은, 잘 균형잡힌 정신을 가진 남녀들, 강력한 도덕적 감화를 가진 남녀들, 사람들의 마음을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아는 남녀들, 진정한 선교 정신을 소유한 남녀들이어야 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일 것 같으면 지금 학장에게 지워지는 짐은 가벼워질 것이며, 그가 조로(早老)해질 위험도 제거될 것이다. 그러나 부족되고 있는 것은 이 지혜이다.

수업료를 너무 낮게 책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은 매우 많은 후원을 받지 않을지라도 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그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진정으로 높이 평가하는 자들은 그것을 얻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수업료가 싸기 때문에 오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다른 학생들이나 교회에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556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재치와 기량과 경계가 요구된다.

대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교육을 받고 싶으나 재정이 허락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 리뷰 앤드 헤랄드 사에 비치해 둔 자금이 있었다. 이것은 여러 학생들에게 수여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학생들은 공부를 훌륭히 시작하게 되었고, 그들이 도움을 받은 양 만큼의 자금을 대치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어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선교 사업을 위하여 자신을 준비시키기를 원하는, 가난하면서도 자격있는 학생들에게 빌려 줄 그런 자금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가 지금 취해져야 한다. 우리들 가운데는 보호와 격려를 받기만 하면 사업에서 훌륭하게 봉사할 유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할 때는 교회들이 그들의 학비를 지출하는 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여겨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할 수 있는대로 그들 자신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히 제시되어야 한다.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가볍게 여겨질 것이다. 무엇인가 그것의 참 가치에 해당되는 비용이 드는 것은 거기에 따라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지역에 있는 교회들은,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선교 활동에 종사하게 하는 일에 관하여 그들에게 엄숙한 책임이 지워져 있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그들 가운데 있는 어떤 사람들이 유능한 일꾼들이 될 가망이 있지만 그들 스스로를 교육시킬 수 없는 것을 깨달으면, 그들은 그 사람들을 대학으로 보내어 교육을 받아 향상하게 해 줄 책임을 져야 한다.

관리자들의 자격

오늘날 우리의 주요 기관들과 관련된 사람들측에서 철저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어떤 가치 있는 품성의 특성들을 소유하고 있는 한편 다른 특성들은 슬프게도 결핍되어 있다. 그들의 품성은 하나의 다른 특성,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특성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 557 그들은 아직도 완전에 이르지 못했고, 품성 형성의 사업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의 모든 광선 가운데서 행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생애와 품성에 비교한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분의 영역에서 완전하신 것처럼 신들의 영역에서 그들 스스로를 완전하게 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런 일의 중요함을 깨달았더라면 그들은 오늘날 현 상태보다 훨씬 더 발전하고,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이 은혜의 시기에 그들은 품성의 완성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이 품성의 결함이 없는 완전한, 잘못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결함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사업과 관련되어 있는 동안 모본되는 분을 어떻게 본받을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우기를 그들에게 바라신다.

예수님은 요한과 베드로와 유다를 그분의 사업과 관련시켜 당신의 동역자로 삼으셨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끊임없이 배워야 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스도인 품성을 이루어 주는지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사상과 그들의 잘못된 견해들을 고쳐 줄 교훈들을 그분의 가르침에서 얻어야 했다. 요한과 베드로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울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이용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불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고자 애썼기 때문에 마침내 그는 마귀의 시험에 정복당하여 그의 주님을 부인하게 되었다. 유다 역시 이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들을 배운 것과 동일한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교훈들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다. 그는 듣는 자에 불과했고 실천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 결과는 그가 그의 주님을 부인하는 일에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관들과 관련을 맺게 해준 사람들은, 그들이 책임 있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향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대표적인 사람들, 사람들에게 지금껏 위탁된 가장 신성한 사업의 수호자들이 되고자 한다면 그들은 배우는 자들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558 그들은 자만하거나 잰 체하는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거룩한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들에게 봉사하고자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빛과 하늘의 감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

만일 배틀크릭의 사무실과 관련된 사람들의 품성이 변화됨으로 그들의 지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감화를 입힐 수 있게 된다면 전망은 훨씬 더 고무적일 것이다. 고용된 사람들이 그들의 재능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위치에서 가납될 만큼 자격을 갖추기 전에 크게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이유가 있다. 그들은 교훈을 베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에 있어서 실수가 없는 분으로부터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 위대하고 중요한 사업이 그릇되게 꼴 지워지고 그들의 손에서 불완전하게 나올 위험이 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무지를 더 많이 느끼고 자아를 적게 의존한다면 그들은 위대한 교사에게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나를 보신다”는 말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사무실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각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언제나 느끼게 되면, 세상의 습관에서는 너무도 보편화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쾌히 여기시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서서히 침해하는 일을 방지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업에 뿐만 아니라, 피차간에도 공의가 실천될 수 있도록 사무실의 여러 부서에 있는 교역자들의 생애에 섞여져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제일 첫째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대 자신의 마음 속에 거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축복을 그대들의 가정으로 가져가서 그대들의 비평을 제거하고, 그대들의 까다로운 행동을 극복하고, 쾌활과 친절의 정신이 우세해지게 하라. 그대들의 가정 분위기는 그대들과 함께 사무실로 옮겨지고, 하늘의 화평은 그대들의 심령을 두르게 될 것이다. 559 예수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곳은 어디나 다른 사람들을 동정하는 친절과 사려가 있다. 나의 형제들이 종사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사업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계발하는 사업이다.

나는 우리의 기관들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이신 수석 지도자가 계심을 마음 속에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사업의 각 부서의 모든 사업 거래에 있어서는 엄격한 정직이 있어야 한다.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확고 부동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정과 자비와 인내가 확고 부동함과 혼합되어야 한다. 공의는 쌍둥이 자매인 사랑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좋은 지도자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기만은 있을 수 없다. 복된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어야 한다. 성경의 교훈은 매일의 생애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이사회

우리의 회의를 구성하는 자들은 매일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서 마음이 온유해지고 겸손해지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므로 실수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친절과 동정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필요를 깨닫지 못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징지었던 공의를 실천하고, 긍휼을 사랑하고, 참 예의를 나타낼 준비를 갖추지 못한다. 이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감시 아래 있다는 것을 언제나 깨달아야 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들의 품성에서 모든 결함을 제거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계획을 세우는 일에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면서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표준에 달하여야 한다.

이사회에서 봉사하는 각 사람은 하늘의 지혜를 가장 열렬하게 구할 필요가 있다.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모임에서 느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영의 감화가 그들의 사업에 올바른 특성을 이루어 줄 것이다. 560 그것은 소란한 행동을 진정시키고 사람들을 날카롭고, 비판적이고, 거만하고, 비난하게 하는 부정한 세속의 영향에 매력을 갖지 않게 할 것이다.

이 회의가 시작될 때, 형식적인 몇 마디의 짤막한 기도가 드려진다. 그러나 참석한 자들의 마음은, 산 믿음, 겸손하고 통회하는 정신으로 드려진 열렬하고, 끈질긴 기도에 의하여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만일 이사들이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그들 스스로를 분리시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들의 동료들을 취급하는 일에 그 숭고한 정신적 성실을 보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그들 자신의 정신이 그들이 하는 결정에 혼합될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사단이 분명히 그들의 위원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헌신하지 못한 상태를 이용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배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결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정신과 마음을 언제나 지배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대들은 주님을 모든 회의에 모셔야 한다. 만일 그대들의 모임에서 그분의 임재를 깨닫게 되면, 모든 처리는 양심적이요 경건하게 고려될 것이다. 정직하지 않은 모든 동기는 억제될 것이며, 큰 문제이거나 작은 문제이거나 간에 고결함이 그대들의 처리를 특징지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도를 먼저 구하라. 그대들이 다 같이 올바르게 의논하기 위하여 이것이 필요하다.

그대들은 분주한 생활의 활동 때문에 기도가 줄 수 있는 힘이 가장 필요한 때에 기도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경건은, 사업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 심령에서 쫓겨 나갈 위험을 당하고 있다. 그대의 요구를 기다리고 있는 힘과 하늘의 지혜를 심령에서 속여 빼앗는 것은 큰 악이다. 그대들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조명이 필요하다. 이 지혜를 소유하지 못하면 아무도 그의 사업을 처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출판사가 설립된 이래,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빛이 때때로 주어졌고, 주님께서는 모든 일꾼들이 실천해야 할 원칙들을 자주 세우셨다. 561 사업의 초기 경험에 있어서는 신임받는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지워진 책임들이 끊임 없이 우리 앞에 제시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과 그분의 택한 백성의 유익을 신성하게 수호할 수 있도록 하루에 세번 내지 다섯번씩 주님께 간구했다.

우리의 회의에서 주님이 떠나시게 하고 사람들의 지혜에 신임을 두는 것은 가장 악한 종류의 어리석음이나, 그대들의 신임받는 위치에서 볼 때 그대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대들이 빛의 통로가 되기 위하여, 그대들 자신을 지혜와 빛과 지식의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에 두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느껴야 한다. 현대 진리의 사업의 발전과 번영에 관련된 중요한 관심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만일 그대들이 모든 지혜와 의의 근원되신 분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하고, 현명한 계획들을 세우고, 지혜로운 권면을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회의에서 처리되어야 할 업무는 한 가지로 너무 경하게 고려되어 왔다. 통속적 이야기, 통속적인 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관한 논평이 중요한 모임들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대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모임을 지켜보시는 증인이 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을 보시는 여호와의 눈이 그대들의 결정을 하나하나 헤아리시고, 그것들은 그분의 거룩한 율법, 그분의 위대한 의의 원칙과 비교된다. 지도자들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기도하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 이기심에서 벗어난 사람, 그들 자신의 인간적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에게 위탁된 사업을 수행하는 최선의 방법으로써 열렬하게 빛을 구할 사람들이어야 한다.

세속적 정책

세속적 사업가들이 채택하는 정책은, 우리의 기관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택하고 실천해야 할 정책이 아니다. 이기적 정책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 속한 것이다. 562 이 세상에서는 지도적 좌우명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므로 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이것을 따를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계층의 사회에서, 국가들의 큰 회의에서,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적 원칙이 되어 있지 않는 곳은 어디든지, 지배적 영향을 발휘한다. 신중과 주의, 기지와 기량은 출판소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우리의 대학과 위생병원에서 봉사하는 자들에 의하여 계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의와 의의 법칙이 등한시 되어서는 안 되며, 각 사람이 다른 분야들과 상관없이 그의 특수한 분야의 사업만 성공하게 하고자 하는 원칙이 우세해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의 관심은 사람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는지 보기 위하여 철저히 경성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매매의 신이 너무도 흔히 사기(詐欺)의 신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업을 취급하는 자들이 그러해서는 안 된다. 세속적 표준은 거룩한 사물과 관련되어 있는 자들의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심판의 장면이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는 책들은, 우리의 기관들에서 경건을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고 세상의 표준을 따랐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피차간에 행동하는 관계, 특별히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자들의 관계가 나에게 매우 완전하게 제시되었다. 나는 중요한 기관들, 아마도 성격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동일한 사업의 분야들을 대표하는 형제들 사이에 인색한, 약삭빠른 거래가 조금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았다. 고상하고, 관대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이 그들에 의하여 언제나 지탱되어야 한다. 탐욕의 정신은 그들의 거래에서 용납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성품에 반대되는 그들 편의 여하한 행동에 의해서도 발전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거래 방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동일한 기질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나 관대함과 참된 예절의 표현은 보답으로 동일한 정신을 일으킬 것이며,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것이다.

563 세속적 정책은 그것 때문에 너무도 흔히 실수가 범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식별력으로 등급이 매겨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떤 원인으로 사용되든지 간에 그것은 이기심의 일종이다. 신중함과 건전한 판단은 그들의 활동에 있어서 결코 편협하지 않다. 그것들로 지도되는 정신은 종합적인 견해를 갖게 되고 한 가지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관점에서 사물들을 본다. 그러나 세속적 정책은 좁은 범위의 시야를 갖는다. 그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목적은 볼 수 있지만 멀리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한다. 그것은 이익을 얻기 위한 기회를 언제나 살펴보고 있다. 세속적 정책의 노선을 따르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건물에서 기초를 빼냄으로 자기 자신을 세우고 있다. 모든 구조물은 서 있기 위해서는 바른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서적의 저작권 사용료

정신 노동자들은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자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교역자가 자신이 받는 급료에 해당되는 시간을 그의 고용주에게 성실하게 바칠 것 같으면 그의 고용주는 그에게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순간들을 부지런하고 철저하게 절약함으로써 출판을 위하여 귀중한 다른 재료들을 준비한다면, 그가 하나님의 사업에 가장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그에게 속한 일이다. 만일 그가 적은 저작권 사용료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그는 그 책을 취급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의 좋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의 일을 하도록 요구당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출판사 이사회에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대신하는 책임을 지우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들의 조건에 대하여 사람들을 강요하고자 끈덕지게 노력해서는 안된다.

저자들은 그들이 번 돈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돈을 요구하는 곳이 많을 것이다. 선교지들이 개척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많은 지출을 요구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재능을 받은 자들은 그들의 능력을 따라 이 재능들을 이용해야 한다. 그들은 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담당해야 할 몫이 있기 때문이다. 564 이사회의 구성원들이, 우리 교단의 서적에서 얻는 모든 유익이 출판소와 그 대행자들에게로 돌아가야 하며, 저자들이 책을 저술하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보수를 받은 후에는 그 이익을 나누어 갖는 권한을 포기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일을 직접 담당할 때, 그들은 그들이 실천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서적의 저자들은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거의 사업의 초기부터 사업과 관련을 맺어 왔다.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 정신 노동으로 되어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또한 그들과 함께 자라나지 못한 우리의 기관들과 관련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관리에 관하여 때를 따라 주신 모든 교훈의 이점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관리자들도 있다는 사실이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 곧 그리스도의 정신을 그들의 사업에 병합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판사가 완전한 통제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개인의 재능과 개인의 권한은 존중되어야 한다. 출판사에서 개인의 재능에 속한 모든 결과를 투자하도록 조치가 취해진다면 다른 중요한 사업들은 불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일을 맡기셨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분께서 재물과 영향력의 달란트를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마음 속에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하도록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사업을 추진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 그 사업을 추진시킬 책임을 느낄 것이다.

H 형제가 베틀크릭에서 사업을 시작한 바로 초기부터 그에 대하여 발휘된 인색하고 관대하지 못한 정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여러 차례 나타났다. 그 이유를 말하기가 서글프다. 그것은 그가 낯선 사람이요 가난뱅이로 그 곳에 갔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그의 가난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기관들과 관련된 사람들은 그를 그들의 조건에 따르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거치게 되었다. 565 형제들이 친절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방법으로 그를 취급했을 것 같으면 통과하지 않았을 슬픈 장면들이 그의 경험 가운데 있다. 주님의 사업은 언제나 가장 작은 불공평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그것과 관련된 행동에는 가장 작은 정도의 인색이나 압제의 기미도 없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의 유익을 돌보신다. 그분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의 친구가 되셨다. 거룩한 사물을 취급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이 가장 놀랍게도 결핍되어 있다. 나는 어느 곳에서나 나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발하라고 말하고자 한다. 365 그것은 광야에 흐르는 시냇물처럼 그리스도인의 심령에서 솟아나서 새롭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그 자신의 생애와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 즐거움과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565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롬 14:7). 365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압제하거나 작거나 크거나 간에 그들을 불공평하게 취급하는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압제자를 문책하실 것이다.

J 목사나 H 교수, 그밖의 다른 정신 노동자에게 공정하지 않은 계약을 하고자 애쓰지 말라. 서적을 만드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조건을 수락하도록 그들을 권유하거나 강요하지 말라. 이 사람들은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위탁받은 재능과 그것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시하는 때와 장소에서, 열심히 일하여 얻을 수 있는 재물을 투자하는 특권을 원한다.

나의 형제들은, 하나님의 사업이 배틀크릭의 출판소와 거기에 세워진 다른 기관들 이상의 것을 망라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그 출판소가 세워진 내력을 J 형제보다 더 잘 알지는 못한다. 그는 바로 출판 사업의 시초, 곧 그 사업이 가난에 눌려 있을 때 출판을 살리기 위하여 먹는 것과 입는 것, 우리의 임금에 있어서 극기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식탁에 놓인 음식물이 겨우 체력을 유지할 정도에 불과했던 때부터 그 사업과 관련되어 왔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566 그러므로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유사한 환경이 되면 다시 같은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련을 경험하고서 현재의 번영 속에서 사업과 관련된 자들에게, 그들이 공정성을 인정할 수 없는 협약을 수락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J 형제는 하나님의 사업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보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의 재물을 투자할 것이다. 이 재물을 받아들이고 지출하는 책임은 그 재물이 속한 곳, 하나님이 영향력과 능력의 달란트를 위탁해 주신 사람들에게 넘겨진다. 그들은 이것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출판소나 출판소의 요직에 있는 교역자들도 이 저자들의 청지기 직분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사회가 H 와 J 형제에게 그들의 협약을 수락하게 할 수 있다고해도 이 저자들은 그들이 불공평하게 취급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동정과 행동의 조화를 해치게 될 시험의 문이 그들 앞에 열리지 않겠는가? 만일 경영자들이 모든 이점을 독차지하면 사업은 나쁘게 될 것이며, 연속적인 악이 나타나고, 출판소는 재난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위원회 속에 이미 어느 정도 나타나 있는 편협한 정신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없는 좁고, 자만에 빠진 정신이 거룩한 진리의 기별과 관련된 사람들을 사로잡기를 바라고 있다.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기관들의 사업에 적용되는 동일한 원칙은 넓은 범위에서의 사업에도 또한 적용된다. 다음의 편지는 1880년 11월에 K 형제에게 쓴 편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일꾼들을 위한 넓은 분야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업의 단순함에서 벗어나 있다. 지금은 일할 때이며 현명한 하나님의 권면에 따라 그렇게 할 때이다. 만일 그대가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을 선교 사업과 안식일 학교에 연결시키면 사업은 단순한 형식에 불과해질 것이다. 모든 분야의 일꾼들은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그리스도의 단순성으로 일하게 될 것인지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가장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접촉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567 우리는 우리가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넓은 영역으로 퍼져 나가고 더 많은 사업에 착수할 위험이 있다. 다른 사업에 지나치게 유의함으로써 어떤 중요한 사업의 분야들을 등한히 할 위험이 있다. 아무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사업에 착수하는 것은 나쁜 계획이다.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하되, 사업의 단순성에서 지나치게 벗어남으로 우리의 가장 좋은 조력자들이 희생 없이 건강 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모든 사업을 돌볼 수 없게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과 건강은 돌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열리는 대로 따라갈 준비를 언제나 갖추는 한편, 우리가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도움과 재정을 소유한 것 이상의 큰 계획들을 세워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착수한 사업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증가시켜야 한다.

더 큰 계획들과 더 넓은 분야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는 동안, 영혼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하여 활동해야 할 일꾼들의 선택과 훈련에 관하여 더 넓은 시야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젊은 목사들은 정력을 가지고 사업을 감당하도록 격려를 받고 단순하고 철저하게 그 사업을 추진시키도록 교육 받아야 한다. 나는 우리의 젊은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인정을 받으며 얼마나 격려를 적게 받는지를 깨닫고 놀랐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사업에 집착하여 이기심 없는 관심으로 어떤 것이든지, 또한 모든 것을 한다.

편협과 부정직한 취급은 귀천을 막론하고 교역자들에게 자리잡아서는 안 된다. … 그리스도의 방법은 더 많아져야 하고 자아에 대한 것은 더 적어져야 한다. 예리한 비판은 억제되어야 한다. 모든 교역자들에게 동정과 자비와 사랑이 계발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마음을 점유하지 않고, 자아가 정복당하고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지 않으시면,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번영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형제여, 나는 그대에게, 또한 오래 견딜 수 있도록 철저하게 사업을 추진하고자 노력하라고 권하는 바이다.”

가정과 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인 감화

568 L 씨 부부에게: 나의 마음은 그대들 때문에 무겁다.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대들의 마음 속에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예수님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그대들은 깊은 내적 경건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대들은 스스로 기만당하고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유익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즉시 해야 하는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그의 의무를 다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온 마음, 전적인 애정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에 대한 지식을 공언하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기를 원치 않으신다.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간에 요구는 똑같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대로 행동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맡겨진 봉사를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신의 양심을 더럽히고 그의 영혼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도 하늘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일을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진리의 보화를 사람들에게 위탁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뢰와 확신이다. 마음 속에 있는 은혜는 외적 행동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고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허영으로 들뜨지 않는 마음, 자아에 집착되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 각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려는 끊임없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비천한 활동들을 주목하신다. 그것들은 그분의 눈에 귀중하다. 그대들은 다 같이 흠을 잡고, 화를 잘 내고, 비난하고, 가혹해지는 일 없이 가정의 경건, 즐겁고 흡족한 만족이 필요하다. 친절과 사랑이 그대들의 가정의 법칙이 되게 하라. 자기의 가정에서 진리의 빛을 비추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구주를 욕되게 한다.

569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과, 그사람 뿐만 아니라 그의 감화의 영역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많은 것을 한다. 진정으로 회개한 영혼은 하늘에서 빛을 받게 되고, 그 영혼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이 되신다. 그의 말과 그의 동기와 그의 행동은 오해되고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괘념치 않는다. 그는 현재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으며,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지 않는다. 그는 또한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그의 소망은 하늘에 있다. 그는 예수님을 주목하고 항상 단정하게 행한다. 그는 바르기 때문에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행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바르게 행한다. 그는 친절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하여 사려 깊다. 그는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결코 말하지 않고 그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 그의 태도는 불경한 자들의 태도처럼 거칠고 오만하지 않다. 그는 하늘에서 사람들에게 비춰준 빛을 반사한다. 그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는, 진실되고 담대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군사이다. 그가 영향력을 얻음에 따라, 그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고 그의 경건은 인정을 받고 그의 성경 원칙은 존경을 받는다.

진정으로 회개한 모든 사람은 그와 같다. 그는 귀중한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것처럼 걸어가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고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을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는 그를 통하여 그의 가정에서, 그의 이웃에서, 그의 교회에서 감명을 준다. 두렵고 떨림으로 그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 있는 동안 그는 영원을 위하여 품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세상 앞에서 귀중한 진리의 원칙을 예시하고 있으며, 진리가 참 신자의 생애와 품성을 위하여 무엇을 해주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는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구속에 나타난 탁월한 그리스도의 사업에서 그의 몫을 담당하고 있으며, 성격과 영향력에 있어서 멀리까지 미치는, 거짓 종교와 거짓 과학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있는 사업을 하고 있다.

570 나는 그대들의 형제들이 그대들에게 이런 것들을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써야 할 의무를 느낀다. 나는 그대나 그대의 아내가 하늘의 저택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 저택들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가치에 비례되는 정력과 열성을 쏟아야 한다. 영생은 끈기 있고 지치지 않는 노력을 할 가치가 있다.

주님께서는 그대와 그대의 가족이 말 그대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대들의 품성을 통하여 변화시키는 진리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만일 그대들이 그런 품성을 형성했을 것 같으면 그대들의 업적은 심판의 시험을 견디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의 불이 지금의 현실 그대로의 그대들의 업적에 불붙게 된다면 그것들은 다만 풀이나 나무나 짚에 불과함이 입증될 것이다. 이것을 가혹한 말이라고 생각지 말라. 그것은 사실이다. 그대들의 모든 활동에 자아가 혼합되어 있다. 그대들은 높은 표준에 이르고 싶은가? 그것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이루는 것에 대한 첫째 원칙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베드로에게,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그대들도 주님을 위하여 가납될 만한 일을 할 수 있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계속해서 성별하도록 그대에게 맡기신 재능의 달란트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바치지 않으면 그대의 능력은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다 같이 위험한 것이 되어 그들을 진리로부터 떠나가게 하고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임이 입증될 것이다.

________에 있는 교인들은 그들을 위하여 매우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뜨거운 열성을 가져야 하고, 더욱 겸손하고, 더욱 인내하고, 더욱 친절하고, 더욱 가르침을 잘 듣고, 모든 면에서 더욱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그들은 품성을 통하여 성화케 하는 은혜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교훈과 모본으로 이 필수적인 과업을 완수하는 길을 막지 않도록 명령하신다. 그대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겠는가? 그대는 그대를 속량하신 주님께 성실하겠는가? 그대는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뒤로 돌리겠는가? 그대는 더 큰 믿음, 더 큰 사랑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 571 그대는 영원한 중요성을 가진 것들을 더 크게 존중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개인적 경건의 모본과, 품성에 미치는 성화케 하는 진리에 대한 교회의 전시(展示)에서 흘러나오는 감화의 범위와 능력을 더 이상 강하게 감명시켜 줄 수 없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위치를 유지하고 각 사람이 그 자신의 마음과 가정을 질서 있게 하고자 노력했다면 더 큰 수확이 ________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말은 적게 하고, 마음 속의 진정한 경건이 선한 행동을 통하여 비취게 하라. 친절하라. 사랑과 온유를 계발하라. 더 많이 기도하고, 성경을 더 많이 읽으라.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부지런한 학도가 되라. 그렇게 되면 교인들은 형제 자매들에게서 결점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단이 하는 일이다.

나는 그대가 믿음 안에서 강해지고 굳게 서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업과 함께 전진하든지 않든지 간에 그 사업은 분명히 발전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것과 함께 승리할 것인가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마음 속에 은혜의 깊은 역사의 필요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신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생명을 희생하고 그대를 사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인상 깊은 꿈

사랑하는 M 형제에게: 나는 지난 밤에 인상 깊은 꿈을 하나 꾸었다. 나는 그대가 튼튼한 배를 타고 매우 거친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때때로 파도가 갑판 위까지 휩쓸었고, 그대는 물에 흠뻑 젖었다. 그대는 말했다. “나는 내리겠다. 이 배는 침몰하고 있소.” 그러자 선장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요, 이 배는 항구로 들어가고 있소. 결코 침몰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또 응수했다. “물에 휩쓸려 배 밖으로 떨어질 것 같소. 나는 선장도 항해사도 아닌데 누가 돌봐 주겠소? 572 나는 저쪽에 보이는 저 배를 타겠소.” 선장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리로 가도록 허락하지 않겠소. 나는 그 배가 항구에 정박하기 전에 바위에 부딪칠 것을 알기 때문이오.” 그대는 똑바로 서서 큰 확신으로 말했다. “이 배는 파선 당할 것이요. 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소.” 선장은 예리한 눈으로 그대를 주시하고 단호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 배를 타므로 당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도록 허락하지 않겠소. 그 배의 뼈대를 이룬 재목들은 좀이 먹었고, 그 배는 믿지 못할 배이요. 만일 당신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가짜와 진짜, 거룩한 것과 완전히 멸망되도록 정해진 것과를 구별할 수 있게 될 것이오.”

나는 잠이 깨었다. 그러나 이 꿈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게된 것이다. 나는 그대가 “큰 시험과 시련을 당하고 있다”는 한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이것들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M 형제여, 그것이 무엇인가? 사단이 그대를 다시 유혹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전에 실패한 동일한 장소에 가도록 허용하고 계시는가? 그대는 지금 불신이 그대의 영혼을 사로잡게 하겠는가? 그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매번 실패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대를 도우셔서 마귀를 대항하고 그대의 온갖 믿음의 시련에서 더 강하게 해주시기를!

그대가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조심하라. 그대의 발이 바른길을 가게하라. 불신에 대하여서는 문을 닫고 하나님을 그대의 힘으로 삼으라. 난처한 지경에 빠질 때는 침착하라. 어둠 가운데서는 움직이지 말라. 나는 그대의 영혼에 대하여 크게 염려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허락하시는 마지막 시련일 것이다. 멸망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라. 기다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대를 도와주실 것이다. 인내하라. 그러면 밝은 빛이 나타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인상(印象)들에 굴복당할 것 같으면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인데, 영혼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귀중하다.

나는 대쟁투의 제1권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 중요한 주제들-창조와 사단의 타락에서 아담의 타락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을 살펴볼 때 매우 엄숙한 느낌을 갖게 한다. 내가 기록할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매우 가까이 계신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나는 이 대쟁투를 그 시초부터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깊이 생각할 때 크게 감동을 받는다. 573 흑암의 세력의 활동이 나의 마음에 분명하게 제시된다. 가장 큰 시련의 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천사의 옷을 입은 사단은, 광야에서 그리스도께 접근했던 것처럼 유혹물을 가지고 영혼들에게 접근할 것이다. 그는 성경을 인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지 않으면 그는 분명히 불신으로 우리의 영혼을 결박할 것이다.

시간은 매우 짧다. 이루어져야 할 모든 것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천사들은 네 바람을 붙들고 있으며, 사단은 진리 안에 완전히 서지 못한 각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 각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품성 가운데 있는 모든 결함은,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극복되지 않으면 분명히 파멸의 수단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백성들이 이전 어느 때보다 진리의 정신으로 강하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왜냐하면 사단의 계책은 하나님을 그의 능력으로 삼지 않은 모든 영혼을 사로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루어져야 할 많은 사업을 갖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기신 일을 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노력과 함께 역사하실 것이다.

매일의 성경 연구가 필요함

말씀과 교리로 활동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배우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들의 모본이 되고 그들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향상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향상과 자기 개선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은혜 안에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온 하늘은 남녀들을 미래의 생애, 불멸의 생애를 위하여 준비시키는, 이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간 기구들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서 그리스도의 협력자로서의 고귀한 영광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574 하나님의 말씀은, 이 위대한 사업에 동역하는 기구가 주님의 사업에서 가장 높은 도덕적·영적 탁월함에 이르고자 모든 진지한 노력을 할 때 그를 돕기 위하여 그의 오른편에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특권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것은 도움의 필요를 느끼는 모든 사람의 경우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신성하고 거룩하게 보고, 그들을 신령한 생애에서 향상하게 해주는 그분의 은혜의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기쁨과 감사의 제물을 날마다 그분께 가져와야 한다. 교역자는 자기 자신을 겸비한 눈으로 바라보고, 근면과 사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그가 잃어버린 많은 기회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는 낙담하지 말아야 하고, 세월을 아끼기 위하여 자신의 활동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봉사자가 되도록 택하신 사람들은 마음을 철저히 살피고 세상의 구속주와 밀접히 연결됨으로써 자신을 준비시켜야 한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께 영혼들을 인도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들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위치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고의적인 무지가 너무 많다. 그들은 성경을 철저히 이해함으로 이 사업에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그들에게 산 실재가 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겸비하게 하고, 완전히 마음을 겸비하게 하여 성경대로 걸어간다면, 그들이 본받아야 할 모본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을 주시하지 않는다.

아무도 사단의 유혹에 굴복하여 자신의 양심을 어기고 성령을 근심되게 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는 온갖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575 만일 예수님을 그들 앞에 모실 것 같으면 그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마음 속에 거하게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성공하게 해주는 능력을 그들의 활동에 사용하게 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사업에서 점점 더 유능해지고, 사업의 번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은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임을 증거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영적 생애에서 아무리 향상할지라도, 그는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까지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믿음의 증거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교리의 모든 점들은, 비록 그것들이 진리로 받아들여졌을지라도, 율법과 증거에 견주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이 시험에 견디지 못하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사 8:20)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때의 최후의 사업에 계시된 그대로의 구속의 큰 계획은, 철저히 검토되어야 한다. 하늘 성소와 관련된 장면들은 모든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너무도 큰 감명을 주어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들을 감명시켜 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속죄의 사업에 관하여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게 되면, 그 진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한 백성을 하나님의 큰 날에 서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조화를 이루어 일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활동은 성공할 것이다. 연구와 명상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통속적인 것, 세속적 생각과 감정을 초월하게 될 것이며, 백성들의 죄를 정결케 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위대한 사업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들의 믿음은 그분과 함께 성소에 들어갈 것이며, 지상의 경배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주의 깊이 살펴보고 그들의 품성을 의의 큰 표준과 비교해 볼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결점들을 보게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이 이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의 대사들에게 맡겨진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을 감당할 자격을 갖추려면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576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3-57). 말씀과 교리로 활동하고 있는 자들 중 몇 사람이나 그리스도의 살을 먹으며 그분의 피를 마시고 있는가? 몇 사람이나 이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가? 구주께서는 이 문제를 친히 설명하신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믿는 자들의 실제적인 성품과 함께 짜여져야 한다. 살아 있는 유일한 믿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과 동화되어 생명의 한 부분이 되고 생애와 행동의 동기가 되게 하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리워진다. 그분은 아버지의 율법을 받아들이시고, 그 원칙을 당신의 생애에 실천하시고, 그 정신을 나타내시고, 마음 속에 있는 그 은혜로운 능력을 보여 주셨다. 요한은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분의 경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씀과 일치되게 변화되고, 그 거룩한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안에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업은 그분의 제자들의 정신과 사업이 되어야 한다.

진리를 설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진리가 생애에 실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해야 한다. 각 사람은 개인적 경험을 하고 영혼들과 접촉하기 위하여 개인적 노력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그의 능력을 모두 사업에 바치고, 계속적인 활동을 통하여 그 사업을 바람직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교육시키도록 요구하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세상에서 밝고 찬란한 빛이 되기를 바라신다. 577 하나님의 일꾼들이 그들의 모든 능력을 철저하게 훈련시킬 것 같으면, 그들은 지혜를 다하여 분별력 있게 일을 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의 활동에 응답하셔서 그들의 동료 인간들을 향상시키고, 세련되게 하고, 구원하실 것이다. 모든 교역자들은 기지를 사용하고 그들의 모든 능력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영의 영향을 받게 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고 그분의 산 말씀에서 그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책망과 교훈과 격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면 그분의 영이 그들을 강하게 해줄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신앙적 경험 안에서 향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 계단 한 계단 더 높은 경지로 이끌려 가게 되고, 그들의 기쁨은 충만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완수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찬양할 시간도 없고 그렇게 할 의향도 없다. 물론 그들은 불평하거나 투덜댈 시간을 찾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의 애정이 하늘의 사물에 집중되어 있지, 지상의 사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에 마음과 영혼과 육체는 주님의 사업에 동원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기적으로 일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부인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진실한 제자들이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를 높일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먹음으로써 의무를 수행할 능력을 얻게 되고 시련에 대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강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잘 균형잡힌 남녀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하늘 왕의 참된 자녀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고 명상하는 위대한 진리는 마음을 넓혀 주고, 판단을 강하게 해주고, 품성을 고상하게 해줄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영혼 구원 사업에 있어서 초보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 생애에 있어서 난쟁이가 되지 않고, 그들의 산 머리가 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남녀가 되기까지 자라날 것이다. 진리의 원수들과의 싸움은 그들의 소망을 굳게 해줄 뿐이고, 그들은 귀중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겸손한 간구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위대한 구조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활동이 성공하게 되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로 돌려질 것이다. 578 하늘은 동정과 협력을 가지고 그들에게 매우 가까이 올 것이다. 그들은 진실로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그들은 마음과 생애의 순결, 확고한 목적,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의 안정과 유능 등으로 특성을 드러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귀족들이다.

마지막 승리를 얻는 모든 사람들의 신앙 생애에는 무서운 난관과 시련의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관한 그들의 지식은, 마음에 위로를 주고 전능하신 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굳게 해 주는 하나님의 고무적인 약속들을 기억나게 해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말씀들을 읽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10:35).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 1:7).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더 귀하다. 모든 사람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받아야 할 훈련의 한 부분, 곧 세속의 불순물에서 자신을 정결케 하고 정련하는 데 필수적인 것임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원수들의 조롱과 공격을 견디고, 사단이 길을 막기 위하여 그들 앞에 놓는 모든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그는 그들에게 기도를 등한히 하도록 이끌고 성경을 연구하는 일을 방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와 하늘의 매력을 숨겨 버리기 위하여 그의 증오스런 그림자를 그들의 길에 드리울 것이다.

어느 누구도 계속적으로 의심함으로 말미암아 움츠러들거나 떨어서는 안 되며, 그들의 길에 불평의 씨를 뿌려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자비를 깨닫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그대의 모든 힘을 다하여 역경 중에 위를 쳐다보고 밑을 내려다보지 말라. 그리하면 그대는 결코 도중에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구름 뒤에서 그대를 도와주기 위하여 손을 뻗고 계시는 예수님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해야 할 모든 일은 단순한 믿음으로 그대의 손을 그분께 내어 줌으로 그분께서 그대를 이끌게 하는 일이다. 그대가 신뢰하게 될 때 그대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희망이 가득차게 될 것이다. 579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그대에게 알려 줄 것이며, 그 평가를 깨달음으로써 그대는 세상에 빛을 비취고자 애쓰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위대한 이름은 모래 위에 쓴 글자와 같지만, 흠 없는 품성은 영원토록 존속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지성과 이성의 마음을 주셔서 그것으로 그대가 그분의 약속을 붙들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그대를 도우셔서 강하고, 균형잡힌 품성을 이루는 일을 도우시고자 하신다. 그런 품성을 소유한 자들은 세속적인 일에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세상의 빛이다.” 사단은 그들에게서 비취는 빛을 소멸시키거나 무효로 만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해야 할 사업을 갖고 계신다. 영혼들이 인간적 동정과 칭찬으로 생애의 싸움에서 지탱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품성으로 완전히 우리를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고, 이생과 거룩한 하늘에서의 유용성을 위하여 적합하게 하실 수 있는 귀중한 그분의 아들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하늘의 모든 보화를 우리에게 열어 놓으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생애하기를 바라시는 그대로 사셨다. 그분의 생애는 극기와 끊임없는 자아 희생의 생애였다. 만일 우리가 이기심과 안락과 성벽의 충족을 조장하고, 우리를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고,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놀라운 사업에서 하나님과 협력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그분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되고, 이 세상 생애에서 끊임없는 손실만을 되풀이하고 마침내 미래의 불멸의 생애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자아의 경시(經視)나 낙담 가운데서가 아니고 가장 강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또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일을 하고,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기쁨과 화평과 행복이다. 580 우리가 성경을 연구함으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고자 그분을 주신 아버지의 무한한 겸손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모든 힘은 활동하게 되고,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신 분에게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교역자들의 교육

우리는 해야 할 사업, 소수의 사람만이 깨닫고 있는 사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나라에 진리를 전하는 일이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외국 땅에서도 일꾼들을 위한 넓은 일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터에 들어갈 경건하고, 순결하고, 도량이 넓고, 편견이 없고, 겸손한 사람들을 부르신다. 이 큰 사업에 대하여 깨닫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우리는 일어나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 보다 더 높은 관점에서 일을 해야 한다.

오늘날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특별히 우리의 출판물을 통하여 주어진 빛과 지식의 증대에서 온갖 이점을 갖게 된다. 풍성하고 다양한 과거의 경험들은 그것들의 진실한 모습 그대로 오늘날 식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처음에 사업을 추진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그 사업을 막았는지, 선구자들이 이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얼마나 적었는지 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것이 바뀌고, 분명한 빛이 비취고 있다. 만일 초기의 그리스도교가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들에게 새 생명과 능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흑암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때에 진리와 오류, 하나님의 말씀과 미신의 우화들과의 차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목사들과 상류 계급에 진리를 전하고자 노력하지 않음으로 실수를 범해 왔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는 너무도 지나치게 접촉을 피해 왔다. 우리가 그들의 특성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들과 교제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주의 깊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일해야 할 정직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581 이 곳과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와 같은 상류 계급을 위하여 일할 남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자금이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내려가는 것에 관하여 너무 많이 이야기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논증을 저울질해 볼 수 있는 재능 있고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 진리를 감추인 보화처럼 찾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이 사람들은 일반 계층뿐 아니라 상류 계급에도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들이며, 그들에게 지워진 책임의 신성성에 대하여 충분히 민감하다. 그들은 그들의 봉사를 충분히 입증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업의 여러 분야에서 일할 인재들이 너무도 적다. 새로운 사업들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류의 흑암 속에서 있는 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계획들을 고안해 낼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지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아이디어가 우리의 것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헐뜯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별을 전할 일꾼들의 교육을 위하여 더욱 넓은 계획들을 세워야 한다. 진리를 믿고 사랑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재물을 투자하는 일을 훌륭하게 해왔다. 그러나 유능한 일꾼들은 크게 부족하다. 미개척지들을 점령할 일꾼들을 준비시키는 일은 너무도 조금밖에 하지 않으면서 그 지역들을 개척하는 데 끊임없이 투자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 사업을 추진시킬 사람들의 부족 때문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분은 성경을 연구하는 교양인들,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진리를 사랑하고, 그 진리를 그들 자신의 생애와 품성에 적용시키는 교양인들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매달리는 사람들, 타락한 인류를 위한 무한한 희생을 깨닫는 자들을 원한다. 우리는 거룩한 불로 지져진 입술, 죄의 더러움에서 정결케 된 마음을 원한다. 경건에 있어서 천박한 사람들, 첫째와 최고로 인정받고자 하는 큰 야망을 가진 자들은 이 시대를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사업에 관하여서 보다는 그들 자신의 길에 관하여 더 많이 생각하는 자들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의 교회들은 오로지 겸손한 마음으로 행하고, 외적인 과시에 속한 모든 교만을 버리고, 마음의 단장을 위하여 일하도록 그들을 이끌어 줄 그런 종류의 훈련을 받고 있지 않다. 582 교회의 능률은 목사들의 열성과 순결과 극기와 지혜로운 활동에 정확하게 비례한다. 활동적인 선교 정신이 교인들 각자를 특징지워야 한다. 그들은 더욱 깊은 경건과 더욱 강한 믿음과 더욱 넓은 견해를 소유해야 한다. 그들은 개인적 활동으로 더욱 철저한 사업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 신앙이다.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리스도를 위한 열성으로 충만하고, 넓은 범위의 의무감을 가진 개인은 선을 위하여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그는 낮고, 흐리고, 오염된 시내에서가 아니라, 물 근원에 있는 깨끗하고, 질이 좋은 물을 마신다. 그리하여 그는 새 정신과 능력을 교회에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밖에서 오는 압박이 증가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그들이 믿는 신성하고 엄숙한 진리로 활력이 넘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역사하고 있는 하늘에서 온 성령께서는,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원수에 대하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큰 승리를 준비해 두고 계신다. 들판은 희어져 이미 추수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빛이 있고, 이미 우리 손에 들어와 있는 풍성하고 영광스런 천부의 재능들이 있다. 그러나 남녀들은 신속히 익어가는 추수장에서 일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충성심과 헌신의 정신으로 각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것인지를 아신다. 이 위대한 사업에는 게으른 자들이 있을 자리가 없고, 방종한 자들이나 여하한 직업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 자리가 없으며, 정신적으로 열렬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려움이나 반대나 비난이나 죽음을 감수하지 못하는 반신 반의의 사람들도 있을 자리가 없다. 그리스도인 봉사에는 게으름뱅이가 있을 자리는 더욱 없다.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불경건한 자로서 전도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가르치기보다 땅을 가는 편이 더 낫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이들이 지고 있는 짐들을 미구에 져야 한다. 583 우리는 젊은이들을 앞세우고 그들에게 더 높고 확고한 교육을 시키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써 시간을 잃어버렸다. 사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진리 안에 굳게 서고, 그들의 환경 때문에 쉽게 영향을 받거나 바른 데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많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빛을 받기 위하여 가장 열렬한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을 통하여 많은 훌륭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교역자는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에게 주어진 최고의 정신적·도덕적 힘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 재능에 의하기보다 사업이 완수되는 일에 있어서의 헌신과 희생에 비례될 것이다. 유용성을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하여 가장 열렬하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의 노력과 함께 일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위대한 구원의 능력의 요소이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도 허사이다. 그 협력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가장 강하고 가장 열렬한 인간적 노력이 있을지라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업은 고상한 도덕적 자격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의 교육을 맡을 수 있는 교사들, 믿음이 건전하고 기지와 인내를 소유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사람, 하나님과 너무도 가까이 서 있기 때문에 빛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 요컨대 그리스도인 신사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남긴 좋은 인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주어진 훈련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이런 훈련 과정에서 등한히 여겨지는 것은 미진한 상태로 남아 있기 십상이다. 누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 우리는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기초가 확립된 강한 젊은이들,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었음으로 우리의 유력한 형제들에게 권면을 받으면 우리 나라에 있는 고등 교육 기관에 들어가서 연구와 관찰을 위한 더 넓은 분야를 갖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있기를 바란다. 584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진 계층의 사람들과의 교제, 교육의 일반적 방법의 역할과 결과에 대한 지식, 유력한 교육 기관에서 가르친 그대로의 신학적 지식은 그런 일꾼들에게 매우 요긴하므로, 교육받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우리의 시대에 팽배한 오류를 대항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을 준비시켜 줄 것이다. 이런 것은 고대 왈덴스인들이 따랐던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당시의 젊은이들처럼 하나님께 성실할 것 같으면, 그들은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진리의 씨를 뿌림으로 훌륭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삼상 4:9). 그대를 위하여 비난과 모욕과 조롱을 받으신 분에게, “주님 내가 무엇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물어 보라. 아무도 그리스도의 겸손한 제자가 되는 것 이상으로 더 훌륭한 교육을 받지는 못한다. 생애와 학문의 가장 좋은 것을 그것을 허락해 주신 분에게 돌려드리는 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이 위탁해 주신 달란트를 최고의 봉사를 통하여 그분께 돌려드리기 위하여 어떤 활동, 어떤 희생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생애의 큰 투쟁에서 일꾼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명의 엄숙함과 신성한 성격을 잃어버린다.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지 않기 때문에 죄의 치명적인 저주는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지워 버린다.

우리는 더 높은 교육의 이상을 고취시키고 더욱 훈련받은 사람들을 목회에 채용할 필요를 깨닫는다. 하나님의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올바른 교육을 받지 않은 자들은 이 거룩한 직임을 맡아 개혁 사업을 추진시킬 자격이 없다. 그리고 사업에 착수한 후에도 모든 사람은 그들의 교육을 계속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일꾼들에게는 더 훌륭한 심령의 계발과 세련과 고결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향상은 영원토록 결과를 보여 줄 것이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585 사도는 여기에서 조상들의 경험을 젊은이들의 경험과 연결시킨다. 마찬가지로 이 사업의 연로한 제자들과 젊은이들, 곧 이 기별의 초기의 사건들에 대한 경험이 없는 자들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다. 기별이 시작될 당시에 어렸던 자들은 나이 많은 기수(旗手)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이 교사들은 기수들이 아직도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는 동안 그들의 거룩한 직임을 감당하도록 사람들을 적응시키는 일에 어떤 큰 수고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매우 오랫동안 싸워 온 자들은 여전히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사단의 간계를 너무도 철저히 알고 있기 때문에 옛 길에서 쉽게 옮겨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안다. 그들은 언제나 등대지기, 하나님의 성실한 증인,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산 편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그렇게 했듯이 이 기별의 시초에 있었던 경험과 우리가 오늘날 그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는 기별을 받아들인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몇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하나씩 차례로 쓰러져 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떠나가는 사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담당시키는 것이 유일한 지혜이다.

젊은이들을 사업에 적응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은 무거운 짐과 책임을 지기 위하여 앞으로 나와야 한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강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계획하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속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순결하게 해줄 것이며, 그들을 믿음과 소망과 용기와 헌신으로 충만하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이 부적합한 책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사업은 크게 지연되고 있다. 이 큰 결핍은 계속되고 증가될 것인가? 이 큰 책임은 나이 많고, 경험있는 일꾼들의 손에서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신임받는 위치를 차지할 우리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일에 실패함으로 매우 중요한 사업을 등한히 하고 있지 않는가?

586 일꾼들이 교육을 받게 하되, 동시에 그들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지게 하라. 사업을 가능한 한 표준까지 향상시키자!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몫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몫을 틀림없이 다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자.

거룩하지 못한 야망

사랑하는 N 씨 부부에게: 최근에 보낸 나의 편지를 받았는지에 대한 확인을 못했지만, 나는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써야 할 것으로 느낀다. 나는 그대의 위험을 보았다. 나는 그대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필요를 그대의 마음에 새겨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대가 자아에 대하여 겸손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한 그대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대는 겸손한 성결의 길, 하나님의 도성으로 인도하는 고귀한 길 대신에 넓은 길을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대는 자아에 대하여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에 대하여는 너무 적게 가지고 있다. 그대는 자만심과 자기 과신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적게 가지고 있다. 그대의 본성 속에 있는 부조리한 요소들이 크게 계발되어 있다. 제어하기 어려운 정욕이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교만과 허영이 최상권을 갖고자 한다. 나는 원수가 그대를 심하게 유혹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대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대 편에서의 굴복이 필요하며, 그대 자신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하는 것이 그대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소망이다. 만일 그대가 주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걸어가면 그분께서는 그대의 노력과 함께 역사하실 것이며, 그분의 힘은 그대의 연약함을 완전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분은 그대와 나를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아, 그대는 예수님을 더 많이 소유하고 자아를 더 적게 소유하겠는가?

N 형제여, 그대는 본성적으로 헌신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계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그대의 경험에서 그리스도를 제외시키기가 쉽다. 주님께서는 과거에 그분의 축복을 그대에게 주셨다. 그 축복이 그대의 영혼에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587 그것은 그대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얼마나 큰 용기를 주었던가! 그대의 정열은 교육을 찬양하는 데 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 신앙의 원칙으로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악을 위한 하나의 능력이 될 것이라고 말할 때 진리를 말한 것이다.

나는 그대가 다른 사람들처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사상이 너무 편협하며, 너무도 애매한 길을 가고 있으며, 그들이 더 큰 평판을 받고 더 큰 명성을 얻을 필요가 있으며 우리 학교의 교사들이 그들의 힘을 과학에 오로지 쏟을지언정 신앙을 그들의 교육에 그처럼 많이 혼합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치명적인 미혹에 빠져드는 것을 피동적으로는 방관하면서 보고 있기를 원치 않는다. 이 씨가 학생들의 마음 속에 떨어지면 그대가 거두어들이기를 원치 않는 수확으로 빨리 발전할 것이다.

우리는 말하자면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에 와 있다. 그러므로 그대가 그 목적을 위하여 세워진 이 학교에서 일을 한다면 그대는 주로 책 중의 책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 그대는 다른 어떤 연구도 성경 연구보다 높여서는 안 된다. 우리 나라의 다른 학교들을 그대의 본보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가 신앙적 요소가 거의 배제된 그런 교육 노선에 매료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나라에는 그런 종류의 학교들이 수없이 많은데, 학생들이 그런 교육을 받고자 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학교는 다른 성격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부문에서 하나님의 특성을 간직해야 한다.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은, 학생들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지식으로서 주어진 모든 교육에 함께 짜여 들어가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 9:10). 만일 교장이 자신의 야망적인 계획으로 모든 지혜의 근원되신 분에게서 떠나가고 성경의 종교가 그의 날개를 잘라 버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결국 비누 거품에 불과한 상태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영혼을 위하여 생명의 왕께서 모든 계획, 모든 조직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라. 그대는 그대의 학교에서 예수님이나 성경의 역사를 아무리 많이 취급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지상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문 앞에 서 계시는가? 588 이런 것들은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교육은 언제나 높고 거룩한 수준에 속한 것이어야 하며, 그 필요는 이전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욱 절박하다. 성실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옮겨지는 일이 미구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마음과 영혼의 모든 힘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지 않는가?

그대의 특성을 결코 숨기지 말고, 그대의 빛을 말 아래나 침대 아래 결코 두지 말라. 그것을 등경 위에 두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취게 하라. 그대와 _________에서 그대와 함께 있는 교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출 기회들을 찾고 있었는가?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기 위하여 지혜롭게 간구했는가? 그대는 그대가 친교를 이룬 자들의 주의를 성경의 진리로 이끌고자 노력했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그대의 특성을 숨기지는 않았는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신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만일 그대가 날마다 그리스도를 먹는다면 그대는 참 교육자가 될 수 있다.

나의 형제여, 그대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전달해 주고자 시도하는 데 위험이 있다. 그대는 긴 연설을 하거나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깨달을 수도 없는 주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도록 요구받지 않았다. 그대가 가르치고 있는 자들은 사닥다리의 첫 발판을 성공적으로 올라가는 길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데, 사닥다리의 맨 위의 발판에 있는 주제들을 생각하는 데 그대의 위험이 있다. 그대는 우리의 믿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깨달을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그대의 말은 흥미가 없다. 그 말들은 그대가 이야기하고 있는 자들에게 양식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지금껏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분의 지식과 비교해 보면 가장 높은 인간의 지식도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분의 교훈은 너무도 단순했기 때문에 배운 자나 배우지 않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분을 이해했다. 그분은 당신의 심오한 지식을 나타내고자 노력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길게 하는 이야기가, 그대의 청중들에게 그대가 원하는 그대로 꼴을 짓고 모양을 만들어 주는 특별한 영향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589 그러나 그대는 그렇게 함으로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말을 적게 하고 기도를 더 많이 한다면 그대는 훨씬 더 좋은 감화를 끼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대의 힘의 근원이시다.

과학 교육에 관한 그대의 긴 이야기는, 생각과 애정을 하늘의 사물로 향하게 하고자 끊임없고 열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고통을 준다. 그대가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본을 보여 주신대로 위탁된 달란트를 가지고 활동하기를 등한히 하고 있는 동안 영혼들은 멸망해 간다. 영혼들은, 그대의 장황하고 그리스도 없는 이야기 아래서 잃어버린바 될 것이다. 그대 자신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지식 안에서 난쟁이가 되고 불구가 된다. 그대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 교육의 정신과 관습에 의하여 눈멀어 있기 때문에 매우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대의 활동을 요구한다. 만일 그대가 회개한 사람이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훈을 배우고 있다면, 그대의 활동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시험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인내와 사랑으로,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긴 연설에 소모하는 시간의 일부를 그대의 도움이 필요한 젊은이들을 위한 개인 활동에 바치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라. 강철처럼 강한 악습의 차꼬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련한 희생자들은 사단의 유혹물의 매력에 매료되어, 그것을 깨뜨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안에 설 수가 없다. 그들은 여러 해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방금 시작한 이 해도 잃어버릴 것인가? 학교의 교장은 자신의 책임을 느끼고 학생들의 구원에 그의 정신과 마음을 쏟을 것인가! 그렇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학교가 존재하게 된 바로 그 노선에서 계속해서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면 지출을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정신과 영혼의 힘은 악용될 것인가? 기회들은 잃어버린 바 될 것인가? 얻는 바가 아무것도 없어도 형식과 판에 박은 일이 날마다 되풀이 되어야 할 것인가? 아, 교사들과 학생들이여, 너무 늦기 전에 깨어라, 깨어라! 590 창백하고 괴로운 입술에서,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렘 8:20)는 무서운 부르짖음을 듣게 되기 전에 깨어라.

모든 교육자의 재능과 능력이 학생들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활용되고 있는가? 누가 친절과 사랑의 말을 하기에 유리한 순간을 노리고 있는가? 누가 세상을 그처럼 사랑하여 잃어버린 바 되고 멸망해 가는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 분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가? 장래의 불멸의 생명을 위하여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품성을 꼴 짓고, 교육하고, 교육하고, 교육하라. 자주 기도하라. 그대에게 간구하는 정신을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라. 그대가 학생들을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이끌 수 없는 한 교사로서의 그대의 과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대 자신의 영혼에 고루 미치게 하라. 그러면 그대는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대가 교사로서 예수님이 이끌고 지도하고 지배하시도록 그대 자신을 아낌없이 그분께 바칠 때, 그대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학생들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은, 그대 앞에 놓여진 최대의 과업이다. 하나님께로 가라. 그분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대에게서 의문과 의심과 불신을 버리라. 가혹함이 조금도 그대의 가르침에 개입되지 않게 하라. 지나치게 엄격하지 말고, 부드러운 동정과 사랑을 계발하라. 즐거워하라. 너무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말라. 확고하고, 관대하고, 그리스도처럼 되고, 긍휼하고 예모 있게 되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나는 그대들 모두가 주님을 찾을 수 있는 때 가장 열렬하게 그분을 찾아야 한다는 내 영혼의 강한 열망을 그대에게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준비의 날에 처해 있다. 심판의 큰 날을 준비하는 일에서 그대의 마음을 떠나게 할 만큼 가치 있게 여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준비하라. 냉랭한 불신이 그대의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게 하지 말고, 그분의 사랑이 그대의 마음의 제단에서 불타게 하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591 나는 세상에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말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그들이 대상으로 일하는 자들이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여부는 일꾼들 개인들에게 매우 크게 좌우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라고 명령하시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딤전 4:16)고 명령한다. 사업은 일꾼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그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 15:5)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밀접한 관계가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잎 없는 잔가지를 무성한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여 보라. 그리하면 그것은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과 영양소를 빨아들이는 산 가지가 된다. 섬유와 섬유, 엽맥(葉脈)과 엽맥이 연결된 어린 나무는 굳게 달라붙어 마침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수액 없는 잔 가지는 죄인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영혼은 영혼과 연결되고, 연약하고 유한한 자는 거룩하고 무한하신 분과 연결되며, 사람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우리는 그분과 연합되어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으며, 그분과 일체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전하는 기별은 세계적이다. 그것은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중 어느 한 사람에게도 기별의 중요성에 합당한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그것을 제시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 않고서 이 기별을 가지고 나가도록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큰 질문은, 기별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우리가 이 엄숙한 진리의 기별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일꾼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이 의지할 유일의 분으로 삼을 것 같으면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임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선교사들이 그분의 은혜 없이, 그분의 능력이 결핍된 채 일을 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하고 거룩한 백성을 삼으시고자 세상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592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하나님의 일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빛과 능력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부지런한 성경 연구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또한 성결의 아름다움으로 당신께 경배하라고 요구하신다.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고 말한다. 일꾼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에 조심해야 한다. 만일 시편 기자가 그의 마음에 죄악을 품을 때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죄악을 품을 때 어떻게 그들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겠는가?

1844년의 시기가 지난 후에, 광신이 재림신자의 대열에 들어왔다. 하나님께서는 뒤따르는 악을 제지시키기 위하여 경고의 기별을 주셨다. 어떤 남녀들 사이에는 너무나 지나친 친숙함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도달해야 할 거룩한 진리의 표준과,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그런 것들이 없기 위하여 유지해야 할 행동의 순결을 제시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가장 엄숙한 책망이, 특별히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노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상이 불순한 길을 달리고 있는 남녀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기별은 멸시를 받고 거절을 당했다. 그들은 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대에게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는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더러움이 그들의 생애를 특징짓기까지 나아가도록 그들을 허용하셨다.

우리는 오늘날도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종사하는 모든 영혼은 생애에서 그의 믿음을 부인하게 될 그런 길을 따르도록 심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사단이 고안해 낸 계획은, 일꾼들이 품성의 결함 때문에 기도가 약해지고, 능력이 약해지고, 감화력이 약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교역자로서, 피차간의 교제에서 조금이라도 악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언짢게 여기고 정죄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 593 우리의 믿음은 거룩한 것이며,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의 율법의 명예를 옹호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도 사상이나 행동에 있어서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게 하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딛고 설 존귀한 연단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믿고 가르쳐야 한다. 마음의 성결은 결코 불순한 행동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가르치노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젊거나 심지어 결혼한 여자들과의 교제에 있어서 지나친 경향이 있을 때, 그가 친숙하게 손을 그들 위에 올려놓거나 친밀한 태도로 자주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그를 두려워하라. 진리의 순수한 원칙이 그의 영혼 속에 역사하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도 그들 안에 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활동을 받아 주시기 전에 그들은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하늘에서 온 진리는 받아들이는 자를 결코 타락시키지 않고 부당한 교제에 조금도 접근하지 않게 해준다. 오히려 그 진리는 믿는 자를 거룩하게 하고, 그의 취미를 세련되게 하고, 그를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해주며, 예수님과 밀접한 연결을 이루게 해준다. 그것은 그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않도록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사도 바울의 교훈에 유의하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가 유의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이 타락한 시대의 죄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부당한 교제의 기미를 주는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서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당한 교제를 정죄하신다. 그것은 금지된 땅이며, 거기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모든 말과 행동은 품성을 향상시키고, 세련되게 하고, 고상하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문제에 생각이 못미치는 데 죄가 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 활동에 부지런하고 철저하도록 권면하고, 그의 덕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순결하고 고상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고했다. 동일한 권면은 현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크게 필요된다. 신중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만일 사람들이 오직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적게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활동에서 훨씬 더 큰 성공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없이 중요한 주제를 취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우리의 사업에 혼합시킬 수 없다. 594 우리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향상시키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세상에서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선택하고 열렬하게 구하도록 그들을 이끌기 위하여 해야 할 큰 사업이 있다. 교역자들의 모든 생각과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은, 그들이 옹호하는 거룩한 진리와 조화되는 고상한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남녀들이 우리의 중요한 선교 지역에서 다소간에 부득이 연합될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그들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칠 수 없다. 결혼한 남자들은, 그들에 대하여 사실상 아무런 잘못도 언급되지 않도록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불법이 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부주의한 말과 부정당한 행동은 이 약점을 나타내는 사람의 유용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 교역자들은 자제의 방어선을 지키도록 하라. 원수가 이용할 수 있는 일이 한 번도 생겨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피차간에 애정을 두기 시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아첨하는 말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거두실 것이다.

만일 결혼한 남자들이 그들의 아내들을, 집에서 자녀들을 돌보도록 남겨 두고 일하러 간다면 아내요 어머니는, 남편이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위대하고 중요한 사업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선교 지역에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가정 선교사인데, 그의 염려와 걱정과 책임은 빈번히 남편이요 아버지의 것보다 훨씬 더 과중하다. 아내의 일은 엄숙하고 중요한 것-자녀들의 정신을 꼴 짓고 품성을 형성시키며, 그들을 이 땅의 유용성을 위하여 훈련시키고 장래의 불멸의 생명에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집에서 수고하는 자는 그의 활동에 대하여 인간적인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버젓한 선교 지역에 있는 남편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내가 그의 가족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고 자녀들의 품성을 하나님의 모본을 따라 꼴짓고자 노력한다면, 기록하는 천사는 그의 이름을 세상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들 중 하나로 기록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유한한 시야로 보는 것처럼 사물을 보시지 않으신다. 595 남편이요 아버지는, 그의 결혼 서약에 대하여 성실을 유지하기 위하여 참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높고 거룩한 표준 즉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되지 않는 생각을 처녀들이나 결혼한 여자들이 품도록 조장하지 않도록 그의 품성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계명들이 지극히 광범위하여, 심지어 생각과 의도와 마음의 목적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한다. 그들이 마음으로 상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결하고 거룩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직업이 아무리 고상하고, 그들이 아무리 재능을 많이 받았든지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죄하시고, 재능과 빛을 더 적게 받고 영향력이 더 적은 자들보다 그들이 훨씬 더 죄가 많고 그분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로 간주하실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칭찬을 받고, 아첨과 총애를 받는 것을 볼 때 괴롭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주목을 받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의 입술로 부르기에 합당치 못하다는 것을 나에게 보이셨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외모로만 판단하는 유한한 사람들의 평가로 하늘까지 높임을 받는다. 나의 자매들이여, 젊거나 늙거나, 기혼이거나 미혼이거나를 막론하고 가련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고 실수가 많은 남자들과 결코 시시덕거리거나 아첨하지 말라. 그대들은 그들의 약점을 알지 못하며, 바로 이와 같은 관심과 아낌없는 칭찬이 그들의 멸망을 입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나타내는 근시적 안목과, 지혜의 부족에 놀랄 뿐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는 자들과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고 있는 자들은 도덕의 표준을 낮추지 말고 언제나 높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여자들의 칭찬이나 그들에게 총애를 받는 데서 기쁨을 찾지 말 것이다. 기혼이나 미혼을 막론하고 남자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손을 대지 말라! 나는 나의 미덕이 악평을 받을 기회를 추호도 주지 않겠다. 나의 훌륭한 이름은 내게 있어서 금이나 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자본이다. 나는 그것을 더럽히지 않고 간직하겠다. 만일 사람들이 그 이름을 공박한다면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그릇되게 말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 즉 그들이 그분의 품성의 순결과 거룩함을 미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끊임없는 책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596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교역자들에게 끊임없이 열렬한 기도가 크게 필요함을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 그들이 끊임없이 무릎을 꿇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는 있다. 이것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방법이다. 자만심이 생겨서 예수님을 쫓아내고 주님의 정신과 능력으로 일하는 대신에 그대 자신의 힘으로 일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찮은 대화로 황금같은 순간들을 허비하지 말라. 그대가 선교 사업을 완수하고 돌아올 때는 그대 자신을 찬양하지 말고 예수님을 높이고 갈바리의 십자가를 높이라. 아무도 그대를 칭찬하거나 아첨하도록 허용하지 말고, 마치 그것이 놓는 것이 싫은 양 그대의 손에 달라붙도록 허용하지 말라. 그와 같은 모든 표현을 두려워하라. 젊은 사람들이나 기혼자들일지라도 그들의 가정의 비밀을 그대에게 공개하는 기질을 나타내거든 경계하라. 그들이 동정을 바라는 욕망을 표현하거든 크게 주의해야 할 때임을 알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젖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동정을 받기 위하여 부정한 갈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신과 마음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동반자가 있다. 여자들의 주의와 칭찬과 총애를 받아들이는 기혼 남성들은 이런 종류의 동정이 얻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여자들은 너무도 흔히 유혹자들이 된다. 이런 저런 구실로 그들은 기혼이건 미혼이건 간에 남자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들의 유용성이 파멸되고, 그들의 영혼이 위험에 빠질때까지 그들을 이끌어 간다. 요셉의 역사는 그처럼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에 남아 있다. 원칙에 있어서 바위처럼 확고했으므로 그는 유혹자에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라고 대답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그가 가졌던 것과 같은 도덕적 능력이다. 만일 여자들이 그들의 생애를 고상하게만 하고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것 같으면, 그들의 영향력을 통한 위험이 적어 질 것이다. 그러나 가정 의무에 관하여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워 주신 책임에 관하여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무관심한 마음을 지고서는 그들의 영향력은 흔히 그릇된 방향에서 강하고, 그들의 능력은 왜곡되고, 그들의 사업은 거룩한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 597 그들은 가정 선교사도 아니며 가정 밖의 선교사도 아니다. 그러므로 가정, 귀중한 가정은 황폐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모든 비겁함과, 온갖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사람으로 결코 자라나지 않는다. 그들은 어린 아이와 같고 제멋대로 군다. 겸손한 경건이 이 모든 것을 교정해 줄 것이다. 순결한 신앙은 어린 아이와 같은 방종의 특징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것은 최고도로 명예롭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응모된 자들은 한 사람도 시험의 날에 무기력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동료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해야 할 열렬한 사업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아무도 바람직한 덕을 이루고 악을 미워하는 싸움에서 쉴 권리가 없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한 세계의 이편에는 휴식이 없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의를 이루고 오직 의를 이루는 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남자다움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빈번한 교훈을 취할 필요가 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3, 4). 그대들은 그리스도인의 은혜 가운데서의 성장을 보여 주어야 한다. 분노를 자극하는 도전을 받고도 온유함을 나타내고 저급한 세속을 벗어나 자라남으로 그대들은 구주께서 마음 속에 계시는 증거를 보여 주게 되고,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자아 대신에 예수님께로 모든 사람을 이끌게 된다.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엄청나게 많지만 그것을 할 시간은 조금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을 깨우쳐 주는 것이 그대의 평생 과업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평생 사업을 깨닫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완수해야 할 의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 의무들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라.

도덕의 표준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충분할 만큼 높지 않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옹호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계명들을 깨뜨리고 있다. 598 유혹은 유혹자들이 범죄에 대한 구실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그들에게 제시된다. 선교 지역에 들어가는 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야기하는 남녀들이어야 한다. 목사로서 신성한 설교단에 서는 자들은 책망할 것이 없는 명망을 소유하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들의 생애는 흠이 없고, 불순의 냄새를 풍기는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한다. 유혹의 길을 감으로써 그대의 명망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 만일 어떤 여자가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그대의 손을 잡고 있거든 재빨리 그 손을 떨쳐버리고 그 여자를 죄에서 구원하라. 만일 그 여자가 부당한 애정을 나타내고 그의 남편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면 이 부족을 채워 주고자 시도하지 말라. 그런 경우에 있어서 그대의 유일한 안전과 현명한 길은 그대의 동정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런 영혼들에게, 짐을 져 주시는 분, 진실하고 안전한 상담자를 가리켜 주라. 만일 그 여자가 그리스도를 친구로 택한다면 그분께서는 홀대를 불평 없이 감당할 은혜를 그에게 주실 것이다. 동시에 그는 남편에게 대한 가장 철저한 충성과 그의 가정을 즐겁게 매력 있게 만드는 일을 성실히 함으로써 남편을 자신에게 붙들어매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의 모든 노력이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그는 복되신 구속주의 동정과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가 그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지도록 도와주시고, 실망 중에 있는 그를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채워 주시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하고 계신 곳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간에게 손을 뻗을 때 그는 예수님께 대한 불신을 나타낸다. 불평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께 범죄하게 된다. 그는 심령 속에 죄가 숨어 있는지 보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살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동정을 구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금지된 애정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하나님 앞에 순결하지 못하고 결함이 없지 않다.

성경은 악한 마음을 가진 여자들의 강한 영향에 대한 많은 두드러진 예증들을 알려 준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민 23:21)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유혹에 굴복당한 발람은 이제 완전히 강력한 사단의 기구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간접적으로 이루고자 결심하였다. 599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할 아름다운 모압 여자들에게 이스라엘이 매혹당하게 될 수밖에 없는 올무를 즉시 놓았다. 그리하여 죄가 그들 가운데 발견되면 하나님의 축복은 그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군대는 크게 약해지고 그들의 원수들은 더 이상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군의 여호와의 임재가 그들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가 되기 위함이다. 그들이 의와 진정한 성결을 따르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면,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 그들을 정복하도록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가장 무자비한 원수들도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신 포도나무를 파멸시키거나 멸절시키기에 무력하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사단은 발람이 슬픈 경험을 통하여 배운 것 즉, 이스라엘이 죄를 품지 않는 한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도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의 능력과 영향력은 그들의 연합을 깨뜨리고 그들의 품성의 순결을 더럽히는 데 언제나 사용될 것이다. 그의 올무는, 선을 위한 그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수천 가지 방법으로 놓여진다.

다시 나는 그대에게 모든 생각과 모든 말과 모든 행동에 있어서의 순결의 필요를 강조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우리를 대신하여 해 줄 수 없는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 책임, 개인적 사업이 있다. 그것은 교훈과 개인적 노력과 모본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사교성을 계발해야 하는데 단순히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고 어떤 목적으로 해야 한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있다. 개인적 노력으로 그들과 가까이하라. 시험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대의 문을 열어 주라. 악은 모든 면에서 그들을 초청한다.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자 노력하라. 그들이 결점 투성이라면, 그 잘못들을 고쳐 주고자 노력하라. 그들을 멀리하지 말고 그들에게로 가까이 가라. 그들을 그대의 화로 가로 데려오고, 그대의 가족 제단에 그들을 초청하라.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수천 가지의 사업이 있다. 사단의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는 유혹적이요, 유독한 열매를 맺는다. 600 그러므로 그것을 따 먹는 자는 누구나 저주의 선고를 받는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하늘 가는 길을 깨끗하고 밝고 매력적으로 만들므로, 사단의 파괴적인 마법에서 영혼들을 구원해 내는 것임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고상한 목적에 사용되도록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다. 우리는 다음 생애를 위하여 예비하는 자로서 이 땅에 존재한다. 우리 중 어떤 사람도 부주의하게 되거나 불확실하게 행동하기에는 너무도 엄숙한 순간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우리의 교제는 온건과 하늘의 정신으로 특징 지워져야 한다. 우리의 대화는 하늘의 사물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 3:16, 17).

구원의 계획보다 정신을 몰두시키기에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예수님의 사랑, 그분의 무한한 사랑으로 타락한 인류에게 주어진 구원, 마음의 성결, 이 마지막 때를 위한 귀중한 구원의 진리, 그리스도의 은혜-이것들은 영혼을 소성케 하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동행하실 때 그들이 느꼈던 기쁨을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느끼게 해 준다. 애정이 그리스도께 집중된 자는 이런 종류의 거룩한 교제를 맛보게 되고 그런 교제를 통하여 신령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화를 맛보지 못한 자와 감정적인 무의미한 것을 가장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게 되고 거룩하고 고상한 열망에 대하여 죽어가고 있다. 관능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은 이런 것 때문에 거룩하게 되는 일에 방해를 받는다. 대화가 하찮은 성격의 것일 때 그리고 불만의 냄새가 인간의 동정과 인정을 받고자 나갈 때, 그것은 사랑에 번민하는 감상주의(感傷主義)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젊은이들이나 백수가 된 사람들도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601 하나님의 진리가 마음 속에서 살아 있는 원칙이 될 때, 그것은 솟아나는 샘물같을 것이다. 그것을 억제하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곳에서 용솟음쳐 나올 것이다. 샘물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마음 속에 있는 진리는 생명의 샘물이다. 그것은 피곤한 자에게 생기를 주고 비열한 생각과 말을 제지한다.

우리의 길을 에워싸고 있는 위험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일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도처에 인간의 잔해들, 등한해 진 가족 제단, 깨어진 가정을 보게 된다. 원칙의 이상한 포기, 도덕적 표준의 저하가 있다. 노아 홍수와 불에 의한 소돔의 멸망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에 쏟아지게 한 죄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완고함을 오래 참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형벌은 확실하다. 세상의 빛이 되었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모든 죄악에서 떠나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당시에 진리에 대항하여 나타냈던 것과 똑같은 정신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들고 있는 자들은 성경 지식의 부족으로 교역자들을 더럽히고 어둡게 하고자 거짓말을 지어낼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구속주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였으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전혀 근거 없는 소문들이 사실로 믿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는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미칠 수 있는 모든 반대와 거짓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옹호하기 위하여 굳게 서 있는 자들을 강하게 해 줄 뿐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보존하는 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 되면 그분의 보호의 손길은 거두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타락과 방종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정말로 원수들을 대항하여 설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분의 백성들이 의를 행하는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분리되고 구별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호벽이 되실 것이며, 그들을 치려고 제조된 무기는 날카롭지 못할 것이다.

602 이 시대의 위험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으로서 모든 죄와 모든 불의와 모든 완고함을 우리들 가운데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여자들은, 용인할 수 없는 친숙성을 조금이라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그들이 언제나 행동의 자제와 예절을 지킬 것 같으면 그들은 많은 유혹의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남자들은 요셉의 생애에서 모본을 발견하고, 아무리 강하게 유혹을 받을지라도 원칙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는 의를 위하여 강한 남녀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주변에는 도덕적 능력이 약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확고한 사람들,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는 자들과 친구가 될 필요가 있다. 각 사람의 원칙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가 푸주로 가는 것”(잠 7:22)과 같이 어리석게도 유혹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유혹하도록 원수를 끌어 들인다. 그들은 스스로 기력을 잃게 되고, 도덕적 능력이 약화된다. 결과적으로 수치와 혼란이 야기된다.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기 위하여 서 있노라고 공언하면서 그 율법의 조항들을 범하는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에 얼마나 경멸스러운가! 그들은 귀중한 사업에 욕을 돌리고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승리할 기회를 준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과 사단을 따르는 자들과를 구분하는 표는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된다. 세상과 교회,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계명을 범하는 자들 사이에는 하나님이 친히 그어 놓으신 분명한 선이 있다. 그들은 함께 섞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낮과 밤중처럼 구별된다. 그들의 취미, 그들의 목적, 그들의 직업, 그들의 품성이 다르다. 만일 우리가 사랑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계발할 것 같으면 우리는 추호도 불순에 접근하기를 싫어할 것이다.

주님께서 영혼들을 당신께로 이끄셔서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거룩한 책임감을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성품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란다. 표준을 높이라. 그리하면 각 사람이 몸으로 행한 일을 따라 받게 될 그날에 하늘의 축복이 그대에게 선고될 것이다. 603 하나님을 위한 교역자들은 그분의 눈앞에서 사는 것처럼 살고 품성과 진정한 덕성과 경건을 끊임없이 계발시켜야 한다. 그들의 정신과 마음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너무도 철처하게 감화되고, 그들이 전해야 하는 거룩한 기별에 너무도 엄숙해 진 나머지,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과 모든 동기가 세속적이요 육욕적인 것에서 초월할 수밖에 없어져야 한다. 그들의 행복은 금지된 이기적 만족에 있지 않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 안에 있다.

나의 기도는 이것이다. “오, 주님, 당신의 백성들의 눈에 기름을 발라주셔서 그들이 죄와 성결, 불결과 의로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마침내 그들이 승리자로 나타나게 하소서.”

실수한 자들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께서는 접촉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오셨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그분은 잃어버린 세상을 위하여 무한한 구속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분의 극기와 자아 희생, 그분의 이기심 없는 활동, 그분의 굴욕, 무엇보다도 그분의 생명을 내어 주신것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증거한다.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사명은 죄인들, 온갖 종류의 죄인들, 모든 방언과 족속에 속한 죄인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속량하고, 그들을 당신 자신과 연합시키고 동정하기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셨다. 가장 그릇된 자, 가장 죄 많은 자들도 간과되지 않았다. 그분의 활동은, 그분께서 주시고자 오신 구원이 가장 필요한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개혁의 필요가 크면 클수록, 그분의 관심은 더 깊고, 그분의 동정은 더 크고, 그분의 활동은 더욱 열렬했다.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마음은 상태가 가장 절망적인 자들과 변화시키는 그분의 은혜가 가장 필요한 자들을 위하여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움직였다.

잃은 양의 비유는, 실수하고 방황하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나타낸다. 그분은 당신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의 모든 노력을 그들에게 기울이고 그들의 감사와 사랑을 받는 길을 택하지 않으신다. 604 참 목자는 그를 사랑하는 양떼를 버려 두고, 우리를 떠나 방황하는 양, 찾아오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가서 어려움을 참고 위험과 죽음을 직면한다. 열심히 찾은 후에 잃은 양을 발견하면 목자는, 비록 지치고 피곤하고 배고플지라도 그것을 연약한 상태 그대로 자기를 따라오도록 버려두거나 그를 따라오도록 버려두지도 않는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는 그 양을 부드럽게 팔에 안고, 어깨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우리로 돌아온다. 그는 이웃 사람들을 불러서 잃은 양을 찾은 것을 함께 즐거워 한다.

탕자의 비유와 잃은 은전의 비유도 동일한 교훈을 알려 준다. 특별히 타락함으로 위험에 처해 있는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고통을 주고, 가장 부드러운 그분의 동정과 가장 열렬한 그분의 활동을 요구한다. 한 죄인이 회개할 때 그분의 기쁨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으로 인한 것보다 더 크다.

이런 교훈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분의 사업에 협력하는 자들이 되고, 그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분부하셨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민은 그분이 인간의 영혼을 평가하시는 정도를 입증한다. 이 큰 구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그분의 동역자가 되겠다고 서약한다. 아무도 자기 자신이 특별히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관심과 주의를 자아에 집중시켜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무지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을 그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들 사이에는 깊고 열렬하고 심령을 울리는 동정과 유혹받고 실수한 자들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 존재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서 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다른 길로 가버린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표현하신 심한 냉정과 죄악적인 무관심을 나타냈다. 새로 회개한 자들은 흔히 이내 굳어진 습관이나 특별한 형태의 유혹 때문에 극심한 투쟁을 하며, 어떤 압도적인 정욕이나 성향에 패배하게 되고 경솔이나 실제로 실수의 죄를 범한다. 605 그의 영적 건강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그의 형제들의 노력과 기지와 지혜가 요망되는 것은 이 때이다. 그런 경우에 적절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은 이러하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그러나 그리스도의 동정 깊은 온유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서 얼마나 적게 나타나는가! 한 사람이 실수할 때, 너무도 흔히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그 상황을 나쁘게 보이게 할 자유가 있다고 느낀다. 아마도 다른 어떤 면에서 동일하게 큰 죄들을 충분히 짓는 자들도 그들의 형제를 가혹하고 통렬하게 취급할 것이다. 무지와 부주의와 약점 때문에 범한 실수도 고의적이요 계획적인 죄로 과장된다. 영혼들이 그릇된 길로 나가는 것을 볼 때 어떤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서서,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지. 나는 그들은 전혀 의지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은 그들의 악한 추측이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마음으로 환호하면서 사단의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어리고 경험 없는 자들에게서 크게 불완전한 것을 보게 되고 또한 그것을 참아야 할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자들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온유한 심령으로 노력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분은 또한 그들을 좌절과 절망과 파멸로 몰아넣을 길을 따르는 데 대하여 우리에게 책임을 추궁하신다. 우리가 날마다 귀중한 사랑의 나무를 성장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편협하고, 냉정하고, 완고하고, 비판적이 될 위험에 처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에서 멀리 떠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를 의롭다고 평가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모없고, 무뚜뚝하고, 거칠다. 그들은 밤송이와 같다. 그들은 닿기만 하면 찌른다. 이 사람들은 사랑 많으신 우리 구주를 잘못 나타냄으로 말할 수 없는 해를 끼친다.

우리는 더 높은 표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기에 합당치 못하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실수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하신 그 정신을 계발시켜야 한다. 606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그분에게 귀중하다. 그들도 동일하게 그분의 은혜의 전리품이요 그 나라의 후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간악한 원수의 올무에, 위험과 더러움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아니면 분명히 멸망하게 된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사실 그대로 본 이상, 우리의 도움과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동정과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가까이 접근해 가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열성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열렬하고, 자아 희생적인 노력을 가중시켜야 할 것인가!

이 사업을 등한히 해 온 자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위대한 명령에 비추어 그들이 의무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 책임은 모든 사람에게 지워져 있다. 모든 사람은 질병을 감소시키고 그들의 동료 인간들의 축복을 증진시키도록 요구받고 있다. 만일 우리가 유혹을 물리치는 데 강하다면 우리는 연약하고 굴복하는 자들을 도와줄 더 큰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가 지식을 가졌으면 무지한 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재물로 우리를 축복하셨다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우리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이나 같이 갖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주위에 있는 자들과 나누는 일 없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 일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찾고 계신 그들의 주님께 성실한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분의 이름을 높인다. 참된 경건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분의 간절한 열망과 열렬한 활동을 분명히 보여 줄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드럽고 차분해지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고 불타오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동정과 친절이 절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생애에서 예시된 진리는 숨겨져 있는 누룩처럼,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안에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모본을 따르고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정해 놓으셨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고, 유혹을 받으면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을 실망시키는 방법으로 말하지 않는 데는 때때로 투쟁이 요구될 것이다. 607 매일의 기도와 찬양의 생활, 다른 사람들의 길에 빛을 비추는 생활은 열렬한 노력 없이 지탱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귀중한 열매를 맺고, 받는 자 뿐만 아니라 주는 자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기심 없이 활동하는 정신은 품성의 깊이와 안정과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스러움을 주고,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포부는 고상하게 된다. 게으름과 이기심이 있을 자리가 없다. 그리스도인 덕성을 활용하는 자들은 자라날 것이다. 그들은 영적 체력과 근육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강해질 것이다. 그들은 명석한 영적 지각, 튼튼하고 증가되는 믿음, 효과 있는 기도의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영혼들을 살피고 있는 자들, 자기 자신을 실수한 자들을 구원하는 일에 가장 완전히 바치고 있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구원을 가장 분명히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얼마나 등한히 여겨져 왔는가! 만일 사상과 애정이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진다면, 실수하고 사단의 유혹을 받고 있는 영혼들을 이전처럼 부주의하고 냉정하게 버려둘 수 있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이 방황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단순함으로 더 큰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한 모든 사람은 그분께서 가장 큰 열성으로 또한 그분께서 무한한 희생을 치르시고 하신 사업,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사업에 가장 큰 열성으로 임할 것이다. 이것은 소중히 하고 지탱해야 할 특별한 사업이며, 약해지도록 결코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각성하여 지금껏 살아온 냉랭하고 차가운 분위기에서 나와서 사랑의 맥박을 얼어 붙게 하여 무위(無爲)에 머물러 있게 한 생각과 사상을 떨쳐 버리도록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들이 저급하고, 세속적인 수준에서 나와서 맑고, 햇빛나는 하늘의 공기를 호흡하라고 명령하신다.

예배를 위한 우리의 집회는 거룩하고, 귀중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기도회는, 형제들이 피차 간에 비난하고 정죄하는 장소, 매정한 감정과 거친 말들이 있어야 하는 장소가 아니다. 608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정신이 나타나는 곳에서 쫓겨나실 것이며, 사단이 지도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들어올 것이다. 그리스도인적이 아닌 냉정한 정신의 냄새가 나는 것은 아무것도 들어오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자비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모였기 때문이다. 구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누가 하나님 앞에 서서 흠 없는 품성, 책망할 것이 없는 생애를 위하여 탄원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감히 그들의 형제들을 비판하고 징죄하겠는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만 구원을 바랄수 있는 자들, 그분의 피의 공로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자들은 동료 죄인들에 대하여 사랑과 동정과 용서를 나타내야 할 가장 강한 책임을 지고 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예배의 장소를 존중하지 않는 한, 그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형식상으로 그분을 경배할 수는 있지만, 영적 예배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실수들을 생각하는 대신에 그들 자신의 마음을 열렬히 살피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죄를 고백할 일이 있으면 그대의 의무만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무는 그들에게 맡겨 두라.

그대가 딱딱하고 냉정한 정신을 나타냄으로 그대 자신의 품성의 사나움을 간직하고 있을 때, 그대는 그대가 구원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을 물리치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가혹함은 함께 모이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너무도 흔히 그들이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결과를 자아낸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는 동안 주님께서는 그대를 정죄하신다. 주님께서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마침내 변화시키는 그분의 은혜가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바이다. 609 그 후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피차간에 비판하지 않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집회들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바로 하늘의 분위기로 차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메꾸기 위하여 지루하고, 맥없는 설교와 형식적인 기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자원해서 각자의 몫을 담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무가 끝나면, 집회는 마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흥미는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가납되는 예배의 제물이다. 그분께 예배드리는 일은, 흥미롭고 매력적이어야 하며, 무미건조한 형식으로 전락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마다, 시간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그분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어서 사막의 샘물처럼 솟아나 모든 사람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멸망 중에 있는 자들이 생명수를 마시고자 갈급하게 해 준다.

우리는 힌두교인이 온 교회의 일을 하도록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강하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내가 현실과 영원을 위하여 나의 일을 어떻게 할까요?” 라고 하나님께 물어보고자 열렬하고 진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힘을 개인적으로 기울여야 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성경 연구를 도와줄 모든 수단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가장 큰 악을 낳는 죄들에 속하는 헐뜯는 말과 비난하는 정신을 모든 교회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가혹함과 헐뜯는 일은 사단의 역사로서 책망받아야 한다. 상호간의 사랑과 신임은 교인들에게 격려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중에 험담하고 비난하기 위한 귀를 막아야 한다. 말을 옮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지적해 주라. 610 그에게 성경을 순종하고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그의 불평을 직접 가져가도록 명령하라. 이와 같은 연합된 활동은 빛의 홍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악의 홍수에 대해서는 문을 닫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데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고는 이러하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계 3:1-3). 특별히 이 교회가 책망당한 죄는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지 아니한 것이다. 이 경고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우리의 마음을 개인적으로 살펴보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일을 첫째 과업으로 삼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사업에 그분의 몫을 다하셨다. 이제 그분은 교회의 협력을 요구하신다. 한편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멸망해 가는 영혼들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사람들을 데려와서 하늘이 제공해 준 축복을 받게 하는 일에 활동할 몫이 있다. 우리 스스로를 철저히 살펴보고 우리가 이 일을 했는지 보자. 우리의 동기와 우리 생애의 모든 활동에 대하여 물어보자. 기억의 창고에 좋지 못한 많은 그림들은 없는가? 그대는 빈번히 예수님의 용서를 필요로 했다. 그대는 그분의 동정과 사랑을 끊임없이 신뢰해 왔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그대에 대하여 행사해 주신 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못했다. 그대는 금지된 길로 감히 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을 볼 때 그에게 대하여 책임을 느꼈는가? 그대는 그에게 친절히 권면했는가? 그대는 그를 위하여 울고, 그와 함께, 또한 그를 위하여 기도했는가? 그대가 그를 사랑하고 그를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을 온유한 말로 나타내고 친절하게 행동했는가? 611 그대가 기질에서 온 약점과 그릇된 습관의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자들과 사귀게 되었을 때, 그대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싸우도록 그들을 버려 두었는가? 세상이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고 사단의 그물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이고자 준비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다른 편에서 심하게 유혹받는 자들을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그대는 가인처럼,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말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는가? 위대한 교회의 머리께서는 그대의 생애의 과업을 어떻게 여기시겠는가? 당신의 피로 살만큼 각 영혼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분께서는 바른길에서 벗어나는 자들에 대한 그대의 무관심을 어떻게 보시는가? 그대가 그들을 떠나는 것처럼 그분께서 그대를 떠나가실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여호와의 집의 참된 파수꾼이신 분께서 모든 태만을 주목하신 사실을 믿으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이 그대의 생애에서 쫓겨남으로 마침내 기계적인 형식이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의 자리를 대신하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가 언급될 때마다 그대가 한때 느꼈던 영혼의 불꽃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초기의 헌신이 새로울 때 영혼들에 대한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열렬했던가! 그대가 그들에게 구주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얼마나 열렬하게 노력했던가! 그 사랑의 부재는 그대를 냉랭하고, 비판적이고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일하라. 만일 그대가 이것을 거절하면 빛과 경험을 적게 가지고 기회를 더 적게 가진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대의 자리를 빼앗고 그대가 등한히 한 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그 일을 주신다. 누가 그것을 수락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교회의 선한 공적과 극기의 행위를 간과하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하늘에 기록된다. 그러나 이것들로는 부족하다. 교회가 사명을 완수하는 일을 중단할 때, 이것들이 교회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나타낸 무서운 태만과 무관심을 중단하지 않는 한, 교회는 능력에서 능력으로 전진하는 대신, 계속해서 허약과 형식 안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되도록 허용할 것인가? 사랑과 영적 열성에 있어서의 우둔한 마비, 슬픈 타락은 영속(永續)되어야 할 것인가? 612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서 발견해야 할 상태인가?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개혁을 위한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등불은 분명히 깜빡거리게 되고 희미해져서 마침내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지금 주어진 기회는 짧은 것이다. 만일 이 은혜와 회개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채 지나가 버리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는 경고가 주어진다. 이 말씀은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이것들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는 관찰자께서 그들의 행위를 살피고 계시면서 교회와 개인들에게 주시는 엄숙한 경고이다. 그들이 땅만 폐하는 자로 찍혀 버림을 당하지 않는 것은 오직 그분의 놀라운 인내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영은 언제나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인내는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이다.

그대의 믿음은 지금까지보다는 무엇인가 나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의 심판자에 의한 최후의 결정은 궁핍한 자, 압제받는 자, 시험받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실제적 활동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대는 이 사람들을 언제나 한편 쪽으로 지나쳐 버리면서 그대 자신이 구속받은 죄인으로서 하늘의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고 말씀하신다.

아직은 과거의 태만을 속하기에 너무 늦지 않다. 처음 사랑, 처음 열성은 되살아나야 한다. 그대가 쫓아 버린 자들을 찾아내어 그대가 입힌 상처를 고백함으로 싸매어 주라. 자비로운 사랑을 가진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께로 가까이 가라. 그리하여 그 신령한 동정의 물결이 그대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와 그대에게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게 하라. 예수님께서 그분의 귀중한 생애를 통하여 계시하신 온유와 자비가, 우리의 동료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된 자들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모본이 되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생애의 큰 싸움에서 피곤에 지쳐 용기를 잃었는데, 그들은 친절한 격려와 용기의 말 한마디로 승리할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613 결코, 결코 무정하고, 냉랭하고, 무자비하고, 비판적으로 되지 말라. 용기를 주고 희망을 고취시켜 줄 한마디의 말을 해 주는 기회를 결코 잃어버리지 말라. 우리는 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한 부드럽고 친절한 우리의 말, 그리스도와 같은 노력이 얼마나 원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말할 수 없다. 실수한 자들은, 온유와 친절과 부드러운 사랑의 정신 외에 다른 길로는 회복될 수 없다.

그대는 그릇 행하는 한 영혼을 구속하고 잃어버린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이끌기 원하는가?

그대는 오랫동안 죄책 가운데서 살아 온 사람에게 수호하는 천사가 되기를 원하는가?

친절히 그에게로 가서 그의 손을 그대의 손으로 감싸고 다정한 말을 해주라.

그리고 그의 곁에 서서 그대가 죄의 마귀를 퇴위시킬 때까지 그의 곁에 형제로 서 있으라.

그러므로 죄지은 자를 멸시하지 말고 가장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와 목소리로 그에게 호소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한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류에게로 선에게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자신 또한 한 인간일 뿐이며 연약하고, 그 사람처럼 아마도 타락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타락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라.

그리하여 그 같은 자비가 그대에게도 베풀어질 수 있도록 하라.

교회의 의무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온유와 인내와 오래 참음이 있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모본 되신 분을 본받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할 것이다. 마음이 아직도 죄로 더러워져 있는 자들은 선한 일에 열심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무를 규정한 십계명의 처음 네 가지 조항을 지키지 못한다. 614 그들은 또한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람의 의무를 규정한 마지막 여섯 계명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은 자신들보다 나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결점을 찾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지 않으신 일에 손을 대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일은 하지 않고 남겨 두는데, 그 일은 어떤 쓴 뿌리가 자라나지 않게 하고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그것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하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행동을 조사하고 비판하기 위하여 눈을 안으로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품성에 옳지 않은 것이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기 위하여 그들의 눈을 밖으로 돌린다. 그들이 자아와 시기와 악한 추측과 악의에서 마음을 비우게 될 때 그들은 재판석에 올라가서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보다 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개혁시키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개혁시켜야 한다. 그는 그의 주님의 정신을 품고 그분처럼 즐겨 비난을 참아내고 극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영혼의 가치와 비교할 때 온 천하도 무의미해진다. 권위를 행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후사들을 지배하는 데 쓰고자 하는 욕망은, 그대로 방치되면, 영혼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모본되시는 분에게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의 정신으로 활동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당신께로 이끌어 영원한 구원을 보증해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왕궁을 떠나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대신하여 죄와 수치의 고통을 참으셨고,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지불된 무한한 값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어떤 누군가가 어떻게 감히 그분의 어린 자녀들 중 하나를 무관심하게 취급하겠는가? 기름과 포도주를 해치지 않기 위하여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모든 말과 행동을 얼마나 주의 깊게 경계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자들을 참으로 꾸준하게, 친절하게, 애정깊게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낙심한 자와 용기를 잃은 자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참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열렬하게 활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615 그들은 진리를 순종하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불신과 흑암의 공기를 마셔야 하는 가정에서 용기를 잃고 있는 자들을 참으로 부드럽게 취급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수한 자를 취급하는 방법

만일 어떤 형제가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되면 그의 형제와 자매들은 서로 속삭이고 그것에 관하여 쑥덕이고 실수와 결함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침소 봉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머물고 사단은 주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는 자들을 약화시키고 당혹하게 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한다. 세상은 그들의 약점을 보고 이런 계층의 사람들과 그들이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를 그들에게 나타난 열매로써 판단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시편 15편). 여기에서 참소하는 자는 하나님의 장막에서 제외되고 거룩한 시온성에 거하지 못한다. 이웃을 훼방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또한 진리로 돌아가게 하는 선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완전히 그릇된 상태에 있는 형제들과 논쟁적이고 거만한 정신을 가진 형제들 가운데 있는 어떤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불려가게 되는가?

사람들을 그들의 일터에서 불러내는 이 일은 이 사업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거듭거듭 되풀이되어 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인류의 큰 원수가 고안해 낸 것이다. 616 진리를 위하여 결정할 단계에 있는 영혼들이 이와 같이 좋지 않는 영향을 받게 될 때, 그들은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들을 다시 감동시킬 만큼 강력한 감명을 주는 일은 매우 드물다. 사단은 목사가 이 위기의 순간에 그의 일터를 떠나도록 부름을 받음으로 그의 활동의 결과가 상실되게 하는 어떤 계책을 언제나 찾고 있다.

교회 안에는 동료 인간의 구원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권위와 그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하는, 헌신하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은 남녀들이 있다. 사단은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여 어려움을 야기시키고 목사의 시간과 활동을 빼앗는다. 그 결과로 많은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된다.

교인들의 감정이 분열된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은 딱딱하고 무감각해진다. 목사의 노력은 식어 버린 쇠를 치는 것과 같고, 각 당파는 그의 길에서 이전보다 더 확고해 진다. 목사는 가장 부러워할 것이 못되는 그런 입장에 놓인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언제나 매우 현명한 결정을 할지라도 그의 결정은 누군가를 불쾌히 할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당파 정신은 강해지기 때문이다.

만일 목사가 자기의 집을 어떤 가족과 함께 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목사가 그들에 대하여 좋지 못한 인상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분명히 시기하게 된다. 만일 그가 권면을 하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은 그 사람과 함께 나눈 것이지요”라고 응수하게 되므로 그의 말은 그들에게 아무런 무게가 없다. 이와 같이 이 영혼들은 불신과 그릇된 추측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는 그들의 부당한 편견과 질투에 속수 무책이 되고 만다. 너무도 흔히 그는 그 문제를 그가 인지했었을 때보다 더 악화시켜 놓는다. 만일 그가 어떤 사람의 각색되고 편파된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성경의 원칙에 따라 충고의 말을 하고, 느헤미야처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느 6:3)고 말했다면 교회는 훨씬 더 좋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목사들과 교회의 평신도들이, 개인들이 형제들의 실수와 잘못을 그들에게 이야기하도록 허용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런 소문을 듣지 말고 이렇게 질문 해야 한다. 617 “당신은 구주의 명령을 엄격히 따랐는가? 당신은 범죄한 사람을 찾아가서 그와 당신 사이에서만 그의 잘못에 대하여 이야기했는가? 당신은 주의 깊고 경건하게 다른 두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친절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를 위하여 노력했는가? 당신의 마음은 그의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고동하고 있는가?” 실수한 자를 위하여 주어진 법칙을 따라 대장의 명령을 엄격히 따랐다면, 그 후에는 단계-그것을 교회에 알리고, 성경 말씀대로 그 상황을 결정하는 단계-를 취해야 한다. 만일 범법한 교인이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가 그를 끊어 버리는 결정을 하는 것을 하늘이 인정해 주는 것은 바로 이 때이다. 만일 이와 같은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면 불평에 대하여 귀를 막고 이웃에 대한 비난도 받아들이지 말라. 이런 일하는 형제와 자매들이 없어진다면 참소하는 혀는 곧 그쳐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물고 뜯는 일을 하기에 매우 유리한 일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선출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딛 1:5-7). 우리의 모든 목사들이 이 말씀에 유의하여 합당한 고려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분께서 받으실 자들을 선정해 달라는 많은 기도 없이는 사람들에게 빨리 직분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감받은 사도는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딤전 5:22)라고 했다. 우리 교회들 중 어떤 곳은 조직하고 장로들을 안수하는 일이 너무 일렀다. 성경의 원칙들이 등한시되었기 때문에 쓰라린 고통이 교회에 야기되었다. 지도자들을 택하는 일에 너무 크게 서두름으로 책임이 중한 사업에 전혀 합당치 못한 사람들, 그들의 역량대로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하기 전에 회개하고, 고상해지고, 숭고해지고, 세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안수를 받는 것과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618 복음의 그물은 좋은 것과 못된 것 모두를 끌어올린다. 그러나 품성이 계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려야 한다. 직분에 천거된 사람의 가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순종하는 자들인가? 그는 떳떳하게 자기의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가? 그의 자녀들은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존중할 것인가? 만일 그가 자기의 가정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가정에서 기지와 지혜와 경건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면 동일한 결함이 교회 안에서도 되풀이 될 것이고, 똑같이 성화되지 못한 관리가 그 곳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결론지어도 좋다. 사람에게 직분을 준 후에 비판하는 것보다 사전에 하는 것이 훨씬 낫고 잘못된 조처의 결과를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결정적인 단계를 밟기 전에 기도하고 권면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어떤 교회들에는 지도자가 교인들을 일꾼이 되도록 교육시킬 올바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업에 생기로운 흥미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기지와 판단력이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자가 느리고 싫증난다. 그는 공중 앞에서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길게 기도한다. 그는 그에게 신선한 경험을 줄 산 연결을 하나님과 이루지 않았다.

각 곳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열렬하고, 열성과 이기심 없는 관심으로 충만해야 하고, 사업에 대하여 올바른 본을 보일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요구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그들은 은밀한 기도에 있어서는 원하는 모든 시간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공중 앞에서는 그들의 기도와 간증을 짧고 요령 있게해야 한다. 길고 무미건조한 기도와 지루한 권면은 피해야 한다. 만일 형제와 자매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덕을 세울 수 있는 어떤 말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먼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함이 없는 그분의 창고에서 끌어내고 거기서 새것과 옛 것을 가져와야 한다. 만일 그들 자신의 심령이 하나님의 영으로 활력을 얻게 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강하게 하고, 용감하게 해 줄 것이다. 619 그러나 그들 자신이 구원의 산 샘에서 마시지 못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그 곳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체험적 신앙의 필요는 진리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목사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키고, 개인적 헌신, 개인적 회개의 필요성을 백성들에게 새겨 주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산 경험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고, 그분의 영이 애정을 지배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신앙 고백은 가치가 없고, 그들의 상태는 그들이 진리를 결코 듣지 않은 것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교회를 번영시킬 수 있는 그런 방식과 조치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적은 무리들을 위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한 사람이 일주일이나 한 달 동안 지도하도록 택함을 받고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2, 3주일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각기 다른 사람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적당한 시험을 거친 후에 누군가가 교회의 찬성에 의하여 공인된 지도자로 택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1년 이상의 기간을 위하여 결코 택함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이 피택될 수도 있고, 혹은 동일한 사람이, 그의 봉사가 교회에 축복이 된 것으로 입증되면, 재선될 수도 있다. 동일한 원칙은, 합회의 직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책임 있는 직분을 위하여 사람들을 택할 때도 준수되어야 한다. 시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합회장으로 피택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이익이 포함되어 있는 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올바른 분별력을 활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보관자로 공언한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어느 다른 백성들보다 더 큰 빛을 가지고 있고 더 높은 표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품성의 완성과 더 열렬한 헌신을 나타내어야 한다. 가장 엄숙한 기별이 현대 진리의 빛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우리의 빛은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의 길을 밝혀 주기 위하여 비춰야 한다. 가시적(可視的)교회의 교인들로서,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들로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교회 내의 평화와 화목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620 그리스도의 기도에 유의해 보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교회의 연합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의 구속주로 보내셨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불신자들이 배교와 분열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투쟁을 봄으로 종교를 싫어하고 그들의 회개하지 않음이 굳어지게 하고자 이 연합과 조화를 방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서로 불화하고 원수가 될 때 그들 때문에 모욕을 당하신다. 사단은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는 모든 자는 그의 사업에 가담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교단들보다 더 나은 진리를 가졌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큰 헌신과 더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로 이끌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노라고 공언하면서 그 진리로 거룩함을 입지 못하면 진리의 빛을 결코 보지 못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오류에서 진리로 영혼이 돌아오는 일에 포함된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불멸의 가치를 알아야 하고, 둘째 사망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아야 하고, 구속받은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존귀와 영광을 알아야 하고, 인류를 고상하고 존귀하게 하고 승리한 자에게 왕관을 주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의 면전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

영혼의 가치는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 완전히 헤아려질 수 없다. 속량받은 자들과 영화롭게 된 자들은 그들의 구원에 도구가 되었던 자들을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겠는가! 한 사람도, 그의 의무를 등한히 했거나 선행에 지쳐 버렸다면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영혼들을 위한 자신의 극기의 노력과 꾸준한 활동, 그의 인내, 오래 참음, 간절한 마음의 열망등을 그 때에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621 이제 이 흰옷 입은 자들은 위대한 목자의 우리 안에 모아들여진다. 성실한 일꾼과 그의 활동으로 구원받은 영혼은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의 환영을 받고, 생명 나무와 생명수 샘으로 인도된다. 그리스도의 종이 구속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구속함을 받은 이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기쁨이 어떠할까!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성실한 자들에게 하늘은 얼마나 더 귀중할까!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편 지

사랑하는 O 형제에게: 나는 당신이 편지를 받았으며, 당신이 최근에 취한 매우 갑작스런 전환에서 받은 마음의 슬픔을 당신에게 표현할 필요가 없다. 내가 당신의 지난 역사를 살펴볼 때, 나는 콜로라도에서의 당신의 경험, 내려올 수 없을 것처럼 보인 그 바위 위에 있는 동안의 그대의 반성, 그 후 부분적으로 신앙을 회복한 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있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더 멀리 떠나고자 하는 거짓되고 야망적인 희망 때문에 생긴 당신의 시험, 당신의 실망,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당신의 칭찬할 만한 태도, 당신을 위하여 하늘로 상달시키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동정, “그를 홀로 버려 두지 마시고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애써 주십시오. 그는 올무에 걸려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붙들었던 손을 놓쳐 버렸습니다”라고 끊임없이 호소한 나의 탄원 등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당신의 아내가 죽기 전에 그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간 마지막 시간을 기억한다. 그의 무거운 짐은 당신과 그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자녀들과 남편의 회의주의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떨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죽으면 그는 마음을 버리고 나의 자녀들에게 안식일을 버리게 할 것이다. 그가 그처럼 큰 빛과 그처럼 많은 증거들을 받은 후에 그렇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삶에 매달려 왔다. 그는 시험이 올 때 그를 붙들어 줄, 심오하게 마음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 없다. 622 오, 화잇 자매여, 내가 생명 줄에 매달리는 것은 나의 남편과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서이다. 나는 여기서 진심으로 미안한 일을 당신에게 실토하겠는데, 그것은 나와 나의 남편에게 주어진 증언을 다른 정신으로 내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우리에게 준 기별이 우리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 기별이었음을 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였을 것 같으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한때 처해있던 것보다 영적으로 더 낫고, 훨씬 더 나은 처지에 있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이 정신적으로 교만해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나는 당신을 피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우리를 믿지도 않고 신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간 2, 3개월 동안 이 모든 것은 사라졌으며, 나는 과거의 생애에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신임과 당신에게 대한 동일하게 친근한 동정과 사랑을 느껴 왔다. 그러나 나의 남편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별로 가치가 없다. 나는 문제들을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그대로 그의 앞에 제시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그는 그의 사상과 감정에 너무 확고하다. 그러나 나는 증언들과 당신의 사업을 믿는 솔직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하기를 바랬다. 이것을 당신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데, 나는 이제 후련해진 것 같다. 당신에 대한 나의 감정과 말에 대하여 용서해 주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켰고, 때로는 그분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물론 한동안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나는 지나간 2, 3주일 동안에서처럼 불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위협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나는 남편이 불신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를 크게 두려워한다. 나는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무신자(無信者)가 될까 두렵다. 아,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O 형제여, 당신은 아내가 죽을 때, 그가 증언들을 믿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당신과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내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 나는 그대가 흑암속에 크게 빠져 있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당신의 아내가 증언들을 완전히 믿고 있다는 것과 그것들이 당신과 그 여자에 관하여 진실하다는것을 알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내게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________장막회에 참석했을 때, 당신도 참석했었다. 그 때에 당신은, 그 당시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머물러 있었을 것 같으면 당신에게 영구적으로 귀하게 판명될 경험을 갖고 있었다. 623 그 때에 당신은 마음을 겸비하게 했고 무릎을 꿇고 당신이 나와 나의 사업에 관하여 말한 것들을 용서해 달라고 내게 구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에 관하여 어떻게 말했는지 당신은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예수님이 나의 죄와 실수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내가 바라는 것처럼 당신을 거리낌없이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고 보증했다. 당신은 거기에 있는 몇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내게 입힌 상처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내게 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용서했노라고 당신에게 보증했다. 이것들 중 아무것도 내게 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별을 전달하는 종에 불과했다. 당신이 반대하고자 한 것은 실제로 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기구를 통하여 당신에게 보낸 기별이었다. 당신이 상처를 입힌 것은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였다.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내게 고백하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것을 당신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서 바로잡으라. 그러면 당신과 나 사이의 모든 것은 바르게 될 것이다.” 당신에 대하여 기록된 어떤 표현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강한 시각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것들을 주의깊이 다시 읽어 본 후에, 당신은 그것들이 사실 그대로 나타났다고 말했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이 면담 후에 당신은, 회개가 무엇인지 전에는 결코 몰랐지만 이제 거듭나게 되었고 처음으로 회개한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당신은 형제들을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었고, 당신의 마음은 가볍고 행복해졌다. 당신은 이전에는 결코 깨닫지 못한 사업의 신성성을 깨달았다. 당신의 편지는, 하나님의 영으로 당신 안에 깊은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땅으로 돌아와서 전에 실패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험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해오셨다. 그분은 그들이 전에 실패했던 곳에서 그들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시험하실 것이고, 만일 그들이 시험을 받고 두번째 실패하면 동일한 시험이 그들에게 다시 반복되게 하실 것이다.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아프다. 나의 마음은 참으로 슬프다. 624 모든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로 산 것이기 때문에 존귀하다. 나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산 것, 곧 영혼의 구속에 대하여 무엇인가 바른 평가를 못하고 있다고 때때로 생각한다. 개인의 영혼들의 구속을 위하여 지불된 무한한 값을 생각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영혼이 마침내 잃어버린 바 되면 어떻게 될까? 만일 그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기를 거절하므로 온유와 겸손을 실천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형제여, 이 점에서 당신은 크게 실패해 왔다. 만일 당신이 자기 스스로 적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고문으로 삼아 왔을 것 같으면 당신은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강해졌을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지 않았고, 그분의 정신으로 젖어 있지도 않았다. 아, 하나님의 형상이 당신의 품성에 새겨질 필요가 너무도 절실하다!

우리의 우월한 장점들을 생각하고,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빛과 특권에 의하여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이 있다. 우리는 여러 시대 동안 세상에게 경탄과 능욕이 되어 왔던 사람들보다 빛을 적게 받고 있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가버나움처럼 하늘까지 올라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심판이 내리기를 기대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역사해 오셨다. 하늘에서 우리에게 비춰진 빛이 소돔과 고모라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되었으면 그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백성에게 알려진 큰 일과 지식과 은혜가 흑암 중에 있는 민족들에게 보여졌다면 그들이 오늘날 얼마나 크게 향상되어 있을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당신처럼 진리의 밝은 빛을 받았지만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그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계명을 외면한 사람들보다 그들이 심판의 날에 얼마나 더 견디기 쉬울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다만 당신의 경우를 하나의 경고의 신호로서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625 주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신다. 그분의 생각과 길은 맹목적이요 이기적인 사람들이 그것들이 그렇다고 믿거나 이러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그런 것과 같지 않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피조물들이, 그분의 권면을 거부하지 않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절하지 않으면, 그분께서 그들에게 명령하고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이든지 간에 즐겨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일하신다.

당신의 생애의 더 큰 부분은, 당신이 생애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인하고 정죄하게 될 교리들을 제시하는 일에 바쳐져 왔다. 어느 것이 진실한 사업이며, 어느 것이 거짓된 사업인가? 우리는 당신의 판단을 믿을 수 있고, 당신의 성경 해석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혹당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이나 당신의 생애 중 미래의 어느 기간에 당신의 발이 튼튼한 반석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리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산 실재이다. 나는 그것이 사실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당신의 빛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나는 사단의 타락과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역사를 담고 있는 “각 시대의 대쟁투”를 더욱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빛의 그리스도와 흑암의 왕 사단 사이의 이 대쟁투에 관하여 내가 지금껏 느꼈던 것보다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사단이 실수한 사람의 멸망을 꾀하고, 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한 자로 만들고자 하는 사단의 여러 가지 간계들을 볼 때, 나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이 문제를 증요한 그대로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아담과 하와가, “너희가 …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창 3:5)는 사단의 거짓말을 믿었던 것처럼, 이 영혼들은 불순종을 통하여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칭찬받는 어떤 지위를 얻고자 희망한다. 나는 너무 염려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인간의 마음에서 치명적인 기만을 깨뜨려 주시고 그들을 단순하게 갈바리의 십자가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시간들을 보낸다. 626 그러고는 이 모든 영혼들이 주 예수님의 피로 산 바 되었다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진정시킨다. 우리가 영혼들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갈바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증거해 준다. 이 사업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이 아니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그분의 손에 쥐어진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은혜의 영을 멸시하고 있는 자들을 보고 그들 때문에 떤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성실치 못함을 깨닫고 섭섭하게 생각하며, 또한 실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피로써 그들을 사 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더 큰 슬픔을 느낀다. 우리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소유를 바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여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생명 자체를 주고자 할지라도 이 희생까지도 그 일을 할 수는 없다. 하나의 위대한 희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명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아, 사람들의 마음이 이 위대한 희생을 명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들은 구원의 위대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O 형제여, 그런데 지금 당신은 그처럼 큰 빛, 성경의 진리에 관하여 그처럼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침내 진리로 승리할 자들과 함께 전진하고 향상해 가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율법이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고자 최초의 큰 반역자의 편에 가담하고 있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동일한 길로 이끌어서 우리의 믿음을 조롱하게 할 것이다. 심판을 베풀 때, 각 사람은 책들에 기록된 것에 의하여 심판받게 될 것인데, 당신의 경우는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만일 당신이 불신의 분위기로 둘러싸 주지 않았다면, 만일 당신이 성경의 뜻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성경을 왜곡시키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엄격히 순종하는 데서 떠나가게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길을 걸어가게 되었을 이 사람 저 사람을 당신은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당신은 기쁨으로 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은 위대한 재판장께서, “누가 이 일을 하도록 그대에게 요구하였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것이다.

627 당신의 지금 아내는 극기와 자아 희생과 하나님과의 교통과 진리를 믿는 믿음에 있어서 깊은 신앙적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에서 쉽게 범법의 길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당신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길을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구제되지 않으면 그들의 불순종과 범법이 당신의 심령을 누르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의 재판장께서는, 당신이 그 요구를 잘 알고 있는 그 거룩한 율법을 당신에게 들이대신다. 당신의 품성과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의 품성은 그 거룩한 의의 표준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다. 당신이 그들을 범죄하게 하고, 그들이 멸망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은 당신에게 책임을 지운다. 사단이 정통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계책들을 통하여, 당신은 이생과, 영원을 위하여 일해 왔고, 당신이 진리의 빛을 떠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정직한 사람으로 믿게 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기만이다. 무서운 기만이다. 그날에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그 때에 당신은 창조주를 심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변명을 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당신은 범죄하고 정죄받은 상태로 서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상황을 이런 모양으로 나타낸다 해서 당신이 내게 대하여 분노를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할 때마다 언제나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당신은 나를 보고계십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라. 우리의 행동의 가장 적은 부분도 “내가 네 행위를 아노”(계 3:8)라고 말씀하시는 분의 눈에서 숨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까지 하나님의 살피시는 눈앞에 펼쳐져 있다. 모든 행동, 모든 목적, 모든 말은 마치 온 우주에서 오직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분명히 드러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살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율법을 주신 분의 눈앞에서 그분의 율법 중 한 조항이라도 범하거나, 속임이나 주장이나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겠는가? 우리가 대재판관의 바로 면전에서 그 선고를 무릅쓸 것인가? 628 여기에는 가장 악한 인간의 주제 넘음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철면피가 있다. 심판의 날에 내가 만날 것으로 기대하는 나의 형제여, 나는 당신이 최근의 기만에 대하여 변명할 말이 없을 것으로 안다.

아, 내가 당신 앞에, 또한 나의 형제가 된 다른 사람들 앞에 하나님이 언제나 임재해 계심을 느낄 필요를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도덕적·신앙적 입장이 백성들 앞에서 전혀 달라지게 해 줄 그런 자제가 당신의 생애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더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 사람은, 나가고 들어갈 때, 모든 사업 거래를 할 때,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의 감시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각 사람의 행위를 영원히 심판하실 분께서 동행하시고, 그의 모든 행동을 살피시고 그의 모든 동기를 조사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과 그분의 교훈을 어기는 위험 의식이 그의 전 존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얼마나 많은 악이 예방되겠는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각 시대를 통하여, “나는 이 큰 죄악을 범하여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는 부르짖음이 있게 될 것이다.

누가 문들을 통하여 성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나는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아내의 영혼과 당신의 무구한 자녀들의 영혼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당신의 발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주의 깊이 생각하라. 나는 말할 것이 더 많이 있지만 지금은 하지 않겠다. 나에게 회답을 해 주기 바란다. 내가 요청한 바 꿈에 대한 편지를 내게 보내 달라.

1888년 4월 20일 많은 슬픔과 동정과 사랑을 가진 당신의 친구.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629 사랑하는 P 형제에게: 나는 당신의 편지에서, 당신이 불신 상태에 빠져서 당신의 상황이 희망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5, 11)고 말하는 바이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당신은 이 귀중한 약속에서 용기를 가질 수 없는가? 사단은 여러번 당신이 죄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대답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말씀하셨다. 다시 그분은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 귀중한 말씀들을 믿지 않겠는가? 이 말씀들을 당신의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6, 7). 이 약속은 넓고 깊고 완전하지 않는가? 당신은 더욱 많이 구할 수 있는가? 당신은 주님께서 바로 이 곳에서 당신을 위하여 원수를 대항하여 깃발을 세우도록 허락하겠는가? 사단은 복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을 빼앗아 버리고자 노리고 있다. 그는 모든 희망의 희미한 빛과 모든 빛의 광선을 심령에서 빼앗아 버리고자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믿음을 활용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 의심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약속들에 대하여 정통해지라.

630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겔 33:13-1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사단이 당신에게 와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게 하고자 유혹하거든 그에게 이 말씀들을 가리켜 주라 다윗처럼 기도하라.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7-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8-20). 확실하고 분명하며, 풍부하고 완전한 약속들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조건적이다. 당신이 만일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주님께 그분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도록 신뢰할 수 있지 않은가? 이 복스러운 약속들을 믿음의 골격으로 삼아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라. 그것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히 10:23)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앞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631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6, 17).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신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주님께서는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겔 33:15, 17)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 18:2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23, 30-32).

여기서 주님께서는 죄인의 구원에 관한 당신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인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나타냄으로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불신용에 해당된다. 하나님이 가혹하시다고 불평하는 자들은, “실제적으로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 18:25)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너희 죄에서 떠나지 않는 데 너희의 허물을 내가 용서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그 비난을 죄인에게 분명히 되돌려 버리신다. 하나님의 품성은 내가 당신 앞에 제시한 말씀을 통하여 충분히 옹호된다. 주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그의 죄를 버림으로 품성의 완성을 위하여 애쓰는 그의 노력과 하나님이 협력하실 수 있게 될 때 그를 받으실 것이다. 그 약속들은 예이면서 동시에 아니요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조건에 따르기만 하면 그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고후 1:20) 된다. 632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의 죄를 위하여 내주신 전반적인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시되, 범죄와 불의를 통해서가 아니고 죄를 버리고, 그의 품성의 옷을 씻고,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 함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미워하시는 불쾌한 것을 사람에게서 제거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 사업에 있어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죄는 버려지고, 증오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인간은 협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의심과 불신이 들어오도록 용납하고, 실망의 태도로써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고 그분을 세상에 잘못 나타내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단의 편에 두게 된다. 사단은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영혼들이여, 나는 죄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그대들을 동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정심이 없다. 그대들은 무엇인가 희망의 광선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들을 멸망하도록 버려 두고, 그대들의 불행을 보고 만족해 한다.” 이것은 무서운 기만이다. 유혹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렇게 말하라. “예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가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나에게는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가 계신다. 비록 내가 그분의 사랑을 남용하고, 자비롭게도 그분께서 내게 주신 축복들을 낭비해 왔을지라도 나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아버지여 내가 …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 15:18, 19)라고 말하겠다.” 비유는 그 방황자가 어떻게 영접을 받을 것인지 당신에게 말해 준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즐겨 영접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 준다.

비록 이 비유가 다정다감하고 감동적일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주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렘 31:3)고 주장하신다. 죄인이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나 낯선 나라에서 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마음은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633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심령 속에서 생길 때마다 그것은 방황자를 그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으로 호소하고, 간구하고, 이끌고 있는 그분의 영의 부드러운 간원에 불과하다.

당신 앞에 성경의 풍성한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가련한 죄인이 돌아오고자 갈망하고, 그의 죄를 버리고자 희구하지만 주님께서 회개로써 그분의 발 앞에 나오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하고 계신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버려라. 그런 생각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대하여 그런 생각을 품는 것보다 그 자신의 영혼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전반적인 영적 생애는, 하나님께 대한 그런 관념 때문에 절망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찾거나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킨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우리에게 선고를 내리고자 기다리고 있는 재판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죄를 미워하신다. 그러나 죄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단이 악랄하게도 그릇되게 나타낸 당신의 품성을 친히 선포하신다. 그분은,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출 34:6, 7)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분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택하신 말보다 더 강하고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겠는가? 그분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고 주장하신다.

구속의 계획에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온전히 지혜로우시고 온전히 능하신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분께서는 사랑이 충만하시고 자비가 넘치신다. 그러므로 의심하며 떨고 있는 자들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께서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주신 데 대하여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신 데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634 P 형제여, 당신은 이 세상이나 장차 올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는지에 대하여 질문한다. 이것이 그런 경우라는 증거를 나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바이다.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가? 그것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를 목격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그 일이 성경과 일치된다는 것과,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의 마음에 증거해 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유혹을 받아 타락한다. 교만, 자부심, 그밖의 다른 악한 특성이 그를 지배한다. 그리하여 그 역사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모든 증거를 거절하고, 그는 그가 이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했던 것이 사단의 능력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의 매개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그것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즐겨 그들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비취고 있던 빛을 꺼 버린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둠에 묻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곧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3)라고 하신 말씀이 입증된다. 이 죄를 범해 온 사람들이 한동안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품성을 나타낼 환경을 만나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정신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이게 될 때, 그들이 원수의 땅에 있다는 것, 검은 깃발 아래 서 있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성령께서는 오늘 당신을 초청하신다.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께로 오라.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자복하고, 모든 죄악을 버려라. 그리하면 당신은 그분의 모든 약속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는 말씀은 그분의 은혜로운 초청이다.

무서운 하나님의 분노의 책망이 그분께 불충성 하기로 고집해 온 모든 자들에게 내릴 날이 올 것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의로써 말씀하시고 무서운 일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될 것이다. 635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분노 아래 놓일 자들 사이에 속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은 지금 분명하고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으며,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드러내 주고 있다. 내가 당신 앞에 제시해 준 약속들을 읽을 때, 그것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자비임을 기억하라. 무한한 사랑을 가진 위대한 마음은 끝없는 긍휼로써 죄인을 이끌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두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기만 하라. 그분은 사람 안에 그분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를 바라신다. 당신이 고백과 회개로써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면 그분은 자비와 용서로써 당신에게로 가까이 오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빚지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신다. 당신이 두렵고 떨림으로 당신 자신의 구원을 이루게 될 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 2:13) 하신다.

하나님께서 가납하시는 고백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 조건은 단순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주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어떤 괴로운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께 우리의 심령을 고치거나 우리의 허물을 속하기 위하여 길고 지루한 순례를 하거나 고통스런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자는 자비를 얻을 것이다. 이것은 타락한 사람이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분의 나라에서의 영생을 구하게 하고자 주어진 귀중한 약속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 다니엘이 하늘의 은총을 크게 입은 자였음을 읽게 된다.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번영과 시련의 때를 막론하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존중했다. 63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낮추고 그의 죄와 백성의 죄를 고백했다. 그는 마음에 깊은 슬픔 가운데 이렇게 인정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단 9:5-7).

다니엘은 자기 자신이나 그의 백성을 하나님 앞에 변명하고자 하지 않고, 심령의 겸손과 통회로 완전히 고백하고 그들의 허물의 결점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분의 호소가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한 나라에 대하여 취하신 그분의 처사를 공의롭다고 옹호했다.

이처럼 진실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회개와 고백은 오늘날에도 크게 필요하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함으로 심령을 하나님 앞에 낯추지 못한 자들은 가납받을 첫째 조건도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만일 우리가 회개할 것이 없는 회개를 경험하지 않고 진정한 영혼의 겸비와 심령의 통회로써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의 죄악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결코 죄의 용서를 진정으로 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혀 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안을 결코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죄를 도말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즐겨 낮추지 않고 진리의 말씀의 조건에 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주어진 명백한 교훈이 있다. 죄의 고백은, 공적이거나 사적이거나를 막론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거리낌없이 표현되어야 한다. 637 그것은 죄인에게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박하고 부주의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죄의 가증한 성격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 눈물과 슬픔이 섞인 고백, 심령의 깊은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백은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의 바로의 고백과 같은 고백이 너무도 많이 있다. 그는 더 이상의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하여 그의 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재앙들이 그치자 즉시 그는 하늘을 반항하는 일로 되돌아갔다. 발람의 고백도 유사한 성격의 것이었다. 칼을 빼 들고 그가 가는 길에 서있는 천사에 놀란 그는 생명을 빼앗길까 두려워서 자기의 죄를 인정했다. 그의 고백에는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없고, 통회도 없고, 목적의 변동도 없고, 죄를 가증히 여기는 마음도 없고, 어떤 가치도 공효도 없었다. 가룟 유다는 그의 주님을 배반한 후, 제사장들에게로 돌아가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자비를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죄의 무서운 장면과 미래의 무서운 심판 때문에 죄책감에 눌린 그의 심령에서 강요된 것이었다. 그에게 이르러 올 결과 때문에 그는 자신의 큰 죄를 이처럼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넘겨 주어서 조롱받고,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배신하여 악하고 무도한 자들의 손에 넘겨 준 데 대한 깊고도 마음을 찢는 슬픔이 없었다. 그의 고백은 다만 이기적이고 암담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에 불과했다.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후, 그들은 수치와 공포감으로 충만해졌다. 처음에 그들의 유일의 생각은 하나님 앞에 그들의 죄를 어떻게 변명할 것이며 무서운 죽음의 선고를 어떻게 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638 여호와께서 그들의 죄에 관하여 질문하시자, 아담은 그 죄를 부분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부분적으로는 그의 배우자에게로 돌림으로 대답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고 말하므로 그 책임을 뱀에게 돌렸다. “왜 당신이 뱀을 만들었습니까? 왜 당신이 뱀을 에덴 동산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습니까?” 이것들은 그의 죄를 변명하는 일을 암시한 질문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타락의 책임을 하나님께 지우고 있었다. 자기 정당화의 정신은 거짓의 아비에게서 나와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에 의하여 나타났다. 이런 종류의 고백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 앞에 가납될 수 없다. 참된 회개는 사람의 범죄를 자기 자신에게 지우고 기만이나 위선 없이 그것을 인정하게 할 것이다. 가련한 세리처럼, 눈을 하늘로 향하여 들지 못하고 그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는 자들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회개한 영혼을 위하여 자신의 피를 내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의 창조주 앞에 머리를 숙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를 통한 용서를 간구하는 것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범죄하고 반역함으로 상하게 한 분 앞에서 그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고상한 일이다. 그것은 그대를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높여 준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 지”(눅 18:14)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은밀한 생각과 상상을 고백으로 털어 놓는 자는 자기의 인격을 떨어뜨리고 그의 영혼의 모든 본성을 저하시킴으로 자신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술과 방종으로 타락한 사제에게 그의 생애에 있는 죄를 펼쳐 놓음으로써 그의 품성의 표준은 낮아지고, 그는 결과적으로 더럽혀진다. 그의 생각 속에는, 사제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서 있다는 뜻에서 하나님이 죄많은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낮추어진다. 639 세상을 더럽히는 악이 증가되어 마지막 멸망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는 원인 중 많은 부분은 타락한 사람에게 하는 이와 같은 저열한 인간의 고백인 것이다.

사도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고 말한다. 이 성경절은, 사면을 위하여 사제에게 가는 일을 지지하기 위하여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적용되면 안 된다. 그대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대의 잘못을 피차에 고백하라. 만일 그대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그대는 그대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그대를 거리낌없이 용서해 주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그 후에 그대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상처를 입힌 그 형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에게 손해를 입힘으로 그의 창조주요 구속주에게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 경우는 전혀 사제 앞에 제시될 것이 아니고 유일한 참 중보자시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고, “우리 연약함을 체휼”(히 4:15)하시고 모든 죄의 오점을 씻으실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다윗이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범죄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탄원했다. 그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 51:4)라고 부르짖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범한 모든 잘못은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다윗은 용서를 구하되 사제에게가 아니고 사람의 창조주에게 구한다. 그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 51:1)라고 기도한다.

참된 고백은 언제나 구체적이며 개개의 죄들을 인정한다. 그 죄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만 제시되어야 할 그런 성격의 것일 수도 있고, 그 죄 때문에 고통을 받은 개인들 앞에 고백되어야 할 잘못들일 수도 있고, 회중에게 알려져야 할 일반적인 형태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고백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그대가 범한 바로 그 죄들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640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에게 압제받을 때 택한 백성은 참 고백의 성격을 알려 주는 호소를 하나님 앞에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고백과 기도에 일치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자 여호와의 크신 사랑의 마음이 근심하였고,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0-16).

진정한 회개와 개혁이 없으면 고백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다. 생애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거슬리는 모든 것은 버려져야 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의 결과가 될 것이다. 바울은 회개의 역사를 이렇게 말한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사무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다. 그들은 죄의 결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그분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그분의 사업을 옹호하고 방어해 주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우주의 통치자를 등지고 그들 주변에 있는 국가들처럼 통치받기를 원했다. 641 그러나 그들이 평안을 찾기 전에 그들은 이런 분명한 고백을 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삼상 12:19). 그들이 깨달은 바로 그 죄가 고백되어야 했다. 그들의 배은 망덕은 그들의 심령을 눌렸고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

죄가 도덕적 지각을 마비시켜 버리면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가 범한 악의 극악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각성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굴복지 않는 한, 그는 그의 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눈먼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의 고백은 진실하지도 열렬하지도 않다. 그의 범죄를 인정할 때마다 그는 그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첨가하고, 만일 특수한 환경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가 비난받고 있는 이 일도 저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겸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예증들은, 고백의 정신에는 죄에 대한 변명이나 자기 변호에 대한 시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죄를 가장 어두운 색깔로 묘사하고, 그의 범죄를 경감시키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대제상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행 26:10, 11).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로 부드러워진 겸손하고 통회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희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아들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그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가져 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고백에 대한 그릇된 사상들

642 ________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그대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온 선한 사업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배틀크릭에 온 이후로 나는 이 곳 교회에 관하여 마음을 많이 썼다. 기도주간 동안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셨다. 그 곳에 있는 우리의 모든 기관들은 건전하고, 잘 균형잡힌 발전을 계속해 왔다.

집회들은 대학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상에서 온 학생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대학에 오기 전에 신앙적 경험이 전혀 없었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집회에 참석함으로 스스로를 빛이 비취는 통로에 두지 않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이 회개들은 더욱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회에 참석하였고, 주님의 영으로 각성되었고, 건전하게 회개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서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은 결코 없었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부모들은 신앙 고백자들이 아니므로 그들의 믿음은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친구들에게 그들이 받아들인 새 믿음이 그들을 광신자나 극단주의자로 만들지 않고 잘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으므로 모든 면에서 그들이 회개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것과, 그들이 순수한 믿음의 원칙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소유하고 훌륭하게 규모 있는 생활과 경건한 대화로써 그것들을 보여 주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편지가 왔다. 대학에서의 이런 좋은 일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의 근원이 되었다.

우리는 3주일 동안 위생병원에서 조수들을 위하여 5시 반에 아침 집회를 열었다. 나는 이 기회에 설교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나는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환자들에게 설교하였다.

우리는 정오에 리뷰 앤드 헤랄드사의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열었다. 여기에서도 주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하고 계셨다. 여러 해 동안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해 왔으나 심령의 뜨거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 사람들이 주님의 영을 받았다. 643 그대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귀중한 사랑을 증거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그들의 간증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전에 결코 회개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집회들은 태버나클교회에서 두 주일 동안 매일 두 차례씩 열렸는데, 제시된 기별이 마음들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의 간증은 적절한 것이었다. 나는 이 훌륭한 일을 이루어 주신데 대하여 주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또한 태버나클교회에서 어떤 특별 집회를 가졌다. 이 교회는 크므로 지난해 마지막 안식일 오후에 기도를 위하여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부른 후에, 신앙 고백을 해야 겠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교회 부속실로 가도록 요청하고 우리는 거기서 그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갖게 했다. 나는 말라기 3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 10). 많은 신앙 고백들이 이 점에 관하여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과 정직한 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죄들을 고백하고 배상을 했다. 그 다음 주일 동안에, 하나님과 정당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음으로 그분과 분리되었던 자들 중 몇 사람은 그들이 드리지 않고 있던 것을 돌려드리기 시작했다. 한 형제는 2년 동안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 그는 그가 보류하고 있던 십일조와 거기에 대한 이자를 합하여 571불 50센트의 액면 수표를 합회 총무 부장에게 바쳤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할 용기를 가진 데 대하여 주님께 감사한다. 다른 한 사람은 300불의 수표를 바쳤다.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갔으므로 그의 발을 의의 길로 다시 돌이킬 희망이 거의 없었던 또 한 사람은 1, 000불의 수표를 바쳤다. 오랫동안 바치지 않고 보류해 두었던 이 십일조와 헌금을 중앙 유럽 선교지에 바치도록 제안했기 때문에 이 돈들과 크리스마스 헌금, 합계로 거의 6, 000불이 선교 사업에 쓰여지도록 이 교회에서 금고에 들어왔다.

644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바란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행함으로 완전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분은 믿는 자들의 구원과 영생을 이 행함과 관련시키시며, 그것들을 통하여 진리의 빛이 모든 나라와 백성에게로 퍼져 나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얻는 열매이다.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변덕스런 충동이 아니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진정한 회심이다. 그리하여 왜곡된 사람들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된다. 십일조와 헌금에 있어서 하나님께 도적질하는 것은 여호와의 분명한 명령을 어기는 것이므로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 가장 큰 손해를 입게 한다. 그 일은 하나님과 정직한 관계를 갖는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그들에게서 빼앗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사단이 만일 무관심의 얼음장 속에 영혼들을 가두어 둘 수 없으면 그들을 광신의 불 속으로 밀어 넣고자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님의 영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임하시면, 원수도 또한 일할 기회를 포착하여,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과 다른 자들의 독특하고 성화되지 못한 특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꼴 짓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운동이 이루어질 위험이 언제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고안에서 나온 사업, 하나님이 하도록 역사하지 않으신 사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곳 배틀크릭에서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광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점에서 가장 큰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만일 사단이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우치게 할 수만 있으면 그는 매우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적 각성이 없을 때보다 그는 더 큰 손해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사단이 침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을 만큼 신앙적 활동을 지금껏 전개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 마지막 때에는 그가 전에 없이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안다. 645 사단은 그의 때가 얼마 못 된 줄 알므로 모든 불의의 속임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오류와 그릇된 견해를 혼합시키고 사람들을 거짓된 위치에 놓고자 활동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적 각성 중 많은 경우에 신앙 고백에 관하여 잘못이 존재해 왔다. 신앙 고백이 영혼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많은 신앙 고백이 사람들이 듣는 데서 해서는 안 될 것임을 보았다. 왜냐하면 유한한 사람들의 한정된 판단으로 예기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악의 씨들이 듣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뿌려져서 그들이 유혹을 받게 되면 그 씨들은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하여 동일한 슬픈 경험은 반복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혹받는 자들은 그 죄들이 그렇게 매우 가증한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신앙고백을 한 자들이 오래된 그리스도인이었을지라도 바로 그런 죄들을 짓지 않았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은밀한 죄들을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은 생명의 향기가 되기 보다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임이 입증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무분별하고 도매금으로 하는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사업이 불신자들의 눈에 평판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천한 행동을 한 고백을 그들이 듣게 되면, 그분의 사업이 비난을 받게 된다. 만일 사단이 어떻게 해서라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인간 폐물들이라는 인상을 퍼뜨릴 수만 있다면, 그는 즐겨 그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못하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끊임없이 감동을 받지 않는 한 올바로 판단할 수 없는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깊숙한 구석을 열어 보이기 보다는 오직 예수님께만 은밀하고 타고난 마음의 부패를 고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 곧 심령의 모든 비밀까지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들으셔야 할 이야기를 인간의 귀에 쏟아 놓지 말라.

선택된 소수의 사람 앞에 제시되고 죄인이 가장 큰 겸손으로 자인해야 할 그런 성격의 고백들이 있다. 그 문제는, 의사의 표시가 미덕으로 해석되고 죄인이 자신의 악행을 자랑하는 그런 방법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646 교회 앞에 내놓기에 수치스러운 성격의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은 선택된 소수의 적절한 사람들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 존재하는 위선이 널리 알려짐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공공연한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품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지기 위하여 애써 온 자들에게 비난이 주어질 것이다. 이런 일들은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호간에 하도록 명령하신 고백이 있다. 만일 그대가 말이나 행동으로 형제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그대의 예배가 하늘에 가납되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와 화해해야 한다. 그대가 손해를 입힌 자들에게 고백하고, 변상을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만일 어떤 사람이 형제에 대하여 빈정대는 감정이나 분노나 적의를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실수한 자들을 취급하시는 그리스도의 방법에서 우리는 고백하는 이일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 그분은 시험을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 가서 오직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의 마음의 어두움과 하나님과의 분리 때문에 그를 도와주기가 불가능하면, 우리는 다른 두세 사람과 함께 다시 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악이 바로 잡히지 않을 그럴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교회에 알려야 한다. 전체 교회 앞에 그 문제를 제시하지 않고 그릇된 것이 바로잡히고 상처가 치료될 수 있으면 그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교회는 모든 불평과 고백의 토로를 저장해 두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한편으로, 죄를 숨기거나 죄와 타협하기 위하여 유혹에 굴복함으로 위선자가 되는 위험을 안다. 고백은 범한 잘못의 영향을 총망라한다는 것, 곧 하나님께 대한 의무나 이웃과 교회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은 채 남겨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그리하면 그대는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분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어떻게 누구에게 고백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의 깊고 경건한 연구가 필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심사 숙고하고 하나님의 빛을 구하면서 온갖 면에서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647 우리는 우리가 범한 죄를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지 손해가 될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흑암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가?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부인하는 일에 사용되어 온 공공연한 기만의 관계가 후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럽히고 우리에게 대한 신임을 말살시키기 위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와, 충동이나 인상을 따르는 것을 안전하게 해 주었을, 모든 능력의 근원되신 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계몽을 받지 않았다. 나는 경험을 통하여, 이것이 이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파멸이 되는 것을 보았다. 가장 거칠은 방종은 이 충동적인 일의 결과였다. 신앙의 타락이 따랐고, 불신과 회의는 신앙적 흥분의 극단에 비례해서 강해졌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업은 흥분이 그치자 마자 사라진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그분께서 인간 기구를 통해서 하시든지 다른 길을 통해서 하시든지 간에 능력과 영속성이 있다. 마음 속에서 은혜의 역사가 진전되고 완성되는 것은 흥분이나 지나친 감정의 표현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의 감화 아래 있는 마음들은 하나님의 뜻과 훌륭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는 주님의 백성들을 세상 앞에서 낮추는 일이 전혀 없고 그들을 높이게 될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저속하고 거칠게 만들지 않는다. 은혜의 백성들은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고, 언제나 예수님을 즐겨 배우고 피차간에 의논한다.

우리가 위대한 진리의 교사에게서 배운 것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자만의 냄새를 풍기지 않고 겸손과 온유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전하고, 순결하고 고상할 것이다. 648 그렇게 일하는 자들은 그들의 가정 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은혜와 진리가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그들의 동기를 고무시키고 순결케 하며, 그들의 외모적 행동을 지배할 것이다.

나는 아무도 그들이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얻고 있다거나 인간들에게 고백하는 일에 특별한 공로가 있다는 사상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그 믿음을 체험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육신적 성벽을 정복할 것이다. 진리는 하늘에서 유래된 증거를 그 자체 속에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은혜를 통하여 그것이 심령의 정결에 효력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가지고 그분께 와서 죄를 고백하기를 바라신다.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짐을 지는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그분의 성령은, 그 은혜로운 감화력을 가지고 성령을 채워 주실 것이며, 모든 생각은 굴복되어 그리스도를 순종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그대 편에 있는 어떤 오류 때문에 ______에서 그대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로 변할까 두렵다. 곧 그대가 불과 몇개월 내에 이 부흥의 사업 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나쁜 상태에 빠지게 될 그런 어떤 거짓 사상을 가질까 두렵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영혼을 경계하여 지키지 않으면 그대는 불신자들에게 나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변덕스런 형태의 봉사로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 일들이 극단으로 치우쳐서 하나님의 귀중한 사업이 오랫동안 비난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고자 노력하지 않는 데 있다. 이제 그대의 마음 속에 영생의 말씀이 뿌려졌음으로, 나는 그대가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고,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과 딸들처럼 행동하고, 극단자들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근심되게 할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649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그들은 실수할 수 없다고 생각함으로 그들에게 그대들의 희망을 걸지 말고,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라. 우리의 믿음에 욕이 돌아갈 말은 전혀 하지 말라. 그대들의 은밀한 죄는 그대들의 하나님께만 고백하라. 그대들의 사정을 처리하는 법을 완전히 아시는 분에게 그대들의 갈등을 알려 드려라. 만일 그대들이 이웃에게 잘못을 범했으면 그에게 그대들의 죄를 인정하고 변상을 함으로써 그 사실에 대한 결과를 보여 주라. 그리고 축복을 구하라. 그대들의 현실 그대로 하나님께 나와서 그대들의 모든 약점들을 고쳐 달라고 하라. 그대들의 사정을 은혜의 보좌 앞에 내놓으라. 그 일을 철저하게 하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와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신실하라. 만일 그대들이 진정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오면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자유에 대한 감미로운 간증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대들을 흑암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신 분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대들을 오해하거나 잘못 판단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들의 동료 인간들은 그대들을 죄에서 놓아 주거나 그대들을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줄 수 없다. 예수님은 그대들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이시다. 그분은 그대 자신들을 사랑하면서 그대들에게 그분 자신을 주셨다.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마음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히 4:15) 하셨다. 그분께서 용서하실 수 없을 만큼 큰 죄가 무엇이겠는가? 어떤 영혼이 그분께서 구원하실 수 없을 만큼 깊은 흑암과 죄에 눌려 있겠는가? 그분은 은혜로우시므로 우리에게 있는 공로를 보시지 않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의 반역을 고쳐 주시고 우리를 무조건 사랑해 주시는 그분 자신의 무한한 자비를 보신다. 그분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욘 4:2; 벧후 3:9).

흥분의 정점에 달하고자 애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러 나가고, 그들을 참을성 있게 가르치라. 지금 그대들은 각 사람이 고백해야 할 악의 무거운 짐이 있다는 것을 추측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것을 공격의 목표로 삼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모든 사람을, 그대들이 지나온 것과 동일한 곳으로 데려오고자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회개의 과업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맡을 마음이 없게 될 것이며, 그대들 자신의 마음은 마음 속 깊은 데서 이루어지는 정결케 하는 일로 부드러워지고 양순해지지 않을 것이다. 650 그대들은 그대들 스스로의 정신을 발휘함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영혼들을 위하여 일하고, 그분의 영의 광채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통하여 그대들에게서 반사되고, 동정과 친절과 인내와 사랑이 그대들의 생애에서 산 원칙이 된다면, 그대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에게 거칠고, 비난하는 정신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그들의 사상이 그대들의 표준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과 의의 평강의 열매들이 그대들 안에 나타날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2-26).

원수는 심지어 그대들의 신앙 활동에까지 침투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기심과 교만이 그대들의 사업에 혼합되지 않도록 모든 통로를 성실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자아가 그 정과 욕심과 함께 진정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버리면 그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좋은 업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대들의 업적이 퇴보되지 않도록 하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언행이 일치되고, 균형이 잘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라. 마음의 애정이 그리스도께 바쳐졌으면, 옛 것은 지나갔고, 모든 것은 새것이 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지성적이어야 한다. 위로부터 온 지혜가 우리를 강하게하고, 굳게 세우고, 안정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더 밝은 빛을 향하여 전진하고 향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으실지라도 우리에게는 당신의 영광을 여전히 나타내실 것이다.

1889년 1월 6일 미시칸 주 배틀크릭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실재(實在)임

651 사랑하는 Q 형제에게: 나는 그대가 오늘______에 있게 되어 기쁘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의무를 이행한다면 그대는 올바른 위치에서 올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 자아를 보지 말라. 비록 이것이 자연스런 일이 될지라도, 그것이 들어와서 사업을 망치게 하지 말라.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라. 사욕 없는 열성으로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 하나님이 우리 앞에 언제나 임재해 계심을 깨닫도록 하자. 모세를 생각하고, 어떤 인내와 감내가 그의 생애를 특징지었는지 생각해 보라.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히 11:27)다고 말한다. 바울이 모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묘사하는 특성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악을 저항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올바른 위치에서 인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언제나 주님을 자기 앞에 모시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를 도와주기 위하여 언제나 그의 우편에 계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깊이 느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실 시대를 전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줄곧 여행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있어서 실제적이었고, 언제나 그의 사상 속에 임재하고 계셨다. 오해를 받았을 때, 위험에 직면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욕을 참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보복 없이 참았다. 모세는 하나님을 그에게 필요한 분으로, 또한 그의 필요에 따라 그를 도와주실 분으로 믿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이 되셨다.

우리가 아는 믿음 중 많은 것은 단순히 이름뿐이다. 실제적이며, 신뢰하고, 인내하는 믿음은 드물다. 모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당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 되실 것이라는 약속을 깨달았다. 그는 보상을 중요시했다. 여기에 우리가 연구하기를 원하는 믿음에 관한 다른 점이 있다. 하나님은 믿음과 인내력을 가진 사람에게 상 주실 것이다. 만일 이 믿음이 생애의 경험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시험을 견딜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모세는 믿음을 활용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다. 652 그는 도움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했고, 그것을 믿음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돌보신다는 믿음을 그의 경험이 되게 했다. 그는 하나님이 특히 그의 생애를 지배하셨다고 믿었다. 그는 생애의 모든 세밀한 면에서 하나님을 보고 인정했으며, 그가 동기를 헤아려보고 마음을 시험하시는,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의 시야에 들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을 보았으며, 온갖 형태의 유혹의 더럽힘을 받지 않고 통과할 힘을 얻기 위하여 그분을 신뢰하였다. 그는 특별한 과업이 그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알고, 할 수 있는 대로 그 사업이 완전히 성공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완고해서 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가 사람이 처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상황들을 통과하기에 충분했다.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분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 앞에 끊임없이 보였다. 그는 그분의 얼굴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구주로 보았고, 구주의 공로가 그에게 입혀질 것을 믿었다. 이 믿음은 모세에게 있어서 하나의 추측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재였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며, 시험을 견딜 수 있는 믿음이다. 아, 우리가 우리의 예수님을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자주 유혹에 굴복하는가! 우리가 방종 때문에 죄를 지음으로 우리의 믿음은 줄기차지 못하며,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히 11:27) 참을 수는 없다.

나의 형제여, 그리스도를 매일, 매 시간의 친구로 삼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믿음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명상하라. 그분의 품성을 보라. 그분에 관하여 이야기하라. 그대가 자아를 적게 높이면 높일수록 그대는 그대가 예수님 안에서 높여야 할 것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대가 해야 할 사업을 갖고 계신다. 주님을 언제나 그대 앞에 모셔라. Q 부부여, 그리스도의 품성을 더욱 분명히 보기 위하여 높이, 더 높이 올라가라. 모세가,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출 33:19)고 선언하셨다. 653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다.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교실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취급하는 방법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대들이 믿기만하면 주님께서 얼마나 큰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그분께서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을 그대의 친구로서 교실 안으로 모시고 가라. 그대가 말할 때 그대의 입술에서 친절의 법이 나올 수 있도록 그분을 그대 앞에 계시게 하라. 이 문제에 있어서 다른 어떤 사람이 그대를 꼴 짓도록 허락하지 말라. 그대들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그대들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이들이 개성을 갖게 해 주라. 언제나 그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결코 그들을 몰지는 말라.

나는 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것들을 이 곳 스위스에서 본다. 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놀고 있는 동안 자주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즐겁게 노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어떤 무질서나 잘못을 제지해 준다. 때때로 그들은 선생님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함께 긴 산보를 한다.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한다. 나는 어린이들이 유혹에 굴복할 기회가 적어진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은 어린이들의 놀이에 관하여 그들을 통제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아이들이 언제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어린이로서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느껴야 한다는 사상을 어떤 면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교사들은 어린이들의 유희에 참여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고, 그들이 즐겁게 지내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들은 자신(自信)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랑으로 지배를 받아야지, 엄격하고 딱딱한 가혹함으로 그들의 식사와 유희가 통제받게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여기서 자기 자신의 자녀들을 결코 가져 본 적이 없는 자들은 다양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정신을 현명하게 다룰 최량의 자격을 일반적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바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항의도 있을 수 없는 한 법칙을 만들기 십상이다. 교사들은 그들로 한때는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654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맞추어야 하고, 그들 스스로를 그들과 일치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린이들은 교훈과 모본으로 가르침을 받고 다 같이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정신을 받아들여서 그대의 마음을 꼴 짓고, 그대의 품성을 이루고, 그대의 영혼을 숭고하고 고상하게 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말씀하셨다. 이 무쇠의 규칙들을 버리고, 이 죽마(竹馬)에서 내려와 어린이처럼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아, 엄격한 정신이 사랑의 정신으로 바뀌고, 행복과 햇빛이 낙망과 슬픔의 자리를 대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증언들의 특성과 영향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세상에 최후의 경고를 하는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현대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로써 세 천사의 기별의 시작과 함께 그 사업과 연결지으신 증언들의 특성과 영향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음의 글은 내가 과거 40년 동안 기록한 것들에서 발췌한 것이며, 이 특별한 사업에서의 나의 초기의 경험을 말하는 것들이다. 또한 그것은 증언들의 특성과 중요성, 그 증언들이 어떻게 주어졌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존중되어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나타내고 있다 “내게 첫 이상(異像)이 주어진 것은 1844년의 시기가 지나간 얼마 후의 일이었다. 나는 마음이 서로 맞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귀중한 자매를 방문중이었다. 우리 다섯 여자들은 가족 제단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전에 결코 느껴보지 못한 정도로 내게 임하였다. 655 나는 빛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고, 땅에서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때에 나는 재림을 믿는 자들의 경험과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실한 자들에게 주어질 상급을 보았다.

“첫째 이상에 이어서 곧 받게 된 두 번째 이상에서, 나는 내가 통과해야할 시련들과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해 주신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라는 것을 보았다. 나의 활동은 큰 반대를 당하고, 나의 마음은 고민으로 찢어지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일을 통하여 나를 지탱해 주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사실도 내게 제시되었다. 이 이상의 내용은 나를 심히 근심시켰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나의 의무임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나를 엄습한 하나의 큰 공포는, 내가 만일 의무의 부름에 순종하여 나가서 내 자신이 백성들을 위한 이상과 계시를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서 받을만큼 은총받은 자로 주장한다면 나는 죄악적인 교만에 사로잡히고 내가 지켜야 할 정당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스스로 초래하여 내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지금 서술한 바와 같은 여러 경우들을 알고 있었음으로 나의 마음은 견디기 어려운 큰 시련으로 위축되었다.

내가 만일 나가서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바를 말해야 한다면 나는 부당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간구했다. 천사는 말했다. ‘그대의 기도는 상달되어 응답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두려워하는 이 악이 그대를 위협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펼쳐질 것이다. 고통을 줌으로써 그분은 그대를 그분께로 이끄시고 그대의 겸비를 유지하게 해 주실 것이다. 기별을 성실하게 전하라. 끝까지 견디라. 그리하면 그대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생명수를 마시게 할 것이다.”* 이 때에 첫째 기별을 믿어 왔노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 광신이 있었다. 교리와 행동 속에 심한 오류들이 들어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 모든 사람을 정죄하고자 했다. 656 하나님께서는 이 오류들을 내게 보여 주시고 당신의 잘못된 자녀들에게 나를 보내어 그들에게 알려 주게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 의무를 수행하는 중에 심한 반대와 비난을 받았다.

“잘못된 자들에 관하여 내게 보여진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십자가였다.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을 보는 것은 나를 크게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므로 불가불 기별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 나는 그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할 수 있는대로 개인에 대하여 호감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그러고는 고독해져서 심령의 고민을 안고 울곤 했다. 나는 오직 자신의 영혼만을 돌봐야 할 자들을 바라보고 만일 내가 그들의 상태에 있다면 불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분명하고 예리한 증언들을 말하기란 어려웠다. 나는 결과를 염려스럽게 관찰했고, 만일 책망받은 사람들이 그 책망에 반대하여 일어나거나, 후에 그 진리를 반대하게 되면 이런 질문들이 나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곤 했다. 나는 기별을 당연히 전해야 할 그대로 전했는가? 거기에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어떤 길이 없었던가? 그처럼 고통이 나의 영혼을 눌렀기 때문에 나는 가끔 죽음이 반가운 사자(使者)가 되고 무덤이 평안한 안식처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상 중에 예수님 앞에 가기 전까지는 그런 태도의 위험과 죄를 깨닫지 못했다. 그분은 찡그린 얼굴로 나를 보시고 내게서 얼굴을 돌리셨다. 내가 그 때에 느낀 고통과 고민은 묘사할 수가 없다. 나는 그분 앞에서 얼굴을 떨어뜨렸으나 한마디도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 나는 그 무섭게 불쾌감을 띤 얼굴에서 가리워지고 숨겨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나는 잃어버림을 당한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계 6:16)고 부르짖을 때에 그들의 마음이 어떠할 것인지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곧 한 천사가 나에게 일어나도록 명령했다.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거의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앞에는 머리카락과 의복이 헝크러지고 헤어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절망과 공포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로 접근해 와서 그들의 옷을 내 옷에 문질렀다. 657 내가 옷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피로써 나의 옷이 더러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나는 나와 동행하는 천사의 발 앞에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나는 한마디의 변명도 할 수 없었고, 그 거룩한 장소에서 떠나가고자 열망했다. 천사는 내게 일어서라고 명령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지금 그대의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만일 그대가 주님께서 그대에게 보여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을 등한히 할 때 그대의 상황이 어떻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 주기 위하여 그대 앞에 지나갔다.”* 내 앞에 펼쳐진 이 엄숙한 경고를 가지고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책망과 교훈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위하여 나갔다.

개인적 증언들

여러 개인들에 대하여 내가 받은 기별들은 흔히 그들을 위하여 쓰여졌으며, 많은 경우에는 그들의 절실한 요구에 따라 이 일이 이루어졌다. 나의 사업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이 일은 나의 활동 중 중요하고 힘겨운 부분이 되었다. 증언 15호가 출판되기 전에 내가 권면하고 책망한 사람들은 기록된 증언들에 대한 많은 요구를 내게 했다. 그러나 나는 지나친 활동 때문에 크게 지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 일을 꺼려 왔고, 특별히 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매우 부족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주어진 경고가 그들에게 어떤 결정적 변화를 일으킬 희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러했다. 이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

“한 사람이 흰 천으로 된 직물을 내게 가지고 와서, 각종 크기와 특성과 생활 환경에 속한 사람들을 위한 옷이 되도록 끊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그것들을 끊어서 요구가 있을 때 옷을 지을 수 있도록 완전히 준비하여 걸어 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옷을 재단하도록 요구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입을 가치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내가 끊어야 할 마지막 옷감이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한 가지를 끝내면 즉시 착수해야 할 다른 것들이 내게 있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엄청난 양의 일을 보고 용기가 꺾여서, 내가 20년 이상 다른 사람들의 의복을 재단하는 일에 종사해 왔지만 나의 노력은 인정을 받지 못했고 나의 일이 성과를 거둔 것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658 나는 내게 천을 가져다 준 사람에게, 특히 한 여자 즉 그 여자를 위하여 옷을 재단하라고 여자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나는 그 여자가 그 옷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리라는 것과 그에게 그 옷을 마련해 주는 것은 시간과 물질의 손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가난하고, 지능이 낮고, 습관이 단정치 못했으므로 그 옷을 곧 망가뜨릴 것이었다.

그 사람은 대답했다. ‘옷을 재단하라. 그것이 그대의 의무이다. 손실은 그대의 것이 아니고 나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신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사업을 계획하신다. 그대는 이것이 잘될른지, 저것이 잘될른지 알지 못한다.’ 그 때 나는 오랫동안 가위를 사용했기 때문에 무디어진 손을 멈추고 이런 종류의 일을 계속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되풀이 해서 말했다.

‘옷감을 자르라. 그대가 휴식할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매우 피로하다는 느낌으로 나는 일에 착수하고자 일어났다. 내 앞에는 새롭고, 잘 갈아진 가위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시 피곤한 느낌과 좌절감은 내게서 떠나갔다. 그 가위는 내가 거의 힘을 쓰지 않아도 잘리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쉽게 옷감을 차례로 잘랐다”* 하나님의 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애의 평범한 것들에서 생기는 많은 꿈들이 있다. “거짓 이상들과 마찬가지로 거짓 꿈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사단의 정신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꿈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상으로 분류되고, 이상들처럼 진정으로 예언의 신의 열매이다. 그 꿈을 꾼 사람들과, 그 꿈을 꾸게 된 환경들을 침작해 보면 그런 꿈들은 그 진실성에 대한 그 자체의 증거들을 내포하고 있다.”* 개인의 상황에 대한 증언 속에 주어진 경고와 교훈이 특별히 이런 방법으로 지적되지 않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호소력을 가지고 적용되기 때문에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개인에 대한 증언들을 출판하는 것이 나의 의무인 것처럼 보였다. 659 증언 15호에서 이렇게 할 필요성에 관하여 이야기 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증언들을 알려 주는 것 외에 일반적인 위험과 오류들에 관한 나의 견해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를 제시해 주는 더 좋은 길이 없음을 안다. 아마도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제시해 주는 더 직접적이요 강력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1868년 6월 12일에 내가 받은 이상에서 나는 개인에 관한 증언들을 출판하는 나의 방침이 완전히 옳다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 개인의 상황들을 택해서 그들의 잘못을 자세하게 지적하실 때, 이상에 등장하지 않은 다른 사람은 흔히 그들이 옳거나 거의 그렇다고 당연시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특별한 잘못으로 책망을 받으면, 형제와 자매들은, 그들 역시 어디에서 실패했으며 어디에서 동일한 죄를 범했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의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은 겸손한 고백의 정신을 소유해야 한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생각이 그들을 옳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그분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혼들을 시험하시고 입증하신다. 그분은 한 사람의 잘못을 책망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을 바로잡고자 계획하신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한 책망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지적하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그들의 잘못을 간과하신다고 자만해진다면,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영혼을 속이고 어둠 속에 갇히게 되고 그들 자신의 마음의 상상을 따르도록 그들 나름의 길에 버려둔 바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들을 거짓되게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참 상태에 관하여 큰 기만에 빠져 있다. 그분은 당신의 목적 성취에 가장 이바지하고, 당신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입증해 준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경고를 받고 오류들을 두려워하며 피하게 하고자 어떤 사람들의 잘못을 밝히신다. 자기 반성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시는 동일한 일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고, 그분께 범죄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들은 그들이 고백하고 겸비한 회개로 주님께 돌아오기 전에 그들의 죄가 지적당하도록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660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빛에 따라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 것들을 버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만일 옳지 못한 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책망을 받은 바 바로 그 죄들을 자신들이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들이 특별히 지명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헌신하지 못한 동일한 길을 계속한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고 사단이 마음대로 사로잡도록 허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지혜에 의하여 모든 사람의 죄와 잘못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 사실 죄를 범하는 모든 사람은, 비록 그들의 이름이 특별한 증언에 열거되지 않을지라도 이 개인의 증언들에서 언급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이 특별히 불려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 자신의 죄를 지나쳐 버리고 가리워 버린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영적 생애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점점 더 어두워져서 마침내 하늘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약 20년 전에 내가 본 이상에서, “나는 말하고 저술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고 동시에 어떤 개인들의 위험과 잘못과 죄들을 지적하여 모든 사람이 경고와 책망과 권고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일반 원칙들을 제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들 자신의 마음과 생애를 철저히 살펴서 다른 사람들이 책망받은 동일한 잘못을 그들이 저지르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경고가 그들 자신의 상황에 해당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것을 보았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그 권고와 책망들이 특별히 그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느껴야 하고 마치 그것들이 그들에게 지적된 것처럼 실제적으로 자신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의무를 알고자 열망하노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의 진실성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분은 의무를 명백히 밝히실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계발시킬 충분한 기회를 주실 것이다.”*

“증언들”의 목적

661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은 그분께서 당신의 영의 증언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뜻과 그분의 백성들이 따르기를 바라시는 길에 관하여 지금보다 더 열렬히 그들을 가르치신 시대는 결코 없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필요성과 오류들을 내게 보여 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셨다. 비록 괴로운 일이었지만 나는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잘못과 그들을 치료하는 길을 성실하게 제시했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아름다운 자비의 약속을 하심과 동시에, 경고와 심판을 선고하셨다. … 회개한 죄인들은 그들의 범죄에 대하여 깨우침을 받고 그들의 위험에 관하여 경고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낙망할 이유가 없다. 그들을 위한 바로 이런 노력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어느 정도로 열망하시는지 보여 준다.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따르고 그분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실수한 백성들이 거룩한 진리의 빛에 비추어서 그들이 범한 죄의 가증함을 남김없이 볼 수 있도록 죄들을 그들 앞에 제시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를 영원히 버리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하고 그분의 교훈을 받아들일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의 발 앞에 놓인 좁은 길과, 흑암과 실망을 뚫고 그들을 인도해 주는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 중 실수한 자들에게 경고와 책망이 주어지는 것은 그들의 생애가 명목적인 다른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생애보다 더욱 비난받을만 하기 때문에서도 아니고, 그들의 모본과 행동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는 재림신자들의 모본과 행동보다 더 나쁘기 때문에서도 아니다. 그들이 큰 빛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그들의 신앙 고백에 의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택한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662 그들은 하나님의 정부의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나타낸다.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죄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키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반대하는 원수들에게 그분의 사업과 그분의 백성들, 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신 분을 비난할 기회를 줌으로 그분의 이름을 더럽힌다. … 주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을 책망하시고 꾸짖으신다. 그분은 그들이 모든 죄와 악에서 분리되어 그분을 경외하는 중에 완전히 거룩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들의 불의를 공개하신다. … 하나님은, 그들이 세련되고, 성화되고, 고상해져서 마침내 그분의 보좌에 이르기까지 향상되게 하시고자 그들을 책망하시고, 꾸짖으시고, 바로잡으신다.”* “나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진 증언들을 살펴보고, 그처럼 많은 경고를 하시고, 그들의 위험을 지적해 주시고, 그들이 간직하기를 바라시는 고상한 위치를 그들 앞에 제시해 주시는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백성들을 위한 보호에 놀라는 바이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자신들을 지키고 세상에서 분리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축복이 그들 위에 머물게 하시고 당신의 빛이 그들의 주위를 비추게 하실 것이다. 선을 위한 그들의 영향은 사업의 모든 분야에서와 복음 사업의 모든 부분에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지 않고, 그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업의 고상한 성격에 관하여 계속해서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의 영향력과 모본은 무서운 저주로 판명될 것이다. 그들은 해를 끼치고 또한 해 만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귀중한 영혼들의 피가 그들의 옷에서 발견될 것이다.

경고의 증언들은 되풀이되어 왔다. 나는 누가 그 증언들에 유의했는지 묻는 바이다. 663 누가 그들의 죄와 우상숭배를 회개하는 일에 열렬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높으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열렬히 달려 갔는가? …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어떤 사람들에게 주셔서 당신의 교회를 각성시키고 바로잡기 위한 의의 도구로 그들을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 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생애를 특징지워야 할 것으로 내게 보여 주신 단순함에서 해마다 더 크게 멀어져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거의 절망하였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는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헌신도 적어져 왔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어떤 점에서 증언들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따라 살고자 노력했는가? 어떤 점에서 그들은 받은 바 경고를 존중했는가? 어떤 점에서 그들은 받은 교훈에 유의했는가?” *

성경 대신으로 삼지 말 것

증언들이 성경을 대신하기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1876년에 출판된 증언에서 뽑은 다음의 발췌문이 알려 줄 것이다.

“J 형제는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주신 빛이 하나님의 말씀에 추가된 것이라고 보여 주고자 노력함으로 정신을 혼란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 그는 그 문제를 그릇되게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고 그들에게 그 말씀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하는 일을 합당하게 보셨다.”*“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흐려진 마음도 계몽시키기에 충분하므로 그 말씀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조금이라도 가진 자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있노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은 가장 분명한 그 말씀의 교훈과 정반대로 살고 있음이 판명된다. 그러므로 남녀들에게 변명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은 분명하고 확실한 증언들을 주셔서 그들이 따르기를 등한히 해 온 말씀으로 되돌아오게 하신다.”*“하나님의 말씀에는 바른 생활 습관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일반 원칙들이 많이 있다. 664 그러므로 증언들은, 일반적이거나 개인적이거나 간에, 그들의 주의를 더욱 특별히 이 원칙들에 유의하게 하고자 의도해 왔다.”* 1871년 4월 30일에 이 문제가 꿈속에서 나에게 제시되었다. 나는 큰 무리가 모인 어떤 중요한 집회에 참석한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열렬히 기도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무거운 짐에 눌린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특별한 빛을 받기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고 있었다. 정신적 번민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사람들도 몇 되었다. 그들의 정서는 긴장되었고,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도움과 빛을 얻고자 크게 부르짖고 있었다. 우리의 가장 저명한 형제들이 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속에 함께 있었다. A 형제는, 깊은 번민 속에 빠진 듯이 마루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아내는 무관심한 조소자들의 무리 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이와 같이 스스로를 겸비하게 하고 있는 자들을 그가 조소한 것을 모든 사람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신 꿈을 꾸고, 부르짖음과 기도 속에서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다. 나는 그대들이 개인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대들에게 말하도록 강요당한 것을 느낀다. 그대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서 그대들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하고자 바라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마땅히 해야 한다고 깨닫고 있는 사업을 스스로 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에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이 하도록 맡겨 주신 바로 그 사업을 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해야 할 사업을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왔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을 따랐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 더 많은 빛을 비춰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받은 바 권고와 경고와 책망은 등한히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등한히 하고 멸시해 버릴 더 큰 빛과 축복을 그대들에게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으시다. 그분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성경을 취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여러 권의 교회증언으로 그것을 둘러쌌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경우들이 여기에서 취급되었다고 말했다. 665 그들이 회피하는 죄들이 지적되어 있다. 그들이 바라는 권면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것들과 유사한 다른 상황들에 대한 권면도 주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경계에 경계를, 교훈에 교훈을 더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증언들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그대들 가운데 많지 않다. 그대들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한다. 만일 그대들이 성경의 표준에 도달하고 그리스도인 완성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을 것 같으면, 그대들에게는 증언들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 단순하고 직접적인 증언들을 통하여 그대들이 터득하도록 노력하시고, 그대들이 순종하기를 등한히 해 온 영감의 말씀에 그대들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하시고, 그대들의 생애를 그 순결하고 고상한 교훈과 일치되게 하도록 권유하신 것은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감의 책에 정통하기를 등한히 해 왔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주신 바 증언들을 통하여 그대들을 경고하고, 책망하고, 권고하시며, 또한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그대들의 마음에 새겨 주고자 하신다. 기록된 증언들은 새 빛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미 계시된 영감의 진리를 마음에 생생하게 새겨 주기 위해서 주어진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하게 상술되어 있지만, 받은 바 빛에 순종하는 자는 그대들 가운데 별로 없다. 추가된 빛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어진 위대한 진리들과 증언들을 통하여 단순하게 하셨고 또한 당신의 택하신 방법을 통하여 그 진리로 마음을 각성시키고 감명시키기 위하여 그것들을 백성들 앞에 제시하셔서 아무도 변명의 여지를 갖지 못하게 하신다.

교만과 이기주의와 이기심과 증오와 질투는 지각력(知覺力)을 흐리게 했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하는 진리는 마음을 이끌고 지배하는 그 능력을 상실했다. 성경의 지식과 마음의 순결과 생애의 거룩함을 얻기 위하여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경건의 기본 원칙들이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증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높이고 마음들을 그리로 이끌고 아름다운 진리의 단순함을 모든 사람에게 새겨 주기 위해서 주어졌다.

666 나는 다시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책과 소책자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책망과 권고와 경고와 격려로써 그대들을 둘러싸셨다. 여기서 그대들은 더 많은 빛을 얻기 위하여 심령의 고통을 안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있다. 나는 그대들이 이미 받은 빛을 실제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한 증언들을 통한 다른 빛의 줄기가 그대들의 앞길에 비취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대들에게 말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빛으로 그대들의 주위를 둘러싸셨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 빛을 고맙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짓밟았다. 어떤 사람들이 그 빛을 멸시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등한히 하거나 다만 무관심하게 따랐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즐겨 주신 빛에 순종하고자 마음을 작정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증언들을 통하여 특별한 경고를 받은 어떤 사람들은 2, 3주일 안에 받은 바 책망을 잊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증언들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증언들이 주의 깊이 유의해야 할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것들이 어리석은 이야기와 같았다. 만일 그들이 받은 바 빛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 같으면 그들은 괴롭고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손실과 시련을 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비난 받을 사람은 바로 그들 뿐이다. 그들은 지기에 고통스러운 멍에를 그들 자신의 목에 올려 놓았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지워 주신 멍에가 아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이 그들을 위하여 발휘되었지만, 그들의 이기적이요 악한 불신의 마음들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지혜를 따라 달려가서 마침내 시련에 압도당하고, 어려움으로 혼란해지고, 사단에게 사로잡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주신 빛의 광선들을 모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빛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예식과 의식들을 주셔서, 그것들을 수행하는 중에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게 하셨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창조주께 순종하고 그분을 존중해야 할 책임을 깨닫기 위하여 언제나 각성되어 있을 필요가 있었다. 667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지키기를 좋아했을 것 같으면, 수많은 예식과 의식들은 요구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특별한 보배가 되었노라고 주장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그대로 그분의 요구에 순종했을 것 같으면, 그들의 의무를 깨우쳐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등한히 하는 그들의 죄악과 무서운 위험을 알려 주기 위한 특별한 증언들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빛을 버리고, 등한히 하고, 멸시했기 때문에 양심은 무디어졌다.

어떤 분이 내 곁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그대를 일으키시사 다른 사람에게 주시지 않은 말씀을 그대에게 주셔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사람들의 마음에 접촉하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대의 증언들을 마련하셨다. 그대는 비난과 조소와 책망과 질책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가 되기 위하여 그대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되, 마치 포도나무처럼 그대의 덩굴손으로 그분을 감아야 한다. 그분은 그대를, 사람들에게 그분의 빛을 전하는 매체로 삼으실 것이다. 그분께서 그대를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에게 비취도록 허락하신 빛이 그대의 환경 때문에 희미해지거나 가리워지지 않도록 보호를 받기 위하여 그대는 매일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야 한다. 마지막 날의 위험한 때에 이 빛이 매우 필요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것이 미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사단의 특별한 목적이다.

그대의 성공은 그대의 단순함에 있다. 그대가 이것을 떠나서 어떤 사람의 마음에 맞추기 위하여 그대의 증언을 꾸미면 즉시 그대의 능력은 사라진다. 이 시대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속이는 것이며 진실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는 순간적으로 기쁘게 하고 매력을 주고 자아를 높이기 위하여 주어진 증언들이 많다. 그러나 그대의 증언은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생애의 세밀한 데까지 내려가서 연약한 믿음이 시들어버리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신자들에게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비추어야 할 필요를 마음에 새겨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증언을 주셔서 물러간 자와 죄인에게 그의 참 상태와 죄의 생애를 계속함으로써 그가 당하고 있는 막대한 손실을 제시해 주게 하셨다. 668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지금 살아 있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와 같지 않게 그대의 눈앞에 펼쳐 놓으시므로 그대에게 새겨 주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주신 빛에 따라서 그대에게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

“증언들”의 오용

증언들을 믿는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적당하게 강조함으로써 실수를 범해 왔다. 증언 1권 8호에는 이 점에 관한 내용을 알려 주는 증언이 있다. “________에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이상들을 의심한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반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에 관하여 결정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하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는데,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거짓 이상들과 광신적 역사,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비참한 결과는 ________의 하나님의 사업에 영향을 끼쳤음으로 이상의 이름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방심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심사숙고되고 지혜가 활용되어야 한다. 이상(異像)들을 본 개인을 결코 본적이 없는 자들과 이상들의 영향에 관하여 개인적인 지식을 가진 적이 없는 자들 때문에 시련이나 고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런 사람들의 그리스도인적 태도가 올바르다면 그들은 교회의 혜택과 특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 .”

“내가 본 어떤 사람들은 그 열매로 나무를 판단하여 출판된 이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도마처럼 의심하고 있다. 그들은 출판된 증언들을 믿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하여 증거를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증거를 보고 가져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등한히 여겨져서는 안 되며, 그들이 마침내 그들의 입장를 발견하여 수락하든지 반대하는지의 입장을 확고히 하기까지 오래 참음과 형제 우애가 그들에게 발휘되어야 한다. 669 만일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들을 대항하여 싸운다면, 만일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반대할 만큼 그들의 반대 의견을 끌고 나간다면, … 교회는 그들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형제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오랫동안의 경험을 가져왔고, 여러 해 동안 나와 나의 사업에 친숙해 왔다. 그들은 증언들의 진실성을 입증했고, 그것들을 믿는 그들의 믿음을 주장했다. 그들은 그 증언들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 위에 임하시는 강력한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느꼈다. 나는 만일 그런 사람들이 증언들을 통하여 책망을 받으면 증언들을 대항하여 일어나서 그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은밀하게 활동할 것을 보았고, 그들을 성실하게 다루어야 할 것도 보았다. 그들의 행동은 경험이 부족한 자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출판된 증언들 중 최초의 호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빛을 현명하지 못하게 사용하는데 대한 경고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한 길을 취했다고 말하였다. 그들이 불신자들에게 그들의 신앙과 그들이 질문받은 대답을 해 줄 때 그들은 증거를 제시하기 위하여 성경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나의 글에서 읽어 주었다. 이런 태도는 모순되고 불신자들에게 진리에 대하여 편견을 일으키는 일임이 나에게 보여졌다. 증언들은, 그 정신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그런 경우에는 증언들이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

증언들을 사용하는 데 관한 다른 경고들이 때때로 주어졌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전도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매우 뒤져 있다. 그들은 제시된 증언을 믿노라고 공언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증언들을, 그것들에 관하여 경험이 없는 자들을 위한 철칙으로 삼음으로 손해를 주면서도 그들은 그것들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완전히 무시해 버린 증언들을 반복해서 받았다. 그런 사람들의 태도는 일관되지 않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죄와 실수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을 이용해 온 것을 보았다. 670 그들은 이상에서 보여진 것의 극단적인 의미를 취하여,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교회를 낙심시키고 낙망에 빠지게 하는 경향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강조하였다.”* 원수는 영혼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착할 것이다. “증언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들을 위하여 주어졌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관련된 그들의 몫을 감당하기 위하여 훌륭하게 출발한다. 그러나 사단이 유혹물을 가지고 그들을 따라다니므로 마침내 그들은 정복당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바라볼 때, 사단은 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증언들이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한 몫을 담당하기에 부적합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게 된다. “어떤 환경 아래 있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다른 환경에 처했을 때의 그들에 관하여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도덕적 능력에 있어서 약하고 극도로 이기적이고, 너무도 자부심이 강하고, 너무도 쉽게 헛된 자만심에 우쭐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관계를 이루어 일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버려져서 소경처럼 움직이고, 너무도 연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과 어떤 관련을 가질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가 하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계획한 일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업을 헐뜯고 증언들을 비난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들을 유혹했던 처음부터 가졌던 그의 목적이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특별히 느낄 수 없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을 것 같으면 사단은 그들을 그처럼 맹렬하게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한 자신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그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열매로 판단될 것임

671 증언들은 그들의 열매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들의 가르침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들의 영향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 이상들의 열매를 잘 알고 싶은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17년간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세력과 사단의 사업에서 그를 도와 온 인간 기구들의 영향력을 대항하여 그것들이 존속하고 강화되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가르치시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든지, 그렇게 하지 않으시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이 사업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든지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사단과 협력하지 않으신다. 나의 사업은 … 하나님의 인을 지니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인을 지니고 있다. 이 사업에는 양편에 다 관련된 일이 없다. 증언들은 하나님의 영에서 나온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의 신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내 앞에 지나갔다.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을 보았는데, 여러 해 후에 그들을 보았을 나는 그들을 알았다. 나의 마음에 이미 제시되었던 주제들이 생생한 느낌으로 떠오르므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밤중에 편지를 썼는데, 그것들이 대륙을 횡단해 가서 위기의 때에 당도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큰 재난을 면하게 했다. 이것이 여러 해 동안의 나의 사업이었다. 한 힘이, 내가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잘못을 책망하고 꾸짖도록 나를 강요했다. 과거 36년간의 이 사업이 위에서 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래서 온 것인가?” *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672 여기에 시금석이 있으므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용해 볼 수 있다. 진정으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자들은 믿음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발견할 것이다.

“증언들”을 의심함

“증언들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이 사단의 계획이다.” “사단은 공격하는 방법을 안다. 그는 사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들에 대하여 시기와 불만을 일으키기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한다. 다음에는 선물들이 의심을 받고, 물론 그 다음에는 그것들이 별반 중하게 여겨지지 않고, 그리고 이상을 통하여 주어진 교훈이 무시된다.” “그 후에는 우리의 믿음의 중요한 점들, 우리의 입장의 기둥들에 관한 회의가 따르고, 그 다음에는 성경에 대하여 의심하고, 그리고 멸망을 향하여 내려간다. 사단은 한때, 믿음으로 받아들인 증언들이 의심을 받고 버림을 받으면 기만당한 자들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리하여 그는 치료받을 수 없고 멸망으로 끝나는 공공연한 반역 속으로 그들을 끌어 넣을 때까지 그의 노력을 배가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관하여 의심과 불신을 하고, 불신과 가혹한 질투의 감정을 품음으로써, 그들은 완전한 기만을 위하여 스스로를 준비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격심한 감정으로 일어난다.”* 1880년에 처음으로 출판된 어떤 젊은이들에 대한 한 증언은 이 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에 관한 널리 퍼진 회의주의가 계속적으로 증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은 증언들의 정신과 능력과 힘을 모르기 때문에 의문과 의심들을 제거해 버리는 대신에 그것들을 조장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영성이 없기 때문에 증언들의 가치와 그것들의 참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673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주신 증언들에 관하여 경박하게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의견을 내세우고 이것저것을 비평했다. 그럴 때는 그들이 손으로 입술을 가리우고 티끌 위에 엎드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증언들의 정신을 깨달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영을 너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책망에 결코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몇 사람들이 _________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택한 길을 따랐다. 그들은 정의를 옹호하고 잘못을 책망하기 위하여 서 있는 자들을 반대하는 영향을 언제나 다소간 발휘해 왔다. 이 사람들이 이 곳에 온 사람들과 그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나쁘다. 그들은 이 새로 오는 자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에 관한 의문과 의심으로 채워 준다. 그들은 증언들을 잘못 해석한다. 사람들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교회의 소리를 듣도록 지도하는 대신에 그들은 그 사람들을 독존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판단에 유의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이런 부류의 영향은 은밀하게 작용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끼치고 있는 해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헌신하지 않고 교만하고 반역적이 되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유독한 분위기가 헌신하지 못한 이 사람들로부터 스며들었다. 영혼들의 피는 그런 사람들의 옷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결산의 날에,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눅 13:27)고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들이 놀라겠지만, 그들이 공언해 온 그리스도인 생애는 기만이요 사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화잇 자매의 증언들을 믿을 수 없다는 그들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것은 헌신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다. 책망의 증언들은 그들의 허영과 교만을 저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자 하면 그들은 유행과 교만에 있어서 거의 어떤 극에까지도 이르고자 했다. 674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시험하고 그들의 참 성격을 계발시킬 기회를 주실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이상들이 더욱 빈번히 주어지지 않은 이유는 교회에서 그것들을 식별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보았다. 교회가 영성과 믿음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에 책망과 경고가 그들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것들을 믿노라고 공언해 온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유의하지 않았다.”* “만일 그대들이 증언들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릴 것 같으면 그대들은 성경의 진리에서 떠나갈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의심하는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 것을 염려하여 그대들의 영혼을 위하여 고통하는 중에 그대들을 경고하는 바이다. 몇 사람이나 경고에 유의할 것인가? 그대들이 지금 증언들을 믿고 있지만, 그대들의 길을 반대하고 그대의 잘못을 시정해 주는 그런 증언이 주어진다면 그대들은 아무런 마음의 부담 없이 어떤 부분이나 전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고자 하겠는가? 그대들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 바로 가장 필요한 그 부분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악한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제한에 있어서 분명하고 철저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이기적 탐욕과 반대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 그분의 영의 증언들은 그대들의 주의를 성경으로 돌이키게 하고, 그대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지적하고, 그대들의 죄를 책망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증언들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들의 육신적인 안락을 좋아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은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일 그대들이 그 가르침에 순종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연유된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불신이 증언들의 진실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면 굳게 설 것이다.”* “나는 경고와 격려와 책망에 대한 증언들을 믿지 않는 불신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빛을 가리워 버리고 있음을 보았다. 불신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참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책망하는 하나님의 영의 증언이 불필요하거나 그들에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675 그러한 사람들은 영적 지식에 대한 그들의 결핍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식별력이 가장 크게 필요하다.”* “진리에서 뒤로 물러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증언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 하나의 이유로 든다. … 이제 주어지는 질문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우상을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그릇된 방종의 길을 계속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것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증언들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증언들이 그들의 죄를 책망한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거절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증언들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죄와 방종은 끊어지고, 개혁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과 일치되게 즉시 시작된다. 그런가 하면 죄악적 방종을 품게 되면, 증언들은 거절 당하고, 진실하지 않는 많은 핑계들이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된다. 그러나 참된 이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해로운 습관을 버리기 위한 도덕적 용기, 하나님의 영으로 강화되고 지배된 의지가 결핍되기 때문이다.”* “사단은 의문을 제기하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분명한 증언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고안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불신하고 의심하고 모호한 말을 하는 것을 하나의 덕성이요 그들에게 있는 지성의 표라고 생각한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그럴 여지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불신을 위한 모든 기회를 제거하시겠다고 제안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겸손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주의깊이 살펴보아야 할 증거를 주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증거의 무게에 의하여 결정해야 한다.”*“하나님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그러나 자신의 유한한 이해력에 분명히 밝혀질 수 없는 것들이 약간 있다는 이유로 설득력 있는 증거로부터 돌아서는 자는 불신과 의심의 차갑고 냉랭한 공기 속에 머물게 되고, 믿음의 파선을 당하게 될 것이다.”*

책망할 의무

676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잘못이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종들이 그것들을 무관심하게 지나치면 그들은 사실상 그 죄인을 지지하고 정당화시키고 동일하게 죄를 범하는 것이며 똑같이 하나님이 불쾌하심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질러진 죄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잘못과 죄들을 취급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초래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지적 받았다. 이런 잘못들을 변명해 준 자들은, 그들이 단순히 분명한 성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성격이 매우 우호적이고 관후한 것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그 일이 그들의 마음에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일을 회피했다.”* 하나님의 영의 엄격한 증언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타락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하여 정하신 수단과 항상 싸워온 자들을 이스라엘에서 분리시킬 것이다. 잘못은 잘못으로 불리워져야 하고, 심한 죄들은 그 바른 이름 그대로 불리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그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죄를 사실 그대로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 얼마나 불쾌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분명하고 솔직한 증언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고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에게 머물렀던 것처럼 분명히 그들에게도 머물게 될 것이다.”* “성실한 경고와 책망이 바로 이 시대보다 더 필요했던 적은 없다. 사단은 그의 때가 얼마 못 된 줄 알므로 큰 능력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는 유쾌한 우화들이 세상에 범람케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온한 것들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를 좋아한다. …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흑암이 들어오는 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더욱 단호하고 결정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을 보았다. 677 하나님의 영의 마지막 사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 필요하다.”* 나는 젊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업을 맡았다. 그 때 그 사업과 함께 나는 도우시는 전능한 분에게서 특별한 도움을 받을 것을 약속받았다. 동시에 나에게는 친구나 원수들을 구별하지 말고 주님의 기별을 성실히 전하라는 엄숙한 책임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교양이 많은 사람이나 무지한 사람, 누구를 상대하든지 간에 주님의 사자에게 지워진 신성한 의무를 져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가 개인들이나 백성들에게 증거한 어떤 분명한 증언을 후회하거나 철회한다는 생각을 아무도 품어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어떤 곳에서 실수했다면 그것은 더욱 결정적이요 확고하게 죄를 책망하지 않은 데 있다. 형제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의 사업을 비판하고 잘못을 고치는 보다 쉬운 방법을 제시하는 책임을 담당해 왔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그대들의 방법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이다. 증언이나 책망을 통하여 내가 말하거나 기록한 것은 지나치게 명백히 표현되지는 않았다. … 하나님께서 내게 주셔서 말하게 하신 신랄한 책망의 힘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감소시키고자 하는 자들은 심판 때에 그들이 한 일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나를 책망하는 책임을 진 자들과, 유한한 판단력으로 더욱 현명해 보이는 길을 제안하는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반복해 말한다. 나는 그대들의 노력을 수락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맡겨서 그분이 나를 가르치시게 하라. 나는 주님께로부터 온 말씀을 받아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말하겠다. 나는 모든 사람이 책망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애를 개혁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나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걸어가고 변함없이 나의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을 나의 형제들에게는 주시지 않으셨다. 공중 앞에서 책망하는 나의 방법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리하고 비판적이고 가혹해지게 했다고 주장되어 왔다. 678 만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 주지 않으신 책임을 맡는다면, 만일 그들이 그분의 택하신 겸손한 기구를 통하여 친절하고, 인내하고, 오래 참으라고 거듭해서 그들에게 주신 교훈을 무시한다면, 그들만이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슬픔에 눌린 마음으로, 나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에 대한, 달갑지 않는 나의 의무를 수행하되 심지어 나의 남편에까지도 책망을 보류함으로 내 자신을 감히 기쁘게 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듣거나 참거나 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경고하는 일에 덜 성실해지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말할 때 나는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많이 말한다. 주님의 영은 빈번히 나에게 임하신다. 나는 내 자신에게서 분리되고 떠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이 나의 마음 앞에 분명히 제시된다. 나는 그들의 잘못과 위험을 보게 되고, 내 앞에 제시된 바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영을 저항할 수 없다.”*

책망의 거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증언을 통하여 주신 성실한 책망을 멸시한다. 나는 오늘날의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악한 왕처럼 책망과 경고가 기록된 말씀을 태워 버리는 데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협적인 기별에 반대할지라도 그들의 형벌은 막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택한 기구들을 통하여 전해진 그분의 말씀에 도전하면 주님의 분노를 일으킬 뿐이며, 마침내 범죄자에게 분명한 멸망을 초래할 것이다. 자주 죄인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책망을 전하도록 택하신 기구에 대하여 분노가 타오른다. 그것은 언제나 그러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투옥했던 것과 동일한 정신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내가 분명하고 명백한 증언을 전하고, 잘못을 책망하되, 아끼지 말도록 부름을 받은 나의 사업의 초기에서부터 나의 증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고, 부드러운 것들을 말하고, 누그러지지 않은 회반죽으로 더럽히고, 나의 활동의 영향을 파괴하고자 따라다닌 자들이 존재해 왔다. 679 주님께서는 나를 감동시키셔서 책망을 전하게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와 백성들 사이에 개입하여 나의 증언을 무효로 만들고자 했다.

“책망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경우마다 주님의 영이 근심해 오셨고 그분의 사업이 비난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책망받을 사람들이 개인 감정에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동정할 것이다. 이 모든 성화되지 못한 동정심은 그 동정자들을, 책망받은 자의 죄에 참여하는 자의 처지에 둔다. 만일 책망받은 자를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 있도록 버려 두었다면 십중 팔구 그는 그 잘못들을 볼 수 있게 되고 개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섭하기 좋아하는 성화되지 못한 동정자들은 책망자의 동기와 주어진 책망의 성격에 대하여 잘못된 뜻을 붙이고, 책망받은 자를 동정함으로써 그가 실제적으로 부당한 취급을 받은 것으로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감정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 데 불과한 자에 대하여 반감을 품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 아래 달갑지 않은 그들의 의무를 성실하게 다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말하라’(사 30:10)고 부르짖을 자들이 이 마지막 때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분의 백성을 책망하는 자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별을 받는 자들에게 그것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업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나는 이 달갑지 않은 사업을 내 스스로 택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사람들의 호감이나 칭찬을 받게 해 줄 그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진가를 깨닫는 자가 별로 없는 사업이다. 그러나 오해와 질투 어린 의심과 불신으로 나의 활동을 이중으로 어렵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증언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편견을 일으키고 나의 사업을 한정시키고자 애쓰는 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앞으로 전진하고 나의 형제들이 내 앞에서 길을 열어 주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지고 있다. 680 나의 구속주의 이름과 힘을 의지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나의 의무는 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사업을 맡기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기별을 내게 주셨다면 사업에 있어서 나를 방해하고 그 진리를 믿는 백성들의 믿음을 헐뜯고자 하는 자들은 그 기구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경고와 책망을 통하여 그대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도구를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보다 사람이 하나님께 행할 수 있는 큰 모욕은 거의 없다.”*

“증언들”을 무시함

증언들을 공공연하게 거절하는 자들이나 그것들에 관하여 의심을 품음으로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 자들은 그들 뿐만이 아니다. 빛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책망을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행하고 있으며, 다만 하나님이 영의 감화에 덜 민감해지고 있으며, 점점 더 눈이 멀어져 가며, 지혜가 더 적어지고, 자제력도 줄고, 도덕적 능력도 적어지고, 신앙적 활동에 대한 열성과 취미도 줄어 들고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마침내 하나님을 붙드는 손을 완전히 놓아 버릴 것이다. 그대들은 책망을 받았을 때에 그대들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대들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와의 현저한 차이를 보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마음 속에서 죄를 품고 있는 데 그대들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대들이 철저한 변화를 이루지 않는 한, 그대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책망에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681 그리하여 그들처럼 그대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의와 책망과 경고에 관한 빛과 지식을 간직한 책들을 읽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신 빛과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세상의 염려와 유행을 좋아하는 마음과 신앙의 부족은, 오류를 간직하고 있는 서적들과 간행물들이 온 나라에 편만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처럼 은혜롭게 주신 빛에서 주의를 돌이키게 했다. 회의론과 불신은 어느 곳에서나 증가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그처럼 귀중한 빛은 말 아래 감추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등한한 일에 대하여 그분의 백성들에게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에 비추게 해 주신 빛의 모든 줄기에 대하여, 그것이 거룩한 사물 안에서 우리가 전진하도록 촉진시켜 주었던지 기호대로 따르는 것이 더욱 달갑기 때문에 거절했던지 간에, 그분께 결산 보고를 해야 한다.”* 예언의 신의* 서적과 증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든 가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형제들은 그 가치를 깨닫고 그것들을 읽도록 촉구 받아야 한다. 이 책들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한 교회에 한 질만을 소유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계획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든 가정의 서가에 놓여야 하고 거듭거듭 읽혀져야 한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곳에 비치되어야 한다.”* 목사들과 백성들은 복음 진리가 구원을 하지 못하면 굳어지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빛을 거절하면 사람들은 사로잡힌 상태가 되고 흑암과 불신의 사슬에 매이게 된다. “날마다 자비의 초청을 듣기를 거절하는 영혼은 미구에 그의 심령을 분기시키는 감정 없이 가장 긴급한 호소를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우리는 더욱 열렬한 경건과 자아를 더 적게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자아를 높이면 높일수록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믿는 믿음은 감소될 것이다. … 자아를 완전히 신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더 적게 볼 것이다.”*

책망을 받아들이는 방법

682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책망받는 자들은 겸손한 도구를 대항하여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 실수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다.”*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달가운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지 않은 사람의 마음으로써 책망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다 주기로 계획된 축복을 깨닫기가 불가능하다. 사람이 유혹에 넘어져 죄에 빠지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도덕적 지각도 왜곡된다. 양심의 경고는 무시되고 그 음성은 분명히 덜 들린다. 그는 옳고 그릇된 것을 구별하는 힘을 차츰 잃어버리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다. 그는 신앙의 정신은 결핍되어 있으면서 신앙의 형식은 지키고 그 교리를 열렬히 고수할 것이다. 그의 상태는 참된 증인이 묘사한 그대로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 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하나님의 영이 책망의 기별을 통하여 이것이 그의 상태라고 주장할 때 그는 그 기별이 참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 경고를 거절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충분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나 증언들의 성격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한 다음에는 비록 그들의 행동에서 죄악적인 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상태를 완전히 깨달았다면 무엇 때문에 책망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들 앞에 제시해 주셔서 그들이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고 개혁하게 하신다.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은 눈먼 상태가 되어 자기 기만에 빠지게 될 것이다. 683 그러나 그것에 유의하고,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죄를 분리시키는 일을 열렬히 하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의 문이 열려져 사랑하는 구주께서 들어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자들은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음성을 깨닫는 자들이다. 영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것들을 분별한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실 때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를 취급하시는 일에서 지혜로 배우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징계에 겸손히 머리 숙였다. 선지자 나단이 그의 참 상태를 성실하게 묘사하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것을 버리게 되었다. 그는 겸손하게 권면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었다. 그는’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시 19:7) 한다고 부르짖는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우리 주님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계 3:19)한다고 말씀하셨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히 12:11)는다. 비록 징계가 고통스럽기는 해도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히 12:10)기 위하여 아버지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정해진 것이다.

부당한 구별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주신 경고와 주의와 책망이 각 개인들의 상황에 대한 특별한 이상(異像)을 통하여 주어지지 않는 한 다른 근원에서 온 권면과 경고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교인들에게서 받은 편지들 때문에 기록하도록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장 되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증언들이 인간적 근원에서 수집된 정보를 기초로 한 내 자신의 판단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자들이 존재해 왔다. 이런 주장은 완전히 거짓된 것이다. 그러나 만일 교회들이나 개인들에게서 온 어떤 질문이나 주장이나 호소에 대한 회답으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에 관하여 주신 빛을 제시하는 증언이 기록된다면 그것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가 부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유효성이나 중요성을 결코 비난해서는 안 된다. 684 나는 이 점을 직접 다루고 있는 몇 구절을 증언 31호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는가? 글로에의 집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상태에 관하여 받은 소식 때문에 그는 그 교회에 보내는 첫째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알려 주는 사적인 편지들이 그에게 왔고, 그는 대답을 통하여, 만일 유의하기만 하면 존재해 있는 그 악을 교정할 수 있는 일반 원칙들을 제시했다. 대단한 친절과 지혜로써 그는 동일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이에 분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권면한다.

바울이 영감받은 사도였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상태를 그대로 그에게 언제나 계시하지 않으셨다. 교회의 번영의 관심을 가지고 악이 들어오는 것을 본 자들이 문제를 그에게 제시했고, 그는 미리 받은 빛에 의하여 그렇게 진척되는 일의 진상을 판단할 준비를 갖추었다. 주님께서 그 특별한 때에 관한 새 계시를 그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빛을 구하고 있는 자들이 그의 기별을 다만 평범한 편지로 버리지는 않았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교회 안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과 위험을 그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그는 그런 일이 생길 때 그것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 그는 영혼들을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할 자로 돌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의 무질서와 분열의 상태에 관한 소식에 무관심할 것이었던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보낸 책망은 그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의 감동 아래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책망들이 주어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고, 그가 다만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의견을 그들에게 전한 데 불과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판단을 바울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훌륭하다고 보았다. 685 그와 마찬가지로 옛 지계표에서 떠나가고 그들 스스로의 생각을 따른 사람들이 우리 백성 가운데 많다.”* 우리 백성들이 이런 입장을 취할 때는 예언의 신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경고와 권면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생애와 품성에 개혁을 일으킬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의 발전에 있어서 그분의 백성들의 각기 다른 태도에서 야기될 수 있는 매 비상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한 이상을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업과 개인들의 필요와 위험을 그분의 종들의 마음에 새겨 주셔서 그들에게 권면과 경고의 짐을 지워 주는 것이 지나간 세대에 그분의 교회를 취급하시는 주님의 방법이었음을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교인들의 품성에 있는 특별한 결함들에 관한 빛을 나에게 주시고 그 결함들이 제거되지 않을 때 개인과 사업에 미칠 위험을 보여 주셨다. 어떤 환경 아래서는 나쁜 경향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강화되어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를 끼치고 개인에게도 파멸을 초래하기 쉽다. 때때로 특별한 위험들이 하나님의 사업이나 특수한 개인들을 위협할 때 밤의 꿈이나 이상을 통하여 주님께로부터 기별이 나에게 주어지고, 이 경우들이 나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일어나서 쓰라, 이 영혼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음성을 듣는다. 나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에 순종하고, 나의 펜은 그들의 참 상태를 묘사한다. 내가 여행을 하고, 여러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 설 때, 주님의 영은 내가 본 상황들을 분명하게 내 앞에 제시해 주고 이미 내게 주었던 문제가 되살아나게 한다.

과거 40년 동안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의 필요와, 모든 면의 경험에 나타난 개인들의 상황들을 계시해 주셨고,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완전한 그리스도인 품성을 이루는 일에 실패했는지 보여 주셨다. 수백 가지 경우들에 대한 역사가 나에게 제시되었고, 또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과 그분께서 정죄하시는 것이 내 앞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686 하나님께서는 어떤 길을 따른다면, 또한 어떤 품성의 특성들에 빠져 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은 이와 같이 내가 영혼들을 위협하는 위험들을 보고 그분의 백성들이 사단의 간계에 무지하지 않게 되어 그의 올무를 피하도록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경고할 수 있도록 나를 교육하고 훈련해 오셨다.

주님께서 내 앞에 제시하신 사업은 젊은이와 늙은이,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를 막론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도록 강조하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마음이 넓어지고 모든 기능이 강화되며 지능이 깊고 원대한 진리의 문제들과 씨름하기에 적합해진다는 사실을 감명 깊게 알려 주고, 분명한 성경의 지식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기대하신 바가 이루어지는 일에 있어서 다른 어떤 지식보다 낫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보증해 주는 일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전달된 빛을 가지고, 또한 모든 환경과 온갖 경험의 측면에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속한 개인적 상황에 대하여 주어진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서도 내가 이 경험의 초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무지와 동일한 정신적 불안정과 영적 맹목 속에 처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형제들은 화잇 자매가 너무도 우둔한 학도이기 때문에 그가 특별한 사업을 위하여 교육받고 훈련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이 방면에서의 그의 판단력은 매 한 가지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하나님 백성의 의무와 위기를 제시받지 못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에 관하여 무지한가? 나는 이 모든 빛, 나의 사업과 경험에 있어서의 그분의 능력의 모든 현시가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것과 그것이 나의 판단력을 훈련시키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그분의 사업에 더욱 적합하게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함으로 나의 창조주에게 욕을 돌리고 싶지 않다.

다른 영혼들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손상시켜 왔으며, 또한 주님께서 거듭거듭 책망하신 바로 그 길을 따르거나 바로 그런 특성들을 간직하고 있는 남녀들을 내가 볼 때,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687 자신의 불완전을 깨닫고 무거운 짐에 눌려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고자 양심적으로 애쓰고 있는 마음 약한 영혼들을 보고, 주님께서 그들의 성실한 노력을 굽어보시고 미소짓고 계심을 내가 알 때, 이 떨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 개인의 상황이 이 직접적인 이상을 통하여 나에게 지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인가?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겔 33:6-9).

나는 최근에 꿈에서 일단의 사람들 앞에 갔는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전한 가장 엄숙한 경고의 증언에 대한 효과를 제거해 버리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화잇 자매의 증언을 믿는다. 그러나 그가 고려 중에 있는 특별한 상황에 있어서 이상 가운데서 그가 직접 보지 않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할 때는 그의 말이 다른 어떤 사람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였고, 나는 일어나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책망했다. 나는 파수꾼에 관하여 내가 앞에서 제시한 것을 실제로 반복했다. 나는 이것이 그대들과 나의 상황에 적절하다고 말했다.

688 오늘날 이 엄숙한 경고를 받은 자들이, “그것은 다만 화잇 자매의 개인 의견에 불과하므로 나는 내 자신의 판단을 여전히 따르겠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경고를 받기 전에 하던 그런 일을 계속해서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권면을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그대로의 일, 곧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를 주고 그들 자신을 파멸시키는 일이 된다.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지지해 주고, 그들을 가장 강력한 기반 위에 세워 줄 것으로 생각되는 말씀들을 증언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때 그들은 화잇 자매의 의견이 하늘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부인하고 그것을 그들 자신의 판단과 같은 수준에 둔다.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 해 동안 나와 나의 사업에 정통해 온 그대들이 나의 권면을 이 사업을 위하여 특별히 교육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권면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면, 사업을 함에 있어서 그대들과 연합하도록 나에게 요구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이 이런 위치에 머물러 있는 한, 그대들은 필연적으로 나의 사업의 영향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위임받은 종을 통하여 주어진 빛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위험은 그대들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그대들은 하늘이 보내준 빛을 거절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을 것이다.

________에 있는 동안, 주님께서는 밤에 내게 오셔서 나의 사업에 관하여 귀중한 용기의 말씀을 해 주셨고, 전에 여러 번 내게 주신 기별을 반복하셨다.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버리고 돌아선 자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전하도록 주신 증언을 경멸하고 거절할 때, 그들이 경멸한 것은 그대가 아니고 나, 곧 그대의 주님이시다.”

만일 완고하고 자만심이 강한 자들이 제지당하지 않고 그들의 길을 간다면,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 의지가 굳고 야망적인 사람들에게 있는 잘못들이 어떻게 교정될 것인가? 어떤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접촉하실 것인가? 그분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교회를 질서 있게 바로잡으실 것인가? 의견의 차이는 끊임없이 생기고, 배교는 자주 교회를 괴롭힌다. 689 논쟁이나 분열이 생기면, 모든 파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거리낌없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랫동안 사업의 책임을 져 온 자들 그리고 주님의 지도를 받아온 자들(그들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의 교훈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빛은 그들의 흑암을 쫓아 버리기 위하여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마음이 교만해서 어둠을 택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면이 그들의 의견과 계획에 일치하지 않고 그들의 악한 품성의 특성들을 지지해 주지 않으므로 그것을 멸시한다. 만일 그들이 받아들이기만 했을 것 같으면 그들을 바른 위치에 놓아 주었을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그들의 독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런 방법으로 역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빛이 그들에게 전혀 빛이 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어둠 속에서 방황한다. 그들은 그처럼 오랫동안의 경험을 해 온 자들과, 주님께서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하여 가르치고 사용해 오신 자들의 판단을 어떤 다른 사람의 판단보다 더 신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가, 아니면 영혼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다루기 위하여 택정하신 방법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스스로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을 오류에 머물게 하고, 깨뜨릴 수 없는 강한 기만 속에 붙들어 두기 위한 모든 의의 원수의 특별한 역사인가?

주님의 책망과 경고와 교정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교회에 주어졌다. 이 경고들은 그런 책망이 필요 없으며 부당하게 취급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독선적인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그리스도 당시에 멸시받고 거절당했다. 그들은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주신 그분의 말씀이 그들의 성향을 즐겁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았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의 시대에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 앞에 이상을 보여주셔서 그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의 독선을 책망하고 그들의 죄를 정죄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사렛의 거민들에게 그들의 참 모습을 보여 주셨을 때처럼 일어나 반역할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단의 제안들을 마음에 품는다면, 의심과 불신이 심령을 사로잡고, 그들은 모든 것을 거짓된 빛 가운데서 보게 될 것이다. 690 일단 그들의 마음 속에 의심의 씨앗들을 뿌려보라. 그러면 그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들은 불신 가운데서 스스로를 교육시키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진리들을 신뢰하지 않고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의심을 걸어 두는 못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붙들도록 마음을 훈련시키고 이런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자들은 언제나 의심할 기회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는 것을 의심하고 비평하며, 다른 사람들의 사업과 위치를 비평하고, 그들 스스로가 참여하지 않는 모든 분야의 사업을 비평할 것이다. 그들은 천사가 “주 예수님께 하늘 성소의 중보 사업에서 일어나 복수의 옷을 입으시고 부정한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며, 그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오류와 실수와 결점들을 먹고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미각이 너무 왜곡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나라에 있는 그분의 식탁까지 비평하는 경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기만당한 이 사람들에게, 그분에게서 온 책망과 교정의 말씀이 직접적인 이상을 통하여 주어지지 않는 한 아무런 중요성도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신 적이 있었던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사단의 미혹이기 때문에 나는 이 점을 논한다. 사단이 그의 궤변으로 그들을 사로잡고 약화시켜 왔을 때, 그리하여 책망을 받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무효로 만드는 일을 고집할 때, 그들에 대한 그의 승리는 이루어질 것이다. 의를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유다처럼 그들의 주님을 그분의 가장 큰 철천지 원수들의 손에 넘겨 준다. 그들 자신의 길을 택하고 그들 자신의 사상을 옹호하기로 작정한, 자신감에 사로잡힌 이 사람들은 나쁜데서 더 나쁜 데로 가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들은 그들 자신의 뜻을 버리기는커녕 어떤 길이라도 따라갈 것이다. 그들은 악한 길을 맹목적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만당한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기만에 빠졌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691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들의 참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가질 때 취하게 될 길을 묘사하셨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눅 21:16).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과 관련하여 두드러진, 엄숙한 경험을 내게 주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나의 생명이 지속하는 한 내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감동받은 그대로의 경고의 음성을,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상관하지 않고, 끊임없이 높일 것이라는 것을 믿어도 좋다. 내 자신에게는 특별한 지혜가 없다. 나는 주님께서 내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하기 위하여 그분의 손에 들린 도구에 불과하다. 내가 글이나 음성을 통하여 준 교훈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의 표현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영이 여러 해 동안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나의 심중에 기록해준 원칙들을 그대들 앞에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이제 그대들이 나와 백성들 사이에 개입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탄원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비평을 통하여, 증언들에서 오는 모든 힘, 모든 효과와 능력을 제거해 버리지 말라. 그대들 자신의 사상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이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 하늘에서 온 빛이며 무엇이 단순한 인간의 지혜의 표현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셨다고 주장하지도 말라. 만일 증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게 말하지 않거든 그것들을 거절하라.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연합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간의 궤변과 회의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키지 말고,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사업을 무효로 만들지 말라. 그대들의 영적 식별력의 부족으로, 이 하나님의 매개체를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걸리며 잡히게”(사 28:13) 하는 거치는 돌로 만들지 말라.

근거 없는 소문

692 지난 겨울*에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미네아폴리스 총회 기간에 “화잇 자매가 1844년 이래로 죽은 의인들에게 집행되어 온 심판이 이제는 산사람들에게 시작된” 것을 보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약 2년 동안 떠돌아다닌 유사한 소문도 이런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실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판은 40년이 넘도록 죽은 자의 상황에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빨리 산 자의 상황을 취급하게 될는지 알지 못한다.” 그 편지는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주의성 없이 들은 자들은 그들이 듣고 생각한 대로 소문을 퍼뜨렸다. 문제는 이렇게 발단되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된 소문은 편지에서 인용한 것과 똑같은 의미의 진술을 누군가가 오해한 데서 생겼다. 이 외에 소문의 근거가 될 것은 달리 없다.

두번째로, 지금 살아 있는 한 목사가 구원받은 상태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상 중에 내게 보였기 때문에 그의 최종적인 구원이 보증된 것이라는 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의 조건들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그 조건에 일치하느냐 않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계시자 요한은 말한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4, 5).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 14). 693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7).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2, 13).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 39).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택정이 명백하게 진술된 것을 여기서 보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의 도성에서 면류관을 쓸 자와 의인과 함께 참여하지 않을 자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세번째 소문은, 미네아폴리스에서 “화잇 자매가 그 집회에서 한 그의 말 중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과 그릇된 정신을 나타냈다고 고백했다”고 말한다. 이 소문 역시 전혀 근거가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을 그 총회에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경고와 책망의 기별, 희망과 믿음의 말을 다 같이 제시했다. 그러나 내가 그 집회에서 말한 것은 아무것도 취소하지 않았고, 잘못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나는 미네아폴리스에서와 동일한 관점에서 여전히 그 문제를 보며,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 당시에 보았고, 내게 그처럼 짐을 지워준 모든 위험들이 그 집회 이래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내가 우리 교회들의 상태를 더욱 완전히 알게 되자 나는 미네아폴리스에서 주어진 모든 경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온 이런 소문의 영향은, 내가 백성들에게 한 모든 책망과 경고를 믿는 확신을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예증 중 하나를 나는 여기에서 말하겠다.

694 우리의 전도 사업과 관련된 한 자매는 그와 관련된 젊은이들에 대한 잘못된 영향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근심 시키고, 교역자들을 문란케 하는 교묘하고 경박하고 경솔한 정신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미네아폴리스에서의 고백이라고 불리워지는 화잇 자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소식이 미네아폴리스에서 편지를 통하여 전해지자 T 자매의 친척들은 즉시 말했다. “만일 화잇 자매가 미네아폴리스 총회의 문제들에 관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고백해야 했다면, 그는 나의 자매에게 전한 기별에 대해서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으므로 그것 역시 고백해야 한다.” 그들은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 그 범행자를 변호했다. 그러나 그 때 후로 T 자매는 그가 책망받은 잘못을 인정했다. 그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자들은 책망을 거절함으로써 범법자들이 담력을 갖도록 영향을 끼쳤고, 이리하여 영혼들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해 온 모든 사람들은 이 영혼들의 피가 마지막 심판의 큰 날에 그들에게서 발견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언급된 경우들은 내가 행동했거나 가르친 것에 관한 소문에 얼마나 신임을 적게 두어야 할 것인지를 보여 줄 것이다. 주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활동하는 동안에 나는 내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거나 내 자신에 관하여 퍼뜨려진 소문을 반대하기 위하여 실제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나의 시간을 빼앗겨서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사업을 등한히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그분의 종들과 사업을 돌보시는 분에게 맡겨 버렸다.

그러나 나는 형제들에게 그런 소문들을 어떻게 믿을 것인지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눅 8:18)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회개하여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서 듣고 깨닫지 않으려 할 특정한 부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다시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막 4:2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47).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들 속에 있는 정신에 따라서 그분의 교훈을 듣고 소문을 퍼뜨렸다. 695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언제나 그러하다. 그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들의 마음 속에 거하는 정신에 좌우된다.

그들이 듣는 것에다 그들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이 표현하고자 노력한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고안해 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들음으로 문제를 그들이 희구하는 대로, 그들의 목적에 가장 알맞게 이해하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린다. 부정한 마음의 충동을 따름으로써 그들은 올바르게 이해하면 큰 선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본래 완전히 진실하고 옳은 표현도 몇 사람의 호기심 있고, 부주의하고, 트집잡는 마음들을 통하여 전달되므로 완전히 왜곡될 수 있다. 선의의 사람들도 이따금 부주의하고 심한 잘못을 범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소문을 퍼뜨릴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말이나 주장을 반복하여 거기에다 그 자신의 특성을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 듣는 사람에게 그의 편견과 생각을 그대로 새겨 준다. 그는 그것을 제 삼자에게 전해 주고, 제 삼자는 다시 조금 더 첨가해서 그것을 내보낸다. 그리하여 그들 중 어떤 사람도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깨닫기 전에,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심과 질투와 회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통하여 사단의 목적을 성취시켰다.

사람들의 마음이 편견으로 채워져 있는 동안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와 격려의 말을 듣는다면, 그들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도록 그들에게 보내진 기별의 참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이해력에 모든 것을 거짓된 시각에서 제시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을 깨닫고자 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은 올바르게 들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시는 귀중한 축복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 아래 있으므로 그들은 올바로 듣는다. 696 마음이 이기심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시는 기별과 조화를 이룬다. 지각은 예민해지고, 감각은 세련된다. 같은 것끼리는 서로 통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4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바이다. 화잇 자매가 행동했다던지 말하고 기록했다던지 하는 것에 대한 불분명한 소문을 믿지 말라. 만일 그대들이 주님께서 그를 통하여 계시한 것을 알고자 하면, 그의 출판물들을 읽어라. 그가 기록하지 않은 것에 관한 어떤 점에 흥미가 있으면, 그가 말한 것에 대한 소문들을 열광적으로 움켜쥐고 퍼뜨리지 말라.

모조된 이적

어떤 사람들은 교회증언 1권, 314, 315페이지에 있는 말씀과 대쟁투1권 184*페이지에 있는 말씀과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구절들은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한 아론의 이적을 모조한 박수들의 일에 관하여 언급한다. 증언은 말한다. “술객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그 모든 이적들을 이룰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이적들 중 소수의 것만을 할 수 있었다. 술객들의 지팡이도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것들을 삼켜 버렸다.” 의문의 여지가 있는 이 마지막 문장은 사실상 성경의 말씀과 동일하다.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출 7:12). 대쟁투 1권에 있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술객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이루신 것과 유사한 몇 가지 것들을 그들의 마법을 통하여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들의 지팡이를 실제적으로 뱀이 되게 하지는 못했다. 697 그러나 큰 기만자의 도움으로 마법을 통하여 그것들을 뱀처럼 보이게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모조하였다.” 이 말은 앞에 열거한 말과 반대가 되는 대신에 단순하게 그것을 설명해 준다.

증언에는 내가 전달하고자 한 사상이 완전히 표현되어 있지 않다. 293페이지에는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한 문장이 있다. “술사들은 그들 자신의 기량만으로가 아니고 그들의 신, 곧 하나님의 솜씨를 모조하는 기만적 일을 교묘하게 수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통하여 일을 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지팡이를 산 뱀으로 변화시켰다. 사단은 술사들을 통하여 이 이적을 모조했다. 그러나 그는 산 뱀을 만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생명을 창조하거나 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가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데, 그것은 그가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술사들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는 그의 능력으로 그는 지팡이를 뱀의 모양을 갖게 했다.

그들이 뱀이 되게 했다는 말은 단순히 그것이 그런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바로와 그의 왕궁에서 그렇게 믿게끔 되었다. 외관상으로는 모세와 아론에 의하여 만들어진 뱀과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는 진짜인 반면에 다른 것들은 가짜였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산 뱀이 속임수로 된 것들을 삼켜 버리게 하셨다.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에 나타난 그의 완고를 정당화시키기를 원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이적을 멸시하기 위한 어떤 구실을 찾고 있었다. 사단은 바로가 원하는 바를 그대로 주었다. 술객들을 통하여 그가 이룬 일로써 그는 모세와 아론이 단지 술객과 박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가 전한 기별은 초월자에게서 온 것으로 존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애굽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바로는 심지어 모조의 뱀들을 삼켜버리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의 특별한 역사로 보지 않고, 그의 종들의 마법보다 탁월한 일종의 마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이 모조의 역사는 그의 반역을 더욱 담대하게 해 주고 그를 각성하지 못하도록 방어했다.

698 사단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것은 뱀을 그의 매개물로 사용하여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함으로 이룬 일이었다. 시대의 끝이 이르기 전에 그는 여전히 더 큰 기사들을 행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실제적인 이적을 행할 것이다. 성경은 그가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계 13:14)할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이적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한 속임수 이상의 것이 이 성경절에는 나타나 있다. 그러나 사단이 넘어 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는 기만을 사용하고 그가 실제적으로 행할 능력이 없는 일을 모조한다. 마지막 날에 그는 사람들이 그를 세상에 두번째 오신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그런 방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점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닐지라도 단순한 외관만으로 그렇게 되는 한, 그것은 바로처럼 진리를 거절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속이지 못할 것이다.

성경의 오묘는 곧 그 영감의 증거임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욥 11:7,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 9).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사 46:9, 10). 유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무한하신 분의 품성이나 업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699 가장 탁월한 지성에도, 가장 유력하고 높은 교육을 받은 마음에도 거룩하신 분은 언제나 신비에 싸여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부르짖는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비록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을지라도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취급하시는 일과 그분께서 행동하시는 동기를 깨달음에 따라 무한한 능력과 결부된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유익이 될 만큼은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우리가 여전히 전능하신 분의 능력과 만물의 아버지시며 주권자이신 분의 사랑과 지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저자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자들이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신비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딤전 6:16) 거하시는 창조주께 우리의 마음을 이끈다. 그것은 인간 역사를 다 포함하고, 오직 끝없는 영원의 주기에서 성취될 그분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부와 인간의 운명에 관련된 무한히 깊고 주요한 주제들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 그리스도의 성육신, 중생, 부활, 그 외에 성경에 제시된 많은 주제들은 너무 심오해서 인간의 마음으로 설명하거나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오묘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특성에 속한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700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섭리에 속한 모든 오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이 큰 주제들을 제시하는 성경의 부분들이 사람에게 무익한 것으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신 모든 것을 그분의 말씀의 권위에 의거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왜 혹은 어떻게라는 설명 없이 사실들에 대한 꾸밈 없는 진술만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어려움은 인간의 마음의 약점과 편협에 내재해 있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한다. 회의론자들은 성경의 어려움이 성경을 대적하는 논증이 되는 것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렇기는커녕 그런 어려움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강한 증거이다. 만일 성경에 하나님께 대한 이야기가 없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뿐이라면, 만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을 유한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의 명백한 신임장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제시된 주제들의 웅대함과 오묘함, 바로 그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고취시켜야 한다.

성경은 단순하게, 또한 인간의 마음의 필요와 소원에 가장 적합한 진리를 나타내 주므로 비천하고 교양 없는 자들도 구원의 길을 깨달을 수 있는가 하면 가장 훌륭하게 교양을 쌓은 사람들도 놀라게 하고 매력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 단순하게 표현된 진리들이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 너무 숭고하고 너무 원대하고 너무 무한한 주제들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들을 선포하셨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속의 계획이 우리 앞에 제시되므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받기 위하여 회개로 하나님께 나가고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이르는 계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쉽게 깨닫게 되는 진리 아래 그분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는 오묘, 그것을 탐구하는 정신을 압도시키고 그러면서도 진지한 진리의 탐구자를 존경과 믿음으로 고무시키는 오묘가 놓여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계시의 위엄 앞에 머리를 숙인다.

하나님의 권위에 의거하여 살아 있는 성경 말씀을 즐겨 받아들이는 자들은 가장 밝은 빛으로 축복을 받는다. 701 특정한 말씀들을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그들은 다만, “성경에 그렇게 제시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나 하나님의 지혜의 현현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주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믿음으로 어떤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아를 발견한다. 이것을 인정하므로 유한한 마음은 무한한 것을 파악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제한된 인간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전지하신 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게 된다.

그 오묘를 모두 깨달을 수 없다는 이유로 회의론자와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다. 그런데 성경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이 점에서 유혹을 받을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도는,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낼 수 없다는 이유로 비평하고, 의심하고, 흠잡는 데 훈련되어 온 마음들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히 4:11)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교훈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고전 2:10)을, 그것들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반면에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신 29:29)다. 그러나 인간의 연구력을 왜곡시키는 것이 사단의 일이다. 어떤 특수한 자존심을 성경의 연구에 혼합시키므로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만족하게 설명할 수 없게 되면 좌절감을 느끼고 안달해 한다. 그들이 영감의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굴욕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리를 계시해 주시기에 적합하다고 보실 때까지 인내함으로 기다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움이 없는 그들의 인간적 지혜가 그들에게 성경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기에 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기대를 이루지 못하므로 그들은 사실상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 일반적으로 성경의 교훈이라고 생각한 많은 이론과 교리가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영감의 전체적 대의와 반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702 이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과 혼란의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 않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오해에 있다. 성경의 난해한 면은 하나님의 지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런 어려움들은, 만일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멸망당하지 않았을 어느 누구의 멸망의 원인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의심할 오묘한 것들이 성경에 없었더라도 바로 동일한 그 마음들은, 그들 자신의 영적 식별력의 부족으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족할 이유를 발견했을 것이다.

너무도 높은 수준의 정신력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길과 업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와 동등하게 높이고 하나님처럼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들은 사단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라고 주장한 말을 반복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사단은 하나님과 동등해지고자 한 그의 야망 때문에 타락했다. 그는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무능 때문에 제외된 하나님의 회의와 목적에 참여하여 무한하신 분의 지혜를 깨닫고자 욕망했다. 이 야망적인 자존심 때문에 그는 반역을 일으켰고, 동일한 방법으로 그는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노력한다.

구속의 계획에는 오묘가 있다. 곧 하나님의 아들께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게 된 굴욕,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보여 주신 놀라운 사랑과 겸손, 이들은 하늘의 천사들에게 끊임없는 경이(驚異)의 주제들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에 관하여 선지자들에게 주신 계시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것들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1, 12)고 말한다. 이것들은 또한 구속받은 자들이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연구할 주제가 될 것이다. 그들이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업적을 명상할 때 새 진리가 경이와 기쁨으로 충만해진 마음에 끊임없이 펼쳐질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넓어지고, 그들의 기쁨은 계속해서 증가될 것이다.

703 만일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업적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그 경지에까지 이른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찾아낼 진리가 없고 지식 안에서 자라나지도 않고, 정신과 마음이 더 이상 계발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최고의 분이 되지 못하시고, 사람들은 지식과 달성의 한계점에 이르러 향상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3). 그러므로 사람들이 영원무궁토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울지라도, 그들은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결코 고갈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 세상에서도 진리가 그분의 백성들에게 펼쳐지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그 영의 조명을 통해서만이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11). 구주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그가 …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 14)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추리력을 발휘하기를 원하신다. 성경 연구는 어떤 다른 연구보다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향상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좋은 영적 훈련인 동시에 지적 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약점과 연약함에 예속되는 이성을 신격화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만일 성경이 인간의 이해력에 모호하게 되어 가장 분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과 믿음을 가져야 하고, 배우고자 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깨닫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상태를 알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치 우리가 거룩한 경외심으로 그분의 면전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분의 말씀을 열게 될 것이다. 704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이성은 그것을 초월한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마음과 지성은 스스로 계신 위대한 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우리 자신이 작다는 것과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영적 지식 안에서 전진하게 될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정신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깨우침을 받을 것이다. 외관상 어렵고 모호해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고 단순하게 해주실 것이다.

때때로 지성적 능력을 갖추고, 교육과 수양으로 연마된 사람들이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이해력이 약해 보이고 마음이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이 전자가 오묘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그 구절들에서의 의미를 파악하고 힘과 위로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이해력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 설명되었다. 그들은 빛의 근원, 곧 성경에 영감을 주신 분을 찾아가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것을 받는다. 진리의 광맥이 있지만 그것은 열렬하게 찾는 자에게 발견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밭에 감추인 보화로 비유하셨다. 그것은 땅의 표면에 놓여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하여 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해 내는 우리의 성공은 우리의 지적 능력에 좌우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의 겸손과,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믿음에 좌우된다.

성령의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지만 유익이 없고 많은 경우에 분명한 손해가 되는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과 기도 없이 펼 때, 사상과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거나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마음은 의심으로 흐려지고, 바로 성경 연구 자체가 회의론을 강화시킨다. 705 원수가 사상을 사로잡고, 옳지 않은 해석을 하도록 시사한다.

사람들이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그들이 어느 정도 배웠던지에 상관없이 그들은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실수하기 쉬우므로 그들의 설명에 의존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노력하면 성령께서는 그분의 말씀의 교훈을 취하셔서 생애의 원칙을 삼게 하고, 그것들을 심령의 비에 기록해 준다. 이미 받은 빛을 따르고 있는 자들만이 더 많은 영의 조명을 받고자 바랄 수 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 알리라”(요 7:17).

모순을 찾아내기 위하여 성경을 살피는 자들은 영적 통찰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비뚤어진 시각으로, 사실은 쉽고 단순한 것들 가운데서 의심과 불신의 많은 구실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하기 위하여 그분의 뜻을 깨닫고자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바뀌어진다. 그들은 계시된 진리들의 순결과 고귀한 탁월을 명상할 때 놀라움과 경이로 충만해진다. 유유 상종이며, 유유 식별이다. 거룩함은 거룩함과 결합하고, 믿음은 믿음과 결합한다. 겸손한 마음과 진지하고, 무엇을 구하는 정신에는 성경이 빛과 지식으로 충만하다. 이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는 자들은 선지자와 사도들로 더불어 교제하게 된다. 그들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동화되고, 그들은 그분과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트집에 대항하기 위하여 성경에 있는 모든 어려움을 설명해 줄 의무가 그들에게 지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불완전하게 이해한 데 불과한 것을 설명하고자 시도함으로써 그들은 분명하고 쉽게 이해되는 점들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706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들이 존재한다 해서 탄식할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지혜로 허락된 것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점에서 영혼의 구원에 분명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원칙들을 우리의 생애로 실천하고, 교훈과 모본으로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그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경건한 생애, 성실과 온유와 이타적 사랑의 매일의 모본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대한 산 모범이 될 것이며, 그것은 성경을 옹호하는 일에 있어서 거의 저항할 수 없는 하나의 논증이 될 것이다. 이것은 회의론과 불신으로 기우는 우세한 경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수단임이 입증될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지력, 곧 하나님의 능력과 결합된 인간의 능력의 성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모든 영혼의 능력이 빛의 근원되시는 분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당혹했던 모든 것이 그때에 밝혀질 것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해명될 것을 믿고 기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한한 마음으로 볼 때 오직 혼란과 좌절된 목적만으로 덮였던 곳에서 우리는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베드로는 형제들에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있을 때는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끊임없이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거룩한 진리 안에서 새 빛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각 시대의 교회의 역사에서 실증되었고, 끝까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생명이 쇠퇴해질 때는 언제나 진리의 지식 안에서 전진하는 것도 중단되는 경향이 생겼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받은 빛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다. 707 그들은 보수적이 되어 토론을 피하고자 노력한다.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논쟁과 논의가 없는 사실이,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굳게 고수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진리와 오류를 분명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다.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아무런 새로운 의문들이 생기지 않을때,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스스로 성경을 살피게 하는 의견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때,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무엇인지 모르는 전통과 예배를 고수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현대 진리를 알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의 증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현시대를 위한 사업을 바로 깨닫지 못한다. 시련의 때가 올 때, 오늘날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역설하는 주장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만족할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험을 받기 전에는 그들이 크게 무지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논쟁이 생기기 전에는 그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지 못한다.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서 분리되어 홀로 서서 단신으로 그들의 신조를 설명하도록 강요 당하면 그들은 그들이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얼마나 분명치 않은 것이었는지 깨닫고 놀랄 것이다. 우리들 중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하나님의 지혜 대신에 인간의 지혜를 나타낸 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일으키실 것이다. 만일 다른 수단들이 실패하면, 이설이 그들 가운데 생기고, 그것이 그들을 키질하여 겨를 곡식으로부터 분리시킬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도록 부르신다. 이 시대에 적절한 귀중한 빛이 주어졌다. 그것은 우리 앞에 박두한 위기를 알려 주는 성경의 진리이다. 이 빛은 우리로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게 하고 우리가 역설하는 주장들을 가장 철저히 살피게 할 것이다. 708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진리의 의미와 주장들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탐구하기를 바라신다. 신자들은 무엇이 진리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하여 추측과 분명치 않은 견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기초되어 있으므로 시련의 때가 다가와서 그들이 의회들 앞에서 나가 믿음에 대하여 답을 할 때, 그들은 온유와 두려움으로 그들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분기하라, 분기하라, 분기하라. 우리가 세상에 제시하는 주제들은 우리에게 산 실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기초적인 조항들로 생각하는 교리들을 변호함에 있어서 완전히 건전하지 않은 논법을 사용하도록 우리 스스로를 결코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의의 있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반대자를 침묵시키는 데 효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진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반대자들을 침묵시킬 뿐만 아니라 가장 주도 면밀하고 가장 엄중하게 살펴보게 하는 건전한 논법을 제시해야 한다. 토론자로서 자기 자신을 교육시켜 온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정하게 취급하지 않을 위험이 있다. 반대자를 만날 때 우리는 단순히 신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대신에 그의 마음 속에 각성을 일으켜 주는 그런 방법으로 주제들을 제시하고자 열렬히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지적 발달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가 더 큰 빛을 받기 위하여 성경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순간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개인적으로 예언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는 빛의 어떤 줄기든 식별하기 위하여 열렬한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의 희미한 첫 광선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하면 경건한 연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할 더 밝은 빛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이 받은 현재의 빛으로 만족하고 안일하게 지내면, 우리는 그분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이 그들에게 비취고 있는 증가된 그리고 또한 언제나 증가되고 있는 빛을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709 교회의 현재의 태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더 많은 진리와 더 큰 빛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자기 과신이 들어왔다. 우리는 사단이 전후 좌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는 잠을 자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행동하도록 깨우는 한 음성이 들려지기를 바라신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서 온 빛의 광선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심령을 여는 대신에 반대 방향에서 일을 해오고 있다. 글과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과 그분의 말씀이 인정하지 않은 성경의 영감에 관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어떤 사람이나 일단의 사람들이 그들을 지지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되”라는 분명한 말씀 없이 이처럼 중요한 주제에 관한 이론들을 내세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인간적 연약함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고, 그들을 현명하고 경건하게 해주는 일에서 멀어지게 하는 선천적·후천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규탄하고,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을 판단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 없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일을 형통케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 결과는, 그 일에 종사한 사람과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다 같이 비참할 것이다. 영감의 본질에 대해서 제시된 이론들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회의가 일어났다. 편협하고 근시안적 견해를 가진 유한한 사람들이, “이 구절은 필요하고, 저 구절은 필요하지 않고, 영감 받지 않은 것이다”고 말함으로 성경을 비판할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소유한 성경의 유일한 부분, 구약 성경에 대하여 그런 교훈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교훈은 그들의 마음을 구약으로 향하게 하고 거기에 제시된 큰 주제들을 더 밝은 빛 가운데로 가져가기 위한 의도였다. 710 여러 시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켜 왔으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 주신 귀중한 진리들을 놓쳐 버렸다. 이 진리들은 미신적인 형태와 그 진정한 의미를 숨겨 버린 의식들로 가리워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의 광택을 가리워 버린 쓰레기를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귀중한 보석으로써 새로운 환경 가운데 놓으셨다. 그분은 친숙한 옛 진리들을 되풀이하는 것을 경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그 참 능력과 아름다움 그대로 드러내고, 그 당시의 사람이 결코 분별하지 못한 영광을 그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오셨다. 이 계시된 진리들의 창시자 되신 그분은 그 진리들의 참뜻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고, 지도자들이 그들의 헌신하지 못한 상태와, 영성과 하나님의 사랑의 결핍에 부합되도록 채택한 거짓 이론들과 오해에서 백성들을 해방시키셨다. 그분은 이 진리들에서 생명과 생명력을 도적질 해 간 것들을 치워 버리시고, 그 원래의 모든 생기와 능력을 회복한 진리들을 세상에 돌려주셨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고 그분과 함께 일하는 자들일 것 같으면 그분께서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성경의 진리들은 다시 관습과 전통과 거짓 교리에 의하여 모호해졌다. 인기 있는 신학의 거짓 가르침은 수많은 회의론자와 불신자들을 만들어 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법왕권의 암흑 시대 동안에 채택한 성경의 거짓 해석을 성경의 가르침처럼 공공연히 비난하는 잘못과 모순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오류와 유전으로 그릇 인도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거짓된 생각을 품도록 인도되었다.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하나님의 참 품성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성경을 비판하는 대신에, 우리는 생명을 주는 그 신성한 진리들을 세상에 제시하여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벧전 2:9)하기 위하여 교훈과 모본으로 노력해야 한다.

711 점차적으로 우리 가운데 들어오게 된 악들은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개인들과 교회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서 떠나가게 하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능력을 차단시켰다.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 모습 그대로 있게 하라. 인간의 지혜가 성경의 한 말씀의 능력도 감소되게 하지 말라. 요한계시록의 엄숙한 선고는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데 대하여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 나의 주님의 이름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명령하는 바이다.

임박한 쟁투

큰 위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기다린다. 위기가 세상을 기다린다. 모든 시대에서 가장 중대한 투쟁이 우리 앞에 박두했다. 40년 이상 우리가 예언적 말씀의 권위에 의거하여 다가올 것으로 선포해 온 사건들이 이제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미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헌법 개정의 문제가 국가의 입법자들에게 강요되었다.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문제는 국가의 관심과 중요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이 운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하여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는 사람들 앞에 놓인 위험을 경고하도록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 왔는가?

이 일요일 강요의 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 활동에서 초래될 결과에 대하여 눈먼 자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이 종교의 자유와 직접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성경상 안식일의 요구와 일요일 제도가 세워진 거짓 기초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많다. 종교적 입법을 위한 어떤 운동은 사실상 참으로 오랜 시대 동안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꾸준히 싸워 온 것을 법왕권에게 양보하는 행위이다. 712 일요일 준수가 그리스도교 제도로서 존속하게 된 것은 “불법의 비밀”(살후 2:7)에 의한 것이다. 그것의 강요는 바로 로마 가톨릭교의 기초가 되는 원칙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가 정부의 원칙을 버리고 일요일 법령을 제정할 때, 개신교는 이 법률을 통하여 천주교와 손을 잡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실제적인 독재를 다시 회복할 기회를 열렬하게 찾아온 압제가 되살아나는 것일 것이다.

종교적 입법권에 영향을 미치는 국민 개혁 운동이 충분히 발전하면 지나간 시대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불관용(不寬容)과 압제가 나타날 것이다. 인간의 회의가 신성의 대권(大權)을 맡아서 그들의 전제적 권력 아래 양심의 자유를 짓밟고, 투옥과 추방과 죽음이 그들의 명령에 반대한 자들을 따른다. 만일 천주교나 그 원칙이 세력을 잡도록 다시 법령이 제정되면 박해의 불길은, 널리 보급되어 있는 오류에 경의를 표하여 양심과 진리를 희생하지 않는 자들에게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악은 이루어질 단계에 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위험을 알려 주는 빛을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사람들 앞에 제시하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기를 게을리한다면 그분의 눈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들이 경고받지 못한 채 이 중대한 일을 맞이하도록 버려 두고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법률에 의하여 무효화된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투옥의 위험과 재산과 생명 자체의 상실까지 당하면서 계속적으로 투쟁해야 할 것이 우리에게 예상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세상의 정책은 평화와 조화를 위하여 국가의 법률과의 외관상 일치를 강요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는 성경절을 인용하여 그런 길을 강요하기까지 할 것이다.

713 그러나 지나간 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종들이 걸어간 길은 어떠하였는가?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제자들이 그분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전했을 때, 당국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이상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도록 그들에게 명령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 20).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해서 전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은 그 기별에 나타났다.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행 5:17, 18).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 강하신 우주의 통치자께서는 이 문제를 당신의 손으로 직접 다루셨다. 사람들이 그분의 사업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을 초월한 통치자, 그 권위를 마땅히 존중해야 할 분이 계심을 분명히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주님께서는 밤에 당신의 천사를 보내셔서 옥문을 열게 하셨다. 그러자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하도록 위탁하신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통치자들은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 4:18)고 했으나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의 사자는,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 5:20)고 했다.

법왕권의 제도를 준수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짓밟도록 사람들을 강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은 사도들 당시의 유대의 지도자들의 일과 유사한 일을 하고 있다. 지상 통치자들의 법률이 우주의 최고의 통치자의 율법과 상치될 때,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께 성실할 것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다. 우리는 일요일 법령의 강요가 우리에게 가져올 결과에 대하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위기가 다가오는 징조들을 볼 때, 일어나서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어떤 사람도 악을 조용히 기대하면서, 또한 이 일은 예언이 이미 말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아야 한다. 714 만일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그처럼 오랫동안 등한히 해 온 사업이 완성되기까지 이 재난이 지연될 수 있도록 열렬하고 능력 있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있어야 한다. 가장 열렬한 기도가 있어야 하고,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일치되는 사업을 해야 한다. 사단이 승리하고 진리는 거짓과 오류에 위압당한 것처럼 보일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백성들과, 양심에 억눌린 하나님의 종들과 그분의 진리의 옹호자들의 피난처가 되어 온 나라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원수들에게서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그들을 취급하신 일을 우리가 상기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사단의 역사에서 구제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분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최후 수단을 언제나 가지고 계신다. 인간의 필요는 하나님의 기회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할 유예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 같다. 열 사람의 의인들의 존재가 사악한 평원의 도시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여전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당신의 율법을 폐하고 있는 자들의 역사를 저지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크게 겸비하게 하여 은혜의 보좌를 찾아가서 그분의 큰 능력을 나타내 주시도록 그분께 탄원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 백성들이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실 수 없다. 그들은 그분과 협력할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 그들은 사태에 대하여 각성하지 않고 위협적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과는 달리 이제 경계와 일치된 행동의 필요를 느껴야 한다.

세 천사의 특별한 사업은 그 중요성 그대로 아직 나타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오늘날 처해 있는 위치보다 훨씬 더 전진하기를 바라셨다. 715 그러나 그들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된 지금, 그들은 해야 할 준비가 있다. 국가의 개혁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을 강요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지도적인 사람들은 그 사태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했고, 그 노력을 좌절 시키기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했어야 했다. 빛, 곧 우리 백성들이 이 시대를 위하여 필요로 하는 그 현대 진리가 그들에게 비취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고 있는 우리의 모든 목사들이 그 기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사실상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국가 개혁 운동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다면 심지어 그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과 별개의 문제들에 대하여 시간을 바치게 되는 것으로 느끼기까지 되었다. 이 시대에 필요한 바로 그 기별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는 데 대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형제들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백성들은 현 시대의 위험들에 관하여 깨우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파수꾼들은 잠자고 있다. 우리는 여러 해 뒤떨어져 있다. 파수꾼의 대장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할 긴급한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위험을 깨닫도록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잃어버릴 것이다.

만일 우리 합회들에 속한 지도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신 기별을 지금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 대열에 들어간다면 교회들은 큰 손실을 당할 것이다. 파수꾼이 칼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면 대열에 있는 사람들도 경고의 음성을 반향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전쟁을 위하여 준비를 갖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지도자는 서서 머뭇거리며, 말하는 것 같다. “너무 급히 서두르지 말자.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우리가 허보(虛報)를 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의 편에서의 이같은 주저와 불확실 그 자체는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살전 5:3). 흥분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 종교적인 (법률)개정 문제에 대하여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716 이 동요는 모두 진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기별을 실지로 부인하고, 교회들을 깨우기 위하여 마련된 경고는 그 일을 하지 못하고 만다. 파수꾼의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 파수꾼은 그의 주저와 지체로 말미암아 영혼들이 멸망하도록 버려지지 않고, 그들의 피가 그의 손에 요구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일요일 법령이 우리 나라에서 제정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 운동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는 바이다. 우리 백성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의무를 다할 것인가? 우리는 깃발을 높이 들고, 그들의 종교적 권리와 특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부르는 일을 도울 수 없을 것인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을 택하는 자들이 압박의 손을 느끼게 될 때가 신속히 다가오고 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이 짓밟히고 있는 동안 침묵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욕을 돌릴 것인가?

개신 교회가 그의 태도로써 가톨릭교회에 양보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일어나서 사태를 깨닫고 우리 앞에 있는 싸움의 참된 의미를 바라보아야 한다. 파수꾼들은 이제 그들의 음성을 높이고 이 시대를 위한 현대 진리가 되는 기별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예언의 역사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백성들에게 보여 주고 참된 개신교 정신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세상을 각성시켜 그토록 오랫동안 향유한 신앙 자유의 특권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해야 한다.

끝이 가깝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깨어 있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지나가는 시간마다, 미구에 우리 앞에 펼쳐질 큰 장면에서 한몫을 담당하도록 지상에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하늘 법정에서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별반 가치가 없어 보이는 지나가는 이순간들이 영원한 유익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것들은 영혼들의 운명을 영원한 생명이 아니면 영원한 죽음으로 꼴 짓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려주는 말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기별의 정신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도 될 수 있고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도 될 수 있다.

717 나의 형제들이여, 다른 영혼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그대들 자신의 구원도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을 위하여 지금 그대들이 갖추고 있는 준비에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대들을 대항하여 반대가 일어날 때 그대들을 설 수 있게 해줄 강한 열성과 경건과 헌신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언제나 말씀하셨으므로, 그대들이 의회 앞에 불려 나가고, 그대들이 고수하는 진리의 모든 주장이 심하게 비판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낭비되도록 허용하고 있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다가오는 위기를 위하여 준비하도록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 완수에 바쳐져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진실한 백성들에게 이전 어느 때 보다 더욱 사랑을 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막론한 모든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성경을 상고”(요 5:39)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촉구할 가장 절박한 필요가 있다. 그대들의 성경을 이전에 결코 연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연구하라. 그대들이 신앙 생애에 있어서 더 고상하고, 더 거룩한 상태에 이르지 아니하면 그대들은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빛이 주어진 그 만큼 그분의 백성들 편에, 거기에 상응한 열성과 성실과 헌신이 있기를 기대하신다. 더 큰 영성과, 하나님께 대한 더 깊은 헌신과, 그분의 사업에 있어서 지금껏 발휘된 적이 없는 열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품성의 옷이 씻겨져 어린 양의 피로 희여질 수 있도록 기도에 많은 시간이 쓰여져야 한다.

특별히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아야 할 은혜와 능력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가 제한되기를 원하시는 시간이 충분히 되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선지자는,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계 7:1) 하는 것을 보았다. 동쪽에서 올라온 다른 천사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계 7:3)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외쳤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사업을 가리킨다. 어느 지역에서나, 악의 구름을 물리쳐 주시고 주님을 위하여 일할 은혜의 해를 몇 년만 더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경건한 남녀들에게는 넓은 범위에 걸친 큰 책임이 지워져 있다. 718 세상의 모든 지역으로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여호와의 율법을 불순종하는 일에 대하여 경고를 선포할 때까지 천사들이 네 바람을 붙들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하자.

“더 아메리칸 센티널”과 그 사명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있는 큰 위기에 서도록 당신의 백성을 준비시키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매개들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또한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파수꾼들을 일으키시고 경고와 책망과 교훈의 기별을 가지고 그들을 보내신다. “센티널”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백성들이 듣고 그들의 위험을 깨닫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업을 하도록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음성이 되어 왔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그분께서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은 무엇이나 유의하기를 바라신다. 빛이 제시되면 그것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이 그 빛의 완전한 힘을 느낄 수 있게끔 그 빛에 유리하게 그들의 영향력을 첨가하여 전해 주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센티널”은 분명한 소리를 내는 나팔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 백성들은 모두 그것을 주의 깊이 읽고 어떤 친척이나 친구에게 보내 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게 되어야 한다.

3년 동안, “센티널”의 특별 기고난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경고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그 위험 신호를 통하여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 영향을 받지 못했다. 만일 우리의 형제들이 그들의 당연한 특권으로 여기고 “센티널”을 이용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대로 각 합회와 각 교회에서 그것을 권장하는 일에 모두 연합했다면, 우리 백성들의 주의가 이 시대에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 사업으로 이끌렸다면, 그들이 경고와 권고를 통하여, 또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비춰지도록 허용하신 빛을 식별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한 백성으로서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그처럼 멀리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719 이 위기의 시대에 놀라운 무관심과 무위(無爲)가 존재해 왔다.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 곧 현대 진리이다. 만일 각 교회에 있는 우리 형제들이 종교적 법률의 수정에 관하여 지금 진행되고 있는 놀라운 의미를 깨달았다면, 만일 그들이 이 운동에서, 위기의 요구에 일어서도록 그들을 부르는 분명하고 직접적인 예언의 성취를 식별하였다면, 그들은 오늘날 그와 같은 무감각과 죽음 같은 잠에 빠져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중대한 시기에 관하여 침묵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듣지 않고, 받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로 작정함으로써 그분의 영을 거역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의 빛의 기별은 여러 해 동안 우리 앞에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센티널”과, 증언들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시는 다른 기구들을 통하여 오는 경고들의 효력을 말살시키기 위한 영향들이 간접적으로 작용되어 왔다. 만일 이 반대의 영향이 “센티널”을 방해하는 일을 못하게 할려면 “센티널”이 훨씬 더 많은 것을 했어야 했다. 비록 그것을 반대하는 말이 전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행동들은 무관심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파수꾼들이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지 않는 한,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위험을 내다보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가 엄숙한 책임을 등한히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망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분께서 주신 증언들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 증언들을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의 축복들은 거두어졌다. 아, 신앙의 각성이 얼마나 필요한가!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다니며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의 마음에 들어가기 위하여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깨워서 그들의 영적 결핍을 깨닫게 해주시고자 고안하신 모든 수단들은 존중되지 않았다. 720 참된 증인의 음성은 책망을 통하여 들려졌지만 순종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 대신에 자기 자신의 길을 따르고자 택했다. 그러므로 빛은 주어졌으나 정신과 마음에서 효력은 거의 나타내지 못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금 그들의 육신적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현재의 축복과 경고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들의 영혼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비춰 주시고자 하시는 빛 사이에 아무 것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위한 모든 교역자는 그 상황을 깨닫고 “센티널”을 우리 교회들 앞에 제시하고, 그 내용을 설명하고,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과 경고들을 마음에 새기도록 강조해야 한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셔서 세월을 아끼게 되기를 바란다. 성화되지 못한 감정으로 어떤 사람을 이끌어서 하나님의 영의 호소를 거절하지 않도록 하라. 이 빛이 비추는 것을 막아서지 말라. 그 빛이 무시당하게 하거나 유의하고 신뢰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등한히 여기지 말라.

만일 그대들이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으로 주어질 빛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대들의 기대는 허지로 돌아갈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더 큰 외침과 더 좋은 기회를 위하여 기다린다면 빛은 거두어지고, 그대들은 흑암 속에 남겨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빛의 모든 줄기를 받아들여라. 순종이 십자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과 그분의 말씀의 요구에 유의하기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이다. 책들이 펼쳐지고. 모든 사람의 일과 그들을 고무시킨 동기가 온 땅의 재판장에 의하여 자세히 살펴질 때 그들이 어떤 손실을 당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우리가 만군의 주님 앞에 개인적으로 서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사상과 말과 행동에는 이기심과 무관심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풍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투신한 교역자들

721 너무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배틀크릭에 있는 교회에 합류하고, 너무도 중요한 많은 사업이 거기에 집중되는 사실은 그 곳을 두드러진 하나의 선교 지역으로 만든다. 나라의 모든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그 요양원으로 오고, 여러 다른 주들에서 온 젊은이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한 강력한 영향을 끊임없이 발휘하기 위하여 그 지역은 가장 헌신적이며 성실한 교역자들과 최선의 활동 방법을 요구한다. 사업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운영될 때,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은혜의 능력은 진리를 믿는 자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배틀크릭에서는 사업의 중심부를 건전한 상태로 지키기 위하여 이용해야 할 많은 장점들을 슬프게도 등한히 하고 있다. 본부에서 나오는 활기찬 심장의 고동이 신자들의 공동체의 모든 부분에서 느껴져야 한다. 그러나 심장이 그 기능에 있어서 병들고 무력하면 사업의 모든 분야들이 약해질 것이다. 진리가 온 세상으로 전해지기 위하여 이 중심부에서 건전하고 기운찬 활동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이 마지막 경고의 지식은 어느 곳에서나 가정과 지역 사회들을 통하여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계획을 세우고 이 사업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현명한 지휘가 필요할 것이다.

해마다 사업이 확장되므로 경험 있고 성실한 교역자들의 필요는 더욱 절실해진다. 그런데 만일 주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권면대로 행한다면 그런 교역자들이 육성될 것이다. 우리가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있는 동안, 그분께서는 우리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계발시켜 주실 것이다. 교역자들이 정신적·영적 능력을 얻어서 하나님의 목적과 솜씨를 잘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이 시대를 위한 사업에 대하여 더욱 광범위한 견해를 소유하게 되고, 그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데 더 좋은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722 이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열리는 것과 보조를 맞추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교역자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은 식별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경건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퍼뜨리는 일을 돕기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필요한 교육을 받도록 권유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적임인 자들은 모두 그들의 능력을 따라 사업의 어떤 분야에 종사하도록 지도되어야 한다.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하고 중대한 사업은, 지금까지 사업의 책임을 져 온 소수의 선택된 자들의 노력만으로써 완성되도록 진척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업의 성취를 돕도록 부르신 자들이 그분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한도까지 그 사업을 추진할 때, 주님께서는 그 사업이 그 단계에서 그치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처음 사람들과 연합시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부르시고 자격을 갖추게 하셔서 그들이 함께 더 멀리까지 전진하고, 깃발을 더욱 높이 들게 하신다.

그러나 사업과 함께 자라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업이 요구하는 필요에 스스로를 부응시키는 대신에 그들이 관여할 수 없는 범위로 그 사업이 확장되도록 허용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대의 절박성을 깨달을 수도 없고 거기에 부응할 수도 없는 자아를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사업의 책임을 지도록 자격을 부여하고 계신 사람들이 지금껏 지도되어 온 것과 약간 다른 방법으로 그 사업을 담당하게 될 때, 보다 나이 많은 일꾼들은 그들의 행동이 이 조력자들을 방해하거나 사업을 제한하는 그런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단순히 그 사업의 모든 면에서의 필요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지워 주신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한 방안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특정한 사업을 하도록 특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길을 막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723 다윗의 경우가 그 뜻을 잘 나타낸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을 짓고자 열망했고, 그 목적을 위한 재료들을 풍부하게 모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가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일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양되어야 하였다. 다윗의 많은 경험은 솔로몬을 권면하고 그에게 용기를 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젊은 사람이 성전을 지어야 하였다. 나이 많은 일꾼들의 피곤하고 지친 마음이 사업의 넓은 범위를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열리는 것과 보조를 같이하는 경향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거운 책임들이 오로지 그들에게만 지워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업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사업에 투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업은 지체될 것이다.

배틀크릭과 미시간 주 전반에 걸친 사업에 대한 현명한 관리가 부족함으로 그 사업은 마땅히 발전되어야 할 것보다 훨씬 뒤떨어져있다. 우리는 외방 선교의 상황과 요구를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는 한편, 바로 우리 문 앞에 있는 사업의 필요를 또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장점들을 올바로 이용하기만 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수의 교역자들을 내 보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교회들에는 활기찬 사업이 필요하다. 오늘날 절박한 주요 문제들을 나타내는 특별한 기별, 우리 시대의 의무와 위험들은 무기력하고 생기없는 방법으로써가 아니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고전 2:4)으로 그들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교인들에게는 책임들이 지워져야 한다. 선교 정신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욱 깨우쳐져야 한다. 그리고 양떼를 돌보는 목사로 활동하고,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영적 생명과 활동이 눈에 띌 수 있는 그런 상태까지 교회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교역자들은 필요한 대로 임명되어야 한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재능들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업에서 그것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시야는, 사업이 그 당시에 종사한 교역자들에 의하여 추진 되어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충분히 원시적이 아니었다. 724 사람들이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사업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활동을 도와주시도록 신뢰하는 대신에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일들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할 많은 것들, 매우 많은 것들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비능률적이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사업의 모든 분야들을 추진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들의 의지와 판단력이 이 여러 부분들을 통제해 왔다. 그러나 각기 다른 부분에서의 사업의 요구를 모두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큰 손실을 당해 왔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업을 위한 방안들을 지정해 주실 때 우리는 그것들을 버리고 그분께서 이적을 베푸셔서 부족을 채워 주시도록 기도하고 바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적으로 그가 등한히 한 결과를 막아 주지 않으신다. 추수 때에 그의 밭은 메말라 있음이 발견된다. 거두어 들여야 할 곡식이 없고, 쌓아 둘 곡식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씨앗과 흙, 해와 비를 주셨다. 그러므로 농부가 그에게 주어진 수단들을 이용하기만 했다면 그는 그의 파종과 노력에 따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천연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법칙들이 있으며, 영적 사물들도 동일하게 일정한 원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 바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목적을 위한 수단이 활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능력대로 일을 맡기셨다. 사람들이 어떤 비상 사태에 응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는 것은 교육과 실천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그에게 합당한 영역에서 책임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경험을 얻으려면 현명하게 계획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과 훈련과 경험 있는 사람들의 권면이 모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교역자들은 어떤 사람의 판단에 완전히 의지하지 않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를 가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분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상에 완전히 의존하고 그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는 다만 그 사람의 눈을 통하여 보게 되고, 다만 다른 사람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725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로 취급하신다. 그분은 만일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그분께 드리고 그분의 처사를 인정하기만 하면 그분께서 사람속에 넣어 주신 정신을 통하여 그분의 영으로 일하실 것이다. 그분은 각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마음과 양심을 이용하도록 계획하신다. 그분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말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자기들의 짐을 지는 자들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난처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쏟아 놓음으로 그들을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5, 6).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그리스도교의 기초는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시는 대로 행동해야지 다른 사람들의 정신에 의하여 감동받는 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런 활동 방법을 따르면 영혼들은 위대한 영원 자존자의 영에 의한 감동과 지도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행동이나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제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배틀크릭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강력한 이적의 능력으로 교회를 깨우쳐서 생명과 활기를 찾을 때까지 냉랭함과 무활동의 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지혜로워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빛과 축복을 가져다 주는 방법을 꾸준하고 경건하게,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활용할 것 같으면, 지상의 어떤 능력도 이 선물들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을 거절하면, 우리는 그분께서 이적을 행하셔서 빛과 활기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그분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26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일하시는 길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 나에게 보이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일이 이루어지고 축복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으로 그것이 온다고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형제들이여, 주님께서 이 문제를 사실 그대로 그대들 앞에 제시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계획하는 대로, 또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사(奇事)들을 행하기 위하여 신비한 방법으로 활동하신다.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우리의 사상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거절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정하신 빛의 통로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이것들은 반드시 사람들의 어떤 특정한 틀에 짜여진 생각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그들에게 지정된 위치를 차지하고 그분에게서 지혜와 지도를 열렬하게 구하고 있을 때, 큰 발전이 이루어져 세상에 빛을 비추게 된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 방해거리가 되게 하는 일을 그친다면, 하나님께서는 전에 없이 우리 사이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방대한 계획들이 수립되는 한편, 하나님 사업의 각 분야에서의 일이 조화로운 연합을 이루어서 각 부분들이 하나의 완전한 전체가 되도록 크게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그것과는 반대의 현상이 존재해왔다. 그 결과로 사업은 불완전해졌다. 사업의 어떤 특정 분야의 감독을 맡은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으로는 어떤 한 분야가 다른 각 분야보다 우월하다고 하기까지 그가 맡은 책임을 과장한다. 이런 좁은 견해를 취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견지에서 문제를 보게끔 영향이 발휘된다. 이것은 사람의 특성이지 그리스도의 정신은 아니다. 이 정책을 따르는 데 비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사업에서 밀려나고 자아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교역자로서 지배받아야 할 원칙들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놓여졌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그리고 베드로는 이런 말로 신자들을 권면한다. 727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벧전 4:10, 11).

이 원칙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때, 우리는 그 사업이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분께서 큰 전체의 각 부분을 똑같이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을 첫째로 삼고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한 사랑에 가리워질 때 어떤 교역자도 다른 각 분야의 중요함을 보지 못할 만큼 사업의 한 부분에 완전히 몰두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종사하는 사업의 특정 부분이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기심이다.

교역자들 편에서 그들의 판단이 가장 믿을만 하고 그들의 활동 방법이 최선의 것임에 틀림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양심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속박하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역시 이기심이다. 그런 것은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의 정신이었다.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자고한 마음으로 그런 완고한 법칙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고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일하실 기회를 남기지 않는 많은 형식과 의식들을 도입했다. 그리하여 그분의 자비와 사랑은 잃어버린 바 되었다. 나의 형제들이여, 동일한 길을 따르지 말라.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이끌려 가게 하라. 그분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일하실 기회를 갖게 해드려라. 만일 사람들이 따르기만 하면 마치 우로가 부족했던 길보아산에서 처럼 하나님의 영을 결핍되게 해 줄 법칙과 규칙들을 그들에게 과하지 말라.

우리 백성들 사이에 비참한 영성의 결핍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도록 의도하신 대로 되기 전에 하나의 큰 사업이 그들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주님께서 우리의 교회들에게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이 부족함을 내 앞에 제시하셨을 때 깊은 심령의 고통을 느껴 왔다. 자만의 정신과 지위와 패권을 위하여 노력하는 경향이 존재해 왔다. 728 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 사이에 자아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과, 사람의 교만이 낮추어지고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지 않으시면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유대 백성들이 초림 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던 것보다 재림 때에 그분을 영접하기에 더 좋은 상태에 있지 않을 것을 보았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오실 것으로 예견했던 그대로 오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만일 그분이 약속된 분으로 영접을 받았을 것 같으면 학식 있는 그들의 교사들은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켰으며, 사단은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주를 거절하게 했다. 그들의 교만한 의견을 굴복시키기는 커녕 그들은 그분의 메시야성에 관한 모든 증거에 대하여 눈을 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원의 기별을 스스로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예수님을 대적하게 했다. 그들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엄숙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빛을 가지고 계실 때 사단이 조용히 곁에 서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을 것으로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신과 질투와 의혹을 일으키기 위하여 활동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거절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빛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그런 방법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스스로 빛을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천국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을때 유대인들에 대해서 하신 다음의 말씀이 이처럼 크게 은총을 받은 백성들에 대해서 말해지지 않도록 하라.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우리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하늘에서 온 빛을 고대해야 할 때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함을 기대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마치 이스라엘의 군대가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삼하 5:24), 곧 하늘이 그들을 위하여 일하기로 정해진 신호를 지켜본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의 움직임을 지켜보아야 한다.

72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사람을 의지하고 혈육을 그들의 권력으로 삼고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실 수 없다. 그들의 연약한 현 상태는, 그리스도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시고, 침례 요한처럼 그들이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하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하도록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나에게 주셨다. “갈바리의 사람이신 그분을 높이라. 모든 사람이 그들의 영생의 소망이 집중되어 있는 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간은 뒤로 물러서게 하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교회와 세상이 그들의 구속자를 쳐다보게 하라. 모든 음성은 요한처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고 외쳐야 한다.”

목마른 영혼에게는 생수의 샘이 열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갈한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 44:3)라고 말씀하신다. 빛을 열렬히 찾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서 나오는 신령한 모든 빛줄기 하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영혼들에게, 오직 그런 영혼들에게만 빛은 주어질 것이다. 이런 영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으로 땅을 환하게 할 빛과 능력을 드러내실 것이다.

측량할 수 없는 선물

73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3-7).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4-7).

이것들은 “나이 많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몬 1:9) 로마의 감옥에서 편지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엡 3:8), 곧 타락한 인류에게 값없이 제공된 은혜의 보화를 완전한 그대로 표현하기 위한 적절한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그의 형제들 앞에 제시하고자 노력한 말들이다. 구속의 계획은 하나의 희생, 곧 하나의 선물을 통하여 세워졌다.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고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요 3:16)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딛 2:14)기 위함이시다. 그러므로 구속의 가장 큰 축복으로서의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롬 6:23)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구속의 계획은 선물로 시작되어 마치는 것처럼 그렇게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를 위한 구원에 치러진 동일한 희생의 정신은 하늘 선물의 참여자가 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말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되는 자에게는 이기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731 생명수를 마시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을 발견할 것이다. 그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사막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모든 사람에게 생기를 주기 위하여 흘러가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들로 하여금 생명수를 마시고자 열망하게 한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여러 가지 활동을 하도록 강권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던 동일한 사랑과 자아 희생의 정신이었다.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롬 1:14)고 말한다. 그는 또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엡 3:8)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로 하여금 우리가 그분 안에서 발견하는 충만함과 만족함을 세상에 반영하도록 계획하셨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은사를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 온 하늘이 일어나서 사자들을 지상의 각 곳으로 보내어 구속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신비한 몸의 지체들이다. 그분은 머리시며 몸의 모든 지체들을 다스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친히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로써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시며, 너무도 놀랍게 영적 변화를 이루어 주시므로 천사들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바라본다. 주님을 특징지우는 이기심 없는 동일한 사랑은 그분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들의 품성과 생애에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도록 그분의 영광을 반사할 뿐 아니라 하늘의 빛으로 세상의 흑암을 비추기를 바라신다. 그리하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벧전 4:10)이다. 732 하나님의 은혜의 지식, 그분의 말씀의 진리, 또한 세속적인 선물들-시간과 재물, 재간과 감화-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된 것이다. 이 선물들을 이기적으로 붙들고서 주신 분에게 돌려드리지 않는 것보다 그분의 선물을 사람에게 끊임없이 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더 불쾌한 일은 없다. 예수님은 지금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거할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것은 거할 집 이상의 것, 곧 우리의 것이 될 나라이다. 그러나 이 축복을 받을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극기와 자아 희생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은혜의 시기가 신속히 마쳐져 가고 마지막 자비의 기별이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오늘날보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있어서 열렬하고 자아 희생적인 활동이 더 크게 필요한 적은 없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는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이 사방에서, 우리 나라의 도시들과 촌락에서, 대서양과 넓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또한 바다의 섬들에서 들려 올 때 나의 영혼은 내 속에서 요동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그 부르짖음에 이렇게 대답하겠는가? “우리가 선교사들과 돈을 보냄으로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옥들을 장식하고 우리의 몸들을 꾸미고 식욕을 만족시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 자신들을 부인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위탁된 재물을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그분의 사업에 거리낌없이 바치겠습니다.” 사업의 필요는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텅빈 금고는 우리를 향하여 가장 애처롭게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의 한 달러는 미래 어느 때의 열 달러보다 더 가치가 있다.

형제들이여, 일하라, 그대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낮이 계속되고있는 동안 일하라. 일하라. 왜냐하면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그 밤이 얼마나 빨리 다가올 것인지는 그대들에게 말할 수 없다. 지금은 그대들에게 주어진 기회이다. 그 기회를 이용하라. 만일 선교 사업에 직접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절약하여 생활함으로 그들의 이득을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출판물과 서적들을 보낼 돈을 바칠 수 있다. 733 그들은 또한 선교 사업에 적합한 학생들의 학비를 지불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대들이 절약할 수 있는 모든 돈은 하늘의 은행에 투자되어야 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이것은, 그대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그대들을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분의 적극적인 명령을 등한히 함으로써 그대들의 주님을 거절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토지와 가옥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팔아서 그 돈을 선교 지역의 큰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도록 요청하신다. 그들이 일단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진정한 만족을 체험하게되면 그들은 그 통로가 계속해서 열려 있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시는 재물이 끊임없이 금고 속으로 흘러들어가서 영혼들이 회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혼들도 그들의 차례가 되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똑같은 극기와 경제와 검소함을 실천하여 그들의 헌금을 하나님께 가져오게 될 것이다. 현명하게 투자된 이 달란트들을 통하여 여전히 다른 영혼들이 회개하게 될 것이며, 이리하여 사업은 계속되고, 하나님의 선물이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날 것이다. 주신 분은 인정을 받고, 그분의 청지기들의 성실을 통하여 영광은 그분께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이와 같이 열렬히 호소하고 우리 선교 사업의 재정적 필요를 알려 줄 때 진리를 믿는 양심적인 영혼들은 깊은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돈 두닢을 연보궤에 넣음으로 그리스도께 칭찬받은 가난한 과부처럼 그들은 가난한 중에서도 그들의 역량껏 바친다. 그런 사람들은 때때로 외관상 생활의 필수품까지도 빼앗긴다. 734 그런가 하면 가옥들과 토지들을 소유하고서 이기적 고집으로 그들의 세속적 재물을 굳게 붙들고 그들의 재물을 하나님의 사업에 바칠 만큼 기별과 하나님을 믿는 충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남녀들이 있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에게,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막 10:21)고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특별히 적절하다.

가난한 남녀들이 그들의 집을 팔아서 그 매상금을 하나님의 사업에 바쳐야 할 것인지의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나에게 보내고 있다. 그들은 재물을 위한 호소가 그들의 심령을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해주신 주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지금 바로 그대의 작은 집을 파는 것이 그대의 의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라.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대의 열렬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의 의무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만일 하늘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더욱 많이 찾고 사람에게서 지혜를 덜 구한다면 하늘에서 훨씬 더 큰 빛이 주어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구하는 자를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재물을 위탁받고 토지와 가옥들을 소유한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매도를 시작하고, 구제를 하라. 지체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하고자 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바라신다.” 우리는 재물을 가진 그대들이 열렬한 기도로써 물어보도록 호소한다. 나와 나의 소유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 주님의 날에 서도록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지금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있다. 재물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투자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그분의 소유를 돌려드리도록 격려하라. 하나님의 영의 결핍이 그처럼 큰 하나의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도둑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묘사한 마게도냐 교회의 경험에는 우리를 위한 하나의 교훈이 있다. 그는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재물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치고자 열망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 8:2-4).

735 바울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는 일에 대한 하나의 법칙을 밝히고 그 결과가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6-11).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줄 수 있는 무엇을 행하거나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도는 말한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그들이 준비한 물질을 함께 모았을 때, 왕은 그 보화를 회중의 지도자들에게 맡기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언제나 남아 있어야 할 다음과 같은 말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0-17).

736 땅의 부를 백성에게 제공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그분의 영께서는 그들의 귀중한 물건들을 성전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가져오게 하셨다.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았을 것 같으면 왕의 노력은 허지로 돌아가고 성전은 결코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모든 것은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다. 그분께서 세상의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통하여 주신 것은 무엇이나 우리를 시험하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그분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감사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우리 손에 놓여진다. 부의 재물이거나 재능의 재물이거나를 막론하고 그것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 놓여지는 자원하는 헌물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면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당신의 사업을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들을 당신의 청지기로서 부나 지능의 보화들을 그들에게 맡기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은 무엇이나 그분의 자비와 아량을 통하여 성실한 청지기로서 우리의 계정에 올려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사람 편에서의 어떤 종류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님을 언제나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당신의 그 귀중한 은총의 표징들이 인정되지 못하고 올바로 활용되지 못할 때 그분께서 철회하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죄악으로 지각이 흐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늘의 재산들이 위대한 시여자의 영광을 더해 주는 그런 방법으로 되돌려지는 의도로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복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737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피조물의 기쁨과 축복이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증진시키고자 노력할때 우리는 우리가 받는 것이 가능한 최고의 유익을 우리 스스로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모든 기능과 모든 선물을 그분을 섬기는 일에 바치도록 호소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이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품성

구주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주장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 24).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사도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고전 1:21)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요 1:10)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고 선언하셨다. 구주께서는 겟세마네의 그늘에 들어가시기 전에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 눈을 하늘로 향하여 드시고 타락한 사람들의 무지를 동정하시는 말씀으로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25, 6)라고 말씀하셨다.

738 태초부터 사단이 사람들을 그 자신에게 붙들어 매두기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그의 고안된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되게 나타내어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갖게 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들의 마음에 창조주께서 악의 왕 자신의 특성들, 곧 전횡적이고, 가혹하고, 용서성이 없는 특성들로 둘러싸인 분으로 나타내 짐으로써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기피와 증오의 대상으로까지 될 것이었다. 사단은 그가 기만한 자들의 마음을 혼란시킴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그러면 그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워 버리고 그 자신의 형상을 영혼에게 새겨 줄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 자신의 정신을 넣어 주므로 그의 뜻대로 그들을 사로잡게 될 것이다.

사단이 하와를 범죄하도록 유혹한 것은 하나님의 품성을 속이고 그분을 불신하게 함으로써였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첫 조상들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그들의 본성은 타락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생각은 그들 자신의 편협과 이기심에 의하여 꼴 지워졌다. 사람들이 범죄하는 일에 더욱 담대해 지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분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롬 1:21)다.

때로는 인간 가족을 지배하기 위한 사단의 싸움이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스도의 초림 전 시대 동안 세계는 거의 완전히 흑암의 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마치 우리의 첫 조상들의 죄 때문에 세상의 나라들이 당연히 그의 것이 된 것처럼 무서운 힘으로 다스렸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는 지식을 세상에서 보존하기 위하여 택하신 언약의 백성들까지도 그분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갔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품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와 은혜와 긍휼이 충만하신 분으로 세상에 나타내시기 위하여 오셨다. 739 사단이 신성의 보좌를 에워싸고자 노력해 온 짙은 검은 구름은 세상의 구속주에 의하여 제거되었고, 아버지는 생명의 빛으로서 사람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빌립이 예수님께 와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요구하자, 구주께서는 그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8, 9)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대표하는 자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스스로 주장하신다. 그분의 품성의 고귀함을 통하여, 그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통하여, 그분의 자비와 부드러운 동정을 통하여 그분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체현(體現), 곧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우리 앞에 서신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라고 말한다. 오직 우리가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명상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을 올바로 식별할 수 있다. 창조의 사업은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범죄하고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만은 무한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깊이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의 율법이 유지되고 그 공의가 옹호되면서도 죄인은 용서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하”(롬 3:26)시고자 하늘 자체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주어졌다. 그 선물에 의하여 사람들은 죄의 파멸과 타락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바울은 “너희는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고 말한다.

형제들이여, 나는 사랑받은 요한처럼 그대들에게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죄인이요 외인(外人)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분의 가족으로 입양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사랑이며, 얼마나 무한한 사랑인가! 740 우리는 그분을 “우리 아버지”라는 사랑스런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애정의 표시이며 우리에 대한 그분의 부드러운 관심과 관계의 보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은혜의 후사들을 바라보시면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히 2:11)신다. 그들은 타락한 적이 없는 천사들이 가진 것보다 더욱 거룩한 관계를 하나님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아버지의 모든 사랑, 사람들의 심령 속에 열려진 긍휼의 모든 샘들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비교해 볼 때, 끝없는 대양에 대한 작은 실개천에 불과하다. 그것은 혀로도 말할 수 없고, 붓으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대는 매일의 생애에서 그것을 명상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탐구할 수도 있다. 그대는 또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기 위하여 노력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모든 능력과 재능을 총 동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안(彼岸)에는 무한이 있다. 그대는 여러 해 동안에 걸쳐 그 사랑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주셔서 세상을 위하여 돌아가게 하신 그분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는 없다. 영원 자체도 그것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의 계획을 명상할 때 우리는 이 위대한 주제들을 차츰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바랐던 그 축복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사물에 몰두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끊임없는 연구 과제이다. 그는 그들이 이해력을 어둡게 하고 심령을 낙담케 할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741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유혹하고 낙담케 하는 영향으로 둘러싸인 악과 타락의 세상에 처해 있다. 구주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위에 있는 무서운 악, 도처에 있는 반역과 허약에 그들의 눈을 고정시킨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마침내 슬픔과 의심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이런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맨 먼저 대 기만자의 교묘한 역사를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경험에서 용기를 잃게 하는 것들을 숙고하는 한편 하늘 아버지의 능력과 그분의 비할데없는 사랑은 보지 않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의도하는 그대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을 그처럼 작게 생각하면서 의의 원수가 그처럼 큰 능력으로 옷입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강대(强大)하심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손아귀에서 우리 자신을 구출해 내기에 전혀 무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정해 놓으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께서는 그 싸움을 우리를 위하여 싸울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 넉넉히 이”(롬 8:37)길 수 있다.

우리의 연약함과 배교에 대하여 끊임없이 곰곰이 생각하고 사단의 능력을 한탄할 때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적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명시된 조건들과 일치되게 당신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고 또한 구원하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하나의 산 원칙, 곧 우리를 위하여 행해진 희생 제사의 효력으로서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의 편에 두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속죄의 피를 통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보증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길을 이끄시는 곳으로 걸어간다. 그분은 사단이 우리의 길에 던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 버릴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흑암과 낙담 대신에 그분의 영광의 햇빛이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게 된다.

742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사실을 앎으로써 끊임없이 강해져야 한다. 사단의 흑암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그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우리는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빛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세상에 비취게 하고, 그분께서는 사단의 모든 능력을 초월하시고 지탱해 주는 그분의 팔이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붙들어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7)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고정된다면, 그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 들어 가셨”(히 6:19, 20)음을 입증할 것이다. 실망이 다가올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환난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갖가지 불만의 요인 때문에 난처해 지지 않으시고 우리의 무거운 짐 때문에 압도당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보호는 각 가정에 미치고 각개인을 둘러싼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사업과 우리의 슬픔에 관심을 가지신다. 그분은 모든 눈물을 주시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하신다. 지상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시련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목적을 성취시켜서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히 12:10)하시고 그분의 임재에서 발견되는 완전한 기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자 허락된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그러나 성경은 가장 강한 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2, 3)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욥 22:21)고 명령한다.

743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벧전 1:16)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영감받은 사도는 또한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고 주장한다. 거룩함은 하나님과 일치되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훼손되고 거의 지워졌다. 잃어버린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복음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고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그분의 형상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 이 지식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고상한 품성과 직분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빈약한 견해들은 그들의 신앙 경험을 편협하게 했고 거룩한 생애에서의 그들의 전진을 크게 훼손시켰다.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적 신앙은 부진한 상태이다. 많은 형식과, 많은 기계적인 것과, 많은 입술만의 신앙이 있다. 그러나 더욱 깊고 더욱 확고한 것이 우리의 신앙 경험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시설들, 우리의 출판소들, 우리의 학교들, 우리의 병원들, 그 밖의 다른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우리는 현재의 위치에서 훨씬 더 앞서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고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복되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사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신것은 우리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빛과,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들에 비교해 보면, 우리 사업의 결과는 너무도 적은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 진리가 지금껏 계시되었던 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계획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우울과 슬픔으로 채워져 있고, 우리 주변에 있는 흑암과 악을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낼 수 있겠는가? 우리의 간증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능력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험적인 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그대로의,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성경을 살펴야 하고, 우리의 이해력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생되어야 하고, 우리의 마음은 믿음과 소망과 끊임없는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한다.

744 믿음으로 우리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분의 의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우리의 매일 매시간의 일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 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는 사도의 말씀에 밝혀져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더욱 밝아지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우리의 소망은 더욱 확고해진다. 우리는 그분의 순결과 사랑,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시고자 그분께서 치르신 희생 등에 관한 생각에 너무도 몰두되어 있기 때문에 의심과 낙담에 관하여 이야기할 의향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은혜와 자비의 현현, 우리의 마음을 깨우치고 새롭게 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 등이 우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너무도 가까이 연결시켜 그분의 품성을 분명히 깨닫게 해줌으로 우리는 사단의 교묘한 기만을 식별할 수 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공로에 의지함으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빛과 평안과 기쁨의 축복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위대한 일들을 바라볼때, 우리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부르짖게 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구주의 사랑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함을 명상함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함으로 우리는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불쾌한 그림들-범죄와 타락과 실망, 사단의 세력에 대한 증거들-을 함께 모아서 우리의 기억의 방에 걸어 두고 그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탄식하기를 마침내 우리의 심령이 실망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해서는 안 된다. 낙담한 영혼은 흑암의 사람이며, 그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빛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빛이 비취지 못하도록 막아 버린다. 745 사단은 그의 승리의 그림들의 효과를 보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믿음 없고 낙담되게 만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더 밝고 유쾌한 그림들이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자. 복스러운 그분의 사랑의 그림들을 귀중한 보배처럼 함께 모아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바라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아들은, 인류를 사단의 세력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아버지의 보좌를 떠나 그분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셨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승리는 인류에게 하늘을 열어 주고, 사람의 시야에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임재의 방을 계시해 준다. 타락한 인류는 죄가 그들을 빠뜨린 멸망의 함정에서 구출을 받고, 우리 구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시험을 견뎌 왔으며, 무한하신 하나님과 다시 연결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고 그분의 보좌에 이르기까지 높임을 받았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영혼의 방들을 유쾌하게 꾸미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림들이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고후 4:17) 하는 사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은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거기에는 거룩함이 최고의 위치에 놓이며, 하나님과의 완전한 조화를 깨뜨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 곳을 향하여 가고 있다면 하늘의 정신은 이 곳에서 우리의 마음에 거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금 하늘의 사물들을 명상하는 데서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지식을 탐구하는 데 흥미가 없고 그리스도의 품성을 바라보는 데 기쁨이 없다면, 그리고 거룩함이 우리에게 아무런 매력을 주지 못한다면, 하늘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헛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앞에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할 높은 목표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복되고 정(淨)한 본향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이 주제들에 대한 명상, 복스러운 하나님의 약속들을 맛볼 때, 사도는 “내세의 능력”(히 6:5)을 맛보는 것으로 나타낸다.

746 바로 우리 앞에는, 사단이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살후 2:9, 10)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막 13:22)하는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놓여 있다. 만일 하늘로부터 끊임없이 증가되는 빛이 필요한 한 백성이 지금껏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율법의 보관자가 되고 당신의 품성을 세상 앞에서 옹호하도록 부르신 백성이다. 그처럼 거룩한 위탁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믿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들을 통하여 신령해지고, 고귀해지고, 생기로워져야 한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골 1:9, 10) 하신다는 말로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묘사된 경험이 교회에 이보다 절실히 필요한 적이 없고, 교회가 누리도록 하나님이 이보다 더 간절히 열망한 적도 없었다.

말씀이 육신이 됨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가장 귀중하고 가장 오묘한 구속의 계획에 속한 진리들 중 하나이다. 바울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 3:16)라고 말한 것은 이것에 관한 것이다.

이 진리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과 불신의 원인이 되어 왔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고 친히 인성을 취하셔서 타락한 인류와 접촉하고 그들을 건져낼 수 있게 되셨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죄로 어두워지고 그들의 정신 기능은 마비되고 그들의 지각은 둔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인성을 옷입은 그분의 신적인 특성을 분별할 수 없었다. 747 그들에게 있는 이같은 이해의 부족은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성취하시고자 열망하신 사업에 장애가 되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분은 자주 당신의 위치를 규명하고 옹호할 필요가 있었다. 당신의 오묘하고 신적인 특성을 말씀하심으로써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진리의 능력에 적응되게하는 일련의 생각 속으로 이끌고자 하셨다. 다시 그분은 거룩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천연계의 사물들을 사용하셨다. 마음의 흙은 이리하여 좋은 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분은 당신의 청중들로 하여금 그분의 관심이 그들의 관심과 동일하고 그분의 심장이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있어서 그들을 동정함으로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셨다.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가장 존귀한 랍비들이 소유한 것보다 훨씬 우월한 능력과 탁월함이 그분 안에 나타나 있음을 보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단순과 위엄과 능력으로 특징지워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의식 중에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요 7:46)라고 부르짖었다. 백성들은 그분의 말을 즐거이 들었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랍비들-진리의 수호자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에 불성실한 그들 자신-은 무리들을 그들에게서 떠나 생명의 빛되신 분에게로 이끌은, 계시된 바로 그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했다. 그들의 성향 때문에 유대 민족은 그분의 신적인 특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구속주를 거절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성경에도 존재한다. 계시된 진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되고 인간의 필요에 적절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불리워지신 것처럼 하나님의 책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성경을 대적하는 하나의 논지(論旨)가 되기는 커녕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굳게 해 주어야 한다.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신적(神的)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성경의 영감을 주장하지만 반면에 다른 부분들은 인간적인 것이라 해서 거절하는 자들은 신성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접촉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인간의 구속(救贖)을 위한 하나님의 사업에는 신성과 인성이 결부되어 있다.

748 회의론적 비평가들이 비영감이라고 주장해 온 많은 성경절들이 있지만, 인간의 필요에 가장 적절하다는 점에 있어서 그것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그분 자신의 기별이다. 이것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예증이 사도 베드로의 역사에 나타난다. 베드로는 투옥되어 이튿날 죽임을 당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밤에 그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 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 12:6, 7). 갑자기 잠을 깬 베드로는 그의 감방에 충만한 밝은 빛과 하늘 사자의 성스러운 아름다움에 놀랐다. 그는 그 장면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알았다. 당황함과 기쁨으로 그는 차가운 밤 공기로부터 보호받음 없이 감옥에서 나갔을 것이다.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하나님의 천사는 그 사도의 필요에 대한 적절한 관심을 나타냈다.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행 12:8). 베드로는 기계적으로 순종했다. 그는 하늘의 영광의 계시에 너무 황홀해졌기 때문에 자기의 겉옷을 입을 생각을 못했다. 그러자 천사는 그에게 명령했다.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 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행 12:8-10). 사도는 그가 예루살렘의 거리에 홀로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하나의 꿈이나 환상이 아니고 실제적으로-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행 12:11).

749 회의론자들은 하늘에서 온 영광스런 천사가 이런 단순한 인간의 필요를 돌봐주는 하찮은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생각을 비웃고 그 이야기의 영감성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써 이런 것들이 천사들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한 역사에 기록되어 그들이 시험받는 처지에 놓일 때에 하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하심 없이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으며 그분께서 공중에 나는 모든 작은 새들의 필요를 마음에 두실 수 있다면 그분의 나라의 백성들이 될 수 있고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불멸의 후사들이 될 수 있는 자들을 더욱 더 돌보실 것이라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장하셨다. 아, 만일 인간의 마음이, 예수님께서 친히 인성을 쓰심으로써 나타내신 그분의 사업과, 이 놀라운 겸비를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이루시게 된 일을-유한한 마음으로 구속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깨달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녹아지게 될 것이며, 겸비한 중에 그들은 은혜의 신비를 고안해 내신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그분의 돌보심

이사야가 아직 젊은 사람으로서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것은 곤경과 낙담의 환경 아래서였다. 재난이 그의 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다.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앗시리아의 군대는 유다 나라를 대항하여 바야흐로 쳐들어 오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오는 위험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다. 주님의 종을 가장 크게 의기 소침하게 한 것은 백성들의 완고함이었다. 그들의 배교와 반역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었다. 750 그 젊은 선지자는 경고의 기별을 그들에게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완강한 거절을 당할 것을 알았다. 그가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그가 대상으로 활동해야 할 사람들의 완고와 불신을 생각할 때 그는 떨었다. 그의 과업은 그에게 있어서 거의 절망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가 낙심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단념하고, 이스라엘이 아무런 방해없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방치되어야 할 것인가? 니느웨의 신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을 통치할 것인가?

그가 성전 주랑(柱廊) 아래 서 있을 때 이런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성전의 문과 내부의 휘장이 들어올려졌거나 거두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선지자의 발이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에게는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여호와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 보좌의 양편에는 스랍 천사가 날고 있었는데, 그는 두 날개로는 날아다니고, 둘로는 존경하는 태도로 얼굴을 가리우고, 둘로는 그들의 발을 가리고 있었다. 봉사하는 그 천사는 엄숙한 기원(祈願)으로 음성을 높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고 음성을 높였는데 마침내 기둥과 백향목 문이 그 음성으로 떨리고 그들의 찬양으로 집이 충만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사야는 이전에 그처럼 완전히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완전한 거룩하심을 깨달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인간적 약점과 무가치 때문에 그 거룩한 임재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부르짖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그러나 한 스랍이 그를 위대한 사명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하여 그에게로 왔다. 제단에서 취한 핀 숯이 그의 입술에 대어졌고,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는 음성이 들렸다. 그 때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사야는 거룩한 확신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했다.

751 세상의 열강들이 유다를 대적한들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이사야가 그의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서 반대와 거절을 당한들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그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다. 그는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고 하는 스랍의 노래를 들었다. 그 선지자는 자기 앞에 놓인 사업을 위한 힘을 얻었다. 이 이상에 대한 기억은 그의 길고 힘든 사명을 통하여 줄곧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슬픈 귀양살이를 한 선지자 에스겔은 갈대아 땅에서 전능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동일한 믿음의 교훈을 가르치는 이상을 보았다. 그가 그발 강가에 있을 때 회오리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것처럼 보이고,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 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였다(겔 1:4). 서로 교차되는 이상한 모양의 많은 바퀴들이 네 생물에 의하여 움직였다. 이 모든 것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겔 1:26, 13, 10:8).

구조면에 있어서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이 너무도 복잡했기 때문에 에스겔이 처음 볼 때에 그것들이 모두 혼잡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움직였을 때는 참으로 정확했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하늘의 존재자들이 이 바퀴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무엇보다도 영광스런 남보석 보좌에는 영원하신 분이 좌정해 계셨는데, 보좌의 주변에는 은혜와 사랑의 상징인 둥그런 무지개가 있었다. 그 무서운 영광의 장면에 압도당한 에스겔은 엎드려 얼굴을 가리웠다. 그 때 한 음성이 나서 일어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그에게 명령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의 기별이 그에게 주어졌다.

752 이 이상은 에스겔의 마음이 불길한 예감으로 꽉 차 있을 때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그의 조상의 땅이 폐허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때 사람으로 가득 찼던 도시가 이제는 거민들이 없었다. 그 도시의 성벽 안에서는 환희의 음성과 찬양의 노래가 사라졌다. 그 선지자 자신도 끝없는 야망과 사나운 잔혹이 절대권을 쥐고 있는 낯선 땅에서 한 사람의 나그네로 있었다. 그가 보고 들은 인간의 포학과 비리가 그의 심령을 괴롭혔고, 그는 밤낮으로 몹시 슬퍼했다. 그러나 발 강가에서 그에게 제시된 놀라운 표상들은 세상 통치자들의 능력보다 훨씬 더 강한 압도적인 능력을 계시했다.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교만하고 잔인한 군주들 위에 자비와 진리의 하나님이 좌정해 계셨다.

선지자에게 그처럼 복잡한 것처럼 보인 바퀴 모양의 혼잡은 무한한 손길의 지도 아래 있었다. 이 바퀴들을 움직이고 지도하시는 것으로 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영이 혼잡한 가운데서 조화를 가져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온 세계는 그분의 지배 아래 있었다. 영광스런 수많은 존재자들이 악한 자들의 세력과 계교를 제압하고 그분의 성실한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고자 그분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미래 시대의 교회의 역사를 사랑하는 요한에게 열어 보이고자 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에게 일곱 교회를 상징한 촛대 사이로 걸어다니는 “인자 같은 이”(계 1:13)를 계시하심으로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구주의 관심과 보호의 보증을 그에게 해주었다. 요한이 세상의 권세들로 더불어 싸우고 있는 교회의 마지막 큰 투쟁을 보고 있는 동안, 그에게는 또한 충성된 자들의 마지막 승리와 구원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는 교회가 짐승과 그의 우상으로 더불어 맹렬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과 그 짐승의 경배가 그것을 위반하면 사형을 조건으로 강요되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전쟁의 연기와 소음 저편을 바라보면서 그는 짐승의 표 대신에 “이마에 … 아버지의 이름을”(계 14:1) 지니고 있는 한 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753 그리고 다시 그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계 15:2)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교훈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졌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굳게 견지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심령을 시험할 때가 바로 우리 앞에 박두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당신의 재림 전에 있을 무서운 심판들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이 예언들이 예루살렘의 파멸 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지만, 그것들은 마지막 날에 더욱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우리는 크고 엄숙한 사건들의 문지방에 서 있다. 예언은 신속히 성취되어 가고 있다. 주님께서는 문 앞에 와 계신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압도적으로 중요한 기간이 미구에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과거의 투쟁들이 재현되고 새로운 투쟁들이 생길 것이다. 우리의 세계에서 일어날 장면들은 지금껏 꿈도 꾸어 보지 못한 것들이다. 사단은 인간 기구들을 통하여 일하고 있다. 헌법을 바꾸고 일요일을 강요하는 법률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는 자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별로 깨닫지 못한다. 위기가 우리 앞에 박두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이 큰 비상 사태에서 그들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와 에스겔과 요한에게 주어진 이상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늘이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얼마나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세계는 통치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가오는 사건들의 프로그램은 주님의 손에 쥐어져 있다. 하늘의 대왕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요 나라들의 운명을 친히 책임지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의 사업에서 너무 많은 염려와 어려움과 곤란을 스스로 통감한다. 유한한 사람들이 책임의 짐을 지고 가도록 버려지지 않았다. 754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믿고 앞으로 전진할 필요가 있다. 하늘 사자들의 부단한 경성, 세상의 거민들과 관련된 그들의 봉사에서의 끊임없는 활동은 하나님의 손이 바퀴 안에 있는 바퀴를 어떻게 이끌고 계신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거룩한 교훈자께서는 마치 옛날 고레스에게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 45:5)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사업에 활동하는 각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에스겔의 이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스랍의 날개 아래 두고 계셨다. 이것은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을 성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만일 그들이 불의를 버리고 마음과 생애가 순결해 진다면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실 것이다.

번개와 같은 빠른 속력으로 생물들 사이로 왕래하는 밝은 빛은 이 사업이 마침내 완성을 향하여 나갈 속력을 나타낸다. 졸지 않으시는 분, 그분의 계획의 완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는 분은 그분의 사업을 조화롭게 추진하실 것이다. 유한한 사람의 마음에는 엉크러지고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주님의 손은 완전히 질서 있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악인들의 목적을 방해하는 방법과 수단들을 고안해 내실 수 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해롭게 하고자 음모하는 그들의 의논을 혼란하게 하실 것이다.형제들이여, 지금은 탄식하고 절망할 때가 아니며, 의심과 불신에 굴복당할 때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새 무덤에 안장되어 계신 구주가 아니시며, 큰 돌로 가두어지고, 로마의 인으로 인봉된 구주가 아니시다. 우리에게는 부활한 구주가 계신다. 그분은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신다. 그분은 그룹들 사이에 좌정해 계신다. 나라들의 분쟁과 소요 가운데서 그분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고 계신다. 하늘에서 통치하고 계신 분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분은 모든 시련을 헤아리신다. 그분은 각 사람을 시험해야 할 풀무불을 주목하신다. 왕들의 요새가 무너질 때,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이 그분의 원수들의 심장을 꿰뚫을 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의 손안에서 안전할 것이다.